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이야기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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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히리는 영국의 인도계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해 현재는 미국과 이탈리아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작가가 이민자, 이방인의 정서를 지녔기 때문인지 소설에도 그러한 정서가 진하게 담겨 있다. 2023년에 발표한 소설집 <로마 이야기>가 그렇다. 이 책에는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고 대부분이 전에 살던 곳에서 어쩔 수 없이 떠난 사람, 떠난 끝에 겨우 도착한 곳에 좀처럼 속하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다시 떠날 생각을 하거나 더는 떠날 곳이 없어 괴로워하는 사람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누군가에게는 편안하고 행복한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고 불행한 공간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가령 <경계>에서 휴가철을 맞아 해변가의 별장으로 놀러 간 백인 가족에게 그 집은 아름다운 추억의 배경이 된 공간이지만, 그 집을 돌보는 이민자 부부의 아들에게는 가족의 생계 수단이자 노동의 장소다. <재회>에서 오랜만에 만난 두 친구 중 백인인 여성에게 로마는 한없이 다정하고 쾌적한 도시이지만, 피부색이 다른 이민자인 여성에게 로마는 어린아이조차 자신을 모욕하고 그에 대한 처벌을 받지 않는 불합리하고 불친절한 도시로 기억될 것이다. 


<P의 파티>의 남자처럼 우연한 계기로 백인 남성이 경험하는 사회와 비백인 여성이 경험하는 사회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경우가 더러 있기는 하지만 흔하지는 않다. <밝은 집>처럼 정당한 이유로 난민 승인을 받고 이주를 허락받은 이민자인데도 주위 이웃들의 크고 작은 차별을 견디다 못해 또다시 망명길에 오르는 경우가 훨씬 더 흔하다. 하나의 계단을 공유하며 살고 있는 이웃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그린 <계단>처럼, 인생이 원래 그렇다고 받아들이면 편하겠지만 그럴 수 없다. 현실의 약자, 소수자들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길에서 소년들에게 폭행을 당하거나(<택배 수취>) "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협박 쪽지를 받는 식의 일을 겪는다(<쪽지>). 


이 책이 백인과 비백인, 원주민과 이주민 문제를 담고 있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한쪽이 무조건 나쁘고 한쪽이 무조건 옳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마지막에 실린 <단테 알레기에리>의 주인공 '나'는 비백인 이민자 가정 출신 여성으로 사회적으로 약자, 소수자에 속하지만 자신이 "갈망"했던 것들을 하나둘 이루어 가면서 결국 사회적 지위 상승에 성공한다. '나'는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마다 단테가 있었다고 말하고 내 눈에도 그건 사실로 보이지만, 단테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던 것들이 학력, 결혼, 직업 같은 (흔히 말하는) 신분 상승 수단이 아니었다고 해도 '나'가 그걸 택했을까. 그렇다 한들 그런 '나'를 비난할 수 있을까. 감동적이면서도 씁쓸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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