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노트> 무조건 좋게 결정지어서 맡겨놓기
날짜:2025년 1월4일
오늘의정진: 無罪福無損益 (무죄복무손익 ) 죄와 복이 없고 이익과 손해도 없나니
- 100일 정진, 10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아홉 번째 구절은
<夢裏明明有六趣, 覺後空空無大千
몽리명명유육취, 각후공공무대천,
꿈 속에선 밝고 밝게 육취가 있더니, 깨달은 후에 비고 비어 대천 세계가 없어진다>였다.
꿈 속에 있으면 아직 깨닫기 전이다.
깨닫기 전에는 육도윤회(六道轮回)속에서 돌고 있기에 실체가 있고 밝은 줄 안다.
하지만 깨닫고 난 후 꿈에서 깨어나니 본래 육도윤회는 없으며 우주 대천세계가 모두 텅 비어 없다는 뜻이 된다.
증지소지비여경(证智所知非余境), 오직 깨친 지혜로만 알 수 있는 경지일 뿐 이다.
오늘은 열 번째 구절
無罪福無損益 (없을 무, 죄업 죄, 복 복, 없을 무, 덜 손, 더할 익 )
무죄복무손익
죄와 복도 없고 손해와 이익도 없으니
寂滅性中莫問覓 고요할 적, 멸할 멸, 성품 성, 가운데 중, 없을 막, 물을 문, 찾을 멱)
적멸성중막문멱
적멸한 성품 가운데 묻고 찾지말라
깨달으면 죄도 없고, 복도 없다. 그리고 손해와 이익도 없다.
깨달음은 분별과 망상이 사라진 상태라 여기에 무슨 죄와 복이 있고 손해와 이익이 있는가?
그러니 적멸한 성품 가운데서 묻지도 찾지도 말라고 한다.
적멸寂滅은 고요할 적, 멸할 멸 이다. 분별, 망상이 전부 남김없이 사라져버리고 난 후 고요해진 상태를 뜻한다.
성품(性品)은 나의 본래 마음 자리를 말한다.
분별이 사라지면 고요한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게 되는데 어찌 따로 묻고 찾는가?
삼조승찬스님(三祖僧璨 ?~606) 의 신심명<信心銘>에서도 이러한 경지를 자세히 설명했다.
<지도무난, 유혐간택, 단막증애, 통연명백(至道無難, 唯嫌揀擇, 但莫憎愛, 洞然明白)
도에 이르는 일은 어렵지 않나니, 오직 간택하는 마음을 꺼려야 한다.
단지 미워하고 좋아하는 마음만 없다면 통연히 밝게 드러난다.>
바로 통연명백 (洞然明白) 즉 모든 것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이 내 본래 성품이란 것이다.
오로지 대상에 대하여 분별하는 마음,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만 없앨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도(道) 요, 깨달음 이란 것이다.
유위법의 세계에서는 밖으로 보이는 대상에 집착한다.
그래서 우리는 늘 외부의 상황에 따라 내 마음이 휩쓸린다.
죄와 복을 따지고, 손해와 이익을 따지며 밖의 대상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그 모든 분별은 전부 ‘나’ 라는 아상(我相) 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나’라는 상을 없애지 않고는 늘 분별하는 세상을 돌며 살게 된다.
그게 바로 육도윤회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본래 무아 임을 안다면 자연히 내 본래 성품이 드러난다.
그러니 무아와 진아는 둘이 아니다.
無罪福無損益, 寂滅性中莫問覓 / 무죄복무손익, 적멸성중막문멱
죄와 복, 손해와 이익은 모두 본래 없는 것이니
본래 적멸한 성품으로 돌아가면 따로 묻고 찾을 일도 없다.
그저 분별하는 내 마음만 가만히 지켜볼 뿐이다.
<일일소견>
혼란스러운 우리나라, 육도윤회가 따로 없다.
밖의 현상에 분별 말고 내 마음만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