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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폐허 1~2 세트 - 전2권 피와 폐허
리처드 오버리 지음, 이재만 옮김 / 책과함께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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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2차 세계대전사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대학 시절 호비스트 출판사에서 나온 <알기 쉬운 제2차 세계대전사>덕분이었다. 호비스트는 군사 프라모델을 비롯하여 수많은 대한민국 일세대 밀덕들을 양산한 것으로 유명한 출판사인데 열악한 국내 출판 여건을 이기지 못하고 오래 전에 문닫았다고. 편집장인 이대영씨가 엮은 이 6권 짜리 책은 핀란드 겨울전쟁을 비롯하여 바르바로사 작전, 쿠르스크 전역, 바그라티온 작전, 베를린 공방전에 이르기까지 동부전선을 다룸으로서 그때까지 기껏해야 엘 알라메인 전투라던가 노르망디 상륙작전, 주드로 주연의 <애너미앳더게이트> 덕분에 스탈린그라드 전투 정도나 알고 있던 나로서는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자 2차대전사에 새로이 눈을 뜨는 순간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타임 라이프사에서 나온 <라이프 2차 대전사>를 대놓고 베꼈다는 욕을 먹고 있지만 말이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낮았을 때라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잘못된 내용이나 오역도 많다. 그래도 어렵고 딱딱하다는 전쟁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2차대전사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하지 않았나 싶다. 덧붙여 아직도 내 서재 한켠을 장식하고 있다.

교수님들이 쓴 여느 전쟁사와는 달리 이런 무기 일러스트가 특히 볼만했던. 아마도 일본쪽 책에서 무단으로 베꼈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 책 덕분에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던 게임이 이제는 고전이 된 <팬저 제너럴>과 <하츠 오브 아이언>. 무려 도스 시절에 나온 팬저 제너럴은 이대영씨 책보다 먼저 접하기는 했지만 막상 게임에서 등장하는 주요 무기나 캠페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더라는. 이 책을 읽고나니 드라군 작전이니 허스키 작전이니 발칸 전역이라던가 치타텔 작전이 뭔지 이해되더라. 그 이후에도 몇 편의 후속작이 나왔는데 1편만큼 재미있지는.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에서 수없이 반복되었던 전쟁의 역사 중에서도 가장 거대하면서 파괴적이었던 싸움이었지만 단순히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것은 흔히 말하는 "이기면 혁명이고 지면 반역"이 아니라 말그대로 선과 악의 싸움이었다. 연합국이 절대선은 아니었다고 해도 추축국은 분명 절대악이었다. 만약 히틀러의 나치가 승리했다면 오늘날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암울한 '빅브라더'의 세상에 살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정신끈 풀린 반사회적 성격장애들이 뭉쳐서 절대 권력을 잡은 격인 나치는 우생학을 추종하면서 소위 아리아 민족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자신들을 위해 무한 봉사하는 노예로 취급하거나 아예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신의 죄악인양 무자비한 인종청소를 자행했으니 말이다. 그런 대체역사를 다룬 것이 필립 딕의 소설이자 무려 리들리 스콧이 제작을 맡았던 <높은 성의 사나이>이다. 시즌1만 몇 편 본 듯. 드라마 특유의 질질 끄는 느낌이라. 그래도 나치와 일본의 분할 지배를 당하는 미국인들의 암울함은 확실히 와닿더라는.


드라마에서 나오는 세계지도. 나치와 일본이 세상을 양분하여 시베리아와 남미 오지 일부만이 완충지대로 남아 있다는 설정. 우리의 무대리는 아예 히틀러 휘하로 흡수된 모양. 게다가 나치와 일본 또한 분위기가 쎄한게 오래지 않아 최종전쟁을 벌일 느낌.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덕과 윤리의 마지막 선마저 무너지면서 어느 쪽이건 지는 쪽은 파멸이다보니 그야말로 이판사판인 총력전의 끝장을 보여주었다.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경쟁적으로 더욱 강력한 무기를 내놓았고 최신 병기조차 얼마되지 않아 금방 쓸모없는 구식으로 전락했다. 그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는 쪽이 도태되고 멸망하는 싸움이었다. 폴란드 전역의 주역이었던 1호 전차는 전쟁 말기에 오면 그보다 10배는 더 무겁고 강력한 티거-II라는 괴물 전차로 바뀌었고 복엽기는 제트 전투기가 되었으며 초보적인 탄도 미사일이 등장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무기 대부분은 제2차 세계대전 시절의 발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화력 무기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핵무기까지 등장했다. 지구를 함부로 침략했다가 탈탈 털린 채 달아나는 외계인들의 흔한 클리셰인 "이 지옥같은 행성"의 시대를 연 셈. 파도파도 나오는게 소재인지라 시중에는 2차대전 관련 서적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오고 우리같은 밀덕들이 매료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근래 책과 함께 출판사에서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한 또 한권의 대작이 나왔더라. <피와 폐허 - 최후의 제국주의 전쟁 1931~1945>는 무려 2권 합하여 1,500여 페이지의 전례없는 분량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덕후라면 존 키건, 앤터니 비버와 더불어 모를 수 없는 권위자인 리처드 오버리 교수이다. 특히 <히틀러와 스탈린의 전쟁>은 저자의 출세작이자 나로 하여금 거대한 독소전쟁의 묘미에 빠져들게 만든 책이기도. 2021년에 나온 <피와 폐허>는 뉴욕 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이자 그 해에 출간된 전쟁사 중에서도 최고의 저서에 수여되는 웰링턴 공작 메달(The Duke of Wellington Medal)에 선정되었다고. 책과 함께 출판사는 2019년도에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다룬 <몽유병자>를 비롯하여 작년에 윌리엄 샤이러의 고전 명작인 <제3제국사>과 <악티움 해전>, 올해에는 <팍스>, <러시아의 전쟁>, <제2차 세계대전 해전사>에 이르기까지 전쟁사와 관련하여 그야말로 주옥같은 책을 쉴 새 없이 내놓는 느낌.

저자인 리처드 오버리 영감님. 영국을 대표하는 제2차 세계대전 권위자 중 한 사람이자 엑세터 대학 명예교수. 1947년생이니 올해로 77살인데 정정하신 듯. 서양 사람들은 도무지 나이 가늠이 되지 않으니. 노화 지점이 우리와는 다른건지.


<피와 폐허>는 2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부터 베르사유 체제가 어떻게 무너지고 전쟁이 시작되었는지, 주요 전투와 일본의 패망까지 전쟁 전반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크게 색다를 것이 없는 1권보다는 오히려 2권이 더 흥미롭다. 왜냐하면 존 키건의 <2차 대전사>를 비롯해 시중에 나와 있는 여느 통사들과는 달리 전차, 항공기와 같은 무기의 발전과 전략 전술, 총력전, 외교, 경제, 민방위, 게릴라 전쟁, 병사들이 겪었던 전쟁신경증(PTSD), 전후 처리 등 그동안 인물과 사건에만 집중하여 간과되기 쉬웠던 부분을 두루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수박 겉핡기 식으로 잠시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유고슬라비아, 그리스 등 마이너 국가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면서 꽤 디테일하게 거론한다. 과연 세계적 석학다운 내공. 그런 점에서 작년에 출간되었고 내가 감수를 맡은 바 있는 열린 책들 출판사의 <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느낌. 그러고보니 그 책 공동 저자 중 한 사람이 이 양반이었던 걸로.

