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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이후의 세계 이미 시작된 미래
금철영 지음, 강인경 그림 / 이든하우스 / 2026년 5월
평점 :
품절


미국-이란 전쟁이 시작된 지 3주 즈음이었던 지난 3월 중순, 자칭 '세계의 보스'이자 타칭 '트러블 메이커'인 트럼프가 특유의 장대한 분노를 쏟아냈다. 그 상대는 이란이 아니라 어이없게도 오랜 우방인 나토 동맹국들이었다. 지난 수십년 동안 미국의 안보 우산에 무임승차한 주제에 미국이 급박할 때에는 돕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는 나토 탈퇴까지 운운하면서 앞으로는 당신네들끼리 잘 해보라며 으름짱을 놓았다. 나토 동맹국들에게는 그야말로 적반하장이자 배은망덕일 것이다. 걸프전쟁을 비롯하여 아프간-이라크 침공 등 그동안 미국의 전쟁에 부지런히 동참하면서 적지 않은 비용과 인명희생까지 감당해 왔다는 점에서 트럼프의 주장은 사실 왜곡일 뿐더러, 정작 바이든 행정부는 2021년 아프간에서 철수할 때 아무런 사전협의나 정보공유도 없이 일방적으로 손을 떼기로 결정하여 미국만 믿고 있던 동맹국들을 곤란에 빠뜨리기도 했다. 게다가 트럼프가 중동의 문제아 이스라엘과 야합하여 멋대로 사고치는 바람에 전 세계가 피해를 보고 있는데 이제와서 뒷수습은 나토를 들먹이고 있으니 뻔뻔함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안그래도 그동안 나토를 가리켜 종이 호랑이라며 공공연히 무시한 트럼프에게 쌓인 것이 많은 이들로서는 "뭐 우리는 베알도 없는 줄 아냐?"라고 할 듯.

전쟁은 일으키기는 쉬워도 끝내기는 어렵다는 만고의 진리를 무시한 트럼프는 한층 기고만장해진 이란이 이참에 해협 통행료를 뜯겠다고 하자 남이 삥 뜯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내가 뜯겠다는 부동산 투기꾼다운 기똥찬 발상 전환으로 가뜩이나 기름값 상승에 격앙된 인류의 염장에 불을 질렀다. 고집센 성격에 입만 열면 허세지만 속내는 자기가 사고치기 전으로 로드 신공을 하고 싶은 심정 아닐지.


한편으로 트럼프의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제아무리 아니꼽다고 한들, 나토는 미국 없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그의 엄포가 전적으로 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는 점이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나토 동맹국들의 딜레마이다. 네덜란드 전 총리이자 나토 사무총장인 마르크 뤼터(Mark Rutte)는 트럼프가 유럽을 무시한다며 분노한 일부 회원국들의 자강론에 대해 "꿈같은 소리"라면서 일축했다. 냉전 종식 이후 평화에 젖어 전쟁을 잊은 결과였다. 유럽 국가들은 국방비를 대폭 줄이는 대신 경제 성장과 복지에 지출했고 젊은 세대의 표를 얻을 요량으로 징병제를 폐지했다. 군대는 최소한의 수준으로 억제되었으며 무기와 장비는 노후화되었다. 냉전 시절 소련의 위협에 맞서 각기 수천대의 전차를 보유했던 영국, 프랑스, 독일은 이제 탈탈 털어봐야 200~300여대 남짓에 불과하다. 해공군의 사정도 다를 바 없다. 사실상 무장을 해제한 셈이다. 구소련이 무너진 이상 더 이상 유럽에서 과거와 같은 전면 총력전이 벌어질 일은 없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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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저널리스트가 쓴 <노르트스트림의 덫>은 서방 지도자들이 푸틴을 얼마나 안이하게 여겼는지를 신랄하게 지적한다. 이들은 푸틴이 구소련 지도자들과 달리 말이 통하는 상대라고 여겼고 그가 값싸게 공급하는 러시아산 에너지는 유럽인들을 방심시켰다. 심지어 프랑스는 자국 최신 기술이 집약된 미스트랄급 강습상륙함 2척을 러시아에 판매하려고 했을 정도였다. 서방과 푸틴의 밀월은 2014년 우크라이나 마이단 혁명과 러시아의 크림 반도 전격 합병과 함께 끝났다. 서방 지도자들은 그제야 푸틴이 무해하기는 커녕 속이 시커먼 야심가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알맹이 없는 비난과 경제제재 외에 서방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나토 가입을 호소하는 우크라이나의 요구는 거부되었다. 이들로서는 오랜 평화와 값싼 러시아산 에너지를 포기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우크라이나만 눈딱감고 희생하면 우리한테 불똥 튈 일은 없을 거라는 게 서방의 믿음이었다. 아프간과 이라크의 수렁에서 10년 넘게 허우적거리던 미국도 무기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시절도 있었다며. 2001년 9월 25일 독일 의회에서 기립 박수를 받는 푸틴. 러시아의 젊은 신임 대통령이었던 그는 철지난 대결 대신 화해와 협력을 강조하여 그때까지 러시아를 경계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서방에게 자신이 무해한 존재임을 각인시켰다. 서방 지도자들은 자신들만 코트를 벗으면 '우리 시대의 평화'가 올 거라고 믿었지만 정작 푸틴이 코트를 벗지 않았다는 사실은 간과했다.


2022년 2월 드디어 본색을 드러낸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했을 때 서방 내 친러 좌파 지식인들은 그의 상투적인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면서 "유럽의 위기는 푸틴 때문이 아니라 나토의 동진 탓"으로 돌렸지만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서방의 진짜 실수는 나토를 동진시키지 말라는 푸틴의 경고를 한귀로 흘려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를 자극할까봐 저자세로 일관하면서 전쟁을 대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내가 남을 위협하지 않으면 남도 나를 위협하지 않을 거라는 안이한 발상이었고 그 댓가를 푸틴의 공갈과 트럼프의 멸시로 단단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오늘날 유럽의 처지는 대공황 이후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영국과 프랑스가 주변국들을 거침없이 집어삼키는 히틀러의 야망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던 1930년대 말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저출산 고령화와 코로나의 여파로 극심한 경제 불황에 시달리는 유럽의 여론은 분열되고 뒤늦은 군비 확충과 징병제를 부활하려는 시도는 기성세대가 수혜만 누리고 책임은 우리에게 떠넘긴다는 젊은 세대의 거센 저항에 부딪치는 판국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자신들의 피로서 귀중한 시간을 벌어주었지만 정작 서방은 어영부영하면서 날리고 있다. 인간이란 바로 옆집에 불이 나도 내집에 옮겨 붙기 전까지는 절박감이 없는 법이니 말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는 "되풀이되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인간의 어리석음"이라고 했던가.


이든하우스 출판사에서 나온 신작도서 <전쟁 이후의 세계, 이미 시작된 미래>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바꾸어놓은 유럽의 모습, 그리고 지구 반대편 우리에게는 또 어떤 여파가 미치고 있는지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KBS 베테랑 종군기자로 30여년 동안 이라크, 우크라이나, 중동 등 세계 각지의 분쟁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우리가 TV로만 보는 전쟁의 잔혹한 참상과 그 속의 비극을 몸소 체험했다고 한다. 덧붙여, 작년 KBS 시사기획창에서 <우크라이나 임팩트>라는 제목으로 2부작을 방영한 것이 유튜브에도 올라와 있던데 봐야 할 듯.


<우크라이나 임팩트>에서 러시아의 드론 공격으로 파괴된 키이우 도심을 촬영하는 저자와 취재팀. 미국이 내전에 빠진다는 가상 영화 <시빌워>에서는 전장에서 비무장한 언론인들이라고 해서 결코 안전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저자 또한 현장을 취재하는 동안 위험천만한 경우가 많았으며 그로 인한 트라우마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


이 책은 제일 먼저 전쟁이 바꾸어놓은 우크라이나의 일상을 다룬다. 그러고보니 우크라이나 전쟁도 어느새 4년 반이 지났다. 한국전쟁의 3년 1개월과 제1차 세계대전의 4년 4개월을 갱신한 것이다. 그러고도 여전히 끝은 보이지 않는다. 한국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도 어마어마한 파괴와 살육이 벌어졌지만 우크라이나 전쟁보다 나은 점은 있었다. 적어도 전후방의 구분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잠깐의 안식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언제 어디로 날아올지 모르는 미사일과 드론 공격, 밤낮없이 울리는 공습 경보, 폭격이 내 머리에도 떨어질지 모른다는 극한의 공포심, 공습이 지나간 뒤 돌무더기로 변한 건물과 그 안에서 구조대원들이 필사적으로 꺼내는 시신과 부상자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울음소리. 전쟁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하기는 쉬워도 그 난장판 속에서 과연 이성을 유지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럼에도 우크라이나인들은 견뎌내고 있다. 그들은 푸틴에게 굴복할 생각이 없다. 그게 이 전쟁에서 가장 놀라운 사실이 아닐까 싶다.

전쟁 전에도 다큐멘타리 제작을 위해 우크라이나를 두 차례 방문한 적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모두 겨울철이었다. 그때 사람들은 미소를 지으며 한결같이 말했다. "아름다운 5월에 오세요." 하지만 2022년 2월 이후 그런 5월은 오지 않았다. - p.28


미사일과 드론 공습으로 사이렌이 울리면 방공호로 달려가야 한다. 그게 싫다면 집안에 그대로 머물며 운이 좋기를 바라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 긴장 속의 밤은 계속된다. 무엇보다도 전쟁 기간에는 뭐든 익숙해진다고 해도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이 사이렌 소리이다. '에에엥' 하는 사이렌 소리의 그 기묘한 음색은 들을 때마다 생경하고 소름이 끼친다. 특히 자신이 머무는 집이나 호텔 등에서 공습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면 사이렌 소리에 대한 공포는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 p.31


전쟁이 없었다면 그저 하루하루의 고된 일상을 마치고 맥주 한잔 또는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겼을 것이다. 아니면 거리에 즐비한 멋진 책방들이 늦게까지 문을 여는 만큼 그곳에서 고즈넉하게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고 드론의 기계음으로 뒤범벅이 된 전장 한복판에서 스러져가고 있는 것이다. 수도 키이우를 벗어나 한적한 마을이나 지방 소도시에 가면 남편이나 자식, 손주들을 전장에 보낸 사람들을 더 자주 만나게 된다.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들은 가족 전체가 온 몸으로 전쟁의 비극을 맞닥뜨린다. - p.45


귀환병들은 허리를 굽혀 사진을 자세히 쳐다보고 가급적이면 어떤 말이라도 하려고 애를 써본다. 간혹 어떤 귀환병들은 실종자 가족들이 들고 있는 사진 속의 주인공을 알아보고 어디서 함께 싸웠는지, 실종되었다면 어디로 끌려갔을 것이라고 얘기해 주기도 한다. 가족과 관련된 아무런 정보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고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다. 곳곳에 비통함과 울음 소리가 가득하다. 함께 따라온 어린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우크라이나 깃발을 펼치고 우크라이나어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훗날 이 아이들이 자라서 돌아오지 않은 아빠를 기다렸던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또 어떤 상흔으로 간직하게 될지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도 먹먹할 수밖에 없다. - p.89


그러나 우크라이나인들에 대한 연민을 떠나서 우리가 정말로 주목할 부분은 이 전쟁이 우크라이나의 일상만 바꾸어놓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책의 2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보여준 최초의 '드론전쟁'이다. 1991년 걸프전에서 미군이 순항미사일과 스텔스 전투기같은 최첨단 병기와 고도로 훈련된 병사들을 결합시킨 기동전으로 이라크군을 단숨에 분쇄함으로서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면 이번전쟁의 주인공은 우크라이나군의 드론들이다. 전쟁 초반에만 해도 서방을 향해 무기를 달라며 애걸했던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원조에만 의존하는 대신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무기를 만들어냈다. 이점이 미국에만 매달리다가 폭망한 남베트남이나 아프간과의 근본적인 차이이다. 하늘에서 쏜살처럼 날아오는 드론들은 러시아군의 기갑부대들을 괴멸시키고 이제는 모스크바 상공까지 위협하여 푸틴에게 잠 못 드는 밤을 선사하고 있다. 엊그제에는 독일에서 열린 미국과 나토 동맹국 간의 '컴파인드 리졸브(Combined Resolve)'훈련에서 우크라이나 드론부대가 미 기갑부대를 일방적으로 쓸어버렸다는 뉴스 기사가 떴더라. 물론 어디까지나 가상 훈련이며 미군이 전력을 다한 것도 아니기에 '천지이변'이라도 일어난 양 호들갑을 떠는 국내 언론들의 행태는 걸러 읽어야겠지만 전쟁 이전이라면 우크라이나군이 미군을 이기는 것은 결단코 상상할 수 없다는 점에서 틀린 말도 아니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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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만큼이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로봇이다. 푸틴이 보이스 피싱으로 멋 모르는 외국인들을 낚아서 용병으로 쓰거나 심지어 김정은에게 손을 벌여서 북한군으로 머릿수를 채움으로서 체면 깎이는 꽁수를 부린다면 그런 방법을 쓸 수 없는 우크라이나군은 로봇으로 대체하고 있다. 심지어 로봇이 러시아군 진지를 점령하고 인간 병사들을 포로로 잡아서 세상을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아직은 드론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조종하지만 요근래 급성장하는 AI가 대체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터미네이터가 현실화되는 것이다. 히틀러의 야망이 인류로 하여금 핵무기라는 금단의 무기에 손대게 했다면 푸틴이 또 다른 금단의 사슬을 끊게 만든 셈이다. 우크라이나군의 독특한 실적 보상도 주목할 부분이다. 구태의연한 관료주의에서 벗어나 전과를 올릴 때마다 포인트를 지급하여 필요한 무기와 물자를 쇼핑몰에서 직접 주문하고 순위를 매겨서 부대간의 경쟁을 유도한다. 뇌굳은 기성세대가 흉내내지 못할 MZ세대다운 유연한 발상이다. 바깥 세상에서는 전쟁을 게임화한다며 윤리가 어쩌구한다지만 승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으니 말이다.

