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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른베르크, 나치와 정신과 의사 - 악마와의 두뇌 게임, 괴링에 빠져들다
잭 엘하이 지음, 채재용 옮김 / 히포크라테스 / 2026년 3월
평점 :
"그들은 세계 어느 나라에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성격은 결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들은 특이한 욕구를 가진 사람들, 권력을 쥐고 싶어 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이들이 여기에는 없다고 말할 지 모르지만 저는 미국에도 그런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고 말하겠습니다. 그들은 나머지 절반을 지배할 수만 있다면 미국인 절반의 시체를 밟고서라도 기꺼이 그 자리에 오르려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오늘도 민주주의의 권리를 반민주적으로 이용하며 떠들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 본문 중.
독일 역사학자 요아힘 페스트(Joachim Fest)가 쓴 동명의 논픽션을 원작으로 하는 2003년 영화 <몰락(Der Untergang)>은 독일 제3제국의 최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1945년 4월 소련군에 의해 베를린 함락을 앞두고 총통 벙커에서 벌어지는 14일의 모습은 좌절과 광기, 발악이었다. 지상에서는 병사들이 죽기로 싸우는 동안 벙커에서는 장교들과 여자들이 광란의 파티를 벌이다가 포탄이 떨어져서 참벌을 당하고, 위대한 아리아 민족의 부흥을 내걸어 전쟁을 일으켰던 힛총통은 독일 국민들이 열등하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으니 더 이상 살아남을 가치조차 없다면서 국가적 자폭을 명령한다. 게다가 마지막 희망이었던 펠릭스 슈타이너(Felix Steiner) 장군의 부대가 공격에 실패했다는 보고를 받는 순간 간신히 지탱하던 이성의 마지막 끈이 끊어진다. 그리고 장군들을 향해 저주를 퍼부으면서 진정한 멘탈 붕괴란게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그 와중에도 괴링, 히믈러 등 일부 나치 지도자들은 서로 자기가 히틀러의 후계자라며 추악한 권력 투쟁에 여념이 없다.

최후의 반격이 실패했다는 보고를 받고 멘탈이 완전히 나간 히틀러. 배우의 신들린 연기 덕분에 수많은 인터넷 밈의 원천이 되기도.
영화에서 가장 충공깽을 보여주는 인물이 히틀러의 심복 중 한 사람이자 나치의 선전가로 악명을 떨쳤던 파울 요제프 괴벨스 부부이다. 1941년 12월 모스크바 방위전 때 모스크바를 지킨 사람이 소련 최고의 명장인 주코프였다면 전쟁 말기에 히틀러가 베를린 방위를 맡긴 사람은 군사 전문가는 커녕 신체 장애를 이유로 군대 문턱도 가 본 적이 없었던 괴벨스였다. 이것이 스탈린과 히틀러의 차이랄까. 중앙청사지구 지휘관 헬무트 몽케(Wilhelm Mohnke) 장군이 괴벨스의 국민 돌격대가 빈약한 무기로 사실상 집단자살을 강요당하고 있다면서 항의하자 그는 이렇게 조롱한다. "나는 그들을 동정하지 않소. 동정할 이유가 없지! 위선 떨지 마시오. 누구도 우리에게 권력을 넘기라고 강요하지 않았소. 그들 스스로 그런 운명을 선택했고 그 댓가를 치르는거요." 썩소까지 날리며 독일 국민 전체를 비아냥거리는 그의 표정은 섬뜩하다 못해 악마를 연상케 한다. 영화 말미에는 총통에게 충성심을 증명하겠다며 가족 동반 자살을 선택했다. 그의 아내는 6명에 달하는 자녀들에게 잠을 재운다면서 약을 먹인 다음 두 사람 모두 자살한다. 워낙 충격적인 장면이기에 배우들조차 트라우마가 남았다고. 히틀러는 알면서도 말리기는 커녕 어린 아이들마저 저승 길동무로 데려가는 것을 묵인한다.

위의 히틀러 멘붕과 함께 나치 정권의 실체를 보여주는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괴벨스의 망언. 엄밀히 말하면 괴벨스는 저런 말을 한 적이 없지만 여론 조작과 대중 선동으로 히틀러를 권좌에 올린 그로서는 저 장면을 보면서 저승에서 "옳소!"라고 하고 있을지도.
