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이후의 세계 이미 시작된 미래
금철영 지음, 강인경 그림 / 이든하우스 / 2026년 5월
평점 :
품절


미국-이란 전쟁이 시작된 지 3주 즈음이었던 지난 3월 중순, 자칭 '세계의 보스'이자 타칭 '트러블 메이커'인 트럼프가 특유의 장대한 분노를 쏟아냈다. 그 상대는 이란이 아니라 어이없게도 오랜 우방인 나토 동맹국들이었다. 지난 수십년 동안 미국의 안보 우산에 무임승차한 주제에 미국이 급박할 때에는 돕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는 나토 탈퇴까지 운운하면서 앞으로는 당신네들끼리 잘 해보라며 으름짱을 놓았다. 나토 동맹국들에게는 그야말로 적반하장이자 배은망덕일 것이다. 걸프전쟁을 비롯하여 아프간-이라크 침공 등 그동안 미국의 전쟁에 부지런히 동참하면서 적지 않은 비용과 인명희생까지 감당해 왔다는 점에서 트럼프의 주장은 사실 왜곡일 뿐더러, 정작 바이든 행정부는 2021년 아프간에서 철수할 때 아무런 사전협의나 정보공유도 없이 일방적으로 손을 떼기로 결정하여 미국만 믿고 있던 동맹국들을 곤란에 빠뜨리기도 했다. 게다가 트럼프가 중동의 문제아 이스라엘과 야합하여 멋대로 사고치는 바람에 전 세계가 피해를 보고 있는데 이제와서 뒷수습은 나토를 들먹이고 있으니 뻔뻔함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안그래도 그동안 나토를 가리켜 종이 호랑이라며 공공연히 무시한 트럼프에게 쌓인 것이 많은 이들로서는 "뭐 우리는 베알도 없는 줄 아냐?"라고 할 듯.

전쟁은 일으키기는 쉬워도 끝내기는 어렵다는 만고의 진리를 무시한 트럼프는 한층 기고만장해진 이란이 이참에 해협 통행료를 뜯겠다고 하자 남이 삥 뜯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내가 뜯겠다는 부동산 투기꾼다운 기똥찬 발상 전환으로 가뜩이나 기름값 상승에 격앙된 인류의 염장에 불을 질렀다. 고집센 성격에 입만 열면 허세지만 속내는 자기가 사고치기 전으로 로드 신공을 하고 싶은 심정 아닐지.


한편으로 트럼프의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제아무리 아니꼽다고 한들, 나토는 미국 없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그의 엄포가 전적으로 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는 점이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나토 동맹국들의 딜레마이다. 네덜란드 전 총리이자 나토 사무총장인 마르크 뤼터(Mark Rutte)는 트럼프가 유럽을 무시한다며 분노한 일부 회원국들의 자강론에 대해 "꿈같은 소리"라면서 일축했다. 냉전 종식 이후 평화에 젖어 전쟁을 잊은 결과였다. 유럽 국가들은 국방비를 대폭 줄이는 대신 경제 성장과 복지에 지출했고 젊은 세대의 표를 얻을 요량으로 징병제를 폐지했다. 군대는 최소한의 수준으로 억제되었으며 무기와 장비는 노후화되었다. 냉전 시절 소련의 위협에 맞서 각기 수천대의 전차를 보유했던 영국, 프랑스, 독일은 이제 탈탈 털어봐야 200~300여대 남짓에 불과하다. 해공군의 사정도 다를 바 없다. 사실상 무장을 해제한 셈이다. 구소련이 무너진 이상 더 이상 유럽에서 과거와 같은 전면 총력전이 벌어질 일은 없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저널리스트가 쓴 <노르트스트림의 덫>은 서방 지도자들이 푸틴을 얼마나 안이하게 여겼는지를 신랄하게 지적한다. 이들은 푸틴이 구소련 지도자들과 달리 말이 통하는 상대라고 여겼고 그가 값싸게 공급하는 러시아산 에너지는 유럽인들을 방심시켰다. 심지어 프랑스는 자국 최신 기술이 집약된 미스트랄급 강습상륙함 2척을 러시아에 판매하려고 했을 정도였다. 서방과 푸틴의 밀월은 2014년 우크라이나 마이단 혁명과 러시아의 크림 반도 전격 합병과 함께 끝났다. 서방 지도자들은 그제야 푸틴이 무해하기는 커녕 속이 시커먼 야심가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알맹이 없는 비난과 경제제재 외에 서방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나토 가입을 호소하는 우크라이나의 요구는 거부되었다. 이들로서는 오랜 평화와 값싼 러시아산 에너지를 포기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우크라이나만 눈딱감고 희생하면 우리한테 불똥 튈 일은 없을 거라는 게 서방의 믿음이었다. 아프간과 이라크의 수렁에서 10년 넘게 허우적거리던 미국도 무기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시절도 있었다며. 2001년 9월 25일 독일 의회에서 기립 박수를 받는 푸틴. 러시아의 젊은 신임 대통령이었던 그는 철지난 대결 대신 화해와 협력을 강조하여 그때까지 러시아를 경계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서방에게 자신이 무해한 존재임을 각인시켰다. 서방 지도자들은 자신들만 코트를 벗으면 '우리 시대의 평화'가 올 거라고 믿었지만 정작 푸틴이 코트를 벗지 않았다는 사실은 간과했다.


2022년 2월 드디어 본색을 드러낸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했을 때 서방 내 친러 좌파 지식인들은 그의 상투적인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면서 "유럽의 위기는 푸틴 때문이 아니라 나토의 동진 탓"으로 돌렸지만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서방의 진짜 실수는 나토를 동진시키지 말라는 푸틴의 경고를 한귀로 흘려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를 자극할까봐 저자세로 일관하면서 전쟁을 대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내가 남을 위협하지 않으면 남도 나를 위협하지 않을 거라는 안이한 발상이었고 그 댓가를 푸틴의 공갈과 트럼프의 멸시로 단단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오늘날 유럽의 처지는 대공황 이후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영국과 프랑스가 주변국들을 거침없이 집어삼키는 히틀러의 야망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던 1930년대 말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저출산 고령화와 코로나의 여파로 극심한 경제 불황에 시달리는 유럽의 여론은 분열되고 뒤늦은 군비 확충과 징병제를 부활하려는 시도는 기성세대가 수혜만 누리고 책임은 우리에게 떠넘긴다는 젊은 세대의 거센 저항에 부딪치는 판국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자신들의 피로서 귀중한 시간을 벌어주었지만 정작 서방은 어영부영하면서 날리고 있다. 인간이란 바로 옆집에 불이 나도 내집에 옮겨 붙기 전까지는 절박감이 없는 법이니 말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는 "되풀이되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인간의 어리석음"이라고 했던가.


이든하우스 출판사에서 나온 신작도서 <전쟁 이후의 세계, 이미 시작된 미래>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바꾸어놓은 유럽의 모습, 그리고 지구 반대편 우리에게는 또 어떤 여파가 미치고 있는지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KBS 베테랑 종군기자로 30여년 동안 이라크, 우크라이나, 중동 등 세계 각지의 분쟁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우리가 TV로만 보는 전쟁의 잔혹한 참상과 그 속의 비극을 몸소 체험했다고 한다. 덧붙여, 작년 KBS 시사기획창에서 <우크라이나 임팩트>라는 제목으로 2부작을 방영한 것이 유튜브에도 올라와 있던데 봐야 할 듯.


<우크라이나 임팩트>에서 러시아의 드론 공격으로 파괴된 키이우 도심을 촬영하는 저자와 취재팀. 미국이 내전에 빠진다는 가상 영화 <시빌워>에서는 전장에서 비무장한 언론인들이라고 해서 결코 안전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저자 또한 현장을 취재하는 동안 위험천만한 경우가 많았으며 그로 인한 트라우마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


이 책은 제일 먼저 전쟁이 바꾸어놓은 우크라이나의 일상을 다룬다. 그러고보니 우크라이나 전쟁도 어느새 4년 반이 지났다. 한국전쟁의 3년 1개월과 제1차 세계대전의 4년 4개월을 갱신한 것이다. 그러고도 여전히 끝은 보이지 않는다. 한국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도 어마어마한 파괴와 살육이 벌어졌지만 우크라이나 전쟁보다 나은 점은 있었다. 적어도 전후방의 구분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잠깐의 안식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언제 어디로 날아올지 모르는 미사일과 드론 공격, 밤낮없이 울리는 공습 경보, 폭격이 내 머리에도 떨어질지 모른다는 극한의 공포심, 공습이 지나간 뒤 돌무더기로 변한 건물과 그 안에서 구조대원들이 필사적으로 꺼내는 시신과 부상자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울음소리. 전쟁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하기는 쉬워도 그 난장판 속에서 과연 이성을 유지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럼에도 우크라이나인들은 견뎌내고 있다. 그들은 푸틴에게 굴복할 생각이 없다. 그게 이 전쟁에서 가장 놀라운 사실이 아닐까 싶다.

전쟁 전에도 다큐멘타리 제작을 위해 우크라이나를 두 차례 방문한 적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모두 겨울철이었다. 그때 사람들은 미소를 지으며 한결같이 말했다. "아름다운 5월에 오세요." 하지만 2022년 2월 이후 그런 5월은 오지 않았다. - p.28


미사일과 드론 공습으로 사이렌이 울리면 방공호로 달려가야 한다. 그게 싫다면 집안에 그대로 머물며 운이 좋기를 바라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 긴장 속의 밤은 계속된다. 무엇보다도 전쟁 기간에는 뭐든 익숙해진다고 해도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이 사이렌 소리이다. '에에엥' 하는 사이렌 소리의 그 기묘한 음색은 들을 때마다 생경하고 소름이 끼친다. 특히 자신이 머무는 집이나 호텔 등에서 공습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면 사이렌 소리에 대한 공포는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 p.31


전쟁이 없었다면 그저 하루하루의 고된 일상을 마치고 맥주 한잔 또는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겼을 것이다. 아니면 거리에 즐비한 멋진 책방들이 늦게까지 문을 여는 만큼 그곳에서 고즈넉하게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고 드론의 기계음으로 뒤범벅이 된 전장 한복판에서 스러져가고 있는 것이다. 수도 키이우를 벗어나 한적한 마을이나 지방 소도시에 가면 남편이나 자식, 손주들을 전장에 보낸 사람들을 더 자주 만나게 된다.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들은 가족 전체가 온 몸으로 전쟁의 비극을 맞닥뜨린다. - p.45


귀환병들은 허리를 굽혀 사진을 자세히 쳐다보고 가급적이면 어떤 말이라도 하려고 애를 써본다. 간혹 어떤 귀환병들은 실종자 가족들이 들고 있는 사진 속의 주인공을 알아보고 어디서 함께 싸웠는지, 실종되었다면 어디로 끌려갔을 것이라고 얘기해 주기도 한다. 가족과 관련된 아무런 정보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고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다. 곳곳에 비통함과 울음 소리가 가득하다. 함께 따라온 어린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우크라이나 깃발을 펼치고 우크라이나어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훗날 이 아이들이 자라서 돌아오지 않은 아빠를 기다렸던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또 어떤 상흔으로 간직하게 될지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도 먹먹할 수밖에 없다. - p.89


그러나 우크라이나인들에 대한 연민을 떠나서 우리가 정말로 주목할 부분은 이 전쟁이 우크라이나의 일상만 바꾸어놓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책의 2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보여준 최초의 '드론전쟁'이다. 1991년 걸프전에서 미군이 순항미사일과 스텔스 전투기같은 최첨단 병기와 고도로 훈련된 병사들을 결합시킨 기동전으로 이라크군을 단숨에 분쇄함으로서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면 이번전쟁의 주인공은 우크라이나군의 드론들이다. 전쟁 초반에만 해도 서방을 향해 무기를 달라며 애걸했던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원조에만 의존하는 대신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무기를 만들어냈다. 이점이 미국에만 매달리다가 폭망한 남베트남이나 아프간과의 근본적인 차이이다. 하늘에서 쏜살처럼 날아오는 드론들은 러시아군의 기갑부대들을 괴멸시키고 이제는 모스크바 상공까지 위협하여 푸틴에게 잠 못 드는 밤을 선사하고 있다. 엊그제에는 독일에서 열린 미국과 나토 동맹국 간의 '컴파인드 리졸브(Combined Resolve)'훈련에서 우크라이나 드론부대가 미 기갑부대를 일방적으로 쓸어버렸다는 뉴스 기사가 떴더라. 물론 어디까지나 가상 훈련이며 미군이 전력을 다한 것도 아니기에 '천지이변'이라도 일어난 양 호들갑을 떠는 국내 언론들의 행태는 걸러 읽어야겠지만 전쟁 이전이라면 우크라이나군이 미군을 이기는 것은 결단코 상상할 수 없다는 점에서 틀린 말도 아니랄까.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만큼이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로봇이다. 푸틴이 보이스 피싱으로 멋 모르는 외국인들을 낚아서 용병으로 쓰거나 심지어 김정은에게 손을 벌여서 북한군으로 머릿수를 채움으로서 체면 깎이는 꽁수를 부린다면 그런 방법을 쓸 수 없는 우크라이나군은 로봇으로 대체하고 있다. 심지어 로봇이 러시아군 진지를 점령하고 인간 병사들을 포로로 잡아서 세상을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아직은 드론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조종하지만 요근래 급성장하는 AI가 대체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터미네이터가 현실화되는 것이다. 히틀러의 야망이 인류로 하여금 핵무기라는 금단의 무기에 손대게 했다면 푸틴이 또 다른 금단의 사슬을 끊게 만든 셈이다. 우크라이나군의 독특한 실적 보상도 주목할 부분이다. 구태의연한 관료주의에서 벗어나 전과를 올릴 때마다 포인트를 지급하여 필요한 무기와 물자를 쇼핑몰에서 직접 주문하고 순위를 매겨서 부대간의 경쟁을 유도한다. 뇌굳은 기성세대가 흉내내지 못할 MZ세대다운 유연한 발상이다. 바깥 세상에서는 전쟁을 게임화한다며 윤리가 어쩌구한다지만 승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으니 말이다.

