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를
다카세 준코 지음, 허하나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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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도 좋아하고 소설도 좋아하는 나는 음식이 소재인 소설도 매우 좋아한다. 요시모토 바나나 <키친>, 무레 요코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 하라다 히카 <낮술> 등 (써놓고 보니 전부 일본 여성 작가들이다) 음식을 먹는 행위를 통해 삶이 주는 괴로움이나 아픔을 잊고 다시 살아갈 기력을 회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늘 매료되었고, 이런 소설이 전제하는 생각(음식은 맛있다, 식사는 즐겁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이런 생각을 한 건 2022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기도 한 다카세 준코의 소설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를>을 읽었기 때문이다.


일본 사이타마 현의 한 회사. 스물아홉 살 싱글 남성인 니타니는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1년 후배 여성 직원 아시카와와 데이트를 몇 번 정도 한 사이다. 아시카와에 대한 평판은 사무실 내에서 크게 갈리는데, 아시카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시카와가 자기주장이 적고 잘 웃고 성격이 상냥한 점을 칭찬하는 반면, 아시카와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몸이 약하다는 핑계로 야근을 안 하고 다른 직원들에게 일을 떠넘긴다는 점을 지적한다. 니타니는 이들과는 조금 다른 이유로 아시카와를 불편하게 여기는데, 그것은 바로 음식이다.


음식은 물론이고 먹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도 애정이나 열정이 없는 니타니와 달리, 아시카와는 먹는 것도 좋아하고 직접 요리하는 것도 즐긴다. 니타니의 집으로 놀러 온 아시카와가 요리를 만들어 주면 니타니는 맛있게 먹는 척하지만 사실은 뭐가 맛있는지도 모르겠고 맛있다고 거짓말 하는 것도 힘들다. 베이킹을 배우기 시작한 아시카와가 회사 사무실 사람들에게 매일 간식을 만들어 대접하기 시작하면서 니타니의 고통은 점점 더 커진다. 아시카와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람들 속에서 아시카와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척 해야 하는 매일매일이 괴롭다. 그래서 그는 급기야 어떤 행동을 하는데...


이 소설은 먹는 행위에 관해 전부터 정답처럼 여겨진 생각들(다 같이 먹는 밥이 맛있다, 바빠도 밥은 잘 챙겨 먹어야 한다, 집밥이 최고다 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뿐 아니라 음식을 통해 전파되고 공고해지는 성차별적인 생각들(남자니까 많이 먹어야지, 여자는 요리를 잘 해야지 등)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먹방, 쿡방 등이 유행하면서 한국에서도 음식이나 식사에 관한 다양한 담론들이 나오고 있는데(소식좌, 면치기 등) 이렇게 다양한 담론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가 단일한 규범을 강제하기 보다는 각자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퍼져나가는 과정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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