여자에 관하여 수전 손택 더 텍스트
수전 손택 지음, 김하현 옮김 / 윌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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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수전 손택이 마흔이 될 무렵인 1970년대에 쓴 에세이 일곱 편을 엮은 것이다. <매혹적인 파시즘>을 제외한 전편이 국내 초역이라고 하는데 그동안 수전 손택의 저작을 포함한 여성 관련 책들, 페미니즘 관련 책들을 열심히 읽어온 덕분인지 내용이 아주 새롭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물론 이 에세이들이 처음 발표된 1970년대에는 과격하고 충격적으로 느껴졌겠지만... (어쩌면 지금도 1970년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과격하고 충격적으로 느껴지겠지만...)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글은 (아이러니하게도 유일하게 초역이 아닌) <매혹적인 파시즘>이다. 이 글은 불세출의 천재라는 명성을 누린 동시에 히틀러와 나치 선전 영화를 만든 부역자라는 오명도 있는 여성 영화감독 레니 리펜슈탈을 다룬다. 저자는 이 글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한다. 페미니즘은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철폐하고 여성의 권리와 이익을 넓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어떤 여성이 다른 여성뿐 아니라 다른 인간을 억압하고 차별하는(심지어 살해하는) 활동에 복무할 때에도 그의 권리와 이익을 보장해야 할까. 그가 보통의 여성이 아니라 남자들도 인정한 능력자, 천재라는 사실이 그에게 면죄부를 줘야 하는 이유가 될까.


이러한 문제 제기는 단순히 레니 리펜슈탈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관한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치적 입장은 같지만 세부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생각이 다른 사람 - 이를테면 같은 여성이지만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 페미니즘을 지지하지만 다른 약자나 소수자 집단에 대해서는 차별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 - 을 어떻게 포용할 것인가에 관한 고민에 대해서도 적용해 볼 수 있다. 이 문제의 연장 선상에 놓여 있는 글이 <매혹적인 파시즘> 다음에 실린 <페미니즘과 파시즘: 에이드리언 리치와 수전 손택의 서신>이다. 내가 보기에는 두 사람의 논쟁이라기보다 (리치의) 항변 느낌인데, 이 시대에도 지금과 비슷한 대립이 있었구나(반대로 생각하면 이 시대의 대립이 지금도 있구나) 라는 생각에 재미있기도 씁쓸하기도 했다.


<매혹적인 파시즘>에서 흥미로웠던 점 또 하나는 파시즘 예술의 미적, 심리적, 성적 영향에 대한 손택의 해석이다. 정치가 예술을 선전 도구로 활용한 예는 수없이 많지만, 나치의 경우 예술을 통해 선전하고자 한 이미지가 확실했다. 그것은 바로 '완벽함'이다. 리펜슈탈의 영화만 보더라도 내용은 차치하고 미학적으로는 완벽하다는 극찬을 받았다. 리펜슈탈 자신은 인체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예술인 발레를 어릴 때부터 배웠다. 문제는 나치 실권 이후에도 (리펜슈탈 영화처럼) 나치가 추구한 미학은 남아서, 1970년대 미국에서 나치 제복 스타일이 유행하고 아름다움 추종, 용기 숭배, 지배-복종 관계에 대한 동경 등의 풍조가 생겼다는 것이다.


유일한 정답이 존재하고 모두가 그것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파시즘의 정의)이 예술에 반영되어 그 예술이 다시 인간에게 미적, 심리적, 성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놀라운 한편으로, 손택이 예로 든 파시즘의 특징(아름다움 추종, 용기 숭배, 지배-복종 관계에 대한 동경)이 한국 사회 그 자체라서 신기...함을 넘어 공포스러웠다. 알다시피 한국은 성형 대국으로 불릴 만큼 미에 대한 집착이 강한데 이것이 파시즘과 관계가 있다니. 물론 미에 집착하는 사람 전부를 파시스트로 매도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미에 우열이 있다는 생각, 미를 기준으로 인간을 차별할 수 있다(차별해도 된다)는 생각은 확실히 파시즘에 가까워 보인다. 


나 자신은 남에게 아름다워 보이고 싶은 생각도 없고,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외모를 신경 쓰지도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은 분명 외모가 뛰어나고, 각자의 재능은 외모만이 아니지만 외모가 매력적이지 않았다면 멤버로 발탁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 자신은 파시즘의 산물을 소비하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 절대 파시스트가 아니라고 믿는 내가 파시즘의 부역자? ...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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