물론 극적인 연출을 위해서 영화적인 허구가 섞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치는 탄생부터 마치막 순간까지 정상이 아니었음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명나라 말기 반란군에게 포위된 숭정제가 치욕을 피하기 위해 자기 가족들을 제 손으로 베고 스스로 목을 멨다고는 하지만 근대 국가에서 패전을 앞두고 있다고 해서 권력자가 수습 대신 다 같이 죽자면서 온 국민에 집단 자살을 강요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일까. 이탈리아는 제 손으로 무솔리니를 끌어내렸고 '1억 총옥쇄'를 부르짖던 군국주의 일본조차 파국을 눈앞에 두자 마지막 순간 무기를 내려놓았으니 말이다. 왜 나치는 그토록 뒤틀렸던 것일까. 사이코 패스들이 권력을 잡았기 때문일까, 권력이 평범한 사람들을 사이코 패스로 만든 것일까. 영원한 질문이 아닐까 싶다.

지난 1윌에 히포크라테스 출판사에서 나온 신작도서 <뉘렌베르크 - 나치와 정신과 의사>는 영화 <몰락> 이후를 다루고 있다. 독일 공군 수장이자 나치의 2인자인 헤르만 괴링을 비롯하여 패전 이후 연합군에게 체포된 악명높은 나치 지도자들이 전범재판을 위해 뉘렌베르크 수용소에 감금되고 미군 정신과 의사로서 이들의 정신 상태 진단을 맡았던 더글라스 켈리(Douglas Kelley)의 이야기이다. 작년 말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뉘른베르크>의 원작이기도. 영화 <글레디에이터>의 막시무스 장군으로 명연기를 보여준 러셀 크로우, <맨 오브 스틸>의 조드 장군을 비롯하여 화려한 출연진 덕분에 국내에서도 개봉 얘기가 있는 것같더니만 그 뒤로 쏙 들어간 느낌. 하긴 코믹물과 화려한 액션물에 익숙한 국내 정서에서는 망하기 딱 좋은 영화라. 저자인 잭 엘하이(Jack El-Hai)는 미국 언론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주로 의학이나 과학사를 주제로 글을 쓴다고.

저자 영감님과 영화 <뉘른베르크>의 출연진. 1961년 영화 <뉘른베르크 재판>이 연합군 검사와 나치 전범들의 신경전이라면 이쪽은 정신과 의사 켈리와 괴링의 내면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 지루한 주제임에도 배우들의 명연기와 드라마틱한 연출로 재미있게 봤담서.
당연한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영화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도 영화 말미에 나오는 것마냥 괴링의 말빨에 밀려서 궁지에 몰린 조드 장군이 켈리의 힌트로 상황을 뒤집고 승리하는 극적인 장면 따위는 없다. 거의 이길 뻔한 괴링을 무너뜨린 비결은 연합국 검사들이 오랜 시간과 노력을 통해서 수집한 빼박 증거 덕분이었다. 그보다도 엄밀히 말해서 이 책의 주된 내용은 괴링이나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이 아니다. 영화를 먼저 보고 읽는다면 다소 실망할지도. 일단 나부터. 이 책은 나치 전범들과 인터뷰한 정신과 의사의 얘기이다.
괴링은 키츠뷜의 미 제7군 사령부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그곳에서도 신변 보장을 요구하고 아이젠하워와의 면담을 재차 요청했다. 그러나 그를 체포한 사람들은 그런 만남이 성사될 가능성은 낮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스택과 참모들은 괴링에게 많은 예우를 베풀었다. 괴링은 미군 병사들과의 환영 자리에서 샴페인을 마셨고 기념사진을 찍고 기자회견도 했다. 그는 자신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국가 고위 대표로서 마지막 대접을 받았다. - p.17
그것은 누구나 탐낼 만한 임무였다. 20세기 최악의 범죄자들로 널리 알려진 자들과 직접 마주할 기회였기 때문이다. 여러 정신병원에서 감독자로 일하는 동안 켈리는 일탈적 행동에는 종종 불가사의하면서도 대단히 흥미로운 근원이 있음을 배웠고 임시 수용소에서의 근무 역시 자신만의 목표를 세우고 임했다. 그는 나치 지도자였던 수감자들에게서 공통된 결함, 즉 악행을 서슴치 않는 성향의 흔적을 찾아내고 싶었다. 그들의 행동을 설명할 공통된 정신질환이나 정신의학적 원인이 있었을까? 그들의 끔찍한 범죄를 설명해줄 '나치 성격'이란 게 존재했을까? 켈리는 그 답을 밝혀내려고 했다. - p.44
그러나 이느 기업의 이사회와도 달리, 이 이사회는 전 세계를 6년에 걸친 전쟁 속으로 몰아넣고 조약과 국제 협정을 뻔히 알면서도 자기 이익만 생각하며 무시했고 셀 수 없이 많은 무고한 공동체를 말살했으며 수백만명을 노예로 만들고 또 다른 수백만명을 효율적으로 학살하기 위해 설계한 수용소에 몰아넣고 인종차별과 공포정치까지 합법화한 집단이었다. 이들을 범죄자로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우리 중 많은 이들도 유혹을 느낄 만한 기회를 붙잡았던 것일까. 애초에 악한 성향을 타고 났던 걸까. 그들의 행동을 설명할 만한 일종의 '나치 정신'같은 정신 질환을 함께 앓고 있었던 걸까. 교도소 당국은 물론,향후 재판을 맡은 검사들조차 켈리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질문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 p.99
책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연합국이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을 열고 나치 지도자들의 처벌에 나선 것은 단순히 이들이 침략전쟁을 일으켜서 평화를 깨뜨리고 전 세계를 전란의 불구덩이에 빠뜨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러기에는 연합국도 캥기는 것이 없지 않을 뿐더러 승자가 패배자를 단죄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국제법에서 규정하는 침략전쟁의 정의부터 모호했다. 그것만으로는 법정에서 첨예하게 벌어질 나치와의 논쟁에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다. 물론 전쟁의 승자가 나치였다면 이런 구질구질한 문제를 고민할 필요도 없이 악명높은 다하우 정치범 수용소에 죄다 잡아처넣고 최대한의 굴욕을 주었겠지만 말이다.
