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 - 맥주를 보다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방법
음미하다 지음 / 북폴리오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뿐만 아니라 꿀벌도 술을 먹는다.

술을 마시고 사고를 친 꿀벌은 벌을 받기도 한다.

수컷 초파리는 연애에 실패하면 더 많은 술을 먹는다.

술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꿀벌은 일만 하지 않아. 술도 마셔. 초파리도 술마셔"

-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 중에서

평소 술을 거의 즐기지 않는 나도 치맥의 유혹만큼은 거부하기 쉽지 않다. 불금이나 토요일 저녁, 집사람과 같이 치킨을 안주 삼아 캔맥주 하나씩 따서 마시면서 영화 한편 감상하는 것. 이보다 안락할 때가 어디 있을까. 때로는 더운 여름밤 집앞 호프집에서 500cc 크림 생맥주를 시켜서 마실 때 그 톡 쏘면서 시원한 맛이란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다. 굳이 주당이 아니라도 한국의 직장인이라면 이 유혹을 이길 자가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 생각해 보면 여지껏 맥주를 마시면서 이것이 무슨 종류의 맥주인가 따져본 적은 없는 것같다. 하긴 종류는 고사하고 카스인지 OB인지 어디 메이커인지도 따지지 않으니 말이다. 나의 둔감한 혀로는 맥주면 맥주이지 죄다 그기서 그기인 느낌이다. 애초에 치맥의 주인공은 맥주가 아니라 치느님이 아니던가. 우리는 치느님을 먹기 위해 맥주를 마실 뿐, 맥주를 마시기 위해 치느님을 먹는 것이 아니다. 맥주는 어디까지나 치느님을 먹는 과정에서 잠시 목이 마를 때 입가심을 위한 콜라 대용일 뿐이다. 그래서 치맥이다. 맥치가 아니라.

알콜 소비량에서는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우리 사회이지만, 그렇다고 딱히 다양한 술을 즐길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맥주는 그냥 맥주이다. 소주는 소주이고 막걸리는 막걸리이다. 어느 지역, 어느 회사에 제조했다는 것은 있어도 어차피 알콜 도수도 정해져 있고 가격은 물론이고 맛과 향 또한 대동소이하다. 획일화된 규격품이나 다름없다. 고기집이나 호프집에서 맥주를 시킬 때 메뉴판에는 오직 "맥주" 두 글자가 있을 뿐이다. 용량의 구분은 있어도 무슨 맥주냐는 구분은 없다. 고민의 여지조차 없이 "생맥주 주세요" 한마디면 끝이다. 참 쉽다.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면서도 막상 술의 종류가 몇 가지 없다는 것은 술맛을 따지지 않는다는 얘기일 것이다. 우리는 술 맛 그 자체보다는 그저 술에 취하기 위해서, 또는 안주빨을 세우려고 술을 마시는 것은 아닌가 싶다. 우리네 세상에 주당은 많다지만 술 맛을 알지 못한다면 진정한 주당이라고 할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서양 술을 보면 정말 다양하다. 와인만 보더라도 그 종류가 얼마나 하늘의 별만큼 다양하며 맛과 향이 천차만별인가. 이 양반들은 진정한 술맛을, 그리고 인생을 즐길 줄 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서 외국의 수입 맥주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맥주 그 자체의 맛을 취미처럼 즐기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모양이다. 이른바 맥주 덕후, 즉 '맥덕'시대의 개막이다.

북플리오 출판사에서 평소 맥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눈길을 끌만한 재미있는 책이 나왔다.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라는 책이다. 저자는 '음미하다'라는 필명을 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작가인데 일러스트를 보면 아마도 젊은 여성으로 추측된다. 어쨌든 분명한 점은 "취미가 맥주"라는 오리지날 맥덕이라는 사실이다.

"사람 뿐 아니라 꿀벌도 꿀 술을 먹는다. 술을 마시고 사고를 친 꿀벌은 벌을 받기도 한다. 수컷 초파리는 연애에 실패하면 더 많은 술을 먹는다. 술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초파리도, 새도, 박쥐도, 원숭이도, 자연이 만들어낸 술을 먹는다."

"닉네임 : 효모, 성별 : 없음, 종교 : 닌카시, 바커스, 직업 : 맥주랑 빵만들기, 좋아하는 것 : 무조건 달달한 것, 희망사항 : 가끔 나는 야생의 사바나 초원을 달리는 자유를 꿈꾼다. - 호모 프로필 중에서."

"효모가 살아있던 과거의 맥주는 햇살을 듬뿍 받은 보리 본연의 영양 성분과 효모가 만들언내 비타민, 단백질이 가득한 든든한 한 끼 식사이자 음료였다. 맑고 깨끗한 맥주라고 해서 우리 맥주가 고대 이집트인들의 그것보다 더 나을까? 더 자연스러울까?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깨끗하게 말린 맥주잔에 6℃의 밀맥주를 45도 기울여 따라 주다가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은 병을 돌리면서 따른다. 이제 숨은 효모까지 남김 없이 마시자. - 밀맥주 맛있게 따르는 법. 진짜 맛있다~~!"

"1934년 제1차 세계대전의 상처를 딛고 베스트말레에서 만들어진 맥주가 바로 황금빛 트리플이다. 필스너와 같은 고운 빛깔에 벨기에 맥주만의 짙은 과일 향이 일품이었던 이 맥주는 곧 수도원 맥주의 대명서가 되었다. 식사와 함께 마시는 가벼운 맥주인 테이블 비어보다 대략 3배는 도수가 강하다는 의미로 트리플이라고 불렸지만 1956년부터는 공식적으로 트리펠이라고 부른다."

"피아노처럼 반짝이는 짙은 어둠이 깔린 거리를 걸어 미켈러 바로 향한다. 재즈 센터에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 거리에 있는 이곳은 평일은 12시, 주말은 새벽 두 시까지 크래프트 맥주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비어가는 맥주잔과 함께 샌프란시스코의 하루가 저문다."

책의 부제로 붙어 있는 "맥주를 보다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말마따나 이 책에서는 맥주와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와 온갖 유익한 정보를 저자 특유의 유머러스와 함께 섞어서 풀어나간다. 맥주 특유의 허연 거품과 톡 쏘는 탄산가스가 사실은 효모가 맥아즙의 당을 소화하면서 뿜어낸 방귀라는 사실. "소리는 커도 냄새가 난다해도 너희가 좋아하는 술냄새인거?"

황금빛 연금술사 효모의 정체, 맥주가 영양가 넘치는 음식에서 술이 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역사, 에일과 라거의 차이부터 대표적인 맥주들, 각각의 맥주와 찰떡 궁합인 안주 고르는 법, 나에게 꼭 맞는 맥주를 찾기 위한 관상 보는 법, 맥주를 가장 맛있게 음미하는 요령, 영국 맥주와 벨기에 맥주, 미국 맥주, 독일 맥주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등 유머러스하면서도 알딸딸한 맥주 이야기가 듬뿍 담겨 있다. 컬러풀한 사진과 글을 한장한장 넘기면서 읽다보면 절로 시원한 맥주 한잔이 떠오른다. 그것도 그저 "여기 생맥주 한잔요!"가 아니라 달콤하면서 과일향이 느껴진다는 "파울라너 에딩거 헤페바이젠 한잔요!"라고 외치고 싶다.

이 책을 읽노라니 나도 치맥 덕후를 넘어서 진짜 맥덕이 되고 싶어진다. "맛있는 맥주에는 절로 나오는 추임새 캬아아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