드론 조종사 훈련장은 축구장 크기의 콘크리트 건물 안이었는데 여기서 야구를 해도 홈런을 날릴 수 있을 만큼 높이도 대단했다. 이 안에는 각종 장애물들이 있었는데 다양한 크기의 원형, 정사각형 구조물들이 주를 이뤘다. 조종사들이 드론을 이 구조물을 피하거나 안을 통과시키는 등 자유자재로 다루는 훈련을 받고 있었다. 기둥을 돌아서 숨어 있는 표적을 식별하고 공격하거나 땅을 파놓은 참호 같은 곳 안으로 들어가 드론이 부딪히거나 추락하지 않도록 섬세하게 조종하는 훈련도 이뤄지고 있었다. - p.119


일부 드론에서 촬영된 영상에서는 러시아의 전략폭격기와 공중조기경보통제기의 기체날개와 연료탱크 등 취약지점이 정밀 공격을 받아 화염이 치솟는 모습이 생생히 담겼다. 배터리로 움직이는 드론이 갈 수 있는 거리의 제약을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주파수나 통신교란 등 전파방해도 피하면서 전략 목표를 타격한 일대 사건이었다. 위성 사진을 통해서도 지상에 있는 러시아 전략 폭격기들이 드론 공격으로 불에 탄 흔적이 선명하게 확인되면서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지상 활주로에 있는 항공기들이 이제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 역시 입증되는 사건이었다. - p.127


세상은 그때까지도 드론의 진가에 대해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러우전쟁이 발발하고 러시아의 전차부대가 줄줄이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으로 무력화되는 것을 본 뒤에야 깨닫게 된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장은 현대전에서 대규모 기갑전력의 기동을 보기 힘들게 된 첫번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전차들이 드론을 탐지하고 대항하는 호위 전력 없이 움직였다가는 하늘에서 갑자기 나타는 드론의 손쉬운 표적이 되어 순식간에 파괴된다. - p.143


3부와 4부는 갈수록 각자도생으로 치닫는 새로운 국제 질서에 대한 얘기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도 미국 패권 시대는 내리막길이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층 가속시켰다는 것. 푸틴이 2008년 조지아 침공 때처럼 제한전이 아니라 아예 우크라이나를 먹겠다며 덤빈 것 자체가 미국의 이빨이 무뎌졌다고 판단한 결과이다. 실제로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를 제지할 엄두도 못낸 채 젤렌스키더러 탈출을 종용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러시아군의 전진을 막은 것은 미국의 개입이 아니라 스스로 총을 잡고 일어선 우크라이나인들이었고 국민들과 운명을 같이 하기로 맹세한 젤렌스키의 용기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강대국들이라고 해서 약소국의 운명을 멋대로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과 약소국들 입장에서는 강대국들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 존재이며 결국 내 나라의 운명은 나의 선택에 달려 있음을 깨닫게 했다. 너무 당연하면서도 쉽게 망각하는 진리 말이다. 저자는 '우크라이나 임팩트'가 흑해와 중동을 넘어서 우리네 세상을 어디까지 바꾸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조지아는 러우전쟁을 자국의 안보 위기로 규정하고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이를 극복할 다양한 방법을 고민했다. 단순히 러시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조심스러운 행보만으로는 부족해 보였다. 미국이나 나토 역시 위기 시 조지아 문제에 적극 개입하도록 하려면 조지아의 전략적 가치가 더 커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유럽으로 가는 주요 에너지 수송로의 허브가 되는 것이었다. 이 전략이 성공한다면 조지아와 유럽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윈원 전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p.167


튀르키예가 해협을 봉쇄하지 않고 바닷길을 러시아에 활짝 열어주었다면 러시아는 북해함대와 발틱함대에서 최신예 군함과 잠수함을 파견하여 흑해를 완전히 장악한 뒤 우크라이나의 해상 곡물 수출을 차단하고 남부 해안을 초토화시켰을지 모른다. 하지만 해협의 수문장 역할을 톡톡이 해낸 탓에 튀르키예는 나토의 강력한 '동쪽 방패'라는 사실이 깊이 각인되었다. 미국은 F-35는 주지 않았지만 튀르키예의 F-16 전투기 현대화 사업을 지원하기로 하고 신형 기체 판매도 승인했다. - p.188


2026년에 시작된 중동 전쟁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시작된 나비효과의 결과물이다. 이를 정리해보면 이렇다. 러우전쟁으로 러시아의 국력이 소진되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중동 거점인 시리아에 대한 지원이 약화되었다. 그 결과 아사드 정권이 붕괴했다. 반군이 집권했지만 시리아 내 힘의 공백이 생기고 러시아가 구축한 방공망은 무력화되었다. 이스라엘이 이란 공격의 '기회의 창'을 확보한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은 이란 본토를 사상 처음으로 직접 공격했다. 대리인을 내세운 그림자 전쟁이 끝난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8개월 만에 전면전이 발발했다. 미국도 개입하고 이란이 중동 내 미군 기지를 미사일 공격하여 전장은 중동 전역으로 확대했다. - p.213


폴란드가 추진 중인 바르바라 프로젝트는 4킬로미터 상공에 레이더를 띄워 반경 300킬로미터 범위를 감시하며 미사일과 드론을 포착해 요격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일종의 거대한 기구에 레이더를 장착하는 방식의 이 응용 레이더 시스템은 산이나 건물 등 장애물과 사각지대를 이용해 은밀히 날아오는 미사일과 드론을 포착할 수 있다. 실전 배치가 완료되면 폴란드는 동북부 국경지대는 물론이고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벨라루스 국경지대 깊숙한 곳까지 실시간으로 들여다보는 눈을 갖게 되는 것이다. - p.224


러시아를 향한 경계심은 이 나라 지식인들에게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라트비아의 사회 지도층은 러우전쟁 이전 러시아가 나토의 동진을 공개적으로 경고했던 것을 상기하면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경고를 과소평가했다는 자성도 나오고 있다. 상대방의 경고를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바람에 침공에 대비한 어떤 대비책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 p.255


러시아와 가장 긴 국경선으로 맞댄 핀란드가 나토에 합류함에 따라 북극해에서 발트해를 지나 지중해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철의 장막'이 완성되었다. 러시아로서는 지난 냉전 시대 철의 장막보다 더 길고 촘촘한 새로운 철의 장막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푸틴이 서방 세계를 향해 또다시 '러시아의 안전을 보장하라'고 외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 p.278


미국이 유럽의 안보 전선에서 사실상 후퇴하면서 '이제 유럽은 유럽 스스로 지켜라'라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자 유럽에선 핵전쟁은 물론, 이로 인한 초대형 재난이 닥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이제 미국이 주둔 미군 병력의 감축 등 추가적인 조치를 본격화한다면 유럽 내 위기감은 올라가고 혼란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 p.302


마지막장인 5부는 다름아닌 한반도에서의 '우크라이나 임팩트'에 대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머나먼 세상의 얘기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2024년 6월 18일 푸틴은 북한을 전격 방문했다. 유엔이 지정한 테러 국가이자 구 소련 붕괴 이후 사실상 방치했던 나라를 몇 십년 만에 찾은 것이다.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은 그 자리에서 북러 군사동맹을 맺었다는 사실이다. 만약 미국이나 우리가 김정은 체제를 흔들거나 북한을 상대로 무력 행사를 한다면 러시아에 대한 공격으로 여기고 자신이 직접 나서겠다는 것이다. 1990년 한러 수교 이후 북한을 고립시키기 위한 우리의 '북방외교'가 한순간에 허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북한 또한 그 댓가로 대규모 병력을 파견했고 푸틴은 이들을 총알받이로 삼아 쿠르스크를 되찾았다. 저자는 여기에 중국까지 끼어들어 북중러가 전에 없이 단단히 결속하고 있음을 경고한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탄약과 포탄이 부족해진 푸틴은 북한에 손을 벌리는 신세가 되었고 결국 폐기했던 북러 군사동맹을 복원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자동 군사개입 조항이 명기된 새로운 동맹조약은 그 자체로서 강력한 힘을 지닌다. 러시아는 북한과 조약 체결 이후 "한국이 북한을 침공할 리 없기 때문에 북러 조약 4조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밝혔다. 러시아가 이런 황당한 설명을 늘어놓게 된 안팎의 배경을 상세히 이해하려면 시간이 걸릴 수도 있을 것이다. - p.333


분명한 것은 이미 동유럽 지역 차원의 분쟁을 넘어 중동을 뒤흔든 전쟁의 여파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어떤 결말로 끝날지는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분단으로 길이 끊어지고 높아지는 철조망을 눈앞에서 지켜봤던 한반도로서는 지금 유럽이 던지는 질문들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이다.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과연 무엇인지, 대한민국은 답을 준비해야 한다. - p.342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지구라는 좁은 세계에 살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라고 해서 우리와는 상관없다며 태평스럽게 강 건너 불구경할 수 없다는 얘기이다. 당장 트럼프가 이란을 상대로 불장난을 한 덕분에 기름값이 폭증하고 우리 일상 생활에 여파를 주지 않던가. 우리네 세상은 급변하는데 여전히 작디작은 한반도에 갇혀서 국민들 앞에서 소모적인 정쟁에만 열을 올리며 제 밥그릇 지키기에만 여념이 없는 것이 대한민국 높으신 분들의 한결같은 모습이다. 이들이 둔감하다기보다 워낙 세상 바뀌는 속도가 빠르기에 인간의 두뇌가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긴 정치인들을 탓하기 앞서 우리같은 소시민들의 관심사 또한 국내 방산업체들이 전쟁에 편승하여 어떤 수혜를 보고 그래서 내 주식이 얼마나 재미를 보는가이지 더 복잡한 차원의 얘기가 아니니까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진화되어 있다.

한편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시사한다. 역사는 언제나 강대국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인들에 의해 수렁에 빠진 푸틴은 그 돌파구를 북한에게서 찾았다. 김정은은 자신의 존재감을 처음으로 장거리 미사일이나 핵실험같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방법으로 세상에 확실히 각인시켰다. 정작 트럼프는 자신이 백악관에 재입성하면 24시간 내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큰소리 친 것이 무색하게도 전쟁 종식은 커녕 자신이 푸틴과 똑같은 수렁에 빠진 꼴이 되었다. 올초 출간한 <약소국의 제2차 세계대전사>에서는 약소국은 강대국들이 만든 국제질서에 순응하는 피동적인 존재가 아니며, 때로는 약소국이 강대국의 운명을 휘두르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운명의 주체로서 우리 자신의 의지이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읽어보기를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국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 흔들리는 제국의 초상
이정민 지음 / 사이드웨이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재의 미국은 트럼프가 만든 것이 아니라 트럼프를 선택한 나라에 더 가깝다" - 머릿말 중에서.


4년에 걸친 국공내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1949년 4월 24일 새벽 난징의 총통부 꼭대기에서 앳띤 공산군 병사들이 붉은 깃발을 내걸었다. 그것은 26년 뒤의 사이공이나 72년 뒤 카불에서 벌어질 모습의 전주곡이기도 했다. 물론 남베트남 최후를 다룬 다큐멘타리라던가 작년에 개봉한 프랑스 영화 <카불 13일 낮, 13일 밤>에서 나오는 것마냥 겁에 질린 사람들이 정복자들의 보복을 피해서 외국 대사관으로 좀비떼처럼 몰려들고 막 떠오르는 헬기에 목숨 걸고 매달리는 참혹한 엑소더스가 그 시절 난징에서도 똑같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시청자들에게 실시간으로 현장 상황을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공내전이 사실상 잊혀진 전쟁이다보니 외국 기자들이 남긴 단편적인 증언 외에 오늘날 대중 매체들을 통해서 접하는 내용은 거의 전적으로 공산당 공식 사료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한국전쟁 초반 북한군이 서울에 입성했을 때 서울 시민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북한 쪽 기록으로 얘기하는 꼴이나 다를 바 없다.


상하이에 입성한 공산군 병사들이 건물을 징발하는 대신 길거리에서 노숙하는 광경. 장제스의 국민정부군이 약탈을 일삼았다면 공산군은 "3대 기율, 8항 주의"를 내세워 인민에게 폐를 끼치지 않았다는 서사는 오늘날까지도 민심을 얻어 천하를 차지했다는 마오쩌둥의 신화로 남아 있다. 하지만 공산당 정통성을 세우기 위한 프로파간다일 뿐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보다 중요한 점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 이후 미국의 국제 전략이 처음으로 쓴맛을 봤다는 사실이다. 국공내전은 2천여년 전의 초한지쟁과 달리 장제스와 마오쩌둥 두 사람만의 대결이 아니었다. 여기에는 유럽에서 점차 긴장이 고조되고 있던 미국과 소련도 얽혀 있었다. 특히 미국은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쟁처럼 직접 군대를 보내어 싸우지 않았을 뿐 누구의 눈으로도 빼박할 수 없을 만큼 깊숙이 개입했다. '마셜 사절단(Marshall Mission)'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조지 마셜 원수는 군에서 예편한 뒤 트루먼의 특사로 중국에 파견되어 국공의 중재와 갈등 조정을 맡았다. 강직하고 깐깐한 원칙주의자로서 국제사회의 존경을 받았던 그는 중국인들에게도 처음부터 불청객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양쪽 모두에게 불신과 증오만 샀고 자기 경력의 오점으로 남긴 채 1년 만에 진절머리를 내면서 떠나야 했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임무였고 마셜 자신도 금방 깨달았지만 트루먼이 무시한 결과였다. 미국의 목적은 중국의 평화가 아니라 중국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이었고 그것을 최소한의 비용만으로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 마셜의 끊임없는 딜레마였다. 무엇보다도 그가 간과한 점은 당사자들에게는 단순히 누가 더 가지고 덜 가지고의 제로 섬 게임이 아니라 생존이 걸린 문제라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흥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마셜이 자신의 권위와 미국의 위세를 내세워 알맹이 없는 말 몇 마디만으로 중국인들을 억누를 수 있다고 믿은 것 자체가 오만함이자 무지였다.

나중에 마셜의 비판자들은 그를 가리켜 "중국을 잃었다."라고 책임을 떠넘겼다. 마셜이 좀 더 잘했더라면 중국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장제스를 철저히 지원하던가, 반대로 공산당에게 보다 우호적으로 접근했더라면 냉전의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며 베트남전쟁의 15년 악몽 또한 없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이자 <Decisive Encounters: The Chinese Civil War, 1945-1950>의 저자인 오드 아르네 웨스타드(Odd Arne Westad)는 "미국의 전능함에 대한 믿음이 만들어낸 신화"라고 반박한다. 맞는 말이지만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기도 하다. 미국이 전능하지 않기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전능한 존재라고 믿고 충분한 고민 없이 남의 일에 어줍잖게 끼어들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었다. 원래 미국은 국공의 게임판에 뛰어들 이유가 없었다. 마셜 사절단은 중국인들의 요청이 아니라 태평양전쟁 말기 장제스와 스틸웰의 갈등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자신의 본분을 잊고 사실상 중국의 총독이 되기를 원했던 스틸웰은 고분고분하지 않은 장제스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의 가장 강력한 위협이었던 공산당에 눈을 돌렸고 옌안에 '딕시 사절단'을 파견하여 미국이 국공 문제에 발을 들이도록 끌여들었다. 스틸웰의 뒤를 이은 마셜 또한 미국의 원조를 무기삼아 장제스의 손발만 묶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여겼지만 어림없는 소리였다. 장제스의 승리를 돕지도, 마오쩌둥이 스탈린에게 접근하는 것도 막지 못한 채 빈손으로 떠남으로서 굳이 먹지 않아도 될 욕만 먹은 꼴이 되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처음부터 나서지 않는 쪽이 더 나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국공내전은 미국 입장에서 어떤 교훈을 얻기에 수업료가 너무 적었다. 실패한 쪽은 자신들이 아니라 장제스였고 애초에 중국은 미국이 감당하기에 너무 큰 나라였다. 바꾸어 말해서 더 작은 나라에서는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착각이었다. 한반도에서는 마오쩌둥에게 통렬한 일격을 허용했지만 간신히 체면치레라도 했다면 베트남전쟁은 미국의 완패였다. 미국인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전능한 존재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세계 패권국가로서 전능함에 대한 미련을 순순히 내려놓지는 못했다. 아프간과 이라크를 침공하고 미국의 방식으로 그 나라들을 바꾸겠다며 헛된 애를 쓰다가 쓸데없이 힘만 뺀 채 더 큰 실패를 맛보아야 했다. 경쟁자들에게는 도전의 기회를 준 꼴이었다. 푸틴은 기다렸다는듯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얼마 전에는 베네수엘라 독재자 마두로를 포획하는 성공에 고무된 트럼프가 성급하게 이란을 쳤다가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수렁에 빠뜨렸다. 미국인들에게 전능함이란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이라는 얘기이다.



