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언니 부자연습 - 가난한 공주 부자되기 프로젝트
유수진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얼마 전에 집사람이 문득 이렇게 말했다.
"케이블 방송에서 어쩐지 어른을 봤는데 재태크에 대한 것이 나오더라. 그런데 내가 잘 몰라서 당신이 나중에 함 봐라."
"글쎄, 무슨 내용인데?"
"유수진이라는 여자가 강의를 하는데 우리나라나 선진국은 이미 경제 성장률도 낮고 금리도 낮아서 더 이상 돈 벌기 어렵다, 대신 인도나 베트남같은 개발 도상국에 투자를 해야 한다네."
"펀드? 베트남 펀드 요즘 별로인데"
"아니 펀드 말고. 말로는 설명 못하겠고 그냥 당신이 직접 봐."
집사람의 말에 가우뚱 하면서도 그거 찾아서 볼 짬은 없다보니 그냥 한귀로 넘겼다. 그런데 때마침 카페에서의 서평 이벤트. "당신이 말한 게 이거 아니야?" "맞아"

경제 서적은 몰라도 재태크 책은 거의 보지 않는다. 철없던 젊은 시절에야 돈을 벌어보겠답시고 부지런히 주식이니 경매이니 탐독하던 때도 있었지만, 어차피 본인들 돈 번 얘기이고 나름의 비법이라는 것도 우리같은 내공없는 일반인이 책 한권 보고 덜렁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려 <어쩐지 어른>에서도 나왔다고 하고 집사람의 얘기로는 귀담아 들어볼 부분도 있을 듯 하여 바로 신청.

어제 드디어 기다리던 책이 왔다. 퇴근 후 컴퓨터 앞에 앉아서 과연 어떤 내용인가 페이지를 한장씩 넘겨보았다. 그러기를 한시간반. 앞부분은 "부자가 되면 좋은 이유" "그런데 왜 당신은 부자가 되지 못하는가" 다이어트에 실패한 20대 동생 얘기도 나오고 50이 다되도록 결혼 못한 지인 언니 얘기도 나온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하는 말. "그래서 우리는 부자가 되어야 한다!"

어이 여보시오, 작가 양반, 이거 재태크 책이요? 에세이요? 이 얘기하자고 무려 책의 절반을 쓴거요?

그 다음에는 GDP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나온다. 갑자기 경제 기초 상식에 대한 강의가 시작되었다.  미국 금리가 어쩌고 트럼프가 어쩌고... 이 정도는 그렇다 치자. 재태크 강의가 직업인 언니인데 그동안 상담하면서 투자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상식조차 결여된 동생들을 얼마나 많이 보아왔겠는가.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중에도 분명히 있을테니 글 모르는 유아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기분으로 썼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게 전부다. 제3장 마지막에는 "부자 미션"이라면서 GDP 증가율과 경제 지표, 전문가들의 전망, 자본주의의 역사, 화폐의 역사, 근대사를 공부하라고 한다. 그리고 공부한 것을 실전에 대입하면서 노하우를 익혀나가라고 한다. 이걸로 뭐하라고? 뭐하라는거지? 무슨 실전? 화폐의 역사를 공부한 다음 어떤 실전에 대입하여 무슨 노하우를 익히라는건가?

아니야. 여기서 끝은 아닐꺼야. 이미 책의 80% 이상을 읽었지만 아직 나에게는 마지막 제4장이 남았다. 마지막 기대를 걸고 읽었다. 마침 앞서 얘기했던 그 베트남 투자 얘기도 나왔다. 주식에 투자하여 받은 배당금으로 함께 재태크 모임하는 여인들끼리 베트남을 다녀온 모양이다. 자신이 배당금으로 얼마의 수익금을 받았는지 반페이지만큼의 크기로 확대하여 강조한다. 2천만원 투자했는데 시세 차익 200만원에 수익금이 무려 68만원이란다!

