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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의 패배
에마뉘엘 토드 지음, 권지현 옮김 / 아카넷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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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는 않았지만 주한 외국인들의 토크 대결을 다룬 JTBC의 <비정상회담>에서 러시아쪽 패널로 출연한 바 있다는 벨랴코프 일리야씨가 쓴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라는 책에서는 러시아인들이 바라보는 푸틴을 이렇게 말한다. "그는 독재자가 아니다." 왜나하면 소련 시절 '진짜 독재'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푸틴의 방식은 독재 축에 끼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러시아의 아버지'다운 강력한 지도력으로 부패 관료들을 때려잡고 소련 붕괴 이후 나락으로 향하던 러시아 경제를 안정시켰으며 푸틴 치하에서 충분한 자유를 누린다고 여긴단다. 그의 높은 지지율이 밖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죄다 조작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어차피 러시아인들 대부분은 정치에 무관심하다보니 푸틴이 조금 잘못을 해도 그보다 더 나은 놈이 없다는 이유로 신경끄고 산다고.

그리 따지면 러시아만이 아니라 중국도 '중국식 민주주의 국가'이며 세상 천지에 독재국가가 어디에 있겠냐 싶지만 어쨌든 일리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편협한 동물인데다 '감각순응'이라고 하여 지옥을 맛본 사람일수록 어지간한 일에는 둔감해지는 법이니 말이다. 우리야 푸틴을 독재자라고 욕하면서 그 옛날 루이16세나 니콜라이 2세처럼 오래지 않아 철권 통치에 분노한 러시아 국민들에 의해 타도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래서야 어림없을 듯 하다. 예전에 좌파 인권 운동가들의 칼럼을 모은 <우크라이나 전쟁,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각축전>에서는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반대하고 지성과 양심을 갖춘 러시아인들이 스스로 푸틴을 끌어내릴 것이라고 주장하던데 이 양반 설명에 따르면 그야말로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인 셈. 옳고 그름을 떠나서 러시아인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데 우리가 어쩌겠는가.

책 제목대로 저자의 사견이 한가득 담겨 있다고는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같은 지구에 살면서도 러시아가 얼마나 멀고도 먼 나라이며 서로의 사고방식이 동떨어져 있는지 새삼스레 깨닫는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극단으로 치닫게 된 러시아와 서방의 갈등은 먼저 서방이 빌미를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푸틴은 집권 초기에도 서방에 유화 제스쳐를 취했음에도 서방이 약속을 깨고 나토를 동진시켰기 때문이라는 것.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도 2014년 마이단 혁명으로 친러 대통령이었던 빅토르 야뉴코비치가 쫓겨난 것이 미국의 음모이며 친서방 정권이 러시아를 적대하고 나토를 끌어들이려고 했음을 강조한다. 그야말로 러시아 입장에서의 아전인수랄까. 우리로 치면 일본인이 일본의 조선합병을 고종의 반일정책과 어차피 그 시절 일본이 아니었어도 누군가 조선을 먹었을 것이므로 죄가 없다고 하는 꼴이니 우크라이나인들이 들으면 격분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결코 오해해서 안 되는 점은 인과관계가 거꾸로 되었다는 사실이다. 푸틴은 입만 열면 서방의 동진을 비난하면서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한다고 타령했지만 정작 서방과의 관계를 파토낸 것은 푸틴 자신이었다. 푸틴이 처음 러시아의 권좌에 앉았을 때만 해도 서방과의 관계는 화기애애했다. 그는 서방을 핵무기로 위협하던 구 소련 지도자들과 달리 자세를 한껏 낮추었다. 프랑스 언론인 마리옹 반 렌테르겜의 <노르트스트림의 덫>에는 푸틴이 2000년대 내내 독일 총리인 게르하르트 슈뢰더나 앙겔라 메르크를 비롯하여 서방 지도자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를 언급한다. 러시아는 서방에 석유와 천연가스를 저렴하게 공급하고 그 대가로 경제 원조를 얻어냈다. 심지어 푸틴에 감화된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국의 최신 군함인 미스트랄급 상륙함 2척을 러시아에 판매하기로 했다. 이대로만 계속되었다면 한 세기 전 짜르가 꿈꾸었던 프랑스-독일-러시아 3국 연합이 실현되었을지도 모른다.

2011년 프랑스가 러시아에 넘기려고 한 미스트랄급(Mistral-class) 강습상륙함. 핵항모인 샤를 드골을 제외하고 프랑스 해군에서 가장 큰 군함으로 배수량 2만톤에 16대의 대형헬기, 전차 40대, 병력 450명을 수송할 수 있으며 지휘통제함으로서 기능을 갖추었다. 프랑스가 자국의 최신 기술이 집약한 군함을 러시아에 판매할 만큼 나토와 러시아의 관계는 우호적이었지만 푸틴의 욕심이 망쳤다.


문제는 푸틴이 서방에게는 비굴하리만큼 추파를 던지면서도 우크라이나, 조지아 등 만만한 주변의 구소련 형제들에게는 옛날 버릇을 못 버렸다는 점이었다. 그는 친러 주민들을 선동하고 무기를 제공하여 혼란을 부추겼으며 공공연히 선거에 개입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다음은 주먹맛을 보여주었다. 우크라이나와 조지아가 1991년 구소련에서 독립할 때만 해도 유고슬라비아처럼 내전을 방불케 할 만큼 민족간의 갈등이 극심하지 않았음에도 결국 내전과 러시아로의 이탈로 이어진 것은 푸틴이 막후에서 부추긴 결과였다. 2014년 2월 자신이 오랫동안 공을 들인 야뉴코비치가 부패 문제와 장기집권을 노리다가 분노한 국민들 손에 쫓겨나 러시아로 망명하자 뻔뻔하게도 서방의 음모론을 내세우며 1주일 뒤 크림 반도를 무력으로 점령했다. 이것은 선을 넘은 것이었고 그동안 쌓아올린 신뢰를 한방에 무너뜨렸다. 하지만 푸틴은 덩샤오핑의 인내심을 배워야 했다. 서방은 그의 민낯을 깨달았고 지금까지의 제스쳐가 진심이 아니라 자신들을 방심시키려는 방편이라고 결론내렸다. 여론이 악화되면서 프랑스는 2척의 상륙함을 러시아가 아니라 이집트에 넘기기로 했다. 냉전 종식 이후 사실상 무장을 해제했던 나토는 러시아에 대비하기 시작했으며 러시아로부터 존립 자체를 위협받았다고 여긴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에 나섰다. 푸틴은 외교적 해결책 대신 가면을 벗고 더 이상 서방의 비위를 맞추지 않기로 했다. 그 결과가 우크라이나 침공이었다. 뜻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푸틴의 속셈은 서방을 직접 위협하지 않되, 그 대가로 구소련 시절의 세력권을 자신의 '나와바리'로 인정받겠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구 소련 형제국들을 동등한 주권국가가 아니라 러시아의 속국으로 여긴다는 얘기이다. 실제로 그는 우크라이나를 가리켜 냉전 종식과 함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실체 없는 나라이며 원래는 러시아의 일부였다고 떠들고 있다. '나토의 동진'에 그토록 발끈하는 것도 서방이 정말로 러시아를 무력으로 위협한다기보다 내 똘마니들 멋대로 빼가지 말라는 것. 하지만 서방에 불신감을 드러내기 앞서 구소련 형제국들이 러시아를 그토록 질색하는 이유부터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푸틴은 벨라루스의 루카센코처럼 코드 맞는 독재자들에게는 든든한 뒷배노릇을 하면서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프랑스 드골과 독일의 아데나워가 보여준 것같은 역사적 화해나 진정한 이웃이자 형제로서 존중하는 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는 더 이상 공산주의자가 아니지만 구소련 시절 KGB에서 배운 습성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나토 동진에 일조한 발트 3국이나 우크라이나와 조지아가 러시아 대신 친서방으로 돌아선 것도 푸틴이 하는 것마냥 서방이 그들 지도자들을 매수해서가 아니라 푸틴의 오만한 태도가 그렇게 내몬 결과이다.

2014년 마이단 혁명으로 쫓겨난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호화저택. 친러정서가 강한 동부 출신인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흔한 부패 정치인이자 그 동네의 정치적 혼란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2004년에는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부정의혹으로 물러나야 했고 6년 뒤 다시 당선되었지만 푸틴의 충복 노릇을 하면서 국가적 분열과 부패를 한층 조장하고 우크라이나군을 무력화시켰다. 우크라이나판 을사5적인 셈. 시위대에 유혈진압을 지시했다가 궁지에 몰리자 러시아로 달아나 푸틴의 보호를 받으며 호의호식하고 있다고.


보다 충격적인 사실은 러시아 국민들 또한 푸틴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이다. 배울만큼 배웠고 한국에서 10년 넘게 생활하고 있는 일리야같은 사람조차 뻔한 레파토리를 앵무새마냥 늘어놓고 있으니 말이다. 세뇌의 무서움일까. 우크라이나 전쟁 초반 러시아 참전 군인의 아내가 남편더러 우크라이나 여자를 성폭행해도 된다는 통화 내용이 공개되어 충격을 주기도 했다. 부차를 비롯하여 러시아군이 철수한 장소에서는 학살과 약탈, 강간, 고문의 수많은 전쟁 범죄 현장이 발견되었으며 수만 명의 우크라이나 아동들이 우크라이나의 러시아화를 명목으로 러시아 가정에 강제 입양되었다. 이것이 죄다 그동안 서방이 러시아의 심기를 건드린 인과응보라고 할 수 있을까. 90여년 전 독일 국민들은 서방이 자신들을 부당하게 대했다면서 히틀러의 침략전쟁을 열광적으로 지지하고 나치의 전쟁범죄에 가담했다. 이들은 히틀러의 피해자가 아니라 엄연한 공범이었다. 단지 한 나라 전체를 전범으로 처벌할 수 없었을 뿐이다. 러시아인들 역시 마찬가지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폭발한 뒤 국내에도 서방과 러시아의 문명 충돌을 다룬 책이 우후죽순으로 나왔다. 그 전에도 미국의 아프간, 이라크 침공 등 국지적 분쟁은 많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네 세상이 위기라는 얘기. 지난 2월 아카넷에서 나온 신작 도서 <서방의 패배> 또한 그 중 하나이다. 저자인 에마누엘 토드(Emmanuel Todd)는 프랑스 역사학자이자 인류학자. 주로 인류 통계학적인 관점에서 가족의 구조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연구한다고. 그래서 이 책 내내 가족이 어쩌구 타령을 하더라는. 특히 냉전이 한창이던 1976년에는 소련 붕괴를 예견하고 2002년에는 미국의 시대가 끝날 거라고 주장하여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양반들이 흔히 그러하듯 사고가 한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어 논란도 많은 모양.

