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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 - 맥주를 보다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방법
음미하다 지음 / 북폴리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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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뿐만 아니라 꿀벌도 술을 먹는다.

술을 마시고 사고를 친 꿀벌은 벌을 받기도 한다.

수컷 초파리는 연애에 실패하면 더 많은 술을 먹는다.

술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꿀벌은 일만 하지 않아. 술도 마셔. 초파리도 술마셔"

-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 중에서

평소 술을 거의 즐기지 않는 나도 치맥의 유혹만큼은 거부하기 쉽지 않다. 불금이나 토요일 저녁, 집사람과 같이 치킨을 안주 삼아 캔맥주 하나씩 따서 마시면서 영화 한편 감상하는 것. 이보다 안락할 때가 어디 있을까. 때로는 더운 여름밤 집앞 호프집에서 500cc 크림 생맥주를 시켜서 마실 때 그 톡 쏘면서 시원한 맛이란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다. 굳이 주당이 아니라도 한국의 직장인이라면 이 유혹을 이길 자가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 생각해 보면 여지껏 맥주를 마시면서 이것이 무슨 종류의 맥주인가 따져본 적은 없는 것같다. 하긴 종류는 고사하고 카스인지 OB인지 어디 메이커인지도 따지지 않으니 말이다. 나의 둔감한 혀로는 맥주면 맥주이지 죄다 그기서 그기인 느낌이다. 애초에 치맥의 주인공은 맥주가 아니라 치느님이 아니던가. 우리는 치느님을 먹기 위해 맥주를 마실 뿐, 맥주를 마시기 위해 치느님을 먹는 것이 아니다. 맥주는 어디까지나 치느님을 먹는 과정에서 잠시 목이 마를 때 입가심을 위한 콜라 대용일 뿐이다. 그래서 치맥이다. 맥치가 아니라.

알콜 소비량에서는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우리 사회이지만, 그렇다고 딱히 다양한 술을 즐길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맥주는 그냥 맥주이다. 소주는 소주이고 막걸리는 막걸리이다. 어느 지역, 어느 회사에 제조했다는 것은 있어도 어차피 알콜 도수도 정해져 있고 가격은 물론이고 맛과 향 또한 대동소이하다. 획일화된 규격품이나 다름없다. 고기집이나 호프집에서 맥주를 시킬 때 메뉴판에는 오직 "맥주" 두 글자가 있을 뿐이다. 용량의 구분은 있어도 무슨 맥주냐는 구분은 없다. 고민의 여지조차 없이 "생맥주 주세요" 한마디면 끝이다. 참 쉽다.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면서도 막상 술의 종류가 몇 가지 없다는 것은 술맛을 따지지 않는다는 얘기일 것이다. 우리는 술 맛 그 자체보다는 그저 술에 취하기 위해서, 또는 안주빨을 세우려고 술을 마시는 것은 아닌가 싶다. 우리네 세상에 주당은 많다지만 술 맛을 알지 못한다면 진정한 주당이라고 할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서양 술을 보면 정말 다양하다. 와인만 보더라도 그 종류가 얼마나 하늘의 별만큼 다양하며 맛과 향이 천차만별인가. 이 양반들은 진정한 술맛을, 그리고 인생을 즐길 줄 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서 외국의 수입 맥주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맥주 그 자체의 맛을 취미처럼 즐기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모양이다. 이른바 맥주 덕후, 즉 '맥덕'시대의 개막이다.

북플리오 출판사에서 평소 맥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눈길을 끌만한 재미있는 책이 나왔다.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라는 책이다. 저자는 '음미하다'라는 필명을 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작가인데 일러스트를 보면 아마도 젊은 여성으로 추측된다. 어쨌든 분명한 점은 "취미가 맥주"라는 오리지날 맥덕이라는 사실이다.

"사람 뿐 아니라 꿀벌도 꿀 술을 먹는다. 술을 마시고 사고를 친 꿀벌은 벌을 받기도 한다. 수컷 초파리는 연애에 실패하면 더 많은 술을 먹는다. 술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초파리도, 새도, 박쥐도, 원숭이도, 자연이 만들어낸 술을 먹는다."

"닉네임 : 효모, 성별 : 없음, 종교 : 닌카시, 바커스, 직업 : 맥주랑 빵만들기, 좋아하는 것 : 무조건 달달한 것, 희망사항 : 가끔 나는 야생의 사바나 초원을 달리는 자유를 꿈꾼다. - 호모 프로필 중에서."

"효모가 살아있던 과거의 맥주는 햇살을 듬뿍 받은 보리 본연의 영양 성분과 효모가 만들언내 비타민, 단백질이 가득한 든든한 한 끼 식사이자 음료였다. 맑고 깨끗한 맥주라고 해서 우리 맥주가 고대 이집트인들의 그것보다 더 나을까? 더 자연스러울까?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깨끗하게 말린 맥주잔에 6℃의 밀맥주를 45도 기울여 따라 주다가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은 병을 돌리면서 따른다. 이제 숨은 효모까지 남김 없이 마시자. - 밀맥주 맛있게 따르는 법. 진짜 맛있다~~!"

"1934년 제1차 세계대전의 상처를 딛고 베스트말레에서 만들어진 맥주가 바로 황금빛 트리플이다. 필스너와 같은 고운 빛깔에 벨기에 맥주만의 짙은 과일 향이 일품이었던 이 맥주는 곧 수도원 맥주의 대명서가 되었다. 식사와 함께 마시는 가벼운 맥주인 테이블 비어보다 대략 3배는 도수가 강하다는 의미로 트리플이라고 불렸지만 1956년부터는 공식적으로 트리펠이라고 부른다."

"피아노처럼 반짝이는 짙은 어둠이 깔린 거리를 걸어 미켈러 바로 향한다. 재즈 센터에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 거리에 있는 이곳은 평일은 12시, 주말은 새벽 두 시까지 크래프트 맥주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비어가는 맥주잔과 함께 샌프란시스코의 하루가 저문다."

책의 부제로 붙어 있는 "맥주를 보다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말마따나 이 책에서는 맥주와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와 온갖 유익한 정보를 저자 특유의 유머러스와 함께 섞어서 풀어나간다. 맥주 특유의 허연 거품과 톡 쏘는 탄산가스가 사실은 효모가 맥아즙의 당을 소화하면서 뿜어낸 방귀라는 사실. "소리는 커도 냄새가 난다해도 너희가 좋아하는 술냄새인거?"

황금빛 연금술사 효모의 정체, 맥주가 영양가 넘치는 음식에서 술이 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역사, 에일과 라거의 차이부터 대표적인 맥주들, 각각의 맥주와 찰떡 궁합인 안주 고르는 법, 나에게 꼭 맞는 맥주를 찾기 위한 관상 보는 법, 맥주를 가장 맛있게 음미하는 요령, 영국 맥주와 벨기에 맥주, 미국 맥주, 독일 맥주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등 유머러스하면서도 알딸딸한 맥주 이야기가 듬뿍 담겨 있다. 컬러풀한 사진과 글을 한장한장 넘기면서 읽다보면 절로 시원한 맥주 한잔이 떠오른다. 그것도 그저 "여기 생맥주 한잔요!"가 아니라 달콤하면서 과일향이 느껴진다는 "파울라너 에딩거 헤페바이젠 한잔요!"라고 외치고 싶다.

이 책을 읽노라니 나도 치맥 덕후를 넘어서 진짜 맥덕이 되고 싶어진다. "맛있는 맥주에는 절로 나오는 추임새 캬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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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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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 네트가 사랑했던 꽃은 장미가 아니라 감자꽃이었다?"