"해외여행에서는 참 배울 것이 많다. 단 배당금 받아서 가자. 그리고 다녀와서는 그 나라에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을 여러가지로 모색해 보자"

참으로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그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베트남 가서 쇼핑만 하지 말고 그 나라에 투자할 방법을 찾으라는데, 재태크 책이라면 보통 자신이 어디에 어떻게 투자했고 장점과 단점, 이것만은 꼭 알아야 할 유의 사항 등 구체적인 경험담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또한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로서 우리와는 금융 시스템이 전혀 다르다. 초보자가 이 언니 말만 듣고 덜렁덜렁 갔다가는 은행 가서 통장 하나도 못 만든다. 그 전에 돈푼없는 가난뱅이 동생들에게는 언니처럼 베트남 갈 여행경비 만드는 것부터 첫번째 난제일듯. 배당금 주는 주식을 살 돈부터 마련해야 하나.

설령 우찌우찌 베트남까지 가서 통장 만들어서 쌈짓돈 넣었다고 치자. 외국인에게 금융이 개방되어 있지 않아서 넣는 건 쉬워도 빼는 건 어려운 나라이다. 오는 건 니 마음이라도 나가는 건 니 마음대로가 아니라는 말이다. 또한 환차손, 수수료 외에도 베트남 경제의 안정성, 정치적 안정도 등 고려해야 할 것이 아주 많다. 그냥 막연하게 개발 도상국이니 앞으로 고도 성장하겠지 묻지마 투자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그런데 이게 전부다. 남자랑 데이트해도 분양 홍보관에서 하라느니, 당신 수중에 10억만 있으면 대출 10억 더 받아서 건물 사서 건물주가 될 수 있다느니, 믿을만한 자산관리사를 찾으라느니, 그 관리사도 100% 믿지 못하니 결국 너 스스로 공부하라느니. 여보시오, 이게 정말로 전부요? 이게 연봉 6억 언니의 조언이란 말이요!

또 한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 책의 편집 구성인데, 쓸데없는 이미지들이 여기저기 페이지를 너무 많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지를 넣는 이유는 내용과 관련하여 텍스트만으로는 이해가 어려울 때 시각적으로 돕기 위함인데, 웹사이트를 단순 캡쳐한 사진을 도대체 뭐에 쓰라는 것인가. 게다가 이 책에는 이런 불필요한 이미지가 분량의 상당 부분을 잡아먹고 있다. 교양 서적으로도 그다지 많다고 할 수 없는 고작 250페이지에 불과한데, 설마하니 <어쩐지 어른>에도 출연한 연봉 6억의 달인이 그 분량을 못채워서 이런 정크 이미지로 땜빵질을 했단 말인가. 심지어 어떤 페이지에서는 "재태크"를 설명하면서 "재태크란 재무와 태크놀리지를 합한 글자로...."라는 말로 무려 종이 반장을 차지한다. 이게 무려 반 페이지에 걸쳐서 설명할 만한 내용인가. 세종 서적이라는 출판사가 신생 출판사도 아니고 그동안 꽤 많은 교양 서적을 내었던데 편집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구성했는지 모르겠다. 

집사람에게 책이 이러이러해서 영 실망이다, 라고 했더니 "나도 강의 들어보니까 뭔 말인지 도통 이해가 안되더라고. 그래서 당신보고 좀 보라고 한건데. 당신이라면 나보다는 나을테니까."

여보시오, 마눌님 이제와서 그게 무슨 소리요! 그런 뜻으로 한 말이었소?!

여러모로 자괴감이 들게 하는 책이다. 서평 한두번 써본 것도 아니고 내 입맛에 맞지 않다고 해서 남에게도 그렇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서평을 쓸 때에는 "이 책은 이런 점이 좋지만 이런 오류가 있다. 따라서 어떤 독자가 이 책에 가장 걸맞을 것"라고 나름대로 솔직하면서도 신중하게 적는 편인데, 이런 경우에는 도대체 뭐라고 써야할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돈 쓸 생각하지 말고 돈 모을 생각을 하라"라는 뻔한 얘기의 나열이다. 팁이나 노하우라고 할 만한 것도 없고 그렇다고 경제 서적도 아니고 언니가 그동안 얼마나 험난한 삶을 거치면서 이 자리까지 왔는지 고백하는 에세이도 아니다. 강의는 잘하는데 글에는 서툴러서인가. 모르겠다. 각자 알아서 판단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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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쿠스 2017-07-16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자되는 벙법은 재테크책 써서잘모르는독자에게 파는 겁니다

구데리안 2017-07-19 10:51   좋아요 0 | URL
그런데 다 아는 얘기만 적어놓았으니 문제라는 것이죠... 재태크란 재+태크의 합성어이다, 이런 말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