나치가 저지른 수많은 전쟁 범죄 중에서 정말로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것은 '홀로코스트'였다. 러시아어로 '포그롬(Pogrom, 대박해)'라고 불리는 유대인 박해는 오랫동안 유럽에서 일상적인 모습이었다고는 하지만 국가 권력이 한 인종 전체를 가스실에 넣어서 조직적으로 절멸시킨 경우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완전히 선을 넘은 것이고 그 옛날 훈족의 침공이나 칭기스칸 시절에나 나올 만한 얘기였다. 그것도 비문명국가도 아닌 유럽 제일의 지성과 문명을 자랑하는 독일에서 말이다. 유럽 전역에서 희생자는 600만명으로 추산되었다.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유대인 수용소를 해방한 연합군 병사들은 타다 만 뼈무더기와 생존자들의 비참한 모습에 경악했다. 나중에 재판장에서 범죄 현장을 찍은 필름이 공개되었을 때 여론은 격앙되었고 기세등등하던 나치 지도자들조차 꼬리를 내리고 외면하거나 "나는 몰랐다"라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아야 했다.
그보다도 중요한 의문은 과연 무엇이 이들을 그렇게까지 하도록 만들었느냐였다. 그리고 정신 감정을 통해서 그것을 알아내는 임무를 맡은 사람이 미 육군 정보부 소속 정신과 의사이자 책의 주인공인 켈리였다.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임에도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는 느낌이다. 그렇다보니 유대인이라고 해봐야 오늘날 중동에서 행패 부리는 이스라엘을 떠올릴 국내 독자들로서는 아무래도 감정 이입이 어려운. 미국인들에게는 너무 당연해서 굳이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고 여기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이런 점에서 다소 불친절하달까.
원래 샌프란시스코의 정신병원 원장이었던 더글라스 켈리는 전쟁이 터지자 유럽 전선으로 향했고 전쟁 쇼크로 PTSD에 시달리는 미군 병사들의 치료를 맡았다. 그는 집단 정신 치료를 통해서 많은 병사들을 전선으로 복귀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가 오기 전 1943년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PTSD 환자 중 회복한 병사는 2%였지만 1년 뒤에는 복귀율이 95%에 달했다고 한다. 만약 켈리가 조금만 일찍 입대했더라면 패튼 장군이 이탈리아 전선에서 PTSD 환자를 두들겨 팼다가 곤혹을 치르는 망신을 당할 일도 없었을 것인데 말이다. 전쟁이 끝나면서 켈리는 집으로 돌아올 예정이었지만 1945년 8월 4일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을 앞두고 나치 최고위 지도자 22명에 대한 심리상담을 통해 이들이 끔찍한 전쟁 범죄를 저지르게 만든 정신의학적인 원인을 찾아내라는 것이었다. 그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여러 수감자들과 친분을 쌓았고 그들의 내면을 파고 들었다. 그 중에서도 켈리가 보기에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헤르만 괴링이었다.
