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양상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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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는 점점 더 추워져만 갑니다. 그래서인지 제 식욕 또한 저 멀리 달아나려고 하는군요.

입도 짧고 위도 엄청나게 작은지라 먹을거리라는 것은 저에게는 좀 골칫덩어리입니다.

다 먹을거야! 하고 욕심부리다가도 이내 남기고 마는 저 때문에 주변 사람만 고생이지요. - 미안합니다. 진심 -

 

Food - 에 대해 어딘가 모르게 무서움이 들기 시작할 즈음, 에쿠니의 에세이를 만났습니다.

푸드에세이라니! 신선했습니다. 냉장고에서 꺼낸 우유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요. -

가슴 저 깊은 곳까지 뻥 뚫리는 듯한 그런 느낌이요.- 

그녀가 들려주는 음식이야기라면 분명 무언가 특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목이 참 귀여워요. 참 에쿠니스러운 - , 표지도 참 앙증맞네요.

 

 

 

 

 

 

  띠지의 사진이 바뀌었어요. 싱그러운 느낌이예요. 푸드에세이에 잘 어울리는 사진같아요.

그녀와 행복한 식사를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구 두근거렸습니다.

마치 오래 기다렸던 메인메뉴를 마주했을 때의 그 놀라움이랄까, 뭉클함이랄까.

어찌보면, 그녀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될테니까. 그 점에 더욱 설레였던 것일지도 모르겠지만요.

 

 



 겉표지를 벗겨보면 이렇게 상큼한 연두빛이 나타나요.

아삭아삭한 파슬리와 금방 씻어 물을 살짝 머금은 양상추를 아그작 베어물어보는 느낌이 들지 않으신가요?

색감 하나만으로도 오감을 자극할 수 있다는게 참 신기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어요.

표지만으로도 그녀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좋은 글귀에 작은 포스트잇을 붙이는 습관이 있어요.

붙일 때와 다시 읽을 때의 느낌이 묘하게 다른데, 그 느낌이 참 좋아요.

표지가 연두빛이다보니, 자연스레 같은 컬러로 붙였어요. 꼭 셋트같죠? ^^

 

 



  짜잔! 

  커버 뒷면을 보면 예쁜 스탬프들이 예쁘게 찍혀 있어요. 꼭 소꿉놀이하는 것 같아요.

  아기자기한 그림책을 보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요. 괜스레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답니다.

  와아- 귀엽다,를 연발했다니까요.

  여기저기 신경을 많이 쓰신 것 같아요. 세밀함과 친절함 덕분에 눈도 마음도 모두 즐거웠어요.



 

  드디어 안을 들여다보면, 이렇게 예쁜 그림들이 가득해요.

그녀가 오목조목 담백하게 설명을 하면 제 나름대로 머릿 속에 상상을 해요.

그러고는 뒷면을 탁 넘기면 그녀의 설명대로 그림이 등장해요.

글과 그림이 어찌나 딱 들어맞는지 감탄하고는 한답니다. 상상하는 재미도 있고, 그림을 보는 눈도 즐거워요.

아- 따뜻한 주스. 굉장히 뇌리에 오래 남아서 주스를 냉장고에서 꺼내어두고 일부러 미지근하게 먹고 있어요.

시원할 때와는 맛이 다른 점이 있어요. 데워서 먹어보는 건 살짝 고민중이예요. 하하 -

 

 


 

 표현이 정말 맛깔스러워요. 에쿠니의 청아하고 깔끔한 문체와 푸드가 만나면 이런 느낌이 나요.

 따뜻하고 기분 좋은 상상을 하게 됩니다. 늘 따뜻한 차를 한모금씩 마시고 있는 기분이 들어요.

 

 


 

   에쿠니의 푸드에세이가 꼭 이런 느낌이예요. 마음이 화사해지는.

 그녀가 한 입 베어물면 덩달아 나도 베어물고 싶어지는 상큼 담백한 음식들이 많이 등장해요.

 거의 과하지 않은 꼭 그녀 같은 음식들이라 같은 음식을 먹으면서도 문득문득 생각날 것 같아요.