이 깐깐해 보이는 할배가 저자인 에마누엘 토드. 아버지는 기자, 할아버지는 작가였으며 무려 고등학생 시절 프랑스의 유명한 68혁명이 폭발하자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했다고. 보통 싹수가 아닐세. 1951년생이니 나이가 75살인데 아직도 왕성하게 글을 쓰는 모양.


<서방의 패배(The Defeat of the West)>라는 도발적인 제목이 붙은 이 책은 저자의 가장 최신 저서로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드러난 서방의 모순과 어째서 러시아와의 대결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지를 지적한다. 문제는 특유의 반골 기질로 서방은 신랄하게 까는 반면, 푸틴에 대해서는 마치 그의 대변인이라도 되는 양 한없이 우호적이며 근거와 잣대가 일관성이 없다는 점. 덕분에 러시아 쪽에서는 당연히 호평을 받았다고.

가령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쟁'이 아니라 러시아식 표현인 '특수 군사 작전'이라고 부른다. 푸틴은 돈바스의 친러 세력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서 수도 키이우까지 진격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우크라이나 정복을 노렸고 우크라이나인들의 격렬한 항전으로 무려 4년 넘게 싸우고 있음에도 이 양반 기준에는 아무튼 전쟁은 아닌 모양. 중일전쟁을 당시 일본 지도자들이 국제 사회의 제재를 피할 요량으로 억지로 만들어낸 아전인수식 용어인 '지나사변'이라고 부르는 격이랄까. 중국인들이 노발대발할 듯. 그리 따지면 소련-아프간 전쟁이나 베트남 전쟁도 전쟁이 아니며 1940년 나치 독일의 프랑스 침공 또한 특수한 군사 작전이라고 해야 할 판.

저자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고조된 러시아를 향한 구소련 국가들과 서방의 경계심을 '자격지심'에서 나온 실체없는 공포심으로 치부한다. 왜냐하면 푸틴은 스탈린이 아니며 러시아에는 스탈린 시절과 달리 저출산과 인구 감소로 유럽을 위협할 힘이 없다는 것. 그러면서 우크라이나가 구 소련 시절 얼마나 축복을 받았으며 만약 이들이 처음부터 순순히 돈바스를 포기했다면 지금처럼 고통 겪는 일도 없었을 거라도 단언한다. 물론 푸틴은 스탈린이 아니며 스탈린이 될 수도 없다. 하지만 독재자의 모델이 스탈린만 있는가. 푸틴이 스탈린이 아니라고 해서 독재자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흐루쇼프를 비롯하여 구 소련 시절의 지도자들 역시 스탈린은 아니었으며 리비아 카타피, 이라크 후세인, 우간다 이디 아민 또한 스탈린은 아니었다. 이디 아민은 잔인함에서 본다면 스탈린도 벌벌 떨었을 듯 하지만 말이다. 오히려 스탈린은 레닌과 달리 공산 혁명의 확산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푸틴보다 훨씬 신중하고 교활했다. 적어도 답이 없는 전쟁에 매달려서 4년 넘게 수렁에서 허우적 거린 적은 없었다. 히틀러가 세계대전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소련을 다스리는데 만족했을 것이다.

러시아에는 근본적인 취약점이 있다. 바로 저출산이다. 저출산은 모든 선진국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러시아는 동원 가능한 남성 인구가 감소하는 단계에 들어갔다. 그래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정복하고 유럽을 장악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환상이나 선전이라는 것이다. 사실 인구가 감소 중인 러시아는 국토 면적이 170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여 새로운 영토를 정복하고 싶어 하지도 않고 오히려 이미 보유한 영토를 어떻게 계속 점유할 것인가에 관심이 있다. - p.57

러시아는 천연자원과 노동으로 살아간다. 자국의 가치를 세상에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나머지 세계'를 경제적으로 착취하거나 자국의 문화를 수출할 능력도 없다. '나머지 세계'의 노동으로 살아가고 니힐리즘적인 문화를 자랑하는 미국에 비하면 러시아는 '나머지 세계'에 더 나은 선택으로 보인다. 소련은 최초의 탈시민지화에 엄청나게 이바지했다. 이제 많은 국가가 러시아가 두번째 탈식민지화에 기여할 것을 기대한다. - p.281


저자의 말마따나 러시아가 미국처럼 지구 반대편까지 자국의 헤게모니를 무력으로 투사할 능력은 없다고 해도 적어도 국경을 맞대고 주먹이 직접 닿을 수 있는 만만한 구소련 형제국이나 시리아같은 친러 국가들에게는 패권국가로서의 역할을 결코 마다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간과한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앞서 2008년에는 조지아가 반러의 기치를 들었다는 이유로 응징했고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에서 분쟁이 일어나자 평화 유지를 명목으로 개입했으며 시리아 내전에는 중동의 맹우인 아사드 대통령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사병집단인 바그너 군단을 보내어 반군을 고문하고 학살하는 등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그 밖에도 미국만큼 눈에 띄지는 않더라도 여기저기 끼어들고 있다. 저자가 직접 겪을 일이 없다보니 와닿지 않는 모양.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홀로도모르로 한정해서 보는 것은 오류이다. 농업국가인 우크라이나가 스탈린에 의해 순교자가 되었지만 반대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소련의 우대를 받았다. 우크라이나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에서 첨단 항공 산업과 군수 산업을 포함한 산업 우선 개발 지역이 되었다. - p.72

나는 200년 전부터 소련, 즉 러시아의 지배로 동유럽의 현대화가 진행되었다는 주장이 언급되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쇼언바움의 실용적인 본능은 옛 인민민주주의 국가들의 러시아 혐오가 그저 옛 지배자에 대한 무의식적으로 감추어진, 수용할 수 없고 용납되지 않는 역사적 부채에 기인했다는 것을 내가 확인해주었다. - p.119


이건 우크라이나판 식민지 근대화론이랄까. 일부 학자들이 내세우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맹점은 일본이 식민지 조선에 공장을 지어준 것이 식민 지배에 대한 보상이나 이들이 기부천사라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 공장들은 일본의 기술과 자본으로 돌아갔기에 식민지인들로서는 다소의 일자리는 얻었을지 몰라도 말그대로 그림의 떡이었다. 오히려 그로 인하여 조선 경제는 일본 경제의 하청으로 예속되었으며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 자생할 수 있었던 기회를 박탈당한 꼴이었다. 일본이 패망하자 그들이 남긴 공장들은 대부분 고철이 되었고 경제가 마비되는 등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이것은 조선만이 아니라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한 뒤 겪거나 지금까지도 겪고 있는 일이며 우크라이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름 좌파 지식인이라는 양반이 이런 뻔뻔한 논리를 내세울 수 있는지 모르겠다. 프랑스는 지배하는 쪽이지 지배받는 쪽은 아니었기 때문일까.


구 소련 영역이 붕괴한 뒤로 체코인들과 슬로바키아인들은 더는 함께 살고 싶지 않아서 사이좋게 헤어졌다. 지배 세력이었던 체코인들이 지배권을 포기한 것이다. 러시아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의 사이가 더는 좋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지역은 분리시키고 모두가 인정하는 세력 중 일부의 도움을 받아 국민국가의 건립에 집중했어야 했다. 그러나 2014년 이후 우크라이나는 돈바스와 그곳의 러시아 주민을 되찾으려고 전쟁을 계속했으며 크림반도와 그곳에 거주하는 러시아 주민들을 되찾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다른 나라, 그러니까 자국보다 힘이 훨씬 센 나라의 주민에 대한 권리를 유지하려고 했다. - p.99


아무리 남의 일이라지만 우크라이나인들 입장에서 본다면 그 놈의 알자스-로렌을 놓고 독일과 두번이나 세계대전을 초래했던 프랑스인이 할 말은 아닐 듯 하다. 하물며 돈바스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강탈한 땅도 아니고 푸틴이 무력으로 사정없이 진압했던 체첸처럼 처음부터 분리 독립을 요구했던 지역도 아니다. 1991년 우크라이나가 독립했을 때 돈바스와 크림반도는 러시아로의 편입 대신 우크라이나에 남는 쪽을 선택했다. 비록 우크라이나가 국민 통합에 실패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책임이 전적으로 우크라이나에만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어느 나라가 주변 강대국의 위협을 이유로 자국 영토를 함부로 포기할 수 있을까. 설령 돈바스를 러시아에 내준다고 해서 푸틴이 여기서 만족할 거라고 누가 장담한다는 말인가. 193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를 놓고 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체임벌린은 히틀러의 편을 들어 체코의 양보를 종용했고 체코 또한 순순히 받아들였지만 그 결과는 평화가 아니라 세계대전의 폭발이었다. 서방이 푸틴의 야심을 경계하는 것은 그런 어리석은 역사를 되풀이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푸틴은 서방의 불신을 푸는 대신 크렘린 궁전 깊숙한 곳에 앉아서 핵공갈만 일삼고 있다. 누가 그를 신뢰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한낱 책상물림 학자인 저자야 아니면 말고 식으로 떠들 수 있을지 몰라도 정치인들로서는 자기 결정에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공산주의로의 사회 변환과 능력 위주의 소련식 교육으로 만들어진 러시아 중산층도 나머지 국민과 마찬가지로 푸틴 시대의 사회적 평화를 누린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앞에서 보았던 자살률, 살인율, 알코올 중독에 의한 사망률 감소이다. 유아 사망률은 러시아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던 평화로운 정신적, 사회적 분위기의 효과이자 상징으로 보아야 한다. 실랴펜토흐는 자유를 포함하여 러시아의 생활 환경이 푸틴 때만큼 좋은 때가 없다고 강조한다. - p.55

