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송 한비자 ㅣ 낭송Q 시리즈
고미숙 기획, 한비 지음, 구윤숙 옮김 / 북드라망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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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글의 마지막에 이런 질문을 남겼다.

춘추전국의 오랜 분열을 끝내고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는 왜 그렇게 빨리 무너졌을까?

그리고 2천 년도 더 지난 지금 나는 왜 다시 《한비자》를 읽고 있는 것일까?

그 질문에 답하려고 하다 보니 먼저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나는 그동안 법가와 한비자를 거의 같은 의미로 생각하고 있었다.

과연 법가와 한비자는 같은 사상이었을까?  그런데 사실 둘은 정확히 같은 것이 아니었다.


넓게 보면 오늘날 우리는 한비를 법가의 대표적인 인물로 분류한다. 하지만 법가적 사상의 흐름은 한비보다 훨씬 앞서 이미 존재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상앙(商鞅)이다.

이후 신불해, 신도등이 서로 다른 문제를 고민했고 전국시대 말 한비에 이르러 법가는 종합적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당시에는 이들이 하나의 학파를 이루어 서로 같은 생각을 주장한 것이 아니었다.

후대에 여러 사상적 흐름이 하나의 범주로 정리되면서 '법가'라는 이름으로 묶여 부르게 된 것이다.

사실 법가 안에서도 인물에 따라 강조점은 서로 달랐다.


한비의 사상을 알기 위해서는 법가의 시조나 다름 없는 상앙(商鞅)은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상앙은 한비보다 약 100년 전 앞선 사람이며  후에 진이 천하통일 할 수 있도록 내부 초석을 다진 인물이다.

그는 당시에 진나라를 강국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개혁을 추진하였다.

그가 특히 중요하게 본 것은 法, 즉 법과 제도였다.

사마천의 <사기> <상군열전>에는 상앙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나온다.


상앙이 새로운 법을 시행하기 전, 그는 수도의 남문에 큰 나무 하나를 세워놓고 말했다고 한다.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 상금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처음엔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 쉬운 일에 큰돈을 준다고 하니 백성들이 오히려 믿지 않았던 것이다.

상앙은 상금을 더 올렸다.

그러자 한 사람이 나무를 옮겼다.

상앙은 약속대로 정말 상금을 지급했다.

그 뒤 새로운 법을 비로소 공포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상앙이 법을 따랐기 때문에 돈을 많이 주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가 먼저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국가는 백성을 속이지 않는다. 한번 정한 상과 벌은 실제로 집행한다.

새로운 법을 발표하기 전에 먼저 국가의 명령에 대한 신뢰부터 만든 것이다. 

<사기>에서는 이를 두고  “以明不欺(이명불기)” 즉 '속이지 않음을 밝힌다 '고 표현했다.


법이 아무리 훌륭해도 사람들이 “어차피 권력자 마음대로 바뀔 텐데.” 라고 생각한다면 아무런 힘이 없다.

규칙이 있고, 그 규칙이 실제로 집행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사람도 움직인다.

상앙이 진나라에서 시행한 개혁은 훨씬 광범위했다.

군공을 세우면 그에 따라 신분과 보상을 얻게 하고, 농업과 군사를 장려하며, 호적과 행정체계를 정비하고, 중앙정부가 백성과 지방을 더 직접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귀족의 혈통보다는 국가에 어떤 공을 세웠는지가 중요해졌다.

진나라가 훗날 전국의 다른 나라들을 압도할 수 있었던 국가체제의 뼈대는 한비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상앙은 法을 통해 강한 국가를 만드는 방법을 고민했고 실제로 법으로 나라를 강하게 만든 결정적 인물인 셈이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인생 마지막에는 비극적 결말을 맞이했다.


상앙이 권력을 잃고 도망치던 중 여관에 묵으려고 했지만, 여관 주인은 신분을 확인할 수 없는 사람을 받아주면 법에 따라 처벌받는다며 그를 거절했다고 전해진다.