 

 

 

 

  참 세심한 작가지요.

우리는 그냥 흘릴 법한 것들은 그녀는 참 잘도 찝어내요.

소리없이 강하다,는 말은 꼭 그녀를 위한 말 같이 느껴질 정도로.

 

 


 

 싱그러운 비파.비파.

 저는 이것을 먹어본 적이 없지만, 그녀의 소설에는 자주 등장하지요. 이 책에도 어김없이 만났어요.

 

 


 

  그녀가 감탄하면 저도 덩달아 감탄해요. 꼭 엄마가 부르는 동요를 따라부르는 아이처럼 마냥 순수해지는 것 같아요.

  굉장하다고 말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았던 말들이 굉장하게 바뀌어요. 그녀의 말에는 신비한 마력이 존재하나봐요.

 

 


 

  음식을 깔끔하게 담아낸 그릇들.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네요. 후루룩- 한 젓가락하고 싶군요.

 


  그녀의 행복한 식사를 들여다보면서, 저도 음식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맛있게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딱 제가 느끼는 만큼 글로도 표현해보고 싶어요.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는 기쁨에 흠뻑 빠져본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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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벰버 레인
이재익 지음 / 가쎄(GASSE)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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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제목을 접했을 때, <노벰버 레인> 이라고 읽지 못했습니다. 뭔가 이상한 문자의 조합 같이 느껴졌었어요. 잘 읽어야 레인 노벰버, 이고 완전 잘못 읽으면 노레 벰인버? ... 지금도 유독 '벰'이라는 글자가 강하게 보입니다. 다른 글자들은 '벰'을 둘러싼 하나의 형태에 불과한 것 처럼 말이예요.

영어 단어로 익숙한 말, 아닌가요? 노벰버든, 레인이든. 한글로 보니 어색하다고 하는게 가장 적절할까요. 부끄럽게도, 저는 저 '노벰버'가 11월의 NOVEMBER인지도 몰랐습니다.  '벰버'라는 말에만 중점을 두어, REMEMBER의 반댓말인가? 하고 생각해버렸으니까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비, 혹은 기억해서는 안되는 비, 라고 마음대로 생각해버렸습니다. 책을 들여다보고서야 아, 11월에 내리는 비, 였다는 것을 알았어요. 모르는 단어도 아닌데 쉽게 떠올리지 못했던 것이 이상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기억하다, 라는 단어의 반댓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접어둘 수는 없네요.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 영원히 남게 하고 싶어서요.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달라는 제의를 받았고,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씌여진 영원히 남게 하고 싶었던 그녀만의 이야기.

'프롤로그'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남부럽지 않은 예비신랑과 결혼을 앞둔 그녀. 그와 함께라면 안정적인 생활은 보장받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 아직 '사랑'이라는 이름을 갈망합니다.

 

 

가슴 떨리는 마음. 마음속에 있는 북이 둥둥둥 울리는 소리.

나에게 사랑의 정의는 그랬다. 누군가를 보고, 함께 있고, 만지고, 입 맞추면서 가슴이 떨리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 31쪽

 

 

*

 

"노화가 뭐니? 세포가 지치는 거야.

매일 같이 살아 숨 쉬고 움직이느라 지친다고. 사랑도 지쳐.

오래 함께 하다 보면 지치지. 변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

 

"평생 사이좋게 사는 부부도 있잖아?"

 

"물론. 열정이 애정으로 잘 승화한 케이스지. 건강하게 늙는 것과 마찬가지야.

 내 말은 사람의 온도가 식는다는 거지 서로에 대한 호감과 존경 자체가 사라진다는 의미는 아니었어."

 

"나와 종우씨는 지금도 온도가 뜨겁지 않아."