드론 조종사 훈련장은 축구장 크기의 콘크리트 건물 안이었는데 여기서 야구를 해도 홈런을 날릴 수 있을 만큼 높이도 대단했다. 이 안에는 각종 장애물들이 있었는데 다양한 크기의 원형, 정사각형 구조물들이 주를 이뤘다. 조종사들이 드론을 이 구조물을 피하거나 안을 통과시키는 등 자유자재로 다루는 훈련을 받고 있었다. 기둥을 돌아서 숨어 있는 표적을 식별하고 공격하거나 땅을 파놓은 참호 같은 곳 안으로 들어가 드론이 부딪히거나 추락하지 않도록 섬세하게 조종하는 훈련도 이뤄지고 있었다. - p.119


일부 드론에서 촬영된 영상에서는 러시아의 전략폭격기와 공중조기경보통제기의 기체날개와 연료탱크 등 취약지점이 정밀 공격을 받아 화염이 치솟는 모습이 생생히 담겼다. 배터리로 움직이는 드론이 갈 수 있는 거리의 제약을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주파수나 통신교란 등 전파방해도 피하면서 전략 목표를 타격한 일대 사건이었다. 위성 사진을 통해서도 지상에 있는 러시아 전략 폭격기들이 드론 공격으로 불에 탄 흔적이 선명하게 확인되면서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지상 활주로에 있는 항공기들이 이제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 역시 입증되는 사건이었다. - p.127


세상은 그때까지도 드론의 진가에 대해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러우전쟁이 발발하고 러시아의 전차부대가 줄줄이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으로 무력화되는 것을 본 뒤에야 깨닫게 된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장은 현대전에서 대규모 기갑전력의 기동을 보기 힘들게 된 첫번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전차들이 드론을 탐지하고 대항하는 호위 전력 없이 움직였다가는 하늘에서 갑자기 나타는 드론의 손쉬운 표적이 되어 순식간에 파괴된다. - p.143


3부와 4부는 갈수록 각자도생으로 치닫는 새로운 국제 질서에 대한 얘기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도 미국 패권 시대는 내리막길이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층 가속시켰다는 것. 푸틴이 2008년 조지아 침공 때처럼 제한전이 아니라 아예 우크라이나를 먹겠다며 덤빈 것 자체가 미국의 이빨이 무뎌졌다고 판단한 결과이다. 실제로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를 제지할 엄두도 못낸 채 젤렌스키더러 탈출을 종용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러시아군의 전진을 막은 것은 미국의 개입이 아니라 스스로 총을 잡고 일어선 우크라이나인들이었고 국민들과 운명을 같이 하기로 맹세한 젤렌스키의 용기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강대국들이라고 해서 약소국의 운명을 멋대로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과 약소국들 입장에서는 강대국들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 존재이며 결국 내 나라의 운명은 나의 선택에 달려 있음을 깨닫게 했다. 너무 당연하면서도 쉽게 망각하는 진리 말이다. 저자는 '우크라이나 임팩트'가 흑해와 중동을 넘어서 우리네 세상을 어디까지 바꾸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조지아는 러우전쟁을 자국의 안보 위기로 규정하고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이를 극복할 다양한 방법을 고민했다. 단순히 러시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조심스러운 행보만으로는 부족해 보였다. 미국이나 나토 역시 위기 시 조지아 문제에 적극 개입하도록 하려면 조지아의 전략적 가치가 더 커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유럽으로 가는 주요 에너지 수송로의 허브가 되는 것이었다. 이 전략이 성공한다면 조지아와 유럽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윈원 전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p.167


튀르키예가 해협을 봉쇄하지 않고 바닷길을 러시아에 활짝 열어주었다면 러시아는 북해함대와 발틱함대에서 최신예 군함과 잠수함을 파견하여 흑해를 완전히 장악한 뒤 우크라이나의 해상 곡물 수출을 차단하고 남부 해안을 초토화시켰을지 모른다. 하지만 해협의 수문장 역할을 톡톡이 해낸 탓에 튀르키예는 나토의 강력한 '동쪽 방패'라는 사실이 깊이 각인되었다. 미국은 F-35는 주지 않았지만 튀르키예의 F-16 전투기 현대화 사업을 지원하기로 하고 신형 기체 판매도 승인했다. - p.188


2026년에 시작된 중동 전쟁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시작된 나비효과의 결과물이다. 이를 정리해보면 이렇다. 러우전쟁으로 러시아의 국력이 소진되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중동 거점인 시리아에 대한 지원이 약화되었다. 그 결과 아사드 정권이 붕괴했다. 반군이 집권했지만 시리아 내 힘의 공백이 생기고 러시아가 구축한 방공망은 무력화되었다. 이스라엘이 이란 공격의 '기회의 창'을 확보한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은 이란 본토를 사상 처음으로 직접 공격했다. 대리인을 내세운 그림자 전쟁이 끝난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8개월 만에 전면전이 발발했다. 미국도 개입하고 이란이 중동 내 미군 기지를 미사일 공격하여 전장은 중동 전역으로 확대했다. - p.213


폴란드가 추진 중인 바르바라 프로젝트는 4킬로미터 상공에 레이더를 띄워 반경 300킬로미터 범위를 감시하며 미사일과 드론을 포착해 요격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일종의 거대한 기구에 레이더를 장착하는 방식의 이 응용 레이더 시스템은 산이나 건물 등 장애물과 사각지대를 이용해 은밀히 날아오는 미사일과 드론을 포착할 수 있다. 실전 배치가 완료되면 폴란드는 동북부 국경지대는 물론이고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벨라루스 국경지대 깊숙한 곳까지 실시간으로 들여다보는 눈을 갖게 되는 것이다. - p.224


러시아를 향한 경계심은 이 나라 지식인들에게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라트비아의 사회 지도층은 러우전쟁 이전 러시아가 나토의 동진을 공개적으로 경고했던 것을 상기하면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경고를 과소평가했다는 자성도 나오고 있다. 상대방의 경고를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바람에 침공에 대비한 어떤 대비책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 p.255


러시아와 가장 긴 국경선으로 맞댄 핀란드가 나토에 합류함에 따라 북극해에서 발트해를 지나 지중해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철의 장막'이 완성되었다. 러시아로서는 지난 냉전 시대 철의 장막보다 더 길고 촘촘한 새로운 철의 장막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푸틴이 서방 세계를 향해 또다시 '러시아의 안전을 보장하라'고 외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 p.278


미국이 유럽의 안보 전선에서 사실상 후퇴하면서 '이제 유럽은 유럽 스스로 지켜라'라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자 유럽에선 핵전쟁은 물론, 이로 인한 초대형 재난이 닥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이제 미국이 주둔 미군 병력의 감축 등 추가적인 조치를 본격화한다면 유럽 내 위기감은 올라가고 혼란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 p.302


마지막장인 5부는 다름아닌 한반도에서의 '우크라이나 임팩트'에 대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머나먼 세상의 얘기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2024년 6월 18일 푸틴은 북한을 전격 방문했다. 유엔이 지정한 테러 국가이자 구 소련 붕괴 이후 사실상 방치했던 나라를 몇 십년 만에 찾은 것이다.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은 그 자리에서 북러 군사동맹을 맺었다는 사실이다. 만약 미국이나 우리가 김정은 체제를 흔들거나 북한을 상대로 무력 행사를 한다면 러시아에 대한 공격으로 여기고 자신이 직접 나서겠다는 것이다. 1990년 한러 수교 이후 북한을 고립시키기 위한 우리의 '북방외교'가 한순간에 허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북한 또한 그 댓가로 대규모 병력을 파견했고 푸틴은 이들을 총알받이로 삼아 쿠르스크를 되찾았다. 저자는 여기에 중국까지 끼어들어 북중러가 전에 없이 단단히 결속하고 있음을 경고한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탄약과 포탄이 부족해진 푸틴은 북한에 손을 벌리는 신세가 되었고 결국 폐기했던 북러 군사동맹을 복원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자동 군사개입 조항이 명기된 새로운 동맹조약은 그 자체로서 강력한 힘을 지닌다. 러시아는 북한과 조약 체결 이후 "한국이 북한을 침공할 리 없기 때문에 북러 조약 4조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밝혔다. 러시아가 이런 황당한 설명을 늘어놓게 된 안팎의 배경을 상세히 이해하려면 시간이 걸릴 수도 있을 것이다. - p.333


분명한 것은 이미 동유럽 지역 차원의 분쟁을 넘어 중동을 뒤흔든 전쟁의 여파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어떤 결말로 끝날지는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분단으로 길이 끊어지고 높아지는 철조망을 눈앞에서 지켜봤던 한반도로서는 지금 유럽이 던지는 질문들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이다.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과연 무엇인지, 대한민국은 답을 준비해야 한다. - p.342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지구라는 좁은 세계에 살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라고 해서 우리와는 상관없다며 태평스럽게 강 건너 불구경할 수 없다는 얘기이다. 당장 트럼프가 이란을 상대로 불장난을 한 덕분에 기름값이 폭증하고 우리 일상 생활에 여파를 주지 않던가. 우리네 세상은 급변하는데 여전히 작디작은 한반도에 갇혀서 국민들 앞에서 소모적인 정쟁에만 열을 올리며 제 밥그릇 지키기에만 여념이 없는 것이 대한민국 높으신 분들의 한결같은 모습이다. 이들이 둔감하다기보다 워낙 세상 바뀌는 속도가 빠르기에 인간의 두뇌가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긴 정치인들을 탓하기 앞서 우리같은 소시민들의 관심사 또한 국내 방산업체들이 전쟁에 편승하여 어떤 수혜를 보고 그래서 내 주식이 얼마나 재미를 보는가이지 더 복잡한 차원의 얘기가 아니니까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진화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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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시사한다. 역사는 언제나 강대국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인들에 의해 수렁에 빠진 푸틴은 그 돌파구를 북한에게서 찾았다. 김정은은 자신의 존재감을 처음으로 장거리 미사일이나 핵실험같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방법으로 세상에 확실히 각인시켰다. 정작 트럼프는 자신이 백악관에 재입성하면 24시간 내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큰소리 친 것이 무색하게도 전쟁 종식은 커녕 자신이 푸틴과 똑같은 수렁에 빠진 꼴이 되었다. 올초 출간한 <약소국의 제2차 세계대전사>에서는 약소국은 강대국들이 만든 국제질서에 순응하는 피동적인 존재가 아니며, 때로는 약소국이 강대국의 운명을 휘두르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운명의 주체로서 우리 자신의 의지이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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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지음 / 사이드웨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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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미국은 트럼프가 만든 것이 아니라 트럼프를 선택한 나라에 더 가깝다" - 머릿말 중에서.


4년에 걸친 국공내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1949년 4월 24일 새벽 난징의 총통부 꼭대기에서 앳띤 공산군 병사들이 붉은 깃발을 내걸었다. 그것은 26년 뒤의 사이공이나 72년 뒤 카불에서 벌어질 모습의 전주곡이기도 했다. 물론 남베트남 최후를 다룬 다큐멘타리라던가 작년에 개봉한 프랑스 영화 <카불 13일 낮, 13일 밤>에서 나오는 것마냥 겁에 질린 사람들이 정복자들의 보복을 피해서 외국 대사관으로 좀비떼처럼 몰려들고 막 떠오르는 헬기에 목숨 걸고 매달리는 참혹한 엑소더스가 그 시절 난징에서도 똑같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시청자들에게 실시간으로 현장 상황을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공내전이 사실상 잊혀진 전쟁이다보니 외국 기자들이 남긴 단편적인 증언 외에 오늘날 대중 매체들을 통해서 접하는 내용은 거의 전적으로 공산당 공식 사료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한국전쟁 초반 북한군이 서울에 입성했을 때 서울 시민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북한 쪽 기록으로 얘기하는 꼴이나 다를 바 없다.