지지난달 사이드웨이 출판사에서 나온 신작 도서 <미국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 흔들리는 제국의 초상>은 80년에 걸친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말을 보여주는 것같은 트럼프 시대 미국의 민낯을 신랄하게 파헤친 책이다. 저자는 KBS의 24년 차 베테랑 여성 기자로서 지난 수년 동안 워싱턴 특파원을 지내면서 바이든 시절 아프간 철수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가자전쟁, 트럼프 집권 등 굵직굵직한 미국의 국제 현안을 체험하고 이와 관련된 주요 인사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고. 그런 경험을 토대로 쓴 것이 바로 이 책인 셈.


2024년 11월 5일 미국 대선의 결과는 트럼프의 승리였다. 그것도 8년 전에는 힐러리가 선거인단에서는 졌어도 총 득표에서는 이겼던 반면 이번에는 민주당의 완패였다. 트럼프를 가리켜 미국 대통령 치고는 그나마 말이 통하는 상대라고 여기는 푸틴이나 '이스라엘의 트럼프'라고 불리는 네타냐후를 제외하고 전 세계 80억 인류 중 대다수에게는 그야말로 기막힌 광경이 아니었을까 싶다. 앞서 1기 때에도 딱히 치적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없을 뿐더러 말년에는 의회와의 갈등으로 사실상 식물 대통령 신세였다. 게다가 말만 번드르할 뿐,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있는데다 2020년 대선에서는 극렬 지지자들을 선동하여 의회를 습격하여 민주주의를 위협했으며 심지어 무늬만 공화당이지 오만방자하고 제멋대로의 성격 탓에 공화당 내부에서도 극혐인지라 부시를 비롯한 전직 대통령 중에서 그를 위해 어느 한 사람 유세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리 민주당이 인기가 없다고 해서 미국인들이 트럼프를 선택한 것은 차악 대신 최악을 고른 꼴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미국에 대한 몰이해라고 일축한다. 트럼프의 당선은 단순히 위대한 미국을 들먹이는 그의 뻔뻔한 거짓말과 극우 매체들의 선동에 어리석게 넘어간 미국인들의 충동이나 변덕의 결과가 아니며, 트럼프가 집권하자마자 동맹국들을 상대로 관세 폭탄을 터뜨리고 여기저기서 좌충우돌식으로 일을 벌이는 것 역시 나름대로는 지지층의 여론을 고려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무뇌아가 아니라는 것. 그게 그 양반의 머릿속 계산이나 대다수 미국인들이 바라는대로 돌아가고 있는지는 별개의 얘기지만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 우리 눈앞에 직면한 미국의 변화를 트럼프 개인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과연 미국과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건 한 명의 '돌연변이' 리더일까.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국가의 합리적 이성, 그리고 그 시스템을 움직이는 미국인들의 정서와 미국 사회의 선택이 그것이다. 트럼프는 거칠지만 단지 즉흥성에만 기대고 있는 건 아니다. 트럼프는 정치인이다. 여론을 읽고 지지층의 요구에 반응하며 움직인다. 재선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계속 쥐고 싶어 하는 성향상 더욱 그러하다. - p.11


이 책은 제일 먼저 한국에 대한 2기 트럼프 행정부의 시각을 다루고 있다. 우리로서는 가장 관심사이다. 그 중에서도 미 국방부 정책차관 엘브리지 콜비는 트럼프식 안보 실리주의의 단면을 보여주는 인물이며 저서인 <거부전략>은 2023년에 국내에도 출간되었더라. 나중에 읽어봐야 할 듯. 그는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주한미군은 우리의 주적인 북한이 아니라 중국을 겨냥한 것이며 북한에 대한 방어는 우리가 알아서 할 몫이라고 강조한다. 지금까지 한미동맹이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미국이 우리를 지켜주기 위함이었다면 이제는 중국 견제를 위한 수단으로 우리가 미국에 기여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심지어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핵무장도 용인할 수 있다는 것. 요근래 우리도 북핵에 맞서 핵무기를 만들자는 국내 핵무장론자들 입장에서는 고무될 얘기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양반 개인의 생각일 뿐 트럼프 행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닐 뿐더러 NPT 체제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문제이므로 트럼프가 승인하고 말고 할 부분이 아니라는 점에서 걸러들을 필요는 있다. 정말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더 이상 한미동맹에서 '공짜점심'은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미국 입장에서 제아무리 동맹이라도 자기네들에게 이용가치가 없으면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이 남베트남이나 아프간 등지에서 일관되게 보여준 그들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앞으로는 가식과 위신으로 숨기지 않을 것이며 한국은 미국에 과연 쓸만한 동맹인지 스스로 증명해 보라는 게 콜비가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현재 주한미군은 북한에 집중하고 있지만 미국은 북한과 큰 충돌에 휘말릴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북한은 남한만큼은 아니더라도 매우 가공할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핵심은 한국이 북한에 대한 방어, 특히 재래식 군사력 단계에서 1차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 p.36


"아시아에서 핵 비확산 정책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한국과 대만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막았지만 북한과 중국에서는 실패했죠. 특히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인 한국이 확장억제를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핵 비확산 정책을 고집하는 건 우스운 거죠. 더 나은 옵션을 찾을 수 없다면 '우호적인 핵확산'에 직면할 준비를 해야 해요. 동맹이 깨져서는 안 되니까요. 이스라엘의 경우 핵 보유가 나쁜 게 아니라 안보를 안정시키는 요소로 간주된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에 같은 논리를 적용하는 게 왜 안되나요?" - p.42


미국은 더 이상 동맹을 지켜주는 패권국이 아니다. 오히려 동맹의 지원이 패권 유지의 필수 조건이 된 나라이다. 팔목을 비틀어서라도 동맹을 곁에 두어야 하지만 그들이 기댈만한 지원은 제공할 수 없는 나라, 약해지는 패권을 되살리려 시간을 벌어 힘을 비축하는 대신 위험은 동맹과 우방에 외주를 주는 나라. 그간 세계의 누구도 본 적이 없는 외양도, 내면도 작아진 미국을 우리는 앞으로 상대해야 한다. - p.52


본문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프간과 우크라이나에서 드러난 팍스아메리카나의 현실과 세계 최강 미국이 어쩌다가 그렇게 몰리게 되었는지, 그 빈틈을 사정없이 파고드는 중국의 거센 도전 속에서 여전히 패권국가로서의 지위를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미국의 딜레마, 그리고 그런 딜레마가 미국인들로 하여금 트럼프를 선택하게 되었고 설사 트럼프가 아니라 누가 백악관의 주인이 되건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는지를 이 책은 다루고 있다. 트럼프가 미국을 바꾼 것이 아니라 트럼프 집권 이전부터 이미 미국은 바뀌고 있었다는 얘기.


작년에 개봉한 <수퍼맨 리부트>. 이전의 수퍼맨들이 절대적인 힘으로 희망을 주는 지구 지킴이였다면 여기서는 누명을 쓴 수퍼맨이 미국 정부에 의해 구금되고 다른 초인들은 그걸 알면서도 함께 엮일까봐 눈치만 보는 장면이 나온다. 수퍼맨도 미국에 까불면 혼난다는 트럼프 시대의 메세지를 보여준다랄까. 정작 수퍼맨은 커녕, 이란한테도 쩔쩔 매는 것이 이빨 무뎌진 미국의 현주소지만 말이다.


흔히 미국을 가리켜 국방비가 천조원이 넘는다고 '천조국'이라며 그 넘사벽적인 재력과 무궁무진한 군사력에 감탄한다지만(지금은 2천조가 넘었다.) 상당부분 허상이기도 하다. 그 많은 돈을 도대체 어디에 썼는지 병사들의 복지는 갈수록 형편없고 첨단 무기는 정비 불량에 허덕이고 있으며 탄약도 부족하다. 얼마 전에는 트럼프가 말 안 듣는 이란에 미국의 분노를 보여주려다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재고가 바닥났다는 보고에 물러섰다는 기사가 떳더라. 특히 11척의 핵항모로 대표되는 해군력은 미국의 힘을 전 세계에 투사하는 수단이지만 군함의 태반이 심각하게 노후화된 반면, 신조함의 건조는 지연되는 판국이다. 그동안 제조업과 조선업을 등한시한 결과이다. 이제와서 트럼프가 아무리 '마스가(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친들 거의 숨이 끊어진 조선업을 당장 살릴 수는 없다보니 덕분에 우리 조선소들이 어부지리를 얻게 되기도. 얼마 전에 읽은 <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에서는 냉전이 끝난 뒤 천조국 미국이 국방비를 줄이기는 커녕 천정부지로 늘리고 있음에도 정치인들과 유착한 거대 군산복합체들의 비효율적인 구조와 중복 투자 때문에 미국인들의 세금을 얼마나 낭비하고 있는지 신랄하게 고발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저자 또한 같은 지적을 하고 있다.


미국의 힘은 자국의 군사력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미국의 뒤에는 유럽의 동맹이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국 혼자만이 아닌 나토의 작전이었다. 나토의 상호방위조약 의무에 따라 그간 미국의 도움만 받던 유럽 국가들이 처음으로 미국을 도우려 전장에 나섰다. 그런데 '동맹의 전쟁'은 '동맹없는 철수'로 끝났다. 미국의 황급한 철군은 나토 동맹국들에 충분히 공유되지 않은 채 진행되었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유럽 국가들은 우왕좌왕했다. 수백, 수천명씩 현지에 뒀던 자국민과 현지 조력자들을 대피시킬 탈출계획도 마련하지 못했다. - p.57


우크라이나 전쟁은 갑작스러운 전시 상황에서 미국의 무기 공급망이 버텨낼 수 없음을 중명했다. 미국에는 오랫동안 '두 개의 전쟁은 어려우니까 한꺼번에 치르지 말자'라는 명제가 존재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을 치르면서 미국은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과연 한개의 전쟁이라도 고스란히 단독으로 치를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 p.81


소련이라는 적이 사라지고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 되자 미국의 방위산업은 갈 길을 잃었다. 미국 정부는 1988년부터 총 다섯 차례에 걸쳐 350개 주요 군사 기지와 시설을 꾸준히 폐쇄하고 이에 딸린 정비 시설도 감축했다. 한때 비축했던 무기 제조용 광물과 금속들도 민간에 매각했다. 방위산업 역시 축소의 길로 접어들었다. 냉전 종식 직후인 1992년 미 의회에 제출된 보고서는 주요 방위산업체들이 투자처 부족으로 엄청난 부채를 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키웠던 방산 기업들도 정부 주도로 하나둘 매각되었다. 1990년대 말까지 미국 주요 방산업체 수는 51개에서 5개로 급감했다. - p.147


트럼프의 영토 집착은 그린란드에만 그치지 않았다. 파나마 운하나 그린란드처럼 거점 영토가 아닌 북쪽의 엄연한 주권 국가 캐나다도 건드렸다.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부르며 캐나다 총리를 면전에서 '주지사'로 부르는 결례도 서슴지 않았다. 트럼프는 잊을 만하면 소셜 미디어에 성조기가 캐나다 영토를 뒤덮은 그래픽 등을 올리면서 캐나다 국민들의 신경을 긁었다. 2026년 1월 캐나다군은 가상의 자국 침공 시나리오를 상정해 게릴라전까지 포함한 대응 방안을 모의실험했다. - p.178


미국이 자국에 직접적인 이익이 되는 영역에만 집중하면서 곳곳에 외교적 공백이 생겨났다. 중국은 그 틈을 파고들어 경제와 산업, 투자와 시장 접근을 앞세운 방식으로 개발도상국에 대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세계의 생산기지이자 거대한 시장을 동시에 갖춘 중국으로서는 자국 기업의 해외시장을 넓히는 동시에 자원기지를 선점하고 외교적 영향력도 키울 수 있는 효율적 전략이었다. 미국이 비워 둔 공간은 곧 중국이 새로운 파트너를 확보하는 외교 무대로 바뀌고 있다. - p.222


미국이 찾은 답 중의 하나가 동맹이다. 미국은 그간 자신들이 만든 질서의 혜택을 누려왔으니 이제 그 비용도 함께 부담하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책임 분담'이라는 명목 아래 군사비 증액과 역할 확대를 강압적으로 동맹에 청구하고 있다. 문제는 미국의 독주와 독단이 빚어낸 비용까지 청구서에 얹힌다는 점이다. 미국의 일방통행과 전략적 오판이 빚어낸 지정학적 리스크마저 동맹의 몫으로 넘겨진다. - p.288


이 책을 읽으면서 오늘날 미국인들이 느끼는 위기감이 얼마나 심각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런 위기감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외치는 트럼프라는 협잡꾼을 선택하게 된 이유겠지만 엄밀히 말해서 오늘의 미국이 리즈 시절이라는 루스벨트 때보다 더 약할 리는 없을 것이다. 인구와 경제력, 군사력은 물론이고 대다수 일반 국민들 또한 자신들의 할아버지 때보다 훨씬 풍요로운 물질의 이기를 누리고 있다. 하물며 팍스아메리카나가 아무리 종말을 맞이한들 과거 로마제국이 그러했듯 역사 속으로 사라지거나 대영제국처럼 갈가리 찢겨나가게 되리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미국이 정체된 반면 우리같은 신흥국가들이 빠르게 쳐올라오면서 한때 위대했을 자신들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두려움이다. 특히 광대한 영토와 세계 최대의 인구, 무한한 자원을 가지고 있는 중국은 미국을 거역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을 가진 나라이다. 게다가 중국이 구소련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먹여 살려야 할 짐짝같은 위성국들을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늘날 중국 지도자들은 쿠바나 이란, 북한의 김정은에 비하여 훨씬 뛰어난 식견과 통찰력을 갖추고 있으며 더 이상 마오쩌둥 시절의 국가적 자폭이나 다름없는 무모한 실험에 매달리지 않는다. 미국으로서는 가장 무서운 적수일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상황이 트럼프 탓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큰소리친 것마냥 미국을 제대로 위대하게 만들고 있는걸까.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극소수의 엘리트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부를 누리는 반면,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으며 하류층들은 극빈층으로 전락했다. 현실의 희망이 사라지면서 청소년들은 마약에 빠져들고 있다. 정작 트럼프는 해결해야 할 문제는 덮어둔 채 시대착오적인 자기 우상화와 이민자 추방에 열을 올리고 중국, 러시아같은 힘 있는 강대국은 존중하면서 우리처럼 만만한 동맹국들만 군기잡기로 미국의 권위를 세우겠다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그게 지지층을 얼마나 만족시킬지는 모르겠지만 국론 분열과 이미지 실추는 물론, 동맹국들의 분노를 자아내어 트럼프 자신에게도 그리 도움될 것같지는 않다. 하물며 그가 동맹국 지도자들 앞에서 거들먹거리면서 미국에 충성과 복종을 요구한들 순순히 따를 리도 없다. 링컨과 아이젠하워를 배출한 공화당에서 하필이면 이런 인간을 대통령으로 세웠는지 세상은 요지경이다.