우크라이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고 따라서 태동하는 우크라이나 자유민주주의를 구하려고 달려드는 서방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이데올로기적이고 저널리즘적인 사고는 명백히 부조리하다. 서방 자유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 연결점이 있다면 그것은 전혀 다른 성격의 정체성에 근거한다. 유럽과 아메리카노스피어를 다룬 꼭지들이 보여주듯이 서방은 더는 자유민주주의 세계가 아니다. 서방이 지금 어떤 세계인지 말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지만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서방에서 겹치는 가치가 많고도 심오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가치가 민주적이지도 자유주의적이지도 않지만 말이다. - p.104

서방에서 가장 많은 보호를 받는 소수는 바로 부자들이다. 러시아에서는 동성애자이든 올리가르히든 보호받는 사람이 없다.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는 따라서 '자유주의적 과두제'가 되었다. 전쟁의 이데올로적거 의미는 바뀐다. 서방의 자유민주주의가 러시아의 권위주의와 싸우는 것이라는 지배적인 생각은 실제로는 서방의 자유주의적 과두제와 러시아의 권위주의적 민주주의의 대결이 되었다. - p.137


저자는 푸틴의 러시아를 가리켜 '권위주의적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그게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면서도 우크라이나는 서구가 생각하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비판한다. 정치가 우크라이나인들 전체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리 따지면 러시아는 그렇지 않은가. 러시아 또한 모스크바 시민과 변방의 소수민족들이 같은 권리를 누리지 않음에도 말이다. 저자는 푸틴이 러시아를 안정시키고 경제를 발전시켰다면서 극찬하지만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놀라운 성장에 비하면 보잘 것 없다. 러시아의 1인당 GDP는 서방은 커녕 튀르키예만도 못하며 석유와 천연가스, 일부 무기 분야를 제외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네임드 있는 기업이나 제품이 있는가. 러시아 남자들의 평균수명은 북한이나 캄보디아보다도 짧다.

우크라이나가 서구의 잣대에서 미흡할지는 몰라도 지금의 통치자인 젤렌스키는 시진핑이나 푸틴이 그러했던 것처럼 전임자와의 밀실야합으로 자기들끼리 권좌를 주고 받는 식이 아니라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선택을 받았고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실현했다. 적어도 푸틴이 20년째 장기집권하는 러시아보다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얘기이다. 젤렌스키가 링컨은 아니라도 더 오랫동안 집권하고 더 부패한 쪽은 그가 아니라 푸틴이다. 민주주의 실험을 한 지 불과 30년 밖에 안 된 나라더러 저자의 눈에 차지 않는다고 질타하는 것부터 어불성설이다. 그보다도 서구가 우크라이나를 돕는 것은 저자의 생각처럼 민주주의 동맹이라서가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위기가 서방 자신의 위기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푸틴이 캅카스에 있는 조지아를 침공했을 때에는 서방은 방관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조지아는 서방에서 멀고 우크라이나는 가깝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가 자주 들었던 소리와 달리 러시아 군대는 병사를 아끼기 위해서 느린 전쟁을 선택했다. 찔끔찔끔 진행되었던 동원령과 전쟁 초기에 체첸 군대와 바그너 그룹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도 그런 선택이다. 러시아의 우선순위는 최대한 많은 영토를 차지하지는 것이 아니라 병력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다. 2022년 가을 대동원령 이후 벌어진 우크라이나의 반격으로 3대1의 수세에 몰린 러시아는 동부 하르키우주를 포기했고 남부에서는 싸우지도 않고 드니프로강 좌안으로 철수했다. 이 결정을 내린 세르게이 수로비킨 장군은 쓸데없이 병사를 희생하지 않고도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 p.58


저자는 저출산의 압박을 받는 푸틴이 스탈린과 달리 나름대로 인명을 아끼는 전쟁을 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전쟁이 길어지는 거라고 주장한다. 서방의 주장처럼 병사들을 무한정 갈아넣지 않는다는 얘기. 사실 여부를 떠나서 그가 정말로 지도자로서 책임감이 있다면 애초에 전쟁 대신 주변국과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데 좀 더 신중했을 것이다. 더욱이 기왕 시작한 이상 본전이라도 찾겠다며 출구없는 전쟁을 질질 끌고 심지어 유엔 결의안을 위반하고 국제사회의 왕따인 북한한테까지 가오 안 서게 손을 벌리는 모습이 과연 러시아 병사를 아끼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말인가. 이 쯤 되면 저자의 정신세계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이 책에서는 서방이 푸틴과의 대결에서 결코 이길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소위 '개신교의 좀비화'로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은총을 잃고 기존의 가족 제도가 해체되었으며 '니힐리즘(Nihilism, 허무주의)'와 동성애가 확산되면서 출산율이 저하된 탓이라나. 왜 기독교가 아니라 굳이 개신교라고 콕 찍어서 지칭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영국은 그렇다쳐도 프랑스는 가톨릭 국가 아니었음? 그러면서도 일본, 중국, 한국 등 아시아의 부상은 유교에 의한 전통적인 가족 문화가 든든히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라는 것.

전쟁에 대한 영국의 격노는 그런 것까지 바라지 않았던 미국을 당황스럽게 했다. 영국은 언제나처럼 미국을 따라 하기만 했으면 충분했을 것이다. 제2차 걸프 전쟁에서 부시를 따라 참전한 블레어처럼 말이다. 영국의 우스꽝스러운 짓거리에는 비극적인 이면이 있었다. 영국은 보내줄 물자도 많지 않았으면서 단계마다 전쟁을 악화시켰다. - p.178

1870~1930년 무너진 개신교는 이렇게 반으로 갈라진 개신교이다. 이때 내가 좀비 개신교라고 불리는 것이 등장했다. 성서에 나온 계명을 모두 지키지 않는다는 신호로 출산율이 추락했다. 개신교라는 틀이 사라진 영국은 순수한 국민주의를 발견했고 별다른 고민 없이 제1차 세계대전의 살육에 참여했다. 이 전쟁은 프랑스와 독일의 맹렬한 군사적 충돌을 넘어서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당시 두 경제 강대국을 대치시켰다. 이 두 국가는 좀비 상태로 넘어가던 개신교 국가 독일과 영국이다. - p.196

위기는 종교적이고 문화적이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도 국가는 개신교의 자녀이고 개신교의 점진적 소멸은 국가를 위태롭게 한다. 종교가 제로 상태에 다다르면 작은 국가에서는 국가적 불안이 생기고 결국 국제적 불안이 발생한다. 어쩌면 거기에서 안보에 관한 욕구가 생겼고 그 욕구를 나토 가입이 채워줌으로써 있지도 않은 외부의 위협을 물리치려는 것이리라. 인느 지금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스칸디나비아반도 국가들에게서 위협감이 자라기 때문이다.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 가입을 요청한 것은 러시아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욕구가 아니라 순전히 소속감에 대한 욕구이다. - p.217

과거의 독일 니힐리즘처럼 미국 사회의 부정적인 모습은 개신교의 해체가 낳은 결과이다. 오늘날의 위기는 개신교의 제로 상태에 해당한다. 개신교의 제로 상태를 통해서 우리는 트럼프 현상과 바이든의 대외 정책, 내부로는 썩어 들어가고 바깥으로는 과시벽을 보이는 미국, 미국 시스템이 자국 시민과 다른 국가의 시민에게 가하는 폭력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 - p.223

아시아 학생의 높은 비중은 역차별의 결과가 아니라 아시아의 높은 교육열 때문이다. 개신교가 사라지면서 교육열과 노려에 대한 숭배도 함께 사라졌고 자녀를 잘 돌보지 않는 절대적 핵가족이라는 인류학적 배경 때문에 백인들의 학습 능력은 크게 떨어졌다. 개신교도와 가톨릭 교도 자녀들의 SAT 점수와 평균 지능지수는 동시에 떨어졌다. 일본, 한국, 중국, 베트남 이민 가정의 자녀들은 한두 세대 정도 권위적인 가족 구조와 교육을 신성시하는 유교 전통이 대물림되었기 때문에 같은 추락을 겪지 않았다. - p.262


저자는 서방의 몰락을 종교적 믿음의 약화와 가족의 해체에서 원인을 찾는다. 그렇다고 치자. 어쨌든 서방이 몰락하고 있는 건 분명하니까 말이다. 특히 요근래 트럼프가 위대한 미국 어쩌구 하면서 헛발질만 거듭하는데도 여전히 미국인의 1/3이 지지하는 것만 보더라도 정상은 아닌 듯. 하지만 저자는 러시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그냥 푸틴이 잘하고 있으며 서방은 그를 이길 수 없다는 식.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랄까.

저자는 서구가 푸틴에 대해 착각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이 푸틴을 잘 못 보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 듯 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구 좌파 지식인들의 가장 큰 오류는 서방과 러시아에만 주목할 뿐, 전쟁의 또다른 당사자인 우크라이나가 주변 강대국들에 의해 이리저리 지조없이 휘둘리는 갈대같은 존재가 아니라 엄연히 정체성을 가진 독립된 인격체라는 사실을 망각한다는 점이다. 6.25전쟁이 단순히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의 대리전쟁이 아니라 우리 또한 전쟁의 한 축을 맡은 주연의 하나였던 것처럼 말이다. 역사를 강대국들만의 전유물로 여기는데 익숙한 서구 사람들의 오만함이랄까. 하물며 우크라이나는 아프간 친미 정부나 남베트남처럼 미국이 인위적으로 만든 꼭두각시가 아니라 그들이 쟁취해낸 것이다.

