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와 폐허 1~2 세트 - 전2권 피와 폐허
리처드 오버리 지음, 이재만 옮김 / 책과함께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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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2차 세계대전사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대학 시절 호비스트 출판사에서 나온 <알기 쉬운 제2차 세계대전사>덕분이었다. 호비스트는 군사 프라모델을 비롯하여 수많은 대한민국 일세대 밀덕들을 양산한 것으로 유명한 출판사인데 열악한 국내 출판 여건을 이기지 못하고 오래 전에 문닫았다고. 편집장인 이대영씨가 엮은 이 6권 짜리 책은 핀란드 겨울전쟁을 비롯하여 바르바로사 작전, 쿠르스크 전역, 바그라티온 작전, 베를린 공방전에 이르기까지 동부전선을 다룸으로서 그때까지 기껏해야 엘 알라메인 전투라던가 노르망디 상륙작전, 주드로 주연의 <애너미앳더게이트> 덕분에 스탈린그라드 전투 정도나 알고 있던 나로서는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자 2차대전사에 새로이 눈을 뜨는 순간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타임 라이프사에서 나온 <라이프 2차 대전사>를 대놓고 베꼈다는 욕을 먹고 있지만 말이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낮았을 때라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잘못된 내용이나 오역도 많다. 그래도 어렵고 딱딱하다는 전쟁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2차대전사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하지 않았나 싶다. 덧붙여 아직도 내 서재 한켠을 장식하고 있다.

교수님들이 쓴 여느 전쟁사와는 달리 이런 무기 일러스트가 특히 볼만했던. 아마도 일본쪽 책에서 무단으로 베꼈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 책 덕분에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던 게임이 이제는 고전이 된 <팬저 제너럴>과 <하츠 오브 아이언>. 무려 도스 시절에 나온 팬저 제너럴은 이대영씨 책보다 먼저 접하기는 했지만 막상 게임에서 등장하는 주요 무기나 캠페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더라는. 이 책을 읽고나니 드라군 작전이니 허스키 작전이니 발칸 전역이라던가 치타텔 작전이 뭔지 이해되더라. 그 이후에도 몇 편의 후속작이 나왔는데 1편만큼 재미있지는.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에서 수없이 반복되었던 전쟁의 역사 중에서도 가장 거대하면서 파괴적이었던 싸움이었지만 단순히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것은 흔히 말하는 "이기면 혁명이고 지면 반역"이 아니라 말그대로 선과 악의 싸움이었다. 연합국이 절대선은 아니었다고 해도 추축국은 분명 절대악이었다. 만약 히틀러의 나치가 승리했다면 오늘날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암울한 '빅브라더'의 세상에 살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정신끈 풀린 반사회적 성격장애들이 뭉쳐서 절대 권력을 잡은 격인 나치는 우생학을 추종하면서 소위 아리아 민족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자신들을 위해 무한 봉사하는 노예로 취급하거나 아예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신의 죄악인양 무자비한 인종청소를 자행했으니 말이다. 그런 대체역사를 다룬 것이 필립 딕의 소설이자 무려 리들리 스콧이 제작을 맡았던 <높은 성의 사나이>이다. 시즌1만 몇 편 본 듯. 드라마 특유의 질질 끄는 느낌이라. 그래도 나치와 일본의 분할 지배를 당하는 미국인들의 암울함은 확실히 와닿더라는.


드라마에서 나오는 세계지도. 나치와 일본이 세상을 양분하여 시베리아와 남미 오지 일부만이 완충지대로 남아 있다는 설정. 우리의 무대리는 아예 히틀러 휘하로 흡수된 모양. 게다가 나치와 일본 또한 분위기가 쎄한게 오래지 않아 최종전쟁을 벌일 느낌.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덕과 윤리의 마지막 선마저 무너지면서 어느 쪽이건 지는 쪽은 파멸이다보니 그야말로 이판사판인 총력전의 끝장을 보여주었다.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경쟁적으로 더욱 강력한 무기를 내놓았고 최신 병기조차 얼마되지 않아 금방 쓸모없는 구식으로 전락했다. 그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는 쪽이 도태되고 멸망하는 싸움이었다. 폴란드 전역의 주역이었던 1호 전차는 전쟁 말기에 오면 그보다 10배는 더 무겁고 강력한 티거-II라는 괴물 전차로 바뀌었고 복엽기는 제트 전투기가 되었으며 초보적인 탄도 미사일이 등장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무기 대부분은 제2차 세계대전 시절의 발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화력 무기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핵무기까지 등장했다. 지구를 함부로 침략했다가 탈탈 털린 채 달아나는 외계인들의 흔한 클리셰인 "이 지옥같은 행성"의 시대를 연 셈. 파도파도 나오는게 소재인지라 시중에는 2차대전 관련 서적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오고 우리같은 밀덕들이 매료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근래 책과 함께 출판사에서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한 또 한권의 대작이 나왔더라. <피와 폐허 - 최후의 제국주의 전쟁 1931~1945>는 무려 2권 합하여 1,500여 페이지의 전례없는 분량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덕후라면 존 키건, 앤터니 비버와 더불어 모를 수 없는 권위자인 리처드 오버리 교수이다. 특히 <히틀러와 스탈린의 전쟁>은 저자의 출세작이자 나로 하여금 거대한 독소전쟁의 묘미에 빠져들게 만든 책이기도. 2021년에 나온 <피와 폐허>는 뉴욕 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이자 그 해에 출간된 전쟁사 중에서도 최고의 저서에 수여되는 웰링턴 공작 메달(The Duke of Wellington Medal)에 선정되었다고. 책과 함께 출판사는 2019년도에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다룬 <몽유병자>를 비롯하여 작년에 윌리엄 샤이러의 고전 명작인 <제3제국사>과 <악티움 해전>, 올해에는 <팍스>, <러시아의 전쟁>, <제2차 세계대전 해전사>에 이르기까지 전쟁사와 관련하여 그야말로 주옥같은 책을 쉴 새 없이 내놓는 느낌.

저자인 리처드 오버리 영감님. 영국을 대표하는 제2차 세계대전 권위자 중 한 사람이자 엑세터 대학 명예교수. 1947년생이니 올해로 77살인데 정정하신 듯. 서양 사람들은 도무지 나이 가늠이 되지 않으니. 노화 지점이 우리와는 다른건지.


<피와 폐허>는 2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부터 베르사유 체제가 어떻게 무너지고 전쟁이 시작되었는지, 주요 전투와 일본의 패망까지 전쟁 전반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크게 색다를 것이 없는 1권보다는 오히려 2권이 더 흥미롭다. 왜냐하면 존 키건의 <2차 대전사>를 비롯해 시중에 나와 있는 여느 통사들과는 달리 전차, 항공기와 같은 무기의 발전과 전략 전술, 총력전, 외교, 경제, 민방위, 게릴라 전쟁, 병사들이 겪었던 전쟁신경증(PTSD), 전후 처리 등 그동안 인물과 사건에만 집중하여 간과되기 쉬웠던 부분을 두루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수박 겉핡기 식으로 잠시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유고슬라비아, 그리스 등 마이너 국가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면서 꽤 디테일하게 거론한다. 과연 세계적 석학다운 내공. 그런 점에서 작년에 출간되었고 내가 감수를 맡은 바 있는 열린 책들 출판사의 <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느낌. 그러고보니 그 책 공동 저자 중 한 사람이 이 양반이었던 걸로.

기갑 혁명은 그 숙적인 대 기갑 전력의 진화를 촉진했다. 전술 항공의 위협에 맞서 대공사격의 규모와 유효성을 키웠듯이, 기갑부대에 대항하는 능력은 기갑부대 자체에 버금갈 만큼 중시되었다. 대개 기갑사단은 적의 기갑부대와 항공부대를 상대하는 기동 공격 능력과 기동 방어 능력을 겸비했다. 이 조합은 생존에 필수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전차는 항공기와 마찬가지로 영토를 점령하지 못했다. 전시 동안 기갑부대의 성공은 제병협동 전투의 발전에 달려 있었으며, 그 전투에서 전차는 차량화보병, 자주포와 대전차포, 야전 대공포대, 기동공병대대, 정비부대 등과 긴밀히 협력하는 기갑부대의 중핵이었다. - p.742

일본 육군이 아주 일찍부터 알아챈 상륙전의 핵심 요인은 병력, 차량, 물자를 해안선까지 실어가 빠르게 내려놓도록 설계된 전용 상륙정과 상륙함의 필요성이었다. 상륙작전 전용 함정의 발전은 연합국에나 추축국에나 추후 성공을 좌우하는 주된 요인이었다. 1930년경 일본 육군은 두가지 유형의 동력 상륙정을 보유했다. 제1형은 군인 100명을 수송했고 해협에 쉽게 접근하도록 경사판을 설치했으며, 더 작은 제2형은 군인 30명, 또는 군인 10명과 말 10마리를 수송했으나 경사판은 없었다. - p.769


미국에서 무기와 군장비의 대량 생산은 당연시되었다. 1940년 5월 루스벨트 대통령은 연간 항공기 5만 대 생산을 요구하면서 공중 재무장을 개시했다. 또 나중에 전차생산계획에 개입해 연간 2만5천대 생산을 고집했다. 당시 이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느냐는 의구심이 일었지만, 루스벨트가 1940년 12월 노변담화에서 말한 '미국 산업계의 천재성'은 재무장과 전쟁의 요구사항에 부응했다. 1943년 미국은 벌써 적국의 생산량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군수물자를 홀로 생산하고 있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 며칠 전 히틀러의 사령부는 그의 서명이 들어간 명령을 내리고 독일 군수산업에서도 대량생산이 가능하도록 생산 간소화와 표준화 프로그램을 채택할 것을 요구했다. - p.863

경제전쟁은 양측 모두에게 엄청난 비용을 지우기도 했다. 적에게 향하는 자원을 차단하려면 충분한 자원을 투입해야 했다. 1940~1941년 영국본토항공전과 1940~1945년 대독일 폭격전쟁에는 군수품 생산량 중 상당한 부분이 투입되었으며, 방어하는 쪽도 방공에 자원을 할당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두 경우 모두 폭격으로 인한 경제적 영향은 대부분의 기간 동안 제한적이거나 미미했다. 영국 폭격기 사령부에서는 4만7268명이 전사했고 독일을 폭격한 미국 전략공군에서는 3만99명이 전사했다. 두 폭격기 부대가 상실한 항공기는 2만 6,606대였다. - p.960