우리 전통 음식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김치이다. 온갖 양념과 함께 고추장으로 시뻘겋게 갓 담근 햇김치 하나만 있어도 다른 반찬이 필요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다 아는 새삼스러운 얘기이지만 붉은 김치가 우리 식단에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고추는 토종 작물이 아니라 외래종이다. 고추가 우리나라에 처음 유입된 것은 학자들마다 약간의 이견은 있지만 대략 임진왜란 전후로, 일본을 통해 전달되었다. 하지만 고추의 매운 맛에 더 익숙해진 쪽은 일본인보다 우리가 아닐까 싶다. 일식에서 고추냉이를 제외하고 딱히 고추가 들어가는 음식을 찾기 어려운 반면, 고추가 들어가지 않는 한식은 상상할 수 없으니 말이다.

고추의 원산지는 멕시코이다. 그곳에서 처음 고추를 발견한 사람이 바로 우리도 잘 아는 스페인의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였다. 인도의 향신료를 찾겠다고 떠난 콜럼버스가 신대륙에서 발견한 것은 고추였고 그는 엉뚱하게도 고추를 후추라고 우기면서 '붉은 후추(red pepper)'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콜럼버스가 발견한 신대륙의 고추가 돌고 돌아서 한 세기만에 지구 정반대편의 존재감 없는 나라 조선에까지 전해진 셈이다. 그가 신대륙에 가지 않았거나 고추에 관심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우리의 먹음직스런 붉은 김치도 없지 않았을까. "브라질의 나비가 날개짓을 하면 텍사스에서는 허리케인이 일어난다."라는 이른바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는데 콜럼버스와 김치의 관계 또한 역사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나비효과의 사례라고 하겠다.

16세기 유럽에서는 이른바 '대항해 시대'가 열렸다. 이것은 인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역사적 특이점 중 하나이자 근세 시대의 시작이었다. 또한 그 전까지 인류 문명에서 변방 취급을 받았던 유럽이 처음으로 아시아를 능가하여 나중에는 세계의 대부분을 지배하게 되었다. 바꾸어 말해서 어째서 유럽인이 아니라 비 유럽인들, 아시아인들이나 다른 대륙 사람들은 대항해에 나서지 않았던가. 왜 하필이면 유럽인들이 대항해 시대의 주인공이 되었던가. 이들이 거친 파도를 뚫고 온갖 위험을 무릅쓰면서 머나먼 바다로 나아가게 된 가장 큰 동기는 향신료(spice)였다. 후추, 육두구, 정향, 계피 등 유럽인들은 이것을 손에 넣으려고 목숨을 걸었다. 후추의 가격은 한 때 금과 맞먹을 정도였다.

                                

수많은 바다 사나이들이 세계의 보물 "원피스" 아니 "육두구"를 찾아서 떠나는 대항해 시대.

아니, 다른 것도 아니고 고작 조미료 따위에 그 정도의 가치를 매긴다는 말인가 싶지만 먹거리가 다른 탓도 있다. 아시아인들은 쌀을 주식으로 한다. 쌀은 탄수화물 외에도 단백질과 지방이 함유되어 있어 별다른 부식 없이도 그럭저럭 영양분을 확보할 수 있다. 불교에서 육식을 금할 수 있는 것도 이 덕분이다. 반면, 밀은 아미노산이 부족하기에 단백질을 섭취하려면 반드시 고기를 먹어야 한다. 하지만 고기는 상하기 쉽상이고 그 전까지 유럽인들은 기껏해야 거친 소금으로 짠 맛나는 간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무슨 맛이 있겠는가. 아시아에서 향신료가 들어오자 한번 여기에 중독된 유럽인들은 전쟁도 불사할 정도였다. 향신료가 듬뿍 섞인 고기를 먹는 것이 곧 지위와 권력을 상징했다. 만약 아시아인들이 밀을 먹고 유럽인들이 쌀을 먹었다면 대항해 시대는 아시아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영국과 네덜란드는 향신료의 천국인 동남아에서 더 많은 향신료를 차지하기 위해 동인도 회사를 설립했고 훗날 식민지 건설의 첨병이 된다. 향신료 경쟁은 그야말로 살벌했고 여기에 끼지 못한 사람들은 보다 저렴하면서 대체 가능한 다른 향신료를 찾아 나서기도 했다. 그 와중에 발견한 새로운 먹거리가 옥수수와 감자였다. 밀과 쌀에 비해서 훨씬 강인한 생명력과 수확 능력을 가진 두 먹거리는 기근 해결에 크게 일조했다. 하지만 설탕의 재료인 사탕수수는 아프리카인들에게는 재앙이 다름없는 노예 무역 시대를 열었다. 사탕수수 재배는 다른 작물과 달리 가축의 힘을 빌릴 수 없고 사람 손이 엄청나게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유럽인들의 향신료 경쟁이 만든 세상인 셈이다.

사람과 나무사이 출판사의 신작 도서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은 현대 인류 사회를 이룩하는데 일조했던 13가지 식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인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일본의 권위 있는 식물학자이자 시즈오카 대학 교수이며 자신의 전공인 식물을 통해서 본 역사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쓰는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이 양반의 저서 중 하나인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글항아리>도 꽤나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베르사유의 장미는 프랑스 혁명을 그린 만화이다. 이 만화는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를 궁전에 핀 고고한 장미 한 송이에 비유했다. 하지만 왕비가 실제로 사랑한 꽃은 만화 제목에 있는 장미가 아니었다. 흥미롭게도 그녀가 사랑한 꽃은 감자꽃이었다. 고귀한 왕비 신분인 마리 앙투아네트는 왜 장비나 백합같은 화려한 꽃이 아니라 감자꽃을 사랑했을까?" - p.26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재배하는 식물 1위는 옥수수이다. 그 다음으로 생산량이 많은 곡물이 밀이고 3위가 벼이다. 그 다음 4위는 감자, 5위는 대두이다. 토마토는 이 세계 5대 주요 작물 바로 뒤인 여섯번째로 생산량이 많은 작물이다." - p.68

"사치스러운 식생활을 즐긴 귀족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신선한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귀족이나 상류층에서 후추의 인기가 치솟은 것은 실용적인 목적보다 자신의 높은 지위와 부를 과시하기 위한 상정성이 컸다. 이것은 설탕이 귀하던 시절 사람들이 설탕을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여겼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 p.90

"고추는 유럽인들에게는 외면당했지만 장기간 항해해야 하는 뱃사람들에게는 매우 유용했다. 당시 뱃사람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한 것은 괴혈병이었다. 비타민C를 다량 함유한 고추는 괴혈병 예방과 치료에 특효가 있었다. 뱃사람들은 항해를 떠날 때 소중한 식량이자 의약품으로 고추를 챙겼다." - p.105

"논 시스템과 벼라는 작물은 적은 농지로 많은 사람이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예를 들어서 16세기 섬나라 일본은 같은 섬나라인 영국과 비교해서 6배 많은 인구를 부양했다. 유럽에서는 3년에 한 번 밀을 재배할 수 있었지만 아시아에서는 1년 동안 쌀과 밀을 모두 수확할 수 있었다." - p.240

이 책에서는 도합 13가지의 식물이 나온다. 저자가 붙인 별명도 거창하다.