기갑 혁명은 그 숙적인 대 기갑 전력의 진화를 촉진했다. 전술 항공의 위협에 맞서 대공사격의 규모와 유효성을 키웠듯이, 기갑부대에 대항하는 능력은 기갑부대 자체에 버금갈 만큼 중시되었다. 대개 기갑사단은 적의 기갑부대와 항공부대를 상대하는 기동 공격 능력과 기동 방어 능력을 겸비했다. 이 조합은 생존에 필수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전차는 항공기와 마찬가지로 영토를 점령하지 못했다. 전시 동안 기갑부대의 성공은 제병협동 전투의 발전에 달려 있었으며, 그 전투에서 전차는 차량화보병, 자주포와 대전차포, 야전 대공포대, 기동공병대대, 정비부대 등과 긴밀히 협력하는 기갑부대의 중핵이었다. - p.742

일본 육군이 아주 일찍부터 알아챈 상륙전의 핵심 요인은 병력, 차량, 물자를 해안선까지 실어가 빠르게 내려놓도록 설계된 전용 상륙정과 상륙함의 필요성이었다. 상륙작전 전용 함정의 발전은 연합국에나 추축국에나 추후 성공을 좌우하는 주된 요인이었다. 1930년경 일본 육군은 두가지 유형의 동력 상륙정을 보유했다. 제1형은 군인 100명을 수송했고 해협에 쉽게 접근하도록 경사판을 설치했으며, 더 작은 제2형은 군인 30명, 또는 군인 10명과 말 10마리를 수송했으나 경사판은 없었다. - p.769


미국에서 무기와 군장비의 대량 생산은 당연시되었다. 1940년 5월 루스벨트 대통령은 연간 항공기 5만 대 생산을 요구하면서 공중 재무장을 개시했다. 또 나중에 전차생산계획에 개입해 연간 2만5천대 생산을 고집했다. 당시 이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느냐는 의구심이 일었지만, 루스벨트가 1940년 12월 노변담화에서 말한 '미국 산업계의 천재성'은 재무장과 전쟁의 요구사항에 부응했다. 1943년 미국은 벌써 적국의 생산량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군수물자를 홀로 생산하고 있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 며칠 전 히틀러의 사령부는 그의 서명이 들어간 명령을 내리고 독일 군수산업에서도 대량생산이 가능하도록 생산 간소화와 표준화 프로그램을 채택할 것을 요구했다. - p.863

경제전쟁은 양측 모두에게 엄청난 비용을 지우기도 했다. 적에게 향하는 자원을 차단하려면 충분한 자원을 투입해야 했다. 1940~1941년 영국본토항공전과 1940~1945년 대독일 폭격전쟁에는 군수품 생산량 중 상당한 부분이 투입되었으며, 방어하는 쪽도 방공에 자원을 할당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두 경우 모두 폭격으로 인한 경제적 영향은 대부분의 기간 동안 제한적이거나 미미했다. 영국 폭격기 사령부에서는 4만7268명이 전사했고 독일을 폭격한 미국 전략공군에서는 3만99명이 전사했다. 두 폭격기 부대가 상실한 항공기는 2만 6,606대였다. - p.960

양측의 도덕적 비난은 1941년 6월 22일 추축국의 소련 침공과 함께 사라졌다. 공격 며칠 후 마이스키는 영국 국민이 변화에 당황하고 있다고 적었다. "최근까지도 러시아는 독일의 은밀한 동맹으로, 거의 적으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별안간 24시간 만에 러시아는 친구가 되었다. - p.989

중국의 경우, 전쟁 노력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장제스가 알고 있었음에도 그 노력에 동참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1942년 말 장제스는 충칭에서 열린 국민참정회 본회의에서 연설을 하면서 동포들이 자신의 총력전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꾸짖었다. 당시 중국의 문제들은 적당한 공동 노력이 없었던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준다. 중국은 국가 절반이 일본군에 점령되었고 피점령지에서 적과의 기회주의적 협력이 만연했다. - p.1021

유고슬라비아에서 공산당이 이끄는 민족해방군과 드라자 미하일로비치 대령이 이끄는 체트니크 반란군이 무력 충돌을 벌인 이유는 전후 유고슬라비아 국가상이 상반되었기 때문인데, 전자는 공산주의 국가를, 후자는 군주제 국가를 원했다. 1942년 봄 공산당 지도부는 저항운동 경쟁 단체들을 상대로 계급 테러 전략을 구사하기로 결정하고 4월에 체트니크 지도부 500명을 살해하여 양측 간에 오래도록 이어질 내전의 서막을 열었다. 중국에서는 장제스의 국민당과 마오쩌둥의 공산당은 초기에 침공군에 맞서 공동 전선을 펴자고 합의했음에도 일본군의 배후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는 동안 거듭 충돌했다. - p.1100

1943년 봄 파르티잔은 벨라루스 삼림지대의 약 90퍼센트, 곡물과 육류 생산량의 3분의 2를 통제하며 이들 자원을 점령군으로부터 지켜냈다. 또한 1943년 하반기에는 독일 수송시스템을 9천회 넘게 공격했고 독일 육군이 쿠르스크에서 참패를 당하고 비틀거리던 1943년 8월에만 철도 3천킬로미터를 파괴하고 약 600대의 기관차를 망가뜨렸다. 소련측이 집계했고 현실을 왜곡했을 가능성이 다분한 통계에 의하면 파르티잔 병력은 활동의 절정기 동안 교량 1만2천개의 차량 6만5천대를 파괴했다. - p.1110

독일 노동자처럼 일본 노동자도 적국 전쟁 노력을 위해 모든 민간인을 동원한다고 선포한 뒤 1945년 7월 어느 항공대 정보장교는 대문자로 "일본에게는 민간인이 없다."라고 썼다. 일본 영공에서 민간인들을 불사를 때 미군 항공병들은 자신이 범죄에 관여하기는 커녕 오히려 범죄를 일삼는 야만적이고 광신적인 존재로 악마화된 적과의 전쟁의 종식을 앞당긴다고 생각했다. 태평양 전구 제21폭격기 사령부 사령관 커티스 르메이는 "우리는 그 도시(도쿄)를 폭격할 때 다수의 여성과 아이를 살해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라고 섰다. 그런 공격은 1939년 9월 교전국들에 적국 도시에 대한 폭격을 삼가하자고 호소했던 루스벨트의 정신에도 어긋나는 것이었다. - p.1252

장제스의 전시 서방 동맹들은 중국을 새로운 세계 질서에 어떻게 꿰맞출지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루스벨트는 중국이 전후 국제 안보를 강제하는 '네명의 경찰관'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1946년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되었다. 그러나 처칠이 보기에 자기들이 강대국의 일원이란느 중국의 주장은 허세였다. 영국 관료들도 지난 1943년 장제스가 중국의 주요 무역항에서 서구 측에 치외법권을 주는 불평등조약을 폐기할 것을 역설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포기했던 영국의 비공식 제국을 다시 주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영국의 의도는 1945년 9월 영국 해군의 홍콩 재점령으로 시험대에 올랐는데 이는 중국군의 홍콩 탈환을 용인하겠다는 장제스와 맺은 협정을 무시하는 군사행동이었다. 중국에서 존재감이 강한 미국 군부와 재계는 영국의 활동을 방해했지만 영국에게 가장 큰 장애물은 유럽과 일본 세력의 옛 질서가 이제 수명을 다했다는 국민당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장제스였다. - p.1354

2부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제6장에서 언급한 대소 랜드리스에 대한 것이다. 과연 서방의 랜드리스가 소련의 승리에 얼마나 기여를 했는지를 놓고 오늘날까지도 첨예한 논쟁의 대상이자 밀리터리 카페에서 수없이 논쟁이 벌어진 주제였기 때문이다. 재작년에는 국내 러시아 통으로 알려진 상명대학교 류한수 교수와도 개인적으로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의견을 나눈 적이 있었다. 본인이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으나, 실망스럽게도 정작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한 답변은 쏙 빼놓았지만 말이다. 어차피 학술보다 정치의 영역인지라 답이 나올 수도 없을 듯. 이에 대한 오버리 교수의 분석은 훨씬 명쾌하고 주목할 만하며 나의 생각과도 일치한다.