양측의 도덕적 비난은 1941년 6월 22일 추축국의 소련 침공과 함께 사라졌다. 공격 며칠 후 마이스키는 영국 국민이 변화에 당황하고 있다고 적었다. "최근까지도 러시아는 독일의 은밀한 동맹으로, 거의 적으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별안간 24시간 만에 러시아는 친구가 되었다. - p.989

중국의 경우, 전쟁 노력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장제스가 알고 있었음에도 그 노력에 동참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1942년 말 장제스는 충칭에서 열린 국민참정회 본회의에서 연설을 하면서 동포들이 자신의 총력전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꾸짖었다. 당시 중국의 문제들은 적당한 공동 노력이 없었던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준다. 중국은 국가 절반이 일본군에 점령되었고 피점령지에서 적과의 기회주의적 협력이 만연했다. - p.1021

유고슬라비아에서 공산당이 이끄는 민족해방군과 드라자 미하일로비치 대령이 이끄는 체트니크 반란군이 무력 충돌을 벌인 이유는 전후 유고슬라비아 국가상이 상반되었기 때문인데, 전자는 공산주의 국가를, 후자는 군주제 국가를 원했다. 1942년 봄 공산당 지도부는 저항운동 경쟁 단체들을 상대로 계급 테러 전략을 구사하기로 결정하고 4월에 체트니크 지도부 500명을 살해하여 양측 간에 오래도록 이어질 내전의 서막을 열었다. 중국에서는 장제스의 국민당과 마오쩌둥의 공산당은 초기에 침공군에 맞서 공동 전선을 펴자고 합의했음에도 일본군의 배후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는 동안 거듭 충돌했다. - p.1100

1943년 봄 파르티잔은 벨라루스 삼림지대의 약 90퍼센트, 곡물과 육류 생산량의 3분의 2를 통제하며 이들 자원을 점령군으로부터 지켜냈다. 또한 1943년 하반기에는 독일 수송시스템을 9천회 넘게 공격했고 독일 육군이 쿠르스크에서 참패를 당하고 비틀거리던 1943년 8월에만 철도 3천킬로미터를 파괴하고 약 600대의 기관차를 망가뜨렸다. 소련측이 집계했고 현실을 왜곡했을 가능성이 다분한 통계에 의하면 파르티잔 병력은 활동의 절정기 동안 교량 1만2천개의 차량 6만5천대를 파괴했다. - p.1110

독일 노동자처럼 일본 노동자도 적국 전쟁 노력을 위해 모든 민간인을 동원한다고 선포한 뒤 1945년 7월 어느 항공대 정보장교는 대문자로 "일본에게는 민간인이 없다."라고 썼다. 일본 영공에서 민간인들을 불사를 때 미군 항공병들은 자신이 범죄에 관여하기는 커녕 오히려 범죄를 일삼는 야만적이고 광신적인 존재로 악마화된 적과의 전쟁의 종식을 앞당긴다고 생각했다. 태평양 전구 제21폭격기 사령부 사령관 커티스 르메이는 "우리는 그 도시(도쿄)를 폭격할 때 다수의 여성과 아이를 살해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라고 섰다. 그런 공격은 1939년 9월 교전국들에 적국 도시에 대한 폭격을 삼가하자고 호소했던 루스벨트의 정신에도 어긋나는 것이었다. - p.1252

장제스의 전시 서방 동맹들은 중국을 새로운 세계 질서에 어떻게 꿰맞출지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루스벨트는 중국이 전후 국제 안보를 강제하는 '네명의 경찰관'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1946년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되었다. 그러나 처칠이 보기에 자기들이 강대국의 일원이란느 중국의 주장은 허세였다. 영국 관료들도 지난 1943년 장제스가 중국의 주요 무역항에서 서구 측에 치외법권을 주는 불평등조약을 폐기할 것을 역설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포기했던 영국의 비공식 제국을 다시 주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영국의 의도는 1945년 9월 영국 해군의 홍콩 재점령으로 시험대에 올랐는데 이는 중국군의 홍콩 탈환을 용인하겠다는 장제스와 맺은 협정을 무시하는 군사행동이었다. 중국에서 존재감이 강한 미국 군부와 재계는 영국의 활동을 방해했지만 영국에게 가장 큰 장애물은 유럽과 일본 세력의 옛 질서가 이제 수명을 다했다는 국민당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장제스였다. - p.1354

2부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제6장에서 언급한 대소 랜드리스에 대한 것이다. 과연 서방의 랜드리스가 소련의 승리에 얼마나 기여를 했는지를 놓고 오늘날까지도 첨예한 논쟁의 대상이자 밀리터리 카페에서 수없이 논쟁이 벌어진 주제였기 때문이다. 재작년에는 국내 러시아 통으로 알려진 상명대학교 류한수 교수와도 개인적으로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의견을 나눈 적이 있었다. 본인이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으나, 실망스럽게도 정작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한 답변은 쏙 빼놓았지만 말이다. 어차피 학술보다 정치의 영역인지라 답이 나올 수도 없을 듯. 이에 대한 오버리 교수의 분석은 훨씬 명쾌하고 주목할 만하며 나의 생각과도 일치한다.

전후 수년 간 소련의 공식 노선은 자국의 전쟁 노력에서 무기대여의 역할을 경시하거나 아예 무시하는 것이었다. 이는 의도적인 역사 왜곡 행위였다. 종전 직후 소련의 비공식 지침은 무기대여가 "러시아의 승리에 그다지 뚜렷한 기여를 하지는 않았다"라는 것이었다. 1980년대까지 소련의 공식 노선은 무기대여 물자가 뒤늦게 인도되었고 대개 품질이 나빴으며 소련의 자체 노력으로 생산한 무기의 4%에 불과했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소련 지도부는 사석에서는 모든 형태의 원조가 얼마나 요긴한지 인정했다. "나는 스탈린이 소수의 측근들에게 무기대여를 인정하는 말을 몇차례 들었다. 스탈린은 만약 우리가 독일을 일대일로 상대해야 했다면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p.917

전차, 항공기, 무기는 연합국 원조에게 결정적 요소가 아니었다. 한층 더 중요했던 것은 소련 통신체계의 변혁, 과부하가 걸린 철도망에 대한 지원, 대량의 원료와 연료, 화약류의 공급이었다. 이런 원조가 없었다면 소련의 전반적인 전쟁 노력과 군사작전만으로는 독일 육군의 주력을 물리치기에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서방 연합국은 무기대여를 통해 군용 무전기 3만5천대와 야전전화기 38만9천대, 그리고 150만km 이상의 전화선을 공급했다. 1943년 초 소련 공군은 항공 전투부대들을 중앙에서 통제할 수 있었으며 전차에 무전기를 장착하는 간단한 방법으로 전력을 대폭 상승시켰다. 그로 인해 독일 육군은 몇번이고 적군의 규모나 위치, 의도를 짐작할 수 없었다. 철도를 통한 병력 및 장비의 이동을 뒷받침한 것도 미국이 제공한 기관차 1900대(소련은 겨우 92대를 생산했다.)와 전시 동안 사용된 철로의 56%였다. 이런 규모의 연합국 원조는 결정적이었다. 소련 산업계는 무기를 대량생산하는데 집중하는 한편, 전쟁 경제에 필요한 다른 많은 물자를 공급하는 과제는 연합국 원조의 몫으로 남겨둘 수 있었다. - p.919

어마어마한 분량이지만 한번 읽기 시작하니 손을 뗄 수 없을 정도이다. 마치 20편짜리 장편 2차대전 다큐멘타리를 책으로 옮겨놓은 느낌이랄까. 번역 또한 다소 논란이 있는 <제2차 세계대전 해전사>와는 달리 나무랄 데가 없더라. 적어도 내 눈에 거슬린다고 할 만한 부분은 없는 듯. 역자가 <제3제국사>와 <옥스퍼드 세계사>, <몽유병자> 등 여러 권의 전쟁사를 번역했는데(죄다 읽었다) 하나같이 오역 시비가 없다는 점에서 국내에서 보기 드문 전쟁사 전문 번역가가 아닐까 싶다. 2차대전사 덕후라면 필히 읽어볼 책이라고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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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해전사 - 전쟁의 향방을 결정지은 세계 해전의 모든 것
크레이그 L. 시먼즈 지음, 나종남 옮김 / 책과함께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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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년도 더 되었지만 예전에 코에이사에서 나온 <제독의 결단>이라는 게임이 기억난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미국과 일본, 영국, 독일(사황인가!) 중에서 한 나라를 선택한 뒤 자신만의 무적 함대를 건설하여 적 함대를 격멸하고 세계 바다를 정복한다는 로망 가득한 내용이었던 것으로. "나는 해군왕이 되겠어!"


