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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음 / 학고재 / 2011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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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에 관한 소설은 왠지 모르게 접근하기 힘들어서 유명한 작가님인데도 불구하고 「흑산」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첫 대면부터 힘든 이야기라 나의 인식이 어떻게 박힐지 내심 걱정스러웠습니다. 역사소설을 아예 배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소설 쓰시는 작가분 중에는 김진명 작가님을 제일 좋아하지요. 문체에 박력이 느껴집니다. 강렬한 호소가 저로 하여금 온전히매료되게 만드시는 분이라 좋아합니다. 김훈 작가님은 어떨까요? 내용도 내용이지만 어떤 문체를 가지고 계신 작가님인지에 초점을 두고 읽었습니다. 처음부터 분석하려들면 쉽게 흥미가 떨어질지도 모르니까요. 무거운 소재라 지레 겁을 먹으며 시작했지만 가슴을 울리는 둥둥거림이 있었습니다. 문체가 퍽 마음에 들어 내용과는 상관없이 들여다 본 문구가 많습니다.

 

 

 

 

 

   정약전이 유배길에 올라 유배지인 흑산으로 가기 전 바다를 보고서 하는 말입니다. 저 어디 건너건너에 있을, 다시는 자신이 살던 곳으로 되돌아올 수 없을, 자신이 영영 갇히게 될 그곳을 바라보며 한없는 생각에 잠깁니다.  텅빈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이 소설에는 오고가는 풍경에 많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제가 가장 마음에 담았던 풍경은 바로 '길'입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이치인데 그것을 말로 옮겨놓고보니 그제서야 다시금 깨닫고 세상 모든 의미가 전부 들어 있음에 감탄합니다.

 

 

 

 

 

  이런 문체가 바로 김훈의 문체겠지요. 맑고 깨끗합니다. 가까운 곳이 아닌 먼 곳을 바라보는 형상. 나무보다는 숲 같은 느낌의 문체입니다. 읽는 내내 숲공기를 마시는 느낌이 들었던 것도 무리가 아니겠지요.

 

 

 

 

 

 

 

 

  흘러가는 풍경이 글에 자연스레 베여 저절로 한폭의 그림이 완성됩니다. 글로 풍경을 실감나게 하는 것이야 말로 작가의 참된 능력이 아닐까하는데요. 읽는 내내 산수화 속에서 글들이 헤엄치는느낌을 받았습니다. 고요하고 청아한 그런 느낌 말입니다.

 

 

 


   막연함과 막연함이 꼬리를 물며 한없는 생각에 빠지게 합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바로 세상인지라 손으로 잡으려해도 잡을 수 없는 아득하고 깜깜한 현실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안개를 걷고 앞으로 나아가려고해도 그저 다시 안개 속에 갇힐 뿐.

 

 

 


  그 무엇도 명확하다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일이 벌어지는대로 두 손 놓고 지켜만 볼 뿐입니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 그 안에서 그려내는 암담한 현실. 저렇게 사물에 생각을 띄우는 일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인 것을.....

 

 

  삶과 죽음이 지독하게도 얽혀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바로 신유박해. 천주교도를 박해한 사건이지요. 지금에야 이렇게 깊이 뿌리내려 있는 종교이지만 그것을 뿌리내리게 하고자 정말로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저는 종교에 의지하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종교라고 하는 것은 분명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대비는 어찌 삶 대신 죽음의 길로 뛰어드느냐고 하였지만 그들은 구원이라는 것을 통해 또 다른 삶을 영유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자기 몸하나 온전하게 살 수 없는 탈세와 굶주림에 찌든 삶에서 어떤 희망의 빛을 볼 수 있었겠습니까. 배교하여 살아남은 자들이나 천주를 증명하여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자들이나 그들 방식대로의 또 다른 삶을 택한 것 아니겠습니까. 삶과 죽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아득한 통로지요. 명확하게 안다고 할 수도 아예 모른다고도 할 수없는 그런 통로말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칠흙같은 어둠과 그 사이에 내리비칠듯 말듯한 빛줄기를 동시에 보고 있었습니다. 온전히 암흑같은 바다 속을 거니는 것 같다가도 이 안개가 조금만 걷혀지면 또 다른 빛이 보일 것 같기도 했습니다. 가벼이 넘길 수 있는 소재가 아니어서 읽는 내내 갑갑했지만 풍경같은 문체가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김훈, 가히 멋진 작가인 것 같아요.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그들의 넋을 기릴 수 있는 책이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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