이거 하나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미국은 러시아에서 푸틴에 대항하는 봉기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꿈꾸지만 그야말로 꿈에 불과하다고. 그 옛날 프랑스 보수주의 사상가 조제프 드 메스트르(Joseph de Maistre)가 이렇게 말했다던가. 모든 나라는 자기들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얻는 법이라고. 그렇다. 푸틴이 러시아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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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사적인 영국 - 노동자 계층 출신 잉글랜드인이 이야기하는 영국 지구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피터 빈트.홍성광 지음 / 틈새책방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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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에 도쿄에 갔던 것이 기억난다. 그 전에도 일본은 몇 번 갔지만 도쿄는 처음이었다. 워낙 공사가 다망한데다 귀차니즘 덕분에 여행이 취미는 아니지만 말이다. 아무튼 내 눈에 비친 도쿄의 인상은 아시아의 수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6년 전 방문했던 베이징이 끔찍할만큼 복잡한 인산인해에 시끌벅적하고 돈과 권력이 넘쳐나지만 밑바닥 시절의 티를 못 벗은 졸부의 도시라면 도쿄는 마치 30년 전 자신이 가장 화려했던 시절의 추억에 갇힌 채 시간이 멈춘 듯한 늙은 여배우랄까. 그렇다고 유럽 도시들처럼 과거로 먹고 산다기에는 또 잿빛의 삭막한 느낌이다. 달리 말해서 도쿄는 현대적이지만 그 안에서 변화와 활력은 느껴지지 않는 도시였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같아라던 버블 시대의 도쿄. IMF가 터졌을 때 조중동에서 한다는 소리가 서민들의 과소비 타령을 했던 것이 기억나는데 과소비는 개뿔, 진짜로 돈지랄한 쪽은 바로 저 동네였다는. 소위 '사토리 세대'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신화시대 얘기일 듯.


지하철 표를 끊으려면 아직도 동전을 써야 하고 노선은 복잡한데다 국철과 사철이 뒤섞인 덕분에 환승이 너무 헤깔렸던 것이나, 로봇 서빙이나 키오스크는 고사하고 카드 결재도 안되어 아직도 현금을 써야 하는 식당들이 태반이더라는 2000년대의 우리를 연상케 하는 특유의 아날로그 지향적인 모습은 둘째치고, 도쿄를 다니는 내내 우리의 서울역이나 광화문처럼 확성기를 들고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목이 터져라 외치는 먹사님도, 태극기와 성조기를 휘두르는 어르신들도, 살벌한 정치 구호가 적힌 현수막도 없었다. 아키하바라에서 메이드 코스프레 옷을 입고 알 수 없는 호객을 하는 아가씨들은 많이 본 듯. 사람들은 바쁘게 다니지만 영화 <매트릭스> 속 사람들처럼 루프를 도는 것마냥 반복되는 일상을 기계적으로 살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요즘 옆동네 섬나라에서 유행한다는 '이세계행 트럭' 이런 밑도 끝도 없는 레파토리가 인기를 끄는 것은 그만큼 삶이 따분하고 재미없다는 얘기. 한때 미국의 아성조차 위협하던 일본이 어쩌다가 이런 꿈도 희망도 없는 나라가 되었는지. 극동의 나우루가 된 듯한.


솔직히 몇년 산 것도 아니고 고작 며칠 보고 온 주제에 다 아는 양 젠체하는 것도 우습지만 따지고 보면 사람 사는 동네가 다 그기서 그기일 것이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상대성 이론을 발견한 아인슈타인의 말마따나 도쿄의 시간이 멈춘 것이 아니라 우리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르기 때문은 아닐까. 오십줄인 내가 어렸을 때를 돌이켜보면 격세지감을 넘어서 아예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느낌이다. 그만큼 급하게 달려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워낙 빨리 바뀌다보니 때로는 따라가는 것조차 힘겹다. 이게 나이를 먹는다는 증거일지도. 이만하면 잠시 한숨 돌린다고 큰 일 날리도 없을 것인데 여전히 부족하다며 더 달려야 한다고 채찍질하는 것이 우리 사회이다. 전 국민이 강박증에 걸린 것처럼 무한 질주의 경쟁이다. 흔히 말하는 '사교육 망국병'이라는 것도 그저 일부 학부모들의 비뚤어진 자식 사랑 탓이 아니라 남들이 죄다 달리는데 내 자식만 달리지 않으면 도태되어 설 자리조차 없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마음에 여유가 없다보니 잠깐을 참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불의를 보면 내 일인양 분노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있으면 내 한 몸을 돌보지 않고 뛰어드는 것도 우리의 또 다른 단면이다. 외국인들이 보면 세상에서 이토록 변화무쌍한 사람들이 다 있나 할지 모르겠다.

평소 <톡파원>이나 <걸어서 세계속으로>같은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여행 덕후라면 꼭 읽어볼만한 책이 나왔더라. 틈새책방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지극히 사적인 영국>이다. 시리즈인 모양인데 영국 말고도 러시아, 일본, 프랑스, 심지어 우리같은 일반인으로서는 평생 인연 없을 동네인 네팔도 있더라는. 저자는 피터 빈트. 생긴 걸 봐서는 백인 아닌 거 같은데(뭔가 피부 하얀 인도인같달지.) 아버지는 영국인, 어머니는 한국인이라고. 직업군인이었던 부친이 한국에 유엔군으로 복무하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주한 영국군은 한국전쟁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주둔하다가 1993년에 모두 철수했다. 영화 <배트맨>에서 집사 양반(마이클 케인)이 주한 영국군 출신. 무려 6.25 때 중공군과 싸웠던 전쟁영웅이기도.


어린 시절 영국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와서 영어 강사를 한다는데 <벌거벗은 세계사>를 비롯하여 여러 방송에도 출연했다고 한다. 언변과 쇼맨십이 있는 모양. 덕분에 "세계사에서 뭔 일이 있으면 그 뒤에는 대충 영국이 있더라"라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담서.


<지극히 사적>이라는 제목따나 이 책은 저자가 지극히 사적으로 얘기하는 영국 이야기이다. 평범한 소시민A인 피터 빈트가 영국에서 살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했던 영국 역사, 문화, 정치, 가치관, 정서, 일상, 부랄 친구넘들 농담 따먹기까지 온갖 시시콜콜한 것을 담고 있다. 한마디로 사람 사는 얘기. 그래서 재미있다.

아마 영국에서만 살았다면 '영국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해보지 않았을 것같다. 나는 영국인보다는 잉글랜드인으로 살아왔고 '영국인'이 무엇인지 굳이 따져볼 일이 없었다. 그런데 한국 뿐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영국이라는 나라를 소개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마다 영국에 대해 떠올리는 이미지가 조금씩 다르고 궁금해하는 지점도 제각각이다. - p.19

영국은 교육에서 전쟁을 비중있게 다루는 반면, 식민지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최근 들어서야 식민지 역사를 다루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생기고 있지만 내가 학교에 다닐 때에는 배우지 않았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세대의 영국인들은 식민지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거의 알지 못한다. 이런 인식 때문에 외국인들은 불편하고 거부담이 들 것이다. - p.47

영국에서는 노동자 계층이라고 해서 자신의 계층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자신이 노동자 계층인 것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겉으로라도 그렇다. 내 힘과 능력으로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딱히 상위 계층으로 올라가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다. 상류층의 품격이나 매너는 관심 밖이다. 노동자 계층은 자신들의 매너를 지키면서 영국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 p.108

어쩌면 영국인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것을 항상 확인하려고 하는 것 같다. 자랑스러운 곳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으면 안심하고 만족한다. 그러고는 끊임없이 그것을 확인한다. 영연방도 그렇고 축구팀도 그렇다. 나름 자랑할 역사이고 남들이 인정해준다. 그래서 더욱 전통과 역사를 지키는 것같다. - p.129

영국에서는 축구를 보면서도 남자답게 봐야 한다. 주변에 애들이 있든 말든 욕을 하고 상스러운 응원가를 부르고 상대 팀을 깔아뭉개야 한다. 같이 욕하고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손가락질을 받는다. 그러다가 밖에 나가면 표지판을 부수거나 물건을 집에 가져오기도 한다. - p.150

영국 남자들은 많은 걸 할 줄 알아야 한다. 마당 위에 차고를 만들거나 마루를 깔거나 페인트 칠은 기본적으로 해야 한다. 하수구를 손보고 전기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이런 걸 할 줄 알아야 진정한 '가장'이라는 느낌이 든다. 내가 못해서 다른 사람을 부르면 또 놀림을 받는다. 내 친구 중 한명은 이런 걸 너무 잘해서 다른 집 아내들이 탐을 낼 정도였다. - p.185

한국에 와서 의아했던 것 중 하나는 비가 조금만 내려도 사람들이 우산을 챙기고 약속이나 행사를 취소한다는 것이었다. 영국에서는 그 정도 비는 우산 없이 그냥 다닌다. 날씨에 대해 가끔 불평은 해도 일상을 바꿀 정도는 아니다. 날씨는 그냥 날씨이다. 비 때문에 약속이 취소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 p.248

한국의 아파트는 창문도 이중 새시로 되어 있어서 손을 댈 수 없다. 너무 독특하게 바꾸면 나중에 집값이 떨어질 수도 있고 돈도 많이 드니 그냥 살아야 한다. 다락방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다. 영국의 주택들은 보통 2층이 있고 지붕밑에는 다락방을 만들어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이런 모든 것을 포기하고 똑같이 생긴 집에서 살아야 한다. - p.289

영국에서는 소재에 제한이 없다. 정치인들은 물론 왕실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장애인들도 유머의 소재가 된다. 모든 것이 풍자와 조롱의 대상이다. 1984년부터 1996년까지 방영되었던 <닮은 꼴>이라는 정치 풍자 인형극이 좋은 예다. 왕실이나 정치인을 본뜬 우스꽝스러운 인형으로 조롱과 풍자, 패러디를 했는데 선이 없는 영국식 유머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 p.343

영국에서 친구를 만나는 일은 즐겁지만 그 시간을 보내는 건 힘든 일이 될 때가 있다. 친한 사이일수록 서로 놀리는 게 만나서 하는 일이다. 서로 칭찬 같은 건 절대로 하지 않는다. 친구끼리는 서로 비하하고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여기에 하나 더 사르카즘이 추가된다. 비꼬고 빈정거리고 풍자하는 것이다. 절대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안 되는 데 웃어서도 안 된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평온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누군가 나를 비하하면 스스로를 더 비하해 준다. - p.347

한국 문화에 빠진 외국인들에 한국은 판타지 같은 나라이다. 외국에서 살고 있는 K-컬처 팬들에게 한국은 완벽한 나라처럼 인식되는 것 같다. 일단 K-컬처는 포장이 완벽하다. 예쁘고 멋있는 모습을 극대화하여 보여준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말도 통하지 않기에 한국은 이국적이면서 환상적인 나라로 비쳐진다. - p.384

바로 옆동네 섬나라 일본을 가리켜 '가깝고도 먼 나라'라면서 본능적으로 바깥세상에 대한 정서적 거리감을 느끼는 우리로서는 지구 반대편 나라인 영국은 그야말로 멀고도 먼 이세계이다. 기껏해야 두 세기 전에 중국을 조졌던 아편전쟁이나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또는 <킹스맨> 정도가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정작 영국인인 저자는 <킹스맨>을 미국넘들이 멋대로 가공한 창작물일 뿐, 진짜 영국이 아니라고 단언하지만 말이다. 역사적으로도 우리가 영국과 접점을 가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구한말에 영국군이 러시아를 견제한다고 거문도를 잠시 점령한 것이나, 한국전쟁 때 영국군이 유엔군의 일원으로 왔던 것 정도일까. 서로 다른 것이야 당연하지만 두 나라를 오가면서 살아본 저자의 얘기를 읽어보니 달라도 정말 많이 다른 것같다.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점에서는 우리가 영국보다 훨씬 편리하겠지만 그 대신 삶의 여유에서는 영국이 좀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서비스료가 워낙 비싼 탓에 차 수리부터 집안에서 어지간한 일은 스스로 고치는 것이 영국 가장의 기본이라고 하니 손재주가 없는 나로서는 영국 가서 살 생각부터 접어야 할 듯하다. 그럴 일도 없겠지만.

