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송지현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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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에 송지현 작가님이 나오신다고 해서 부랴부랴 책을 사서 읽었다. 산문집 <동해생활>로 박상영 작가님과 함께 영노자에 출연하셨을 때 무척 재미있었는데 이번에는 또 얼마나 재미있을까 기대하면서. (지지난 주말에 녹음분이 올라왔고, 기대한 대로 재미있었다.)


송지현 작가님의 소설을 읽은 건 이 책이 처음인데, 이 책도 기대한 대로 재미있었다. 유럽 여행을 갈 예정인 이모 대신 뜨개방을 지키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간 '나'의 짧은 연애를 그린 표제작 <우리가 여름에 먹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가족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 가족들이 좀처럼 이상하다. ​ ​ ​ 


아버지는 무능하거나 부재하고, 어머니는 계속해서 새로운 애인을 데려온다. 할아버지는 누워서 지내면서도 정력을 신경 쓰고, 할머니는 남편의 영정 사진 앞에서 고스톱을 친다. 이들이 맡고 있는 가족 내 역할에 비추어 보면 이들은 분명 이상하고 문제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개개인을 역할로 보지 않고 인간으로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싶다. 이상한 것을 이상한 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상성에 집착할수록 나만 괴로워질 뿐이다. 남을 보면서 이상하다고 느끼는 나는 얼마나 정상인가. 나도 남들 눈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 타인일 것이다. ​ ​ 


인생도 마찬가지다. <삼십 분 속성 플라멩코>에는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불안해하는 남자친구와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보험 회사에서 계약 해지가 되었는데도 불안해 하기는커녕 가진 돈을 다 털어 여행을 떠나는 '나'가 나온다. 남자친구는 대책 없이 사는 '나'를 비난하지만, '나'는 보험료를 내기 위해 보험을 파는 정규직 직원들이 전혀 부럽지가 않다. ​그런 '나'는 스페인에서 몇 시간짜리 플라멩코 공연을 삼십 분으로 압축한 공연을 보고 좋아하는 사람들 속에서 이질감을 느낀다. 


지루할 수 있고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부분은 제거하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만족할 만한 부분만 간추려 놓은 공연을 진정한 공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는 실패와 좌절, 불안과 우울 등을 제거한 삶을 살고 싶어서, 가장 확실한 '현재'를 포기하는 삶의 태도와 무엇이 다를까.


모든 인간은 이상하고 모든 인생은 불안하다. 이상하지 않으려고 애쓸수록 이상해지고, 불안하지 않으려고 노력할수록 불안해진다. 이런 문장을 쓰고 있는 나도 이상해 보일까 봐 하루에도 몇 번씩 두렵고, 일주일에 며칠은 불안 때문에 잠을 못 이루곤 한다. 그래서 이런 소설을 쓰지 못하고 읽고 있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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