3D의 화려한 그래픽에 익숙해져서 눈높이만 한없이 높아진 지금에 와서 다시 하라면 못할 것같지만 사회 초년생이었던 그 시절에는 퇴근 후 집에 와서 이거 한다고 정신이 없었던 때가 있었다. 연합군보다는 주로 추축군을 했던 것으로. 미국이 워낙 넘사벽인지라 오히려 재미가 떨어지다보니. 차라리 일본이 육성할 맛이 있었던. 실제 역사에 있었던 군함 이외에도 직접 설계가 가능한데 기술 테크 최대한 올리고 화력과 방어력 만땅 채운 마크로스급 슈퍼 전함으로 구성된 함대를 끌고 다니면서 바다의 깡패노릇을 하기도. 일제 포격 몇번하면 비행장의 내구력이 쭉쭉 내려갈 정도. 그래봐야 항공모함의 호위 없이는 제아무리 대공포로 도배를 하여 우주방어를 해본들 개떼로 몰려오는 함재기들의 어뢰 공격 앞에서 폭침당하기 일쑤지만 말이다. 코이에 리즈 시절에 나왔던 게임인데 삼국지인지 사골지인지 그만 우려먹고 이런 걸 리메이크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수천년의 인류 역사를 통틀어 수없이 벌어졌던 해전의 정점은 제2차 세계대전일 것이다. 지금이야 미 해군이 독보적인 존재인지라 게임으로 치면 밸런스가 무너진 셈이랄지. 미 본토가 무너져도 미 항모 전단만 건재해도 전 세계를 정복할 기세다보니.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항공모함이 남아 있나이다." 그런 미 해군의 아성이 완성된 순간이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전쟁이 시작될 때만 해도 미 해군은 결코 지금과 같은 절대 강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트라팔가르 해전 이래 한 세기 동안 바다의 제왕 노릇을 하던 영국과는 넘버 1자리를 놓고 한동안 첨예한 경쟁을 벌였고 후발주자로 무섭게 쫓아오던 일본의 추격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막강한 항모 부대를 보유한 일본 해군은 미 해군 입장에서는 끝판 보스급의 위협적인 존재였다. 전쟁 초반 미국에 강렬한 싸닥션을 날린 진주만 기습은 물론이고 마지막까지 미 해군을 물고 늘어졌다. 아마 영국 해군도 그 정도로 활약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때 '카이저의 값비싼 장난감'이라고 조롱받기도 했던 독일 해군은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몰락하기는 했지만 유보트 부대만큼은 전쟁 내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강적이었다. 전쟁을 거치면서 영국이 파산하고 독일, 일본이 패망하면서 비로소 미 해군은 서열을 완전히 정리했다. 오늘날 다른 나라 해군들은 제아무리 설쳐봐야 골목 대장이요, 미 해군 입장에서는 귀여운 꼬꼬마들에 불과하다. 근래에 중국 해군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고는 있다지만 미 해군과 견주려면 이번 세기 안에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인문과 역사 전문 출판사인 책과 함께 출판사에서 올해 최고의 책 중 하나로 손꼽히기에 부족함이 없는 대작 도서가 나왔더라. <2차대전 해전사(World War Two at Sea)>는 말그대로 제2차 세계대전 해전의 모든 것을 담은 책이다. 북펀드를 하길래 가격이 만만찮아 일단 접었다가 "어머 이건 꼭 사야돼"라면서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질렀다는. 작년 이맘 때에 나왔던 폴 케네디의 <대해전, 최강국의 탄생>이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부터 일본이 항복하기까지 전체적인 해전의 흐름을 다루면서 미국이 어떻게 자신의 잠재된 포텐셜을 터뜨리고 오늘날 세계 바다의 지배자가 되었는지를 중간중간 미려한 삽화와 함께 거시적으로 다룬다면 이 책은 개별 작전을 중심으로 좀 더 디테일한 느낌이다. 일단 분량에서 30%나 더 많으니 말이다. 무려 천 페이지에 달하는 무지막지한 벽돌책. 저자인 크레이그 시몬스(Craig L. Symonds) 교수는 미 해군에서 장교로 복무했고 미 해군사관학교에서 역사학 교수를 지내면서 남북전쟁 해전사를 비롯하여 여러 권의 저서를 낸 해전사 연구의 입지전적인 인물. 그 중에서도 이 책은 2018년에 나왔다고 하니 이 분의 가장 최신작 중 하나인 셈.

출간 당시 저자와의 북토크. 오른쪽의 머리벗겨진 영감님 말고 왼쪽 상단이 저자. 올해로 77살이라는데 아직까지 정정하신 듯.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초반 독일 유보트 부대의 부활을 비롯하여 노르웨이 전역과 됭케르크 철수작전, 지중해에서 영국과 이탈리아 해군의 대결, 태평양에서 미국과 일본의 치열했던 함대항모전, 유보트와 호송 함대간의 통상 파괴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일본 패망에 이르기까지 6년여의 시간을 관통하는 그야말로 제2차 세계대전 해전사의 집대성이다. 여기에는 미국과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당대 주요 해군이 모두 등장한다. 중간중간 삽입된 사진과 지도도 눈여겨 볼만하다. 존 키건의 <2차대전사>에 비견할 만한 책.

전쟁 전반을 다루는 다른 2차 대전사와 달리 천여 페이지에 걸쳐서 오직 해군에만 국한하다보니 다른 서적에서 보지 못한 꽤 흥미로운 내용도 있다. 특히 미 육군과 육군 항공대 내의 보이지 않는 알력. 육군이 공중 지원을 받으려면 육군 항공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고. 당시 미 공군은 아직 육군에서 독립하기 전이었고 육군의 일부였음에도 실제로는 사실상 독립 병종이었던 셈. 미처 몰랐던 사실이다.

반면 공군과의 협력 과정은 훨씬 어려웠다. (중략) 테더 장군과 그의 미국군 상대인 칼 투이 스파츠 장군 모두 자신만의 독자적 행정을 유지하고자 했다., 그들은 육군이나 해군의 단순한 보조가 되기를 꺼렸고, 자신들은 다른 어느 군과도 협력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휴잇 중장은 항공대의 공중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항공대 사령부에 공중 지원 요청서를 제출한 뒤 검토를 받아야 했고 그런 경우에도 자신의 요청이 반드시 승인되리라 장담할 수 없는 것에 한탄했다. - p.617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히틀러의 눈을 속일 요량으로 퓨티튜드 작전을 비롯하여 각종 기만작전을 벌였고 그 덕분에 연합군은 예상보다 훨씬 적은 피해로 상륙할 수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축함들의 지상 지원이 아니었다면 상륙 부대는 막강한 서부 방벽을 뚫지 못하고 쫓겨날 수도 있었다는 저자의 지적은 매우 흥미롭다.

이 상황에서 영국과 미국의 몇몇 해군 구축함이 없었다면 이날 연합군의 상륙 작전 전체가 위험에 빠졌을 가능성이 크다. (중략) 연합군의 전함과 순양함이 보유한 대형 함포의 지역 사격으로는 독일군의 포진지를 타격하지 못했으나 구축함에서 발사하는 5인치 소형 함포의 조준 포격이 누적 효과를 발휘하면서 독일군 포진지가 하나둘씩 제거되었다. 그리하여 상륙한 뒤로 꼼짝하지 못하던 상륙 부대가 일어서서 이동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해안 절벽 아래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그날 늦은 오후가 되었을 때 연합군은 해변을 완전히 확보하지는 못했으나 적어도 상륙 부대가 다시 바다로 내몰리지 않을 것임은 분명했다. - p.753

태평양전쟁의 유명한 떡밥 중 하나가 레이테 해전에서 소위 '구리타 턴'이라고 불리는 구리타 함대의 회항이다. 구리타 함대는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 미 해군의 방어선을 돌파하는데 성공했고 목표점인 레이테 만에 돌입하여 미 수송선단을 끝장낼 수 있는 기회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것은 미군의 방심이 초래한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하지만 구리타 함대는 그 순간 회항을 선택함으로서 하늘이 내려준 기회를 날려버렸다. 방해를 받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여기에 대해 지금까지도 온갖 설왕설래가 있지만 저자는 구리타가 달아난 것이 아니라 항모 전단과 싸우기 위해서 였다고 주장한다. 시시한 수송선 따위보다는 항모가 훨씬 중요한 목표물이니 말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저자의 추측일뿐 명확한 증거는 없다. 하지만 읽다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구리타 제독이 작성한 전투 보고서를 보면 그는 미 수송함 대부분이 피신한 것으로 보이는 레이테 만으로 들어가기보다 새로 등장한 항공모함 부대를 공격하는 것을 더 현명하다고 보았다. 그는 "그렇게 결심한 직후 우리는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종전 이후 고야나기 제독도 "적의 다른 항공모함 부대를 찾아 북쪽으로 진격했다"라고 명확하게 말했다. (중략) 그런 설명은 구리타 제독의 성격과 일본 해군의 문화, 그리고 미국 해군의 문화에 상당 부분 합치한다. 매헌의 이론을 신봉했으며 적의 항공모함 파괴에 집착했다. 구리타 제독은 텅 빈 미국군 항공모함을 침몰시키는 임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 p.829

한국경제신문에서 출간한 폴 케네디의 책도 그러했지만, 이번에도 문제는 중간중간 눈에 띄는 오역과 오탈자들. 폴 케네디 책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나처럼 뻔히 아는 사람 눈에는 아무래도 거슬리지 않을 수 없더라. 역자가 육사 교수로서 전쟁사에 있어서는 최고 전문가일 터인데 아무래도 번역은 다른 모양이다. 그보다 출판사에서 교정 과정에서 조금만 더 신경썼어도 왠만큼 걸려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수백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에서 오탈자 하나만 나와도 "이것봐라"면서 마치 큰 건수라도 발견한 양 호들갑을 떨면서 별점 테러를 가하는 방구석 전문가들이 있으니 말이다. 이 때문에 뒤늦게 절판되거나 재교정을 거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독자들 눈높이는 끝없이 올라가는 반면, 우리네 출판사들의 인식은 따라가지 못하는 게 아쉽다. 내가 애용하는 이북 사이트에 원서가 올라와 있길래 눈에 띄는대로 한번 정리해 보았다. 출판사에 직접 전달하고 싶었으나 나와 인연이 없는데다 홈페이지도 없더라. 출판사에서 나중에 재교 낼 때 참고했으면 싶다.

16인치 -> 원문에는 15인치 - p.14

이 항공기는 폭발적인 속도로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전함에 장착된 철제 거룻배 푼툰을 이용해 모선에 착륙했다가 다시 전함 위에 탑재되었다. -> 이 비행기들은 장약에 의해 하늘로 떠오른 다음, 장착된 플롯트(수상기 하부에 랜딩기어 대신 부력을 얻기 위해 달린 부유물)를 이용하여 모선 주변에 내려와서 갑판으로 끌어 올려졌다. (These planes were propelled into the air by an explosive charge, because they were equipped with pontoons they could subsequently land alongside their host vessel and be winched back aboard.) - p.15

6년 뒤 중위(Kapitänleutnant = lieutenant) -> 대위 - p.28

※ 독일 해군에서 중위는 Oberleutnant zur See

독일 순양함 그나이제나우와 쾰른이 전함 9척을 대동하고 -> 구축함 9척(nine destroyers)을 대동하고 - p.29

전함 로열오크함은 -> 전함 로열오크함은 2척의 호위 구축함과 함께(with two escorting destroyers) - p.29

로열오크함과 호위 전함들은 -> 로열오크함과 호위함들은(Royal Oak and her escorts) - p.29

당시까지는 영국만 보유하던 유보트의 건조를 승인했다 -> 독일이 영국과 동등한 수량의 유보트를 건조할 것을 승인했다.(authorized Germany to build U-boats up to the total possessed by Britain)

적의 전함은 -> 적 군함(warships)은 - p.36

주력 함포 -> 주포, 보조 함포 -> 부포 - p.39

3인치(76mm) 기관총 -> 3인치 함포 - p.39 ※ 역자가 76mm를 7.6mm로 착각한 듯.

