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
황모과 지음 / 래빗홀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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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넷플릭스 드라마 <아웃랜더>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이 드라마를 통해 그동안 역사적 사건으로만 알았던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의 내용을 보다 자세히, 생생하게 알 수 있어서 좋다. 역사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의 가치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소설도 마찬가지이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인 2023년에 출간된 황모과의 소설 <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는 1923년 9월 일본에서 일어난 관동대지진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타임슬립이라는 SF적 장치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보다 자세히 배우고 보다 생생히 간접 체험하게 해준다.


소설은 2023년 일본 수도권 어딘가에서 한국 청년 민호와 일본 청년 다카야가 100년 전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현장 한복판으로 타임슬립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두 사람은 함께 움직이고 있지만 입장은 사뭇 다르다. 아시아 홀로코스트 진상 규명 위원회에서 일하는 민호는 관동대지진 당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조선인들을 한 명이라도 구하는 것이 목적이다. 반면 조부가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이고 우익재단의 지원을 받고 있는 다카야는 민호가 찾고 싶어하는 진실과는 또 다른 진실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결국 두 사람은 입장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채 따로 움직이기로 한다.


한편 1923년 8월 말 도쿄에서 다리 공사 인부로 일하는 조선인 평세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평세에게는 어릴 때부터 상대와 몸이 닿으면 그 사람이 죽는 순간이 보이는 일종의 예지력이 있었다. 이 능력 때문에 고향에서 살 수 없게 된 그는 도망치듯 일본으로 왔는데, 하필 자신에게 가장 잘해주는 마달출의 몸에 닿았을 때 그가 얼마 후에 비참한 죽음을 맞는 장면을 본 것이다. 평세의 불안한 예감대로 얼마 후 일본의 관동 지역을 뒤엎는 거대한 지진이 일어나고 그 여파로 조선인 학살이 일어난다. 평세는 달출과 함께 도망을 가는데, 위기의 순간마다 낯선 차림을 한 조선인 청년이 나타나 그들을 구한다.


소설의 전체적인 구성만 보면 미래에서 온 한국인 청년 민호가 과거에 일어난 관동대지진이라는 사건의 피해자인 조선인들을 구하는 내용 같지만, 소설의 결말 부분까지 읽으면 조선인 피해자들을 구한 것은 한국인 후손들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1923년 당시에도 목숨의 위협을 무릅쓰고 위험에 빠진 조선인들을 도와준 소수의 일본인들이 있었고(이는 픽션이 아니라 저자가 직접 그 후손을 인터뷰하고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쓴 내용이다)오히려 같은 조선인이지만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더욱 악랄하게 조선인을 괴롭히는 조선인도 있었다(이들이 자경단으로 활동하다 나중에 야쿠자로 발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 들어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관동대지진을 재조명하는 콘텐츠가 종종 나오고 있는데, 내 생각에는 관동대지진처럼 대중이 가지고 있는 불안이나 불만의 감정을 약자, 소수자에 대한 혐오로 연결시켜서 그들을 대상으로 폭력성을 노출하게 함으로써 대중이 가진 불안이나 불만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책임을 피하는 상황이 한국, 일본은 물론이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관동대지진 하면 일단 일본을 규탄하는 목소리부터 나오고 그것이 맞지만, 요즘에는 비슷한 상황이 한국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걱정을 지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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