미국이 4개로 분열되어 내전에 빠지는 상황을 가정한 알렉스 가랜드 감독의 영화 <시빌워>. 여기서 한 군인이 주인공들을 향해 "당신네들은 어느 쪽 미국인이냐?"라는 질문은 경쟁국의 추격만이 아니라 갈수록 심화되는 미국 내부의 분열상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트럼프 하는 꼴이 마음에 안 든다고 동맹국들이 당장 등을 돌리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날 국제 질서는 미국이 창조한 것이며 중국이나 러시아같은 더 탐욕스럽고 믿을 수 없는 나라가 대신한다고 더 낫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고압적이고 이기적인 행태가 협력보다 반감을 살 것은 분명하다. 더욱이 저자의 지적처럼 트럼프 이후에도 미국이 바뀌지 않는다면 동맹국들은 미국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하려고 할 것이다. 19세기 영국 총리 파머스턴 경의 "국제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우군도 없으며 영원한 것은 오직 우리 국익 뿐"이라는 유명한 말마따나 미국의 국익이 자신들의 국익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달라지는 세계를 받아들이고 변한 미국을 인정하며 그에 따라 우리를 움직였던 동맹의 메커니즘도 수술대에 올릴 때가 왔다." 당연하면서도 쉽지 않은 얘기이다. 왜냐하면 해방 이후 우리는 80여년 동안 미국의 그늘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우리를 둘러싼 주변 정세는 급변하지만 인간의 사고방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다. 대미 외교가 국익이 아니라 국내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우리네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되면 누가 미국에 충성할 자격이 있는지를 놓고 서로 싸우고 국익은 커녕 미국을 상대로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한미동맹을 흔든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판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바뀌었고 더 이상 과거의 미국이 없음은 분명하다. 제아무리 미국의 바짓가랭이를 붙잡고 애걸한들 한미동맹은 우리가 아니라 미국에게 가치가 있을 때에만 의미가 있다. 우리가 인정하건 말건 말이다. 이제는 우리끼리 충성 경쟁을 벌일 것이 아니라 미국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읽다보니 문득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더라. p.78에서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대표 무기는 대포와 박격포의 중간 형태인 곡사포인데 우크라이나가 여기에 들어가는 155mm 포탄을 경악스러운 속도로 소모하고 있었다."라는 대목이 있는데 뭐가 중간 형태인지는 모르겠으나 곡사포와 박격포 모두 대포의 일종이다. 저자가 착각한 모양. 참고로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넘긴 것은 M198 155mm 견인 곡사포를 경량화한 M777 곡사포. 포탄 부족도 문제이지만 수량 자체가 부족한데다 자주포가 아니라 견인식이다보니 방어력과 기동성에서 취약하여 제공권을 쥐고 있는 러시아군의 대포병 사격으로 절반 이상 손실한 모양. p.145에서는 연합군이 공포의 티거 중전차를 상대하기 위해 만든 것이 M4 셔먼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셔먼은 티거 상대용이 아니라 M3 리 전차를 대체하기 위한 다목적 중형 전차로 개발에 착수한 것은 미국이 참전하기 이전부터이며, 서방 연합군이 티거를 처음 만난 것은 1942년 12월 튀니지에서였다. 영화 <퓨리>에 나온 것마냥 셔먼이 물량에서 티거를 압도한 것은 사실이지만 연합군의 수단이 셔먼만 있었던 것은 아닌지라. 동부전선에서는 티거보다 더 한 괴물도 등장했으니. 아무튼 밀덕의 습성인지 이런 것만 눈에 들어온다는.

전쟁을 가장한 호러였던 독일 영화 <티거>에서 티거의 포탄을 튕겨내는 소련 SU-100 구축전차. 영화 <퓨리>에서 티거가 셔먼의 포탄을 튕겨내어 빵형과 관객들에게 공포를 선사했다면 여기서는 이놈이 그대로 재현한다. 퓨리의 오마주인 셈. 하지만 이보다 한체급 위의 괴물이 ISU-152. 엄밀히 말해서 우리가 아는 티거의 명성은 전차 성능보다도 독일 전차병들의 탁월한 숙련도 덕분인지라.


그럼에도 국제 전문가다운 저자의 치밀한 분석과 날카로운 통찰력은 오늘날 미국의 시대가 어떻게 저물고 있는지 알려준다. 트럼프의 허세 뒤에 감추어진 절박감도 함께 말이다. 단 한번도 전능한 적이 없음에도 스스로 만들어낸 전능함의 환상에 빠져서 힘을 낭비한 댓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랄까. 300여 페이지를 하루 만에 읽었다. 미국 싱크탱크 연구원들이 쓴 <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와 더불어 꼭 읽어볼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베트남전쟁 - 미국은 왜 실패할 전쟁에 빠져들었는가
제프리 와우로 지음, 이재만 옮김 / 책과함께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입만 열면 미국과의 혈맹을 강조하는 우리로서는 섭섭하지만 오늘날 미국인들에게 한국전쟁은 아예 잊혀졌다고 할 수는 없어도 극동의 오지에서 벌어진 지루하고 재미없는 싸움으로 여기는 것은 분명하다. 할리우드에서는 한국전쟁을 소재로 하는 영화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비교적 최근인 2022년에 장진호 전투를 배경으로 하는 <디보션(Devotion)>라는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장진호 전투보다 미 공군 최초의 흑인 조종사였던 제시 브라운(Jesse LeRoy Brown) 소위에게 포커스를 맞춘 것이라. 게다가 블록버스터 영화도 아닐 뿐더러 평이한 내용 탓에 흥행에서 완전 폭망했다고. 솔직히 내가 봐도 따분하더라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없는 장군 중 한 사람인 맥아더와 엮인 탓에 논란이 일어날 게 뻔한 인천상륙작전은 그렇다쳐도 미 해병대가 10배의 중공군을 상대로 극적인 승리를 거둔 장진호 전투는 충분히 영화화할만 것인데 말이다. 할리우드의 이러한 홀대는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전쟁 액션 영화들을 끝없이 만드는 대조적이다. 갈수록 살기 팍팍한 미국인들로서는 자기네 리즈 시절이다보니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모양. "그때가 좋았지"

심지어 <트랜스포머5>에서는 미군이 외계인 로봇들과 편먹고 처칠 본가이자 나치 소굴이 된 블레넘 궁전을 터는 장면이 나오기도. 그러고보니 캡틴 아메리카와 울버린, 원더우먼도 2차대전 참전용사라던가. 이런 미친 괴물들과 맞짱뜬 독일군이 더 대단하달지.


제2차 세계대전이 두고두고 새겨야 할 영광의 순간이고 한국전쟁이 존재감 없는 무승부전이었다면, 베트남전쟁은 미국 건국 이래 처음으로 맛 본 악몽일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싸움에 졌다는 문제가 아니었다. 자기 힘에 도취된 무책임한 정치인들이 반공이라는 이름으로 약자를 괴롭힌 부도덕하고 명분없는 전쟁이었고 미국 역사의 오점이었다. 민간인들을 상대로 과거 그들의 아버지들이 맞서 싸웠던 나치나 일본군과 다를바 없는 전쟁범죄가 광범위하게 자행되었으며 수많은 참전 군인들이 PTSD에 시달려야 했다. 우리를 비롯하여 미국을 믿고 자국 군대를 보냈던 동맹국들 역시 지금까지도 파병의 정당성을 놓고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베트남전쟁 초반 아이드랑 전투에서 활약한 미 제1기병사단의 대대장 할 무어 중령을 다룬 <위워 솔저스>에서는 멜 깁슨이 특유의 마초 분위기와 프로파간다적인 국뽕을 한껏 보여주지만 약 빨기 전의 찰리 신이 주연을 맡은 <플래툰>이나 <지옥의 묵시록>, <굿모닝 베트남> 등 베트남전쟁을 소재로 하는 영화들은 대개 암울하고 부정적이다. 실버스타 스탤론의 <람보> 또한 시리즈를 더할수록 황당무계한 인간병기의 B급 액션물로 변질하지만 주지사님의 <코만도>와는 달리 원래 이 영화는 베트남에서 돌아온 재향군인의 PTSD와 부적응을 다룬 반전 영화이다. 그리고 이것이 미국에게 결코 자랑스럽지 못한 베트남전쟁의 기억이라는 얘기이다.

엑스맨의 대표적인 흑역사로 통하는 <엑스맨의 탄생>에서는 울버린 형제가 불사신으로 살면서 남북전쟁부터 베트남전쟁까지 미국의 모든 전쟁에 모습을 드러낸다. 게다가 베트남에서는 민간인 학살과 강간, 상관 살해까지. 이 양반들 6.25에도 참전하지 않았을지.


이후의 미국에게 베트남전의 악몽은 끊임없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후임자들은 덩치크고 비효율적이었던 미군을 뿌리부터 바꾸었고 억지로 끌려온 오합지졸 신병 대신 잘 훈련된 직업군인으로 구성된 새로운 미군은 걸프전에서 이라크군을 일방적으로 아작내어 베트남전쟁의 트라우마를 털어냈다. 부시는 이참에 후세인 정권을 끝장내라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을 쫓아내는 선에서 만족하여 또다시 수렁에 빠지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았다. 하지만 반성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버지로부터 정치는 배웠으되 절제를 배우지 못한 아들 부시는 911테러를 빌미로 아프간과 이라크에 발을 들였고 결과는 제2의 베트남전쟁이었다. 베트남에서 벌어진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2021년 8월 15일 카불 함락은 반 세기 전 사이공의 데자뷰였다. 전직 미국 버클리 대학교수이자 기업가 출신인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탈레반이 카불로 진격하자 과거 남베트남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나라를 버리고 가족과 재산만 챙겨서 잽싸게 달아났다. 미국은 아프간에서 또 한번 자신의 힘을 쓸데없이 낭비하고 위신만 실추한 채 불명예스럽게 물러나야 했다. 그리고 정치인들이 책임을 통감하는 대신 궤변과 핑계를 늘어놓으며 자신들을 합리화한 것도 50년 전과 똑같았다. 몇달 전에는 강박적인 관심 종자인 트럼프가 이란을 상대로 벌집을 건드려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수렁에 빠뜨렸다.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의 말마따나 되풀이되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인간의 어리석음이랄까.

역사 인문 전문 출판사인 책과 함께에서 지난 5월에 나온 신작도서인 <베트남전쟁>은 국내에서는 보기드문 베트남전쟁 통사이다. 여기에는 단순히 주요 전투의 나열 만이 아니라 700여 페이지에 걸쳐 미국이 베트남에서 장장 10년에 걸쳐서 그토록 많은 돈과 물자, 인명을 소모하고도 결국에는 두 손 들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전모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오늘날 푸틴이 삽질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겹쳐 보이기도. 저자는 명문 예일대 출신의 미국 노스텍사스대학교 군사사 교수이자 TV 역사 채널 진행자이기도 한 제프리 와우로(Geoffrey Wawro). 보불전쟁, 보오전쟁, 제1차 세계대전 등 주로 근현대 전쟁사가 전문인 모양. 그 중에서도 이 책은 2024년에 나온 그의 가장 따끈따끈한 최신작이라고.

뭔가 캐빈 코스티너 닮은 둣한 이 핸섬한 아재가 저자인 제프리 와우로 교수. 뉴욕타임즈는 그의 신작인 <베트남전쟁>을 가리켜 "베트남 전쟁에 있어서 최고의 통사이자 기본서가 될 것"이라고 극찬했다.


이 책은 1954년 디엔비엔푸에서 영혼까지 털린 채 인도차이나를 떠난 프랑스에 이어서 아이젠하워가 바통을 넘겨받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는 디엔비엔푸 전투 두달 뒤 체결된 제네바 협정에서 북위 17도를 경계로 베트남을 임시적으로 분단하되 2년 뒤에 전국 총선거를 실시하여 재통일키로 한 약속을 깨뜨리기로 했다. 7년 전 한반도에서는 소련이 생깠다면 이번에는 미국이 써먹은 꼴이었다. 어차피 남쪽의 3류 지도자들로서는 북쪽의 국민 영웅인 호치민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결코 프랑스가 손 떼고 간 전쟁을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국내 반공여론의 비난을 면피할 만큼의 생색내기만 하겠다는 속편한 계산이었다. 그로 인해 어느 정도의 비용을 치를 것이며 북베트남이 순순히 받아들일지, 남베트남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민도 없었다. 히틀러가 북아프리카에서 죽을 쑤는 무능한 동맹자 무솔리니를 구하겠답시고 살짝 발을 들였다가 이탈리아의 전쟁 전체를 떠맡아야 했던 것을 되풀이한 셈이었고 후임자들에게는 지옥문을 여는 순간이기도 했다. 불과 10년 전 나치를 상대로 사상 최대의 상륙작전을 성공시키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전쟁영웅조차 아시아에 대해서는 이토록 안이했다는 것이 놀랍다랄까.

아이젠하워는 미군 투입 방안에서는 물러서기는 했지만, 위스콘신주 상원의원 조지프 매키시 주변에 모여든 빨갱이 탄압 반공주의자들을 우려하여 남베트남에 군사 경제 원조를 쏟아부어 자신이 공산주의 위협을 진지하게 여긴다는 것을 입증코자 했다. 그는 조지프 매카시에게 트집 잡히지 않을 만큼만 남베트남을 지원하려고 했고 과하게 지원할 생각은 없었다. 남베트남은 부채가 너무 많았기에 아이젠하워는 설령 그곳이 함락된다고 해도 얽매이지 않으려고 했다. - p.28


1961년 취임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아이젠하워로부터 어떤 상황을 넘겨받았는지 알고 경악했다. 1950년대에 미국 뉴저지주 레이크우드에 있는 메르놀 신학대학에서 망명 생활을 하면서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에게 자신을 유망한 활동가로 선전했던 지엠은 당시 남베트남에서 잘 풀리지 않고 있었다. 지엠은 인기 없고 독신을 고수하며 예의범절에 엄격한 독불장군으로 자기 주변을 가족들과 측근들로 에워쌌다. 그들 대다수는 부패와 폭정으로 빠져들었다. - p.32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호치민보다 11살 아래였던 응오딘지엠은 명문 집안 출신으로 젊은 시절에는 프랑스 식민지 관료를 지내기도 했으나 나중에는 독립운동에 뛰어들면서 나름대로의 명망을 얻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정치적 기반은 호치민에 비할 바가 아니었으며 무장 투쟁의 경험도 없었고 휘하에 호치민의 베트민과 같은 무력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디엔비엔푸에서 프랑스군을 무찌르고 베트남을 독립시킨 것은 호치민 군대이지 그가 아니었다. 어쨌든 남베트남을 통틀어 그나마 호치민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1960년 1월 15일 또 다른 반공 거두인 타이완의 장제스를 방문한 응오딘지엠. 미국이 보기에 이승만, 장제스, 응오딘지엠은 '아시아의 부패 독재자 삼인방'이자 골칫거리였지만 이들은 그저 미국에 빌붙어 단물을 빠는 기생충이 아니라 강력한 지도력을 갖춘 민족주의 지도자였다. 응오딘지엠 치하의 혼란상은 말기적 증세보다 한 나라가 탄생 과정에서 겪는 불가피한 진통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걸 참아낼 인내심이 없는 쪽은 미국이었고 고결한 자신들의 위상에 흠집이라는 이유로 제거함으로서 남베트남에 더 큰 혼란을 야기했다.