1. 초강대국 미국을 세운 악마의 식물 감자

2. 인류의 식탁을 바꾼 붉은 열매 토마토

3. 다항해시대를 연 검은 욕망 후추

4. 콜럼버스의 고뇌와 아시아의 열광 고추

5. 거대한 피라미드를 떠받힌 약효 양파

6. 세계사를 바꾼 두 전쟁의 촉매 차

7. 인류의 재앙 노예무역을 불러온 사탕수수

8. 산업혁명을 일으킨 목화

9. 한 톨의 씨앗이 문명을 탄생시킨 밀

10. 고대 국가의 탄생 기반이 된 벼

11. 대공황의 위기를 극복한 콩

12.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작물 옥수수

13. 인류 최초 거품 경제를 불러온 욕망의 알뿌리 튤립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친숙하면서도 이들이 인류 역사에 남긴 발자취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심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이다. 어쩌면 위의 13가지 식물 중에서 하나라도 없었다면 우리 세상은 어떻게 달라졌을지 누가 알겠는가. 대항해 시대를 연 후추는 말할 것도 없지만, 가령 우리가 주식으로 쓰는 쌀이 없었다면 아시아 문명은 탄생할 수 있었을까. 감자와 옥수수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인류가 70억에 달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산업혁명은 영국 면직물 산업에서 비롯되었고 따라서 면직물의 원료인 목화가 없었다면 산업혁명도 없었으리라. 하물며 고추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김치는 상상할 수 없다. 물론 백김치, 물김치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별로다. "너희들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트라도 뽕뽕 날려주고 싶다.

고추는 일본이 우리에게 전해 주었는데 왜 정작 일본인들은 고추를 즐기지 않을까. 반대로 우리는 고추 없이는 살 수 없을까. 고추가루를 넣어서 부글부글 끓인 매운탕은 상상만 해도 군침이 흐른다. 고추장을 바른 불고기를 밥과 함께 쌈에 싸서 입에 넣고 풋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이보다 맛있는 별미가 없다. 저자는 종교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일본은 불교의 영향으로 육식을 즐기지 않는 반면, 고려 시대 이후 우리는 불교의 영향이 약화되면서 다시 육식을 즐기게 되었기 때문이란다. 육식에는 향신료가 빠질 수 없다.

이 책에서 나오는 13가지 식물의 역사 이야기는 다채로우면서 흥미진진하다. 우리 주변에 있는 식물들에게 알고 보니 이런 역사가 담겨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내용이 풍부하다. 또한 누구나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아직 여름 휴가를 가지 않은 분, 갈 곳이 마땅찮은 '동남아(동네에 남아 있는 아저씨)'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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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의 책 생각
Team BLACK 지음 / 책과강연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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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서 고민하기만 하기보다 뭐라도 쓴다.
그러다보면 결국 생각이 보인다. 게으르지 않아서 다행이다.
주변에서 생각의 원천을 묻는다. 그런게 있을 리가 있나.
생각날 때까지 생각하는 게 비법이라면 비법이다.
아무나 할 수 있다. 벽에 부딪치는 것만 겁내지 않는다면.  

  - 「기획자의 책 생각」  중에서

인터넷과 SNS이 우리 주변의 수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지만 글쓰기도 그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예전에는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작가가 된다는 것은 꽤 장벽이 높은 일이었다. 그 시절에는 내가 쓰고 싶다고 쓰는 것이 아니라 직업으로서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우리 여건 상 작가가 될 수 있는 등용문 자체가 아주 좁았기 때문이다. 지금 40대, 50대이면서 로맨틱한 사람이라면 학창 시절 방송국에 자기 사연을 보낸 뒤 라디오 앞에 앉아서 진행자가 내 글을 읽어주기를 학수고대하추억을 가진 사람도 있으리라. 몇 줄에 불과한 글이나마 사람들에게 읽혀질 수 있는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았다.

요즘은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이다. 글을 쓰고 싶고 작가가 되기를 원한다면 굳이 어딘가의 공모전에 출품하지 않아도 SNS를 이용하여 내가 좋아하고 관심있는 이야기를 얼마든지 풀어내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 무엇을 어떻게 쓸지는 내 마음 먹기 나름이다. 내 주변에 일어난 일상 이야기, 시나 소설 또는 만화, 영화, 게임, 여행같은 취미에 대한 글을 쓸 수도 있다. SNS 상에서는 학위 하나 없는 일반인이면서도 어지간한 전문가 뺨치는 글을 쓰는 사람도 많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어떠한 구속이나 구애를 받지 않고 자유로이 내 마음이 가고자 하는 대로 글을 쓸 수 있는 곳이 SNS이다.

그렇다고 해서 글쓰기가 결코 만만한 작업은 아니다. 어떤 글이건 제대로 쓰려면 그만한 시간과 공력을 투자해야 하는 법이다. 관련 자료도 모으고 발품도 팔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찾아보아야 한다. 대충 쓴 글은 우선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몇 번이나 고쳐 쓴 끝에 비로소 남들 앞에 내놓게 되지만 그래도 다시 보면 뭔가 이상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 반드시 있다. 이리 고치고 저리 손 댄다. 여전히 부족하기 짝이 없지만 그렇게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누군가의 공감을 얻는 것은 꽤 즐겁고 뿌듯한 일이다. 일단 쓰기 시작하면 어지간히 중독성이 있는 것이 글쓰기이다. 누가 말했던가. 한번도 하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해 본 사람은 없다고. 글쓰기 또한 그렇잖은가.

SNS에 연재했던 글이 사람들의 주목을 끌게 되면 출판할 기회도 생긴다. 더 이상 책은 교수나 프로 작가들같은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초등학생 소설가, 배낭 하나 매고 여기 저기를 여행하는 대학생, 집에서 아이를 키우며 육아 일상을 블로그에 올리는 전업 주부, 고양이를 키우는 20대 직장 여성. 누구나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글로 쓰고 책으로 만들어서 남들과 공유할 수 있다. 글 대신 만화나 일러스트를 그려서 웹툰으로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비록 무명 작가의 작품이지만 프로 못지 않은 수준에 내용도 꽤 재미있다. 요즘은 이외수 같은 원로 작가들 또한 원고지 대신 SNS에 올린 글을 책으로 내기도 한다. 요즘은 글쓰기도 탈권위의 시대이다보니 사람들은 딱딱하고 어려운 전문서보다 쉽고 부담없는 책을 찾는 분위기이다.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책보다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책이어야 한다.

한편으로, 일반인도 쉽게 작가가 될 수 있다보니 여기에 편승하여 허황된 소리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돈벌이를 하려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띈다. 책쓰기가 인생 역전의 기회라는 둥, 누구는 책 쓰기로 수 억 짜리 스포츠카를 끌고 다니더라는 둥. 소위 "책 코칭"이라 하여 자기에게 책 쓰기 수업을 받으면 당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남의 밥벌이를 함부로 폄하할 수야 없지만 실제로 책을 써보거나 출판계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실로 불편하기 짝이 없는 소리이다. 그런 양반들이 과연 본인들은 책을 팔아서 번 돈이 더 많을까, 멋 모르는 사람들에게 대박 꿈을 주고 끌어모아서 수업료랍시고 받은 돈이 더 많을까 궁금하다. 책을 몇 십권을 냈다는 둥, 두달 세달만에도 책을 썼다고 온갖 자랑을 하는데 책쓰기를 얼마나 얕보고 있는가 싶다.

누구나 돈만 있으면 책을 낼 수 있지만, 누구나 남들이 읽어주는 책,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책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0년, 20년, 어쩌면 평생이 걸려야 할 일이다. 부단한 노력, 타고난 재능, 그리고 운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책 코칭 운운하는 양반들의 이력을 보면 작가가 된 지 겨우 몇 년이다. 고작 도서관에서 몇 년 살았다고, 몇 년 글을 썼다고 마치 자신이 공지영, 이외수, 조정래 급의 프로 작가라도 되는 양 으스대면서 내가 했으니 당신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떠든다. 알맹이도 없는 책 몇 권 내고 "세상에서 책쓰기가 제일 쉬웠어요." 하는 꼴이다. 실로 오만하고 가소롭기 짝이 없다. 그런 양반들에게 비싼 돈을 내고 수업을 받은 사람들이 과연 어떤 글을 쓰고 어떤 책을 쓸까. 언젠가 그런 책을 읽어본 적이 있었는데, 책의 2/3는 자신의 신변 잡기와 왜 책을 써야 하는가 따위의 아무런 상관도 없는 헛소리로 분량을 채워놓았더라. 정작 본론은 몇 페이지 되지도 않는다. 자기 계발서인지, 에세이인지, 광고인지 의문스럽다. 저자 자신은 자기 돈을 내고 자기가 쓴 책을 사보겠는가 묻고 싶다. 실제로 어떤 유명 책 코칭 강사는 허위 광고와 사기죄, 저작권 침해로 고발당한 사례도 있다.

