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안재성 지음 / 창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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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두 살 때 나는 설익은 연애에 괴로워하고 장래에 먹고 살 걱정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을 뿐, 국가와 역사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렇기에 안재성의 장편소설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를 읽는 마음이 참으로 무거웠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당시, 주인공 정찬우의 나이는 정확히 스물두 살이었다. 김일성대학 역사학과를 갓 졸업하고 여학교 교사로 부임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때였다. 정찬우는 전라남도 정읍 근처의 빈촌에서 태어나 일제의 학정을 피해 만주로 떠났다가 은사의 인도를 따라 조선의용군에 들어갔다. 항일 운동을 하면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긴 정찬우는 광복 직후 원하는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말에 혹해 김일성종합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졸업 후에는 교편을 잡고 후학 양성에 힘쓰는 삶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은, 역사는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정찬우는 조선노동당 부위원장이자 사실상 공화국 전체를 지도해온 실권자 중 한 사람인 허가이로부터 영남지방 교육위원으로 임명했다는 연락을 받는다. 빠른 속도로 한반도 이남 지역을 점령하고 있는 인민군을 따라 내려가서 한반도 이남의 인민들을 교육하고 교화하라는 것이 당의 명령이었다. 정찬우는 당의 명령에 따라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온다. 못 먹고 못 자면서 힘들게 내려온 것이 무색하게도 전세는 점점 불리해지고, 정찬우와 함께 했던 동료들도 하나둘씩 죽거나 낙오된다.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되고 한반도 이남에 남아 있는 인민군을 토벌하는 움직임이 거세지면서 정찬우는 시체와 함께 자고 동굴에 숨어 지내는 생활을 하게 되고 그러다 결국 국군에 사로잡혀 포로수용소에 갇힌다. 


이 과정에서 정찬우는 한 사람이 한 번 살면서 겪을까 말까 한 일들을 순식간에 모조리 체험한다. 결혼을 약속한 허인숙과 생이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옥련이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옥련과 전쟁터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정을 나눈 시간은 쏜살처럼 지나가고 허무하게 그녀를 잃는다. 정찬우는 간첩 혐의를 받은 동지를 구해주기도 하고, 전쟁터에서 서로 껴안고 잤다는 이유로 총살형을 당할 위기에 처한 연인을 살려주기도 한다. 누구를 죽인 적은 없지만, 누구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수없이 많다. 당시 세상은 인간을 남이냐 북이냐, 미국이냐 소련이냐, 자본주의냐 공산주의자냐에 따라 내 편 네 편을 가르고 내 편 아닌 자는 모조리 죽였지만, 정찬우가 보기에 인간을 국적이나 이념, 가치관으로 가르는 것은 너무나 어설프고 허점이 많은 시도다. 인간의 탈을 쓴 악마 같은 자는 남에도 북에도, 미국 편에도 소련 편에도, 자본주의자 안에도 공산주의자 안에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손가락질에 조금도 구애되지 않으련다. 모든 판단은 오로지 시간에 미루고 성실에 성실을 거듭하련다. 시간은 모든 것을 판정하는 가장 위대한 스승이기 때문이다. 자유세계로 나간 후 어떠한 직업을 갖게 될는지 알 수 없으나 행복은 마음에 있다는 신념을 길이 간직하여 무슨 일이나 만족하면서 힘차게 하련다. (310-1쪽) 


정찬우가 포로수용소에서 모진 대우를 받고 가혹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오랫동안 전향서 쓰기를 거부한 까닭은 어느 세계에나 악은 존재하고 그 악이 언제 어디서 자신을 덮치고 괴롭힐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대체로 그 악은 기회주의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의 편에서, 미 군정기에는 미군의 편에서, 이북에선 이북의 편에서, 이남에선 이남의 편에서 활개치며 가장 강한 자의 힘을 이용해 가장 약한 자를 괴롭히고 못살게 굴고, 그것을 자신의 존재 이유이자 삶의 의지로 삼는 이들이었다. 정찬우는 그들을 극도로 증오하고 죽이고 싶다는 마음마저 품었으나, 그들 또한 역사의 피해자라는 생각을 되뇌며 살의를 접는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역사의 '피해자'일까. 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게 인간이지만, 필요 이상의 살상을 하고 죄의식조차 가지지 않는 건 짐승한테도 부끄러운 일이다. 


마침내 정찬우는 자유의 몸이 되어 꿈에 그리던 고향 땅을 밟고 보고 싶었던 가족들의 얼굴도 보지만, 젊은 날에 품었던 꿈은 이룰 수 없어진지 오래요, 흘러간 시간을 돌이킬 방법도 없다. 남한은 그를 빨갱이라고 손가락질하고, 북한은 갈 수 없는 땅이 되었다. 역사학에 비상한 재능을 보였고 후학 양성에 힘쓰는 삶을 살고 싶었던, 생김새가 말쑥하고 말투에 교양이 뚝뚝 묻어나 뭇 여성들의 밤잠 꽤나 빼앗았던 스물두 살의 해사한 그 청년의 삶은 이렇게 망가지고 짓밟혔다. 누가 그를 기억할 것인가. 누가 그를 대신해 울어줄 것인가. 이 놀라운 이야기가 허구가 아닌 실화이며,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유족이 전해준 이야기를 작가가 대신 글로 써냈다는 후일담이 더 놀랍다. 이 땅에는 얼마나 더 많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을까. 더 많이 발굴하고 더 많이 전승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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