아마도 300년 전 쯤이었다면 한 왕조의 창시자로서 그런대로 무난하게 나라를 이끌었을지도 모르지만 하필이면 상대가 농민들을 선동하는데 익숙하고 산악지대의 싸움에 이골이 난 공산주의자들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응오딘지엠은 서구식 교육을 받고 독실한 기독교도였음에도 정작 그의 본질은 봉건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 한계였다. 20세기식 게릴라전을 구사하면서 사정없이 파고드는 공산주의자들을 상대로 캐캐묵은 방식으로 맞섰던 그는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하자 미국을 붙잡고 매달렸지만 자충수가 되었다. 미국은 갈수록 성가시고 부담스러웠던 응오딘지엠을 잘라내기로 결심하고 남베트남 장군들을 부추겨 쿠데타를 일으켰다. 치명적인 실수였다. 남베트남은 인기 없는 독재자라고는 하지만 군부를 억누르고 북쪽과의 전쟁을 이어나갈 수 있는 유일한 구심점을 잃었고 권력을 맛본 장군들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자기들끼리 싸우는데 열을 올렸다. 그러자 미국은 더 큰 실수를 저지르기로 했다. 아직 북베트남이 충분히 강하지 않을 때 남베트남의 개혁을 압박하거나 남베트남군을 싸울 수 있는 군대로 만드는 대신 자신들이 직접 전쟁을 떠맡은 것이었다. 그것은 한 나라를 망친 것에 대한 속죄도, 책임감도, 하물며 미국 자신의 국익 때문도 아니었다. 자신들이 경솔했음을 인정할 수 없다는 무책임한 일부 권력자들의 아집과 체면 치례를 위해서였다.

저자는 1964년 8월 2일 통킹만 사건을 시작으로 존슨 행정부가 본격적인 개입에 나서는 것부터 1973년 1월 27일 헨리 키신저가 사실상 남베트남의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파리 평화협정에 서명하고 2년 뒤 사이공이 함락되기까지 10여년 동안 베트남에서 미국이 벌인 전쟁을 신랄하게 파헤친다. 그것은 목표없는 전쟁이었고 설사 이긴다고 한들 무엇을 얻을지도 불분명했다. 애초에 개입을 결정한 존슨부터 아무런 열의가 없었다. 그는 베트남전쟁을 원치 않았지만 남베트남이 붕괴되면 미국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따라서 다음 대선에 좋을 것이 없다는 지극히 타산적인 이유로 뛰어들었다. 장군들 역시 개입에 의문을 품으면서도 칼자루를 쥔 대통령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마지못해 찬성했다. 미국인들에게 베트남전쟁이 머나먼 오지에서 벌이는 심심풀이 막간극에 지나지 않는다면 북베트남의 목표는 훨씬 분명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베트남을 무너뜨리고 통일을 실현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로 인한 어떤 댓가와 희생조차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런 적을 상대로 미국이 명분이나 전략도 없이 자신의 판돈이 넉넉하다는 것만 믿고 덤벼서는 이길 수 없는 건 당연했다. 그렇게 살짝 발만 걸칠 요량으로 시작된 전쟁은 남베트남을 난장판으로 만들었고 스스로도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지게 되었다. 미국의 가식과 위선, 무분별한 작전은 책을 읽는 내내 분노를 자아낸다.


합참은 존슨에게 "스스로 정한 제한을 제쳐두고" "더 과감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합참은 북베트남의 모든 전력 거점을 타격하는 초토화 항공전역을 원했다. 하지만 존슨은 중국이 개입하거나 다수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그런 조치를 승인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맥나마라는 합참이 밀어붙이는 '강한 타격' 대신 '점진적 압박'을 선택했다. 국방장관은 대통령에게 장성들이 점진적 압박을 '수용가능한' 전략으로 여긴다고 거짓으로 단언했다. - p.51


미군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적을 발견하면 우월한 전술과 기술로 섬멸할 계획이었다. 이름하여 공중기동작전이었다. 전쟁의 역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야전군이 수천 대의 헬기를 전술적 이동의 주된 방법으로 사용할 예정이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싸우기로 결심한 무렵 이 전쟁의 아이콘이 전투에 도입되었다. 바로 벨 사의 UH-1 이로쿼이 다목적 헬리콥터, '휴이'라는 별명으로 더 널리 알려진 헬기였다. - p.119


1966년 1월 연두교서에서 존슨은 베트남전이 끝없이 이어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며칠이 몇 달이 될 수도 있고 몇 달이 몇 년이 될 수도 있지만 공격성이 우리에게 전투를 명령하는 한 우리는 계속 머무를 것입니다." 연두교서 이후 인터뷰에서 존슨은 자신이 사태를 통제하지 못하고 있으며 전쟁에서 이기거나 빠져나올 수 있는 계획이 없다는 사실을 털어놓고 말았다. "얼마나 오래 갈지 얼마나 들지 누가 알겠습니까."라고 무심코 말해버렸다. 그러더니 잠시 말을 멈추었다고 이렇게 덧붙였다. "중요한 점은 우리가 옳은가 아니면 그른가입니다. 나는 우리가 옳다고 믿습니다." 달리 말하면 전략은 변함이 없었다. 그것은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위선과 뒤섞인 폭력이었다. - p.173


베트남전쟁에서 낭비, 목적 없는 활동, 바보짓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웠다. 웨스트모얼랜드는 씩씩한 플라이급 권투 선수처럼 비어 있는 링을 춤추듯 돌아다니면서 펀치를 날렸다. 다만 그런 펀치를 위협으로 여길 상대 선수가 없었다. 상대는 로프 사이로 빠져나갔다가 웨스트모얼랜드가 지쳐서 자기 코너로 돌아가 땀을 닦고 다음번 급습을 준비할 때만 다시 나타났다. - p.247


그동안 웨스트모얼랜드의 승리 이론은 미군의 기동성과 화력을 이용하는 '소모전략'으로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의 주력 부대들을 격멸한다는 것이었다. 이 이론과 전략은 너무나 명백하게 실패하고 있었다. 적의 침투가 줄기는 커녕 도리어 늘고 있었다. 북베트남군은 1967년에 매달 평균 8500명을 남베트남에 침투시켰는데 이 수치가 연말에 급증하고 1968에 들면 두배인 2만 350명으로 한층 늘어날 터였다. 소모 전략은 적이 사상자를 전원 교체하고 새로운 부대를 추가하고 남베트남으로 더 깊이 밀고 들어옴에 따라 좌초하는 중이었다. - p.280


미라이 학살 소식, 그리고 인근 미케 촌락에서 제3보병연대 제4대대의 1개 중대가 최소 90명의 민간인을 더 학살했다는 소식은 미군 전체로 퍼져나갔다. 이미 잔혹행위가 흔한 일이었고(보병들은 마주치는 마을 주민들을 강간하거나 학대하거나 살해했다) 그에 대한 소문을 보통 상부에서 은폐하긴 했지만 이번 학살은 은폐하기에 너무 큰 규모였다. 사이공의 한 장교는 '핑크빌 학살'에 대해 거의 즉각 들었고 육군이 학살을 1년 넘게 쉬쉬할 수 있었다는 데 '놀랐다'고 회상했다. - p.429


임기 막판에 웨스트모얼랜드는 전시 동안 자신이 저지른 무모한 행위에 대한 변명문을 작성하느라 바빴다. 그는 "어떤 미군 사령관이든 잡 장군만큼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면 하룻밤 사이에 해임되었을 것이다."라고 투덜댔으며 이로써 본인이 이끈 전쟁의 성격을 여전히 오판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평판을 만회하려는 웨스트모얼랜드의 열의는 끝이 없었다. 훗날 그는 해병대의 케산 역사서에 서문을 쓰기로 하고 이 작전의 가치에 대한 이기적인 허튼 소리로 지면을 채웠다. 마치 변호사처럼 지적한 수정 사항은 그가 북베트남에게 속은 이후 자신의 흔적을 감추려고 얼마나 열을 올렸는지 드러낸다. "내가 병력을 '덜 결정적인' 지역이 아니라 '덜 압박받는' 지역에서 데려왔다고 수정해 주십시오." - p.470


닉슨은 1968년에 본인의 당선을 위해 강화 절차에 훼방을 놓았다. 그때 닉슨은 미국에 더 유리한 조건으로 하노이에 종전을 강요하는 일은 자신이 존슨보다 더 잘할 수 있다면서 강해 방해를 정당화했다. 하지만 1969년에 제37대 대통령은 유권자에게 약속했던 강화 교섭을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 p.567


베트남에서 복무한 미군 병사 중 4분의 3이상은 노동계급이나 저소득 가정 출신이었다. 전문직이나 경영직, 기술직 부모를 둔 병사는 23퍼센트에 불과했다. 부유층의 아들은 학교에 머물거나 꾀병을 부리는 수법으로 징병 유예를 유지할 수 있었다. 또는 미래의 대통령 조지 부시처럼 예일 대학을 졸업해 학생 징병 유예권을 잃기 2주 전인 1968년 5월에 마치 마법처럼 주방위군에 임관함으로서 베트남 복무를 피했다. 그날 부시와 함께 또 한명의 고위층인 텍사스 상원의원 로이드 벤슨의 아들도 징집을 피하기 위해 같은 주 공군 부대에 비집고 들어갔다. - p.596


5개 사단의 5만 명으로 신속히 병력을 증원한 북베트남군을 퇴각하기 시작한 남베트남 지상군을 타격했다. 남베트남군은 온갖 실책을 저질렀다. 공중 엄호, 정찰, 측면 보호, 후위 전투를 거의 않았다. 무턱대고 후진하다가 번번히 매복 공격을 당했다. 손질과 패주에 가속이 붙는 가운데 어느 미군 조종사는 "속으로 이 모든 게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지 생각했다." - p.645


p.404에서는 존슨 대통령이 참모들을 향해 "어째서 북베트남인이 남베트남인보다 훨씬 더 결연하게 그토록 잘 싸우는건가"라면서 절망을 토로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것은 모든 미국인들이 품었을 핵심질문이자 핵심을 비켜난 질문이기도 하다. 과연 그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몰랐을까. 베트남전쟁의 딜레마는 미국인들에게 미국의 전쟁임과 동시에 미국의 전쟁이 아니었고 남베트남인들에게도 남베트남의 전쟁이면서 자신들의 전쟁이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존슨은 말로만 남베트남을 동맹국이라고 부르면서 평화와 안정을 위해 싸운다고 주장했지만 그의 방식은 20세기 초반 필리핀 식민지에서 현지 독립군을 상대로 벌인 토벌전이었다.

남베트남에서 미군 총사령관이었던 윌리엄 웨스트모얼랜드 장군은 전쟁의 프로페셔널이 아니라 군복 입은 공무원이었고 전쟁을 모르는 책상물림 장군이었다. 그는 흔히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착한 베트콩은 죽은 베트콩"이 아니라 "죽은 베트남인들이 나쁜 베트콩"이라는 식이었다. 마치 대로에서 눈을 감고 칼을 마구 휘두르는 식으로 벌였던 미군의 작전은 무분별한 학살극이었고 칼을 맞아 죽은 사람이 베트콩이라는 게 웨스트모얼랜드가 말하는 전과였다. 이 전쟁을 통틀어 유일하게 자신들의 전쟁이었던 북베트남이 미군을 연구하고 꾸준히 약점을 찾아냈던 반면, 웨스트모얼랜드는 자신의 방식을 끝까지 고집했다. 그러면서 전과를 과장하고 허위 보고를 일삼았다. 그런데 어떻게 이길 것이며 남베트남인들이 미국의 전쟁에 열광하기를 바란다는 말인가. 하지만 미국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자성하거나 바로잡는 대신 애초에 이런 싸움에 끼어든 것이 잘못이라며 난장판을 내팽게치고 떠나는 쪽을 선택했다. 남은 자들이 알아서 치울 몫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그렇게 전쟁은 끝났다. 베트남전쟁 동안 단 한발의 포탄이 떨어질 일도 없었던 미국은 5만명의 전사자와 막대한 전비, 국론 분열, 오만한 자존심에 처음으로 금이 간 정도라면 남베트남인들은 나라를 잃었다. 이들은 통일 베트남에서 2등 국민으로 전락했고 전체 인구의 1/10이 공산정권의 보복을 피해 해외로 탈출했다.

1973년 1월 초 미국 양원은 자국 전쟁포로들이 송환되자마자 베트남 전쟁의 자금 지원을 전면 중단한다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서방 연합국은 11일간의 항공 전역과 민간인 사상자 수천 명에 경악했다. 라인베커II가 끝난 뒤 파리로 날아간 키신저는 1월 27일 마침내 파리 강화협정에 서명함으로써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종료했다. 닉슨은 "전쟁을 종결해 베트남과 동남아에 명예로운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자랑했다. 지난 5년 간 250차례 4자 회의를 통해 줄다리기를 벌인 녹샌 모직천이 덮인 커다란 테이블 주변에는 축하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두 차례 따로따로 진행된 서명식은 한 목격자가 보기에 "보슬비 내리는 잿빛 파리 하늘이 침울한" 것 만큼이나 "냉담하고 음울한" 분위기였다. - p.707


기다리는 동안 그들은 해군기지와 비행장 주면에서 남베트남군 부대들끼리 싸우는 소규모 접전을 지켜보았다. 다낭에서 탈출해 남하한 해병대와 유격대, 그리고 이 지역 본부를 확보하기 위해 사이공에서 파견된 병력 간의 전투였다. 이 부대들은 이제 미국의 원조가 줄었으니 '가난한 자의 전쟁'을 치르라는 티에우의 지시를 따르기는 커녕 오히려 군율을 팽개치고 눈앞의 전리품을 차지하려고 서로 싸웠다. 그들은 피아스터, 달러, 금, 보석, 가보 등 속수무책인 피란민들로부터 약할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전리품으로 챙겼다. - p.727


북베트남군 전차들이 사이공 시내로 진입했고 그 중 한 대가 대통령궁의 출입문을 들이받아 부수었다. AP 통신의 사이공 지국장 조지 에스퍼는 이 행위로 "한 세기에 걸친 서구의 영향이 종언을 고했다."라고 기록했다. 즈엉반민은 라디오로 남베트남군 전체에 오전 10시 24분에 항복하라고 명령했다. 공식적으로 항복하기 위해 대통령궁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즈엉반민은 이미 인민혁명으로 권한이 넘어갔으니 있지도 않은 권한으로 항복할 수는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 P.741


과연 베트남전쟁은 처음부터 실패가 정해진 싸움이었을까. 여기서 내가 그때 이래야 했다, 저래야 했다라고 떠드는 것은 한낱 탁상공론일 뿐더러 미국이 몰라서 생고생한 것도 아닐 것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웨스트모얼랜드같은 무능한 보신주의자가 아니라 마셜이나 아이젠하워, 브래들리같은 미국 최고의 장군들이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또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미군이 힘든 것만큼이나 북베트남에게도 힘든 싸움이었고 실제로 북베트남이 먼저 손을 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분명하다. 누가 그 자리에 있어도 눈앞의 자기 선거에만 눈이 멀고 책임지지 않을 궁리만 하는 지도자 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는 점이다. 그보다도 존슨이 하필이면 웨스트모얼랜드같은 인간을 기용하여 제 발등을 찍은 것도 미 육군에 정말로 그보다 더 나은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게 대통령으로서 존슨의 그릇이었을테니 말이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이 책은 오로지 미국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베트남전쟁이다. 정작 전쟁의 또 다른 주역이었던 남베트남인들에 대한 얘기는 없다. 과연 이들은 미국의 아집이 벌여놓은 전쟁에 억지로 휘말린 피동적인 존재이기만 했던가. 저자는 본문 내내 베트남에서 미국은 명분도 없었고 전략도 없었으며 충분한 병력도, 방법도, 의지도 없었다고 강조한다. 물론 결코 틀린 말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전쟁이 남베트남인들에게도 아무런 의미 없는 전쟁이었을까. 남베트남은 처음부터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저주받은 사생아에 지나지 않았던가. 하지만 우리가 결코 간과해서 안 되는 사실은 남베트남인들이 상전 노릇하는 미국의 횡포에 분노하고 남베트남의 부패한 군부 정권에 실망했다고 해서 북쪽의 공산주의를 선호하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라는 점이다. 미국이 남베트남에서 저지른 수많은 만행은 분명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원래 전쟁이란 고통스러운 것이며 공산주의 치하에서 기다리고 있을 궁핍과 압제가 그보다 덜 할거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미국의 원조와 자유 무역 덕분에 남베트남인들은 북베트남인들보다 전반적으로 생활 수준이 더 높았다.