전후 수년 간 소련의 공식 노선은 자국의 전쟁 노력에서 무기대여의 역할을 경시하거나 아예 무시하는 것이었다. 이는 의도적인 역사 왜곡 행위였다. 종전 직후 소련의 비공식 지침은 무기대여가 "러시아의 승리에 그다지 뚜렷한 기여를 하지는 않았다"라는 것이었다. 1980년대까지 소련의 공식 노선은 무기대여 물자가 뒤늦게 인도되었고 대개 품질이 나빴으며 소련의 자체 노력으로 생산한 무기의 4%에 불과했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소련 지도부는 사석에서는 모든 형태의 원조가 얼마나 요긴한지 인정했다. "나는 스탈린이 소수의 측근들에게 무기대여를 인정하는 말을 몇차례 들었다. 스탈린은 만약 우리가 독일을 일대일로 상대해야 했다면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p.917

전차, 항공기, 무기는 연합국 원조에게 결정적 요소가 아니었다. 한층 더 중요했던 것은 소련 통신체계의 변혁, 과부하가 걸린 철도망에 대한 지원, 대량의 원료와 연료, 화약류의 공급이었다. 이런 원조가 없었다면 소련의 전반적인 전쟁 노력과 군사작전만으로는 독일 육군의 주력을 물리치기에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서방 연합국은 무기대여를 통해 군용 무전기 3만5천대와 야전전화기 38만9천대, 그리고 150만km 이상의 전화선을 공급했다. 1943년 초 소련 공군은 항공 전투부대들을 중앙에서 통제할 수 있었으며 전차에 무전기를 장착하는 간단한 방법으로 전력을 대폭 상승시켰다. 그로 인해 독일 육군은 몇번이고 적군의 규모나 위치, 의도를 짐작할 수 없었다. 철도를 통한 병력 및 장비의 이동을 뒷받침한 것도 미국이 제공한 기관차 1900대(소련은 겨우 92대를 생산했다.)와 전시 동안 사용된 철로의 56%였다. 이런 규모의 연합국 원조는 결정적이었다. 소련 산업계는 무기를 대량생산하는데 집중하는 한편, 전쟁 경제에 필요한 다른 많은 물자를 공급하는 과제는 연합국 원조의 몫으로 남겨둘 수 있었다. - p.919

어마어마한 분량이지만 한번 읽기 시작하니 손을 뗄 수 없을 정도이다. 마치 20편짜리 장편 2차대전 다큐멘타리를 책으로 옮겨놓은 느낌이랄까. 번역 또한 다소 논란이 있는 <제2차 세계대전 해전사>와는 달리 나무랄 데가 없더라. 적어도 내 눈에 거슬린다고 할 만한 부분은 없는 듯. 역자가 <제3제국사>와 <옥스퍼드 세계사>, <몽유병자> 등 여러 권의 전쟁사를 번역했는데(죄다 읽었다) 하나같이 오역 시비가 없다는 점에서 국내에서 보기 드문 전쟁사 전문 번역가가 아닐까 싶다. 2차대전사 덕후라면 필히 읽어볼 책이라고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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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해전사 - 전쟁의 향방을 결정지은 세계 해전의 모든 것
크레이그 L. 시먼즈 지음, 나종남 옮김 / 책과함께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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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년도 더 되었지만 예전에 코에이사에서 나온 <제독의 결단>이라는 게임이 기억난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미국과 일본, 영국, 독일(사황인가!) 중에서 한 나라를 선택한 뒤 자신만의 무적 함대를 건설하여 적 함대를 격멸하고 세계 바다를 정복한다는 로망 가득한 내용이었던 것으로. "나는 해군왕이 되겠어!"


3D의 화려한 그래픽에 익숙해져서 눈높이만 한없이 높아진 지금에 와서 다시 하라면 못할 것같지만 사회 초년생이었던 그 시절에는 퇴근 후 집에 와서 이거 한다고 정신이 없었던 때가 있었다. 연합군보다는 주로 추축군을 했던 것으로. 미국이 워낙 넘사벽인지라 오히려 재미가 떨어지다보니. 차라리 일본이 육성할 맛이 있었던. 실제 역사에 있었던 군함 이외에도 직접 설계가 가능한데 기술 테크 최대한 올리고 화력과 방어력 만땅 채운 마크로스급 슈퍼 전함으로 구성된 함대를 끌고 다니면서 바다의 깡패노릇을 하기도. 일제 포격 몇번하면 비행장의 내구력이 쭉쭉 내려갈 정도. 그래봐야 항공모함의 호위 없이는 제아무리 대공포로 도배를 하여 우주방어를 해본들 개떼로 몰려오는 함재기들의 어뢰 공격 앞에서 폭침당하기 일쑤지만 말이다. 코이에 리즈 시절에 나왔던 게임인데 삼국지인지 사골지인지 그만 우려먹고 이런 걸 리메이크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수천년의 인류 역사를 통틀어 수없이 벌어졌던 해전의 정점은 제2차 세계대전일 것이다. 지금이야 미 해군이 독보적인 존재인지라 게임으로 치면 밸런스가 무너진 셈이랄지. 미 본토가 무너져도 미 항모 전단만 건재해도 전 세계를 정복할 기세다보니.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항공모함이 남아 있나이다." 그런 미 해군의 아성이 완성된 순간이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전쟁이 시작될 때만 해도 미 해군은 결코 지금과 같은 절대 강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트라팔가르 해전 이래 한 세기 동안 바다의 제왕 노릇을 하던 영국과는 넘버 1자리를 놓고 한동안 첨예한 경쟁을 벌였고 후발주자로 무섭게 쫓아오던 일본의 추격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막강한 항모 부대를 보유한 일본 해군은 미 해군 입장에서는 끝판 보스급의 위협적인 존재였다. 전쟁 초반 미국에 강렬한 싸닥션을 날린 진주만 기습은 물론이고 마지막까지 미 해군을 물고 늘어졌다. 아마 영국 해군도 그 정도로 활약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때 '카이저의 값비싼 장난감'이라고 조롱받기도 했던 독일 해군은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몰락하기는 했지만 유보트 부대만큼은 전쟁 내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강적이었다. 전쟁을 거치면서 영국이 파산하고 독일, 일본이 패망하면서 비로소 미 해군은 서열을 완전히 정리했다. 오늘날 다른 나라 해군들은 제아무리 설쳐봐야 골목 대장이요, 미 해군 입장에서는 귀여운 꼬꼬마들에 불과하다. 근래에 중국 해군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고는 있다지만 미 해군과 견주려면 이번 세기 안에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인문과 역사 전문 출판사인 책과 함께 출판사에서 올해 최고의 책 중 하나로 손꼽히기에 부족함이 없는 대작 도서가 나왔더라. <2차대전 해전사(World War Two at Sea)>는 말그대로 제2차 세계대전 해전의 모든 것을 담은 책이다. 북펀드를 하길래 가격이 만만찮아 일단 접었다가 "어머 이건 꼭 사야돼"라면서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질렀다는. 작년 이맘 때에 나왔던 폴 케네디의 <대해전, 최강국의 탄생>이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부터 일본이 항복하기까지 전체적인 해전의 흐름을 다루면서 미국이 어떻게 자신의 잠재된 포텐셜을 터뜨리고 오늘날 세계 바다의 지배자가 되었는지를 중간중간 미려한 삽화와 함께 거시적으로 다룬다면 이 책은 개별 작전을 중심으로 좀 더 디테일한 느낌이다. 일단 분량에서 30%나 더 많으니 말이다. 무려 천 페이지에 달하는 무지막지한 벽돌책. 저자인 크레이그 시몬스(Craig L. Symonds) 교수는 미 해군에서 장교로 복무했고 미 해군사관학교에서 역사학 교수를 지내면서 남북전쟁 해전사를 비롯하여 여러 권의 저서를 낸 해전사 연구의 입지전적인 인물. 그 중에서도 이 책은 2018년에 나왔다고 하니 이 분의 가장 최신작 중 하나인 셈.

