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서머스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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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K(문학동네 강윤정 편집자)님의 유튜브에서 추천받아 구입한 책이다. 청부 살인업자가 은퇴 직전 마지막 일을 수행하기 위해 신분을 위장하면서 선택한 직업이 '소설가'라는 점에 호기심이 동했다. 읽어보니 스티븐 킹 소설답게 전개가 흥미진진하고 등장 인물들도 매력적이다. 청부 살인이라는 소재 자체는 무섭지만,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지향하는 메시지는 휴먼 드라마에 가깝다. 


빌리 서머스는 사격이 특기인 마흔네 살의 청부살인업자다. 빌리는 엄청난 액수의 보수를 받는 대가로 살인죄로 수감되어 있고 조만간 재판을 받을 예정인 남자를 살해해달라는 의뢰를 받아들인다. 이 건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법원 근처에 있는 마을에 잠복하고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빌리는 소설가로 위장하고 평범한 사람인 척하면서 집과 작업실이 있는 빌딩을 오가는 한편, 조용히 남들 모르게 살인을 준비한다. 


빌리가 소설가로 위장하고 동네 주민들과 어울리며 살인을 준비하는 부분도 재미있고 이 자체로 충분히 한 편의 소설이 될 만한데, 놀랍게도 이는 소설 전체의 3분의 1 정도 밖에 안 된다. 나머지 3분의 2는 의뢰받은 일이 잘 안 풀려서 도망자 신세가 된 빌리가 은둔 중인 집 앞에서 남자 셋한테 성폭행을 당하고 길거리에 버려진 여학생 앨리스를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빌리의 정체를 아는 앨리스가 경찰에 신고하면 모든 게 끝날 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리는 앨리스를 구하고 앨리스도 신고하지 않는다. 


오히려 빌리와 앨리스는 때로는 부녀처럼, 때로는 남매처럼, 때로는 연인처럼 서로를 보살피면서 서로에게 가장 힘든 시간을 가장 뜻깊게 보낸다. 빌리 서머스가 소설가인 척하면서 쓰기 시작한 자전적인 소설도 두 사람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매개체가 된다. 평생 혼자였으므로 소설을 써도 읽어줄 이 하나 없을 거라고 믿었던 빌리에게 나타난 최초이자 최후의 독자 앨리스. 빌리의 엄청난 삶을 목격한 최후의 증인으로서 앨리스 또한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는 결말까지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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