어쩌면 남베트남은 살아남을 수도 있었고 스스로 혼란상을 딛고 우리가 그러했듯 '사이공의 기적'을 일으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남베트남인들이 아니라 미국인들이 고통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전쟁 내내 남베트남인들과 괴리되었던 미국은 이 재미없는 전쟁이 갈수록 부담이라는 이유로 아시아는 아시아인들이 지키라며 야반도주했다. 그로 인해 남베트남이 패망하자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할 만큼 했는데 남베트남인들이 싸우지 않은 탓이라며 모든 책임을 떠넘겼다. 하지만 자생할 기회를 줬던가. 애초에 부패하고 무능한 남베트남 정권과 남베트남군의 무기력함은 자연 발생이 아니라 미국이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남베트남이라는 존재가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나라를 이끌만한 역량과 강단 있는 민족주의자들을 배척하고 부패하고 인기 없지만 말 잘 듣는 사람을 선호한 것이 미국의 방식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남베트남군이 퍼주는 것만큼 밥값을 못 한다고 타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렇다고 충분히 퍼준 것도 아니었다. 존슨 행정부 말기에 와서야 '베트남전쟁의 베트남화'를 외치며 남베트남군의 강화에 착수했다지만 프로그램은 졸속이었고 시간은 촉박했다. 어차피 자기네가 떠난 뒤의 일 따위는 알 바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의 남베트남 대통령궁에 진입하는 북베트남군의 59식 전차. 미군이 철수한 지 불과 2년 1개월 만이었다. 철수하면서 대량의 무기를 남겨놓았던 미국은 남베트남군의 무력한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 무기의 태반은 가져가는게 비용이 더 많이 든다는 이유로 쓰레기 버리듯 투기하고 떠난 것이나 다름없었고 남베트남군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건 당연했다. 그리고 이것이 베트남전쟁 내내 남베트남군과 괴리되어 머리수 채우는 식민지 군대로만 취급했던 미국의 한결같은 방식이었다.


같은 시기 남한과 타이완 또한 미국의 원조에 기댔다고 하지만 이곳에서 싸우는 주체는 엄연히 이들이지 미국이 아니었다. 국공내전에서 남베트남군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장제스 군대는 1949년 10월 진먼다오에서 처음 승리한 이후 1950년대 내내 공산군이 타이완 해협을 넘는 것을 막아냈다. 미군이 나서지 않고도 말이다. 어째서 남베트남군은 그렇지 못했던가. 남한과 타이완 역시 비민주적이고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권위적인 정부가 지배했다. 그럼에도 공산주의 세력은 거의 침투하지 못했다. 지금에 와서는 자신들의 손으로 민주화에 성공했으며 비서구권에서 가장 번영하는 나라가 되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 국가와 남베트남의 운명을 갈랐던가. 이 책에서는 그저 미국인의 시각에서 남베트남이 부패하고 무능하고 타성에 젖은 구제불능의 정권이었다는 뻔하고 단편적인 사실만이 있을 뿐 왜 자립에 성공할 수 없었는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은 없다. 이것이 반세기가 넘도록 벗어나지 못하는 미국식 베트남전쟁 연구의 한계이자 그 많은 교훈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이 책은 미국의 10년 베트남전쟁을 이해하는데 비할 바 없이 훌륭한 개괄서이다. 다만 지적할 부분은 번역. 사단장을 '사단 사령관', 중화기를 '무거운 화기'를 번역한 것이나, p.470쪽에서는 "웨스트모얼랜드의 후임은 그의 부관인 53세 장군 크레이튼 에이브럼스였다."라고 나오는데 'deputy'는 보좌관을 의미하는 부관(aide)가 아니라 부사령관이다. 둘 다 같은 4성장군인데 영관급이 맡는 부관으로 해석해서야. p.636의 "응우옌쫑루엇 대령의 기갑기동부대"는 '기갑임무부대(Armored Task Force)'가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그보다도 번역 전반이 다소 매끄럽지 못하고 가독성이 떨어지는 느낌. 역자가 문외한도 아니고 <몽유병자들>과 <제3제국사>, <피와 폐허> 등 중량 있는 전쟁사를 여럿 번역한 바 있는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38 타이완 여행기 - 2026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2024 전미도서상 번역부문 수상, 2024 일본번역대상 수상, 2021 타이완 금정상 수상
양솽쯔 지음, 김이삭 옮김 / 마티스블루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제부터인가 소위 이세계물 양판소가 난무하는 일본 라이트노벨 중에 <이세계 방랑 밥>이라는 작품이 있다. 솔직히 내용은 별거 없다. 우연히 이세계로 온 샐러리맨 아재가 유유자적하게 세상 구경하면서 슬로우 라이프를 즐긴다는 스토리이다. 같이 다니는 사역마들이 워낙 먼치킨급 능력을 갖추고 있다보니 소설로서 갖추어야 할 긴장감이랄게 없다. 위기로 발전하기 전에 일찌감치 정리하다보니. 그야말로 무미건조한 내용의 연속인데도 나름 인기가 있는 걸 보면 현실에 찌든 일본인들의 꿈같은 로망을 제대로 담고 있는 모양이다.


제목인 <이세계 방랑 밥>이라는 게 이세계에서 방랑하면서 밥을 먹는다는 뜻. 스토리가 죄다 밥먹는 얘기. 본격 이세계 캠핑이라며.


우리 속담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고 일본에도 '꽃보다 경단(花より団子)'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세계이건 어디건 간에 여행의 진정한 정수는 먹거리 탐방이다. 그 지역의 다양한 맛집을 찾아다니며 다른 곳에서는 접할 수 없는 현지 음식을 맛보는 게 여행의 참된 목적이 아니겠는가. 뭐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인터넷 홈쇼핑과 현지에서 잡은 몬스터 고기를 식재료로 일본 음식을 만든다는 게 아이러니지만 말이다. 그때마다 주변에서 천상의 맛이자 식문화의 혁명이라며 극찬하고 그걸 무한 반복하는 식. 이 만화만이 아니라 요즘 일본 판타지들의 대세랄까. 작가나 읽는 독자나 안그래도 복잡한 세상 더 복잡한 건 고민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 어쨌든 아일랜드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음식에 대한 사랑보다 더 진실된 사랑은 없다"라고 했던가. 제대로 먹을 줄 아는 양반일세. 나는 먹는 것보다 보는 쪽이지만 그래도 지난 뒤에 남는 건 먹거리 추억이더라.

예전에 모 광고 멘트에서 집나가면 개고생이라고 했다지만 그래도 우리는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타지에서 힐링을 꿈꾼다.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곳에서 먹고 싶은 것 먹고 보고 싶은 것 보고 새로운 것을 접하면서 그 시간이나마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은 게 복잡하고 고민 많은 현대인들의 공통된 본능이랄까. 덕분에 유튜브에는 먹방 여행을 다룬 영상이 넘쳐난다. 막상 떠나면 그것도 쉽지는 않은 게 우리네 삶이지만 말이다.

작년 말 마티스블루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1938 타이완 여행기>는 1930년대 일제 강점기 타이완을 배경으로 아오야마 치즈코라는 소설 쓰는 한 젊은 일본인 여성이 그곳을 여행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나온 건 진작에 알았는데 요즘 감성에 안 맞는 고리타분한 기행기인줄 알고 읽을 일 없을 거라며 까먹고 있다가 뭐시기 부커상인지를 받았다는 기사를 보고 새삼스레 호기심이 동하여 동네 도서관에서 빌렸담서. 마찬가지로 19세기 말 영국 여류 작가로서 130년 전 조선의 모습을 기록한 것으로 유명한 이사벨라 비숍 여사의 <조선과 그 이웃나라>와 차이가 있다면 주인공이 실존인물이 아니라 픽션이라는 점, 그리고 이 책의 주된 내용은 여행과 먹거리가 아니라 사실은 같은 또래의 현지 여성과 벌이는 금단의 로맨스라는 사실.

저자 아주매. 실제로 본인이 레즈라는데 어째 처음에는 먹는 얘기하다가 뒤로 갈수록 뭔가 위험한 느낌의 백합물로 변신하더라는.


이 책의 주인공인 아오야마 치즈코는 25살의 잘나가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무려 본인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가 만들어졌을 정도. 그것도 여자들이 변변한 교육도 받기 어려웠던 1930년대에 말이다. 이쪽도 먼치킨급 능력자일세. 하지만 남 눈치 안보는 자유로운 영혼이면서 마이페이스의 소유자이기도. 여자의 첫번째 덕목은 남편의 내조라는 그 시절 캐캐묵은 규범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기 몇 년 전인 1938년 어느날 타이완으로 향한다. 명목은 타이완 총독부에서 강연 초청을 받았다는 것이지만 자신을 한물간 노처녀 취급하면서 제발 시집 좀 가라는 가족들의 끝없는 잔소리를 피하여 본가에서 달아나기 위한 도피여행이었다. 게다가 사례비에 교통비와 식비, 숙박비까지 전액 부담해 준다고 하니 안갈 이유가 없담서.

스와 신사의 신이 카스텔라 케이크와 시베리아 케이크에게 매수된 걸까. 아니면 보타모치나 백앙금 모찌에 매수된 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편지가 나를 위기에서 구해주었다. 그건 바로 타이완 총독부 타이중 주청에서 보낸 편지였다. - p.28


그렇게 집에서 도망치듯 홀가분하게 도착한 이국의 세계 타이완에서 그녀는 두 사람을 만나게 된다. 한 사람은 미시마라는 현지 관원, 또 한 사람은 왕첸허라는 하카족(객가인) 출신의 타이완인 여성이다. 게다가 세 사람 모두 한창 때의 동년배라는 점. 여느 소설이라면 낯선 공간에서 만난 여주과 남주가 썸을 타고 그 사이에 또 다른 여성이 끼어들여 삼각관계가 벌어지는게 국룰일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정반대이다. 미시마는 총각인지 유부남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시절 일본 공무원답게 융통성 없고 꼬장꼬장한 성격의 소유자로 주인공과는 처음부터 끝까지 상극인 반면, 통역 가이드를 맡은 왕첸허는 눈치 빠르면서 재색 겸비의 양갓집 규수로서 허당끼 가득한 주인공을 요령껏 보살피며 마음을 사로잡는다. 재주많은 왕첸허에게 흠뻑 빠져든 주인공은 그녀를 '샤오첸'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면서 함께 산천을 유람하고 미식을 즐기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중반부까지는 <요리왕 비룡>에 나올 것같은 음식 묘사가 주된 얘기라면 어느 순간 수상한 분위기로 돌변한다. 솔직한 성격의 주인공은 번역가라는 꿈과 시대가 강요하는 여자로서의 굴레 사이에서 고뇌하는 샤오첸에게 감정 이입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남이 정한 인생을 억지로 살기보다 내가 책임져 줄 테니 차라리 가출하여 함께 일본으로 가자고 권유한다. 마치 백마 탄 왕자님의 프로포즈나 다름없는 황당한 제안에 왕첸허는 당황하고 곤란해 한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상대가 뭐라하건 쉽사리 물러서지 않는다. 소설은 그때부터 백합물을 연상케 하는 두 사람의 복잡한 밀당이 된다. 작가는 여성 특유의 필력으로 그 과정을 서정적이면서 섬세하게 묘사한다. 이 책을 한 세기 전 여자 둘의 맛집 탐방기로 여겼던 독자로서는 "이게 도대체 뭔 뜬금포같은 전개임?"라면서도 몰입하여 이 위험한 관계의 결말을 궁금해하면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계속 읽게 된다랄까.

찐 탕은 종류가 여럿이다. 돼지 뼈나 돼지고기를 고아서 끓인 것도 있고 생선이나 새우 같은 해산물을 넣어서 끊인 것 도 있다. 지난번에 갔던 노점에서는 잘게 다진 돼지고기를 조려 만든 러우싸오 한 숟가락을 듬뿍 펴서 탕 속에 넣었다. 붉은 양파로 만든 튀김을 고명으로 얹는 곳도 있었다. 부추는 빼고 간장에 졸인 달걀이나 완자를 고명으로 얹는 곳도 있었다. 타이난과 가오슝 일대에서는 어육이나 굴을 넣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지역마다 조리법이 다른 셈이었다. - p.80


첫번째 고기 완자는 감자 전분과 고부마 전분 반죽 속에 돼지고기 소가 들어 있는데 익으면 겉면이 조금 투명해졌다. 두번째 고기 완자는 돼지고기와 전분을 섞은 반죽을 얇게 두드려서 피를 만들고 그 피로 소를 감싼거였다. 세번째 고기 완자는 양념에 재운 돼지고기를 손으로 빚은 것이고 네번째 고기 완자는 아삭한 과실 조각과 돼지고기를 함께 빚은 거였다. 어린아이 주먹만한 토란 완자는 굵은 실처럼 썬 토란을 전분 반죽과 잘 섞어서 그 안에 재운 돼지고기 덩어리를 넣고 찐 거였다. - p.116


얇게 썰어서 식초 물에 다가놓았던 우엉을 넓은 도자기 냄비 바닥에 조심스럽게 깔고 그 뒤에 배를 갈라 손질한 미꾸라지를 놓으면 요리 시작이다. 미리 끓여둔 가쓰오부시 육수를 냄비에 부은 뒤 간장, 미림, 청주와 설탕을 조미료로 넣었다. 설탕은 조금 많이, 아지노모토는 됐고 소금도 넣지 말자. 곧이어 불을 켜고 끓였다. 국물이 부글부글 끓을 때 미꾸라지가 부서지는 걸 막으려면 뚜껑을 덮어야 한다. 그러나 본섬에서는 뚜껑을 잘 쓰지 않았기에 임시방편으로 다시마를 썼다. 넓은 훗카이도 라우스 다시마를 두세 조각으로 잘라서 국물 위에 얹었는데 다시마 맛이 마꾸라지와 국물에도 스며드니 사치스럽다고 할 수는 있어도 낭비라도 할 수는 없었다. - p.226


워낙 리얼한 묘사 덕에 읽는 것만으로도 어떤 음식인지 이미지가 연상될 정도. 이랬던 것이.


