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티파크
유디트 헤르만 지음, 신동화 옮김 / 마라카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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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겨울을 대비해 석탄을 나르는 작업 중인 사람들은 다섯 살 소년 빈센트가 자신의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모습을 본다. 빈센트의 부모는 빈센트의 아버지에게 다른 여자가 생겨서 이혼했고, 이별의 슬픔을 견디지 못한 빈센트의 어머니는 결국 어린 아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빈센트의 슬픈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빈센트에게 뭐라고 위로할 말을 건네지 못하는데, 정작 빈센트가 사람들을 돕겠다는 듯이 그들 곁으로 다가온다. 작디 작은 손으로 석탄 조각을 옮기며 사람들을 거드는 빈센트는 자신의 처지를 정확히 아는 걸까. 자신도 도움이 필요한데 누군가를 돕고 싶어 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유디트 헤르만. 독일의 유명한 여성 작가라고 하는데, 독서 이력이 짧은 나는 이제야 비로소 그의 책을 읽었다. 그는 1998년 <여름 별장, 그 후>로 데뷔해 <단지 유령일 뿐>, <알리스>, <모든 사랑의 시작> 등을 발표했다. 2010년에 출간한 소설집 <알리스> 이후 12년 만에 나온 소설집 <레티파크>에는 총 17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편수가 많은 만큼 한 편 한 편의 길이가 짧은데, 그만큼 서사는 약한 대신 장면 하나 하나의 인상이 강렬하다. 첫 번째로 실린 단편 <석탄>에 나오는 빈센트가 손에 쥔 석탄 조각이라든가, 이어지는 단편 <페티시>의 여자(엘라)와 소년이 모닥불 앞에서 보낸 하룻밤이라든가.


표제작 <레티파크>는 페이지 샤쿠스키라는 남자의 연인이었던 두 여자, 로제와 엘레나가 긴 시간이 흐른 후 상점의 계산대에서 우연히 재회한 상황을 그린다. 로제는 한때 놀랍도록 예쁜 아가씨였던 엘레나가 몰라볼 정도로 몸이 불고 늙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페이지와 엘레나가 사귈 때 페이지는 엘레나가 자란 레티파크라는 동네의 사진을 찍어서 앨범으로 만든 후 로제에게 먼저 보여준 적이 있다. 그때 로제는 이런 사랑을 받는 엘레나가 부럽다고 생각했지만, 얼마 후 페이지와 엘레나는 헤어졌다. 책에 실린 모든 이야기가 작가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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