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유미 위픽
이희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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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응랑에 위치한 해안 절벽 '희구대'는 조선 시대 백 대 절경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아름다운 풍경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자살의 명소로도 유명하다. 이곳을 현주와 '나'가 함께 오른다. 현주와 '나'는 스무 살 때 처음 만나 친구가 되었다. 아나운서 지망생이었을 만큼 예쁜 외모와 수려한 언변을 지닌 현주와 이런저런 잡문을 쓰며 생계를 잇고 있는 '나'는 동영상 사이트에 버추얼 휴먼 '마유미' 계정을 만들어 활동하며 인생 역전을 노리고 있다. 


마유미는 특정한 취향을 가진 남자들이 좋아하게끔 만들어진 가상의 캐릭터다. 흠잡을 데 없는 외모와 온순한 성격을 지닌 여자, 단 걸 많이 먹어도 살이 안 찌는 여자, 소매에 푸른 장미가 새겨진 새틴 원피스를 입고 자는 여자... '나'는 대본으로 마유미를 만들고 현주는 목소리로 마유미를 연기하는데, 사실 마유미의 '원본'은 따로 있다. 고운 외모와 우아한 취향을 지녔지만 현재는 병상에 누워 거동도 제대로 못하는 현주의 어머니 경희다.


이희주 작가는 전작 <성소년>에서 남자 아이돌을 둘러싼 네 여자의 뒤틀린 욕망과 어긋난 사랑을 그린 바 있다. 신작 <마유미>에서도 마찬가지로 어떤 대상을 향한 여자들의 불온한 사랑을 그리는데, 그 대상이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점이 새롭다. 중심 인물인 현주와 '나'가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남성의 욕망을 대리 실현하는 여성들이라는 점, 이들의 굴절된 선택과 행위의 이면에 어머니에 대한 증오 또는 애증이 있다는 점도 눈에 들어온다. 


<마유미>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KAL기 폭파사건(1987년 11월 29일 대한항공 858기가 북한 공작원에 의해 미얀마 해역 상공에서 폭파된 사건)'을 떠올렸는데, 사건에 대한 언급이 소설에 잠깐 나온다. 팟빵 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2023년 9월호 '노태우 당선 일등 공신, KAL기(김현희)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편에 따르면, 이 사건 또한 미모의 여성 테러범을 이용해 사건의 본질과 진짜 배후를 가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다고 한다. 연결해서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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