출간 당시 저자와의 북토크. 오른쪽의 머리벗겨진 영감님 말고 왼쪽 상단이 저자. 올해로 77살이라는데 아직까지 정정하신 듯.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초반 독일 유보트 부대의 부활을 비롯하여 노르웨이 전역과 됭케르크 철수작전, 지중해에서 영국과 이탈리아 해군의 대결, 태평양에서 미국과 일본의 치열했던 함대항모전, 유보트와 호송 함대간의 통상 파괴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일본 패망에 이르기까지 6년여의 시간을 관통하는 그야말로 제2차 세계대전 해전사의 집대성이다. 여기에는 미국과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당대 주요 해군이 모두 등장한다. 중간중간 삽입된 사진과 지도도 눈여겨 볼만하다. 존 키건의 <2차대전사>에 비견할 만한 책.

전쟁 전반을 다루는 다른 2차 대전사와 달리 천여 페이지에 걸쳐서 오직 해군에만 국한하다보니 다른 서적에서 보지 못한 꽤 흥미로운 내용도 있다. 특히 미 육군과 육군 항공대 내의 보이지 않는 알력. 육군이 공중 지원을 받으려면 육군 항공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고. 당시 미 공군은 아직 육군에서 독립하기 전이었고 육군의 일부였음에도 실제로는 사실상 독립 병종이었던 셈. 미처 몰랐던 사실이다.

반면 공군과의 협력 과정은 훨씬 어려웠다. (중략) 테더 장군과 그의 미국군 상대인 칼 투이 스파츠 장군 모두 자신만의 독자적 행정을 유지하고자 했다., 그들은 육군이나 해군의 단순한 보조가 되기를 꺼렸고, 자신들은 다른 어느 군과도 협력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휴잇 중장은 항공대의 공중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항공대 사령부에 공중 지원 요청서를 제출한 뒤 검토를 받아야 했고 그런 경우에도 자신의 요청이 반드시 승인되리라 장담할 수 없는 것에 한탄했다. - p.617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히틀러의 눈을 속일 요량으로 퓨티튜드 작전을 비롯하여 각종 기만작전을 벌였고 그 덕분에 연합군은 예상보다 훨씬 적은 피해로 상륙할 수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축함들의 지상 지원이 아니었다면 상륙 부대는 막강한 서부 방벽을 뚫지 못하고 쫓겨날 수도 있었다는 저자의 지적은 매우 흥미롭다.

이 상황에서 영국과 미국의 몇몇 해군 구축함이 없었다면 이날 연합군의 상륙 작전 전체가 위험에 빠졌을 가능성이 크다. (중략) 연합군의 전함과 순양함이 보유한 대형 함포의 지역 사격으로는 독일군의 포진지를 타격하지 못했으나 구축함에서 발사하는 5인치 소형 함포의 조준 포격이 누적 효과를 발휘하면서 독일군 포진지가 하나둘씩 제거되었다. 그리하여 상륙한 뒤로 꼼짝하지 못하던 상륙 부대가 일어서서 이동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해안 절벽 아래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그날 늦은 오후가 되었을 때 연합군은 해변을 완전히 확보하지는 못했으나 적어도 상륙 부대가 다시 바다로 내몰리지 않을 것임은 분명했다. - p.753

태평양전쟁의 유명한 떡밥 중 하나가 레이테 해전에서 소위 '구리타 턴'이라고 불리는 구리타 함대의 회항이다. 구리타 함대는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 미 해군의 방어선을 돌파하는데 성공했고 목표점인 레이테 만에 돌입하여 미 수송선단을 끝장낼 수 있는 기회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것은 미군의 방심이 초래한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하지만 구리타 함대는 그 순간 회항을 선택함으로서 하늘이 내려준 기회를 날려버렸다. 방해를 받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여기에 대해 지금까지도 온갖 설왕설래가 있지만 저자는 구리타가 달아난 것이 아니라 항모 전단과 싸우기 위해서 였다고 주장한다. 시시한 수송선 따위보다는 항모가 훨씬 중요한 목표물이니 말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저자의 추측일뿐 명확한 증거는 없다. 하지만 읽다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구리타 제독이 작성한 전투 보고서를 보면 그는 미 수송함 대부분이 피신한 것으로 보이는 레이테 만으로 들어가기보다 새로 등장한 항공모함 부대를 공격하는 것을 더 현명하다고 보았다. 그는 "그렇게 결심한 직후 우리는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종전 이후 고야나기 제독도 "적의 다른 항공모함 부대를 찾아 북쪽으로 진격했다"라고 명확하게 말했다. (중략) 그런 설명은 구리타 제독의 성격과 일본 해군의 문화, 그리고 미국 해군의 문화에 상당 부분 합치한다. 매헌의 이론을 신봉했으며 적의 항공모함 파괴에 집착했다. 구리타 제독은 텅 빈 미국군 항공모함을 침몰시키는 임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 p.829

한국경제신문에서 출간한 폴 케네디의 책도 그러했지만, 이번에도 문제는 중간중간 눈에 띄는 오역과 오탈자들. 폴 케네디 책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나처럼 뻔히 아는 사람 눈에는 아무래도 거슬리지 않을 수 없더라. 역자가 육사 교수로서 전쟁사에 있어서는 최고 전문가일 터인데 아무래도 번역은 다른 모양이다. 그보다 출판사에서 교정 과정에서 조금만 더 신경썼어도 왠만큼 걸려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수백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에서 오탈자 하나만 나와도 "이것봐라"면서 마치 큰 건수라도 발견한 양 호들갑을 떨면서 별점 테러를 가하는 방구석 전문가들이 있으니 말이다. 이 때문에 뒤늦게 절판되거나 재교정을 거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독자들 눈높이는 끝없이 올라가는 반면, 우리네 출판사들의 인식은 따라가지 못하는 게 아쉽다. 내가 애용하는 이북 사이트에 원서가 올라와 있길래 눈에 띄는대로 한번 정리해 보았다. 출판사에 직접 전달하고 싶었으나 나와 인연이 없는데다 홈페이지도 없더라. 출판사에서 나중에 재교 낼 때 참고했으면 싶다.

16인치 -> 원문에는 15인치 - p.14

이 항공기는 폭발적인 속도로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전함에 장착된 철제 거룻배 푼툰을 이용해 모선에 착륙했다가 다시 전함 위에 탑재되었다. -> 이 비행기들은 장약에 의해 하늘로 떠오른 다음, 장착된 플롯트(수상기 하부에 랜딩기어 대신 부력을 얻기 위해 달린 부유물)를 이용하여 모선 주변에 내려와서 갑판으로 끌어 올려졌다. (These planes were propelled into the air by an explosive charge, because they were equipped with pontoons they could subsequently land alongside their host vessel and be winched back aboard.) - p.15

6년 뒤 중위(Kapitänleutnant = lieutenant) -> 대위 - p.28

※ 독일 해군에서 중위는 Oberleutnant zur See

독일 순양함 그나이제나우와 쾰른이 전함 9척을 대동하고 -> 구축함 9척(nine destroyers)을 대동하고 - p.29

전함 로열오크함은 -> 전함 로열오크함은 2척의 호위 구축함과 함께(with two escorting destroyers) - p.29

로열오크함과 호위 전함들은 -> 로열오크함과 호위함들은(Royal Oak and her escorts) - p.29

당시까지는 영국만 보유하던 유보트의 건조를 승인했다 -> 독일이 영국과 동등한 수량의 유보트를 건조할 것을 승인했다.(authorized Germany to build U-boats up to the total possessed by Britain)

적의 전함은 -> 적 군함(warships)은 - p.36

주력 함포 -> 주포, 보조 함포 -> 부포 - p.39

3인치(76mm) 기관총 -> 3인치 함포 - p.39 ※ 역자가 76mm를 7.6mm로 착각한 듯.