상하이에 입성한 공산군 병사들이 건물을 징발하는 대신 길거리에서 노숙하는 광경. 장제스의 국민정부군이 약탈을 일삼았다면 공산군은 "3대 기율, 8항 주의"를 내세워 인민에게 폐를 끼치지 않았다는 서사는 오늘날까지도 민심을 얻어 천하를 차지했다는 마오쩌둥의 신화로 남아 있다. 하지만 공산당 정통성을 세우기 위한 프로파간다일 뿐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보다 중요한 점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 이후 미국의 국제 전략이 처음으로 쓴맛을 봤다는 사실이다. 국공내전은 2천여년 전의 초한지쟁과 달리 장제스와 마오쩌둥 두 사람만의 대결이 아니었다. 여기에는 유럽에서 점차 긴장이 고조되고 있던 미국과 소련도 얽혀 있었다. 특히 미국은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쟁처럼 직접 군대를 보내어 싸우지 않았을 뿐 누구의 눈으로도 빼박할 수 없을 만큼 깊숙이 개입했다. '마셜 사절단(Marshall Mission)'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조지 마셜 원수는 군에서 예편한 뒤 트루먼의 특사로 중국에 파견되어 국공의 중재와 갈등 조정을 맡았다. 강직하고 깐깐한 원칙주의자로서 국제사회의 존경을 받았던 그는 중국인들에게도 처음부터 불청객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양쪽 모두에게 불신과 증오만 샀고 자기 경력의 오점으로 남긴 채 1년 만에 진절머리를 내면서 떠나야 했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임무였고 마셜 자신도 금방 깨달았지만 트루먼이 무시한 결과였다. 미국의 목적은 중국의 평화가 아니라 중국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이었고 그것을 최소한의 비용만으로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 마셜의 끊임없는 딜레마였다. 무엇보다도 그가 간과한 점은 당사자들에게는 단순히 누가 더 가지고 덜 가지고의 제로 섬 게임이 아니라 생존이 걸린 문제라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흥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마셜이 자신의 권위와 미국의 위세를 내세워 알맹이 없는 말 몇 마디만으로 중국인들을 억누를 수 있다고 믿은 것 자체가 오만함이자 무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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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마셜의 비판자들은 그를 가리켜 "중국을 잃었다."라고 책임을 떠넘겼다. 마셜이 좀 더 잘했더라면 중국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장제스를 철저히 지원하던가, 반대로 공산당에게 보다 우호적으로 접근했더라면 냉전의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며 베트남전쟁의 15년 악몽 또한 없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이자 <Decisive Encounters: The Chinese Civil War, 1945-1950>의 저자인 오드 아르네 웨스타드(Odd Arne Westad)는 "미국의 전능함에 대한 믿음이 만들어낸 신화"라고 반박한다. 맞는 말이지만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기도 하다. 미국이 전능하지 않기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전능한 존재라고 믿고 충분한 고민 없이 남의 일에 어줍잖게 끼어들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었다. 원래 미국은 국공의 게임판에 뛰어들 이유가 없었다. 마셜 사절단은 중국인들의 요청이 아니라 태평양전쟁 말기 장제스와 스틸웰의 갈등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자신의 본분을 잊고 사실상 중국의 총독이 되기를 원했던 스틸웰은 고분고분하지 않은 장제스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의 가장 강력한 위협이었던 공산당에 눈을 돌렸고 옌안에 '딕시 사절단'을 파견하여 미국이 국공 문제에 발을 들이도록 끌여들었다. 스틸웰의 뒤를 이은 마셜 또한 미국의 원조를 무기삼아 장제스의 손발만 묶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여겼지만 어림없는 소리였다. 장제스의 승리를 돕지도, 마오쩌둥이 스탈린에게 접근하는 것도 막지 못한 채 빈손으로 떠남으로서 굳이 먹지 않아도 될 욕만 먹은 꼴이 되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처음부터 나서지 않는 쪽이 더 나았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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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국공내전은 미국 입장에서 어떤 교훈을 얻기에 수업료가 너무 적었다. 실패한 쪽은 자신들이 아니라 장제스였고 애초에 중국은 미국이 감당하기에 너무 큰 나라였다. 바꾸어 말해서 더 작은 나라에서는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착각이었다. 한반도에서는 마오쩌둥에게 통렬한 일격을 허용했지만 간신히 체면치레라도 했다면 베트남전쟁은 미국의 완패였다. 미국인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전능한 존재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세계 패권국가로서 전능함에 대한 미련을 순순히 내려놓지는 못했다. 아프간과 이라크를 침공하고 미국의 방식으로 그 나라들을 바꾸겠다며 헛된 애를 쓰다가 쓸데없이 힘만 뺀 채 더 큰 실패를 맛보아야 했다. 경쟁자들에게는 도전의 기회를 준 꼴이었다. 푸틴은 기다렸다는듯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얼마 전에는 베네수엘라 독재자 마두로를 포획하는 성공에 고무된 트럼프가 성급하게 이란을 쳤다가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수렁에 빠뜨렸다. 미국인들에게 전능함이란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이라는 얘기이다.



지지난달 사이드웨이 출판사에서 나온 신작 도서 <미국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 흔들리는 제국의 초상>은 80년에 걸친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말을 보여주는 것같은 트럼프 시대 미국의 민낯을 신랄하게 파헤친 책이다. 저자는 KBS의 24년 차 베테랑 여성 기자로서 지난 수년 동안 워싱턴 특파원을 지내면서 바이든 시절 아프간 철수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가자전쟁, 트럼프 집권 등 굵직굵직한 미국의 국제 현안을 체험하고 이와 관련된 주요 인사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고. 그런 경험을 토대로 쓴 것이 바로 이 책인 셈.


2024년 11월 5일 미국 대선의 결과는 트럼프의 승리였다. 그것도 8년 전에는 힐러리가 선거인단에서는 졌어도 총 득표에서는 이겼던 반면 이번에는 민주당의 완패였다. 트럼프를 가리켜 미국 대통령 치고는 그나마 말이 통하는 상대라고 여기는 푸틴이나 '이스라엘의 트럼프'라고 불리는 네타냐후를 제외하고 전 세계 80억 인류 중 대다수에게는 그야말로 기막힌 광경이 아니었을까 싶다. 앞서 1기 때에도 딱히 치적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없을 뿐더러 말년에는 의회와의 갈등으로 사실상 식물 대통령 신세였다. 게다가 말만 번드르할 뿐,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있는데다 2020년 대선에서는 극렬 지지자들을 선동하여 의회를 습격하여 민주주의를 위협했으며 심지어 무늬만 공화당이지 오만방자하고 제멋대로의 성격 탓에 공화당 내부에서도 극혐인지라 부시를 비롯한 전직 대통령 중에서 그를 위해 어느 한 사람 유세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리 민주당이 인기가 없다고 해서 미국인들이 트럼프를 선택한 것은 차악 대신 최악을 고른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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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저자는 미국에 대한 몰이해라고 일축한다. 트럼프의 당선은 단순히 위대한 미국을 들먹이는 그의 뻔뻔한 거짓말과 극우 매체들의 선동에 어리석게 넘어간 미국인들의 충동이나 변덕의 결과가 아니며, 트럼프가 집권하자마자 동맹국들을 상대로 관세 폭탄을 터뜨리고 여기저기서 좌충우돌식으로 일을 벌이는 것 역시 나름대로는 지지층의 여론을 고려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무뇌아가 아니라는 것. 그게 그 양반의 머릿속 계산이나 대다수 미국인들이 바라는대로 돌아가고 있는지는 별개의 얘기지만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 우리 눈앞에 직면한 미국의 변화를 트럼프 개인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과연 미국과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건 한 명의 '돌연변이' 리더일까.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국가의 합리적 이성, 그리고 그 시스템을 움직이는 미국인들의 정서와 미국 사회의 선택이 그것이다. 트럼프는 거칠지만 단지 즉흥성에만 기대고 있는 건 아니다. 트럼프는 정치인이다. 여론을 읽고 지지층의 요구에 반응하며 움직인다. 재선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계속 쥐고 싶어 하는 성향상 더욱 그러하다. - p.11


이 책은 제일 먼저 한국에 대한 2기 트럼프 행정부의 시각을 다루고 있다. 우리로서는 가장 관심사이다. 그 중에서도 미 국방부 정책차관 엘브리지 콜비는 트럼프식 안보 실리주의의 단면을 보여주는 인물이며 저서인 <거부전략>은 2023년에 국내에도 출간되었더라. 나중에 읽어봐야 할 듯. 그는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주한미군은 우리의 주적인 북한이 아니라 중국을 겨냥한 것이며 북한에 대한 방어는 우리가 알아서 할 몫이라고 강조한다. 지금까지 한미동맹이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미국이 우리를 지켜주기 위함이었다면 이제는 중국 견제를 위한 수단으로 우리가 미국에 기여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심지어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핵무장도 용인할 수 있다는 것. 요근래 우리도 북핵에 맞서 핵무기를 만들자는 국내 핵무장론자들 입장에서는 고무될 얘기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양반 개인의 생각일 뿐 트럼프 행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닐 뿐더러 NPT 체제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문제이므로 트럼프가 승인하고 말고 할 부분이 아니라는 점에서 걸러들을 필요는 있다. 정말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더 이상 한미동맹에서 '공짜점심'은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미국 입장에서 제아무리 동맹이라도 자기네들에게 이용가치가 없으면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이 남베트남이나 아프간 등지에서 일관되게 보여준 그들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앞으로는 가식과 위신으로 숨기지 않을 것이며 한국은 미국에 과연 쓸만한 동맹인지 스스로 증명해 보라는 게 콜비가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현재 주한미군은 북한에 집중하고 있지만 미국은 북한과 큰 충돌에 휘말릴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북한은 남한만큼은 아니더라도 매우 가공할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핵심은 한국이 북한에 대한 방어, 특히 재래식 군사력 단계에서 1차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 p.36


"아시아에서 핵 비확산 정책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한국과 대만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막았지만 북한과 중국에서는 실패했죠. 특히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인 한국이 확장억제를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핵 비확산 정책을 고집하는 건 우스운 거죠. 더 나은 옵션을 찾을 수 없다면 '우호적인 핵확산'에 직면할 준비를 해야 해요. 동맹이 깨져서는 안 되니까요. 이스라엘의 경우 핵 보유가 나쁜 게 아니라 안보를 안정시키는 요소로 간주된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에 같은 논리를 적용하는 게 왜 안되나요?" - p.42


미국은 더 이상 동맹을 지켜주는 패권국이 아니다. 오히려 동맹의 지원이 패권 유지의 필수 조건이 된 나라이다. 팔목을 비틀어서라도 동맹을 곁에 두어야 하지만 그들이 기댈만한 지원은 제공할 수 없는 나라, 약해지는 패권을 되살리려 시간을 벌어 힘을 비축하는 대신 위험은 동맹과 우방에 외주를 주는 나라. 그간 세계의 누구도 본 적이 없는 외양도, 내면도 작아진 미국을 우리는 앞으로 상대해야 한다. - p.52


본문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프간과 우크라이나에서 드러난 팍스아메리카나의 현실과 세계 최강 미국이 어쩌다가 그렇게 몰리게 되었는지, 그 빈틈을 사정없이 파고드는 중국의 거센 도전 속에서 여전히 패권국가로서의 지위를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미국의 딜레마, 그리고 그런 딜레마가 미국인들로 하여금 트럼프를 선택하게 되었고 설사 트럼프가 아니라 누가 백악관의 주인이 되건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는지를 이 책은 다루고 있다. 트럼프가 미국을 바꾼 것이 아니라 트럼프 집권 이전부터 이미 미국은 바뀌고 있었다는 얘기.


작년에 개봉한 <수퍼맨 리부트>. 이전의 수퍼맨들이 절대적인 힘으로 희망을 주는 지구 지킴이였다면 여기서는 누명을 쓴 수퍼맨이 미국 정부에 의해 구금되고 다른 초인들은 그걸 알면서도 함께 엮일까봐 눈치만 보는 장면이 나온다. 수퍼맨도 미국에 까불면 혼난다는 트럼프 시대의 메세지를 보여준다랄까. 정작 수퍼맨은 커녕, 이란한테도 쩔쩔 매는 것이 이빨 무뎌진 미국의 현주소지만 말이다.


흔히 미국을 가리켜 국방비가 천조원이 넘는다고 '천조국'이라며 그 넘사벽적인 재력과 무궁무진한 군사력에 감탄한다지만(지금은 2천조가 넘었다.) 상당부분 허상이기도 하다. 그 많은 돈을 도대체 어디에 썼는지 병사들의 복지는 갈수록 형편없고 첨단 무기는 정비 불량에 허덕이고 있으며 탄약도 부족하다. 얼마 전에는 트럼프가 말 안 듣는 이란에 미국의 분노를 보여주려다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재고가 바닥났다는 보고에 물러섰다는 기사가 떳더라. 특히 11척의 핵항모로 대표되는 해군력은 미국의 힘을 전 세계에 투사하는 수단이지만 군함의 태반이 심각하게 노후화된 반면, 신조함의 건조는 지연되는 판국이다. 그동안 제조업과 조선업을 등한시한 결과이다. 이제와서 트럼프가 아무리 '마스가(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친들 거의 숨이 끊어진 조선업을 당장 살릴 수는 없다보니 덕분에 우리 조선소들이 어부지리를 얻게 되기도. 얼마 전에 읽은 <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에서는 냉전이 끝난 뒤 천조국 미국이 국방비를 줄이기는 커녕 천정부지로 늘리고 있음에도 정치인들과 유착한 거대 군산복합체들의 비효율적인 구조와 중복 투자 때문에 미국인들의 세금을 얼마나 낭비하고 있는지 신랄하게 고발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저자 또한 같은 지적을 하고 있다.


