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국 전쟁사 - 남북전쟁에서 이라크전쟁까지
마이클 오핸런 지음, 임지연 옮김 / 상상스퀘어 / 2025년 6월
평점 :
품절
1991년 1월 17일 사막의 폭풍 작전이 시작되었다.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단련된 이라크군을 상대로 베트남전쟁 이후 또 다시 수렁에 빠질 지 모른다는 전문가들의 우려와 달리 싸움은 그야말로 일방적이었다. F-117 스텔스 전투기가 세계에서 가장 조밀하다던 이라크 방공망을 분쇄하고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들이 이라크의 눈과 귀를 파괴했다. 이라크 공군은 레이저로 유도되는 미군의 스마트 폭탄에 의해 변변히 떠보지도 못한 채 대부분 지상에서 파괴되었다. 뒤이어 벌어진 지상전 또한 다국적군대의 압승이었다. 소련제 전차로 무장한 이라크군 기갑부대들은 서방제 전차의 압도적인 성능 앞에서 줄줄이 격파되었다. 2월 28일 작전이 종결될 때까지 40일 동안 미군이 보여준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20년 전 베트남전은 물론, 불과 2년 전 아프간에서 무력하게 철수한 소련군과도 대조적이었다. 그것은 그저 이겼다는 것이 아니라 하이테크 전쟁이라는 새로운 전쟁이자, 천조국 미국이 단순 물량빨이 아닌 진정한 세계 최강으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채 버려진 이라크 기갑차량들. 아랍 군대가 머리수만 많지 실속없다는 점은 이스라엘과 벌어진 4번의 중동전쟁에서도 이미 입증된 바 있었지만 미군이 보여준 경이로운 전투력은 이전의 중동전과도 차원이 달랐다. 베트남전쟁에서 물량빨이 전부일 뿐, 약에 쩐 약골 군대라는 이미지는 걸프전을 통해서 단숨에 날아가고 미군은 명실공히 넘사벽의 세계 최강으로 자리매김했다.
베트남전쟁 때의 오합지졸과 달리 최첨단 무기로 무장하고 고도로 훈련된 미군의 환골탈태한 모습은 아버지 부시보다 전임자였던 레이건 시절 군사개혁의 결과였다. 하지만 루스벨트 이후 역대 대통령들이 어줍잖게 일을 벌이다가 망쳤던 것과 달리 미군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철저하게 준비한 것은 아버지 부시의 노력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현명한 선택은 따로 있었다. 그는 당초 목적대로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을 쫓아내자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고 전쟁을 재빨리 중단했다. 미국의 능력에 환상을 품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사막의 폭풍 작전은 미국 입장에서 가장 이상적인 전쟁으로 끝났다. 속전속결로 끝냄으로서 장기전의 수렁에 빠지지 않았다. 비록 후세인을 끝장내지는 못했지만 그건 미국 알 바는 아니니까 말이다.
그로부터 12년 뒤, 미국은 이라크와 또 한번 맞붙었다. 이번에는 아들 부시가 감독을 맡았다. 하지만 전편을 능가하는 속편은 없다는 오랜 격언마냥 임펙트는 덜했다. 물론 미군은 걸프전쟁 때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무기로 이라크군을 이번에도 일방적으로 두들기고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미 눈높이가 한껏 높아진 관객들로서는 식상해진 내용에 CG만 좀 더 화려해졌다랄까. 아버지 부시와 결정적인 차이는 싸움에 이긴 뒤의 후속 처리였다. 수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졸속으로 전쟁을 밀어붙인 아들 부시는 미국을 또 한번 수렁에 빠뜨림으로써 베트남전쟁의 악몽을 되풀이했고 뒷처리는 후임자들의 몫으로 떠넘겨 놓았다. 게다가 아프간에서는 20년 동안 그토록 공을 들인 친미 정권이 하루아침에 붕괴되는 망신을 겪어야 했다.
그가 독선과 아집으로 벌여놓은 무모한 전쟁은 냉전 종식 이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었던 미국의 힘만 빼놓았다. 천조국 미국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결과였다. 미국이 아프간에서 무력하게 물러난지 반년 뒤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했다. 중국 또한 공공연히 태평양에서 미국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는 만만한 동맹국들에는 한푼이라도 더 뜯어내려고 안달이면서 막상 나서야 할 때는 뒷짐지고 물러서서 최소의 비용으로 숟가락 얹으려는 궁리만 한다. 미국의 처지가 그만큼 궁색해졌음을 드러내는 셈이다.