수상 항공모함 -> 수상기 모함(seaplane carrier) - p.43

아트미랄셰어 -> 아드미랄 셰어(Admiral Scheer) - p.58

겔리선이 파괴되어 -> 식량 보관고(galley)가 파괴되어 - p.60

리나운 함의 호위를 받던 -> 리나운 함의 호위함 중 하나인(part of Renown’s escort) - p.84

전선이 끊어지고 화재로 망가진 -> 화재에 의해 기능을 잃고 대파된(Powerless and ravaged by fires) - p.85

폴 레노 대통령은 -> 폴 레노 총리는 - p.105, p.118 ※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알베르 르브룅(Albert Lebrun)

4문씩 2개 포대로 구성되었다 -> 4연장 포탑 2기로 구성되었다.(two massive four-gun turrets) - p.124

어뢰기 -> 뇌격기(torpedo) - p.135, p.350, p.382, p.409, p.422

차노 장관 -> 치아노 장관 - p.136, p.142

어뢰 폭격기 -> 뇌격기 - p.137~138, p.158, p.459

4리터 크기 -> 227리터(60갤런, sixty-gallon) - p.139

스트링백 항공기 -> 망태기들(Stringbags, 소드피시 복엽기의 별명) - p.142, p.157, p.226

제10비행단 -> 제10항공군단(Tenth Fliegerkorps) - p.149

연료를 보급받을 때까지 고작 50분 밖에 머물지 못했다 -> 재급유를 위해 떠날 때까지 겨우 50분만 머물렀다.(they stayed for only fifty minutes before they had to fly off to refuel.) - p.158

전기가 완전히 차단되는 -> 동력을 상실하는 - p.159

이탈리아 잠수함 1개 중대 -> 이탈리아 잠수함 1개 전대(one squadron) - p.170

테오도어 크랑케 소령 -> 테오더어 크랑케 대령(Captain Theodor Krancke) - p.188, p.191, p.192

※ captain = Kapitän zur See(해군 대령)

거대한 4개 함포의 포탑이 -> 거대한 4연장 포탑이(the giant four-gun turret) - p.216

항구로 끌려가는 수치를 -> 항구로 견인되는 불명예를 당하지 않으려고(lest he be forced to accept the ignominy of being towed into port) - p.230

해군 총참모부 -> 해군 군령부(軍令部), 해군 총참모장, 참모총장 -> 해군 군령부총장 - p.239, p.260, p.727

해군 장관 -> 해군 대신 - p.240

천황파 -> 황도파 - p.241, p.251

제1항공모함 사단 -> 제1항공전대 - p.243, p.245

페이핑 -> 베이핑(Peiping, 北平) - p.252

20밀리미터 기관총 -> 20밀리미터 기관포(20 mm cannon) - p.253

4단 파이퍼 구축함 -> 연통 4개 구축함(The Four Stackers destroyers) - p.282, p.285

헨리 모건타우 -> 헨리 모겐소(Henry Morgenthau) - p.290

변속기 열쇠 -> 무선 전송기 키(transmission keys) - p.300

나구모 중령 -> 나구모 중장 - p.309

나가모 중장 -> 나구모 중장 - p.333

일본 육군의 저항은 -> 일본 육군의 비협조는 - p.349

사촌 격인 -> 나이많은 사촌 뻘인(older cousins) - p.350

소드피시 어뢰기 6대와 스트링백 항공기를 출격시켰으나 -> 어뢰로 무장한 소드피시 뇌격기 6대를 출동시켰으나(dispatched a half dozen Swordfish armed with torpedoes) - p.350

11킬로그램짜리 기관총 -> 25파운드 야포(twenty-five pound guns), 1킬로그램짜리 기관총 -> 2파운드 야포(two-pound guns) ※ 여기서 파운드는 포탄의 무게. - p.360

집단전술 -> 이리떼 전술(rudeltaktik) - p.361

항송 거리가 - 이론적인 항속 거리가(theoretical range) - p.369

제6장과 제12장, 제17장의 부제인 'The War on Trade'는 무역전쟁보다 통상파괴전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음.

마셜 장군은 각 군은 다른 군에게 '가능한 모든 지원'을 상호 제공하라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공군과 해군이 작전을 펼치면서 성공할 방법을 찾으라는 뜻이었다. -> 마셜은 각각의 부서가 서로에게 "가능한 모든 지원"을 제공할 것을 강조했다. 즉, 함께 일하고 협력할 방법을 찾으라는 얘기였다.(Marshall insisted that each service was to provide “every available support” to the other. In effect, he told them to find a way to work together and get along.) - p.436

※ 당시 미국은 공군이라는 병종이 없었음.

헤라클레스 작전 -> 헤르쿨레스 작전(Operation Herkules) - p.455

헬무트 로젠바움 중위 -> 대위(Kapitänleutnant) - p.459

일본군 해병대 -> 일본 해군 육전대 - p.476

제2 구축함 사단 - 제2 수뢰 전대(第二水雷戦隊) - p.477

주이호 -> 즈이호(ずいほう) - p.497

11대의 병력 수송대를 파견해 -> 11척의 병력 수송선으로 구성된 주력 호위선단을 파견해(dispatching a major convoy of eleven troop transports) - p.526

제182 보병연대의 절반에 해당하는 6000명을 태운 7척의 수송선이 -> 제182 보병연대 6천명을 실은 수송선 7척이

(seven transports carrying six thousand men of the 182nd Infantry Regiment)

어뢰 전문가 -> 어뢰 조작 요원(torpedomen) - p.529

탄창 -> 탄약고(magazines) p.529

미국인 거주지 -> 미군 교두보(American enclave) - p.537

어뢰 항공기 -> 뇌격기 p.551

이는 완전히 잘못된 계산이었다. 젊고 대부분 경험이 부족한 유보트 승무원들은 계속해서 바다로 출격했고 그 중 많은 이가 돌아올 수 없었으며 수송선들은 계속해서 목표물이 되고 침몰했다. 수송선들이 전쟁의 결과나 그 궤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수송대에 연합국의 선박, 함정, 항공기를 계속 묶어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 젊고 대부분 미숙한 유보트 승무원들이 계속해서 바다로 출격하고 그 중 태반이 돌아오지 못한 것이 그럼으로서 전쟁의 결과나 그 궤적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연합군의 해상 운송과 호위함, 항공기들을 붙잡아둘 수 있다는 이유로 지속적인 목표물로 삼아서 격침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여긴다면 그야말로 계산착오였다.

(It was an utterly bankrupt calculation: young and largely inexperienced U-boat crews must keep going to sea, many of them never to return, and the transports must continue to be targeted and sunk, not because it might affect the outcome of the war, or even its trajectory, but because it kept Allied shipping, escorts, and airplanes occupied. ) - p.574

지상 출격 공군 -> 기지 항공대(land-based air force) - p.585

※ 일본군은 미군과 마찬가지로 공군 병종이 없었음.

20밀리미터 대포 -> 20밀리미터 기관포 - p.591

공군 -> 육군 항공대(Air Force) - p.617

휴잇 준장 -> 휴잇 중장 - p.627

사바나 -> 서배너(Savannah) - p.628, p.648, p.650

3문짜리 포탑 5세트 -> 3연장 포탑 5문(five turrets of three guns each) - p.628

합동참모본부의 수장 -> 이탈리아군 최고사령부 사령관(head of the Italian Joint Chiefs) - p.637

※ Comando Supremo는 독일의 OKW에 해당하는 조직

이제부터 내가 맡아줄게 -> 우리가 너희를 보호하겠다.(We have you covered) - p.648

이동식 88밀리미터 포병 -> 88밀리미터 자주식 포병(mobile 88 mm artillery) - p.648\

어벤저 어뢰기 -> 어벤저 뇌격기 - p.667

구축함 사단 -> 구축함 분대(destroyer divisions) - p.685, p.687

※ 2차대전 중 미 해군은 통상 4척의 구축함으로 1개 분대(division)를 편성하고 2개 분대가 1개 전대(Squadron)를 구성했음.

합동참모본부 -> 연합참모회의(Combined Chiefs) - p.717

따라서 작전을 수행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공습을 경험하지 않은 연합군 함정은 없었다.

-> 따라서 작전을 수행하는 동한 단 한번이라도 공습을 당해 본 연합군 함정은 없었다. - p.727

(In consequence of that, no Allied vessel experienced a single air attack during the operation)

고가 제독은 항공모함을 이용해 라바울을 방어했기 때문에 그가 보유한 항공모함은 항공기를 가득 적재한 항공모함에 비하여 훨씬 작았다. -> 고가 제독은 자신의 항모비행단을 라바울 방어에 활용하면서 그가 보유한 항공모함에 남은 비행기는 완전 편제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Koga had followed Yamamoto’s lead in using his carrier

air groups to aid in the defense of Rabaul, his carriers had far less than their full complement of aircraft.) - p.727

조지 왕조 시대 -> 조지 시대 ※ 조지라는 이름을 가진 왕들의 시대이지 하노버 왕조이므로 왕조라는 말은 맞지 않음.

- p.735

황실 총사령부 -> 대본영 p.801

지프 항공모함 -> 호위 항공모함(jeep carriers) - p.818

미국군 항공모함 대부분이 도망쳤을 것으로 -> 미국군 수송선 대부분이 피신했을 것으로(most of the

American transports would have fled) - p.829

노르덴 폭격 조준경 -> 노던 폭격조준기(Norden Bombsight) - p.854

화약 전문가 -> 군수부의 절대 권력자(munitions czar) - p.867

※ 슈페어는 화약이 아니라 건축 전문가이며 독일 군수부 장관을 지냄.

킹과 니미츠, 윌리엄 레이히를 제치고 유일하게 그에게만 원수로 진급하는 -> 킹과 니미츠, 윌리엄 레이히 3명에만 부여되었던 계급을 다른 나머지 사람들 중에서 오직 그에게만 자격이 있다고 인정되었다는 점에서 (with King, Nimitz, and Admiral William D. Leahy (FDR’s chief of staff) holding down three of them, only one other individual was eligible.) - p.910

※ 킹, 니미츠, 레이히는 1944년 12월에 원수로 승진했고 헬시는 1945년 10월에 승진했음.

