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보여서 다행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주란 지음, 임수연 그림 / 마음산책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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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나는 고통의 원인을 찾아서 그것을 제거하는 방식의 서사를 좋아했다. 그러나 지금은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 또한 욕심이라는 걸 받아들이고(인생은 원래 고통의 연속이다), 고통의 비중을 낮추기 위해서 자신의 세계를 전보다 넓히는 사람의 이야기에 더 끌린다. 이주란의 소설들이 그렇다. 이주란의 소설에는 작거나 크거나 오래되거나 새로운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들은 자신의 상처를 긁으며 통증을 확인하는 대신 사람을 만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새로운 장소에 가면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회복의 힘을 채운다.


이주란의 짧은 소설 모음집 <좋아 보여서 다행>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헤어진 남자의 개를 돌보러 간 여자, 한 번도 본 적 없는 친부를 만나러 간 남자, 요양병원에 입원한 이모를 만나러 간 여자, 오랜만에 연락 온 언니의 아이가 하는 공연을 보러 간 여자 등등. 이들은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그래서 얼마나 힘든지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고 그저 눈앞의 음식을 먹고, 나무들을 관찰하고, 절판된 시집을 찾는다. 이따금 자신을 깎아내리는 말을 했던 사람의 기억이나 불합리한 대우를 당하고도 사과 받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라 괴롭기도 하지만 그걸 밖으로 꺼내지는 않는다. 그저 버티면서 시간의 흐름이 고통까지 씻어가 주는 때가 오기를 기다린다. 


이런 기다림의 자세가 누군가에게는 수동적이고 회피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정말 고통스러울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다른 생각을 하면서 고통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것 아닌가. 그러다 보면 왜 고통스러웠는지조차 잊게 되고, 어쩌면 행복이라는 걸 느낄 수도 있게 되는 것 아닌가. 말로 표현된 감정만이 감정의 전부는 아닌 것처럼, 소설로 쓰인 내용만이 내용의 전부는 아님을, 사람도 인생도 그렇다는 사실을 이주란의 소설은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부족한 게 아니라 그래서 충분하다고 느끼게 하는 점. 이 점이 내가 생각하는 이주란의 소설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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