책쓰기를 돈벌이로 여겨서는 안 된다. 작가는 예나 지금이나 배고픈 직종이다. 누구나 아다시피 연예인 지망생은 수십만명이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작가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일을 하면서 나의 꿈을 남과 공유할 기회를 가지는 것, 그게 책쓰기이다. 글쓰기를 배우는 것은 필요하지만 책쓰기를 배우겠답시고 사기꾼들에게 거금을 갖다 주는 사람은 솔직히 이해가 안 된다. 호구다.

그런 점에서 책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눈 여겨 볼만한 책이 나왔다. 책과 강연 출판사에서 나온 <기획자의 책 생각>이라는 책이다. 저자는 기획 컨설팅만 장장 15년이라고 한다. 실제로 출판계에 뛰어든 것은 1년 남짓이라고 하는데, 그것치고는 책쓰기가 무엇인지, 글쓰기가 무엇인지 잘 아는 사람이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여느 책코칭 서적들마냥 내가 도서관에서 어떻게 인생을 바꾸었으며 당신도 책을 쓰면 대박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둥의 허황된 소리는 찾아볼 수 없다. 크기는 손바닥만한 포켓 사이즈에 겨우 200여 페이지에 불과한 분량인데, 막상 읽어보면 그 정제된 글쓰기에서 책의 깊이와 저자의 오랜 내공이 와닿는다.

기획이란 무엇인가?’ 참 쉽고도 어려운 질문이다. ‘아는 것’과 ‘안다고 믿는 것’은 다른 차원이어서 간혹 이런 질문 앞에 사람들은 당황한다. 기획이란 사람과 사물,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의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들 중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모든 것은 기획된 것이다. 이 책은 지난 1년간 45종의 책을 기획해가며 통찰한 기획자의 생각을 담아냈다. 15년째 콘텐츠기획자로 살아오면서 책을 기획해본 지난 1년간의 경험은 무척이나 특별했다. 내게 있어 ‘책이란 무엇인가?’라는 낯선 질문은 ‘기획이란 무엇인가’라는 익숙한 질문과 다르지 않았다. 

최근 ‘책을 써서 성공하라’는 카피를 여기저기서 목격한다. 기획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건 난센스다. 한 해 출간되는 책이 7만 5천여 종에 달한다. 한 달 사이에 6천3백여 종의 책이 서점 평대 위로 쏟아진다. 책에는 저마다의 신간 수명이 있는데 대개는 두 달을 버티지 못하고 서가로 사라진다. 인세와 강연 수입을 통해 성공하라는 주장은 출판 통계 자료만 보더라도 그 논리가 얼마나 박약한지 금세 확인할 수 있다. 책을 내본 저자들을 만나보면 대게 ‘한번 써봤다’는 식으로 말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단순히 지면 위에 옮겨놓은 수준이다. 사용자를 생각하지 않은 상품에 관심을 가져줄 만큼 시장은 너그럽지 않다. 책은 철저히 기획되어야 한다. 무엇을 쓸 것인지(출발점), 누가 읽을 것인지(도착점)를 잇는 선명한 일직선을 그을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작가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콘텐츠 크리에이터란 개념으로 책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작가는 책을 쓰는 직업인이지만, 크리에이터는 작가의 개념을 포괄하는 보다 넓은 의미의 창작자이기 때문이다. 크리에이터의 관점에서 출판을 정의하자면 책을 잘 쓴다는 개념 자체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 작가라고 하면 한곳에 머물면서 억척스럽게 원고에만 매달리는 상투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작가는 오로지 자신의 글에만 충실하면 됐다. 기획, 마케팅, 영업은 당연히 출판사 고유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책을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작가와 독자가 참여하여 만들어가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작가가 설정한 독자의 캐릭터가 구체적일수록 책은 독자의 삶에 밀착된 내용들로 채워진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상대에 대한 정보가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대화는 헛돌지 않는다. 작가는 독자의 욕구를 예리하게 파고들며 공감할 만한 실마리를 풀어내야만 한다. 책을 마치 한 사람과 1대 1로 대화한다는 감각으로 써보라. 이렇게 독자층을 좁혀놓으면 과연 읽을 사람이 있겠냐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모두가 읽을 수 있는 두루뭉술한 책을 쓰는 것보다, 독자를 구체화하여 책을 선택할 분명한 이유를 만드는 것이 판매에도 유리하게 작용한다. 

개인이 강력한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다. 책을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대외적으로 확대해나간다. 유튜브크리에이터 ‘대도서관’처럼 개인의 인지도를 바탕으로 책을 내는 경우도 있다. 역시 관심이 집중되는 곳에 기회가 만들어지는 법이다. 소셜미디어를 상징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꼽으라면 ‘연결(Link)’이다. 나에게서 타인으로 확장되는 연결을 통해 콘텐츠의 최초 생산자를 중심으로 밀도 높은 브랜드가 만들어지게 된다.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이 모두가 타인과의 연결이다.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해야 할지도 모른다. ‘모든 링크의 합’이라고 말이다. 더 이상 연결되지 않는 콘텐츠는 발견되지 못한다. 아무리 콘텐츠가 훌륭해도 발견되지 못한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작가의 이름값만으로 100만 부를 팔아치우던 시대는 갔다. 출판시장에 드리워진 불황의 그늘은 여전히 짙기만 하다. ‘Social’이라는 미디어 환경 안에서 자기만의 글 세계를 구축해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젊고, 감각적이며, 깊다고 볼 수 없을지는 모르나 최소한 대중의 코드를 읽어내는 ‘feel’만큼은 충만하다. 대중들은 어려운 종이책을 집어 드는 대신, 그들의 몽글몽글한 언어에 기꺼이 손을 내민다.

당신의 미래는 더 이상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미래는 연결에 의해 결정되고, 연결의 강도는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인력이 작용할 때에만 연결이 일어난다. 인력(끌어당김)이란 타인의 관심이 당신을 향하게 하는 힘이다. 

이 책은 책쓰기 요령이나 기획서 쓰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알려주는 전문적인 개론서와는 거리가 멀다. 다른 사람들의 원고를 봐주고 그것을 어떻게 상품화할 수 있을지,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을지 기획하는 컨설턴트로서 보고 느끼고 생각했던 것을 쓰고 있다.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마따나 아무리 훌륭한 내용이라고 해도 제대로 다듬어 옥석으로 만들지 못하면 돌맹이에 지나지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어떻게 예쁘게 다듬는가에 따라서 남들이 돌맹이라고 여겼던 것을 옥석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돌맹이를 옥석으로 만들기도 어렵지만 돌맹이 중에서 옥석이 간혹 끼어 있는 것이지, 모든 돌맹이가 옥석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돌맹이 중에서 무엇이 옥석인지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기획자이고 돌맹이인 줄 뻔히 알면서도 옥석으로 만들 수 있다고 속인다면 그건 사기꾼이다. 어떻게 해야 내가 돌맹이가 아닌 옥석을 만들 수 있는지, 애초에 무엇이 돌맹이이고 옥석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 우리가 알고 싶은 건 그런 것이다.