요즘이야 워낙 풍요롭다보니 어릴 때부터 해외 여행은 기본이요, 어학연수, 유학 등으로 외국 물 먹을 기회가 많아지면서 환상이 별로 없겠지만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탈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할 때가 있었다. 워낙 대한민국이 '헬'이다보니 적어도 바깥 세상은 여기보다는 더 나을 거라는 막연한 현실 도피랄까. 요즘 일본 젊은 세대들이 '이세계행 트럭'을 찾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봐야 사람 사는 동네가 죄다 그기서 그기이고 좋은 점이 있으면 불편함도 있기 마련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걸 몰라서 하는 소리도 아닐 것이다. 요근래 와서는 K-컬처 덕분에 도리어 외국인들에게 우리가 그런 동경의 대상이라고 하니 이 또한 격세지감이다.

전 세계에 '달고나'라는 K-푸드를 알리는데 일조한 <오징어 게임> 세계 각지에서 달고나 만든다고 국자 태워먹고 마눌님한테 혼난 아재들 많을 듯.



읽다보니 밀덕으로서 흥미로운 대목이 있더라. 영국 해군과 공군은 '왕립(Royal)'인데 육군은 그냥 육군(British Army)이라고. 육군의 뿌리가 17세기 영국 내전 당시 찰스 1세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 의회파 군대이기 때문. 자기네 손으로 왕 목아지를 잘랐으니 왕의 이름을 들먹일수야. 그럼에도 세계 최초의 기갑연대인 왕립 기갑연대라던가, 왕립 리버풀 연대처럼 '왕립'이 붙었으면 군주가 직접 편성에 관여하거나 충성을 맹세한 부대라는 것. 여태껏 전쟁사를 읽으면서 그냥 그런 갑다 했는데 이런 특수한 역사가 있었던 모양.

예전에 다산초당에서 나온 <30개 도시로 읽는 영국사>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영국을 대표하는 주요 도시에 얽힌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서 영국이라는 나라를 알아가는 내용이라면, 이 책은 피터 빈트라는 사람을 통해서 알아가는 셈이다. 남 못지 않은 영국 사랑과 더불어 절반은 한국인이면서 한국에서도 오래 산 사람답게 왕실을 바라보는 영국인들의 시각이라던가 영국 음식도 사실은 맛있다는 둥 영국을 그저 인터넷 잡지식으로만 배우는 우리의 편견을 정면에서 깨뜨리고 영국에 품는 다양한 궁금증에도 대답한다. 물론 그가 영국인 전체를 대표할 수야 없겠지만 어쨌든 그것도 영국임에는 틀림없다. 오히려 같은 소시민으로서 훨씬 정답게 와닿는 느낌이다. 그러고보면 <지극히 사적인 한국>도 나올만하다. 물론 우리가 아니라 한국에 관심있는 외국인들을 상대로 말이다. K-컬처로는 알 수 없는 대한민국의 또 다른 단면을 보여줄 기회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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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에 담긴 문화사, 끽다점에서 카페까지 - 이길상 교수가 내려주는 커피 이야기
이길상 지음 / 싱긋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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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커피가 좋다. 흔히 인간의 3대 욕구를 식욕, 성욕, 수면욕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하나를 더하라고 한다면 틀림없이 커피욕이다. 매일 1리터 두 병을 갖다놓고 물처럼 마시는 중. 그렇다고 직접 커피 갈고 로스팅해서 맛과 향을 음미하는 커피 덕후는 아니지만 어쨌든 커피 없이는 못 버티는 몸이 되었다. 조선 시대 틈만 나면 장죽대 물고 있던 우리 조상님들은 담배를 가리켜 '식후 제일미(食後第一味)'라고 했다던가. 담배 안 피는 나로서는 그딴 풀 태운 연기를 들이마시는 것보다 더운 여름에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잔이야말로 나른한 오후를 맨정신으로 버티게 하는 진정한 식후제일미요, 현대인들을 위해 신이 내린 선물이다. 이 천상의 음료를 맛보지 못하던 시절의 인류는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살았을까 싶다.


심지어 이런 생각도 든다. 그 옛날 마리 앙투아네트는 "커피 없으면 콜라를 먹으면 되지"라고 했다가 혁명으로 목이 몸과 분리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한 이유는 커피 대신 치커리 따위나 우려먹었기에 사기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고 동독 사람들은 커피도 마음껏 마시지 못하는 이 따위 체제 타도하자면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이라고. 미국 독립전쟁의 서막이었던 보스턴 차 사건도 사실은 차가 아니라 커피였을지도. 어디 차 따위를 피같은 커피에.

커피는 사실 과일이람서.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는 과일이요, 땅에서 나면 야채라던가. 흔히 커피콩이라지만 콩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브라질 커피이니 자바 커피이니 세상에는 다양한 커피가 있지만 원래 커피의 발원지는 에티오피아라고 한다. 그런데 저 뻘건 열매를 볶고 물에 끓여서 우려먹는다는 발상을 어떻게 했을까. 에티오피아에서 전해 내려오는 도시 전설에 따르면 옛날 옛적 칼디라는 이름의 한 목동이 염소를 풀어놓았는데 염소 한마리가 정체불명의 붉은 열매를 먹더니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 밤에 잠도 안 자길래 자기도 시험삼아 먹어보니 온 몸에 에너지가 넘치더라, 그때부터 사람들이 커피의 효능을 알게 되었다는 것. 카페인은 어쨌든 생으로 먹을 만한 맛은 아닐 것인데 말이다. 칼디가 실존인물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되었건 그것을 맛볼 생각을 했던 놈이 있었을 것은 분명하다. 인간의 호기심은 실로 놀랍다. 하긴 복어를 요리하겠다고 덤빈 것에 비하기야 하겠냐만.

그것이 중동을 거쳐서 유럽으로 전파되고 '악마의 열매'라는 둥 온갖 음해와 모함에도 불구하고 대항해 시대를 통해서 신대륙과 전세계로 퍼져나갔으며 19세기 지식인들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혁명을 논했다고. 그리고 그 마수는 어느듯 은둔의 나라 조선에까지 닿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 현대인들에게 커피는 한낱 기호품이 아니라 생활 필수품이자 커피 덕분에 하루가 길어지고 수많은 혁신이 탄생할 수 있었으니 인류 문명에 엄청난 족적을 남긴 셈. 커피가 없었으면 어쩔 뻔. 특히 나부터. 그렇다고 사탕수수처럼 한때 귀하신 몸에서 이제와서 비만의 적으로 취급받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인간의 행복을 위해 진화하신 기특한 존재인듯.

오늘도 커피 없이 못 버티는 커피당이라면 주목할 책이 나왔다. 커피가 처음 조선 땅을 밟았던 구한말부터 치킨집보다도 더 많은 커피숍이 동네 구석구석마다 차지한 채 식후의 우리 직장인들을 유혹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커피 100년사이다. 굵직굵직한 정치사부터 소시민들의 애환에 이르기까지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자인 이길상 교수는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 대학원 교수이면서 커피 작가이자 <커피 히스토리>라는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라고 한다. 실로 커피에 죽고 못 사는 이땅의 진정한 커피 덕후인 듯.

일명 대한민국 커피 인문학자라는 저자. 커피와는 별개로 한국학 교수로서 외국에서 잘못된 우리 역사를 바로잡는 일에 앞장서기도.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커피가 처음 소개된 것은 구한말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가 절정이던 1852년, 윤종의라는 사람이 쓴 <벽위신편>이라고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책의 목적은 정약용처럼 신문물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위정척사와 서양 세력을 배척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물며 그 시절 뇌 굳은 사대부가 직접 커피를 어디서 구해다가 맛 봤을 리도 없고 중국쪽 책 어느 대목에서 "양놈들은 커피라는 것을 마신다카더라."라는 것. 어쨌든 변방의 조선 땅에서 처음으로 커피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우리나라에 커피라는 음료가 처음 기록된 시기는 1852년으로 인문지리서 <벽위신편>에 언급되어 있다. <벽위신편>은 1848년 윤종의가 서양의 위력과 종교로부터 조선을 지키기 위한 방책 제시 목적으로 쓴 책으로 4년 뒤 중국의 <해국도지>와 <영환지략>을 참고하여 개정하면서 커피를 소개했다. 이들 책에 "필리핀에서는 커피라고 하는 편두(까치콩)과 비슷하고 청흑색인 열매를 볶아 끓여 마시는데 맛은 쓰고 향은 차와 비슷하다"라고 기술된 커피 생두의 모양과 만드는 법, 맛에 대한 내용을 <벽위신편>에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다. - p.16

그리고 국내에 밀입국한 프랑스 선교사였던 시메옹 프랑수아 베르뇌(Simeon Francois Berneux) 신부가 선교를 하면서 조선인 신도들에게 커피를 맛보게 하면서 이 땅도 커피에 물들게 되었다. 한 마디로 커피로 사람을 낚은 셈. 실제로 베르뇌는 대량의 커피를 끊임없이 주문했을 만큼 효과 작렬이었다고. 군대 시절 초코파이 하나에 주말을 헌납했던 나같은 나이롱 신도들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지. 하지만 뽀록나는 바람에 박해가 시작되었고 결국 병인양요로 이어졌다. 흥선대원군부터 커피의 마수에 빠뜨렸어야. 정작 아들인 고종은 둘도 없는 커피 애호가가 되었지만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고집쟁이 아버지를 향한 반항심의 발호였는지도.