미국의 힘은 자국의 군사력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미국의 뒤에는 유럽의 동맹이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국 혼자만이 아닌 나토의 작전이었다. 나토의 상호방위조약 의무에 따라 그간 미국의 도움만 받던 유럽 국가들이 처음으로 미국을 도우려 전장에 나섰다. 그런데 '동맹의 전쟁'은 '동맹없는 철수'로 끝났다. 미국의 황급한 철군은 나토 동맹국들에 충분히 공유되지 않은 채 진행되었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유럽 국가들은 우왕좌왕했다. 수백, 수천명씩 현지에 뒀던 자국민과 현지 조력자들을 대피시킬 탈출계획도 마련하지 못했다. - p.57


우크라이나 전쟁은 갑작스러운 전시 상황에서 미국의 무기 공급망이 버텨낼 수 없음을 중명했다. 미국에는 오랫동안 '두 개의 전쟁은 어려우니까 한꺼번에 치르지 말자'라는 명제가 존재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을 치르면서 미국은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과연 한개의 전쟁이라도 고스란히 단독으로 치를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 p.81


소련이라는 적이 사라지고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 되자 미국의 방위산업은 갈 길을 잃었다. 미국 정부는 1988년부터 총 다섯 차례에 걸쳐 350개 주요 군사 기지와 시설을 꾸준히 폐쇄하고 이에 딸린 정비 시설도 감축했다. 한때 비축했던 무기 제조용 광물과 금속들도 민간에 매각했다. 방위산업 역시 축소의 길로 접어들었다. 냉전 종식 직후인 1992년 미 의회에 제출된 보고서는 주요 방위산업체들이 투자처 부족으로 엄청난 부채를 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키웠던 방산 기업들도 정부 주도로 하나둘 매각되었다. 1990년대 말까지 미국 주요 방산업체 수는 51개에서 5개로 급감했다. - p.147


트럼프의 영토 집착은 그린란드에만 그치지 않았다. 파나마 운하나 그린란드처럼 거점 영토가 아닌 북쪽의 엄연한 주권 국가 캐나다도 건드렸다.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부르며 캐나다 총리를 면전에서 '주지사'로 부르는 결례도 서슴지 않았다. 트럼프는 잊을 만하면 소셜 미디어에 성조기가 캐나다 영토를 뒤덮은 그래픽 등을 올리면서 캐나다 국민들의 신경을 긁었다. 2026년 1월 캐나다군은 가상의 자국 침공 시나리오를 상정해 게릴라전까지 포함한 대응 방안을 모의실험했다. - p.178


미국이 자국에 직접적인 이익이 되는 영역에만 집중하면서 곳곳에 외교적 공백이 생겨났다. 중국은 그 틈을 파고들어 경제와 산업, 투자와 시장 접근을 앞세운 방식으로 개발도상국에 대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세계의 생산기지이자 거대한 시장을 동시에 갖춘 중국으로서는 자국 기업의 해외시장을 넓히는 동시에 자원기지를 선점하고 외교적 영향력도 키울 수 있는 효율적 전략이었다. 미국이 비워 둔 공간은 곧 중국이 새로운 파트너를 확보하는 외교 무대로 바뀌고 있다. - p.222


미국이 찾은 답 중의 하나가 동맹이다. 미국은 그간 자신들이 만든 질서의 혜택을 누려왔으니 이제 그 비용도 함께 부담하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책임 분담'이라는 명목 아래 군사비 증액과 역할 확대를 강압적으로 동맹에 청구하고 있다. 문제는 미국의 독주와 독단이 빚어낸 비용까지 청구서에 얹힌다는 점이다. 미국의 일방통행과 전략적 오판이 빚어낸 지정학적 리스크마저 동맹의 몫으로 넘겨진다. - p.288


이 책을 읽으면서 오늘날 미국인들이 느끼는 위기감이 얼마나 심각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런 위기감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외치는 트럼프라는 협잡꾼을 선택하게 된 이유겠지만 엄밀히 말해서 오늘의 미국이 리즈 시절이라는 루스벨트 때보다 더 약할 리는 없을 것이다. 인구와 경제력, 군사력은 물론이고 대다수 일반 국민들 또한 자신들의 할아버지 때보다 훨씬 풍요로운 물질의 이기를 누리고 있다. 하물며 팍스아메리카나가 아무리 종말을 맞이한들 과거 로마제국이 그러했듯 역사 속으로 사라지거나 대영제국처럼 갈가리 찢겨나가게 되리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미국이 정체된 반면 우리같은 신흥국가들이 빠르게 쳐올라오면서 한때 위대했을 자신들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두려움이다. 특히 광대한 영토와 세계 최대의 인구, 무한한 자원을 가지고 있는 중국은 미국을 거역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을 가진 나라이다. 게다가 중국이 구소련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먹여 살려야 할 짐짝같은 위성국들을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늘날 중국 지도자들은 쿠바나 이란, 북한의 김정은에 비하여 훨씬 뛰어난 식견과 통찰력을 갖추고 있으며 더 이상 마오쩌둥 시절의 국가적 자폭이나 다름없는 무모한 실험에 매달리지 않는다. 미국으로서는 가장 무서운 적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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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미국의 상황이 트럼프 탓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큰소리친 것마냥 미국을 제대로 위대하게 만들고 있는걸까.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극소수의 엘리트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부를 누리는 반면,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으며 하류층들은 극빈층으로 전락했다. 현실의 희망이 사라지면서 청소년들은 마약에 빠져들고 있다. 정작 트럼프는 해결해야 할 문제는 덮어둔 채 시대착오적인 자기 우상화와 이민자 추방에 열을 올리고 중국, 러시아같은 힘 있는 강대국은 존중하면서 우리처럼 만만한 동맹국들만 군기잡기로 미국의 권위를 세우겠다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그게 지지층을 얼마나 만족시킬지는 모르겠지만 국론 분열과 이미지 실추는 물론, 동맹국들의 분노를 자아내어 트럼프 자신에게도 그리 도움될 것같지는 않다. 하물며 그가 동맹국 지도자들 앞에서 거들먹거리면서 미국에 충성과 복종을 요구한들 순순히 따를 리도 없다. 링컨과 아이젠하워를 배출한 공화당에서 하필이면 이런 인간을 대통령으로 세웠는지 세상은 요지경이다.

미국이 4개로 분열되어 내전에 빠지는 상황을 가정한 알렉스 가랜드 감독의 영화 <시빌워>. 여기서 한 군인이 주인공들을 향해 "당신네들은 어느 쪽 미국인이냐?"라는 질문은 경쟁국의 추격만이 아니라 갈수록 심화되는 미국 내부의 분열상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트럼프 하는 꼴이 마음에 안 든다고 동맹국들이 당장 등을 돌리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날 국제 질서는 미국이 창조한 것이며 중국이나 러시아같은 더 탐욕스럽고 믿을 수 없는 나라가 대신한다고 더 낫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고압적이고 이기적인 행태가 협력보다 반감을 살 것은 분명하다. 더욱이 저자의 지적처럼 트럼프 이후에도 미국이 바뀌지 않는다면 동맹국들은 미국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하려고 할 것이다. 19세기 영국 총리 파머스턴 경의 "국제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우군도 없으며 영원한 것은 오직 우리 국익 뿐"이라는 유명한 말마따나 미국의 국익이 자신들의 국익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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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달라지는 세계를 받아들이고 변한 미국을 인정하며 그에 따라 우리를 움직였던 동맹의 메커니즘도 수술대에 올릴 때가 왔다." 당연하면서도 쉽지 않은 얘기이다. 왜냐하면 해방 이후 우리는 80여년 동안 미국의 그늘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우리를 둘러싼 주변 정세는 급변하지만 인간의 사고방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다. 대미 외교가 국익이 아니라 국내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우리네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되면 누가 미국에 충성할 자격이 있는지를 놓고 서로 싸우고 국익은 커녕 미국을 상대로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한미동맹을 흔든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판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바뀌었고 더 이상 과거의 미국이 없음은 분명하다. 제아무리 미국의 바짓가랭이를 붙잡고 애걸한들 한미동맹은 우리가 아니라 미국에게 가치가 있을 때에만 의미가 있다. 우리가 인정하건 말건 말이다. 이제는 우리끼리 충성 경쟁을 벌일 것이 아니라 미국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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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보니 문득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더라. p.78에서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대표 무기는 대포와 박격포의 중간 형태인 곡사포인데 우크라이나가 여기에 들어가는 155mm 포탄을 경악스러운 속도로 소모하고 있었다."라는 대목이 있는데 뭐가 중간 형태인지는 모르겠으나 곡사포와 박격포 모두 대포의 일종이다. 저자가 착각한 모양. 참고로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넘긴 것은 M198 155mm 견인 곡사포를 경량화한 M777 곡사포. 포탄 부족도 문제이지만 수량 자체가 부족한데다 자주포가 아니라 견인식이다보니 방어력과 기동성에서 취약하여 제공권을 쥐고 있는 러시아군의 대포병 사격으로 절반 이상 손실한 모양. p.145에서는 연합군이 공포의 티거 중전차를 상대하기 위해 만든 것이 M4 셔먼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셔먼은 티거 상대용이 아니라 M3 리 전차를 대체하기 위한 다목적 중형 전차로 개발에 착수한 것은 미국이 참전하기 이전부터이며, 서방 연합군이 티거를 처음 만난 것은 1942년 12월 튀니지에서였다. 영화 <퓨리>에 나온 것마냥 셔먼이 물량에서 티거를 압도한 것은 사실이지만 연합군의 수단이 셔먼만 있었던 것은 아닌지라. 동부전선에서는 티거보다 더 한 괴물도 등장했으니. 아무튼 밀덕의 습성인지 이런 것만 눈에 들어온다는.

전쟁을 가장한 호러였던 독일 영화 <티거>에서 티거의 포탄을 튕겨내는 소련 SU-100 구축전차. 영화 <퓨리>에서 티거가 셔먼의 포탄을 튕겨내어 빵형과 관객들에게 공포를 선사했다면 여기서는 이놈이 그대로 재현한다. 퓨리의 오마주인 셈. 하지만 이보다 한체급 위의 괴물이 ISU-152. 엄밀히 말해서 우리가 아는 티거의 명성은 전차 성능보다도 독일 전차병들의 탁월한 숙련도 덕분인지라.


그럼에도 국제 전문가다운 저자의 치밀한 분석과 날카로운 통찰력은 오늘날 미국의 시대가 어떻게 저물고 있는지 알려준다. 트럼프의 허세 뒤에 감추어진 절박감도 함께 말이다. 단 한번도 전능한 적이 없음에도 스스로 만들어낸 전능함의 환상에 빠져서 힘을 낭비한 댓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랄까. 300여 페이지를 하루 만에 읽었다. 미국 싱크탱크 연구원들이 쓴 <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와 더불어 꼭 읽어볼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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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의 패배
에마뉘엘 토드 지음, 권지현 옮김 / 아카넷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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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는 않았지만 주한 외국인들의 토크 대결을 다룬 JTBC의 <비정상회담>에서 러시아쪽 패널로 출연한 바 있다는 벨랴코프 일리야씨가 쓴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라는 책에서는 러시아인들이 바라보는 푸틴을 이렇게 말한다. "그는 독재자가 아니다." 왜나하면 소련 시절 '진짜 독재'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푸틴의 방식은 독재 축에 끼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러시아의 아버지'다운 강력한 지도력으로 부패 관료들을 때려잡고 소련 붕괴 이후 나락으로 향하던 러시아 경제를 안정시켰으며 푸틴 치하에서 충분한 자유를 누린다고 여긴단다. 그의 높은 지지율이 밖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죄다 조작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어차피 러시아인들 대부분은 정치에 무관심하다보니 푸틴이 조금 잘못을 해도 그보다 더 나은 놈이 없다는 이유로 신경끄고 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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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따지면 러시아만이 아니라 중국도 '중국식 민주주의 국가'이며 세상 천지에 독재국가가 어디에 있겠냐 싶지만 어쨌든 일리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편협한 동물인데다 '감각순응'이라고 하여 지옥을 맛본 사람일수록 어지간한 일에는 둔감해지는 법이니 말이다. 우리야 푸틴을 독재자라고 욕하면서 그 옛날 루이16세나 니콜라이 2세처럼 오래지 않아 철권 통치에 분노한 러시아 국민들에 의해 타도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래서야 어림없을 듯 하다. 예전에 좌파 인권 운동가들의 칼럼을 모은 <우크라이나 전쟁,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각축전>에서는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반대하고 지성과 양심을 갖춘 러시아인들이 스스로 푸틴을 끌어내릴 것이라고 주장하던데 이 양반 설명에 따르면 그야말로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인 셈. 옳고 그름을 떠나서 러시아인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데 우리가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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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대로 저자의 사견이 한가득 담겨 있다고는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같은 지구에 살면서도 러시아가 얼마나 멀고도 먼 나라이며 서로의 사고방식이 동떨어져 있는지 새삼스레 깨닫는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극단으로 치닫게 된 러시아와 서방의 갈등은 먼저 서방이 빌미를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푸틴은 집권 초기에도 서방에 유화 제스쳐를 취했음에도 서방이 약속을 깨고 나토를 동진시켰기 때문이라는 것.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도 2014년 마이단 혁명으로 친러 대통령이었던 빅토르 야뉴코비치가 쫓겨난 것이 미국의 음모이며 친서방 정권이 러시아를 적대하고 나토를 끌어들이려고 했음을 강조한다. 그야말로 러시아 입장에서의 아전인수랄까. 우리로 치면 일본인이 일본의 조선합병을 고종의 반일정책과 어차피 그 시절 일본이 아니었어도 누군가 조선을 먹었을 것이므로 죄가 없다고 하는 꼴이니 우크라이나인들이 들으면 격분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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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결코 오해해서 안 되는 점은 인과관계가 거꾸로 되었다는 사실이다. 푸틴은 입만 열면 서방의 동진을 비난하면서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한다고 타령했지만 정작 서방과의 관계를 파토낸 것은 푸틴 자신이었다. 푸틴이 처음 러시아의 권좌에 앉았을 때만 해도 서방과의 관계는 화기애애했다. 그는 서방을 핵무기로 위협하던 구 소련 지도자들과 달리 자세를 한껏 낮추었다. 프랑스 언론인 마리옹 반 렌테르겜의 <노르트스트림의 덫>에는 푸틴이 2000년대 내내 독일 총리인 게르하르트 슈뢰더나 앙겔라 메르크를 비롯하여 서방 지도자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를 언급한다. 러시아는 서방에 석유와 천연가스를 저렴하게 공급하고 그 대가로 경제 원조를 얻어냈다. 심지어 푸틴에 감화된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국의 최신 군함인 미스트랄급 상륙함 2척을 러시아에 판매하기로 했다. 이대로만 계속되었다면 한 세기 전 짜르가 꿈꾸었던 프랑스-독일-러시아 3국 연합이 실현되었을지도 모른다.

2011년 프랑스가 러시아에 넘기려고 한 미스트랄급(Mistral-class) 강습상륙함. 핵항모인 샤를 드골을 제외하고 프랑스 해군에서 가장 큰 군함으로 배수량 2만톤에 16대의 대형헬기, 전차 40대, 병력 450명을 수송할 수 있으며 지휘통제함으로서 기능을 갖추었다. 프랑스가 자국의 최신 기술이 집약한 군함을 러시아에 판매할 만큼 나토와 러시아의 관계는 우호적이었지만 푸틴의 욕심이 망쳤다.