수상 항공모함 -> 수상기 모함(seaplane carrier) - p.43

아트미랄셰어 -> 아드미랄 셰어(Admiral Scheer) - p.58

겔리선이 파괴되어 -> 식량 보관고(galley)가 파괴되어 - p.60

리나운 함의 호위를 받던 -> 리나운 함의 호위함 중 하나인(part of Renown’s escort) - p.84

전선이 끊어지고 화재로 망가진 -> 화재에 의해 기능을 잃고 대파된(Powerless and ravaged by fires) - p.85

폴 레노 대통령은 -> 폴 레노 총리는 - p.105, p.118 ※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알베르 르브룅(Albert Lebrun)

4문씩 2개 포대로 구성되었다 -> 4연장 포탑 2기로 구성되었다.(two massive four-gun turrets) - p.124

어뢰기 -> 뇌격기(torpedo) - p.135, p.350, p.382, p.409, p.422

차노 장관 -> 치아노 장관 - p.136, p.142

어뢰 폭격기 -> 뇌격기 - p.137~138, p.158, p.459

4리터 크기 -> 227리터(60갤런, sixty-gallon) - p.139

스트링백 항공기 -> 망태기들(Stringbags, 소드피시 복엽기의 별명) - p.142, p.157, p.226

제10비행단 -> 제10항공군단(Tenth Fliegerkorps) - p.149

연료를 보급받을 때까지 고작 50분 밖에 머물지 못했다 -> 재급유를 위해 떠날 때까지 겨우 50분만 머물렀다.(they stayed for only fifty minutes before they had to fly off to refuel.) - p.158

전기가 완전히 차단되는 -> 동력을 상실하는 - p.159

이탈리아 잠수함 1개 중대 -> 이탈리아 잠수함 1개 전대(one squadron) - p.170

테오도어 크랑케 소령 -> 테오더어 크랑케 대령(Captain Theodor Krancke) - p.188, p.191, p.192

※ captain = Kapitän zur See(해군 대령)

거대한 4개 함포의 포탑이 -> 거대한 4연장 포탑이(the giant four-gun turret) - p.216

항구로 끌려가는 수치를 -> 항구로 견인되는 불명예를 당하지 않으려고(lest he be forced to accept the ignominy of being towed into port) - p.230

해군 총참모부 -> 해군 군령부(軍令部), 해군 총참모장, 참모총장 -> 해군 군령부총장 - p.239, p.260, p.727

해군 장관 -> 해군 대신 - p.240

천황파 -> 황도파 - p.241, p.251

제1항공모함 사단 -> 제1항공전대 - p.243, p.245

페이핑 -> 베이핑(Peiping, 北平) - p.252

20밀리미터 기관총 -> 20밀리미터 기관포(20 mm cannon) - p.253

4단 파이퍼 구축함 -> 연통 4개 구축함(The Four Stackers destroyers) - p.282, p.285

헨리 모건타우 -> 헨리 모겐소(Henry Morgenthau) - p.290

변속기 열쇠 -> 무선 전송기 키(transmission keys) - p.300

나구모 중령 -> 나구모 중장 - p.309

나가모 중장 -> 나구모 중장 - p.333

일본 육군의 저항은 -> 일본 육군의 비협조는 - p.349

사촌 격인 -> 나이많은 사촌 뻘인(older cousins) - p.350

소드피시 어뢰기 6대와 스트링백 항공기를 출격시켰으나 -> 어뢰로 무장한 소드피시 뇌격기 6대를 출동시켰으나(dispatched a half dozen Swordfish armed with torpedoes) - p.350

11킬로그램짜리 기관총 -> 25파운드 야포(twenty-five pound guns), 1킬로그램짜리 기관총 -> 2파운드 야포(two-pound guns) ※ 여기서 파운드는 포탄의 무게. - p.360

집단전술 -> 이리떼 전술(rudeltaktik) - p.361

항송 거리가 - 이론적인 항속 거리가(theoretical range) - p.369

제6장과 제12장, 제17장의 부제인 'The War on Trade'는 무역전쟁보다 통상파괴전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음.

마셜 장군은 각 군은 다른 군에게 '가능한 모든 지원'을 상호 제공하라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공군과 해군이 작전을 펼치면서 성공할 방법을 찾으라는 뜻이었다. -> 마셜은 각각의 부서가 서로에게 "가능한 모든 지원"을 제공할 것을 강조했다. 즉, 함께 일하고 협력할 방법을 찾으라는 얘기였다.(Marshall insisted that each service was to provide “every available support” to the other. In effect, he told them to find a way to work together and get along.) - p.436

※ 당시 미국은 공군이라는 병종이 없었음.

헤라클레스 작전 -> 헤르쿨레스 작전(Operation Herkules) - p.455

헬무트 로젠바움 중위 -> 대위(Kapitänleutnant) - p.459

일본군 해병대 -> 일본 해군 육전대 - p.476

제2 구축함 사단 - 제2 수뢰 전대(第二水雷戦隊) - p.477

주이호 -> 즈이호(ずいほう) - p.497

11대의 병력 수송대를 파견해 -> 11척의 병력 수송선으로 구성된 주력 호위선단을 파견해(dispatching a major convoy of eleven troop transports) - p.526

제182 보병연대의 절반에 해당하는 6000명을 태운 7척의 수송선이 -> 제182 보병연대 6천명을 실은 수송선 7척이

(seven transports carrying six thousand men of the 182nd Infantry Regiment)

어뢰 전문가 -> 어뢰 조작 요원(torpedomen) - p.529

탄창 -> 탄약고(magazines) p.529

미국인 거주지 -> 미군 교두보(American enclave) - p.537

어뢰 항공기 -> 뇌격기 p.551

이는 완전히 잘못된 계산이었다. 젊고 대부분 경험이 부족한 유보트 승무원들은 계속해서 바다로 출격했고 그 중 많은 이가 돌아올 수 없었으며 수송선들은 계속해서 목표물이 되고 침몰했다. 수송선들이 전쟁의 결과나 그 궤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수송대에 연합국의 선박, 함정, 항공기를 계속 묶어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 젊고 대부분 미숙한 유보트 승무원들이 계속해서 바다로 출격하고 그 중 태반이 돌아오지 못한 것이 그럼으로서 전쟁의 결과나 그 궤적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연합군의 해상 운송과 호위함, 항공기들을 붙잡아둘 수 있다는 이유로 지속적인 목표물로 삼아서 격침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여긴다면 그야말로 계산착오였다.

(It was an utterly bankrupt calculation: young and largely inexperienced U-boat crews must keep going to sea, many of them never to return, and the transports must continue to be targeted and sunk, not because it might affect the outcome of the war, or even its trajectory, but because it kept Allied shipping, escorts, and airplanes occupied. ) - p.574

지상 출격 공군 -> 기지 항공대(land-based air force) - p.585

※ 일본군은 미군과 마찬가지로 공군 병종이 없었음.

20밀리미터 대포 -> 20밀리미터 기관포 - p.591

공군 -> 육군 항공대(Air Force) - p.617

휴잇 준장 -> 휴잇 중장 - p.627

사바나 -> 서배너(Savannah) - p.628, p.648, p.650

3문짜리 포탑 5세트 -> 3연장 포탑 5문(five turrets of three guns each) - p.628

합동참모본부의 수장 -> 이탈리아군 최고사령부 사령관(head of the Italian Joint Chiefs) - p.637

※ Comando Supremo는 독일의 OKW에 해당하는 조직

이제부터 내가 맡아줄게 -> 우리가 너희를 보호하겠다.(We have you covered) - p.648

이동식 88밀리미터 포병 -> 88밀리미터 자주식 포병(mobile 88 mm artillery) - p.648\

어벤저 어뢰기 -> 어벤저 뇌격기 - p.667

구축함 사단 -> 구축함 분대(destroyer divisions) - p.685, p.687

※ 2차대전 중 미 해군은 통상 4척의 구축함으로 1개 분대(division)를 편성하고 2개 분대가 1개 전대(Squadron)를 구성했음.