결국 자신이 만들고 강화했던 법의 세계가 도망치는 자신에게도 예외를 허락하지 않았던 셈이다.

상앙은 법으로 진나라를 강하게 만들었지만, 마지막에는 자신 역시 그 법의 바깥에 있을 수 없었다.

법은 그를 설계한 사람마저 가둬버리는 역설인 셈이다.


상앙이 진이 법가적 국가운영의 기본 틀을 만들었다면 비슷한 시대의 신불해는 법이 집행되도록 하는 술(術)을 강조했다. 

즉 그 법을 집행하는 관료는 누가 관리할 것인가. 그것이 바로 술이다.

술은 관료를 관리하는 방법이다. 

법을 강조한 상앙과 달리 술을 특히 강조한 신불해(申不害).

이름이 조금 헷갈리기 쉬운데, 진시황의 정치적 후견인이었고 한때 친부설까지 따라붙었던 진나라 재상 여불위(呂不韋)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신불해는 한비가 태어났던 한나라에서 활동했던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다.

그가 관심을 둔 것은 법 그 자체보다 군주가 관료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누구에게 어떤 일을 맡길 것인가.

권한을 어디까지 줄 것인가.

보고가 사실인지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신하가 자기 권한을 넘어서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오늘날 현대 조직으로 옮겨보면 인사, 감사, 보고체계, 권한분장, 성과검증과 비슷하다.

쉽게 말하면, 法이 조직의 규칙이라면, 術은 그 조직의 사람을 운영하는 기술이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신도(慎到)라는 인물은 세(勢)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勢는 어제 이미 이야기한 대로 높은 산 위의 작은 나무가 골짜기의 큰 나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것은 그 나무가 더 훌륭해서가 아니라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군주도 반드시 모든 신하보다 지혜롭거나 유능해서 명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군주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명령하고 상벌을 내릴 수 있다.

사람의 능력보다 그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서 나오는 힘.

그것이 勢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비가 등장하며 법가는 앞 전보다 더욱 종합적인 형태를 갖추게 된다. 

한비의 중요한 점은 法 하나만 강조한 데 있지 않았다.

그는 앞선 여러 통치사상을 받아들이면서 군주가 국가와 관료조직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훨씬 정교하게 고민했다.

그래서 오늘날 한비자의 정치사상을 흔히 法·術·勢라는 세 축으로 정리한다.

다만 이것을 한비가 직접 교과서처럼 세 항목으로 분류했다고 보기보다는, 후대 사람들이 그의 사상을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틀이라고 보는 편이 좋다.

法은 기준이고, 術은 사람을 다루는 방법이며, 勢는 그것을 실행할 수 있게 만드는 자리의 힘이다.


그런데 한비는 여기서 좀 더 깊게 파헤친다.

사람에게 일을 맡겼다면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여기에서 형명(形名)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말은 어렵지만 뜻은 의외로 간단하다.

말한 것과 실제로 한 것이 서로 맞는가.

예를 들어 어떤 신하가 “제가 이 일을 해내겠습니다.” 라고 말했다고 하자.

그 사람이 맡은 직책과 약속, 말한 내용이 名이라면 실제로 해낸 결과가 形이다.

군주는 둘을 맞춰보아야 한다.

말은 거창한데 실제 결과가 없다면 책임을 묻는다.

반대로 맡은 일을 제대로 해냈다면 그에 맞게 평가한다.

오늘날 회사에서 업무목표와 실제 성과를 비교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단순한 KPI보다는 조금 더 넓은 개념이다.

그 사람의 직책과 말과 실제 행동이 서로 일치하는가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평가만으로는 조직을 움직일 수 없다.

평가한 결과에 따라 실제 상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때 한비는 군주가 놓쳐서는 안 되는 두 개의 손잡이를 들고 나온다.

그게 바로 이병(二柄) 이다.

한자 병의 뜻이 손잡이란 말이다.

