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세계
이희주 지음 / 스위밍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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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그 때와는 다른 선택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중 하나가 대학 시절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대학에서 나처럼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은 친구를 몇 명 만났는데, 그들 중 대부분이 일본으로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를 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정작 나는 일본에 가서 공부를 하거나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안 했다. 뭐 지금도 일본에서 살아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살면서 외국에서 살아보는 경험을 한 번도 안 해본 건 왠지 조금 아쉽기도 하고, 아직 젊다는 핑계로 앞뒤 안 재고 외국에서 살아보는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건 그 때뿐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앞으로 무슨 일이 생겨서 어디서 살게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전부터 이따금 했던, 일본에서 살아보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오랜만에 다시 한 건, 최근에 읽은 이희주의 연작 소설 <사랑의 세계> 때문이다. 물론 이 소설의 내용은 '일본에서 살아보기 - 희망 편'이 아니라 '절망 편'에 가깝기 때문에(돈 없고 외롭고 심지어 죽임까지 당하는...) 일본에서 이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건 절대 아니고 일본 생활이 다 이럴 거라는 건 더더욱 아니지만, 낯선 나라에서 낯선 언어를 사용하며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는 감정의 결이라든가 종류, 깊이는 태어나고 자란 나라에서 어릴 때부터 사용한 언어를 계속 쓰면서 살고 있는 사람은 알기 어렵고,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로 간접 경험할 수 있다고 해도 직접 체험과는 다를 테니 말이다.


이 소설은 세 편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첫 번째 이야기 <탐정 이야기>의 화자인 '나'는 대학 졸업 후 백수로 지내다 일본으로 건너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고 있다. '나'는 우연히 같은 편의점, 같은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또 다른 한국인 '지윤'과 친해지고 싶다. 그러나 히로스에 료코를 닮은 예쁜 외모 때문에 기숙사 앞까지 찾아오는 일본인(니카이도)이 있을 만큼 국적과 성별을 불문하고 인기가 많은 지윤은 평범한 나에게 좀처럼 곁을 주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우연히 거리에서 지윤과 똑같이 생긴 호스트가 어떤 젊은 여성과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 지윤의 실종 소식을 듣는다.


두 번째 이야기 <여름>은 고교 동창인 '지은'의 초대로 일본에 와서 지내고 있는 작가 지망생 '효진'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지은은 일본에서 만난 또 다른 고교 동창 '지윤'과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일본인 여성 '마이'와 친하게 지내는데, 효진은 이들이 평범한 친구 사이가 아니라 마이는 지윤을, 지윤은 지은을 친구 이상의 감정으로 대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이들 관계의 최상위에 있는 지은은 (슬프게도) 파워 이성애자인 데다가 외모도 예뻐서 주변에 추파를 던지는 남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효진은 이들의 관계에 직접 개입하지는 않고 관계 밖에서 관찰만 하는데, 효진이 이런 자신을 부끄러워 하고 때로는 혐오스러워하는 대목들은 이희주 작가가 이전 작품들에서 그려온 아이돌 팬의 세계, 아이돌 팬의 심리와도 이어진다고 느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이야기 <또 하나의 신화>에는 <탐정 이야기>에서 지윤을 스토킹하는 음침한 일본인으로 등장했던 '니카이도'의 사연이 나온다. <또 하나의 신화>라는 제목이 재미있는데, 이 이야기가 또 하나의 신화라면 앞의 두 이야기 역시 신화이고, 거기서 신(神)은 지윤일까. 그렇다면 앞의 두 이야기는 신을 숭배하던 사람들이 신을 파괴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이희주 작가의 장편소설 <성소년>과 연결된다. <또 하나의 신화>에는 <탐정 이야기>, <여름>에 나오는 사랑과는 또 다른 문제적인 사랑이 등장하는데, 그냥 사랑 말고 문제적인 사랑에만 관심 있는 이희주 작가의 작품 세계가 너무 좋고, 작가님이 앞으로 또 어떤 문제적인 사랑, 미친 사랑, 미친 여자(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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