합동참모본부 -> 연합참모회의(Combined Chiefs) - p.717

따라서 작전을 수행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공습을 경험하지 않은 연합군 함정은 없었다.

-> 따라서 작전을 수행하는 동한 단 한번이라도 공습을 당해 본 연합군 함정은 없었다. - p.727

(In consequence of that, no Allied vessel experienced a single air attack during the operation)

고가 제독은 항공모함을 이용해 라바울을 방어했기 때문에 그가 보유한 항공모함은 항공기를 가득 적재한 항공모함에 비하여 훨씬 작았다. -> 고가 제독은 자신의 항모비행단을 라바울 방어에 활용하면서 그가 보유한 항공모함에 남은 비행기는 완전 편제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Koga had followed Yamamoto’s lead in using his carrier

air groups to aid in the defense of Rabaul, his carriers had far less than their full complement of aircraft.) - p.727

조지 왕조 시대 -> 조지 시대 ※ 조지라는 이름을 가진 왕들의 시대이지 하노버 왕조이므로 왕조라는 말은 맞지 않음.

- p.735

황실 총사령부 -> 대본영 p.801

지프 항공모함 -> 호위 항공모함(jeep carriers) - p.818

미국군 항공모함 대부분이 도망쳤을 것으로 -> 미국군 수송선 대부분이 피신했을 것으로(most of the

American transports would have fled) - p.829

노르덴 폭격 조준경 -> 노던 폭격조준기(Norden Bombsight) - p.854

화약 전문가 -> 군수부의 절대 권력자(munitions czar) - p.867

※ 슈페어는 화약이 아니라 건축 전문가이며 독일 군수부 장관을 지냄.

킹과 니미츠, 윌리엄 레이히를 제치고 유일하게 그에게만 원수로 진급하는 -> 킹과 니미츠, 윌리엄 레이히 3명에만 부여되었던 계급을 다른 나머지 사람들 중에서 오직 그에게만 자격이 있다고 인정되었다는 점에서 (with King, Nimitz, and Admiral William D. Leahy (FDR’s chief of staff) holding down three of them, only one other individual was eligible.) - p.910

※ 킹, 니미츠, 레이히는 1944년 12월에 원수로 승진했고 헬시는 1945년 10월에 승진했음.

추억의 <제독의 결단>이 생각나게 하는 책이다. 한번 읽기 시작하니 도저히 손을 뗄 수 없어서 주말 동안 완독했다. 2차대전 덕후라면 꼭 일독하기를 권한다. 책에 중독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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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1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구데리안 2024-11-11 14:3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댓글 남겼습니다.^^
 
2차대전 해전사 - 전쟁의 향방을 결정지은 세계 해전의 모든 것
크레이그 L. 시먼즈 지음, 나종남 옮김 / 책과함께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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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마음 먹고 질렀는데 오늘 책 받아봤네요. 아직 앞부분 몇 페이지 읽었지만 2차 대전 덕후로서 기대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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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모른다 - 이분법을 넘어 한 권으로 이해하는 우크라이나 전쟁
메데아 벤자민.니컬러스 J.S. 데이비스 지음, 이준태 옮김 / 오월의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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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뭐가 균형잡힌 시각이라는 것인지. 젤렌스키가 피해자가 아니면 푸틴이 피해자라는 건가. 나토가 동유럽 국가들을 침략했던가. 지금 침략하는 쪽은 나토인가, 푸틴인가. 민스크 협정이 파토난 것에 푸틴의 책임은 없는가. 푸틴이 악당으로 낙인찍힌게 서방의 음모 탓인가. 질문을 던지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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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 1 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 1
토머스 도드먼 외 엮음, 이정은 옮김, 브뤼노 카반 기획 / 열린책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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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주말이 되면 TV에서 때때로 고전 전쟁 영화를 틀어주었던 것이 기억난다. 조지 패튼과 미 제3군의 활약상을 다룬 <패튼 대전차군단>이라던가, 몽고메리의 흑역사인 마켓가든 작전을 다룬 <머나먼 다리>라던가,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의 진주만 기습을 다룬 <도라도라도라>라던가 그 시절 할리우드의 전쟁 영화란 주로 위대한 장군을 주인공으로 역사상 유명한 작전을 재현하는 것이 대세였다. CG가 없던 시절이니 지금 보면 조잡한 면이 없지 않지만 스크린을 압도하는 대규모 전투는 요즘 영화에서 보기 어려운 스케일이었다. 1970년작 <워털루>에서 프랑스군과 영국군의 라인배틀이나 기병 돌격은 지금 봐도 압권이다.

나폴레옹의 화려한 귀환과 백일천하를 다룬 영화 <워털루> 냉전 시절임에도 소련과 서방 합작 영화인데 CG가 없던 시절이라 요즘처럼 복붙복이 불가능하다보니 엑스트라만 1만5천명이 동원되었다고. 전반부는 지루하지만 후반부 전투신은 그야말로 스펙타클하다.

예전의 전쟁 영화가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장군들의 이야기였다면 요즘은 그동안 소모품으로만 취급을 받았던 무명 병사들에게 포커스를 맞춘다. 주제 또한 획일화된 영웅주의와 액션 위주에서 벗어나 좀 더 무거워지고 인간적이면서 현실적이다.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노르망디 상륙 작전 당시 제101공수사단 소속 라이언이라는 졸병을 집으로 돌려보내겠다고 투입된 대원들의 희생정신을 보여준다면, 비교적 최근에 개봉한 영화 <1917>은 화려한 영상미와 별개로 전쟁의 비참함을 강조한다. 작년에 리메이크된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아집에 사로잡힌 장군 때문에 죽지 않아도 될 병사들이 애국이라는 이름에 내몰려 집단 학살당하는 모습을 신랄하게 재현한다. <아메리카 스나이퍼>나 <허트 로커>는 참혹한 전장터에서 자기도 모르게 살인과 파괴에 중독되어 일상의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는 병사의 PTSD(외상후 장애)를 다루는 반면, <자헤드>는 반대로 걸프전을 앞두고 혹독한 훈련을 실컷 받고 전쟁터에 투입되기만 기다리다가 총 한발 쏘아보지도 못하고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에 실망하여 목적 의식을 상실한 해병대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미국의 전설적인 저격수 크리스 카일을 다룬 <아메리카 스나이퍼> 하지만 영화는 조국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 위대한 영웅으로 포장하기보다 내면의 갈등과 PTSD에 시달리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전쟁이 배경이라고 해서 언제나 군인들만이 주인공은 아니다. <인생은 아름다워>나 <쉰들러 리스트>는 나치의 탄압을 받는 유태인들의 이야기이다. 아역 시절 크리스찬 베일을 유명하게 만든 <태양의 제국>은 태평양전쟁 당시 천진난만한 어린 소년이 겪어야 했던 포로 수용소의 생활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한다. <킬링필드>는 캄보디아 내전을 직접 경험했던 한 의사의 눈을 통해서 크메르 루즈의 잔인무도한 만행을 고발한다. 수용소에서 탈출하는 주인공이 무수한 해골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물론 전쟁 영화가 진짜 전쟁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각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전쟁을 말해준다. 정치인과 장군, 무명의 병사와 민간인이 경험한 서로 다른 전쟁, 과연 어느 것이 전쟁의 진짜 모습일까. 정답은 전부 다 일 것이다. 똑같은 전쟁도 누군가에게는 출세와 명예의 기회이고 누군가에게는 희생을, 또 누군가에게는 지옥이자 결코 기억하고 싶지 않은 트라우마가 되기도 한다. 코르시카의 가난한 하급 귀족 출신인 나폴레옹은 전쟁이 아니었다면 변변찮은 인생을 보냈을 인물이다. 그는 자기 혼자만의 야망을 위해서 수십만명의 시체를 쌓아 올렸지만 우리는 이기주의자라고 비판하는 대신 군신이라며 숭배한다. 나폴레옹이 후세인이나 푸틴과 다른 점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전쟁터에 나와서 여느 병사들처럼 적의 총탄과 포화를 뒤집어 쓰고 무수한 죽음을 경험해 봤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PTSD를 얻는 대신 더 큰 영광을 찾겠다면서 끊임없이 싸움터를 쫓아다녔다. 나폴레옹이라고 해서 죽음이 두렵지 않았거나 우리와 다른 고차원적인 존재라서는 아닐 것이다. 정복자로서의 쾌감과 막대한 보상이 죽음의 공포심을 능가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일종의 중독이 아닐까.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사람들은 목숨을 건 게임을 벌인다. 이들은 실패하면 죽는다는 공포에 떨면서도 게임을 통과하기만 하면 엄청난 보상이 기다린다는 사실에 이성을 잃는다. 정복자들이 패배하면 끝장인줄 알면서 굳이 전쟁에 매달리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전쟁은 인간의 본성인가. 쉽지 않은 질문이다. 인간에게는 폭력적인 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성욕이나 식욕, 수면욕처럼 정기적으로 폭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금단증상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폭력을 혐오하고 금기시한다. 인간이 전쟁을 하는 이유가 지구의 자원이 유한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단순한 생각이다. 전쟁은 공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쟁에 쏟아붓는 자원과 전쟁으로 인한 파괴를 생각한다면 전쟁을 통해 얻는 이득이 더 크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지간히 국력 차이가 나지 않는 한 싸움에서 패배하면 말할 것도 없고 어렵게 이기더라도 만신창이가 된 채 상처투성이로 끝나기 쉽상이다. 어느 누구도 순순히 자기 것을 내놓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당장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더라도 어느 쪽에게도 손익이 맞지 않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고 해서 억지로 빼앗으려고 노력을 쏟아붓느니, 차라리 다른 쪽에 쓰는 것이 낫지 않은가. 그럼에도 인간은 끊임없이 전쟁을 벌인다. 전쟁은 없어져야 한다면서 전쟁에 매달리고 평화로울 때조차 스스로 미지의 공포를 만들어 막대한 자원을 군비에 쏟아붓는 것이 인간이기도 하다.