추억의 <제독의 결단>이 생각나게 하는 책이다. 한번 읽기 시작하니 도저히 손을 뗄 수 없어서 주말 동안 완독했다. 2차대전 덕후라면 꼭 일독하기를 권한다. 책에 중독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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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1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구데리안 2024-11-11 14:3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댓글 남겼습니다.^^
 
2차대전 해전사 - 전쟁의 향방을 결정지은 세계 해전의 모든 것
크레이그 L. 시먼즈 지음, 나종남 옮김 / 책과함께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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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마음 먹고 질렀는데 오늘 책 받아봤네요. 아직 앞부분 몇 페이지 읽었지만 2차 대전 덕후로서 기대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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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패배 - 1940년의 증언
마르크 블로크 지음, 김용자 옮김 / 까치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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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5월 15일 수요일 아침 7시 30분, 프랑스 총리 폴 레노에게서 걸려 온 전화는 그때까지 비몽사몽이었던 처칠의 잠을 한순간에 날려버렸다. 레노는 울부짖듯이 영어로 외쳤다. "우리가 졌습니다." 그는 다시 말했다. "우리가 졌습니다. 전투에서 졌습니다." 아니, 전쟁은 이제 시작되지 않았던가. 불과 닷새전 노르웨이 원정 실패로 탄핵을 받아 물러난 체임벌린 대신 영국 전시 총리로 임명되었던 처칠은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당할 수 있다는 말이오?" 레노는 아르덴을 돌파한 독일군의 기갑부대가 스당을 점령하고 파죽지세로 진격 중이라고 말했다. 처칠이 아직 승리의 기회가 있을 거라면서 필사적으로 달래려고 했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레노는 "우리는 이미 졌습니다."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었다.

바로 전날 독일군이 뫼즈강을 넘었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프랑스 장군들은 스당이 돌파되자 그제야 발등에 불이 떨어진 꼴이었다. 그것도 단순히 허를 찔렸다거나 한 방 먹었다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프랑스군 전체가 대혼란에 빠졌다. 그 순간의 당혹감은 그동안 쏟아졌던 수많은 경고를 고집스레 무시했던 모습이 무색했다. 프랑스군의 이인자인 알퐁스 조르주 장군은 어찌나 충격이 컸는지 "스당이 돌파당했다! 무너졌다고!"라고 외치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보다 못한 참모장 두망(Joseph Édouard Aimé Doumenc) 장군이 "전쟁에서는 원래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는 법입니다."라면서 달래야 했다.

싸움이 처음 시작될 때만 해도 독일군이 프랑스 땅을 밟는 일은 결코 없을 거라며 그토록 자신만만하던 프랑스군 총사령관 가믈랭 원수는 이제는 상황을 터무니없이 과장하여 정치인들까지 겁에 질리도록 만들었다. 이날 저녁 가믈랭은 국방부 장관 달라디에를 향해 독일군이 최후 방어선을 돌파하여 파리로 접근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달라디에가 1914년처럼 즉각 반격하여 적의 진격을 막아내라고 명령하자 자신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로 그를 비롯한 프랑스 전체를 절망에 빠뜨렸다. 다음 날 아침 허둥지둥 파리로 날아온 처칠이 "전략 예비대는 어디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도 가믈랭은 "전혀 없습니다."라는 맥 빠진 대답으로 말문을 막아버렸다. 처칠은 훗날 자신의 회고록에서 "내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순간이었다."라고 썼다. 게리 올드만 주연의 영화 <다키스트 아워>에서도 처칠이 프랑스까지 날아가서 그들의 투지를 다시 불붙이려고 애쓰지만 프랑스 지도자들의 한없이 무기력한 모습에 당황하는 장면이 나온다. 처칠로서는 앞이 깜깜했을 듯.

연합군 주력부대가 독일군을 딜 강에서 저지하기 위해서 벨기에로 부지런히 전진하는 동안 마지노 요새의 빈틈을 뚫고 들어온 독일군은 나중에 처칠의 유명한 표현대로 마치 낫으로 이삭을 베듯이 한방에 쓸어버렸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깨닫지 못했던 연합군 수뇌부는 독일군의 새로운 전술인 전격전에 당했다고 떠들었지만 그 패배의 상당부분은 실상 그들의 어리석음이 자초한 일이었다.


더욱 어이없는 점은 프랑스군 수뇌부가 독일군에게 허를 찔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차피 다 진 싸움이라며 전의 자체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막상 히틀러와 독일군은 승리는 커녕, 이제부터가 진짜라면서 마음 단단히 먹고 있는 판국이었는데 말이다. 뒤늦게라도 정신을 차리거나 판세를 뒤엎으려는 노력은 없었다.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 포위된 150만명의 연합군 중 불과 33만명만이 덩케르크에서 겨우 탈출했다. 이들을 구한 것은 그때까지 남쪽에 남아 있던 100만명이 넘는 프랑스군이 아니라 영국 해군과 목숨걸고 자신의 배를 끌고 영불해협을 넘어온 수많은 영국 민간인들이었다. 프랑스는 6월 22일 콩피에뉴 숲에서 굴욕적인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만약 프랑스인들이 끝까지 버티느니 일찌감치 항복하는 쪽이 히틀러의 선처를 얻을 수 있다고 여겼다면 엄청난 착각이었다. 히틀러에게 관용은 없었다. 거액의 배상금은 물론이고 영토의 2/3는 독일의 직접 지배에 들어갔으며 나머지 1/3 역시 독일의 통제를 받아야 했다. 또한 100만명 이상의 병사들이 전쟁 노예로서 독일로 끌려갔다. 전쟁이 제아무리 고통스러워도 패전은 그보다 몇 배 더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망각한 대가였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무기력하고 치욕스러웠던 1940년의 여름은 이렇게 끝났다.

히틀러의 지배는 꼭 4년 뒤인 1944년 6월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과 프랑스 해방으로 끝났지만 그후에도 프랑스인들에게 한 가지 의문만은 뇌리에서 떨쳐버릴 수 없었다. 도대체 우리는 왜 졌는가였다. 프랑스는 독소전쟁에서의 소련군처럼 손 놓고 있다가 전략적인 기습을 당한 것도 아니었다. 독일군의 침공이 시작되기 수개월 전부터 이미 서부전선은 전시 상태였다. 그렇다고 1870년처럼 자만하여 독일을 얕보지도 않았다. 프랑스는 독일과의 결전을 위해 자신들의 역량을 총동원했고 수십만명의 영국 원정군도 가세했다.

그들로서는 적어도 쓸 수 있는 수는 다 쓴 셈이었다. 서방의 언론인들은 서부 전선에 결집한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군대를 경외감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이번 전쟁은 반드시 프랑스군이 이길 것"이라고 장담했다. 막상 뚜껑을 열자 일방적으로 쓸려나간 쪽은 프랑스군이었다. 독일을 쉽게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이토록 어이없게 질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정말로 독일군이 그렇게 강했던가. 그렇다면 일이 그 지경이 되도록 도대체 프랑스 지도자들은 뭘 했던가.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 베르사유 조약에서 독일군의 손발을 그토록 꽁꽁 묶어두었고 막대한 혈세를 마지노 요새 건설에 쏟아넣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원래 그런 의도는 아니었지만 무개념한 장군들 덕분에 난공불락의 요새에서 역사상 최악의 대국민 사기극으로 전락한 마지노 요새. 10년 전 이 요새 건설을 처음 제안했던 프랑스 국방장관 앙드레 마지노는 저승에서 "난 억울하다고!"라고 외치고 있을 듯.

서방 언론들이 독일의 놀라운 승리를 '전격전(Blitzkrieg)'이라고 부르며 호들갑을 떠는 동안 가믈랭을 비롯한 패전지장들은 그 뒤에 숨는 쪽을 선택했다. 무능한 똥별들이 그러하듯 이들 역시 자성의 목소리 대신 모든 책임을 남탓으로 떠넘겼다. 자신들은 최선을 다했지만 상대가 너무 강했고 동맹국들이 배신했으며 무엇보다도 프랑스 내부에 숨어 있던 '제5열'들이 사보타주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전쟁 중 보여주었던 이들의 행태를 본다면 그야말로 뻔뻔한 소리였다. 그것은 이적행위이나 다름없는 직무유기였다. 무슨 말을 늘어놓은들 프랑스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대를 가장 빠른 시간에 말아먹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만약 스탈린이었다면 고민할 것 없이 그 자리에서 이들을 모조리 총살시키거나 시베리아 굴라크로 보냈을 것이다. 비인간적이기는 했지만 효과는 확실했으니 말이다. 한편으로 생각한다면 늙고 고루하면서 뇌가 굳어버린 프랑스 장군들의 케케묵은 상식으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 이상 이해할 방법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들의 불행은 자신들의 둔감한 사고방식으로 따라잡기에는 시대가 너무 빨리 바뀌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런 시대에 하필 이런 똘빡 영감들에게 운명을 맡겨야 했던 모든 프랑스인들의 불행이기도 했다.

까치 출판사에서 나온 신작 도서 <이상한 패배 - 1940년의 증언>은 지난 수십년 동안 수없이 제기되었고 논쟁의 대상이었던 "그 때 우리는 왜 아작났는가?"를 다룬 책이다. 시중에는 독일 연방군 장교가 쓴 <전격전의 전설>이나 <전격전, 프랑스 패망과 거짓 신화의 시작>, <히틀러 최고 사령부>처럼 그동안 한편의 신화로 포장되었던 독일 전격전의 허상을 벗기는 책은 많다. 그러나 이 책은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이 있다. 전후 책상 위에서 기록으로 당시를 재구성한 교수나 군인이 아니라 그때의 패배를 직접 겪은 사람의 증언이라는 점이다. 저자 마르크 블로크(Marc Léopold Benjamin Bloch)는 파리 대학교의 중세학 교수이자 유대인으로 군 입대를 한번도 아니고 무려 세번이나 한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폭발했을 때 그는 30대였고 진작에 군 복무를 마쳤지만 부사관으로 재입대했다. 마른 전투와 솜 전투 등 굵직굵직한 전투를 경험하면서 두번이나 중상을 입었으며 최고 영예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았다. 전쟁이 끝났을 때 대위로 제대했다. 전쟁 시작부터 끝까지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여신의 가호를 받는 행운아였던 셈.

마지막 복무는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1939년 9월 폴란드 전역이 폭발하고 연합국이 독일에 선전포고하면서 동원령이 선포되었고 재입대했다. 그는 이미 53살의 중년이었고 사회적으로 저명한 교수였음에도 계급은 여전히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예비역 대위였다. 본문에서는 그 이유가 자신이 군에 불성실하다는 이유로 찍힌 탓이라고 말한다. 당시 프랑스군이 얼마나 경직되었으며 능력보다 절차와 위계질서를 따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셈이기도 하다. 프랑스는 민주주의 국가였지만 프랑스군은 민주 군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강의 차 미국에 갈 기회가 있었지만 모든 가족이 비자를 받지 못하여 포기했다. 서부전역이 폭발하자 프랑스 제1군에 소속되어 가믈랭의 명령에 따라 벨기에로 향했다가 독일군에 포위되었지만 덩케르크 철수 작전에 참여하여 영국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대로 영국에 남을 수도 있었음에도 가족이 프랑스에 있다는 이유로 돌아왔다. 프랑스가 항복했을 때 운좋게 포로 신세가 되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운은 끝까지 가지 못했다. 저항군에 가담한 그는 1944년 3월 8일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었고 혹독한 고문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노르망디 상륙 작전으로 프랑스 해방이 눈앞에 닥치던 6월 16일 총살당했다. 그 사이 어머니와 병석에 있었던 아내도 사망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말년에 와서 전쟁으로 인생이 꼬인 셈이다.