그 두 가지는 형(刑)과 덕(德)이란 손잡이를 뜻한다.

이때 사용한 德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도덕적인 덕이라기보다 보상과 혜택을 베푸는 의미에 가깝다.

쉽게 말하면 벌과 상이다.

누가 승진을 결정하고 누가 보상을 주는가.

누가 책임을 묻고 누가 사람을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 있는가.

그 권한을 가진 사람이 결국 조직의 사람을 움직인다.

그래서 한비는 군주가 이 두 개의 손잡이를 다른 신하에게 절대로 넘겨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결국 한비자의 정치사상은 하나의 구조로 완성되어졌다.


勢는 군주가 가진 자리의 힘이고, 法은 모두에게 적용되는 기준이며, 術은 사람과 조직을 다루는 기술이다.

形名은 말과 실제를 비교하는 검증방식이고, 二柄은 그 결과에 따라 상과 벌을 행사하는 최종 권한이다.

形名을 통해 신하를 확인하고, 二柄을 통해 상벌을 행사하며, 그 모든 것을 운영하는 방식이 術이다.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가능하게 하는 힘이 勢다.


이렇게 정리하면 법가와 한비자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처음에 법가라고 하면 강한 법, 엄격한 형벌, 냉혹한 통치를 먼저 떠올렸다.

그것은 상앙이 강조했던 초기의 법중심 개혁에 가깝다.

그러나 한비의 관심은 그보다 훨씬 넓었다.

법을 만든 다음 그 법을 운용하는 사람을 누가 통제할 것인가.

보고되는 정보가 사실인지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유능한 신하가 오히려 군주의 권력을 잠식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상과 벌은 누가 쥐고 있어야 하는가.

결국 한비가 고민한 것은 단순한 법률이 아니라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을 움직이고 통제하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상앙과 한비의 차이를 정리해 본다면 진나라를 강하게 만든 국가체제의 중심에는 한비보다 훨씬 앞선 상앙의 개혁이 있었다.

그리고 한비는 그보다 뒤에 法뿐 아니라 術과 勢, 그리고 관료통제의 문제까지 더 깊게 고민했다.

물론 이렇게 둘을 완전히 나눌 수는 없다.

상앙에게도 권력과 통치의 문제가 있었고, 한비에게도 法은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에는 이 정도의 구분이 도움이 된다.


오늘날 우리는 진은 법가를 바탕으로 천하를 통일했지만 곧 무너졌고,  뒤를 이은 한나라는 유학을 국가통치의 중요한 이념으로 받아들였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한나라는 과연 진나라의 법가를 전부 버렸을까?

법가는 정말 통일 이후에는 쓸모가 없어진 것일까?


내일은 바로 그 질문에서 다시 시작해 보기로 한다.

천하를 얻은 법가, 천하를 잃은 진.

진나라는 왜 그렇게 빨리 무너졌을까?

질문은 다시 이어진다.


2일차 마침.

현명한 군주가 신하를 거느리는 방법은 두 개의 권병(권력으로 사람을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는 힘) 뿐이다. 두 개의 권병이란 형과 덕이다. 무엇을 일컬어 형과 덕이라고 하는가. 벌하여 죽이는 것을 형이라 하고 상을 내려 칭찬하는 것을 덕이라 한다. - P60

군주가 싫어하는 것을 겉으로 비치면 신하들은 싫어할 만한 단서를 숨긴다. 군주가 좋아하는 것을 겉으로 비치면 신하들은 그에 맞춰 능력을 속인다. 군주가 하려는 바를 겉으로 드러내면 신하들은 그 행실을 꾸며낼 단서를 얻게 된다. - P66

군주가 무엇인가 특별히 좋아하면 할 일이 많아지고, 무엇인가 특별히 미워하면 원한을 사게 된다. 그러므로 좋아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버려두고 마음을 비워서 도가 깃들게 해야 한다. 군주가 함께 일을 하지 않으면 백성은 오히려 그를 존중한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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