문제는 푸틴이 서방에게는 비굴하리만큼 추파를 던지면서도 우크라이나, 조지아 등 만만한 주변의 구소련 형제들에게는 옛날 버릇을 못 버렸다는 점이었다. 그는 친러 주민들을 선동하고 무기를 제공하여 혼란을 부추겼으며 공공연히 선거에 개입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다음은 주먹맛을 보여주었다. 우크라이나와 조지아가 1991년 구소련에서 독립할 때만 해도 유고슬라비아처럼 내전을 방불케 할 만큼 민족간의 갈등이 극심하지 않았음에도 결국 내전과 러시아로의 이탈로 이어진 것은 푸틴이 막후에서 부추긴 결과였다. 2014년 2월 자신이 오랫동안 공을 들인 야뉴코비치가 부패 문제와 장기집권을 노리다가 분노한 국민들 손에 쫓겨나 러시아로 망명하자 뻔뻔하게도 서방의 음모론을 내세우며 1주일 뒤 크림 반도를 무력으로 점령했다. 이것은 선을 넘은 것이었고 그동안 쌓아올린 신뢰를 한방에 무너뜨렸다. 하지만 푸틴은 덩샤오핑의 인내심을 배워야 했다. 서방은 그의 민낯을 깨달았고 지금까지의 제스쳐가 진심이 아니라 자신들을 방심시키려는 방편이라고 결론내렸다. 여론이 악화되면서 프랑스는 2척의 상륙함을 러시아가 아니라 이집트에 넘기기로 했다. 냉전 종식 이후 사실상 무장을 해제했던 나토는 러시아에 대비하기 시작했으며 러시아로부터 존립 자체를 위협받았다고 여긴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에 나섰다. 푸틴은 외교적 해결책 대신 가면을 벗고 더 이상 서방의 비위를 맞추지 않기로 했다. 그 결과가 우크라이나 침공이었다. 뜻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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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속셈은 서방을 직접 위협하지 않되, 그 대가로 구소련 시절의 세력권을 자신의 '나와바리'로 인정받겠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구 소련 형제국들을 동등한 주권국가가 아니라 러시아의 속국으로 여긴다는 얘기이다. 실제로 그는 우크라이나를 가리켜 냉전 종식과 함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실체 없는 나라이며 원래는 러시아의 일부였다고 떠들고 있다. '나토의 동진'에 그토록 발끈하는 것도 서방이 정말로 러시아를 무력으로 위협한다기보다 내 똘마니들 멋대로 빼가지 말라는 것. 하지만 서방에 불신감을 드러내기 앞서 구소련 형제국들이 러시아를 그토록 질색하는 이유부터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푸틴은 벨라루스의 루카센코처럼 코드 맞는 독재자들에게는 든든한 뒷배노릇을 하면서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프랑스 드골과 독일의 아데나워가 보여준 것같은 역사적 화해나 진정한 이웃이자 형제로서 존중하는 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는 더 이상 공산주의자가 아니지만 구소련 시절 KGB에서 배운 습성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나토 동진에 일조한 발트 3국이나 우크라이나와 조지아가 러시아 대신 친서방으로 돌아선 것도 푸틴이 하는 것마냥 서방이 그들 지도자들을 매수해서가 아니라 푸틴의 오만한 태도가 그렇게 내몬 결과이다.

2014년 마이단 혁명으로 쫓겨난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호화저택. 친러정서가 강한 동부 출신인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흔한 부패 정치인이자 그 동네의 정치적 혼란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2004년에는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부정의혹으로 물러나야 했고 6년 뒤 다시 당선되었지만 푸틴의 충복 노릇을 하면서 국가적 분열과 부패를 한층 조장하고 우크라이나군을 무력화시켰다. 우크라이나판 을사5적인 셈. 시위대에 유혈진압을 지시했다가 궁지에 몰리자 러시아로 달아나 푸틴의 보호를 받으며 호의호식하고 있다고.


보다 충격적인 사실은 러시아 국민들 또한 푸틴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이다. 배울만큼 배웠고 한국에서 10년 넘게 생활하고 있는 일리야같은 사람조차 뻔한 레파토리를 앵무새마냥 늘어놓고 있으니 말이다. 세뇌의 무서움일까. 우크라이나 전쟁 초반 러시아 참전 군인의 아내가 남편더러 우크라이나 여자를 성폭행해도 된다는 통화 내용이 공개되어 충격을 주기도 했다. 부차를 비롯하여 러시아군이 철수한 장소에서는 학살과 약탈, 강간, 고문의 수많은 전쟁 범죄 현장이 발견되었으며 수만 명의 우크라이나 아동들이 우크라이나의 러시아화를 명목으로 러시아 가정에 강제 입양되었다. 이것이 죄다 그동안 서방이 러시아의 심기를 건드린 인과응보라고 할 수 있을까. 90여년 전 독일 국민들은 서방이 자신들을 부당하게 대했다면서 히틀러의 침략전쟁을 열광적으로 지지하고 나치의 전쟁범죄에 가담했다. 이들은 히틀러의 피해자가 아니라 엄연한 공범이었다. 단지 한 나라 전체를 전범으로 처벌할 수 없었을 뿐이다. 러시아인들 역시 마찬가지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폭발한 뒤 국내에도 서방과 러시아의 문명 충돌을 다룬 책이 우후죽순으로 나왔다. 그 전에도 미국의 아프간, 이라크 침공 등 국지적 분쟁은 많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네 세상이 위기라는 얘기. 지난 2월 아카넷에서 나온 신작 도서 <서방의 패배> 또한 그 중 하나이다. 저자인 에마누엘 토드(Emmanuel Todd)는 프랑스 역사학자이자 인류학자. 주로 인류 통계학적인 관점에서 가족의 구조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연구한다고. 그래서 이 책 내내 가족이 어쩌구 타령을 하더라는. 특히 냉전이 한창이던 1976년에는 소련 붕괴를 예견하고 2002년에는 미국의 시대가 끝날 거라고 주장하여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양반들이 흔히 그러하듯 사고가 한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어 논란도 많은 모양.

이 깐깐해 보이는 할배가 저자인 에마누엘 토드. 아버지는 기자, 할아버지는 작가였으며 무려 고등학생 시절 프랑스의 유명한 68혁명이 폭발하자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했다고. 보통 싹수가 아닐세. 1951년생이니 나이가 75살인데 아직도 왕성하게 글을 쓰는 모양.


<서방의 패배(The Defeat of the West)>라는 도발적인 제목이 붙은 이 책은 저자의 가장 최신 저서로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드러난 서방의 모순과 어째서 러시아와의 대결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지를 지적한다. 문제는 특유의 반골 기질로 서방은 신랄하게 까는 반면, 푸틴에 대해서는 마치 그의 대변인이라도 되는 양 한없이 우호적이며 근거와 잣대가 일관성이 없다는 점. 덕분에 러시아 쪽에서는 당연히 호평을 받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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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쟁'이 아니라 러시아식 표현인 '특수 군사 작전'이라고 부른다. 푸틴은 돈바스의 친러 세력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서 수도 키이우까지 진격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우크라이나 정복을 노렸고 우크라이나인들의 격렬한 항전으로 무려 4년 넘게 싸우고 있음에도 이 양반 기준에는 아무튼 전쟁은 아닌 모양. 중일전쟁을 당시 일본 지도자들이 국제 사회의 제재를 피할 요량으로 억지로 만들어낸 아전인수식 용어인 '지나사변'이라고 부르는 격이랄까. 중국인들이 노발대발할 듯. 그리 따지면 소련-아프간 전쟁이나 베트남 전쟁도 전쟁이 아니며 1940년 나치 독일의 프랑스 침공 또한 특수한 군사 작전이라고 해야 할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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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고조된 러시아를 향한 구소련 국가들과 서방의 경계심을 '자격지심'에서 나온 실체없는 공포심으로 치부한다. 왜냐하면 푸틴은 스탈린이 아니며 러시아에는 스탈린 시절과 달리 저출산과 인구 감소로 유럽을 위협할 힘이 없다는 것. 그러면서 우크라이나가 구 소련 시절 얼마나 축복을 받았으며 만약 이들이 처음부터 순순히 돈바스를 포기했다면 지금처럼 고통 겪는 일도 없었을 거라도 단언한다. 물론 푸틴은 스탈린이 아니며 스탈린이 될 수도 없다. 하지만 독재자의 모델이 스탈린만 있는가. 푸틴이 스탈린이 아니라고 해서 독재자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흐루쇼프를 비롯하여 구 소련 시절의 지도자들 역시 스탈린은 아니었으며 리비아 카타피, 이라크 후세인, 우간다 이디 아민 또한 스탈린은 아니었다. 이디 아민은 잔인함에서 본다면 스탈린도 벌벌 떨었을 듯 하지만 말이다. 오히려 스탈린은 레닌과 달리 공산 혁명의 확산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푸틴보다 훨씬 신중하고 교활했다. 적어도 답이 없는 전쟁에 매달려서 4년 넘게 수렁에서 허우적 거린 적은 없었다. 히틀러가 세계대전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소련을 다스리는데 만족했을 것이다.

러시아에는 근본적인 취약점이 있다. 바로 저출산이다. 저출산은 모든 선진국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러시아는 동원 가능한 남성 인구가 감소하는 단계에 들어갔다. 그래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정복하고 유럽을 장악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환상이나 선전이라는 것이다. 사실 인구가 감소 중인 러시아는 국토 면적이 170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여 새로운 영토를 정복하고 싶어 하지도 않고 오히려 이미 보유한 영토를 어떻게 계속 점유할 것인가에 관심이 있다. - p.57

러시아는 천연자원과 노동으로 살아간다. 자국의 가치를 세상에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나머지 세계'를 경제적으로 착취하거나 자국의 문화를 수출할 능력도 없다. '나머지 세계'의 노동으로 살아가고 니힐리즘적인 문화를 자랑하는 미국에 비하면 러시아는 '나머지 세계'에 더 나은 선택으로 보인다. 소련은 최초의 탈시민지화에 엄청나게 이바지했다. 이제 많은 국가가 러시아가 두번째 탈식민지화에 기여할 것을 기대한다. - p.281


저자의 말마따나 러시아가 미국처럼 지구 반대편까지 자국의 헤게모니를 무력으로 투사할 능력은 없다고 해도 적어도 국경을 맞대고 주먹이 직접 닿을 수 있는 만만한 구소련 형제국이나 시리아같은 친러 국가들에게는 패권국가로서의 역할을 결코 마다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간과한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앞서 2008년에는 조지아가 반러의 기치를 들었다는 이유로 응징했고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에서 분쟁이 일어나자 평화 유지를 명목으로 개입했으며 시리아 내전에는 중동의 맹우인 아사드 대통령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사병집단인 바그너 군단을 보내어 반군을 고문하고 학살하는 등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그 밖에도 미국만큼 눈에 띄지는 않더라도 여기저기 끼어들고 있다. 저자가 직접 겪을 일이 없다보니 와닿지 않는 모양.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홀로도모르로 한정해서 보는 것은 오류이다. 농업국가인 우크라이나가 스탈린에 의해 순교자가 되었지만 반대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소련의 우대를 받았다. 우크라이나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에서 첨단 항공 산업과 군수 산업을 포함한 산업 우선 개발 지역이 되었다. - p.72

나는 200년 전부터 소련, 즉 러시아의 지배로 동유럽의 현대화가 진행되었다는 주장이 언급되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쇼언바움의 실용적인 본능은 옛 인민민주주의 국가들의 러시아 혐오가 그저 옛 지배자에 대한 무의식적으로 감추어진, 수용할 수 없고 용납되지 않는 역사적 부채에 기인했다는 것을 내가 확인해주었다. - p.119


이건 우크라이나판 식민지 근대화론이랄까. 일부 학자들이 내세우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맹점은 일본이 식민지 조선에 공장을 지어준 것이 식민 지배에 대한 보상이나 이들이 기부천사라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 공장들은 일본의 기술과 자본으로 돌아갔기에 식민지인들로서는 다소의 일자리는 얻었을지 몰라도 말그대로 그림의 떡이었다. 오히려 그로 인하여 조선 경제는 일본 경제의 하청으로 예속되었으며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 자생할 수 있었던 기회를 박탈당한 꼴이었다. 일본이 패망하자 그들이 남긴 공장들은 대부분 고철이 되었고 경제가 마비되는 등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이것은 조선만이 아니라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한 뒤 겪거나 지금까지도 겪고 있는 일이며 우크라이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름 좌파 지식인이라는 양반이 이런 뻔뻔한 논리를 내세울 수 있는지 모르겠다. 프랑스는 지배하는 쪽이지 지배받는 쪽은 아니었기 때문일까.