이스라엘이 이란을 기습하여 궁지에 내몰자 트럼프는 이란에게 2주 동안 생각을 할 시간을 준다면서 자기가 선심을 쓰는 척 하다가 오늘 새벽 느닷없이 뒷통수를 날렸다. 이런 연막 전술은 고전적인 수법이지만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그랬어야지 일주일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이란이 멍청하게 당했을지 의문일 뿐더러, 상대의 불신과 분노를 사는 것은 물론, 미국은 역시 못 믿을 나라라는 이미지만 각인시켜 장기적으로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트럼프야 오늘이 중요하지 나중 일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양반이라.
지난 한 세기 동안 패권 국가로서 미국이 보여준 위세는 다른 열강들은 물론이고 역사상 어떤 제국조차 비할 수 없다. 제아무리 예전같지 않다고 한들 여전히 미국은 독보적인 초강대국이며 그 힘은 지구 전역에 구석구석 미치고 있다. 세계 2/3가 미국의 동맹국이거나 그 영향력 아래에 있다. 하지만 미국 지도자들은 탐욕과 절제 사이에서 끊임없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치적거리 하나 남겨보겠다고 무리한 전쟁을 벌였다가 발목이 잡혀서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고 정작 미국의 도움을 필요할 때에는 우리도 사정이 안 좋다는 핑계로 매몰차게 나몰라라 한다. 그나마 예전 지도자들은 유무능을 떠나서 민주주의 진영의 수장으로서 최소한의 책임감이라도 있었다면 이제는 트럼프라는 협잡꾼이 국민들을 갈라치고 동맹국들이 등 돌릴 짓만 골라하는 판국이다.
과연 미국은 다시 위대해 질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평범해 질 것인가. 어차피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법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 아닐지. 좋건 싫건 그리스 신화의 아틀라스마냥 국제 질서의 상당부분을 떠받치며 안정을 지탱하는게 미국이니 말이다. 미국이 사라졌을 때 우리네 세상은 지금보다 더 평화롭지는 않을 듯 하다.

상상스퀘어 출판사의 신작 도서 <미국전쟁사>는 1861년 남북전쟁부터 최근의 이라크 전쟁까지 미국이 주도한 160년의 전쟁사를 다룬 책이다. 한마디로 미국의 전성시대. 저자인 마이클 오헨런은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의 수석 연구원으로 주로 미국의 해외 전략과 국방 분야 쪽의 연구를 맡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브루킹스 연구소는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무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가장 대표적인 싱크탱크 단체 중 하나. 정치, 경제, 사회, 국방, 외교 등 온갖 분야를 다루고 있으며 특히 보수니, 진보니 따위의 특정 정파에 쏠리지 않고 정치적 중립과 다양한 시각을 대표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그런 점에서는 정권 눈치 보기와 진영 싸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쪽 연구 단체들에 비하면야 역시 미국이랄지.

올초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서울 모 호텔서 브루킹스 연구소 주최로 열린 한미동맹 관련 포럼. 대략 이런 일을 하는 단체람서.
이 책은 남북전쟁에서 시작한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이다. 노예를 해방해서가 아니라 피터지는 내전이 그때까지 느슨한 연합체였던 미국의 결속력을 한층 강화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오고가는 주먹 속에서 피어난 형제애랄까. 무엇보다도 남북전쟁은 미국을 신생 독립국에서 강대국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내전이 대개는 나라를 피폐하게 만들고 상처만 남긴다는 점에서 남북전쟁은 이례적인 결과였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사람이 링컨이었다. 북부의 승리는 단순히 경제력이 압도해서가 아니라 왜 우리가 굳이 저 검둥이들을 해방하겠답시고 죽기로 싸울 이유가 있느냐고 여기는 북부인들에게 전쟁의 대의를 설득하고 공감을 얻어낸 덕분이었다. 그 점에서는 남부도 마찬가지였다. 교과서에서는 남부가 링컨에 반발한 이유가 노예제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소수 대농장주들 얘기이고 절대 다수의 가난한 남부 소작농들로서는 노예가 해방되건 말건 솔직히 알 바 아니었다. 그럼에도 기꺼이 전쟁에 나선 것은 북부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 이들에게는 얄미운 북부로부터의 독립전쟁이었다. 당시 분위기에서는 설사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았어도 시기의 문제일 뿐 남북전쟁은 폭발했을 것이다. 하물며 트럼프였다면 상처에 소금만 뿌리는 격이었을 듯. 중남미 국가들이 독립 과정에서 시몬 볼리바르를 비롯하여 여러 지도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분열된 것처럼 미국 또한 그리 될 수 있었다. 그걸 막은 것은 전적으로 링컨의 리더십이었다. 그는 남부연합에게 굴복하는 대신 끝까지 때려눕히는 쪽을 선택함으로서 내전을 장기화시켰지만 무자비한 복수 대신 포용을 통해 미국이 거듭날 기회로 삼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실수 또한 저질렀지만 말이다. 저자는 전쟁 배경과 주요 전투, 양측이 어떤 전략을 구사하고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지, 어떤 교훈을 주는지 설명한다. 남북전쟁은 매우 중요한 전쟁임에도 막상 시중에 제대로 다룬 책조차 없다는 점에서 좋은 읽을거리이다.