조선인 소년이 미군 장교가 되어 금의환향한다는 판타지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에서 커피를 즐기는 고종. 겉은 개화되었으나 알맹이가 그대로다보니. 이 양반도 따지고 보면 불같은 아버지와 드센 마눌님 사이에 끼어서 눈치 보느라 어지간히 마음 고생했을 듯.


하지만 중세 시절 커피를 이교도의 음료라면서 교황이 직접 커피 나무 화형식까지 했던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커피는 온갖 박해와 수난을 당해야 했다. 그것도 불과 십수년 전까지 말이다. 가난한 나라에서 외화 한푼이 아쉬운 판국에 주식도 아닌 커피를 수입한답시고 막대한 돈을 허비한다는 이유였다. 커피는 사치와 낭비의 대명사였고 퇴폐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러고보면 내가 학창 시절에만 해도 동네 다방에는 레지라고 불리는 짧은 핫팬츠 입은 언니야들이 점심 때만 되면 스쿠터타고 커피 심부름을 했었던. 물론 요즘은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어차피 수요가 있으니 공급도 있는 것인데. 1997년 IMF가 터지자 애꿎은 커피가 외화낭비의 주범인양 여론의 몰매를 맞고 관공서에서는 커피 안마시기 운동이 벌어졌다고. 전문 커피숍인 스타벅스가 처음 생겨나자 점심값보다 비싼 커피를 마신다고 모 신문에서 질타하던 언제인가 싶다. 지금 생각하면 실소 나올 일이지만 그때는 그랬다. 이 책은 이런 얘기를 담고 있다. 시시콜콜한 것까지 어떻게 찾아냈나 싶을 정도.

고종은 우리나라에서 커피를 마신 첫번째 임금일 뿐만 아니라 커피를 꽤 즐겼던 인물이었다. 그에게 커피의 즐거움을 알려진 이는 아마도 초기의 의료 선교사, 서양 외교관, 마리 앙투아네트 손타크나 파울 묄렌도르프같은 서울 거주 외국인이었다. 고종은 식사 후에 커피를 마시는 것이 일상일 정도로 커피를 늘 가까이 했다. 힘든 시기를 살아야 했던 고종에게 커피는 위로의 음료였다. - p.38

일본식 카페 문화 유입으로 조선 카페에 등장한 흥미로운 서비스 중 하나는 광학적으로 성적 도발을 유도하는 것, 당시 용어로 '광학 서비스'였다. 홍등과 청등, 즉 현란한 불빛으로 성적 흥분을 일으키는 서비스였다. 실내조명을 가능한 어둡게 하여 여급과 고객을 편리하게 해 주는 서비스였다. 단속 대상이었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1931년 10월 17일 <매일신보>에 따르면 본정 경찰서는 연락정에 있는 카페 '미쓰와'에서의 흐릇하고 컴컴한 광선 사용을 문제 삼아 주인을 호출한 후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 - p.112

1947년 2월 26일 <조선일보>는 "전 이왕가의 최근 소식, 동경서 다방 경영"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마이니치 신문> 보도를 인용한 이 기사에 따르면 이왕가 일족은 도쿄 시부야에 카페를 차렸다. 종래의 생명선이던 일본 국고의 보조금이 끊기자 선택한 길은 커피를 파는 일이었다. 상궁과 나인이 웨이트리스가 되었다. 먹고 살기 어려울 때 카페를 차리는 일, 그때나 지금이나, 왕후장성이나 서인이나 차이가 없음을 실감케 했다. 스스로 막지 못한 불행한 국망, 스스로 이루지 못한 불완전한 광복이 초래한 아픔이었다. - p.192

5.16군사 정변이 일어난지 2주일 후인 5월 29일 아침을 기해 다방에서 커피가 일제히 자취를 감추었다. 다방업자들이 자진하여 커피 판매를 중단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쿠데타 세력이 취한 강제 조치였다. 강제 조치가 아니었음을 강변했지만 믿는 사람은 없었다. 치안 국장은 "어제 28일 다방업자들을 불러서 막대한 외화를 소비하는 커피를 되도록 팔지 말고 생강차나 기타를 대용하여 팔도록 함이 어떻겠는가라고 권장했다."라고 발표했다. 강제로 커피를 팔지 말라는 말이 아니었음을 거듭 강조했다. - p.243

검찰에 따르면 장안다방 박군은 커피 1파운드에 보통 100잔 정도 나오는 양을 담배 가루와 소금을 넣어 250잔 내지 300잔을 만들어 하루 600여잔 씩, 유리다방 김씨는 하루 700여잔씩 팔아왔다는 것이다. 커피 가루 4파운드를 사면 2파운드에 담배 가루를 섞어 4파운드 분량의 커피를 만들고 나머지 커피 가루를 빼돌리는 수법을 쓴 것이다. 이들은 손님들이 피다 버린 담배꽁초를 연탄 화덕에 올려 말린 후 가루로 만들어 커피에 섞는 수법을 썼다. 니코틴 맛이 느끼지지 않도록 달걀 껍데기와 소금을 함께 타기도 했고 손님들이 맛에 둔감한 시각인 오후 늦은 시간에만 꽁초커피를 내놓은 주도면밀함도 보여주었다. - p.325

1980년대 중반에 퍼지기 시작한 가라오케 문화나 노래방 문화는 다방의 입지를 더욱 좁혔다. 식사 모임 후 가는 장소로 다방보다는 노래방이 선호되었다. 새로 등장한 아파트의 신식 주방시설 덕분에 집에서 손쉽게 커피를 끓여 마실 수 있게 된 것도 다방 증가 둔화의 한 요인이었다. 다방은 설 자리를 급속도로 잃어가고 있었다. 커피 암흑기 후반기에 닥친 다방의 침체였다. - p.358

우리나라에서는 1979년에 문을 연 롯데리아가 체인점 문화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1980년대에는 서울 올림픽을 전후하여 버거킹, 맥도널드, KFC 등이 잇따라 등장했다. 커피전문점으로는 1979년 대학로에서 처음 문을 연 후 점차 매장을 늘려 한 때 전국적으로 60여개의 매장을 거느렸던 '난다랑'이 효시였다. 대학로의 1호 매장은 1986년에 '밀다원'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이렇게 시작된 커피 체인점 문화는 급속히 성장하여 1993년 신문 광고를 점령하다시피 했다. - p.404

외환 위기는 커피 대신 국산 차 마시기 운동을 소환했다. 늘 그랬듯 절약이 필요한 시대에 커피는 모두의 공적이었다. 커피는 광고로 시대에 어필하려고 노력했다. 맥스웰하우스는 캔커피 광고에서 취업 준비생의 면접 장면을 다루었다. 면접에서 당황하여 실수한 취업 준비생을 보여준 후 "나를 알아주는 커피, 맥스웰 캔커피"라는 메세지를 전달했다. - p.432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평생을 살면서 평균 62년 정도 커피를 마신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균 2만5110잔의 커피를 마시고 9만145달러(1억2500만원)을 지출하는 셈이다.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것이 커피 소비액이고 결코 함부로 마셔서는 안 되는 것이 커피임을 말해준다. - p.446

450여 페이지에는 베르뇌 신부가 처음으로 커피를 가져오고 아관파천한 고종이 커피를 입에 대면서 커피 문화가 본격화된 지 약 한 세기 반의 시간 동안 커피로 보는 우리네 역사를 담고 있다. 그러고보면 커피가 이땅에 정착하기에는 수많은 시련과 고난이 있었다는 점에서 여기까지 잘도 살아남았다 싶을 정도. 세상이 어려울 때마다 높으신 분들은 커피 탓으로 돌리면서 우리 소시민들의 입에서 빼앗으려고 갖은 애를 썼으니 말이다. 하긴 커피만의 얘기일까. 오히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 아니던가. 탄압에 맞선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마음껏 커피를 마시며 바쁜 일상 속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하지만 그 여유가 영원하지는 않을 듯 하다. 지구 온난화로 가뭄과 폭염, 병충해가 만연하면서 커피 수확량이 나날이 줄어들기 때문. 실제로 원두 가격의 폭등으로 당장 울 사무실 근처의 커피값도 300원이나 올랐더라. 더는 값싼 아메리카를 즐기지 못할지도. 특히 트황제 몽니 덕분에 엄청난 관세로 미국인들은 모닝 커피 한잔 마시지 못하게 되었다고.

책을 읽다가 문득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했다. 커피의 우리식 명칭으로 흔히 알려져 있는 "양탕국"이 사실은 아무런 근거없는 얘기란다. 양탕국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해방 이후인 1968년 12월 26일 조선일보의 한 칼럼인데 그게 와전되어 마치 구한말부터 사용된 것마냥 여기저기서 언급되었다는 것. 주변 사람들과 커피를 마실 때마다 아는 척하면서 양탕국 타령을 했는데 앞으로는 못 써먹을 것같다.

TV 교양 프로그램에도 버젓이 등장하는 '양탕국'. 누가 보면 그 옛날 우리 조상님들이 여기에 밥 말아서 드신 줄 알 듯.

10월 1일이 한국커피협회에서 정한 커피의 날이라고 한다. 국군의 날과 겹치기에 아는 사람만 아는 날. 커피라는 주제로 이렇게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를 쓸 수 있나 싶다. 커피당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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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지음, 안진환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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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수많은 초보 부모들이 그러하듯, 나도 시중에 수없이 널려 있는 자녀 교육서를 부지런히 탐독하던 때가 있었다. 이제와서 돌이켜 생각하면 그런 책들은 뻔한 레파토리에 "나는 이렇게 해서 내 자식을 남들보다 비범하게 키웠다."라는 일종의 자화자찬용이랄까. 물론 저자 나름의 투철한 교육관이라던가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며 얻어냈다는 노하우는 같은 부모로서 귀 기울일 부분이 없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식이 번듯한 대학에 들어갔다는 둥의 내세울 성공을 거두었기에 말할 수 있는 결과론적인 얘기이기도 하다. 또한 여기에는 나는 평범하지만 내 자식은 똑똑한 놈으로 만들겠다면서 숨겨진 비법을 찾으려고 애쓰는 부모들의 허영심이 깔려 있다. 어쨌든 뭐라도 재주 하나 쯤은 있어야 살아가기 편한 것이 우리네 세상이니 말이다.