구 소련 영역이 붕괴한 뒤로 체코인들과 슬로바키아인들은 더는 함께 살고 싶지 않아서 사이좋게 헤어졌다. 지배 세력이었던 체코인들이 지배권을 포기한 것이다. 러시아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의 사이가 더는 좋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지역은 분리시키고 모두가 인정하는 세력 중 일부의 도움을 받아 국민국가의 건립에 집중했어야 했다. 그러나 2014년 이후 우크라이나는 돈바스와 그곳의 러시아 주민을 되찾으려고 전쟁을 계속했으며 크림반도와 그곳에 거주하는 러시아 주민들을 되찾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다른 나라, 그러니까 자국보다 힘이 훨씬 센 나라의 주민에 대한 권리를 유지하려고 했다. - p.99


아무리 남의 일이라지만 우크라이나인들 입장에서 본다면 그 놈의 알자스-로렌을 놓고 독일과 두번이나 세계대전을 초래했던 프랑스인이 할 말은 아닐 듯 하다. 하물며 돈바스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강탈한 땅도 아니고 푸틴이 무력으로 사정없이 진압했던 체첸처럼 처음부터 분리 독립을 요구했던 지역도 아니다. 1991년 우크라이나가 독립했을 때 돈바스와 크림반도는 러시아로의 편입 대신 우크라이나에 남는 쪽을 선택했다. 비록 우크라이나가 국민 통합에 실패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책임이 전적으로 우크라이나에만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어느 나라가 주변 강대국의 위협을 이유로 자국 영토를 함부로 포기할 수 있을까. 설령 돈바스를 러시아에 내준다고 해서 푸틴이 여기서 만족할 거라고 누가 장담한다는 말인가. 193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를 놓고 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체임벌린은 히틀러의 편을 들어 체코의 양보를 종용했고 체코 또한 순순히 받아들였지만 그 결과는 평화가 아니라 세계대전의 폭발이었다. 서방이 푸틴의 야심을 경계하는 것은 그런 어리석은 역사를 되풀이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푸틴은 서방의 불신을 푸는 대신 크렘린 궁전 깊숙한 곳에 앉아서 핵공갈만 일삼고 있다. 누가 그를 신뢰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한낱 책상물림 학자인 저자야 아니면 말고 식으로 떠들 수 있을지 몰라도 정치인들로서는 자기 결정에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공산주의로의 사회 변환과 능력 위주의 소련식 교육으로 만들어진 러시아 중산층도 나머지 국민과 마찬가지로 푸틴 시대의 사회적 평화를 누린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앞에서 보았던 자살률, 살인율, 알코올 중독에 의한 사망률 감소이다. 유아 사망률은 러시아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던 평화로운 정신적, 사회적 분위기의 효과이자 상징으로 보아야 한다. 실랴펜토흐는 자유를 포함하여 러시아의 생활 환경이 푸틴 때만큼 좋은 때가 없다고 강조한다. - p.55

우크라이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고 따라서 태동하는 우크라이나 자유민주주의를 구하려고 달려드는 서방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이데올로기적이고 저널리즘적인 사고는 명백히 부조리하다. 서방 자유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 연결점이 있다면 그것은 전혀 다른 성격의 정체성에 근거한다. 유럽과 아메리카노스피어를 다룬 꼭지들이 보여주듯이 서방은 더는 자유민주주의 세계가 아니다. 서방이 지금 어떤 세계인지 말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지만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서방에서 겹치는 가치가 많고도 심오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가치가 민주적이지도 자유주의적이지도 않지만 말이다. - p.104

서방에서 가장 많은 보호를 받는 소수는 바로 부자들이다. 러시아에서는 동성애자이든 올리가르히든 보호받는 사람이 없다.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는 따라서 '자유주의적 과두제'가 되었다. 전쟁의 이데올로적거 의미는 바뀐다. 서방의 자유민주주의가 러시아의 권위주의와 싸우는 것이라는 지배적인 생각은 실제로는 서방의 자유주의적 과두제와 러시아의 권위주의적 민주주의의 대결이 되었다. - p.137


저자는 푸틴의 러시아를 가리켜 '권위주의적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그게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면서도 우크라이나는 서구가 생각하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비판한다. 정치가 우크라이나인들 전체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리 따지면 러시아는 그렇지 않은가. 러시아 또한 모스크바 시민과 변방의 소수민족들이 같은 권리를 누리지 않음에도 말이다. 저자는 푸틴이 러시아를 안정시키고 경제를 발전시켰다면서 극찬하지만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놀라운 성장에 비하면 보잘 것 없다. 러시아의 1인당 GDP는 서방은 커녕 튀르키예만도 못하며 석유와 천연가스, 일부 무기 분야를 제외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네임드 있는 기업이나 제품이 있는가. 러시아 남자들의 평균수명은 북한이나 캄보디아보다도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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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가 서구의 잣대에서 미흡할지는 몰라도 지금의 통치자인 젤렌스키는 시진핑이나 푸틴이 그러했던 것처럼 전임자와의 밀실야합으로 자기들끼리 권좌를 주고 받는 식이 아니라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선택을 받았고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실현했다. 적어도 푸틴이 20년째 장기집권하는 러시아보다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얘기이다. 젤렌스키가 링컨은 아니라도 더 오랫동안 집권하고 더 부패한 쪽은 그가 아니라 푸틴이다. 민주주의 실험을 한 지 불과 30년 밖에 안 된 나라더러 저자의 눈에 차지 않는다고 질타하는 것부터 어불성설이다. 그보다도 서구가 우크라이나를 돕는 것은 저자의 생각처럼 민주주의 동맹이라서가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위기가 서방 자신의 위기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푸틴이 캅카스에 있는 조지아를 침공했을 때에는 서방은 방관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조지아는 서방에서 멀고 우크라이나는 가깝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가 자주 들었던 소리와 달리 러시아 군대는 병사를 아끼기 위해서 느린 전쟁을 선택했다. 찔끔찔끔 진행되었던 동원령과 전쟁 초기에 체첸 군대와 바그너 그룹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도 그런 선택이다. 러시아의 우선순위는 최대한 많은 영토를 차지하지는 것이 아니라 병력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다. 2022년 가을 대동원령 이후 벌어진 우크라이나의 반격으로 3대1의 수세에 몰린 러시아는 동부 하르키우주를 포기했고 남부에서는 싸우지도 않고 드니프로강 좌안으로 철수했다. 이 결정을 내린 세르게이 수로비킨 장군은 쓸데없이 병사를 희생하지 않고도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 p.58


저자는 저출산의 압박을 받는 푸틴이 스탈린과 달리 나름대로 인명을 아끼는 전쟁을 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전쟁이 길어지는 거라고 주장한다. 서방의 주장처럼 병사들을 무한정 갈아넣지 않는다는 얘기. 사실 여부를 떠나서 그가 정말로 지도자로서 책임감이 있다면 애초에 전쟁 대신 주변국과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데 좀 더 신중했을 것이다. 더욱이 기왕 시작한 이상 본전이라도 찾겠다며 출구없는 전쟁을 질질 끌고 심지어 유엔 결의안을 위반하고 국제사회의 왕따인 북한한테까지 가오 안 서게 손을 벌리는 모습이 과연 러시아 병사를 아끼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말인가. 이 쯤 되면 저자의 정신세계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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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서방이 푸틴과의 대결에서 결코 이길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소위 '개신교의 좀비화'로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은총을 잃고 기존의 가족 제도가 해체되었으며 '니힐리즘(Nihilism, 허무주의)'와 동성애가 확산되면서 출산율이 저하된 탓이라나. 왜 기독교가 아니라 굳이 개신교라고 콕 찍어서 지칭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영국은 그렇다쳐도 프랑스는 가톨릭 국가 아니었음? 그러면서도 일본, 중국, 한국 등 아시아의 부상은 유교에 의한 전통적인 가족 문화가 든든히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라는 것.

전쟁에 대한 영국의 격노는 그런 것까지 바라지 않았던 미국을 당황스럽게 했다. 영국은 언제나처럼 미국을 따라 하기만 했으면 충분했을 것이다. 제2차 걸프 전쟁에서 부시를 따라 참전한 블레어처럼 말이다. 영국의 우스꽝스러운 짓거리에는 비극적인 이면이 있었다. 영국은 보내줄 물자도 많지 않았으면서 단계마다 전쟁을 악화시켰다. - p.178

1870~1930년 무너진 개신교는 이렇게 반으로 갈라진 개신교이다. 이때 내가 좀비 개신교라고 불리는 것이 등장했다. 성서에 나온 계명을 모두 지키지 않는다는 신호로 출산율이 추락했다. 개신교라는 틀이 사라진 영국은 순수한 국민주의를 발견했고 별다른 고민 없이 제1차 세계대전의 살육에 참여했다. 이 전쟁은 프랑스와 독일의 맹렬한 군사적 충돌을 넘어서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당시 두 경제 강대국을 대치시켰다. 이 두 국가는 좀비 상태로 넘어가던 개신교 국가 독일과 영국이다. - p.196

위기는 종교적이고 문화적이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도 국가는 개신교의 자녀이고 개신교의 점진적 소멸은 국가를 위태롭게 한다. 종교가 제로 상태에 다다르면 작은 국가에서는 국가적 불안이 생기고 결국 국제적 불안이 발생한다. 어쩌면 거기에서 안보에 관한 욕구가 생겼고 그 욕구를 나토 가입이 채워줌으로써 있지도 않은 외부의 위협을 물리치려는 것이리라. 인느 지금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스칸디나비아반도 국가들에게서 위협감이 자라기 때문이다.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 가입을 요청한 것은 러시아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욕구가 아니라 순전히 소속감에 대한 욕구이다. - p.217

과거의 독일 니힐리즘처럼 미국 사회의 부정적인 모습은 개신교의 해체가 낳은 결과이다. 오늘날의 위기는 개신교의 제로 상태에 해당한다. 개신교의 제로 상태를 통해서 우리는 트럼프 현상과 바이든의 대외 정책, 내부로는 썩어 들어가고 바깥으로는 과시벽을 보이는 미국, 미국 시스템이 자국 시민과 다른 국가의 시민에게 가하는 폭력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 - p.223

아시아 학생의 높은 비중은 역차별의 결과가 아니라 아시아의 높은 교육열 때문이다. 개신교가 사라지면서 교육열과 노려에 대한 숭배도 함께 사라졌고 자녀를 잘 돌보지 않는 절대적 핵가족이라는 인류학적 배경 때문에 백인들의 학습 능력은 크게 떨어졌다. 개신교도와 가톨릭 교도 자녀들의 SAT 점수와 평균 지능지수는 동시에 떨어졌다. 일본, 한국, 중국, 베트남 이민 가정의 자녀들은 한두 세대 정도 권위적인 가족 구조와 교육을 신성시하는 유교 전통이 대물림되었기 때문에 같은 추락을 겪지 않았다. - p.262


저자는 서방의 몰락을 종교적 믿음의 약화와 가족의 해체에서 원인을 찾는다. 그렇다고 치자. 어쨌든 서방이 몰락하고 있는 건 분명하니까 말이다. 특히 요근래 트럼프가 위대한 미국 어쩌구 하면서 헛발질만 거듭하는데도 여전히 미국인의 1/3이 지지하는 것만 보더라도 정상은 아닌 듯. 하지만 저자는 러시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그냥 푸틴이 잘하고 있으며 서방은 그를 이길 수 없다는 식.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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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서구가 푸틴에 대해 착각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이 푸틴을 잘 못 보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 듯 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구 좌파 지식인들의 가장 큰 오류는 서방과 러시아에만 주목할 뿐, 전쟁의 또다른 당사자인 우크라이나가 주변 강대국들에 의해 이리저리 지조없이 휘둘리는 갈대같은 존재가 아니라 엄연히 정체성을 가진 독립된 인격체라는 사실을 망각한다는 점이다. 6.25전쟁이 단순히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의 대리전쟁이 아니라 우리 또한 전쟁의 한 축을 맡은 주연의 하나였던 것처럼 말이다. 역사를 강대국들만의 전유물로 여기는데 익숙한 서구 사람들의 오만함이랄까. 하물며 우크라이나는 아프간 친미 정부나 남베트남처럼 미국이 인위적으로 만든 꼭두각시가 아니라 그들이 쟁취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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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하나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미국은 러시아에서 푸틴에 대항하는 봉기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꿈꾸지만 그야말로 꿈에 불과하다고. 그 옛날 프랑스 보수주의 사상가 조제프 드 메스트르(Joseph de Maistre)가 이렇게 말했다던가. 모든 나라는 자기들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얻는 법이라고. 그렇다. 푸틴이 러시아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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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사적인 영국 - 노동자 계층 출신 잉글랜드인이 이야기하는 영국 ㅣ 지구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피터 빈트.홍성광 지음 / 틈새책방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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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에 도쿄에 갔던 것이 기억난다. 그 전에도 일본은 몇 번 갔지만 도쿄는 처음이었다. 워낙 공사가 다망한데다 귀차니즘 덕분에 여행이 취미는 아니지만 말이다. 아무튼 내 눈에 비친 도쿄의 인상은 아시아의 수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6년 전 방문했던 베이징이 끔찍할만큼 복잡한 인산인해에 시끌벅적하고 돈과 권력이 넘쳐나지만 밑바닥 시절의 티를 못 벗은 졸부의 도시라면 도쿄는 마치 30년 전 자신이 가장 화려했던 시절의 추억에 갇힌 채 시간이 멈춘 듯한 늙은 여배우랄까. 그렇다고 유럽 도시들처럼 과거로 먹고 산다기에는 또 잿빛의 삭막한 느낌이다. 달리 말해서 도쿄는 현대적이지만 그 안에서 변화와 활력은 느껴지지 않는 도시였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같아라던 버블 시대의 도쿄. IMF가 터졌을 때 조중동에서 한다는 소리가 서민들의 과소비 타령을 했던 것이 기억나는데 과소비는 개뿔, 진짜로 돈지랄한 쪽은 바로 저 동네였다는. 소위 '사토리 세대'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신화시대 얘기일 듯.


지하철 표를 끊으려면 아직도 동전을 써야 하고 노선은 복잡한데다 국철과 사철이 뒤섞인 덕분에 환승이 너무 헤깔렸던 것이나, 로봇 서빙이나 키오스크는 고사하고 카드 결재도 안되어 아직도 현금을 써야 하는 식당들이 태반이더라는 2000년대의 우리를 연상케 하는 특유의 아날로그 지향적인 모습은 둘째치고, 도쿄를 다니는 내내 우리의 서울역이나 광화문처럼 확성기를 들고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목이 터져라 외치는 먹사님도, 태극기와 성조기를 휘두르는 어르신들도, 살벌한 정치 구호가 적힌 현수막도 없었다. 아키하바라에서 메이드 코스프레 옷을 입고 알 수 없는 호객을 하는 아가씨들은 많이 본 듯. 사람들은 바쁘게 다니지만 영화 <매트릭스> 속 사람들처럼 루프를 도는 것마냥 반복되는 일상을 기계적으로 살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요즘 옆동네 섬나라에서 유행한다는 '이세계행 트럭' 이런 밑도 끝도 없는 레파토리가 인기를 끄는 것은 그만큼 삶이 따분하고 재미없다는 얘기. 한때 미국의 아성조차 위협하던 일본이 어쩌다가 이런 꿈도 희망도 없는 나라가 되었는지. 극동의 나우루가 된 듯한.


