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와 암실 ANGST
박민정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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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학벌에 민감한 사람은 그 자신이 학벌에 콤플렉스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의 외모를 지적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의 외모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라고도 한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을 흉보는 건 자기 자신의 단점이나 약점을 고백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소설가 박민정의 장편 소설 <호수와 암실>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주인공 '나(서연화)'는 한문 특수 재능 보유자로 명문 여대를 졸업한 후 현재는 대학 부설기관에 소속되어 고전 문헌을 번역하는 연구원으로 살고 있다. 겉보기에는 학벌도 좋고 남들이 알아주는 직장에 다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나'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비밀이 많이 있다. 어릴 때 모델로 활동하다 스태프를 죽이는 사고를 일으키는 바람에 소년원 생활을 했고 그곳에서 기적처럼 만난 '선생님'의 도움으로 한문 공부를 해서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저 이대로 고전 문헌을 번역하고 후학 양성에 힘쓰면서 사는 것이 목표였던 '나'의 앞에 어느 날 '재이'가 나타난다. 


교내 수영장에서 처음 본 재이와 가까워지는 데 성공한 '나'는 재이에게 친한 언니나 친구 이상의 존재가 되고 싶다. 하지만 서른이 되도록 모델 일을 하면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해결하고 있는 재이는 '나'를 좋은 대학 나오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자신과 다른 존재로만 보고 속마음을 다 털어놓지는 않는다. 그런 재이에게 자신의 비밀을 고백할까 말까 고민하던 와중에 재이에게 또 다른 친한 언니가 있다는 걸 알게 되는데, 알고 보니 그 여자는 '나'의 비밀을 모두 알고 있는, 그래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던 여자다.


줄거리를 쓰고 보니 소설의 내용을 세 여자의 삼각관계 스토리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소설을 읽을 때는 그렇게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느꼈다. 그도 그럴 게 '나'에 대한 정보가 처음부터 전부 제시되는 게 아니라 천천히 조금씩 드러나고, 그러한 정보를 알고 난 후에야 앞에서 '나'가 한 생각이나 발언, 행동이 이해가 되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 소설에는 불안이나 공포를 야기하는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 게 아니라 이미 벌어진 사건을 '나'가 비밀로 하고 있기 때문에 불안이나 공포가 형성된다. 


편모 슬하에서 자랐고, 사람을 죽인 죄로 소년원에 들어갔고, 특수 재능 보유자로 대학에 입학한 이력을 지닌 '나'는 남들의 '정상적'인 삶을 동경하는 동시에 남들에게서 조금이라도 '비정상적'인 면을 발견하면 심하게 멸시하고 비난한다(예 : 재이의 이혼, 로사의 전과). 재이가 과거에 '턱수염'이라고 불리는 남성 사진 작가로부터 당한 일에 대해 재이보다 더 분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사건은 결국 '자폭'으로 요약할 만한 방식으로 해결되는데, 이는 '나'의 경우도 같다. '나'는 결국 자신의 비밀을 지키는 데 실패하고, 비밀을 지킴으로써 지키고자 했던 것들도 잃는다.


하지만 실패 후의 '나'가 실패 전의 '나'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편안해 보였던 건 나뿐일까. 더는 지켜야 할 비밀도 없고 자리도 명예도 없는 '나'가 얼마나 홀가분해 보였는지 모른다. 그러니 남의 흉을 보기 전에 나의 흉부터 보자. 없앨 수 있으면 없애고, 없을 수 없으면 받아들이자. 그렇지 않으면 남에게 들킬까 봐 공포와 불안에 떨다가 자폭하는 결과를 맞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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