SNS 상에서 남들이 쓴 글을 읽다보면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어진다. 이 정도 글은 쉽게 쓸 수 있을 것같다. 하지만 막상 써보려고 하면 막막하다. 당장 첫줄부터 막힌다. 뭘 써야 할지 머리 속에는 있는데, 그걸 꺼내기는 어렵다. 나 또한 장장 20년 째 취미 삼아서 글을 쓰고 있고 역사 서적을 한번 내 본 적이 있는 아마추어 작가이지만 솔직히 일상의 짧은 이야기를 쓰는 것조차 쉽지는 않다. 글을 쓰는 것은 꽤나 스트레스이다. 글을 쓰는 게 부담된다기보다 잘 써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다. 무작정 생각나는대로 적으면 그건 글이 아니라 횡설수설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똑똑한 교수들조차 의외로 글쓰기에는 서툰 경우를 많이 본다. 아무리 아는 것이 많아도 그걸 글로 정리하기란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쉽고 친절하여 한 눈에 요점이 파악되는 글, 잘 다듬어지고 감칠맛나면서 때로는 인상적인 글귀로 다 읽은 뒤에도 여전히 뇌리에 남을 수 있는 글, 그런 글이 남들이 읽어보고 싶은 글이다. 그런 글은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고 소위 책 코칭 강사에게 비싼 돈 들여서 속성 과정으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단 쓰고 또 써봐야 한다. 처음에는 머리 속이 정리되지 않아도 쓰다보면 자연스레 정리가 된다. 필력도 늘어난다. 다른 사람들의 글도 많이 읽어봐야 한다. 흔히 작가 지망생들은 유명 작가들의 책을 100번이고 200번이고 그대로 필사하면서 그들의 글쓰는 방법을 익힌다고 한다. 어디에서도 그저 쉽게 얻을 수 있는 길은 없다.

저자는 책을 쓰고 싶은 사람들의 모든 질문에 대답해 주지는 않는다. 분류는 자기 계발서라지만 「기획자의 책 생각」이라는 제목 그대로 기획일을 하는 사람의 생각을 담은 에세이에 더 가깝다. 하지만 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작가 지망생이라면 이 정도는 알았으면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담고 있다. 읽다보면 와닿는 부분, 공감 가는 부분이 많다. 책은 쓰고 싶지만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라고 망설이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라.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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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의 만리장성 - 그림자 금융, 유령 도시, 대규모 부채 그리고 중국 경제 기적의 종말
디니 맥마흔 지음, 유강은 옮김 / 미지북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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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40대 이상이라면 1997년 IMF 외환위기의 암울함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당시의 분위기는 말그대로 대한민국은 완전히 끝장났다는 것이었다. 주식은 하루아침에 1/4 토막이 났고 수많은 기업들의 도산과 정리 해고로 쫓겨난 노동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가정의 붕괴는 말할 것도 없었다. 뉴스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자살 얘기에, 우리가 중진국의 문턱에서 걸려 넘어졌다는 둥, 아시아 네 마리 용 중에서 유일하게 추락한 나라라는 둥 온갖 어두운 얘기 뿐이었다. 한국전쟁 이래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로부터 겨우 3, 4년 후 분위기는 전혀 달라졌다. 2002년 월드컵은 우리의 자신감을 회복시켰다. IMF에서 빌린 외채를 조기 상환했을 만큼 여유도 되찾았다. 주가는 2000선에 도달했으며 부동산 또한 폭등하였다. 그 시절의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은 전후 상황은 쏙 빼놓고 단편적인 수치만 내세워 마치 노무현 정권이 부동산을 폭등시킨 장본인이라고 함부로 얘기하지만 엄밀히 말하여 MB정권 시절처럼 경기를 부양하겠답시고 정부가 나서서 국민들더러 집을 사라고 부추겼기 때문이 아니라 IMF 때 반토막이 되었던 부동산이 경제가 회복되면서 돈이 몰린 덕분이었다.

그 시절에는 부동산만 오른 것이 아니라 주가도 올랐고 소득도 올랐다. DJ-노무현 시절의 연평균 경제 성장률은 5%에 달하였다. 연평균 10%에 육박하던 박정희-전두환 시절의 고도 성장기에 비할 수야 없겠지만 IMF 때만 해도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이 필리핀, 인도네시아 수준으로 추락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선전한 셈이다. 금수저도 아니고 어지간한 서민 중산층이 30평대 아파트에 살면서 세탁기와 대형 냉장고, 거실에 대형 판넬 TV를 달아놓고 집집마다 차 두대를 굴리고 외식과 휴가를 즐긴다는 것은 1990년대나 그 이전같으면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1970년대에 고도 성장을 이룩했던 브라질, 멕시코 등 남미 국가들이 '중진국의 함정'에 빠져서 수십년 째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나, 199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보다 사정이 훨씬 나았던 타이완, 홍콩이 완전히 주저앉은 채 뒷걸음질을 치는 것에 비하면 우리는 상당히 안정적으로 안착하여 이제는 3만 달러를 넘보고 있다.

우리가 IMF를 조기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때 마침 중국의 폭발적인 경제 성장에 운 좋게 편승한 덕분이었다. 물론 1978년 덩샤오핑이 처음으로 개혁개방을 선언한 이후 중국 경제는 1980~90년대 내내 꾸준히 성장했지만 전체적인 경제 규모는 대수롭지 않았다. 마오 시절이 남긴 상처가 워낙 컸기에 중국 경제는 파산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시작되었고 개방 또한 중국 전체가 아니라 몇몇 특구에 국한되어 경제적인 파급 효과가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1989년 톈안먼 사건은 서방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면서 차관과 투자가 끊겼고 중국 경제는 한동안 얼어붙었다.

1990년대 중반에 와서 장쩌민 정권은 전면적인 개혁개방을 선언한다. 2001년에는 WTO에 가입하면서 비로소 중국은 글로벌 경제에 편입되었다. 특히 이른바 '신자유주의'를 외치던 부시 행정부는 높은 인건비에 허덕이던 미국내 다국적 기업들의 생산 단가를 낮추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명목으로 국내 공장들을 대거 중국으로 이전케 하였다. 미국인들 입장에서 본다면 그야말로 뻘짓이지만 중국에게는 기적이었다. 중국은 부시 덕분에 가만히 앉아서 "세계의 공장"이 되었다. 당시에 수많은 전문가들이 IMF의 직격탄을 맞은 동남 아시아나 구 소련 붕괴 후 극심한 경제 침체에 직면하였던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들처럼 중국 또한 같은 길을 가리라 예측했지만 그 예측이 빗나갈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2000년대 이후 중국 경제의 폭발적인 성장이 흔히 "우리가 세계 경기를 떠받힌다."라고 막연하게 자부심을 가지는 중국인들의 생각만큼 글로벌 경제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아니다. 중국 경제는 여전히 매우 폐쇄적이고 외부의 접근이 어려우며 자유 무역을 철저하게 차단하여 중국이 수출하는 것에 비하여 수입 규모가 훨씬 적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중국은 그냥 남의 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은 물론이고 심지어 홍콩, 타이완조차 중국발 경제 성장에 편승하는데 실패하였다. 그러나 그 예외가 있다면 바로 우리이다. 1991년 한중 수교 이후 양국의 무역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미국, 일본 경기가 침체일로였던 2000년대 초반 이 두 나라에 빌붙어 먹고 살았던 우리가 IMF를 조기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중국에서 벌어들인 돈 덕분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전체 무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8%로 미국, 일본을 합한 것보다 많으며 무역 흑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매년 거액의 적자가 나는 대미, 대일 무역을 상쇄할 수 있는 것은 이 덕분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중국에서 돈을 벌어서 미국, 일본에게 갖다 바침으로서 경제를 꾸려 나가는 셈이지만 바꾸어 말하면 우리 경제가 전적으로 중국 경제에 종속되어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2010년 이후 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점점 낮아지고 불황의 늪에서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중국 경제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10년 전 너도나도 중국 펀드를 사겠다고 줄을 설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누구도 중국 펀드를 거론하지 않는다. 겨우 2, 3년 전만 해도 많은 글로벌 연구 기관들이 중국이 2020년대 중반이 되면 미국을 제치고 G1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더 이상 그런 얘기는 없다. 요사이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 느낌이다. 장미빛 기대는 사라지고 오히려 중국발 위기에 대한 경고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판이다.