솔직히 몇년 산 것도 아니고 고작 며칠 보고 온 주제에 다 아는 양 젠체하는 것도 우습지만 따지고 보면 사람 사는 동네가 다 그기서 그기일 것이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상대성 이론을 발견한 아인슈타인의 말마따나 도쿄의 시간이 멈춘 것이 아니라 우리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르기 때문은 아닐까. 오십줄인 내가 어렸을 때를 돌이켜보면 격세지감을 넘어서 아예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느낌이다. 그만큼 급하게 달려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워낙 빨리 바뀌다보니 때로는 따라가는 것조차 힘겹다. 이게 나이를 먹는다는 증거일지도. 이만하면 잠시 한숨 돌린다고 큰 일 날리도 없을 것인데 여전히 부족하다며 더 달려야 한다고 채찍질하는 것이 우리 사회이다. 전 국민이 강박증에 걸린 것처럼 무한 질주의 경쟁이다. 흔히 말하는 '사교육 망국병'이라는 것도 그저 일부 학부모들의 비뚤어진 자식 사랑 탓이 아니라 남들이 죄다 달리는데 내 자식만 달리지 않으면 도태되어 설 자리조차 없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마음에 여유가 없다보니 잠깐을 참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불의를 보면 내 일인양 분노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있으면 내 한 몸을 돌보지 않고 뛰어드는 것도 우리의 또 다른 단면이다. 외국인들이 보면 세상에서 이토록 변화무쌍한 사람들이 다 있나 할지 모르겠다.

평소 <톡파원>이나 <걸어서 세계속으로>같은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여행 덕후라면 꼭 읽어볼만한 책이 나왔더라. 틈새책방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지극히 사적인 영국>이다. 시리즈인 모양인데 영국 말고도 러시아, 일본, 프랑스, 심지어 우리같은 일반인으로서는 평생 인연 없을 동네인 네팔도 있더라는. 저자는 피터 빈트. 생긴 걸 봐서는 백인 아닌 거 같은데(뭔가 피부 하얀 인도인같달지.) 아버지는 영국인, 어머니는 한국인이라고. 직업군인이었던 부친이 한국에 유엔군으로 복무하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주한 영국군은 한국전쟁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주둔하다가 1993년에 모두 철수했다. 영화 <배트맨>에서 집사 양반(마이클 케인)이 주한 영국군 출신. 무려 6.25 때 중공군과 싸웠던 전쟁영웅이기도.


어린 시절 영국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와서 영어 강사를 한다는데 <벌거벗은 세계사>를 비롯하여 여러 방송에도 출연했다고 한다. 언변과 쇼맨십이 있는 모양. 덕분에 "세계사에서 뭔 일이 있으면 그 뒤에는 대충 영국이 있더라"라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담서.


<지극히 사적>이라는 제목따나 이 책은 저자가 지극히 사적으로 얘기하는 영국 이야기이다. 평범한 소시민A인 피터 빈트가 영국에서 살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했던 영국 역사, 문화, 정치, 가치관, 정서, 일상, 부랄 친구넘들 농담 따먹기까지 온갖 시시콜콜한 것을 담고 있다. 한마디로 사람 사는 얘기. 그래서 재미있다.

아마 영국에서만 살았다면 '영국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해보지 않았을 것같다. 나는 영국인보다는 잉글랜드인으로 살아왔고 '영국인'이 무엇인지 굳이 따져볼 일이 없었다. 그런데 한국 뿐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영국이라는 나라를 소개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마다 영국에 대해 떠올리는 이미지가 조금씩 다르고 궁금해하는 지점도 제각각이다. - p.19

영국은 교육에서 전쟁을 비중있게 다루는 반면, 식민지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최근 들어서야 식민지 역사를 다루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생기고 있지만 내가 학교에 다닐 때에는 배우지 않았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세대의 영국인들은 식민지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거의 알지 못한다. 이런 인식 때문에 외국인들은 불편하고 거부담이 들 것이다. - p.47

영국에서는 노동자 계층이라고 해서 자신의 계층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자신이 노동자 계층인 것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겉으로라도 그렇다. 내 힘과 능력으로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딱히 상위 계층으로 올라가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다. 상류층의 품격이나 매너는 관심 밖이다. 노동자 계층은 자신들의 매너를 지키면서 영국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 p.108

어쩌면 영국인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것을 항상 확인하려고 하는 것 같다. 자랑스러운 곳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으면 안심하고 만족한다. 그러고는 끊임없이 그것을 확인한다. 영연방도 그렇고 축구팀도 그렇다. 나름 자랑할 역사이고 남들이 인정해준다. 그래서 더욱 전통과 역사를 지키는 것같다. - p.129

영국에서는 축구를 보면서도 남자답게 봐야 한다. 주변에 애들이 있든 말든 욕을 하고 상스러운 응원가를 부르고 상대 팀을 깔아뭉개야 한다. 같이 욕하고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손가락질을 받는다. 그러다가 밖에 나가면 표지판을 부수거나 물건을 집에 가져오기도 한다. - p.150

영국 남자들은 많은 걸 할 줄 알아야 한다. 마당 위에 차고를 만들거나 마루를 깔거나 페인트 칠은 기본적으로 해야 한다. 하수구를 손보고 전기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이런 걸 할 줄 알아야 진정한 '가장'이라는 느낌이 든다. 내가 못해서 다른 사람을 부르면 또 놀림을 받는다. 내 친구 중 한명은 이런 걸 너무 잘해서 다른 집 아내들이 탐을 낼 정도였다. - p.185

한국에 와서 의아했던 것 중 하나는 비가 조금만 내려도 사람들이 우산을 챙기고 약속이나 행사를 취소한다는 것이었다. 영국에서는 그 정도 비는 우산 없이 그냥 다닌다. 날씨에 대해 가끔 불평은 해도 일상을 바꿀 정도는 아니다. 날씨는 그냥 날씨이다. 비 때문에 약속이 취소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 p.248

한국의 아파트는 창문도 이중 새시로 되어 있어서 손을 댈 수 없다. 너무 독특하게 바꾸면 나중에 집값이 떨어질 수도 있고 돈도 많이 드니 그냥 살아야 한다. 다락방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다. 영국의 주택들은 보통 2층이 있고 지붕밑에는 다락방을 만들어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이런 모든 것을 포기하고 똑같이 생긴 집에서 살아야 한다. - p.289

영국에서는 소재에 제한이 없다. 정치인들은 물론 왕실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장애인들도 유머의 소재가 된다. 모든 것이 풍자와 조롱의 대상이다. 1984년부터 1996년까지 방영되었던 <닮은 꼴>이라는 정치 풍자 인형극이 좋은 예다. 왕실이나 정치인을 본뜬 우스꽝스러운 인형으로 조롱과 풍자, 패러디를 했는데 선이 없는 영국식 유머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 p.343

영국에서 친구를 만나는 일은 즐겁지만 그 시간을 보내는 건 힘든 일이 될 때가 있다. 친한 사이일수록 서로 놀리는 게 만나서 하는 일이다. 서로 칭찬 같은 건 절대로 하지 않는다. 친구끼리는 서로 비하하고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여기에 하나 더 사르카즘이 추가된다. 비꼬고 빈정거리고 풍자하는 것이다. 절대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안 되는 데 웃어서도 안 된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평온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누군가 나를 비하하면 스스로를 더 비하해 준다. - p.347

한국 문화에 빠진 외국인들에 한국은 판타지 같은 나라이다. 외국에서 살고 있는 K-컬처 팬들에게 한국은 완벽한 나라처럼 인식되는 것 같다. 일단 K-컬처는 포장이 완벽하다. 예쁘고 멋있는 모습을 극대화하여 보여준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말도 통하지 않기에 한국은 이국적이면서 환상적인 나라로 비쳐진다. - p.384

바로 옆동네 섬나라 일본을 가리켜 '가깝고도 먼 나라'라면서 본능적으로 바깥세상에 대한 정서적 거리감을 느끼는 우리로서는 지구 반대편 나라인 영국은 그야말로 멀고도 먼 이세계이다. 기껏해야 두 세기 전에 중국을 조졌던 아편전쟁이나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또는 <킹스맨> 정도가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정작 영국인인 저자는 <킹스맨>을 미국넘들이 멋대로 가공한 창작물일 뿐, 진짜 영국이 아니라고 단언하지만 말이다. 역사적으로도 우리가 영국과 접점을 가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구한말에 영국군이 러시아를 견제한다고 거문도를 잠시 점령한 것이나, 한국전쟁 때 영국군이 유엔군의 일원으로 왔던 것 정도일까. 서로 다른 것이야 당연하지만 두 나라를 오가면서 살아본 저자의 얘기를 읽어보니 달라도 정말 많이 다른 것같다.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점에서는 우리가 영국보다 훨씬 편리하겠지만 그 대신 삶의 여유에서는 영국이 좀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서비스료가 워낙 비싼 탓에 차 수리부터 집안에서 어지간한 일은 스스로 고치는 것이 영국 가장의 기본이라고 하니 손재주가 없는 나로서는 영국 가서 살 생각부터 접어야 할 듯하다. 그럴 일도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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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이야 워낙 풍요롭다보니 어릴 때부터 해외 여행은 기본이요, 어학연수, 유학 등으로 외국 물 먹을 기회가 많아지면서 환상이 별로 없겠지만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탈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할 때가 있었다. 워낙 대한민국이 '헬'이다보니 적어도 바깥 세상은 여기보다는 더 나을 거라는 막연한 현실 도피랄까. 요즘 일본 젊은 세대들이 '이세계행 트럭'을 찾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봐야 사람 사는 동네가 죄다 그기서 그기이고 좋은 점이 있으면 불편함도 있기 마련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걸 몰라서 하는 소리도 아닐 것이다. 요근래 와서는 K-컬처 덕분에 도리어 외국인들에게 우리가 그런 동경의 대상이라고 하니 이 또한 격세지감이다.

전 세계에 '달고나'라는 K-푸드를 알리는데 일조한 <오징어 게임> 세계 각지에서 달고나 만든다고 국자 태워먹고 마눌님한테 혼난 아재들 많을 듯.



읽다보니 밀덕으로서 흥미로운 대목이 있더라. 영국 해군과 공군은 '왕립(Royal)'인데 육군은 그냥 육군(British Army)이라고. 육군의 뿌리가 17세기 영국 내전 당시 찰스 1세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 의회파 군대이기 때문. 자기네 손으로 왕 목아지를 잘랐으니 왕의 이름을 들먹일수야. 그럼에도 세계 최초의 기갑연대인 왕립 기갑연대라던가, 왕립 리버풀 연대처럼 '왕립'이 붙었으면 군주가 직접 편성에 관여하거나 충성을 맹세한 부대라는 것. 여태껏 전쟁사를 읽으면서 그냥 그런 갑다 했는데 이런 특수한 역사가 있었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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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다산초당에서 나온 <30개 도시로 읽는 영국사>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영국을 대표하는 주요 도시에 얽힌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서 영국이라는 나라를 알아가는 내용이라면, 이 책은 피터 빈트라는 사람을 통해서 알아가는 셈이다. 남 못지 않은 영국 사랑과 더불어 절반은 한국인이면서 한국에서도 오래 산 사람답게 왕실을 바라보는 영국인들의 시각이라던가 영국 음식도 사실은 맛있다는 둥 영국을 그저 인터넷 잡지식으로만 배우는 우리의 편견을 정면에서 깨뜨리고 영국에 품는 다양한 궁금증에도 대답한다. 물론 그가 영국인 전체를 대표할 수야 없겠지만 어쨌든 그것도 영국임에는 틀림없다. 오히려 같은 소시민으로서 훨씬 정답게 와닿는 느낌이다. 그러고보면 <지극히 사적인 한국>도 나올만하다. 물론 우리가 아니라 한국에 관심있는 외국인들을 상대로 말이다. K-컬처로는 알 수 없는 대한민국의 또 다른 단면을 보여줄 기회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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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에 담긴 문화사, 끽다점에서 카페까지 - 이길상 교수가 내려주는 커피 이야기
이길상 지음 / 싱긋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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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커피가 좋다. 흔히 인간의 3대 욕구를 식욕, 성욕, 수면욕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하나를 더하라고 한다면 틀림없이 커피욕이다. 매일 1리터 두 병을 갖다놓고 물처럼 마시는 중. 그렇다고 직접 커피 갈고 로스팅해서 맛과 향을 음미하는 커피 덕후는 아니지만 어쨌든 커피 없이는 못 버티는 몸이 되었다. 조선 시대 틈만 나면 장죽대 물고 있던 우리 조상님들은 담배를 가리켜 '식후 제일미(食後第一味)'라고 했다던가. 담배 안 피는 나로서는 그딴 풀 태운 연기를 들이마시는 것보다 더운 여름에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잔이야말로 나른한 오후를 맨정신으로 버티게 하는 진정한 식후제일미요, 현대인들을 위해 신이 내린 선물이다. 이 천상의 음료를 맛보지 못하던 시절의 인류는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살았을까 싶다.


심지어 이런 생각도 든다. 그 옛날 마리 앙투아네트는 "커피 없으면 콜라를 먹으면 되지"라고 했다가 혁명으로 목이 몸과 분리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한 이유는 커피 대신 치커리 따위나 우려먹었기에 사기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고 동독 사람들은 커피도 마음껏 마시지 못하는 이 따위 체제 타도하자면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이라고. 미국 독립전쟁의 서막이었던 보스턴 차 사건도 사실은 차가 아니라 커피였을지도. 어디 차 따위를 피같은 커피에.

