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산가옥의 유령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4
조예은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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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사는 서른 살 운주는 어느 날 어머니로부터 걸려 온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어머니에 따르면 어머니의 외할머니, 즉 외증조모가 소유했던 적산가옥 한 채가 있는데, 외증조모께서 살아계실 때 당신의 증손녀인 운주가 이 집에서 일 년을 살면 그후에는 마음대로 처분해도 좋다는 유언을 남기셨다는 것이다. 마침 일본에서의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던 차이기도 했고, 결혼을 생각 중인 애인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서 운주는 외증조모가 생을 마감한 적산가옥에서 살게 된다.  


이 적산가옥은 본채와 별채로 이루어져 있는데, 본채는 적산가옥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일본식 가옥의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 카페나 레스토랑으로 개조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반면, 별채는 외관이 흉흉하고 내부도 어두워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꺼려진다. 운주는 말년에 거동이 불편해 본채에서 주로 지냈던 외증조모가 사망 당일 별채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외증조모와 적산가옥과 별채의 관계를 궁금해 하기 시작한다.


조예은의 소설 <적산가옥의 유령>은 오랫동안 서양 문학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던 고딕 호러 소설의 양식을 한국문학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준 작품이다. 물론 이 작품 이전에도 고딕 호러 소설의 특징(음산한 배경, 미스터리한 사건, 불안에 떠는 인물 등...)을 계승한 작품들이 한국문학에도 있었지만, 이 작품만큼 고딕 호러 소설의 요소를 잘 간직하면서 한국의 역사적 특수성과 현대적 의미까지 포용한 작품은 보지 못했다.


이 소설은 2020년대를 살아가는 증손녀 운주와 1940년대를 살아가는 외증조모 준영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처음에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일본인 가정의 입주 간호사로 일하며 가족들을 부양하는 준영의 처지가 하도 가혹해서, 그에 비하면 현대를 살고 있는 운주의 처지는 훨씬 더 유복하고 평안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일본인 가정의 외아들 유타카의 삶이 겉보기와 달랐던 것처럼, 운주의 삶도 보이는 것과 달랐다. 우리는 과연 타인의 삶에 대해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그러니까 사람이 나쁘고 사람을 믿으면 안 된다는 결론에 다다를 수도 있었지만, 이 소설은 준영과 유타카가 땅콩빵 하나로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는 사이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놓아버리고 싶은 인류애를 다시 움켜쥐게 만든다. 돈 때문에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을 해치기도 하는 것이 인간이지만, 빵 하나로 잘 모르는 사람을 살게 하는 것 역시 인간이다. 어떤 인간으로 살 것인가. 어떤 인간으로 기억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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