아직은 중국의 성장 동력이 남아 있다는 지금도 경제 성장률이 3%를 넘지 못하여 자영업자들은 죽을 지경이라느니, 청년 실업률이 더 악화되었느니 온갖 앓는 소리를 늘어놓는만약 중국 경제가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워진다면 그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대중 무역으로 IMF를 극복하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만 그 타성에 젖은 나머지, 좋았던 시절에 우리 스스로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고 앞날을 대비하지 않은 대가이다. 대중 일변도에서 벗어나서 무역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야 십수년 전부터 나왔던 얘기이지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우리 경제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하는데 그게 하루 아침에 될 일도 아니고 지난 10년을 어영부영하는 사이 이미 버스는 떠나버린 느낌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위기감은 없고 서로 니탓을 하면서 정쟁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과연 중국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우리 앞날은 또 어떨 것인가.

미지북스의 신작 도서인 <빚의 만리장성>은 우리가 막연히 여기는 것보다 중국의 실제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경고하는 책이다. 저자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저널리스트로 중국 경제와 금융 시스템 전문가이기도 하다.

"베이징 당국이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책임을 다한다는 점에는 누구도 의문을 품지 않는다. 베이징 당국은 활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기꺼이 동원하기 때문에 중국이 금융 위기를 겪을 것이라는 예상은 공상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금융기관들이 안도하는 사이 금융시스템은 점점 몸집을 커지고 복잡해지고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베이징 당국이 때때로 통제력을 상실한다는 점이다."

"2014년 석탄 부문을 감독하는 한 관리는 집에 현금 3,300만 달러를 쌓아두고 있다가 발각되었다. 지폐를 세기 위한 계수기 중에서 네 대가 과열로 고장이 났을 정도였다. 한 육군 병참부 장성의 집에는 엄청난 현금 다발을 찾아내었다. 말그대로 1톤 무게가 나가는 돈을 세는데 1주일이 걸렸다. 다른 관리들도 많은 돈을 숨겨두고 있다가 잡혔는데 바닥에 깔려 있는 돈은 이미 썩어가는 중이었다."

"부패한 지원들을 해고하면 타락한 행태를 줄이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빈 자리를 채우는 사람들이 기꺼이 자기 조직의 특권을 해체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의미있는 개혁을 하려면 변화를 방해하는 면에서 정말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 뿌리 깊은 기득권 세력과 대결해야 한다."

"중국 소비자들은 국내에서 구입하는 농산물이 제대로 관리되거나 가짜가 아니거나 절차를 무시한 누군가가 내용물을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 식료품에 관한한 많은 중국인들은 외국 상표가 붙은 것만 산다. 국산보다 더 품질이 좋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제품의 품질과 출처를 보증하는 유일한 방법은 외국인들이 쇼핑하는 해외에서 구매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저자는 이른바 G2라고 불리는 중국의 화려한 신기루 뒤에 숨겨진 민낯을 거침없이 벗겨낸다. 중국 관료들의 부패와 권력 남용, 돈만 벌면 장땡이라는 식의 비뚤어진 금전만능주의, 조작과 날조로 가득 찬 좀비 기업들, 기업의 뒷배를 봐주는 지역 공무원들과 그들의 횡포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힘없는 농민들. 이 책에서 거론되는 중국의 문제점은 총체적이지만 그렇다고 충격적이라기에는 새삼스럽기도 하다. 이미 오래 전부터 수많은 전문가들이 경고했던 내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중국의 민낯은 또 한번 강렬한 충격과 함께 경각심을 준다. 상하이 푸둥의 화려한 번화가, 중국 곳곳에 건설 중인 현대화된 도시들, 세계 최대 규모의 거대한 조선소와 중화학 설비, 세계 관광지를 휩쓰는 중국인 관광객들, 미 해군의 아성에 도전하는 중국 해군의 위용 등. 이 모든 것은 사실은 허상일 뿐이며 언제 허물어 질 지 모르는 모래성이라는 점이다. 중국은 여지껏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었을 뿐이고 만약 그 폭탄이 터졌을 때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기는 얼마 남지 않았다.

2000년대 이후 중국은 매년 7~8%의 성장률을 달성했으며 성장이 둔화되었다는 정도가 무려 6%이다. 이것은 연평균 1~2%에 머물러 있는 서구의 기준에서 본다면 여전히 대단한 수준이다. 중국 경제는 여지껏 단 한번도 마이너스 성장을 한 적이 없지만 정작 주식 시장은 반토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GDP  성장분만큼 반드시 주식도 정비례하여 오르는 법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올라야 정상이 아닌가. 도대체 성장한 부분은 죄다 어디로 사라졌다는 말인가. 중국 기업들은 성장률 5%를 유지한다면 겨우 본전치기이고 그 이하가 되면 도산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중국의 성장은 뻥튀기되었다는 얘기이다. 이것은 그저 "아마도 그럴 것"이라는 외부인들의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중국 총리 리커창이 직접 인정했던 말이다.

시진핑 집권 이후 아무리 중앙 정부가 통계를 조작하지 말라고 호령을 해도 지방 정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중국 특유의 관료주의는 수천년에 걸쳐서 형성된 봉건적인 중국 문화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모든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어떠한 비판조차 허용하지 않는 공산당 지배 체제가 만들어 낸 것이기도 하다. 차라리 왕조 시절의 사대부들은 유교적 가치관에 따라서 청빈한 삶을 추구했으며 권력의 절제가 있었고 언론과 비판도 허용하였다. 지금의 공산당 관료들은 최소한의 양심조차 찾아볼 수 없고 함부로 권력을 남용한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할 수도 없다. 철저하게 막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 관료들의 부패 고리나 치부를 드러내는 사소한 시도라도 한다면 엄중한 처벌을 각오해야 한다. 법도 소용없다. 애초에 중국은 서구와 같은 법치 국가가 아니라 당의 지시, 그리고 그 지시를 실제로 내리는 관료들의 입이 법이다.

그나마 이들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최고 지도자인 시진핑이다. 실제로 시진핑은 집권 이후 최우선 과제로서 부패한 관료들을 때려 잡는 일에 나섰다. 소위 '大虎'라고 불리는 가장 부패한 고위 관료 수십여명이 붙잡혔고 50만명이 넘는 '파리'들(중하위 관료)이 처벌받거나 자리에서 쫓겨났다. 이 숫자는 서구 기준에서 본다면 분명 엄청난 것이지만 중국에는 무려 4천만명이 넘는 공무원들이 있고 여기에 비하면 한줌도 되지 않는다. 시진핑이 거창하게 떠드는 소위 '반부패 운동'이란 새로울 것이 전혀 없는, 마오 시절 이래 역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해온 일에 불과하다. 수십만명의 관료들이 처벌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부패가 조금도 해소되지 못하는 것은 재수 없는 몇 놈만 때려잡았을 뿐, 근본적인 모순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진핑의 방식은 그저 관료들을 잠깐 겁주고 그들이 좀 더 양심있게 행동하라고 주의를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보다 근본적인 해결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공산당의 독재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더러, 시진핑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애초에 시진핑 자신도 수조원의 재산을 쌓아두고 있다는 점에서 부패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자신이 자신을 구속할 수 있겠는가.

