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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내 사랑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9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7년 6월
평점 :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책은, 읽을 기회가 생길 때마다 읽기는 하지만 제대로 읽었다는 생각이 좀처럼 안 든다. 내가 아직 젊어서인가, 아니면 프랑스의 언어와 역사, 문화에 대한 이해가 짧아서인가, 그것도 아니면 사랑을 많이 안 해봐서인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1960년에 발표한 <히로시마 내 사랑>은 뒤라스의 책 중에선 (내 기준) 그래도 수월하게 읽은 편에 속하는 책이다. 이 책은 1959년 개봉된 알랭 레네 감독, 마르그리트 뒤라스 각본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의 시나리오에 기반한다. 이 책에 실린 시나리오에는 영화에서 생략된 대사와 지문들이 포함되어 있어 뒤라스의 원래 구상이나 의도 등을 알기에 더 적합하다. 영화에 나오지 않은 부록과 비망록, 세부 설정 등도 실려 있어 영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이야기는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히로시마에 온 프랑스인 여성이 우연히 만난 일본인 남성과 사랑에 빠져서 짧지만 강렬한 며칠을 보낸다는 내용이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정보 교환이나 미래에 대한 기약 없이 며칠에 걸쳐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그러다 과거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게 되는데, 둘 다 전쟁으로 인해 큰 상처를 입고 여전히 회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는 이제 조국이 없었으면 좋겠어. 내 아이들에게 난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들이 가진 악의와, 무관심과, 영악함과, 애국심이 어떤 건지 가르칠 거야." (134쪽) "느베르에서 사랑은 죄가 된다. 느베르에서 행복은 죄악이다. 권태는 허용되는 덕목이다." (156쪽)
처음에 나는 이 이야기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연애, 사랑 등)을 통제, 억압하는 국가와 사회, 역사의 압박과의 대결에 관한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억'이라는 단어가 반복되는 걸 보면서, 어쩌면 이 이야기는 그 모든 것보다 무서운 것이 인간의 '망각'이며, 인간은 그 무엇과 싸울 수도 있고 운이 좋으면 이길 수도 있지만 시간과의 대결에서는 결코 이길 수 없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지 않기 위해서는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느꼈다. 기억의 가장 강력한 동기이자 수단은 사랑이라는 것도. 남자의 이름은 잊어도 히로시마는 잊지 않을 거라는 여자의 말이 그러하다. "이 사적인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역사를 증언하는 히로시마 이야기보다 늘 우위에 놓일 것이다." (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