 

"그것도 사랑일 수 있어. 꼭 뜨거워야만 사랑인가?"    - 48쪽

 

 

 

그녀는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결혼 앞에서 불안해합니다. 꿈꾸는 사랑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와의 사랑은 꿈꾸던 사랑과는 좀 다릅니다. 살다보면 情으로 산다고도 하고 결국엔 결혼은 '현실'이니까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사랑'은 아무렴 어떤가, 하는게 요즘 시대라 괜히 사랑타령하는 것이 아닌가, 배부른 소리한다고도 비꼬아서 생각할 수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너무 쉽게 찾아오는 행운이라면 겁나는게 당연하지 않겠어요? 미래를 함께 나아가야하는 사람인데, 서로의 마음과 마음이 교감하지 않고 조건과 조건끼리만 만난다면 과연, 그 생활은 오래갈 수 있다, 장담할 수 있을까요?

 

 

미안해. 힘들어. 가지마. 슬프다. 기쁘다. 가슴이 아파. 반가워. 눈물이 나. 그리워. 행복해. 사랑해.

여명과 장만옥의 감정은 언어의 장벽을 넘어 전달되었다.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햇살처럼, 누구나 적셔버리는 비처럼.    - 103쪽

 

 

그녀, 사랑하나봅니다. 영화 <첨밀밀>을 자막없이 보았지만 저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대요. 예의안에서의 사랑이란 이름이 아닌, 그녀가 꿈꾸던 사랑의 이름은 바로 저런 것이겠죠. 머리가 느끼는 것이 아닌, 정말 내 가슴이 느끼는 말들이잖아요. 꿈꾸던 사랑을 해볼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세상에는 자신이 꿈꾸는 사랑을 못하는 사람도 분명 많겠지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사랑이란 없을테니까요. 현실과 책임이라는 단어앞에서 사랑은, 한없이 작아질 수 밖에 없지만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을 정도로 현실과 책임보다 훨씬 더 커다래지는 순간도 분명히 존재하겠지요. 마치 그것이 전부인냥 말입니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거리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 154쪽

사랑이란 필시 그런거겠지요. 현실에 쫓겨 앞만 보고 살아가다보면, 소중했던 순간, 추억, 기억들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현저히 줄어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건 바로 '사랑'이라는 것. '사랑'은 우리를 뒤돌아 볼 수 있게 합니다. 가슴이 풍선처럼 부풀어오르고 괜스레 부웅 뜨는 기분이 듭니다. 웃음이 떠나질 않고 모든 세상이 무지개빛으로 바뀔 수도 있겠지요.  발견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발견하게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 아니었던가요.

 

 

잊지 않는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사람도 사랑도 잊히는 순간, 죽는다.   - 262쪽

 

사랑은 그 자신 말고는 아무것도 주지 않고 아무것도 취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누군가를 소유하지 않고 또 누군가의 소유가 되지도 않습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 284쪽

 

누가 그랬다. 가난과 기침과 사랑은 감출 수 없다고.  - 290쪽

 

 

책읽기를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가 마음을 감출 수 없듯, 읽는 내내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정당하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단지 그녀는 그 사랑이 사라질까봐 두려웠기 때문에 남겨두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짜 사랑을 알고 싶었던 한 여자와 다른 색을 띈 두 남자의 사랑이 있을 뿐.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이런 소재도 이재익 작가님의 손길이 닿으면 다른 색깔로 변해버리는 구나,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씌여지긴 했지만 작가에 따라 그 색이 확연히 달라질 수 있을테니까요. 그만큼 그는 그녀의 이야기에 예쁜 옷을 입혀준 셈이지요.

 

같은 소재의 책을 두 권, 읽었습니다. 요즘들어 이런 소재를 많이 접하게 되는군요.

츠지 히토나리, <안녕 언젠가> 와 히가시노 게이고, <새벽거리에서> 이렇게 두 권입니다.

<노벰버 레인>은 이 두 작품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11월 비내리는 날 둘만이 허락된 방, 이라는 설정 때문인듯 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새벽거리에서> 란 작품에서 공소시효를 정해둔 것처럼 그들의 방 또한 제약이 있지요. 그렇기에 더욱 극적인 전개로 인해 흠뻑 빠져들었던 것 같습니다.

 

사진이 있는 소설이라기에 좀 더 기대를 했던 부분도 있었지만, 사실 사진은 조금 미약했던 것 같습니다. 사진은 거의 보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에 몰입했었거든요. 표지는 참 마음에 듭니다.