요즘 일본에서 유행하는 이세계 물들은 어차피 이번 생은 글러먹었으니 치트 능력을 얻어서 다른 세계로 넘어가겠다는 것. 그런 능력이 있으면 굳이 머나먼 이세계까지 갈 이유가 뭐가 있겠음. 그저 꿈도 희망도 없는 어리석은 중생들의 헛된 망상을 자극하는 것일 뿐.


자녀 교육서들의 공통된 결론 한가지는 아이는 부모 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고작 6천자에 불과한 손자병법을 부지런히 읽는다고 해서 누구나 천재전략가가 될 수는 없는 것처럼 저마다의 타고난 그릇이 다르고 환경이 다른데 똑같은 방법을 쓴다고 해서 똑같은 결과가 나올 수는 없는 법이다. 부모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자식 교육이라는 오랜 격언도 있지 않은가. 애초에 인간의 재능이란 타고나는 것일까, 만들어지는 것일까. <1만시간의 법칙>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소위 성공한 사람들이 그 경지까지 오르는데 투자한 시간이 대략 1만 시간 정도가 걸렸다카더라, 따라서 결론은 재능보다 평소의 피나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여기는 중대한 함정이 있다. 성공한 사람들이 1만 시간의 노력을 했다고 해서 거꾸로 1만 시간의 노력을 한 모든 사람이 성공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확대해석이다. 성공한 사람들이야 자신들의 성공이 하늘의 은총 덕분이 아니라 내가 그만큼 노력했기 때문이며 성공하지 못한 너희는 노오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내가 여태껏 살면서 깨달은 사실은 노력도 재능이 뒷받침될 때 의미가 있다는 점이다. 흔히 말하기를 사람은 누구나 재주 한 가지씩 타고 난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을 뿐더러(내 본가쪽 인간들을 보면 그건 분명하다.) 꿈과 재능을 찾아내어 발현하려면 노력 뿐만 아니라 그럴 계기와 운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콩 심은 곳에 팥이 나올 수 없고 누군가 물과 거름을 주지 않고서 제 알아서 싹이 트지는 않는다. <대학>에는 '절차탁마(切磋琢磨)'라고 하여 "옥도 갈아야 빛이 난다"는 말이 있지만, 그것도 옥일 때의 얘기이지 돌맹이는 뭘 어떻게 하더라도 돌맹이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대개 옥보다 돌맹이쪽이다.

유튜버로서 이 양반의 센스는 분명 놀랍지만 시류를 잘탄 덕분이기도. 만약 충주에서 공직을 시작하지 않았고 5년만 일찍 들어왔거나 5년만 늦게 들어왔어도 제아무리 큰 재주가 있다고 한들 지금처럼 유명인사로 성공할 수 있었을까. 뭐 운도 능력이라고 하지만.


그렇다면 성공한 사람들은 우리같은 평범한 인간들과 어떻게 달랐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성공의 기회를 주었을까. 타고날 때부터 비범했을까. 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것마냥 원래는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A였지만 어떤 이유로 인생이 터닝하게 된 것일까. 유복한 가정 여건, 부모의 관심, 가까운 친인척, 학창시절의 친구나 선생님의 말 한마디, 또는 소위 말하는 '귀인'을 만난 덕분이라던가 어떤 비결이 있지 않을까. 우리가 영화 <트루먼쇼>처럼 타인의 인생사를 직접 들여다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의 얘기는 들어볼 수 있으니 말이다.

열린 책들 출판사에서 나온 신작도서 <소스코드 : 더비기닝>은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 중 한 명이 말하는 "나는 이렇게 컸다"라는 회고록이다. 주인공은 IT계의 황제이자 마이크로소프트사 창업주인 빌 게이츠. 덧붙여 예전에는 세계 부자 1위하면 이 양반이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는. 십 몇 년 전에는 멕시코 통신계 큰손인 카를로스 슬림에게 잠시 밀린 적도. 우리같은 서민과는 무관한 천룡인들만의 리그도 치열한 듯.

요근래의 빌 게이츠. 어느 사이 이런 영감님이 되셨나 싶다는. 하긴 1955년생이니 벌써 70살. 돈으로도 세월을 살 수는 없는 법이라.


이 책은 세계적인 거부로서 빌 게이츠의 인생 역경 전반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수학 신동으로서 하버드에 재학하던 시절, 불과 1년여 만에 때려치우고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창업하여 사회 초년생이자 사업가로서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까지 22년의 시간을 다루고 있다. 그 순간이 평생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으면서 중요한 시기였다는 얘기이다. 여기에는 함께 카드 놀이를 했던 '가미'라는 별명을 가진 친할머니와의 애틋한 추억을 비롯하여 그의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주게 될 사람들과의 일화를 담고 있다. 심지어 평생의 라이벌이자 여러모로 악연의 관계였던 스티브 잡스도 짧막하게 언급한다. 몇 줄 되지는 않지만.

우리는 틈만 나면 게임을 했고 나는 계속해서 졌다. 하지만 나는 지켜보면서 발전하고 있었다. 가미는 계속 부드럽게 나를 격려했다. "머리를 쓰면 돼, 트레이. 영리하게 생각하면 돼" 내가 다음 수를 고민할 때마다 가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이겼다. 팡파르는 없었다. 그랑프리도 없었다. 심지어 내가 처음으로 할머니보다 더 많은 게임을 이긴 그 날 어떤 게임을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할머니가 기뻐한 것은 생각난다. 분명히 가미는 내가 성장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 p.31

어머니는 처음부터 우리 가족을 위한 원대한 비전을 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큰 성공을 이루길 바랬는데 여기서 성공이란 돈보다는 명성으로, 즉 지역 사회는 물론이고 더 넓은 범위의 시민 단체와 비영리 단체를 돕는 역할로 정의되는 것이었다. 자녀에 대해서는 학업과 스포츠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사교적으로 활발하며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꿈꿨다. 이러한 비전으로 그녀는 지원 파트너이자 어머니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가운데 자신의 경력도 쌓아서 지역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인사로 자리잡는 것을 목표했다. - p.62

선생님과 부모님, 교장 선생님은 나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 난감해 했다. 내 성적은 들쑥날쑥했고 태도는 날마다 그리고 과목에 따라 달라졌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무엇보다도 나의 날카롭게 갈라지는 목소리를 고쳐야 한다고 판단했다. 5학년 초 어느 시점부터 나는 학교의 언어 치료사를 만나기 시작했다. 이 세션의 결론으로 언어 치료사는 부모님에게 나를 1년 유급시킬 것을 권했다. 그녀가 나에 대해 <지진아>라고 평가했던 것 같다. 당시에는 학교생활을 적응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아이들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다행히도 무도님은 그녀의 조언을 따르지 않았다. - p.113

나는 그렇게 1968년부터 컴퓨터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런 환경이 조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질적인 요소가 합쳐져야 했는지를 생각하면 그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놀랍다. 우리에게 단말기를 안겨 준 교사들과 학부모들의 믿음의 도약, 전화선을 통해 컴퓨터를 공유하는 시대의 도래라는 행운을 넘어서 이 기적을 완성한 것은 다트머스 대학의 두 교수가 베이직 프로그래밍 언어를 만들기로 결정한 일이었다. 비전문가들도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만들어진 것이었다. - p.156

켄트와의 우정이 남긴 유산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더 나아지도록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그해 여름 폴과 나는 당시에는 몰랐지만 우리의 나머지 삶을 정의하게 될 파트너십을 맺었다. 파트너는 서로의 관계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각자의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영감을 준다. 폴을 파트너로 삼고 나니 내 역량의 한계를 시험하는 도전에도 더욱 자신감 있게 임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위험한 도전을 함께 극복한 사람이 있으면 다음 도전도 더욱 과감히 수용할 용기가 생긴다. - p.263

그 수업에서 더 잘할 수 없었던 나는 내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가장 똑똑하고 가장 뛰어나다는 인식에 너무 깊이 빠져 있었다. 그 지위는 사실 내 불안감을 숨기기 위한 보호막이었다. 나는 탁월한 수학 두뇌를 가졌지만 최고의 수학자가 될 수 있는 통찰력의 재능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재주는 있었지만 근본적인 발전을 해낼 능력은 없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해 겨울 앤디와 짐의 스위트룸에서 어울리던 중 그들도 갈피를 못 잡고 모종의 정신적 위기를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 p.326

우리가 작성한 베이직 프로그램은 다른 수천명의 작업과 마찬가지로 그런 변혁의 소용돌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갑자기 10대 아이들도 컴퓨터로 가치 있는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터무니없는 환상에서 흔한 일로 바뀌었다. 그리고 컴퓨팅 비용은 매우 빠르게 떨어져 곧 무료나 다름없게 되었다. - p.383

우리 부스 앞에 모인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확장형 베이직에 대해 설명하던 중 내 눈길 한쪽으로 긴 검은 머리와 짧게 다듬은 수염에 스리피스 정장을 입은 내 또래의 잘생긴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몇 부스 떨어진 곳에서 자신만의 무리를 형성하며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저 사람은 누구지?" 혼자 중얼거렸다. 그날 난 그렇게 스티브 잡스를 만났다. - p.459

하버드로 떠날 때 부모님에게 다시는 시애틀에서 살지 않겠다고 말했었다. 더 큰 세상에서 내 삶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때 내 머리속의 더 큰 세상은 금융과 정치, 명문대, 그리고 당시에는 컴퓨터 산업의 중심지였던 둥부 연안이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종의 후퇴로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 홀로 귀향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와 함께 창업한 회사, 다양한 직원들, 그리고 성장세에 오른 수익성 있는사업체와 함께 돌아가는 것이었다. 내 길은 정해져 있었다. 160km/h로 5번 주간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상상해 보려고 애썼다. 앞으로 이 길이 얼마나 더 멀리 나를 데려갈까. -. p.477

작년 이맘때에 21세기 북스에서 나온, 요즘 트럼프 덕분에 미국에서 가장 핫한 인물이 된 일론 머스크의 전기를 다룬 <일론 머스크>를 재미있게 읽은 것이 기억난다. 남아공 출신의 이민자인 일론 머스크가 미국에서 최고 갑부 중 한 사람으로 성공하기까지 그야말로 전투적인 삶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한 것에 비하면 이 책은 다소 밋밋한 느낌도 없지 않다. 물론 일론 머스크 전기는 월터 아이작슨이라는 그 방면 최고의 작가가 썼고 이 책은 글보다는 코딩 쪽이 더 익숙한 공대 출신의 빌 게이츠가 가감없이 쓴 회고록이라는 차이도 있겠지만, 그보다 빌 게이츠가 일론 머스크에 비하면 훨씬 평탄한 성장과정을 보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도 똘기를 보이면서 아들의 골칫거리로 남아 있는 일론 머스크 아버지와 달리,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잘 나가는 변호사에 어머니 또한 고학력의 신여성으로서 지역의 유명인사였으며 그럼에도 자식들에게는 일을 핑계로 가정을 소홀히 하지 않는 모범적인 부모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엄친아라는 얘기. 물론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회고록이 흔히 그러하듯, 빌 게이츠 또한 어릴 때의 자신은 성적도 별로 좋지 않고 반항기 가득했던 금쪽이였다고 평범함을 강조하지만 그러면서도 수학 신동이었다면서 남들과 다른 비범함을 은근히 드러내기도.

