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한강을 읽는 한 해 (주제 2 : 인간 삶의 연약함) - 전3권 - 바람이 분다, 가라 + 채식주의자 (리마스터판) + 내 여자의 열매,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ㅣ 한강을 읽는 한 해 2
한강 지음 / 알라딘 이벤트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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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소설 <흰>을 언제 처음 읽었는지 확인해 보니 초판이 나온 2016년이다. 읽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9년 전. 그 사이 한강 작가의 다른 책도 몇 권 나왔고,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한강 작가가 2024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기쁨도 있었다. 예전에 쓴 리뷰를 다시 읽어보니 낯설다, 벅차다 같은 단어들을 자주 쓴 것이 눈에 띈다. 이번에 <흰>을 다시 읽으면서는 고요하다, 차분하다 같은 감정들을 자주 느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설 속 화자가 처한 상황은 사실 고요함이나 차분함과는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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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외국에 혈혈단신으로 와서 얼마간 살기로 한 '나'는 익숙지 않은 생활에 적응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지저분한 벽과 문을 다시 칠하고, 무겁게 가져온 짐을 정리하고, 새로운 음식과 언어, 문화를 배워야 하는 압박을 느낀다. 어느 날 '나'는 자신이 살게 된 도시가 2차 대전 때 히틀러에 의해 심하게 파괴되었으나 전후에 사람들이 열심히 복구해 현재에 이르렀음을 알게 된다. 도시가 한 번 죽었다가 새로 태어났다는 생각을 하던 '나'는 어릴 때 어머니가 해줬던 죽은 언니 이야기를 떠올린다. 태어난 지 몇 시간도 안 되어 죽은 언니. 그 언니를 품었던 포궁에서 태어난 '나'는 언니의 죽음과 자신의 삶이 맞닿아 있다는 느낌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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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삶이라도 간단한 말조차 배우지 못하고 죽은 언니의 삶과 언니가 살았더라면 너는 태어나지 못했을 거라는 말들 속에서 산 '나'의 삶은 다르다. 그러나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한 채 끝나버린 언니의 삶이나 언니의 죽음으로 인해 생겨난 나의 삶이나 삶이기는 마찬가지이기도 하다. 마치 어떤 흰 것은 아무것도 묻은 적 없어서 희고, 어떤 흰 것은 색이 있던 자리가 바래서 희고, 어떤 흰 것은 색이 있던 자리를 덮어서 희지만, 흰 것들은 똑같이 흰 것처럼.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흰 것들 - 또는 산 자들 또는 살았던 자들 - 을 헤아리는 동안 내 마음은 모처럼 흰 것들처럼 평온하고 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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