 

 

여러분도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사랑에 대해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그저, 사랑을 하고 있는 상대와의 관계를 돌아볼 수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그 시간이 서로를 더욱 소중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할테니까요. 사랑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다 아름답다, 말하고 싶습니다. 사랑은, 사람을 살게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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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반양장) 보름달문고 44
김려령 지음, 장경혜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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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야지,하면서도 두께가 얇아서 그냥 훅- 읽어버릴 듯한 느낌때문에 조금은 망설였었다. 하지만, 김려령 작가님의 신작이니만큼 두께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두께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항상 남겨주는 그녀이기에. 「우아한 거짓말」을 접했을 때 그랬다. 굉장히 강한 두뇌의 떨림이랄까. 한동안 뇌리에 박혀 오랜동안 기억에서 떨쳐낼 수 없던 충격적이었던 그녀의 글과의 첫 만남. 그 무한한 떨림을 기억하고 있기에 이 책 또한 굉장한 설레임으로 다가왔다. 조곤조곤, 그녀가 들려주는 동화 속으로 풍.덩.

표지를 보나, 살짝 내비쳐진 글들을 보나, 청소년 문학임이 틀림이 없지만 이것이 꼭 우리 아이들만을 겨냥한 것이라고 생각치 않는다. 우리는 모두 아이라는 샘을 거쳐 어른이라는 강으로 흘러가고 있으니까.
우리들의 마음 속에도 아이는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어린시절을 조금은 특별하게 보냈던 사람이라면 더더욱이 그 아이는 아련하게 간직되어 있으리라.

출근길. 
아침마다 아이들을 사고로부터 보호하려는 건널목 아저씨를 만난다. 경쾌한 호루라기 소리가 설핏 덜 깬 듯한 나의 졸음을 깨운다.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던 광경. 오늘 아침은 괜스레 다시 뒤돌아보게 된다. 어젯밤 나를 찾아온 우리의 건널목 아저씨 때문에.
 
작가인 오명랑. 칠년 전 동화작가로 등단한 이후, 계속 글을 쓰고 있지만 작가로 성공하기란 참 녹록치 않다. 하루하루 시간이 흐를수록 글만 쓰고 있는 그녀를 주변에서 지켜보는건 답답할 수 밖에. 하루가 멀다하고 가족들의 성화가 끊이질 않는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이야기 듣기 교실'. 독자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 마음을 여는 일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바로 이 책의 주인공 '건널목 아저씨'.신호등이 없는 도로에 직접 만든 건널목 카펫을 들고 다니는 아저씨. 그 아저씨 덕분에 폭신폭신 카펫을 밟는 아이들에겐 웃음이 운전자들에게는 잠깐의 여유가 생겼다. 주변이 밝아진 느낌이다. 마치, 걸어다니는 신호등, 가로등 같은 우리의 건널목 아저씨. 처음에는 유치하게 시시하게만 들리던 동화가 어느새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건널목 아저씨'는 바로 마음을 움직이는 따뜻한 분이었으니까.

그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리웠던 그 시절을 회상하는데에서 시작된다. 건널목 아저씨를 만나게 된 일부터, 아저씨와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를 동화처럼 아이들에게 들려준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면서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그런 이야기. 잃어가는 우리의 마음에 따스한 온기를 불어주는 그런 이야기였다.

