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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때
오은 지음 / 난다 / 2025년 5월
평점 :

지금은 종료된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가끔 다시 듣는다. 다시 들으면 그 시절이 자동 소환되어 그리운 기분에 빠진다. <책읽아웃>이 종료된 후에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책읽아웃 크루들의 소식을 접할 때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가령 이번에 읽은 오은 시인님의 산문집 <뭐 어때>의 경우, 나에게 오은 시인님은 그냥 오은 시인님이 아니라 <책읽아웃>의 오은 시인님이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도 계속 <책읽아웃>이 떠올랐다. 나도 기억하는 그 시절에 시인님은 이런 책을 읽고 이런 경험을 하고 이런 생각을 하셨구나. 뒤늦게 받은 편지 같은 글들.
좋아서 갈무리해 놓은 대목을 열거해 본다. 내가 알기로도 오은 시인님은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공언해 왔는데, 2023년의 일본 여행과 독일 여행을 계기로 여행에 대한 생각이 크게 바뀌었다고 한다. 저자가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는 갑자기 발생하는 해프닝을 처리하기 어려워서인데, 자신과 다르게 여유롭게 반응하는 일행들을 보고 중요한 건 해프닝 자체가 아닌 해프닝을 대하는 마음이라는 걸 배웠다고. "지금껏 내가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데는 여행에서 뭔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오만함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190쪽) '바라지 않음'이 오만함일 수도 있다는 통찰이 마음에 와닿았다.
이십대 시절 아버지에게 들은 말에서 인상적이었던 단어를 노트에 적고는 한동안 잊고 있다가 오랜만에 다시 보았을 때 느낀 소회를 적은 글도 인상적이었다. 단지 두 글자인데 노트에 적어둔 것만으로 그 순간, 그 시절이 소환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니. 이래서 기록을 꾸준히 해야 하나 싶다(뭐라도 쓰자). 원고가 잘 안 풀리면 요리를 하는 습관이 있는데, 원고와 달리 요리는 음식이라는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있기 때문이다. <책읽아웃>에서도 직접 만든 요리 이야기나 요리하다 생긴 해프닝(맛있게 만든 카레를 홀랑 태워 먹은 에피소드가 기억난다 ㅎㅎ)을 종종 들려 주셨는데 요리에 관한 글을 읽으니 반가웠다.
<책읽아웃> 종영에 관한 소회를 담은 글도 좋았다. "한 시절이 흘러간다. 말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나는 듣는 사람이었다. 잘 말하기 위해, 아니 제대로 듣기 위해 꼼꼼히 책을 읽었다. 읽는 일은 겪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지평이 넓어지는 것은 물론, 내가 그간 일궈왔던 땅이 더욱 비옥해지기도 했다." (224쪽) 이 글을 읽으니 오은 시인님이 잘 들어 주셔서 청취자인 나도 덕분에 잘 듣고 잘 읽을 수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많이 늦었지만, 감사합니다. (요즘은 알라딘 만권당 TV에서 잘 보고 있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