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벰버 레인
이재익 지음 / 가쎄(GASSE)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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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제목을 접했을 때, <노벰버 레인> 이라고 읽지 못했습니다. 뭔가 이상한 문자의 조합 같이 느껴졌었어요. 잘 읽어야 레인 노벰버, 이고 완전 잘못 읽으면 노레 벰인버? ... 지금도 유독 '벰'이라는 글자가 강하게 보입니다. 다른 글자들은 '벰'을 둘러싼 하나의 형태에 불과한 것 처럼 말이예요.

영어 단어로 익숙한 말, 아닌가요? 노벰버든, 레인이든. 한글로 보니 어색하다고 하는게 가장 적절할까요. 부끄럽게도, 저는 저 '노벰버'가 11월의 NOVEMBER인지도 몰랐습니다.  '벰버'라는 말에만 중점을 두어, REMEMBER의 반댓말인가? 하고 생각해버렸으니까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비, 혹은 기억해서는 안되는 비, 라고 마음대로 생각해버렸습니다. 책을 들여다보고서야 아, 11월에 내리는 비, 였다는 것을 알았어요. 모르는 단어도 아닌데 쉽게 떠올리지 못했던 것이 이상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기억하다, 라는 단어의 반댓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접어둘 수는 없네요.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 영원히 남게 하고 싶어서요.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달라는 제의를 받았고,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씌여진 영원히 남게 하고 싶었던 그녀만의 이야기.

'프롤로그'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남부럽지 않은 예비신랑과 결혼을 앞둔 그녀. 그와 함께라면 안정적인 생활은 보장받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 아직 '사랑'이라는 이름을 갈망합니다.

 

 

가슴 떨리는 마음. 마음속에 있는 북이 둥둥둥 울리는 소리.

나에게 사랑의 정의는 그랬다. 누군가를 보고, 함께 있고, 만지고, 입 맞추면서 가슴이 떨리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 31쪽

 

 

*

 

"노화가 뭐니? 세포가 지치는 거야.

매일 같이 살아 숨 쉬고 움직이느라 지친다고. 사랑도 지쳐.

오래 함께 하다 보면 지치지. 변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

 

"평생 사이좋게 사는 부부도 있잖아?"

 

"물론. 열정이 애정으로 잘 승화한 케이스지. 건강하게 늙는 것과 마찬가지야.

 내 말은 사람의 온도가 식는다는 거지 서로에 대한 호감과 존경 자체가 사라진다는 의미는 아니었어."

 

"나와 종우씨는 지금도 온도가 뜨겁지 않아."

 

"그것도 사랑일 수 있어. 꼭 뜨거워야만 사랑인가?"    - 48쪽

 

 

 

그녀는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결혼 앞에서 불안해합니다. 꿈꾸는 사랑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와의 사랑은 꿈꾸던 사랑과는 좀 다릅니다. 살다보면 情으로 산다고도 하고 결국엔 결혼은 '현실'이니까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사랑'은 아무렴 어떤가, 하는게 요즘 시대라 괜히 사랑타령하는 것이 아닌가, 배부른 소리한다고도 비꼬아서 생각할 수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너무 쉽게 찾아오는 행운이라면 겁나는게 당연하지 않겠어요? 미래를 함께 나아가야하는 사람인데, 서로의 마음과 마음이 교감하지 않고 조건과 조건끼리만 만난다면 과연, 그 생활은 오래갈 수 있다, 장담할 수 있을까요?

 

 

미안해. 힘들어. 가지마. 슬프다. 기쁘다. 가슴이 아파. 반가워. 눈물이 나. 그리워. 행복해. 사랑해.

여명과 장만옥의 감정은 언어의 장벽을 넘어 전달되었다.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햇살처럼, 누구나 적셔버리는 비처럼.    - 103쪽

 

 

그녀, 사랑하나봅니다. 영화 <첨밀밀>을 자막없이 보았지만 저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대요. 예의안에서의 사랑이란 이름이 아닌, 그녀가 꿈꾸던 사랑의 이름은 바로 저런 것이겠죠. 머리가 느끼는 것이 아닌, 정말 내 가슴이 느끼는 말들이잖아요. 꿈꾸던 사랑을 해볼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세상에는 자신이 꿈꾸는 사랑을 못하는 사람도 분명 많겠지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사랑이란 없을테니까요. 현실과 책임이라는 단어앞에서 사랑은, 한없이 작아질 수 밖에 없지만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을 정도로 현실과 책임보다 훨씬 더 커다래지는 순간도 분명히 존재하겠지요. 마치 그것이 전부인냥 말입니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거리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 154쪽

사랑이란 필시 그런거겠지요. 현실에 쫓겨 앞만 보고 살아가다보면, 소중했던 순간, 추억, 기억들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현저히 줄어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건 바로 '사랑'이라는 것. '사랑'은 우리를 뒤돌아 볼 수 있게 합니다. 가슴이 풍선처럼 부풀어오르고 괜스레 부웅 뜨는 기분이 듭니다. 웃음이 떠나질 않고 모든 세상이 무지개빛으로 바뀔 수도 있겠지요.  발견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발견하게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 아니었던가요.

 

 

잊지 않는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사람도 사랑도 잊히는 순간, 죽는다.   - 262쪽

 

사랑은 그 자신 말고는 아무것도 주지 않고 아무것도 취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누군가를 소유하지 않고 또 누군가의 소유가 되지도 않습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 284쪽

 

누가 그랬다. 가난과 기침과 사랑은 감출 수 없다고.  - 290쪽

 

 

책읽기를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가 마음을 감출 수 없듯, 읽는 내내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정당하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단지 그녀는 그 사랑이 사라질까봐 두려웠기 때문에 남겨두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짜 사랑을 알고 싶었던 한 여자와 다른 색을 띈 두 남자의 사랑이 있을 뿐.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이런 소재도 이재익 작가님의 손길이 닿으면 다른 색깔로 변해버리는 구나,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씌여지긴 했지만 작가에 따라 그 색이 확연히 달라질 수 있을테니까요. 그만큼 그는 그녀의 이야기에 예쁜 옷을 입혀준 셈이지요.

 

같은 소재의 책을 두 권, 읽었습니다. 요즘들어 이런 소재를 많이 접하게 되는군요.

츠지 히토나리, <안녕 언젠가> 와 히가시노 게이고, <새벽거리에서> 이렇게 두 권입니다.

<노벰버 레인>은 이 두 작품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11월 비내리는 날 둘만이 허락된 방, 이라는 설정 때문인듯 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새벽거리에서> 란 작품에서 공소시효를 정해둔 것처럼 그들의 방 또한 제약이 있지요. 그렇기에 더욱 극적인 전개로 인해 흠뻑 빠져들었던 것 같습니다.

 

사진이 있는 소설이라기에 좀 더 기대를 했던 부분도 있었지만, 사실 사진은 조금 미약했던 것 같습니다. 사진은 거의 보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에 몰입했었거든요. 표지는 참 마음에 듭니다.

 

 

여러분도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사랑에 대해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그저, 사랑을 하고 있는 상대와의 관계를 돌아볼 수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그 시간이 서로를 더욱 소중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할테니까요. 사랑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다 아름답다, 말하고 싶습니다. 사랑은, 사람을 살게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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