# 참 이상하지? 근사하게 생긴 사람도 아닌데, 가진 게 많아서 듬뿍듬뿍 퍼주는 사람도 아닌데, 사람들은 건널목 씨를 좋아했어. 많은 사람들 사이에 건널목 씨 한 사람 더 와서 사는 건데 아리랑 아파트 분위기가 달라졌다니까. 이웃끼리 인사도 더 자연스럽게 했고 더 상냥해졌지. 좋은 사람이란 그런 거야. 가만히 있어도 좋은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 내가 이걸 해 주면 저 사람도 그걸 해 주겠지? 하는 계산된 친절이나, 나 이 정도로 잘해 주는 사람이야, 하는 과시용 친절도 아닌 그냥 당연하게 남을 배려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건널목 씨야. 그런 사람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참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 (77쪽)
아무 대가 없이 아이들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건널목이 되어준 사람. 우리에게도 지금 그가 필요하다. 요즘은 이미지, 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서 과시용 친절이 많이 눈에 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 그 행동을 하고 있다. 나도, 내 나름으로는 배려를 많이 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심, 하고 기대를 하고 있었다. 참 무서운 기대감, 내심. 건널목 씨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었는데 어느새 나는 세상에 찌들어가고 있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되어버린, 슬픈 현실. 이 글을 읽을 때 나의 가슴 속의 아이는 펑펑 울었다. 먼저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이었는데, 그저 주기만 해도 행복해하는 아이였는데, 지금 그 아이는 어디로 숨어버린 걸까. 너무 많이 잃어버린 내 모습. 난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마음껏 울어도 좋을 만한 느낌의 따뜻한 동화. 건널목 아저씨가 곁에 있어준 나의 어린 시절은 아니었지만, 나와 비슷한 성장기를 보낸 도희, 태희에게서 건널목 아저씨의 따뜻한 사랑을 함께 받고 있었다. 위로 받을 수 없었던 나의 어린시절을 들켜버렸지만, 그보다 더 값진 무언가를 얻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마음을 움직이는, 오직 그 마음만으로 충분한 인상을 남긴 책이었다. 아이들만을 위한 동화가 아닌 마음 속에 상처받은 아이를 숨기고 살아가는 어른아이에게도 꼭 필요한 동화였다.
바삐 움직이고, 힘겹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한 템포 느린 박자를 찾아주는 책.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행복한 사람이 되고자, 아팠던 어린 시절을 떨치고자 하는 어른아이와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는 아이들이 함께 읽으면 좋을만한 책. 잃어가는 정(情) 또한 되새길 수 있는 순수하고 따뜻한 동화이다.


# 건널목 아저씨, 아저씨의 여행이 언제까지 계속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아저씨처럼 멈추지 않고 제 길을 가고 싶어요. 그렇게 가다가 언젠가 진짜 아저씨를 만나게 되면 다시 한 번 멋진 콧수염을 그려 드리고 싶습니다. _ 정경혜(그림작가)
# 때로는 힘들고 지쳐 주저 앉고 싶을 때도 있을 테지요. 어른들도 부족한 게 많아 번쩍 안고 원하는 곳으로 옮겨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덜 힘들게 덜 아프게 덜 무섭게 그 시기를 건널 수 있도록 건널목이 되어 줄 수는 있습니다. 친구라도 좋고 이웃이라도 좋습니다. 먼저 손을 내밀어도 괜찮고, 누군가 먼저 내민 손을 잡아도 괜찮습니다. 우리 그렇게 살았으면 합니다._김려령

걷거나 뛰거나 장난쳐서는 안되는 에스컬레이터.
바쁜 출근길, 우리는 그 움직이는 계단을 뛰거나 걷는다. 그만큼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린 우리들. 그래서 서로에게 무심해지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눈을 감고, 주변의 눈치를 살피게 되어 버렸다. 이럴수록 더 돌아봐야 한다. 건널목을 건널 때만큼은 건널목 아저씨를 생각하며 그가 환하게 만들고 싶었던 세상을 조금은 여유롭게 바라보고 싶다.