중국인들은 외부의 비판을 진솔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특유의 자존심으로 불쾌감을 드러내기 일쑤이다. "너희 방법이 최선이라고 여기지 말라. 우리는 우리의 방식이 있다."라는 식이다. 심지어 중국에 빠져 있는 일부 서구 학자들조차 여기에 편승하기도 한다. 자칭 "유교 좌파"라고 하는 캐나다 출신의 정치 학자 대니얼 A. 벨 교수의 <차이나모델 :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왜 유능한가>라는 책이 있다. 그는 "왜 서구식 민주주의가 가장 나은 정치 모델이라고 단언하는가."라면서 서구 특유의 오만함이라고 비난한다. 중국에서는 미국처럼 선거를 통하여 정치인을 뽑지 않지만 엄격한 심사 과정을 통하여 가장 능력이 우수하고 올바른 품성을 갖춘 지도자를 선발한다는 것이다. 벨 교수는 소위 "현능주의(賢能主義, meritocracy)"라는 이름을 붙이고 "일당 독재의 중국이 수준 낮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인도보다 낫지 않은가?"라고 말한다. 이것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인도를 사례로 독재주의와 민주주의를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것도 어폐가 있지만, 인도가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해서 누가 무슨 기준으로 중국보다 더 못하다고 단언한다는 말인가. 이것이야말로 오만하기 짝이 없는 소리이다. 벨 교수의 눈에는 중국 지도자들이 마치 무릉도원의 신선들처럼 보이는지 몰라도 세상에는 만고 불변의 법칙이 있다. 절대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사실이다. 온갖 부패와 불법을 저지르고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보시라이가 한때 가장 유력한 중국 최고 지도자 후보였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시진핑이나 리커창이 보시라이보다 더 훌륭한 품성을 가졌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중국 경제의 현실은 실로 총체적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중국은 자본주의를 흉내내지만 사실은 자본주의가 아니라는 점이다. 여전히 전체 기업의 80%는 관료들의 통제를 받는 국영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민간인이 창업을 할 수는 있지만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그조차 관료들과의 연줄, 즉 꽌시가 있어야 한다. 어렵사리 투자자들을 모아서 사업을 꾸려 나가도 부패한 지방 공무원들의 끝없는 괴롭힘이 시작된다. 이들의 요구를 영원히 들어주거나 아니면 항복하는 것이외에 방법이 없다. 관료들 입장에서 사기업들은 뇌물을 뜯어내기 만만한 '호구'이면서 또한 자신들의 쏠쏠한 돈줄인 국영기업들의 아성을 위협하는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반면, 국영 기업들은 관료들의 연줄을 이용하여 정부 은행에서 얼마든지 돈을 빌릴 수 있다. 담보도 필요 없다. 상한선도 없다. 그 돈으로 그들만의 잔치를 벌인다. 돈이 떨어지면 또 빌리면 그만이다. 경제성, 효율성 따위는 알 바가 아니다. 과잉 투자를 해도 언젠가는 쓰이겠지 하는 식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돈이 아무렇게나 허공에 낭비되지만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누구도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구조이다. 만약 누가 그 사실을 들추어내려는 시도를 한다면 쥐도 새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중국 공산당의 방식이 멕시코를 지배하는 마피아 카르텔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중국 국민들이 이런 현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고 그들은 왜 침묵을 지키는가. 저자는 중국에서 아직까지 공산당에게 저항하거나 중동의 자스민 혁명처럼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대다수 국민들 또한 자신들이 언젠가 부자가 될 지 모른다는 환상에 갖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개혁 개방 이후 수많은 서민 출신의 억만장자가 등장하였고 우리 또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희망 사다리'라는 것이다. 만약 중국 경제의 성장이 멈추고 더 이상 계층의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들의 불만 또한 폭발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서구의 사고 방식이다. 중국 국민들이 공산당의 횡포에 인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현실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중국 역사에서 부패와 수탈이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수천년 동안 이어져 온 일이다. 중동 여성들이 쉽게 히잡을 벗어던지지 못하는 것처럼 오랫동안 관습에 길들여진 사람들로서는 그것을 깨뜨리고 바로 잡으려는 시도 자체가 오히려 두려운 일이다. 나름 민주화되었다는 우리 사회조차 여전히 나랏님이 하는 일에 민초들이 나서는 것은 반역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원래 사람이란 쉽게 바뀌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시위가 있고 때로는 분노한 농민들의 폭동도 일어나지만 당장의 부당함을 잠시 호소하는 것일 뿐, 정작 근본적인 모순에 도전하는 움직임은 없다.

지금의 중국은 너무나 타성에 젖은 나머지 썩은 서까래나 다름없게 되어서 마치 백년 전의 청나라나 임진왜란 시절의 조선을 보는 느낌이다. 여기를 손대려면 저쪽이 무너지고 저쪽을 손대려면 이쪽이 내려앉는, 위기감은 있지만 막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그게 중국이다. 아무리 잘 길들여진 중국 국민들이라고 해서 언제까지 인내심을 발휘한다는 보장은 없으리라. 중국에 민주화 운동이 일어날 지 아닐 지 누가 알겠는가. 또는 청 말의 입헌 운동처럼 공산당 스스로 자기 개혁에 나서고 권력을 내려놓을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시진핑은 과감한 개혁보다는 오히려 더욱 보수 반동적으로 행동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꽉 쥐려는 쪽을 선택한 듯 하다. 그는 덩샤오핑보다는 위안스카이에 더 가까우리라.

보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은 중국이 지금 이대로 간다면 그들의 화려했던 잔치는 곧 끝난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우리 경제에 미치는 여파는 어느 정도일까. 사드 이후 우리 사회의 반중 감정은 하늘을 찌르지만 우리 경제가 중국에 의존하는 정도를 생각한다면 중국의 몰락은 우리가 결코 기뻐할 일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당장 10년 후 우리 미래가 어떨런지 암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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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의 본질 - 누가 어떻게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가?
그레이엄 앨리슨.필립 젤리코 지음, 김태현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전쟁의 안개(fog of war)'라는 말이 있다.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전쟁이란 결코 합리적이고 정량화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도 '우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전쟁은 반드시 더 강한 쪽이 승리하고 약한 쪽은 패배하는가. 만약 그러하다면 세상에는 굳이 전쟁이 존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누구도 질 것이 뻔한 싸움을 선택하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소국이 강대국을 상대로 싸우는 이유는 비록 가능성은 낮지만 조금이라도 이길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윗이 골리앗을 꺾는 예는 얼마든지 있다. 베트남은 미국과 중국에게 승리하였고 소련은 아프간에서 혹독한 대가와 망신을 당한 채 물러나야 했다. 강대국들 역시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굳이 무리한 싸움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쟁은 불확실성이 너무나 크다. 무솔리니의 그리스 침공처럼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여기고 전쟁을 시작했지만 적의 저항이 예상외로 강하거나 뜻밖의 상황에 부딪치면서 전세가 역전되기도 한다. 어느 쪽도 결코 전쟁을 원하지는 않았지만 상대의 의중을 오판하거나 두려움, 정보 부재로 결국에는 파멸적인 전쟁으로 이어진 예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제1차 세계대전이다.

대개 우리는 역사를 바라볼 때 "그들은 왜 그렇게 했을까"를 놓고 다양한 가설을 세운 다음 우리 나름의 관점에서 미루어 짐작한다. 이것은 지나간 역사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정치인들과 장군들 역시 정치 외교, 군사적인 사안에서 상대가 어떠한 의중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을 원하는지 예측하려고 한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며 잘못된 정보와 상대의 기만 전술, 선입견과 고정관념도 끼어들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사람은 반드시 합리적인 동물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누가 보더라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또한 그 시점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라도 시간이 지난 뒤 결과적으로 보면 최악의 선택인 경우도 있다. 따라서 충분한 정보와 근거의 뒷받침 없이 가설과 상상력에만 의존해서는 전혀 엉뚱한 결론을 도출할 수 밖에 없다.