커피는 사실 과일이람서.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는 과일이요, 땅에서 나면 야채라던가. 흔히 커피콩이라지만 콩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브라질 커피이니 자바 커피이니 세상에는 다양한 커피가 있지만 원래 커피의 발원지는 에티오피아라고 한다. 그런데 저 뻘건 열매를 볶고 물에 끓여서 우려먹는다는 발상을 어떻게 했을까. 에티오피아에서 전해 내려오는 도시 전설에 따르면 옛날 옛적 칼디라는 이름의 한 목동이 염소를 풀어놓았는데 염소 한마리가 정체불명의 붉은 열매를 먹더니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 밤에 잠도 안 자길래 자기도 시험삼아 먹어보니 온 몸에 에너지가 넘치더라, 그때부터 사람들이 커피의 효능을 알게 되었다는 것. 카페인은 어쨌든 생으로 먹을 만한 맛은 아닐 것인데 말이다. 칼디가 실존인물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되었건 그것을 맛볼 생각을 했던 놈이 있었을 것은 분명하다. 인간의 호기심은 실로 놀랍다. 하긴 복어를 요리하겠다고 덤빈 것에 비하기야 하겠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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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중동을 거쳐서 유럽으로 전파되고 '악마의 열매'라는 둥 온갖 음해와 모함에도 불구하고 대항해 시대를 통해서 신대륙과 전세계로 퍼져나갔으며 19세기 지식인들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혁명을 논했다고. 그리고 그 마수는 어느듯 은둔의 나라 조선에까지 닿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 현대인들에게 커피는 한낱 기호품이 아니라 생활 필수품이자 커피 덕분에 하루가 길어지고 수많은 혁신이 탄생할 수 있었으니 인류 문명에 엄청난 족적을 남긴 셈. 커피가 없었으면 어쩔 뻔. 특히 나부터. 그렇다고 사탕수수처럼 한때 귀하신 몸에서 이제와서 비만의 적으로 취급받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인간의 행복을 위해 진화하신 기특한 존재인듯.

오늘도 커피 없이 못 버티는 커피당이라면 주목할 책이 나왔다. 커피가 처음 조선 땅을 밟았던 구한말부터 치킨집보다도 더 많은 커피숍이 동네 구석구석마다 차지한 채 식후의 우리 직장인들을 유혹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커피 100년사이다. 굵직굵직한 정치사부터 소시민들의 애환에 이르기까지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자인 이길상 교수는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 대학원 교수이면서 커피 작가이자 <커피 히스토리>라는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라고 한다. 실로 커피에 죽고 못 사는 이땅의 진정한 커피 덕후인 듯.

일명 대한민국 커피 인문학자라는 저자. 커피와는 별개로 한국학 교수로서 외국에서 잘못된 우리 역사를 바로잡는 일에 앞장서기도.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커피가 처음 소개된 것은 구한말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가 절정이던 1852년, 윤종의라는 사람이 쓴 <벽위신편>이라고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책의 목적은 정약용처럼 신문물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위정척사와 서양 세력을 배척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물며 그 시절 뇌 굳은 사대부가 직접 커피를 어디서 구해다가 맛 봤을 리도 없고 중국쪽 책 어느 대목에서 "양놈들은 커피라는 것을 마신다카더라."라는 것. 어쨌든 변방의 조선 땅에서 처음으로 커피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우리나라에 커피라는 음료가 처음 기록된 시기는 1852년으로 인문지리서 <벽위신편>에 언급되어 있다. <벽위신편>은 1848년 윤종의가 서양의 위력과 종교로부터 조선을 지키기 위한 방책 제시 목적으로 쓴 책으로 4년 뒤 중국의 <해국도지>와 <영환지략>을 참고하여 개정하면서 커피를 소개했다. 이들 책에 "필리핀에서는 커피라고 하는 편두(까치콩)과 비슷하고 청흑색인 열매를 볶아 끓여 마시는데 맛은 쓰고 향은 차와 비슷하다"라고 기술된 커피 생두의 모양과 만드는 법, 맛에 대한 내용을 <벽위신편>에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다. - p.16

그리고 국내에 밀입국한 프랑스 선교사였던 시메옹 프랑수아 베르뇌(Simeon Francois Berneux) 신부가 선교를 하면서 조선인 신도들에게 커피를 맛보게 하면서 이 땅도 커피에 물들게 되었다. 한 마디로 커피로 사람을 낚은 셈. 실제로 베르뇌는 대량의 커피를 끊임없이 주문했을 만큼 효과 작렬이었다고. 군대 시절 초코파이 하나에 주말을 헌납했던 나같은 나이롱 신도들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지. 하지만 뽀록나는 바람에 박해가 시작되었고 결국 병인양요로 이어졌다. 흥선대원군부터 커피의 마수에 빠뜨렸어야. 정작 아들인 고종은 둘도 없는 커피 애호가가 되었지만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고집쟁이 아버지를 향한 반항심의 발호였는지도.

조선인 소년이 미군 장교가 되어 금의환향한다는 판타지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에서 커피를 즐기는 고종. 겉은 개화되었으나 알맹이가 그대로다보니. 이 양반도 따지고 보면 불같은 아버지와 드센 마눌님 사이에 끼어서 눈치 보느라 어지간히 마음 고생했을 듯.


하지만 중세 시절 커피를 이교도의 음료라면서 교황이 직접 커피 나무 화형식까지 했던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커피는 온갖 박해와 수난을 당해야 했다. 그것도 불과 십수년 전까지 말이다. 가난한 나라에서 외화 한푼이 아쉬운 판국에 주식도 아닌 커피를 수입한답시고 막대한 돈을 허비한다는 이유였다. 커피는 사치와 낭비의 대명사였고 퇴폐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러고보면 내가 학창 시절에만 해도 동네 다방에는 레지라고 불리는 짧은 핫팬츠 입은 언니야들이 점심 때만 되면 스쿠터타고 커피 심부름을 했었던. 물론 요즘은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어차피 수요가 있으니 공급도 있는 것인데. 1997년 IMF가 터지자 애꿎은 커피가 외화낭비의 주범인양 여론의 몰매를 맞고 관공서에서는 커피 안마시기 운동이 벌어졌다고. 전문 커피숍인 스타벅스가 처음 생겨나자 점심값보다 비싼 커피를 마신다고 모 신문에서 질타하던 언제인가 싶다. 지금 생각하면 실소 나올 일이지만 그때는 그랬다. 이 책은 이런 얘기를 담고 있다. 시시콜콜한 것까지 어떻게 찾아냈나 싶을 정도.

고종은 우리나라에서 커피를 마신 첫번째 임금일 뿐만 아니라 커피를 꽤 즐겼던 인물이었다. 그에게 커피의 즐거움을 알려진 이는 아마도 초기의 의료 선교사, 서양 외교관, 마리 앙투아네트 손타크나 파울 묄렌도르프같은 서울 거주 외국인이었다. 고종은 식사 후에 커피를 마시는 것이 일상일 정도로 커피를 늘 가까이 했다. 힘든 시기를 살아야 했던 고종에게 커피는 위로의 음료였다. - p.38

일본식 카페 문화 유입으로 조선 카페에 등장한 흥미로운 서비스 중 하나는 광학적으로 성적 도발을 유도하는 것, 당시 용어로 '광학 서비스'였다. 홍등과 청등, 즉 현란한 불빛으로 성적 흥분을 일으키는 서비스였다. 실내조명을 가능한 어둡게 하여 여급과 고객을 편리하게 해 주는 서비스였다. 단속 대상이었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1931년 10월 17일 <매일신보>에 따르면 본정 경찰서는 연락정에 있는 카페 '미쓰와'에서의 흐릇하고 컴컴한 광선 사용을 문제 삼아 주인을 호출한 후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 - p.112

1947년 2월 26일 <조선일보>는 "전 이왕가의 최근 소식, 동경서 다방 경영"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마이니치 신문> 보도를 인용한 이 기사에 따르면 이왕가 일족은 도쿄 시부야에 카페를 차렸다. 종래의 생명선이던 일본 국고의 보조금이 끊기자 선택한 길은 커피를 파는 일이었다. 상궁과 나인이 웨이트리스가 되었다. 먹고 살기 어려울 때 카페를 차리는 일, 그때나 지금이나, 왕후장성이나 서인이나 차이가 없음을 실감케 했다. 스스로 막지 못한 불행한 국망, 스스로 이루지 못한 불완전한 광복이 초래한 아픔이었다. - p.192

5.16군사 정변이 일어난지 2주일 후인 5월 29일 아침을 기해 다방에서 커피가 일제히 자취를 감추었다. 다방업자들이 자진하여 커피 판매를 중단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쿠데타 세력이 취한 강제 조치였다. 강제 조치가 아니었음을 강변했지만 믿는 사람은 없었다. 치안 국장은 "어제 28일 다방업자들을 불러서 막대한 외화를 소비하는 커피를 되도록 팔지 말고 생강차나 기타를 대용하여 팔도록 함이 어떻겠는가라고 권장했다."라고 발표했다. 강제로 커피를 팔지 말라는 말이 아니었음을 거듭 강조했다. - p.243

검찰에 따르면 장안다방 박군은 커피 1파운드에 보통 100잔 정도 나오는 양을 담배 가루와 소금을 넣어 250잔 내지 300잔을 만들어 하루 600여잔 씩, 유리다방 김씨는 하루 700여잔씩 팔아왔다는 것이다. 커피 가루 4파운드를 사면 2파운드에 담배 가루를 섞어 4파운드 분량의 커피를 만들고 나머지 커피 가루를 빼돌리는 수법을 쓴 것이다. 이들은 손님들이 피다 버린 담배꽁초를 연탄 화덕에 올려 말린 후 가루로 만들어 커피에 섞는 수법을 썼다. 니코틴 맛이 느끼지지 않도록 달걀 껍데기와 소금을 함께 타기도 했고 손님들이 맛에 둔감한 시각인 오후 늦은 시간에만 꽁초커피를 내놓은 주도면밀함도 보여주었다. - p.325

1980년대 중반에 퍼지기 시작한 가라오케 문화나 노래방 문화는 다방의 입지를 더욱 좁혔다. 식사 모임 후 가는 장소로 다방보다는 노래방이 선호되었다. 새로 등장한 아파트의 신식 주방시설 덕분에 집에서 손쉽게 커피를 끓여 마실 수 있게 된 것도 다방 증가 둔화의 한 요인이었다. 다방은 설 자리를 급속도로 잃어가고 있었다. 커피 암흑기 후반기에 닥친 다방의 침체였다. - p.358

우리나라에서는 1979년에 문을 연 롯데리아가 체인점 문화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1980년대에는 서울 올림픽을 전후하여 버거킹, 맥도널드, KFC 등이 잇따라 등장했다. 커피전문점으로는 1979년 대학로에서 처음 문을 연 후 점차 매장을 늘려 한 때 전국적으로 60여개의 매장을 거느렸던 '난다랑'이 효시였다. 대학로의 1호 매장은 1986년에 '밀다원'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이렇게 시작된 커피 체인점 문화는 급속히 성장하여 1993년 신문 광고를 점령하다시피 했다. - p.404

외환 위기는 커피 대신 국산 차 마시기 운동을 소환했다. 늘 그랬듯 절약이 필요한 시대에 커피는 모두의 공적이었다. 커피는 광고로 시대에 어필하려고 노력했다. 맥스웰하우스는 캔커피 광고에서 취업 준비생의 면접 장면을 다루었다. 면접에서 당황하여 실수한 취업 준비생을 보여준 후 "나를 알아주는 커피, 맥스웰 캔커피"라는 메세지를 전달했다. - p.432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평생을 살면서 평균 62년 정도 커피를 마신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균 2만5110잔의 커피를 마시고 9만145달러(1억2500만원)을 지출하는 셈이다.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것이 커피 소비액이고 결코 함부로 마셔서는 안 되는 것이 커피임을 말해준다. - p.446

450여 페이지에는 베르뇌 신부가 처음으로 커피를 가져오고 아관파천한 고종이 커피를 입에 대면서 커피 문화가 본격화된 지 약 한 세기 반의 시간 동안 커피로 보는 우리네 역사를 담고 있다. 그러고보면 커피가 이땅에 정착하기에는 수많은 시련과 고난이 있었다는 점에서 여기까지 잘도 살아남았다 싶을 정도. 세상이 어려울 때마다 높으신 분들은 커피 탓으로 돌리면서 우리 소시민들의 입에서 빼앗으려고 갖은 애를 썼으니 말이다. 하긴 커피만의 얘기일까. 오히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 아니던가. 탄압에 맞선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마음껏 커피를 마시며 바쁜 일상 속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하지만 그 여유가 영원하지는 않을 듯 하다. 지구 온난화로 가뭄과 폭염, 병충해가 만연하면서 커피 수확량이 나날이 줄어들기 때문. 실제로 원두 가격의 폭등으로 당장 울 사무실 근처의 커피값도 300원이나 올랐더라. 더는 값싼 아메리카를 즐기지 못할지도. 특히 트황제 몽니 덕분에 엄청난 관세로 미국인들은 모닝 커피 한잔 마시지 못하게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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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문득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했다. 커피의 우리식 명칭으로 흔히 알려져 있는 "양탕국"이 사실은 아무런 근거없는 얘기란다. 양탕국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해방 이후인 1968년 12월 26일 조선일보의 한 칼럼인데 그게 와전되어 마치 구한말부터 사용된 것마냥 여기저기서 언급되었다는 것. 주변 사람들과 커피를 마실 때마다 아는 척하면서 양탕국 타령을 했는데 앞으로는 못 써먹을 것같다.

TV 교양 프로그램에도 버젓이 등장하는 '양탕국'. 누가 보면 그 옛날 우리 조상님들이 여기에 밥 말아서 드신 줄 알 듯.

10월 1일이 한국커피협회에서 정한 커피의 날이라고 한다. 국군의 날과 겹치기에 아는 사람만 아는 날. 커피라는 주제로 이렇게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를 쓸 수 있나 싶다. 커피당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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