분명한 사실은 빌 게이츠에게 성장기는 무엇보다 소중한 추억이며 오늘의 그가 있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반드시 행복한 유년기를 보내야만 훗날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공 여부를 떠나서 인생에 있어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에 있을까 싶다. 4장의 부제마냥 그는 "운 좋은 아이"였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가령 내가 어떤 기회로 회고록을 쓰겠답시고 어린 시절을 떠올려본들 남들 앞에서 떠들만큼 썩 유쾌한 추억은 없는 것같다. 그렇다고 인생의 터닝포인터가 될 만한 긍정적인 시너지를 준 사람을 만난 기억도 없다. 가정과 학교를 통틀어서 말이다. 나만이 아니라 소수의 행운아를 제외하고 군부 독재 시절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와 가방 끈 짧고 가부장적인 부모 밑에서 성장기를 보내야 했던 우리 세대 대부분이 마찬가지일듯. 장미빛 추억은 고사하고 떠올리는 것조차 끔찍하다고 말할 사람이 태반은 아닐지.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500여 페이지의 많지 않은 분량의 책은 빌 게이츠가 어떤 자기만의 비법으로 세계 최고 갑부로서 성공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말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빌 게이츠라는 한 인간을 알 수 있게 하는 기회였다랄까. 적어도 선거 때만 되면 회고록이라는 이름으로 대필 작가를 써서 자기 인생을 진실반 거짓반으로 포장하는 우리네 정치인들의 불쏘시개 책들보다는 훨씬 가치 있다고 엄지척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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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 - 맥주를 보다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방법
음미하다 지음 / 북폴리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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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뿐만 아니라 꿀벌도 술을 먹는다.

술을 마시고 사고를 친 꿀벌은 벌을 받기도 한다.

수컷 초파리는 연애에 실패하면 더 많은 술을 먹는다.

술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꿀벌은 일만 하지 않아. 술도 마셔. 초파리도 술마셔"

-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 중에서

평소 술을 거의 즐기지 않는 나도 치맥의 유혹만큼은 거부하기 쉽지 않다. 불금이나 토요일 저녁, 집사람과 같이 치킨을 안주 삼아 캔맥주 하나씩 따서 마시면서 영화 한편 감상하는 것. 이보다 안락할 때가 어디 있을까. 때로는 더운 여름밤 집앞 호프집에서 500cc 크림 생맥주를 시켜서 마실 때 그 톡 쏘면서 시원한 맛이란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다. 굳이 주당이 아니라도 한국의 직장인이라면 이 유혹을 이길 자가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 생각해 보면 여지껏 맥주를 마시면서 이것이 무슨 종류의 맥주인가 따져본 적은 없는 것같다. 하긴 종류는 고사하고 카스인지 OB인지 어디 메이커인지도 따지지 않으니 말이다. 나의 둔감한 혀로는 맥주면 맥주이지 죄다 그기서 그기인 느낌이다. 애초에 치맥의 주인공은 맥주가 아니라 치느님이 아니던가. 우리는 치느님을 먹기 위해 맥주를 마실 뿐, 맥주를 마시기 위해 치느님을 먹는 것이 아니다. 맥주는 어디까지나 치느님을 먹는 과정에서 잠시 목이 마를 때 입가심을 위한 콜라 대용일 뿐이다. 그래서 치맥이다. 맥치가 아니라.

알콜 소비량에서는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우리 사회이지만, 그렇다고 딱히 다양한 술을 즐길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맥주는 그냥 맥주이다. 소주는 소주이고 막걸리는 막걸리이다. 어느 지역, 어느 회사에 제조했다는 것은 있어도 어차피 알콜 도수도 정해져 있고 가격은 물론이고 맛과 향 또한 대동소이하다. 획일화된 규격품이나 다름없다. 고기집이나 호프집에서 맥주를 시킬 때 메뉴판에는 오직 "맥주" 두 글자가 있을 뿐이다. 용량의 구분은 있어도 무슨 맥주냐는 구분은 없다. 고민의 여지조차 없이 "생맥주 주세요" 한마디면 끝이다. 참 쉽다.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면서도 막상 술의 종류가 몇 가지 없다는 것은 술맛을 따지지 않는다는 얘기일 것이다. 우리는 술 맛 그 자체보다는 그저 술에 취하기 위해서, 또는 안주빨을 세우려고 술을 마시는 것은 아닌가 싶다. 우리네 세상에 주당은 많다지만 술 맛을 알지 못한다면 진정한 주당이라고 할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서양 술을 보면 정말 다양하다. 와인만 보더라도 그 종류가 얼마나 하늘의 별만큼 다양하며 맛과 향이 천차만별인가. 이 양반들은 진정한 술맛을, 그리고 인생을 즐길 줄 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서 외국의 수입 맥주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맥주 그 자체의 맛을 취미처럼 즐기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모양이다. 이른바 맥주 덕후, 즉 '맥덕'시대의 개막이다.

북플리오 출판사에서 평소 맥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눈길을 끌만한 재미있는 책이 나왔다.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라는 책이다. 저자는 '음미하다'라는 필명을 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작가인데 일러스트를 보면 아마도 젊은 여성으로 추측된다. 어쨌든 분명한 점은 "취미가 맥주"라는 오리지날 맥덕이라는 사실이다.

"사람 뿐 아니라 꿀벌도 꿀 술을 먹는다. 술을 마시고 사고를 친 꿀벌은 벌을 받기도 한다. 수컷 초파리는 연애에 실패하면 더 많은 술을 먹는다. 술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초파리도, 새도, 박쥐도, 원숭이도, 자연이 만들어낸 술을 먹는다."

"닉네임 : 효모, 성별 : 없음, 종교 : 닌카시, 바커스, 직업 : 맥주랑 빵만들기, 좋아하는 것 : 무조건 달달한 것, 희망사항 : 가끔 나는 야생의 사바나 초원을 달리는 자유를 꿈꾼다. - 호모 프로필 중에서."

"효모가 살아있던 과거의 맥주는 햇살을 듬뿍 받은 보리 본연의 영양 성분과 효모가 만들언내 비타민, 단백질이 가득한 든든한 한 끼 식사이자 음료였다. 맑고 깨끗한 맥주라고 해서 우리 맥주가 고대 이집트인들의 그것보다 더 나을까? 더 자연스러울까?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깨끗하게 말린 맥주잔에 6℃의 밀맥주를 45도 기울여 따라 주다가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은 병을 돌리면서 따른다. 이제 숨은 효모까지 남김 없이 마시자. - 밀맥주 맛있게 따르는 법. 진짜 맛있다~~!"

"1934년 제1차 세계대전의 상처를 딛고 베스트말레에서 만들어진 맥주가 바로 황금빛 트리플이다. 필스너와 같은 고운 빛깔에 벨기에 맥주만의 짙은 과일 향이 일품이었던 이 맥주는 곧 수도원 맥주의 대명서가 되었다. 식사와 함께 마시는 가벼운 맥주인 테이블 비어보다 대략 3배는 도수가 강하다는 의미로 트리플이라고 불렸지만 1956년부터는 공식적으로 트리펠이라고 부른다."

"피아노처럼 반짝이는 짙은 어둠이 깔린 거리를 걸어 미켈러 바로 향한다. 재즈 센터에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 거리에 있는 이곳은 평일은 12시, 주말은 새벽 두 시까지 크래프트 맥주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비어가는 맥주잔과 함께 샌프란시스코의 하루가 저문다."

책의 부제로 붙어 있는 "맥주를 보다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말마따나 이 책에서는 맥주와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와 온갖 유익한 정보를 저자 특유의 유머러스와 함께 섞어서 풀어나간다. 맥주 특유의 허연 거품과 톡 쏘는 탄산가스가 사실은 효모가 맥아즙의 당을 소화하면서 뿜어낸 방귀라는 사실. "소리는 커도 냄새가 난다해도 너희가 좋아하는 술냄새인거?"

황금빛 연금술사 효모의 정체, 맥주가 영양가 넘치는 음식에서 술이 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역사, 에일과 라거의 차이부터 대표적인 맥주들, 각각의 맥주와 찰떡 궁합인 안주 고르는 법, 나에게 꼭 맞는 맥주를 찾기 위한 관상 보는 법, 맥주를 가장 맛있게 음미하는 요령, 영국 맥주와 벨기에 맥주, 미국 맥주, 독일 맥주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등 유머러스하면서도 알딸딸한 맥주 이야기가 듬뿍 담겨 있다. 컬러풀한 사진과 글을 한장한장 넘기면서 읽다보면 절로 시원한 맥주 한잔이 떠오른다. 그것도 그저 "여기 생맥주 한잔요!"가 아니라 달콤하면서 과일향이 느껴진다는 "파울라너 에딩거 헤페바이젠 한잔요!"라고 외치고 싶다.

이 책을 읽노라니 나도 치맥 덕후를 넘어서 진짜 맥덕이 되고 싶어진다. "맛있는 맥주에는 절로 나오는 추임새 캬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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