켈리는 괴링을 보자마자 그에 대한 또렷한 인상을 갖게 되었다. 다른 나치 수감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는 괴링이 "지적인 인물이었기에 의심의 여지없이 감옥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이었음"을 알아차렸다고 의무 기록에 남겼다. "그는 정신적으로 잘 발달했고 전반적으로 균형 잡혀 있었다. 걸을 때 살이 출렁이는 것을 망토로 가릴 수만 있다면 거대하고 힘이 넘치는 체격이었고 멀리서 보기엔 제법 그럴듯한 용모를 갖춘 아주 강하고 역동적인 인물이었다." - p.44
켈리는 나중에 피고인 22명 각각에게 최소한 80시간을 쏟았다고 주장했다. 사실이라면 몽도르프와 뉘른베르크에서 다른 일을 할 시간이 전혀 남지 않았을 것이니 다분히 과장된 말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학문적 의무감과 개인적 선호가 맞물려 그 가운데서도 괴링에게 가장 많은 시간을 들였다. 감방에서 두 사람은 서서히 유대감을 쌓아갔고 서로에 대한 강한 호기심에 끌려 상대의 한삼을 사려고 했다. 그렇다고 서로에게 연민이나 존경심을 느꼈던 것은 아니었다. 둘은 서로의 말과 감정을 이해했고 함께 있을 때만큼은 어느 정도 본모습으로 지낼 수 있음을 깨달았으며 함께 있는 시간을 즐겼다. - p.107
교도소라는 부자연스러운 환경에서도 로르샤흐 검사는 평소라면 좀처럼 들여다보기 어려웠을 성격의 깊은 영역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었다. 켈리는 로르샤흐 검사를 "정신감정에서 가장 유용한 단일 기법"이라고 불렀다. 만약 뉘른베르크 수감자들의 로르샤흐 검사 결과에서 일정한 패턴이나 유사성이 드러난다면 켈리는 '나치 정신'의 핵심적 특징에 성큼 다가서게 될 터였다. 이 검사는 무대 마술처럼 검사자의 숙련도와 해석 기술에 크게 의존했다. - p.132
길버트는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로르샤흐 검사를 시행하는 방법을 배웠지만 그 평가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다만 그 가치를 이해했기에 켈리가 아직 검사하지 않은 피고인들에게 잉크 반점 검사를 시행했고 이미 검사를 받은 일부는 다시 검사했다.괴링 재검 결과에 대한 길버트의 해석은 켈리와 달랐다. 길버트는 괴링의 결과에 대해 "그의 지성이 질적으로 평범하다는 점을 드러냈다"라고 생각했다. 잉크 반점 검사에서 인간과 동물의 움직임을 많이 묘사하긴 했지만 길버트는 그의 반응에서 독창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탁월하게 창의적인 지능이라기보다 피상적이고 평범한 현실주의"가 드러났다는 것이었다. 즉 괴링은 영리하고 냉소적이지만 천재는 아니었다. - p.153
기소팀이 괴링에게 유리해진 판세를 수습하고 그의 인격에 다시 타격을 가하는데는 몇 주가 걸렸다. 전환점은 1944년 체포된 영국군 장교 50명의 처형을 괴링이 묵인했다는 증거가 제시되면서였다. 명백한 전쟁 범죄였다. 법정에 제출된 다수의 증거와 달리 그는 유대인 말살을 겨냥한 "최종 해결책"에 대해 자시은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고 심지어 히틀러 역시 몰랐다고 말해 좌중을 경악시켰다.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고 괴링의 신뢰도는 급격히 추락했다. 그때부터 나치 피고인들은 줄곧 수세에 몰렸다. - p.199
켈리가 피고인들에게 공통된 일탈적 성격, 이른바 나치 병균을 찾아낼 수 있기를 기대했다면 그런 증거는 거의 없었다. 대신 그는 그들의 성격에서 자신이 신경증이라고 부른 특성을 발견했다. 이러한 특성들은 드물지 않은 정신의학적 결함으로 분명 그들을 괴롭히고 잔혹함을 부추길 수는 있었지만 정상 범주의 바깥으로 밀어내지는 못했다. 켈리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자기애에 이끌리는 괴링같은 사람들이 현실에는 셀 수 없이 많다고 믿었다. "그들은 기업가나 정치인으로, 때로는 범죄 조직과 결탁한 사기꾼으로 커다란 책상 뒤에 앉아 중대한 일들을 결정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 p.216
길버트는 뉘른베르크 피고인들 가운데 몇몇을 정상적이거나 평범한 성격으로 보지 않고 위험하고 독특한 인격유형을 지닌 사이코패스로 여겼다. 길버트에 따르면 괴링은 충동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도덕적 용기가 부족했고 친절의 가면을 쓰고 있지 않을 때는 상대에게 거칠게 달려드는 성향이 있었다. 가족 외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괴링에게 전쟁은 국가 이익을 둘러싼 고상한 투쟁이 아니라 타인 위에 군림하려는 우월성을 과시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길버트가 괴링의 이런 불쾌한 특성들을 정신병적 인격의 징후로 제시한 반면, 켈리는 사업과 정치에서 성공한 많은 사람들에게서도 흔히 보이는 성향으로 보았다. 또한 모든 정치적 권위의 목적을 의심했던 켈리와 달리 길버트는 나치즘을 특수한 조건에서만 뿌리내릴 수 있는 독특하고 유해한 권력 지배 형태로 보았다. - p.236