남부와 북부 지도자 모두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신속한 성공을 거둘 것으로 과신하면서 전쟁을 시작했다. 앞으로 자세히 다루게 될 이 단순한 생각은 현대 정책 입안자와 전략가들에게 남북전쟁이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일반적으로 실제 결과보다 전쟁을 훨씬 잘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의 비극적 성향을 보여주며, 전쟁의 예측 불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 p.25 |
매클렐런은 남군을 공격하거나 리치먼드를 점령하겠다는 야심을 포기하면서 북군의 전술적 성공조차 전략적 패배로 묻혔다. 매클렐런은 리 휘하에 실제의 몇 배인 20만 명의 병력이 집결할 가능성을 우려하여 아무런 즉각적인 후속 조치도 취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만약 매클렐런이 이 전역에서 리치먼드를 점령하여 남북전쟁과 분리 독립을 둘러싼 갈등이 비교적 초창기에 봉합되었다면 노예제는 보존되었을 것이고 남부연합의 11개 주는 수년 혹은 수십년 동안 자신들의 특별한 제도를 유지했을 것이다. 이때만 해도 북부의 전쟁 목표는 남부연합 영토 내 노예제 폐지까지 고려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 p.63 |
만약 북군이 더 빨리 움직였다면 더 빨리 승리했을 수도 있었다. 반대로 리가 베트콩이나 조지 워싱턴처럼 행동했다면 전장에서 더 오래, 북군의 인내심과 의지가 바닥날 때까지 버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북부가 채터누가 전략을 채택했거나 아나콘다 전략이 효과를 거둘 때까지 조금 더 시간이 주어졌다면 버지니아 전선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격전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전쟁이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었던 여러 선택지가 있었고 그 중 어떤 것은 어마어마했던 인명 피해를 좀 더 줄일 수도 있었다. - p.92 |
이 책에서는 오늘날 팍스 아메리카의 시대를 연 양차대전과 미국이 처음으로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한 한국전쟁, 더욱 큰 댓가로 끝나야 했던 베트남전쟁, 모처럼의 성공인 사막의 폭풍작전, 그리고 아프간과 이라크에서의 불명예스러운 철수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경험한 굵직굵직한 전쟁을 다루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성공도 있고 쓰라린 실패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왜 실패했는가일 것이다. 저자는 지도자들이 과거의 교훈을 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힘을 과신하고 손쉽게 이길 수 있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되려 지레 겁을 먹고 자신감을 잃어서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한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가령 한국전쟁에서 트루먼은 공산주의자들을 상대로 우유부단하기보다 세게 밀어붙이는 쪽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야 했다. 저자는 중간중간 다양한 질문을 던지면서 "만약 이랬더라면"에 대한 가정을 흥미롭고 짚어본다.
당시 미군은 소규모였고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은 강력했다. 그러나 미 육군은 빠르게 성장했다. 1917년에 약 10만명의 병력과 1만 5천명 정도의 해병대로 시작하여 1918년에는 400만 명이 넘어섰다. 1918년 3월 무렵 미군 30만명이, 8월에는 130만명, 종전 직전에는 200만 명이 유럽에 배치되었다. 전쟁 끝날 무렵 미국의 GDP 대비 군사비는 1915년 이후 4회계년도 동안 1%에서 14%로 늘어났다. - p.176 |
일본을 무찌를 더 간단한 방법은 없었을까. 거대한 단일 함대를 조직하고 막대한 군수물자 수송선단으로 이를 지원하면서 북쪽 해로를 통해 일본의 큰 섬 훗카이도를 향해 직진했다면 어땠을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를 고려하면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 그러나 악천후나 일본이 건재한 공군력으로 효과적으로 본토를 방어하는 등 단 하나의 실패 요인으로도 쉽게 타격받을 수 있었다. 미국은 한 번의 기회에 모든 것을 걸기보다는 다단계 접근을 통해 전투 경험과 전문성을 쌓았다. - p.306 |