아저씨도, 또 다른 누군가의 건널목이 되어 주시며 행복해하고 계실까. 외롭지는 않으실까. 이제는 우리 모두가 건널목 아저씨의 건널목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아저씨를 닮고 싶어 스스로 건널목 아저씨가 된 태석이처럼 우리도 건널목 아저씨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유치한 동화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지금 이런 동화가 꼭 필요하다. 말하지는 않아도 먼저 손 내밀어줄, 기댈 사람이 필요하지는 않은가?  혼자였던 길도 함께 걸으면 달라보이는 것처럼 이 책을 통해서 조금은 덜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 서로에게 건널목 아저씨가 되어 주자. 내가 잃어버린 것만 같았던 어린 시절에서 또 다른 것을 배운 것 처럼, 지금이라도 건널목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것 처럼, 우리 모두가 따뜻해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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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음 / 학고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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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에 관한 소설은 왠지 모르게 접근하기 힘들어서 유명한 작가님인데도 불구하고 「흑산」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첫 대면부터 힘든 이야기라 나의 인식이 어떻게 박힐지 내심 걱정스러웠습니다. 역사소설을 아예 배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소설 쓰시는 작가분 중에는 김진명 작가님을 제일 좋아하지요. 문체에 박력이 느껴집니다. 강렬한 호소가 저로 하여금 온전히매료되게 만드시는 분이라 좋아합니다. 김훈 작가님은 어떨까요? 내용도 내용이지만 어떤 문체를 가지고 계신 작가님인지에 초점을 두고 읽었습니다. 처음부터 분석하려들면 쉽게 흥미가 떨어질지도 모르니까요. 무거운 소재라 지레 겁을 먹으며 시작했지만 가슴을 울리는 둥둥거림이 있었습니다. 문체가 퍽 마음에 들어 내용과는 상관없이 들여다 본 문구가 많습니다.

 

 

 

 

 

   정약전이 유배길에 올라 유배지인 흑산으로 가기 전 바다를 보고서 하는 말입니다. 저 어디 건너건너에 있을, 다시는 자신이 살던 곳으로 되돌아올 수 없을, 자신이 영영 갇히게 될 그곳을 바라보며 한없는 생각에 잠깁니다.  텅빈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이 소설에는 오고가는 풍경에 많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제가 가장 마음에 담았던 풍경은 바로 '길'입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이치인데 그것을 말로 옮겨놓고보니 그제서야 다시금 깨닫고 세상 모든 의미가 전부 들어 있음에 감탄합니다.

 

 

 

 

 

  이런 문체가 바로 김훈의 문체겠지요. 맑고 깨끗합니다. 가까운 곳이 아닌 먼 곳을 바라보는 형상. 나무보다는 숲 같은 느낌의 문체입니다. 읽는 내내 숲공기를 마시는 느낌이 들었던 것도 무리가 아니겠지요.

 

 

 

 

 

 

 

 

  흘러가는 풍경이 글에 자연스레 베여 저절로 한폭의 그림이 완성됩니다. 글로 풍경을 실감나게 하는 것이야 말로 작가의 참된 능력이 아닐까하는데요. 읽는 내내 산수화 속에서 글들이 헤엄치는느낌을 받았습니다. 고요하고 청아한 그런 느낌 말입니다.

 

 

 


   막연함과 막연함이 꼬리를 물며 한없는 생각에 빠지게 합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바로 세상인지라 손으로 잡으려해도 잡을 수 없는 아득하고 깜깜한 현실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안개를 걷고 앞으로 나아가려고해도 그저 다시 안개 속에 갇힐 뿐.

 

 

 


  그 무엇도 명확하다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일이 벌어지는대로 두 손 놓고 지켜만 볼 뿐입니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 그 안에서 그려내는 암담한 현실. 저렇게 사물에 생각을 띄우는 일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인 것을.....

 

 

