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언덕에는 얼마나 많은 황금이
C 팸 장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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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서부 개척 시기가 배경인 소설 두 권을 연달아 읽었다. 한 권은 C. 팸 장의 소설 <그 언덕에는 얼마나 많은 황금이>이고 다른 한 권은 <트러스트>의 작가 에르난 디아스의 데뷔작 <먼 곳에서>이다. 두 권 다 서부 개척 시기에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에 왔지만 기대와는 다른 삶을 산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두 소설은 비슷한 점도 많지만 다른 점도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그 언덕에는 얼마나 많은 황금이>의 주인공 루시와 샘이 <먼 곳에서>의 주인공 호칸보다 더 힘든 삶을 살았다고 느꼈다.


루시와 샘은 금을 찾아서 중국에서 미국으로 건너 온 부모의 자식들이다. 그들의 부모는 아무것도 없는 들판에서 노숙을 하며 열심히 금을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죽음을 맞았다. 고아가 된 루시와 샘은 생존을 위해 마을로 가지만, 피부색이 다른 데다가 가난하고 정식 교육을 받은 적도 없는 이들을 환영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결국 이들은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며 살게 되는데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시녀 아니면 창녀 정도다. 급기야 샘은 여성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남자로 살아가는 길을 택하는데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이 계획 또한 좌절된다.


루시와 샘은 고아가 되기 전, 그러니까 부모가 살아있을 때에도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았다. 남아선호사상이 심했던 이들의 아버지는 아들을 못 낳는다는 이유로 아내를 학대하고 딸들을 구박했다. 가정 안에서도 밖에서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했던 루시와 샘에 비하면 호칸은 형편이 훨씬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물론 호칸도 호칸대로 엄청나게 고생했지만, 적어도 야외에서 노숙을 하거나 낯선 사람을 만날 때 성적인 위협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지 않을까). 


미국의 서부 개척 시기가 배경인 만큼 그 시절에 대한 평가도 나온다. 4부에서 루시는 부잣집 딸 애나의 시녀가 되는데, 애나의 아버지는 채금업자 출신으로 골드러시 초기에 금을 발견해 넓은 땅을 소유하게 되었고, 현재는 자신의 땅에서 금을 채굴한 사람들에게 일부를 상납 받는 식으로 거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가 이미 정착되어 있고, 자신은 무슨 수를 써도 이러한 구조의 상부로 올라가지 못하고 하부에 남을 수밖에 없음을 깨달은 루시는 절망 내지는 환멸을 느낀다. 분명 옛날 미국이 배경인데 지금 한국의 상황 같아서 읽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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