루즈벨트가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할 것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용인했다는 둥의 소위 음모설들은 지금도 수없이 제기되고 있다. 음모설들이 대개는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이유가 가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대신, 상상력만으로 의혹을 부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막연히 '가장 합리적인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책 결정이란 사실은 굉장히 허술한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이러이러했다"라는 결과를 다루는 책은 얼마 있어도 "왜 그렇게 했는가" 과정을 다루는 책은 거의 없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보다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연구하는 것이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사람들이 그럴싸하게 포장된 음모설에 쉽게 현혹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모던 아카이브 출판사에서 신작 도서 <결정의 본질 - 누가 어떻게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가, 그레이엄 앨리슨, 필립 젤리코>가 출간되었다. 결정의 본질은 1971년에 첫 출간되어 국제정치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기념비적 저서라는 평을 받았으며 1999년에 개정판이 나온 뒤에도 45만 부가 팔린 국제 정치 분야에서는 그야말로 독보적인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1990년대 말에 이미 모 출판사에서 페이퍼북 형식으로 한번 출간되었다가 20여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또 한번 햇볕을 보게 된 셈이다. 번역 수준이나 편집 상태 역시 예전의 퍼이퍼북과는 감히 비교할 바가 아닐 정도로 깔끔하다.

"전쟁은 경쟁국의 의도를 지나치게 낙관할 때 일어날 수 있다. 또한 상대가 선제공격할 가능성을 지나치게 우려할 때에도 일어날 수 있다. 전쟁에서 얻는 순 이익은 영토 획득과 같은 실물도 있지만, 전쟁보다 더 나쁠 것이라고 생각하는 미래를 회피하는 기대치가 될 수도 있다."   - p.79

"쿠바 미사일 사건 당시 흐루쇼프의 마음을 바꾼 것은 케네디의 봉쇄 작전 때문이 아니었다. 공습, 침공과 같은 추가적인 위협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소련의 후퇴를 유도하지 못했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이미 배치된 미사일을 철수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흐루쇼프의 마음을 진짜로 바꾼 것이 과연 당근인지, 채찍인지는 여전히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 p.165

"1994년 4월 어느 맑은 날 이라크 북부에서 미 공군 F-15 전투기 두대가 최첨단 기술을 자랑하는 조기경보기의 도움을 받아서 헬리콥터 두대를 격추시켰다. 그 헬리콥터는 미 육군 소속의 블랙 호크였고 평화유지군 26명 전원이 사망했다. 이 사건을 2년 동안 조사한 결과는 조종사나 항법사의 실수일 것이라는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랐다. 정상적인 조직의 정상적인 사람들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행동한 결과였다. 이 비극을 불러온 진짜 이유는 사전에 준비된 메뉴얼에 순응했기 때문이었다." - p.195

"소련은 기존 방침대로 구형 미사일을 신형 미사일로 교체했을 뿐이었다. 자연스럽고 거의 불가피한 정상적인 현대화 계획의 일환이었다. 소련 정부는 SS-20 미사일의 배치가 서방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분석하지 않았다. 따라서 서방이 항의하자 깜짝 놀랐다. 소련은 자신들의 신형 미사일 배치가 서방의 신형 미사일 배치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외교적 위기가 초래 되었다." - p.222
 
이 책의 주된 내용은 "국가는 왜 그렇게 행동했는가?" "그것을 누가 어떻게 결정했는가?"에 대한 것이다. 국가 정책의 결정 과정이란 여기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외부 사람들은 심지어 전문가들조차도 그것의 진짜 속내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 심지어 이를 직접 결정한 사람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란 어느 한 사람이나 몇몇 고위 관료들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 조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각자의 영역에서 분업을 하고 있다.

개개인은 제아무리 자신의 맡은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반드시 전체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조직들 간의 협력이 얼마나 잘 되는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톱니바퀴가 조금만 어긋나더라도, 가령 적의 공격이 임박했을 때 매우 중요한 일급 기밀이 하부에서 걸러지면서 상층부까지 전달되지 않는다면, 또는 그 정보가 가장 윗선까지 올라간다고 해도 막상 그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윗선에서는 대응하라는 지시를 내려도 그 명령이 하부에 제때 전달되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진주만 공격, 바바롯사 작전 당시 독일의 기습 작전이다. 우리는 역사를 바라볼 때 그저 눈 앞의 결과만이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세세한 부분까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모델과 사례를 통하여 국가 정책은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다룬다. 여기에는 크게 세가지의 모델이 있다. 첫째는 제1모델(합리적 행위자 모델)이다. "이런 행동을 한 것에는 거기에 걸맞는 합리적인 목적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널리 사용되는 모델이지만 이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허점 또한 있다. 국가란 결코 사람처럼 단일 행위자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고도로 나누어진 복잡한 기계 장치와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의 행동은 항상 일관성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서로 모순되고 상충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제1모델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두번째 모델이 제2모델(조직이론)이다. 정부를 구성하는 조직의 문화와 가치관, 절차 등을 분석하고 그 안에서 패턴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세번째 모델이 정부정치이론이다. 정부가 어떠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한 사람의 선택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타협을 벌인 결과라는 것이다. "어느 정부가 어떤 행동을 한다면 그 게임에 참여한 플레이어들이 흥정한 결과이다."

이 세 가지 모델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다양한 정치적 사건에 대하여 막연한 추론이나 허황된 음모론이 아니라 보다 진실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다. 초반부의 이론 설명은 다소 난해한 느낌도 있지만 뒤로 갈수록 점점 빨려들어가는 책이다. 냉전 시절 제3차 세계대전의 위기에 가장 근접했다는 쿠바 미사일 사건 당시 케네디 행정부는 소련의 의중을 분석하기 위하여 다양한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그 가설들에 맞추어 미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최선의 방안을 찾아나갔다. 

미국 수뇌부 앞에는 크게 6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다. 쿠바를 침공할 것인가, 공습을 할 것인가, 봉쇄를 할 것인가, 카스트로를 매수할 것인가, 외교 루트를 통한 압박을 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모르는 척 할 것인가. 각각의 선택지에는 그렇게 했을 때 얻는 것도 있지만 잃는 것도 있었다. 어떤 것도 나름의 리스크가 뒤따랐기에 쉽사리 선택할 수 없었다. 케네디가 고민에 빠졌듯이 같은 시간 흐루쇼프와 소련 수뇌부 또한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그나마 그 중에서 가장 최선이라고 여기는 선택을 하였다. 이것은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2부의 내용은 정책 결정권자들이 복잡한 정치 외교적인 사안을 놓고 어떠한 방식으로 판단을 내리며 나름의 해답을 찾아가는지 그 과정을 이해하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뮌헨 회담에서 체임벌린은 왜 히틀러에 대하여 오판했는가. 루즈벨트는 어째서 일본의 위협에 대비하지 않았는가.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위협했을 때 부시는 왜 방관했는가. 그리고 손바닥 뒤집듯이 이라크를 공격했는가. 쿠바 미사일 사건 당시 케네디와 흐루쇼프는 상대의 의중을 어떻게 파악했는가. 무엇이 이들을 물러나게 하였는가. 겉만 보아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수많은 의혹들에 대하여 이 책은 "그들은 왜 그렇게 했는가"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이 책은 주로 미국의 외교 정책을 사례로 삼고 있지만 우리 주변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다. 냉탕과 온탕을 쉴 새 없이 오가는 남북 관계, 올초만 해도 최악으로 치달았다가 어느 순간 분위기가 좋아질 수 있었는지, 당장 북한을 폭격할 듯 위협하던 트럼프가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에 나서게 된 이유 등 그저 단선적으로 바라보아서는 그 본질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이 책을 읽어보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주석을 빼고 480여 페이지의 많다고도, 적다고도 할 수 없는 분량이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정치 외교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필히 읽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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