맥아더는 매튜 리지웨이 장군을 워커의 후임으로 요청했다. 이는 행운의 선택이자 맥아더가 인천 상륙 후 몇달을 통틀어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음이 판명되었다. 리지웨이는 강인하고 자신만만했다. 전술적으로는 부대가 도로에서 벗어나 고지를 차지한 뒤 적당한 때 적진을 파고드는 식의 기본 보병술과 훈련을 강조했다. 그리고 맡은 지역을 제대로 정찰하지 않거나 전술 과제를 해내지 못하는 지휘관들을 해임했다. 그는 신병들에게는 큰소리치지 않았지만 고위 장교들에게는 냉혹했다. 부임 첫 3개월 동안 군단장 1명, 사단장 6명 중 5명, 연대장 19명 중 14명을 쫓아냈다. - p.337 |
리지웨이는 한국에서 돌아온 뒤 육군 참모총장 재임 시절 1954년 프랑스군을 지원하기 위해 베트남에 개입해서 안 된다고 경고했고 중국이 한국에서처럼 베트남에 직접 관여한다면 미군은 7개에서 12개 사단이 투입되어야 한다고 추정했다. 당시 그와 합참의 군인들은 "인도차이나에는 결정적인 군사적 목표가 없다"라고 밝혔다. - p.344 |
이라크군은 전반적으로 이번 전쟁에서 예상보다 잘 싸우지 못했다. 참호 진지 앞에 전위부대를 배치하지 못했고 참호에 들어간 부대의 위치를 감추기 위해 부근에 쌓아올린 흙을 제거하지 않았다. 작전 옵션도 부족했으며 융통성 있는 전술 능력도 제한적이었다. 이란-이라크전쟁 말에 어떤 발전을 이루었든 간에 사담 후세인이 유능한 장군들을 숙청하고 군 지도부를 정치화하여 성과가 쓸모없게 된 탓이었다. - p.413 |
트럼프는 임무 종료 직전까지 자주 일관성 없는 모습을 보였다. 짐 매티스 국방장관과 불편한 관계로 끝난 것은 2018년 12월 트럼프가 즉흥적으로 그 다음해까지 미군 임무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한 것과 밀접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동맹국과 동맹 관계에 대한 허풍과 경멸로 유명한 것은 트럼프임에도 실제로 충분한 협의와 경고 없이 성급하게 임무를 끝낸 쪿은 노련한 바이든이었다. - p.477 |
보통 빠른 승리를 기대하면서 전쟁에 뛰어드는 정치가들과 군 지도자들은 이를 뒷받침할 논리와 개연성을 갖춘 승리론을 가지고 있다. 물론 상황이 뜻대로 흘러갈 때의 얘기이다. 그러나 비극적이게도 그들의 뒤이은 결정은 무모하기 짝이 없다. 할 수 있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 그리고 자신들의 성공 계획이 실제 전쟁에서 어떻게 잘못될 수 있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 p.498 |
미국은 수많은 실패를 수용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고 회복탄력성이 좋은 것처럼 보인다. 또한 적어도 북미 지역 밖으로는 미국이 팽창주의적 강대국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큰 도움이 되었다. 다른 나라들이 미국을 싫어할 수는 있지만 두려워하지는 않으며 많은 경우 미국과 동맹을 맺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집단적으로 전 세계 GDP 3분의 2, 전 세계 국방비 3분의 2를 차지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 및 산업력 우위를 누리는 서방 동맹 체계는 그 영속성과 신뢰성이 입증되었다. - p.506 |
예전에 비하여 오늘날 미국이 한물갔으며 트럼프가 부유한 동맹국들을 자기 쌈짓돈마냥 삥뜯을 궁리를 하고 멕시코에 장벽을 쌓거나 덴마크더러 그린란드를 내놓으라는 둥 어거지를 부려도 여전히 많은 나라들은 미국에 기대고 미국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쨌든 든든한 후원자로 삼기에는 이보다 더 나은 나라가 없으니 말이다. 만약 러시아, 중국이 미국의 자리를 대신한다면 훨씬 끔찍할 것이다. 한때 미국과 철천지원수였던 베트남조차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에 접근하는 판국이다.
하물며 우리는 정치, 안보, 경제 어느 면에서도 미국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럼에도 막상 우리는 미국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시중에는 트럼프라던가 미중 갈등같은 최근 이슈에 대한 책은 하늘의 별만큼 많지만 미국의 역사나 그들이 어떻게 싸웠는지, 성공과 실패를 다룬 책은 의외로 흔치 않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다소나마 미국을 이해하는데 도움되지 않을까 싶다. 아쉬운 점은 <미국전쟁사>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서 미국의 전쟁사가 아니라 미국이 참전한 주요전쟁사라는 점이다. 독립 이후 첫 위기였던 1812년 영미전쟁이나 소위 먼로주의를 고집하던 미국이 우물안 개구리에서 처음으로 바깥 세계로 뻗어나가게 된 1898년 미서전쟁, 그리고 멕시코 전쟁까지 다루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또한 번역이 다소 매끄럽지 못하여 가독성이 떨어지고 앞뒤 맥락상 오역이다 싶은 부분도 종종 눈에 띄는게 옥의 티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