샤오첸의 빰에 보조개가 떠올랐다. 샤오첸은 "정말 아오야마 씨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라면서 미소와 함께 탄식했다. "그러면 아오야마 씨의 선물을 받게 해주세요." 보조개는 더 깊어졌고 목소리는 더 달콤해졌다. 아주 작은 변화였지만 확실히 변한 게 있었다. 나는 눈을 몇번이나 깜빡이고 나서야 확실히 알아차렸다. 샤오첸이 그 아름다운 노멘(能面)을 다시 썼다. - p.256


원래도 아름다운 웃음이었는데 지금의 웃음에는 누군가를 꾀어서 꿀단지 안으로 빠뜨리는 매혹적인 느낌이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샤오첸의 입술이 아름다운 장밋빛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잠깐만요. 샤오첸이 절 이렇게 본다면 중요한 일을 논의할 방법이 없다고요!" "음 어째서죠? 이렇게 본다는 게 대체 어떻게 보는건가요?" 샤오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달콤했다. 나는 더 깊은 곳으로 빠질 것만 같았다. - p.265


샤오첸이 함께였다면 우리는 타오위안과 신주에서 하카인의 요리를 한두 가지 먹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귀가했을 것이다. 어쩌면 달캴을 넣은 행인차를 야식으로 먹었을 수도 있고 그리고 이런 아침에는 샤오첸이 미닫이문을 열어 머리가 맑아지도록 시원한 공기를 들이겠지. 보조개가 생길 정도로 환히 웃으면서 내 서제로 들어올 테고. - p.343


뒤로 갈수록 이런 분위기. 저자는 샤오첸에 대한 주인공의 감정을 그야말로 에로틱하게 묘사한다. 사실 이렇게 보면 젊은 남녀 연인이 꽁냥거리는 평범한 로맨스 소설이다. 주인공이 같은 여자라는 점만 빼면 말이다. 샤오첸은 그런 주인공의 접근을 부담스러워 하면서 공적인 사이로 남기를 원하지만 주인공은 오지랍을 넘어서 그녀를 향한 집착까지 드러낸다. 두 사람의 위험하고도 아슬아슬한 관계는 결국 파국에 직면한다.

대충 이런 끈적한 느낌이랄지. 제아무리 저자가 그쪽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낯뜨거운 표현은 우리 감성으로는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훼이크였다는. 주인공의 얀데레적인 모습은 19금 소설에나 나올 만한 금단의 사랑이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샤오첸에 대한 인간적인 동정심과 안타까움에서 나온 선의였다. 샤오첸이 그녀를 거부한 것 또한 동성간의 위험한 선을 넘지 않을까 두려워서가 아니라 서로 극복할 수 없는 두꺼운 벽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 벽은 바로 지배 민족과 피지배 민족이라는 식민지 시대가 만들어낸 신분적 차이였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세상 물정 모르는 주인공에게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게 해 준 사람이 소설 내내 존재감 제로였던 미시마였다. 일본인이면서 타이완 출신이기도 했던 그는 주인공이 자신은 일본의 팽창 정책을 결코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이번 타이완 여행을 통해서 식민 정책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닌 것같다며 '식민지 근대화론' 비슷한 것을 거론하자 정색하면서 호되게 질책한다. 그것은 가식이자 위선이며 눈에 들어오는 것만 보는 것일 뿐이라고. 그리고 저자가 독자들에게 던지고 싶은 진짜 메시지일 것이다. 백합 따위가 아니라.

"본섬의 어획량은 확실히 제국이 도입한 기술 덕분에 증가했습니다. 그렇기에 본섬 사람들의 먹는 풍경도 함께 변했죠. 그런데 이게 본섬 사람이 기뻐할 일일까요. 혹은 이런 예를 들어볼 수도 있겠죠. 펑위안의 마조묘가 보존될 수 있었던 건 제국의 관용 덕분이 아닙니다. 메이지 시대에 제국 군대가 파괴했기 때문이죠. 펑위안 지역의 본섬 사람들은 애를 쓰며 노력하여 마조묘가 다이쇼 시대에 다시 지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퍼우이안 신사가 몇 년 전에 세워졌다. 마조묘에도 돌로 만든 석등과 도리이를 세웠고요. 이게 본 섬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까요. 제국이 본섬에 아름다운 걸 더해줬다고요? 아오야마 선생님의 말씀은 본섬과 본섬 사람을 우룽하는 것과 진배없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멋진 것들은 그저 내지인에게나 그러할 뿐이지요. 심지어는 아오야마 선생님에게만 멋진 일일 뿐입니다." - p.391


얼마 전 타이완을 여행하면서 깨달은 사실이 있다. 우리 과거사가 독재 정권 시절 맹목에 가까운 반일주의에서 어느 순간 이념과 진영 싸움의 수단으로 전락하여 왜곡되고 있다면 타이완은 아예 그런 기억 자체를 지워버린 것은 아니냐고. 타이완 곳곳에는 당시 일본인들이 세운 신사와 일본식 가옥들이 보존되어 있으며 심지어 타이완 총독부 건물을 자기네 총통부로 쓰다. 마치 스스로를 일본의 사생아쯤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 그럼으로서 사사건건 성가시게 구는 대륙과의 질긴 악연을 끊고 싶은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러한 타이완인들의 역사 인식 부재를 지적한다. 문제는 두 처자의 백합 분위기가 하도 강렬한지라 묻혀버렸다랄지. 그게 저자의 노림수일지도. 안그럼 이 소설 봤겠음?

저자의 메세지가 아무리 무겁건간에 이 소설은 전형적인 여성향이다. 따라서 이런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재미없음을 넘어서 불쾌감을 드러낼 만큼 호불호가 갈릴만한 내용이다. 특히 타이완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동성애를 금기로 여기는 국내에서는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잘 썼다고 생각하지만 타이완의 복잡한 역사나 저자가 이 글을 쓴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그저 뭐시기 상 받았으니 한번 읽어볼까하는 식으로 안이하게 접근할만한 책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보다 나로서는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1938년은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이다. 당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던 대륙은 물론이고, 타이완 또한 때때로 러시아인들의 지원을 받는 중국 폭격기들이 넘어오는 등 전쟁의 여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38년 2월 23일 중소 연합공군의 쑹산 비행장 폭격이었다. 소련제 SB-2 쌍발 폭격기 28대라는 대편대가 타이베이 쑹산 비행장을 폭격하여 수십대의 일본 군용기를 파괴했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이런 전시 분위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정말 평화롭고 목가적이랄까. 울 마눌님 말마따나 전쟁사는 여자가 가까이 할 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인지도.

미국과 일본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누린 반면 대륙에서는 금서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백합 때문이 아니라 저자가 타이완 독립파라는 이유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어둠의 루트로 볼 놈들은 다 보면서 욕하고 있다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 트럼프와 1조 달러 전쟁 기계의 야망
윌리엄 D. 하텅.벤 프리먼 지음, 백우진 옮김 / 부키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군산복합체가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잘못된 권력이 재앙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결합체의 압력이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 절차를 위험에 처하게 놔둬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오직 의식이 깨어있고 지식이 풍부한 시민만이 거대 군산복합체를 평화로운 방법과 목표에 적절히 조화시켜 안보와 자유가 함께 번영하도록 이끌고 나갈 것입니다." - 1961년 1월 17일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퇴임 연설에서


2025년에 개봉한 마르탱 부르불롱 감독의 프랑스 영화 <13일 낮, 13일 밤(13 Days, 13 Nights)>은 프랑스인의 눈으로 본 카불 최후의 날이다. 2021년 8월 15일 아프간 수도 카불에 느닷없이 탈레반 군대가 들이닥친다. 그것은 50여년 전 사이공 함락의 데자뷰였다. 차이가 있다면 탈레반은 북베트남군대보다도 더 열악했고 아직 미군이 카불에서 철수하기도 전이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이자 기업가 출신으로 미국인들과의 친분을 등에 업고 권좌에 올랐던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이 자기 가족과 재산만 챙겨서 제일 먼저 달아난 것이나 우두머리를 잃은 군대가 싸우지도 않고 무너진 것은 그때와 똑같았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제아무리 오합지졸이라고 해도 30만 명의 병력과 현대적인 중화기로 무장한 아프간 군대가 7만명에 불과한 게릴라들에게 패배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카불의 함락은 기습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아프간 정부나 서방인들 밑에서 일하던 '부역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뒤늦게야 탈레반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해 탈출하려는 엑소더스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운좋게 탈출한 일부는 운명을 탈레반에게 맡겨야 하는 나머지 수많은 사람들을 뒤로 한 채 떠나는게 이 영화의 비극적인 결말이다.


마치 <세계대전Z>에서 주인공에게 달려드는 좀비떼를 연상시키는 탈출 러시. 현실에서 맞딱들이면 평생 잊지 못할 PTSD가 될 듯.


당시 대부분의 미군이 철수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수천여명의 병력이 남아 있었다는 점에서 마음만 먹으면 아프간군과 함께 탈레반을 카불에서 쫓아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마치 달아나듯 오히려 철수를 서둘렀고 아프간인들 전체가 버려졌다. 그렇게 끝날 바에는 차라리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 쪽이 서로를 위해 좋았을 터인 미국의 민주주의 실험이 또 한번 상처만 남긴 채 20년 만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미국이 남베트남에서 철수할 때 국무장관이었던 키신저가 "북베트남이 쳐들어온다면 다시 돌아오겠다"라고 지키지도 않을 립서비스로 남베트남인들을 희망고문했다면 바이든은 훨씬 신랄했다. 미국이 20년 동안 1조 달러가 넘는 거액을 써서 아프간인들을 훈련하고 무장했는데 탈레반과의 싸움에 쓸모가 없었으며 스스로 싸우려고 하지 않는 자들을 위해 미군이 대신 목숨을 바칠 이유는 없다는 것이었다. 아프간인들 입장에서는 뻔뻔하고 가당찮은 소리였을 것이다. 애초에 미국이 아프간인들에게 자립할 기회를 주었던가. 한 나라를 책임질 능력도, 의지도 없는 책상물림 학자를 다루기 좋다는 이유로 권좌에 올린 것도 미국이고 겉만 번드르하고 껍데기 뿐인 군대를 만든 것도 미국이었다. 바이든이 거론하는 1조 달러 중에서 일부라도 제대로 쓰였다면 아프간군이 그토록 부패하고 타락한 군대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며 탈레반이 다시 득세하는 일 또한 없었을 것이다. 미국 납세자들은 아프간 전쟁을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바쳤지만 대부분은 아프간인들이 아니라 엉뚱한 곳에 낭비되거나 워싱턴의 정치인, 관료들과 결탁한 미국 군납업자들의 배를 불리는 데 쓰였다. 미국은 아프간 전쟁에서 졌을지 몰라도 적어도 이들에게는 손해 본 장사가 아닌 셈이다. 그런 점에서 바이든의 변명은 자기 기만이자 그동안 자신들이 충분히 재미를 보았고 더 있어봐야 재미가 없으니 내팽개쳤다는 것이 진짜 속내일 것이다. 아프간만이 아니라 남베트남에서, 이라크에서 되풀이된 미국의 한결같은 방식이다.

중요한 사실은 미국이 아프간에서 떠났다고 해서, 백악관의 주인이 민주당의 바이든이 아니라 공화당의 트럼프나 설령 또 다른 사람이 차지한다고 해서 미국의 전쟁기계가 멈추는 일은 없을 거라는 점이다. '위대한 미국의 부흥'을 내세워 당선된 트럼프는 그 방법이 대다수 소시민들을 위해 풍요롭고 안전하게 사는 나라가 아니라 소위 황금 함대나 골든 돔처럼 크고 알흠답지만 돈만 먹고 실속 없는 무기를 만들겠다는 식이다. 그는 전쟁을 일으켜 미국을 수렁에 빠뜨린 전임자들을 비난하면서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단단히 약속했음에도 막상 권력을 잡자 누구보다도 전쟁에 진심이다. 교육과 복지 예산을 대폭 삭감하여 국방 예산에 죄다 때려넣었지만 막상 그 수혜는 전장에서 목숨을 거는 병사들이 아니라 워싱턴의 높으신 분들과 무기를 만드는 방산업체들의 몫이다. 이쯤되면 국가적 차원의 사기라고 해야.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탐욕스러운 정치인과 관료, 업자들이 합작하여 만든 미국의 전쟁기계가 무한 자가 증식하면서 미국만 먹어 치우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같은 만만한 동맹국들까지 먹잇감 삼아 마수를 뻗히고 있다. 과연 그 마지막은 어디일까 싶다.

부키에서 나온 신작 도서 <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않는가 - 트럼프와 1조 달러 전쟁 기계의 야망>은 냉전 종식 이후 싸울 상대를 잃은 미국이 군축 대신 군산복합체라는 괴물이 되어 마치 불교에서 영원히 먹을 것을 찾아 헤메는 아귀마냥 자신의 탐욕을 이기지 못하고 끝없이 전쟁을 갈구하게 되었는지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미국의 군사 외교 싱크 탱크인 퀸시책임국정연구소(Quincy Institute for Responsible Statecraft)의 선임 연구원인 윌리엄 D. 하텅과 벤 프리먼.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 단체는 2019년에 처음 창설되었고 911테러와 이라크 전쟁 등 무력 일변도 정책에 반대하고 군비 감축과 외교적 해결주의를 내세우고 있다고 한다.

덧붙여 퀸시라는 이름은 19세기 초반 미국 제6대 대통령이자 전임자인 먼로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을 지냈던 존 퀸시 애덤스(John Quincy Adams)가 "미국은 파괴할 괴물을 찾아 해외로 나가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에서 따온 것. 하지만 그가 제창한 소위 먼로주의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비폭력주의가 아니라 대서양 서쪽은 내 나와바리니까 유럽이 침 바를 생각하지 말라는 상호 불간섭주의와 아메리카에서의 패권주의에 목적이 있었다는 점에서 미국 특유의 두 얼굴을 보여준다랄지. 이스라엘의 호전적인 행태를 비판하여 유대인 단체들의 눈엣가시이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많은 좌파 지식인들이 그러했듯 나쁜 쪽은 전쟁을 일으킨 푸틴이 아니라 그를 전쟁의 길로 이끌게 만든 미국과 나토, 우크라이나 탓으로 돌리면서 욕을 거하게 먹기도.

저자인 윌리엄 D. 하텅(왼쪽)과 벤 프리먼(오른쪽). 아재 둘이서 공저했지만 여느 칼럼 모음집처럼 각자의 파트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어캐 협업을 했는지 궁금하다는. 스펙 좋은 양반들이 뭔가 함께 도모하기란 부자가 바늘 구멍 들어가는 것만큼 힘들다던가.