이 책은 덩케르크 철수를 거쳐서 영국에서 귀환한 저자가 프랑스가 항복한 직후 책임 대신 변명만 늘어놓는 군의 높으신 상관들을 반박하고 프랑스의 지성이자 하급 장교로서 자신이 목격했던 프랑스군, 더 나아가 1918년 승리 이후 프랑스 사회가 안고 있는 총체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쓴 글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이 어이없는 패배의 진짜 원인은 독일군의 기상천외한 전술이나 신무기가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었다는 것. 물론 히틀러 치하에서는 감히 내놓을 수 없었고 그가 고인이 된 뒤 전쟁이 끝나고 1946년에 출간되었다고. 말하자면 프랑스판 징비록인 셈. 그렇다보니 그의 질타는 그야말로 신랄하면서 촌철살인같은 느낌이다.

우리는 방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패배를 당했다.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가. 의회제도, 군대, 영국, 간첩의 탓이라고 우리 장군들은 대답한다. 결국 자신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조프르 장군이 훨씬 현명했던 셈이다! "마른 전투에서 이긴 사람이 나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그 전투가 패배로 끝났다면 그것이 내 탓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 p.34

그러나 "후방"에 있어야 할 부대가 "전방" 부대라고 하는 부대보다 실제로는 전투 지역에 더 가까이 있게 되자 놀라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미 뫼즈 강에 틈새가 열리자 이동 도중에 서둘러서 전선의 돌출지대를 메운다는 구실로 늑대의 벌린 아가리 안으로 던져 넣으려던 한 사단의 하차 지점을 바꾸어야 했다. 어떤 사단의 장군이 사령부로 쓸 지점에 도착해보니 적이 그보다 먼저 와 있는 경우도 있었다. - p.54

우리는 방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패배를 당했다.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가. 의회제도, 군대, 영국, 간첩의 탓이라고 우리 장군들은 대답한다. 결국 자신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조프르 장군이 훨씬 현명했던 셈이다! "마른 전투에서 이긴 사람이 나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그 전투가 패배로 끝났다면 그것이 내 탓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 p.34

우리가 전차, 비행기, 견인차를 충분히 보유하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도 무한정 있는 것도 아닌 돈과 인력을 시멘트에 들어부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동부 국경과 마찬가지로 노출되어 있는 북부 국경선에 충분한 방어선을 구축할 만큼 현명하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첫째 사람들이 우리에게 마지노 선을 믿도록 가르쳤기 때문이다. 이 방어선은 많은 비용을 들이고 요란한 선전을 하면서 건설되었으나 좌측에서 너무 짧게 끝나는 바람에 결국 라인 강에서 돌아 나아가 시작만 하고 중단되었기 때문이었다. 둘째로 마지막 순간에 노르도에 서둘러서 시멘트 보루를 건설하는 쪽으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전방 방어에만 적합하도록 건설되어 정작 후방 쪽에서 점령당했다. - p.61

군이 소속 부대의 소재를 모르는데, 어떤 기적이 일어나서 명령이 제시간에 도달하겠는가? 어느날 기병부대가 이동하자 유류 저장소 장교가 평소처럼 선량한 고객을 만나러 갔다. 그가 부대로 돌아오자 나는 그를 제3국으로 데리고 갔다. 우리의 고위 전략가들이 새로운 사령부의 위치를 정확히 아는지를 확인해두는 것이 현명할 듯 싶어서였다. 대조한 결과 실제 위치와 지도 위에 목탄으로 이미 표시한 지점 사이에는 약 30km의 차이가 있었다. 우리 지적에 대해 그들이 입 끝으로 내뱃듯이 하던 "고맙소"라는 말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중략) 게다가 우리는 "영국군"과의 협조 체제를 제대로 조직했는가? 우리 연락체계의 비극적인 결함이 문자 그대로 이보다 더 잔인하게 표출된 것은 없을 것이다. - p.76


장군이 노했다. 전사는 원한다면 사창가에 가도 되지만 부부간의 포옹은 자기 기준에서 연약함의 죄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새 지휘관은 그보다 먼저 우리를 지휘한 나이 많은 예비역 장군에게 15일간의 근신 처분을 내렸다. 그 예비역 장군이 어느날 저녁 나이든 아내와 팔짱을 끼고 있는 것을 보았다나. 사람들은 웃었다. 며칠 사이 사기가 바뀌었다. 장교에게 친절하고 정중하던 인사가 어느 순간 억지로 할 수 없이 하는 것으로 바뀌는 것이 확실히 보였다. 군대의 건강하고 좋은 분위기를 망쳤다. - p.101

프랑스 군대는 옛날실 처벌을 충분히 없애지 않았다. 반면, 사령부는 적이 준 몇 개월의 유예기간을 이용하여 간부급에게 필요한 숙정을 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해야 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확실하다.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제1군에서 몇 명을 요란하게 좌천시켰다. 그러나 그때까지, 즉 그렇게 늦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는가? 왜냐하면 이미 전부터 몇 가지 결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p.102

독일군은 지나면서 잠깐 보았을 뿐이지만 우리와 비교해서 확실히 젊어보였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는 쓸데없는 가지를 쳐내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는 예비역 하사관에게 약간의 교육을 더 시켜서 소위나 중위 계급으로 올려주는 일도 하지 않았다. 1914년의 경험에 의해서 이들 중에 권위와 능력과 열성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점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말이다. 나는 그들 상관인 대령이 사관후보생 과정에 나가는 것을 막은 경우를 알고 있다. 아마도 연줄이 불충분했기 때문일 것이다. - p.117

나이가 어느 정도 든 장교들, 1914년이나 1918년의 참전용사로서 아직 늙었다고 할 수 없는 사람 중에도 변화가 불가능하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우리의 사령부는 노인들이 모여 있는 곳임을. 평화시 승진규칙에 따르면 40세에 소령이 되고 장군이 되려면 60세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훈장을 가득 단 백발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들이 무훈을 세웠을 때는 젊었다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한 채 그들의 젊은 후배들의 출세길을 막는 일을 하고 있다. - p.133

"더러운 물질주의"라고 어느 날 자신도 그렇게 정신적 순수함에 매료되지 것같지 않은 한 정치인이 외쳤다. 그는 우리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노동자는 인간의 노동력을 파는 상인이다. 직물, 설탕, 또는 대포를 하는 상인이 적게 주고 많이 받으려는 상업의 대법칙을 적용한다고 해서 놀랄 수는 없다. 그러나 다른 때에는 정당한 이 태도가 국민이 위험에 빠진 상태에서 병사들의 희생을 앞에 두고는 매우 적절치 못한 것이 된다. 내 시골집 이웃은 배관공이었는데 징집되어 한 공장에서 일할 때 그가 작업장 내의 불문율보다 더 많이 더 빨리 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동료들이 어떻게 그의 연장을 감추었는지 이야기해주었다. 이것이 무서운 고발장의 생생한 상태이다. 물론 나는 예가 없지 않다는 점을 기꺼이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이 광범위하게 퍼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전쟁 승패에 크게 작용하기에 충분하다. - p.147

소위 "우파"라는 정당들이 오늘 패전 앞에서 그렇게 쉽게 포기한 사실에 역사가는 그리 크게 놀라지 않을 것이다. 왕정복고로부터 베르사유 의회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의 거의 전 과정에서 그것이 그들의 변함없는 전통이었다.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오해가 한때 군국주의와 애국주의를 혼동하면서 규칙을 혼란시키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같은 사람이 차례로 극단적인 반독주의를 표방하다가 우리를 독일의 대륙체제에 봉신으로 들어가게 한다거나, 푸앵카레식 외교의 옹호자로 자처하다가 선거 때는 그들의 적이 주장하는 소위 주전론을 격렬히 바난하는 태도로 돌변하는 것은 이상한 정신적 불안정이다. 그들의 추종자들 역시 사고의 극단적인 이율배반에 놀라울 정도로 무심했다. - p.162

내 나이의 사람들은 조국의 재건을 담당하지 못할 것이다. 패배한 프랑스의 정부는 노인들의 정부였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새로운 봄을 맞이하는 프랑스는 젊은이들의 것이어야 한다. 지난번 전쟁의 선배들과 비교하여 그들은 승리 후에 오는 게으름을 경계하지 않아도 된다는 슬픈 이점을 가질 것이다. 최종적 승리가 어떤 것이든 간에 1940년의 커다란 참패의 그림자는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 p.187

저자는 자신이 겪은 1940년의 여름과 함께 프랑스가 깨진 이유에 대해 200여 페이지에 걸쳐서 다음과 같이 구구절절이 설명한다. 읽다보면 상층부의 무능한 똥별들에 대한 저자의 분노가 와닿는다는.

