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늘 내게 산같은 존재였다. 두명의 주인공에 3명의 보조인물이 등장하는 2막으로 된 짧은 분량의 부조리극이지만 마치 엉클어진 내 삶을 보는 것 같아 많은 생각을 하게했다. 자극적인 이야기도 클라이맥스도 없는 고전이라 감각적인 스토리에 길들여진 독자나 청중에게는 큰 감동이 없을 수도 있다. 물론 알고 있는 내용인데, 재미있는 연극 대본이라서가 아니라 나를 돌아보고 싶어 읽었다.
작가가 겪은 이차세계대전으로 인해 20세기에 팽배했던 실존주의와 허무주의를 배경 철학으로 하고 있어서 이야기는 무겁고 침침하며 연극 대본이라 매우 짧은 대사로 구성되어 있지만 중간 중간 굵직한 보석이 숨겨져 있다.
The tears of the world are a constant quantity. (p. 24)
세상의 눈물의 양은 일정하다고 하고 있다. 어딘가에서 누군가 울기 시작하면 다른 누군가는 멈춘다고. 웃음(laugh)도 마찬가지라고.
It’s not every day that we are needed. To all mankind they were addressed, those cries for help still ringing in our ears! But at this place, at this moment of time, all mankind is us, whether we like it or not. Let us make the most of it, before it is too late! (p. 70)
나무 옆에서 오지 않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밖에 할일 없는 그들이, 50년간 오지 않을 무엇을 기다리는 그들이, 자살하고 싶어도 줄이 없어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그들이, 내일은 줄을 가져 오자 약속하지만 가지고 올 용기조차 없는 그들도, 장님이 되어 넘어져 도움의 소리를 외치는 Pozzo를 도와 주어야 한다는 철학적 메세지를 주는 Vladimir의 대사이다.
Godot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작가도 모른다고 했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늘 고도를 기다려 왔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이냐고 내게 물으면 나도 대답을 못할 것 같지만 오랜 시간 기다렸고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걸 직감했다. 글 속의 주인공들이 2번 등장한 소년의 말을 통해 오늘은 오지 못할 것이며 내일은 꼭 Godot가 올 것이라 말하지만 주인공들은 알것이다 결국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고도의 도착으로 그들이 구원받고 의미없던 기다림의 끝을 맛보아야 하지만, 본문 속 대사처럼 고도가 온다해도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고(I would’n know him if I saw him. p. 15)오랜 기다림의 보상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두 주인공에게 고도에 대한 평생의 기다림이 있어, 오지 않을걸 알면서 같은 장소에 매번 와서 자살조차 못하고 기다리듯이 기다림 자체가 하루 하루를 살아가게 했던 끈이었는지도.
나에게 Godot가 무엇인지 분명한 때가 있었으나 지쳐서 내려 놓고 오지 않는다 낙담하여 기다리는 소망을 내려 놓아서 무미건조하게 살던 때가 있었다. 물론 열렬하게 기다리던 때였기에 좌절은 매우 컸다. 지금은 나의 Godot가 무엇인지 애매하다.
온다는 확신이 적더라도 기다림이 있던 때가 행복했던 것일까? 다시 Godot를 기다릴 용기가 내게 있을까? 기다림도 상처받을 용기를 전제로 하는구나 ㅜ. 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