인문학 전문 출판사인 열린 책들에서 묵직한 책이 나왔다. 19세기 나폴레옹 전쟁부터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57명의 세계적 석학이 말하는 근현대 전쟁의 모든 것이다. 그 중에는 제2차 대전 권위자이자 국내에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으로 알려진 리처드 오버리 교수도 있다. 프랑스 시사 주간지 르 푸엥에서 2018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

근세 이전과 19세기 이후 근현대전쟁이 다른 점은 산업혁명과 기술의 발전으로 군대의 격차 또한 엄청나게 벌어졌고 싸움의 방식 또한 다양해졌다는 사실이다. 16세기 비잔틴 제국의 군대는 2천년 전 로마 군대와 비교하여 원시적인 화기를 사용한다는 것 이외에 큰 차이가 없었지만 남북전쟁 시절의 군인들은 불과 150년 후 이라크 전쟁에서 등장하는 미군의 무기를 감히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현대전이 근세 이전의 전쟁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훨씬 파괴적이고 그 전쟁에 어떤 식으로 휘말렸던 사람들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긴다는 점, 그리고 수많은 기억의 파편들이다. 과거의 전쟁이 지금보다 덜 야만적이거나 잔혹함이 부족하지는 않았겠지만 그 시대 사람들 입장에서는 평화와 전란이 크게 구분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란은 대단히 빈번했고 평화로울 때에도 도적이나 짐승의 습격, 흉작, 전염병, 관리들의 수탈로 삶은 가혹하면서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으니 말이다. 군인들 역시 전쟁터에서 적과 싸우다 죽는 것보다 행군 도중에 병이나 부상으로 죽을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그들에게 목숨을 건 투쟁과 죽음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 일상이었다. 글을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기에 전쟁의 기록은 정치인과 장군들, 역사가같은 높은 교육을 받은 소수 지식인들만의 전유물이었고 카이사르나 알렉산더 대왕, 한니발같은 위대한 영웅을 주인공으로 삼아 장대한 서사극으로 묘사하는 것이 그 시절 전쟁사였다. 그 이야기에 PTSD라던가, 집단 학살이나 강간, 상이 군인같은 불편한 이야기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미군의 조사에 따르면 모든 병사의 99%가 첫 전투에서 심리적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그렇지 않은 1%가 있다는 사실이 더 신기하다.) 우리가 성웅으로 떠받드는 이순신 장군이나 휘하의 병사들 역시 같은 인간인 이상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 <명량>이나 <한산도>같은 미디어, 후대의 역사서에서는 이순신이 얼마나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는가에만 포커스를 맞출 뿐, 병사들의 심리적 고통이나 트라우마 따위는 관심 없다. 애초에 그에 대한 기록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글을 쓸 줄 몰랐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전쟁은 더 이상 정치인, 장군들을 위한 기록이 아니다. 누구나 글을 쓸 줄 알기 때문이다. 병사들, 언론인, 일반 시민들, 심지어 여자와 아이들도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전쟁을 기록한다. 14세 유태인 소녀가 쓴 <안네의 일기>는 한 소녀가 겪은 나치 치하에서의 도피 생활과 유태인 수용소 생활을 묘사하여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기록이 다양해지면서 전쟁을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현대전은 영웅을 탄생시키기 위한 서사극이 아니라 무고한 사람들에게 고통과 파괴를 낳는 비극으로 여겨진다. 이 책에서 역사학자, 인류학자, 사회학자, 정치학자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은 전쟁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얼굴을 파헤친다.

주제도 결론도 천차만별이다. 전쟁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그 과정, 전근대와 근대전쟁의 차이, 전략과 전술의 발전, 징병제도의 종말과 현대에 부활한 용병들의 모습, 기술적 우위가 전쟁을 반드시 승리로 이끌지 못하는 이유, 드론으로 대표되는 무인전쟁, 아프리카의 소년병, 학살과 강간, 종전 이후의 복구, 전쟁이 초래한 정신적 외상, 전쟁 범죄와 재판, 반전 운동에 이르기까지 제목 그대로 전쟁의 모든 것을 담는다. 언급되는 전쟁 또한 18세기 미국 독립전쟁부터 나폴레옹전쟁, 라틴아메리카 해방전쟁, 남북전쟁, 보불전쟁, 양차 대전, 국공내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중동전쟁과 비교적 최근의 아프간, 이라크전쟁까지 장장 두 세기에 걸친 전쟁의 역사를 두루 다루고 있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읽다보면 똑같은 전쟁이라도 어떻게 바라볼지는 사람마다, 사회마다, 또는 시대마다 제각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유럽에서 직업 군인은 또 다른 도전에 직면했다. 산업화가 전쟁터에 미친 영향이었다. 후장식 소총과 기관총, 속사포가 도입되면서 빠르고 결정적인 승리를 끌어내기가 더욱 불확실해졌다. 대량 생산으로 대규모 군대에 장비를 보급하게 되면서 대중 무장을 실천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 p.63(2장. 전투의 종말 : 전략가와 전략들)

급진주의자들은 병역을 하나의 민주적인 절차로 보았다. 연령별로 젊은 남성 대다수가 병역을 수행하게 함으로서 그들의 마음에 프랑스 공화국에 대한 애국심과 충성심을 심어주고 성인과 시민으로 살아가도록 준비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군인의 수가 많아도 제대로 훈련받지 못하면 군대가 유용하지 않다는 주장이 군대 내부에서 나왔다. 이 방식은 세금이 많이 들었고 장교들은 신병 교육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한마디로 비효율적인 징병 형태였다.