영화에서는 주로 켈리와 괴링 두 사람에게 포커스를 맞추면서 켈리가 괴링을 무너뜨리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하지만 재미를 위한 허구일 뿐, 이 책에서는 켈리 외에 또 한 사람의 경쟁자를 등장시킨다. 켈리와 마찬가지로 신경정신과 의사로서 PTSD 환자들을 치료하다가 뉘른베르크 심리상담에 동참한 구스타브 마크 길버트(Gustave Mark Gilbert) 중위였다. 영화에서 그는 켈리와 갈등을 빚는 장면이 잠깐 나오는 것 외에 단역에 가깝지만 오히려 대중적으로나 인생에서 성공한 쪽은 켈리가 아니라 길버트였다. 두 사람은 처음에 서로 협력하여 공동 저서를 내기로 했지만 켈리가 약속을 어기면서 무산되었다. 오만하고 고집 센 성격의 켈리는 길버트를 동료가 아닌 불청객으로 여겼고 물과 기름같았던 두 사람은 협력과 소통 대신 각자의 방식대로 수감자들을 연구했다. 따라서 그 결론 또한 정반대였다. 그럼에도 영화의 주인공이 길버트가 아니라 켈리가 된 것은 괴링과 더 친했다는 점, 무엇보다도 켈리의 주장이 요즘 미국 돌아가는 상황에 더 걸맞다는 얘기일 것이다. 길버트는 나치 지도자들이 희대의 사이코 패스이며 패전으로 분노 가득한 독일의 특수한 시대적 상황이 이들로 하여금 권력을 쥐도록 만들었다고 주장한 반면, 켈리는 이들이 결코 특별한 인간들이 아니라 어느 시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개새끼'이며 심지어 미국에서도 등장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과연 어느 쪽이 정답인지는 누구도 쉽게 얘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그 시절의 검사 방식이 얼마나 정확했는지도 의문이다. 정신병 치료를 한다면서 꼬챙이로 전두엽을 찔렸던 시대이니 말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 중간 쯤 되지 않을까. <살인의 심리학>의 저자 데이브 글로스먼 교수는 게티즈버그 전투의 예를 들어서 대부분의 사람은 본능적으로 살인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극소수의 사이코패스라는 것이다. 하지만 난징 대학살 당시 일본군은 목베기 시합을 벌였으며 문화대혁명에서 어린 홍위병들은 자기 부모와 스승을 죽이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았다. 과연 이들을 집단 광기의 피해자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중에라도 죄책감에 시달렸을까. 하물며 911테러의 주모자들은 인간폭탄이 되는 것을 악이 아니라 선으로 여겼다. 모든 생명은 똑같이 소중하지만 그것의 가치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는 언제나 똑같을 수 없음은 분명하다. 진짜 문제는 누가 사이코패스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런 사람이 절대 권력을 가지지 못하도록 법과 제도로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은 실패했고 미국 또한 완벽하지는 못함을 트럼프가 보여주고 있다랄까.
책에서는 영화에서 나오지 않는 진실도 얘기한다. 영화에서는 사람들이 켈리의 경고를 무시했고 마치 이 때문에 자괴심을 느낀 켈리가 자살을 선택했다는 식으로 나오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뉘른베르크 재판을 보지 않고 미국으로 귀국한 그는 무시당하기는 커녕 정신과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조현병 증세를 드러냈고 때때로 분노를 참지 못하여 심지어 아내에게 총을 쏜 적도 있었다. 나치 지도자들의 분노가 사회적 약자에게 향했다면 켈리는 가족들에게 풀었다. 뉘른베르크로부터 12년 뒤인 1958년 집에서 저녁 준비 도중에 부부 싸움을 하다가 가족이 보는 앞에서 괴링과 마찬가지로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했다. 하지만 그 이유가 괴링 탓은 아닐 것이다. 정신과 의사로서는 성공했지만 자신의 정신을 다스리지 못했다는 얘기였다. 원래부터 그런 증세가 있었는지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발현되었는지는 이 책에서 나오지 않는다. 어쨌든 정신 결함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흔하다는 사실만큼은 켈리가 입증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