  1. 독일군에 비하여 터무니없이 느린 명령 체계와 반응속도

  2. 독일군에 비하여 경직된 사고방식과 창의성 부재

  3. 독일군에 비하여 시대에 형편없이 뒤떨어진 전술

  4. 독일군에 비하여 사령부와 현장 부대, 또는 현장 부대간의 협조 결여와 소통 단절

  5. 독일군에 비하여 낙후된 병영 문화

  6. 독일군에 비하여 낮은 사기와 훈련 상태

  7. 독일군에 비하여 고령화된 프랑스군

  8. 평화 때에는 센 척 하다가 위기 앞에서 제일 먼저 꼬리를 내린 정치인들

제1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장군들이 지배하는 1940년 프랑스군은 여전히 병사들에게 화력보다 정신력을 강요했다. 병사들에게 더는 먹히지 않아서 문제이지. 자율성과 창의성 대신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했으며 승진은 연공서열이었고 무능한 자가 아니라 조직 위계질서를 거스르는 자를 속아냈다. 한마디로 남들 위에 튀기보다는 사고 안 치고 가늘고 길게 가는 게 장땡이라는 얘기였다. 가믈랭을 비롯한 프랑스군 수뇌부는 바로 그런 자들이었다. 이들은 한때 유능한 군인이었지만 20년의 평화기를 거치면서 더 이상 군사 전문가가 아닌 군복 입은 공무원들이었다. 말하자면 정신력 빠진 일본군이랄까. 일본군에서 그거 빼고 나면 뭐가 남겠음. 따라서 프랑스가 방심하는 동안 독일군이 길러낸 진짜 전사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은 프랑스의 저출산 고령화라는 점이다. 산업 혁명 이전에만 해도 유럽 최대의 인구 대국이었던 프랑스는 19세기에 오면 일찌감치 심각한 저출산의 늪에 빠져 버렸다. 남들은 '멜서스의 덫'이라고 하여 오히려 지나친 인구 폭발을 걱정하는 판국이었는데 말이다. 그 바람에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는 물론이고 심지어 영국에게도 뒤쳐져 버렸다. 여기에 제1차 세계대전에서 공적에 눈이 먼 장군들의 정신나간 돌격주의는 프랑스에서 한 세대를 사실상 파멸로 몰아넣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프랑스의 출산율은 회복되지 못했고 1940년 당시 영국이 5천만명, 독일이 7천만명, 소련이 2억명인데 프랑스는 4천만명에 불과했다. 덕분에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프랑스군의 평균 연령은 30대 후반이었다. 20대는 안 보이고 하나같이 동네 늙다리 야비군 아저씨들이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 당장 저자부터 평균 연령을 올려놓는데 일조한 셈. 재입대 영장 한장에 집에서 끌려나온 중년남들에게 뭔 싸울 의지가 있었을 것이며 가혹한 전장에서의 체력도 젊은 애들에 비할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무엇보다도 인간이란 나이 먹고 머리 굵어지면 어리고 철 모를 때처럼 위에서 시킨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본 가미가제만 해도 나이 많은 고참들은 눈치껏 죄다 빠지고 새파란 20대 청춘들만 총알받이로 내몰려서 정신차리고 보니 아스쿠니 신사로 향하는 길이었던지라.

실제로 스당을 지키던 제55사단의 예비군들은 독일군을 만나기도 전에 단지 폭격을 한 차례 받은 것만으로 모조리 달아나면서 사단이 통째로 와해되었다. 하나가 괴멸하자 주변 부대들도 줄줄이 뒤따랐고 결국 프랑스군 전체가 무너졌다. 독소전쟁에서는 반대였다. 할더가 "12개 사단을 격파하면 어디서 또 12개 사단이 튀어나오더라"라는 말마따나 소련군이 그렇게 당하고도 끝없이 병력을 찍어내어 독일군을 수세에 몰아넣을 수 있었던 것은 소련이 출산율에서 독일을 압도한 덕분이었다. 젊은 남자가 무려 3배나 많았다고. 그 시절 출산율 죄다 어디 가고 요즘은 아예 러시아에서 30대 이상 남자를 보기 어려울 정도라나. 10대때부터 죄다 골초에 보드카에 찌들어서. 여기에 푸틴이 전쟁까지 벌이고 있으니 제 명대로 살기 어려운 게 러시아 남자들.

여기에 하루에 한번씩 자신이 상남자임을 입증하기 위해 제 수명을 깎아먹는 일조차 마다하지 않는 것이 그 동네 철칙인지라.

물론 밀덕의 입장에서 본다면 저자의 지적이 전적으로 옳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는 이 책을 1940년 가을에 썼고 오늘날 우리는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군은 생각만큼 현대화되어 있지 않았으며 많은 결점 또한 안고 있었다. 4년 뒤 그가 총살되었을 때 독일군은 서방 연합군과 소련군의 맹렬한 공세 앞에서 수세에 내몰리고 있었다. 그리고 1년도 되지 않아 전쟁은 독일의 패배로 끝났다. 그가 말하는 프랑스군의 문제점이라는 것도 엄밀히 말하면 전쟁에 졌기에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결과론적인 얘기이기도 하다. 만약 저자가 그때 죽지 않고 살아남아 10년 쯤 지난 뒤에 다시 쓸 수 있었다면 내용은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어쨌든 프랑스가 졌다는 것이다. 그것도 중과부적이나 '졌잘싸'도 아니고 변명의 여지조차 없을 만큼 완패로 말이다. 그것은 분명 누군가는 책임져야 할 일이고 왜 졌는지 철저히 분석하고 반성하여 그런 치욕의 역사를 두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네 현실은 정반대이다. 팔은 원래 안으로 굽는 법이라며 조직의 논리를 앞세우는 장군들, 그리고 이기적인 행태를 호되게 질타해야 할 정치인, 언론인, 학자들은 오히려 실패자에 대한 동정심을 이용하여 감싸기에 급급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의 기억은 망각되고 대중의 무관심 속에서 악화가 양화를 몰아낸다는 말마따나 졸장이 명장으로 둔갑하고 도리어 묵묵히 자신의 본분에 최선을 다했던 사람들이 책임을 뒤집어 쓰는 예가 얼마든지 있음을 작년에 <별들의 흑역사>를 쓰면서 뼈져리게 절감할 수 있더라. 당장 우리 역사를 보더라도.

그런 점에서 저자의 증언은 8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러모로 시시하는 바가 크다. 다만 출간을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닌 초고인지라 다소 정제되지 않은 느낌.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점이 옥의 티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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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일본인의 밥상을 어떻게 바꿨나 - 중일전쟁부터 패전 이후까지
사이토 미나코 지음, 손지연 옮김 / 소명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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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IP TV에서 우연히 <아르키메데스의 대전>이라는 영화가 하더라. 동명의 만화가 원작인데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기 수년 전 동경대 수학과 다닌다는 중2병 꼬꼬마가 항공 주병론을 제창하는 야마모토 이소로쿠에게 스카웃 되어서 해군의 전함 꼴통들에 대항하여 훗날 일본을 구하게 된다는 전형적인 일뽕 가공전기라고.

영화 초반부 야마토 특공에 나섰다가 미군의 폭격으로 침몰하는 야마토. 웅장하다기에는 뭔가 값싼 CG 삘이 팍팍. 그렇다고 <남자들의 야마토>처럼 비장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원작에 숟가락 얹기에만 급급하여 대충 만들어 욕을 처먹는게 요즘 일본 영화들인지라.


주인공이 야마모토에게 스카웃되는 과정도 일본 만화스러운 전개. 신형 주력전함의 경합을 놓고 수세에 내몰린 야마모토가 단골 기생집에서 술을 걸치면서 상대편의 건조 예산이 엉터리임을 증명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우연히 옆방에서 기생들과 숫자 놀이를 하는 주인공을 발견하고 수학의 달인인 그를 삼고초려한다는 내용. 제아무리 일본인들이 선망하는 동대생이라고 한들 교수도 박사도 아니고 끽해야 스무살 남짓의 학부생인데. 만화니까. 중2병 애송이를 상대로 해군 중장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도움을 애걸하는 야마모토 "이대로라면 전쟁이 일어날 걸세." "전쟁요? 누구랑요?" "미국일세." 어이없다는 듯 비웃는 주인공 "미국과는 절대 전쟁이 일어날 수 없어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건가?" "공업력에서 50대 1, 석유 생산력에서 120 대 1입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이죠. 애들도 이런 싸움은 안 해요." "그걸 하려는 게 일본 해군일세."


아버지 뻘의 별 두개짜리 장군(중장)을 상대로 바보같은 소리 말라며 중2병의 패기를 단단히 보여주는 주인공. 실제로 그 바보같은 짓을 벌여서 나라를 패망의 나락으로 몰고갔다는 점에서 진짜 중2병은 이런 꼬꼬마가 아니라 일본 군부였다는 일본인들의 자학 디스.


청나라, 러시아를 꺾은 것만 믿고 자만한 나머지, 정신줄 놓고 미국한테 덤볐다가 영혼을 탈탈 털리고 막판에는 핵폭탄까지 두발 맞은 덕분에 그 트라우마가 뼛속까지 단단히 각인되었는지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다시는 정신줄만큼은 놓지 말자는 것. 그럼에도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은 죽어도 없다는 점에서 강자에게는 비굴하고 약자에는 오만한 일본인들의 이중성을 보여준다랄까. 하긴 그런 게 세상 이치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일본이 미국에 다시는 덤빌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은 전쟁을 통해서 힘의 격차를 뼈저리게 느낀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 패전 이후의 궁핍함 속에서 미국이 공급한 막대한 식량이 일본인들의 위장을 사로잡은 덕분이기도 하다. 일본은 전쟁 통은 물론이고 전쟁 이전에도 영양실조가 만연할 만큼 가난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국가는 근대화에 성공하여 세계 최강 미국과도 맞장을 뜰 만큼 부강해졌다고 하지만 소수 엘리트들을 제외하고 정작 대다수 국민들은 그 수혜를 거의 보지 못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근대화였나 싶을 정도.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그 남아도는 힘을 전쟁이 아니라 국민들 복지에 쏟아야 함에도 그건 일본의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이란 다스리고 쥐어짤 대상이지 그 반대가 아니라는 것이 한결같은 일본 지배자들의 사고이다. 심지어 명색이 21세기인 지금도 그리 다를 바 없다. 어차피 정치하는 양반들의 영혼이 바뀌지 않는 이상에야.

에도 시절 '마비키(間引き)'라고 하여 가난한 농민들이 입 줄이기 일환으로 영아 살해가 보편적이었던 일본은 근대 이후에도 궁핍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도시는 사정이 좀 나아졌지만 농촌에서는 여전히 "이밥에 고깃국" 먹는 것이 소원이었다. 오죽하면 농촌 출신 병사들이 군대 와서 처음으로 고기라는 것을 접했다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패전 덕분에 국민들을 쥐어짜던 일본 지배자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미국 점령군은 일본인들에게 무엇이 진정한 풍요로움인지를 각성시켜 주었고 일본인들이 다시는 배를 곪을 일은 없었다. 그리고 점령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는 일본인들의 신이 되었다. 이 점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진 뒤 '순무의 겨울'을 보냈던 독일인들이 그때의 치욕을 두고두고 기억했다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것과 결정적인 차이이다. 제아무리 사무라이 정신이 어쩌구해도 배고픈 놈이 돈 주고 밥 주는 놈에게 어캐 이겨.


맨날 치고 박고 싸우는 전쟁사 말고 독특하거나 별난 역사 이야기를 좋아하는 호사가라면 한번 주목해 볼만한 신작도서가 나왔다. 소명출판사에서 나온 <전쟁은 일본의 밥상을 어떻게 바꿨나>라는 책이다. 중일전쟁 때부터 태평양전쟁 말기까지 여성 잡지에 실린 요리기사를 통해서 일본인들의 전시 생활을 다룬 책이다. 저자는 사이토 미나코(齊藤美奈子)라는 여류 문학 평론가. 전문 역사가나 음식과 관련된 사람은 아닌 듯.