  삶과 죽음이 지독하게도 얽혀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바로 신유박해. 천주교도를 박해한 사건이지요. 지금에야 이렇게 깊이 뿌리내려 있는 종교이지만 그것을 뿌리내리게 하고자 정말로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저는 종교에 의지하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종교라고 하는 것은 분명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대비는 어찌 삶 대신 죽음의 길로 뛰어드느냐고 하였지만 그들은 구원이라는 것을 통해 또 다른 삶을 영유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자기 몸하나 온전하게 살 수 없는 탈세와 굶주림에 찌든 삶에서 어떤 희망의 빛을 볼 수 있었겠습니까. 배교하여 살아남은 자들이나 천주를 증명하여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자들이나 그들 방식대로의 또 다른 삶을 택한 것 아니겠습니까. 삶과 죽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아득한 통로지요. 명확하게 안다고 할 수도 아예 모른다고도 할 수없는 그런 통로말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칠흙같은 어둠과 그 사이에 내리비칠듯 말듯한 빛줄기를 동시에 보고 있었습니다. 온전히 암흑같은 바다 속을 거니는 것 같다가도 이 안개가 조금만 걷혀지면 또 다른 빛이 보일 것 같기도 했습니다. 가벼이 넘길 수 있는 소재가 아니어서 읽는 내내 갑갑했지만 풍경같은 문체가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김훈, 가히 멋진 작가인 것 같아요.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그들의 넋을 기릴 수 있는 책이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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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 측 증인
고이즈미 기미코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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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리소설을 좋아하거나 즐기지는 않지만, 읽기 시작하면 온몸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돼요. 추리소설의 묘미는 바로 진범찾기. 모든 사람을 범인의 범주에 두고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사실, 저 굉장히 잘 속거든요. 치밀하게 책을 읽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작가가 놓은 덫에 스스럼없이 걸려드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ㅡ어쩌면 둘 다 겠죠?ㅡ 한번이라도 범인을 알아차렸으면 좋겠어요. 하하-

이번 책에서는 범인을 알아차려보고자 결연한 의지를 내비쳤어요. 두 주먹 불끈쥐고! 첫장부터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여기서부터 저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던 거예요. 제가 그려놓은 밑그림이라는 덫에 완전히 걸려들어서 속상했습니다. 흑. 

 

 

 

 

  재벌가 외아들 '스키히코'와 스트립 댄서 '미미로이'의 결혼. 미미에게는 행운같고, 꿈같은 일이었겠죠? 재벌이 느닷없이 나타나 청혼을 하다니. 하룻밤 사이에 그녀는 스트립 댄서가 아닌 재벌가의 며느리가 되는 것이죠.  행운같은 일이지만 평탄하지만은 않을 그녀의 삶을 예고합니다. 그녀는 벌거벗고 춤을 추지만, 그것은 그녀의 직업에 불과하죠. 실제로는 굉장히 지고지순하고,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컸지요. 남편 스키히코와 함께라면 배경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그런 여인이었으니까요.

 

 

 

 

  이 책은 굉장히 잘 읽힙니다. 서문부터 자신이 그린 밑그림에 따라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가기 때문인데요. 저는 변호측 증인이 나타날 때부터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제 밑그림의 퍼즐이 한꺼번에 엎어지면서 패닉상태가 되었습니다. 거의 다 읽어가다가 화면 돌려다시보기 현상이 일어난거죠. 저의 밑그림대로 술술 잘 넘어가는데, 그것이 바로 오류의 주범이 되었습니다. 이 소설, 실로 놀라웠어요.

 

 

 

 

  범인의 범위가 좁혀지고 거의 다다를 즈음에는 두근거림의 최고조에 이르게 됩니다. 살인사건과 관련이 있다보니 요리조리 진범을 좁혀갈 때마다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범인의 범주에 넣었던 인물들의 이름을 하나씩 지워가다가도, 다시 이름을 써넣는 것을 반복하며 신나게 읽었습니다.

 

 

 

 

 

  작품해설을 왠만해서는 잘 보지 않는데, 이 책의 작품해설은 머리에 쏙쏙 들어오더군요. 밑그림이라는 표현도 해설에서 빌렸습니다. 이 책을 세상에 내놓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들키게 된 이상 가급적 많은 사람이 읽어주길 바라기도 했고요. 결말을 알고 나서는 조금 허무했지만, 결국은 제가 그린 밑그림에 당한 꼴이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습니다. 꼭 귀신에게 홀린 듯한 느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려갔던 책입니다. 여태껏 접했던 추리소설 중에 가히 최고가 아닐까합니다. 독자가 원하는 상상대로 이끌어나가는 작가의 힘에 다시금 놀랐던 소설입니다. 모든 것이 드러나 있는데도 불구하고 명확한 것은 오히려 하나도 없습니다. 읽는 내내 흥미진진했던 책이었습니다. 꼭 많은 분들이 읽어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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