오늘날 전쟁 국가 미국을 상징하는 '군산 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라는 말은 미-소 군비 경쟁이 본격화되던 1961년 아이젠하워가 대통령 퇴임식에서 처음 거론하면서 유명해졌다. 사실 미국이 전쟁 국가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20세기 초반에만 해도 미국의 국방비는 GDP의 1% 남짓에 불과했고 10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상비군이 유럽 대륙 전체보다 넓은 땅을 방어했다. 물론 240년 역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기간은 15년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을 만큼 빈말로도 미국을 가리켜 평화 애호적이라고는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전쟁으로 먹고 사는 나라는 아니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뒷북 참전했을 때에는 사람은 넘쳐나지만 무기가 없어서 프랑스군에게서 빌려썼을 정도였다. 패전 일본이 미국의 안보에 무임 승차하고 경제에 올인한 덕분에 미국의 아성조차 위협할 만큼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것처럼 미국 또한 신생국가에서 두 세기만에 세계 최강대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군비를 억제했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모든 혁신은 전쟁에서 나온다고 카더라"라는 말이 있지만 실제로는 과도한 군비가 국가의 잠재성장을 얼마나 갉아먹으며 차라리 그 돈을 다른 쪽에 썼더라면 우리네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풍요로웠을 것임이 분명하다.

굵직굵직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치솟는 미국의 국방비. 물론 물가상승도 고려해야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한국전쟁 이전에는 전쟁 때만 잠시 국방비가 폭등했다가 전쟁 끝나고 원래상태로 돌아갔다면 이제는 다음 전쟁을 대비한다며 끝없이 쏟아붓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분쟁에 미국의 전쟁 기계가 얼마나 깊숙이 개입하고 있으며 거대 방산기업들이 빨대를 꽂고 꿀을 빨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미국은 자칭 '민주주의 병기창'이라며 민주주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제공한다고 강조하지만 뻔뻔한 위선이다. 실제로는 돈벌이만 되면 상대가 어떤 독재자이건 알빠노라면서 팔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여태껏 보여준 모습이다. 여기에는 공화당, 민주당 어느 쪽도 자유롭지 못하며 심지어 노벨 평화상을 받은 오바마조차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

미국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전 세계 무기 시장의 43% 이상을 장악했는데 러시아의 3배, 중국의 6배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미국은 전 세계 107개국에 무기를 공급하고 있으며 지구상 국가의 절반이 넘는 숫자이다. 왜 미국은 그렇게 많은 무기를 판매할까. 국방부나 국무부 관리에게 묻는다면 아마 미국산 무기가 안정을 강화하고 동맹국이 스스로를 방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미국 무기는 불안정을 줄이기보다 오히려 증폭한 경우가 많았다. 미국산 무기는 세계 대부분의 분쟁에 불을 지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병기창'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비민주 정권에 수시로 공급된다. - p.41


평화를 말하면서 동시에 전쟁을 부추긴 민주당 대통령은 바이든만이 아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버락 오바마도 자신의 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과 같은 행태를 보였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0년 1030억 달러 규모의 무기 판매를 제안했는데 2024년 바이든 행정부의 무기 판매 제안 규모와 맞먹는 규모이다. 그 제안의 절반은 사우디아라비아로 향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거래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주장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2014년부터 그 무기 상당수를 예멘에서 벌어진 잔혹한 전쟁에 사용했다. 무차별 공습과 식량 의료품 봉쇄로 민간인 약 4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 p.45

1930년대까지도 결코 군비 과다 지출과는 거리가 멀었던 미국의 군수산업은 진주만 기습과 제2차 세계대전에 발을 들이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마음먹고 포텐셜을 터뜨린 미국은 자신은 물론 영국, 소련 등 다른 동맹국들에게도 랜드리스라는 이름으로 막대한 물자를 아낌없이 제공하는 여유까지 보여주며 다른 경쟁국가들의 기를 꺾어 놓았다. 문제는 더 이상 예전의 아싸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포텐셜을 너무 크게 터뜨렸다는 사실이었다. 전 세계가 미국의 힘을 경외했다. 역사상 어떤 대제국도 꿈꾸지 못한 천조국의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 한번 고삐가 풀린 군산복합체들은 여전히 미국은 안전하지 못하다며 새로운 적을 끝없이 만들어 내었고 대중의 공포를 자극하여 더 많은 무기 생산에 자원을 쏟아붓게 했다. 처음에는 소련과의 체제 경쟁이었다. 그 경쟁을 버텨내지 못한 소련이 제풀에 망하자 다음은 테러와의 전쟁이었다. 아이젠하워는 군산복합체가 언젠가 미국을 잡아먹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후임자들이 한 귀로 흘린 결과였다. 그보다도 그가 경고했을 때에는 이미 늦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에 와서는 미국 정치인들은 무한 증식하는 군산 복합체에 재갈을 물리려고 애쓰기는 커녕 도리어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데 앞장서는 판국이었다. 이 책은 400여 페이지에 걸쳐서 군산 복합체들이 어떻게 미국의 힘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는지를 신랄하게 고발한다.

미국의 무기가 미국인 자신을 위협한 경우는 너무나 많았다. 그러나 전쟁 기계의 위험은 미국 내에만 머물지 않았다. 미국이 무기 개발에 점점 더 많은 시간과 정신, 돈을 쏟아붓는 동안 세계는 점점 더 불안정해졌다. 가장 위험한 사태 중 일부는 미국의 정책이 촉발한 결과였다. 예컨대 1953년 미국은 영국, 당시 이란의 샤였던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와 협력하여 이란에서 군사 쿠테타를 일으키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총리 모하마드 모사다케를 축출했다. 이 쿠테타는 이후 수십년 간 적대감을 불러일으켰고 오늘날까지 중동을 더욱 위태롭고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이 쿠데타가 없었다면 이란인들은 1979년 혁명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고 이란은 지금처럼 군사화된 국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 p.62


오늘날 F-35는 요구된 임무 중 어느 것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지상군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에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많은 폭탄을 탑재하기에는 기체가 너무 가볍다. 공중전에서는 이전 세대 전투기들보다 열세이다. 게다가 유지 보수가 너무 어려워 거의 절반의 시간을 격납고에서 정비받으며 보낸다. 프로그램이 시작된지 20년이 지난 2022년에도 여전히 800건이 넘는 결함이 해결되지 않았고 이 중 6건 가량은 조종사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 P.111


2023년 12월 기준으로 미국 해군과 공군, 해병대는 약 400여대의 오스프리를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항공기는 적에게만큼이나 어쩌면 적보다 더 승무원에게 위험하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오스프리는 지금까지 10건의 치명적 추락 사고에서 무려 64명의 사망자를 냈다. 가장 최근 사고는 2023년 11월 29일 일본 해안에게 발생했으며 추락으로 탑승자 8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이러한 결함에도 국방부가 여전히 오스프리를 다시 운용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p.130


상상 가능한 거의 모든 지표에서 연안전투함은 철저한 실패작이었다. 후티 반군이 홍해에서 선박을 공격하기 시작한 때보다 10여년 전부터 연안전투함의 치명적인 결함은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이 함정은 당초 계획보다 비용이 2배나 들었고 균열과 부식 문제에 시달렸다. 심지어 미국 국방부 산하 시험평가국조차 "연안전투함은 적대적 전투 환경에서 생존할 것으로 예상되지 않는다."라고 공식 발표했다. 이는 곧 이름에 전투라는 단어가 들어간 함정이 실제 전투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 p.187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이라는 허위 주장을 미국과 다른 나라들에게 무기를 떠넘기는데 수업이 이용해왔듯 국방부 계약업체들은 동시에 또 다른 강력한 영향력 무기를 동원한다. 바로 선거 자금이다. 그들은 의회와 대통령이 자기네 뜻대로 움직이도록 달래기 위해 선거 자금을 댄다. 로비 관련 비영리 단체 오픈시크릿에 따르면 방위산업 부문은 2024년 선거운동에 최소 3천만 달러를 기부했다. 선거 자금은 방산업체들에 유리한 쪽으로 저울을 기울일 수 있는 정책결정자들, 즉 대통령 후보와 군사위원회 또는 국방 세출소위원회에 몸담은 의원들에게 집중적으로 흘러갔다. 한마디로 국방부 예산의 규모와 구성을 좌우하는데 가장 큰 발언권을 가진 이들에게 돈이 간 것이었다. - p.202


1980년은 학문적이며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기존 싱크 탱크의 모델이 뒤집힌 해라고 할 수 있다. 그해 보수 성향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이 정치적 옹호 활동으로 결정적 전환을 선도했다. 이 재단은 진보 성향의 브루킹스연구소에 대응하는 보수 진영의 싱크탱크로 여겨졌다. 헤리티지재단은 그해 <리더십을 위한 명령>이라는 10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책자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가 레이건 행정부에 끼친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리더십을 위한 명령>이 발간된 후 45년이 지난 오늘날 싱크탱크 부문은 점점 더 당파적이고 정치 활동에 적극적이며 특정 이해관계 집단의 자금에 의존하는 성격을 띄게 되었다. - p.225


왜 부시 행정부의 거짓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정보가 일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신중한 목소리가 힘을 얻지 못했을까. 이에 대해 랜데이는 그 이유가 단순히 뉴스룸과 언론 경영진의 태도에 그치지 않고 9.11테러 이후의 광범위한 대중 정서에까지 뻗어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기를 흔들어대며 즉각 분출된 국수주의는 실로 엄청났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많은 언론사가 "분위기를 거스르거나 행정부에 맞서는 보도를 함으로써 매출을 잃는 상황을 원하지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 p.289


2019년 할리우드 상공에서 선더버즈가 멋진 편대 비행을 펼쳤다. 이는 새 영화 <캡틴 마블> 개봉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다. 선더버즈가 상공을 날아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조종사들이 제복을 입은 채 영화 시사회 레드 카펫을 밟았다. 그들이 거기에 있었던 이유는 <캡틴 마블>이 아마 공군 역사상 가장 효과적인 광고였기 때문이다. 공군이 <캡틴 마블>에 개입한 수준과 그로부터 얻은 효과는 놀라울 수 있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전투기를 직접 타고 군의 사실상 홍보 대사 역할을 맡는 일이 매일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캡틴 마블>과 미군의 유착은 오늘날 대형 할리우드 영화 제작에서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군과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본 적이 있다면 사실상 국방부의 지원 덕분에 제작된 영화를 본 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p.310


팔머 러키, 피터 틸, 일론 머스크와 이들의 동료들은 반정부 정서가 강하고 현실 인식이 왜곡되어 있다. 그렇기에 세계 정세가 불확실하고 위험한 이 순간에 미국의 군사 정책을 설계하기에 가장 부적합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곧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이미 그러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앞으로 몇년 동안 더 큰 영향력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주요 무기 제조업제들이 선호하는 접근법과 달리 실리콘 밸리의 많은 군사 신기술 옹호자들은 당파성이 철저하고 도널드 트럼프나 J.D.밴스같은 주요 공화당 후보들에게 돈과 영향력을 쏟아붓는다. 틸과 머스크는 모두 강한 반민주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틸이 상상하는 이상적인 세계에서 민주주의는 발전시키고 완성해야 할 정부 형태가 아니라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다. - P.357


저자가 지적하는 것은 단순히 미국이 전쟁을 수출하고 친미 독재자들의 뒷배 노릇을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세계 최강대국이자 민주주의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미국의 자정 능력이 붕괴되었다는 점이다. 냉전 종식 후 병력은 줄었지만 국방비는 되려 치솟고 있고 그 돈은 군인들의 복지가 아니라 방산업체들이 만든 최첨단의 탈을 쓴 쓰레기 무기들을 구매하는데 쓰이고 있다. 게다가 아무도 여기에 브레이크를 걸지 않는다. 일부 언론에서 폭로하고 내부 고발로 이슈가 되어도 마지막에 꼬리를 내리는 쪽은 방산업체가 아니라 미국 정부이다. 거대 권력인 미국 정부가 방산업체들을 이기지 못해서가 아니라 예산을 심의하는 의원들이 이들의 집요한 로비에 굴복하기 때문이라고. 한마디로 돈 앞에 장사 없다는 것.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실무를 맡은 보좌관, 장군들, 국방부 공무원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눈감아 주는 대가로 퇴임 후 두둑한 봉급을 받을 수 있는 자리를 약속받는다. 우리만 해도 공직자들의 전관예우와 부패방지를 위해 공직자 윤리법이나 취업 제한과 같은 엄격한 윤리 잣대를 들이대고 있고 미국 또한 유사한 규정이 있음에도 현실에서는 눈치껏 빠져나갈 구멍이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이다. 언론과 할리우드 역시 방산업체의 강력한 우군이다. 가령 영화 <탑건>은 결코 현실의 공중전과는 거리가 먼 오락물이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F-14의 멋진 자태와 훈남 조종사들의 우정은 관객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 공군의 높으신 분들에게도 판타지를 심어주었다. 일본 항공자위대에서 이 영화보고 F-14를 사려다가 울며겨자먹기로 F-15를 샀다는 얘기도.


우리 공군의 F-35 라이트닝-II 전투기. 1990년대만 해도 골동품인 F-4/5가 주력이고 F-16이 최강 전력이었던 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지만 가격만 비싸고 온갖 고장으로 제 역할을 못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실속없다는 얘기. 어차피 우리같은 밀덕이야 얼마나 돈값하느냐보다 스텔스 전투기라는 타이틀과 스마트한 외형, 할리우드 영화에서 외계 괴수들과 맞짱 드는 이미지가 더 중요한지라.


그동안 미국이 세계 경찰을 하면서 분쟁을 억제해 온 것도 사실이다. 특히 우리나 일본, 유럽은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 우산의 득을 톡톡히 보았고 당장 트럼프가 몽니를 부리며 여차하면 나토와 결별할 수도 있다고 으름짱을 놓자 유럽 전체가 난리가 났으니 말이다. 책의 추천사에도 저자들이 미군의 축소로 인한 힘의 공백과 동맹 불안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결코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은 트럼프가 값비싸고 문제많은 무기들을 동맹국들에게도 더 이상의 공짜 점심은 없다면서 강매하고 있다는 점이다. 덩치가 커질대로 커진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미국만이 아니라 우리까지 잡아먹으려고 한다는 얘기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군산복합체의 CEO들이 탐욕에만 눈이 먼 것이 아니라 도덕 윤리까지 결여된 인간들이 많다는 점이다. 저자는 기술만능주의에 사로잡힌 자들이 아무런 통제 장치 없이 효율만 앞세워 AI를 이용한 살인 병기를 만들 수 있음을 경고한다. 영화 <터미네이터>가 우리의 현실이 되지 말라고 누가 장담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도 든다. 과연 여기 나온 내용이 미국에만 해당되는 얘기이던가. 엊그제 선관위가 무소불위의 지위만 믿고 안이하게 일을 하다가 전대미문의 사고를 치는 바람에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히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어떤 비판과 간섭도 용납하지 않는 집단은 얼마든지 있다. 그 중 하나가 방산 카르텔일 것이다. 수십년 군부 독재의 배설물인 장군들의 전관예우, 군과 방산업체의 결탁, 군납비리, 도덕적 해이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며 민주화된 지금까지도 그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안보를 방패삼아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면서 비판의 목소리라도 들리면 사방에서 벌떼처럼 달려든다. 우리같은 일반 국민들이야 세계 5위의 군사력이라는 허울 좋은 말 이외에 우리가 낸 세금이 얼마나 제대로 쓰이는지 알 도리가 없다. 언론에서는 소위 전문가라는 양반들이 북한 위협론을 과장하고 대중의 공포심을 자극하여 아직도 부족하다며 더 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떤다. 이들의 행태가 이 책의 저자들이 지적하는 미국 군산복합체보다 결코 덜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안보는 중요하지만 그 핑계로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엉뚱한 자들이 배를 불리는 꼴을 내버려두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이제는 깨달아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