도입부에 삽입된 1929년 단오에 일본인들이 먹었다는 군국주의 버전의 오셋쿠 요리(端午の節句料理)라는데. 비행기 미트볼, 군함 샐러드, 철모 메쉬. 여기에 일장기까지 꽂는 센스. 밀덕으로서 한번 먹어 보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는 것도. 본문에 레시피도 있다는.

원래는 이렇게 먹는거람서.


중일전쟁이 폭발한 뒤 식량이 부족해지자 관에서 권장하는 소위 절식밥(節約メシ). 현미를 물에 담근 다음 하루종일 불리면 부피가 불어나서 똑같은 양이라도 주부들 입장에서는 든든하게 보인다나. 뭔 눈속임도 아니고. 공무원들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그렇지.


그나마 이조차도 나중에는 진수성찬이 되는데.

태평양전쟁 말기 식량이 바닥나고 배급제가 무너지는 고난의 행군 시절에는 밥 대신 집 근처에 난 잡초 뜯어 먹는 판국이라. 버마에서 일본군 고위 장군으로 암약하면서 항일을 위해 멸사봉공하시던 어느 분이 그러셨지. 일본인은 초식동물이라서 풀만 먹어도 된다고.

일본은 태평양전쟁은 고사하고 만만한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을 때부터 대번에 식량 부족에 직면한다. 전쟁의 직접적인 영향이라기보다 원래 일본이 인구는 많은데 식량이 부족한 나라였기 때문이었다. 평화로운 시절 식민지 조선과 타이완에서 수탈하거나 동남아에서 싸게 수입한 쌀이 대량으로 들어오면서 높으신 분들이 우리 일본은 앞으로 공업국가가 될 것이므로 애써 농업을 발전시킬 필요가 없다고 여긴 탓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폭발하자 수송선 태반이 전쟁 물자 수송에 동원되면서 국민 경제를 유지하기 위한 물자 수입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당장 먹거리부터 줄어들었다. 뒤늦게야 식량 증산과 함께 머리 굳은 일본 지도자들이 내놓은 방법이란 게 저런 식의 절식 강요였다. 한마디로 다들 적게 먹으면 그만큼 식량도 덜 필요하다는 것.

이 책에는 전쟁 발발 이전의 평화로울 때부터 패전기까지 당시 일본의 식생활과 다양한 레시피를 소개한다. 처음에는 다양한 식재료로 메인 메뉴는 물론이고 아이들 디저트까지 지금 만들어 먹어도 괜찮다 싶은 것에서 일본이 패전에 가까워지는 뒷페이지로 갈수록 식단이 점점 가난해지는 것이 체감된다는.

전시 레시피에는 가끔 뜬금없는 내용도 보인다. 절미요리가 대표적인데, 대용식을 그토록 열심히 권장하면서 고구마나 감자, 호박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절미요리라는 이름으로 우동, 소바, 때로는 쌀을 부족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한다. 이것이야말로 본말이 전도된 게 아닌가. 우동과 소바 정도는 그대로 먹어도 될 텐데 말이다. 하물며 쌀은 더더욱 그렇다. 주식을 모두 빵이나 우동으로 대체하면 그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리하여 반찬에 변화를 주고 주식은 가능하면 밥 한공기, 식빵 한장을 권장했다. - p.55

게다가 이처럼 관이 모든 것을 주도하고 국민들은 닥치고 따라야 하는 전체주의 시절답게 살림 비법이랍시고 앞뒤 맞지 않는 탁상공론적인 권고사항도 난무한다. 한마디로 "쌀이 없으면 빵을 먹으면 되지"라는 식. 쌀보다 밀가루가 더 비싼 나라에서 말이다. 주부들 앞에서 시장 한번 안 가본 티를 낸담서.

배급된 고기는 여러번 나누어

배급된 고기는 한 번에 다 먹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나누어 사용합시다. 우선 큰 덩어리 째로 기름을 둘러 노릇하게 구은 후 뜨거운 물을 살짝 잠길 만큼 넣어 맛있는 스프를 만듭시다. 그런 다음 고기를 꺼내고 스프에 여러가지 제철 채소를 넣고 푹 익힙니다. 고기는 그대로 2~3일 보관할 수 있으므로 다음과 같이 두세번 나누어 사용하도록 합시다.

적은 양의 고기로 여러번 사용하기

갈거나 작게 다진 고기와 채소를 듬뿍 넣어 섞은 후 미트볼 식으로 졸이거나 볶거나 하고 고르케나 양배추롤, 잡채 등을 만들면 적은 양의 고기로 풍성한 상차림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읽고 있으면 빈곤한 식단으로 가족을 위해서 어떻게든 맛있게 창조해야 하는 그 시절 주부들의 애환이 절절이 와닿는달지. 차라리 전쟁을 멈추라고.

말린 밥 이용법

아무리 깨끗하게 먹는다고 해도 밥통이나 찜통에 눌러붙은 밥알이 남아 있기 마련입니다. 이것을 가는 제반에 널어 바싹 말려두면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기름에 튀겨서 국물 요리 건더기로 사용하거나 프라이팬에 달달 볶아서 설탕옷을 입히면 아이들 취향을 저격한 맛있는 간식이 됩니다. - p.74

이른바 설탕 누룽지 레시피. 이건 내 어린 시절의 추억에도 있는 듯. 그러고보면 밥솥에서 누룽지 말려서 먹었던 것이 언제던가 싶다는. 요즘이야 인터넷에서나 구경하는 물건이지만.

오징어말이 튀김

달걀 2개에 중간 크기의 오징어 3마리면 5~6인 가족이 마음껏 즐길 수 있습니다. 오징어는 껍질을 벗기고 배를 갈라 절구공으로 두들기거나 부엌칼로 잘 저며줍니다. 이 안에 오징어 다리와 껍질 벗긴 완두와 당근, 피, 죽순 등 여러 채소를 잘게 썰어넣고 섞어줍니다. 밀가루 적당량을 넣고 소금으로 간합니다. 달걀은 잘 풀어 1할 정도의 물과 소금 한 자밤을 넣습니다.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얇게 부쳐내어 도마 위에 펼친 다음 밀가루를 뿌리고 갈아 놓은 오징어를 깔아 끝에서부터 말아줍니다. 끝 부분은 물에 푼 전분가루를 발라 마무리합니다. 그리고 2~3개 꼬치로 고정한 후 찜통에 넣고 7~8분 찐 후 잘 익으면 꺼내어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굴려가며 바싹하게 구워줍니다. 1.5cm 두께로 잘라 접시에 담아내고 국화꽃 등으로 장식합니다. 오징어 유부말이, 갈분 소스 버무림은 오징어말이 튀김과 속은 같으나 달걀 대신 유부로 말고 쩌낸 것을 곱게 썰어 갈분 소스를 걸쭉하게 얹어서 일본식으로 맛을 냅니다. - p.103

태평양전쟁 시절 아버지와 남편에게 인기 있었다는 전시 레피시. 이런 건 요즘도 술안주로 쓸만할 듯. 일본 근해에 오징어가 하도 많이 잡힌 덕분에 오징어의 오자만 들어도 물릴만큼 먹었다나. 아직은 중국 어선 떼가 그 동네까지 마수를 미치지 않을 때인지라.

저자는 전시 레시피를 통해서 그 시절 일본을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특유의 역사적 피해 의식만큼은 피할 수 없는 모양이다. 읽다보니 이런 대목이 있더라.

1941년 미국이 대일 석유 수송을 금지하자 일본은 큰 타격을 받았다.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동남아시아로 진출을 꾀하게 되면서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 p.181

1941년 8월 1일 루스벨트 행정부는 일본에 전격적으로 석유 금수조치를 취한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미국의 금수조치가 일본을 궁지로 내몰아서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일본이 프랑스령 베트남에 무력 진주하고 1940년 9월 27일 추축 조약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일 협상 과정에서 베트남에서의 철수와 추축에서 탈퇴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일본이 거부했기에 금수조치를 단행한 것이다. 미국이 바보가 아니고서야 일본이 미국을 실질적인 적국으로 취급하는 상황에서 당연한 결과이다. 한마디로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이해하는 셈이다. 미국을 신으로 여기는 것과 별개로 자신들의 침략전쟁은 정당하다는 일본인들의 보편적인 역사 인식을 보여준다. 그건 그거고 이거는 이거라는 식. 그러니 뭔 과거사 사죄를 하겠음.

전후의 식량난을 미국의 원조물자로 극복했다는 이야기를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점령군은 군용 통조림 5천톤을 방출하고 라라물자와 유니세프로부터 기증받은 탈지분유 등도 동원했다고 한다. 같은 해 가을부터는 탈지 분유를 수입하는 등 학교 급식을 전국으로 확대하기 위해 분투했다. 일본인의 대미감정이 호감으로 바뀐 데에는 이러한 원조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 p.196

미국에 대한 피해의식과 더불어 부채의식도 함께 안고 있는 것이 오늘날 일본인들의 복잡한 마음이랄까.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있다. 트루먼 행정부의 소극적인 태도 속에서 패전 일본인들이 재빨리 기근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이웃한 남한에서 대량의 식량을 수출한 덕분이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맥아더 입장에서는 남한보다 자신이 직접 통치하는 일본이 더 중요했고 남한의 미군정은 어차피 자기 부하들이 맡고 있다보니 명령 한마디면 충분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일본인들의 행복은 우리의 불행이었다. 미 군정의 마구잡이식 공출에 따른 물자 부족은 일제 말기를 능가했을 정도였다. 심지어 미 군정의 어떤 양반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조선인들은 미역만 먹어도 된다"라고 하여 불난 집에 부채질까지. 해방 직후에만 해도 미군에 우호적이었던 남한이 1년도 되지 않아 반미로 돌아서고 1946년 10월 1일 대구 봉기를 시작으로 전국에서 반미 시위와 함께 공산주의자들이 활개를 치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 중에서도 최악의 사건이 우리가 잘 아는 제주 4.3 사건이었다. 일본인들이 진작에 패전의 혼란에서 벗어나 미국의 원조로 먹고 살만해졌을 때 우리는 최악의 기근에 직면해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신생 남한의 상황이 심각함을 뒤늦게 깨달은 트루먼 행정부는 공산주의에 넘어가지 않도록 일본보다 두발짝 늦게 경제 원조에 나서면서 미제 밀가루와 옥수수 가루같은 식량 원조를 받았지만 그 직후에는 한국전쟁이 폭발하는 비극까지 겪어야 했다.

일본인들도 이런 역사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전쟁은 너희가 일으키고 벌은 우리가 받았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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