- p.92(1부 3장. 시민-군인의 시대)

대칭적인 전쟁에서 질적인 기술 우위는 파괴적인 결과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1991년 <사막의 폭풍> 작전 중에 서방 국가들이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군사력에 대하여 누린 기술적 우위 덕분에 연합군은 빠르게 승리했다. 미군의 공군력은 막강했다. 군사 혁명으로 미국의 군사 기술 그리고 공습의 정확도와 파괴력을 높이는 위성 항법 유도 장치와 레이저 기술이 결합되었다. 하지만 2003년에 미군이 이라크를 상대로 비대칭 전쟁을 벌였을 때 똑같은 기술은 그만큼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 p.150(1부 7장. 전략 없이는 기술은 소용없다)

영국의 식민 지배는 자유주의와 지배권, 식민주의가 결합된 형태라는 점에서 다른 제국주의 국가와 구분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세 요소의 결합으로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개발된 무기와 전술을 제국 각지에서 활용했고 공문서를 파기하고 퇴역 군인과 식민 지배 계급의 회고록과 인터뷰를 검열하는 치밀하게 조직된 정책을 시행했다. 제국주의 영국의 새로운 계획은 영토를 병합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계몽주의와 그 보편적 원칙을 토대로 수립되었다. - p.240(1부 13장. 대영 제국주의의 신화)

미군이 북아프리카에 상륙했을 때 작전 명령서는 뉴욕의 전화번호부만큼이나 두꺼웠다. 반면에 독일 국방군이 프랑스를 공격했을 때 클라이스트 기갑집단의 참모장이었던 쿠르트 차이츨러 장군은 소령들과 그들 휘하의 장교들에게 단순히 연대가 독일과 벨기에 국경을 넘어야 한다고 명령을 하달하는데 그쳤다. 군사 작전의 성공은 이들 소령과 하급 장교들에 달려 있었다. - p.362(2부 2장. 군 복무 경력)

극단적인 조건에서 억압과 단속의 과격함, 그리고 최고형인 사형을 당할 거라는 두려움은 병사들이 포화에서 버티게 한 하나의 요인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수십만명의 군인으로 이루어진 군대들이 전투를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억압하고 단속하는 것만으로 병사들의 거부나 반항, 패주를 막을 수는 없었다. 프랑스 군대에서 700여명 이상의 군인이 총살당했음에도 1917년 봄에 군대는 반란을 일으켰다. - p.518(2부 11장. 버틸 힘)

<보이지 않는 부상> 중에서 가장 상징적인 것은 정신에 가해지는 침해이다. 러일 전쟁, 뒤이어 1911년에 이탈리아가 리비아에서 벌인 식민지 전쟁에서 군대 정신과 의사들이 식별해 낸 <정신적 부상>은 전쟁이 진행됨에 따라 질병 분류학의 주요한 챕터를 차지한다. 전쟁 신경증에 걸린 신경증 환자가 안면 부상병이나 독가스에 중독된 사람처럼 전쟁 부상자 목록에 오른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 p.603(3부 3장. 부상과 부상자)

국가 간 전쟁, 혁명, 반혁명, 내전. 1914~1945년에 벌어진 분쟁들은 그 폭력성 뿐만 아니라 후방에서 여성과 어린이, 노인을 비롯한 수백만명의 비 전투원이 동원되었다는 점에서 그 이전의 전쟁과 구분되었다. 동원 규모나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대규모 동원은 전쟁 선전이 집중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으면 설명하기 어렵다. - p.711(3부 11장. 1914~1915년 온 사회가 동원되다)

아부그라이브의 사진들은 여성 군인도 수감자들을 벌거벗기고 두렵게 만들고 고문하고 강간할 수 있으며 남자도 성폭력을 비롯한 이런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온 세상에 드러내 보였다. 이 여성 군인들은 만지는 행위나 자극적인 자세, 외설적인 몸짓을 동원하고 자신의 생리혈을 불순한 무기로 사용하는 등 매우 폭넓은 제스쳐를 사용한다. 이들은 남성들을 고문하고 폭행한다.

- p.809(3부 17장. 강간, 전쟁의 무기)

1945년 5월 프랑스 사람들에게 어느 나라가 독일의 패배에 가장 크게 기여했는지 물었을 때 조사 대상의 57%가 소련이라고 대답했고 20%가 미국이라고 답했다. 2004년에 프랑스에서 비슷한 여론 조사를 했을 때에는 정확히 반대 결과가 나왔다. 58%가 미국이 연합국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대답했다. 오직 20%만 소련이 그런 역할을 했다고 보았다.

- p.920(4부 4장. 스탈린그라드의 불꽃이 꺼졌다.)

PTSD가 만들어진 이후로 거둔 성공은 이 병명이 전 세계적으로 정신 의학계와 일상에서 사용된다는 사실로 가늠할 수 있다. 서방국가들에서 이 진단명은 걸프전쟁 이후,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 군사 개입과 함께 2000년대에 와서 주목을 받는다. 러시아에서는 1980년대 말부터 PTSD를 러시아어로 옮긴 포스트트라브마티체스키 스트레스가 거론되었다. 뒤이어 1990년대에 두 차례 벌어진 체첸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이 겪는 <체첸 증후군>이 등장했다. 이스라엘에서는 이른바 정당하고 무적이라는 명성을 얻은 군대 때문에 오랫동안 이러한 정신의 <나약함>이 무시되었다. - P.978(4부 8장. 신경과 신경증)

현실의 전쟁은 단순히 장군이 전략을 수립하고 병사들이 총을 쏘고 대포를 발사하고 전투기가 적진에 폭탄을 떨어뜨려서 적병을 죽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대부분의 역사가들이나 전쟁 영화, 시뮬레이션 게임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에 좋은 이러한 드라마틱한 부분에만 집중하지만 그 이면은 훨씬 복잡하다.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행진하는 군인들을 향해 열광하는 시민들과 소위 애국전선이라는 이름으로 전후방과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동원되는 대중, 적군을 피하여 달아나는 난민의 물결, 점령지에서 벌어지는 강간과 약탈, 그로 인한 인간성의 상실. 내전은 더욱 참혹하다. 어제의 이웃이 오늘의 원수가 되기 때문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의 내전에서는 어린 소년 소녀병들이 강제로 징집되어 어른을 죽이기 위해 투입되기도 한다. 전쟁이 끝난다고 해서 모두 끝나는 것은 아니다. 전쟁 범죄자들, 적국의 부역자들을 단죄해야 하며, 전쟁이 초래한 상처를 치유하고 파괴된 일상을 전쟁 이전으로 회복하기까지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전쟁이 시작되면 너도나도 평화를 외치지만 정작 평화가 오면 다시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 인간의 아이러니이다.

2003년 부시의 이라크 침공, 2022년의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기적인 욕망에 눈이 먼 지도자 한 사람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겪어 않아도 될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강대국들의 횡포는 여전히 누구도 단죄할 수 없다.

굉장히 수준 높은 책이다. 그보다도 놀라웠던 것은 참고문헌에서 잘 정리된 풍부한 사료들과 추천도서들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대부분은 국내에 출간되지 않았다는 점, 무엇보다도 국내 저자가 쓴 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문학 불모지인 우리네 현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한다. 서구에서는 전쟁을 주제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토론을 벌이고 독자들의 관심을 끈다는 점이 나로서는 한없이 부럽다. 반면,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전쟁이나 안보와 관련된 논의는 직업군인들과 몇몇 군사 전문가들의 전유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나 일반인들이 끼어들 여지는 거의 없을뿐더러 무관심하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이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 비하면 그나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군은 일반 사회와 격리된 성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단국가로서 매년 막대한 세금을 국방비로 쓰고 있으며 언제라도 전쟁이 일상 삶에 들어올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우리야말로 폭넓은 사회적 논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우리 사회에서 전쟁이란 무엇인지 되짚어 볼 기회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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