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기 신간평가단 활동 안내
<소설>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2010년 에드거 상 최우수 소설 상 수상작. 2006년 데뷔해 단 세 작품으로 두 번의 에드거 상 최우수 소설 상을 거머쥔 존 하트는 변호사 출신 스릴러 작가들의 보편적인 노선에서 탈피, 인간과 사회를 어우르는 시선이 담긴 수준 높은 작품으로 평단과 독자 모두를 사로잡으며 명실상부한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릴러 작가로 떠오르고 있다. <라스트 차일드>는 그의 세번째 작품이다.  그는 작품 속에서 선과 악, 가해자와 피해자 그 어떤 편에도 서지 않은 채 인간 군상 하나하나의 리얼한 모습을 그리고자 한다. 존 하트는 상처받은 한 가족과 그들을 죽음으로까지 몰고갈 수 있는 비밀들에 관한 이야기를 켜켜이 쌓으면서 대단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스릴러와 미스터리가 얼마나 문학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참으로 대단한 작품.

 

 존하트 - 라스트 차일드   지인의 블로그에서 강추하는 책이었어요. 제목을 보고는 사실 감흥이 별로 없었는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의 눈을 보고선 내용이 심상치 않겠다 싶더라구요. 처음에는 에세이인 줄 알았어요. 지구 반대편 우리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슬픈 현실을 다루고 있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는데 엄청나게 상을 많이 받은 작가군요. 한국, 일본 작가들의 책만 주로 읽다보니까 해외작가들에 대해서 너무 무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선과 악, 가해자와 피해자 그 어떤 편에도 서지 않았다' 라고 하니 그만큼 냉철하다는 이야기죠. 담담하게 묘사하는 문체들을 접하다보면 오히려 감정적인 문체보다 더 섬뜩하게 다가올 때가 많아요. 숨죽이면서 읽게될 것 같은 책이예요. 지인들의 평도 워낙에 좋고, 많은 분들이 추천하는 책이라면 역시 이유가 있겠죠? 정말 기대되는 작품이예요. 꼭 읽어보고 싶네요.  

 

독설과 로맨스,
기묘하게도 잘 어울리는 두 극단적 요소의 조합


1930년에 발표된 《맹독(Strong Poison)》은 삭막한 제목과는 달리 유머와 낭만이 어린 소설로, 이 작품에서 독자는 피터 경의 인간적인 면모를 목격할 수 있다. 평생 독신으로 살 것 같은 피터 경은 전 애인을 독살한 혐의로 법정에 선 피고에게 한눈에 반해, 그녀의 무고를 증명하기 위해 사건에 뛰어든다. 독살과 로맨스라는 이 극단적 요소의 조합은 언뜻 기묘해 보이지만 의외로 잘 어울린다. 《맹독》은 이처럼 치명적인 두 소재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시리즈 주인공의 인생을 어떻게 변하게 하는지를 보여주는 낭만적인 추리소설이다. 
  

 

도로시 L. 세이어즈 - 맹독  추리소설이 낭만적일 수 있다니요. 제목으로 확 끌리고 표지로 매혹되어버린 책이예요. 고전이라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고전에 살짝씩 눈을 떠가고 있는 중이랄까요? 책이 읽히지 않을 때는 과감히 추리소설을 선택하게 됩니다. 잃었던 흥미를 바로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은 아마 추리소설이 으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만큼 빠져들기 좋은 장르지요. 그런데 이 시기에 쓰여진 추리들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에서 범인의 윤곽은 비교적 일찍 드러난다. 관건은 범인이 아니라 어떻게 독을 주입했는지 그 수법을 밝혀내고 증거를 찾는 것.   이라고 하는데요. 이 점이 굉장히 마음에 들더라구요. 법의학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편인데, 사인을 밝혀내는 과정이 참 흥미롭잖아요. 고전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수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로맨스요소도 가미되어 더욱 흥미로울 것 같아요! 

  

  

제4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 개정판. 뇌종양 판정을 받은 어머니에 대해 아들을 중심으로 한 가족들이 느끼는 고통과 그 극복과정을 그린 독특한 향기의 소설이다. 자칫 무겁고 진부하기 쉬운 주제를 담백하고 잔잔하게 서술한 것이 큰 강점이며, 여기에 시 읽기로 다져진 특유의 밀도 있는 문체가 주목할 만한 작가의 탄생을 기대하게 한다는 평이다.

 

 

김곰치 -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 가을에는 서정적인 책이 제격이죠. 요새는 표지들이 다 얼마나 예쁜지요. 표지와 글씨체에 끌렸어요. 작가님의 필명이 굉장히 재밌어요. 아직 한번도 접해본 적 없는 작가분인데 이번 기회에 만나볼 수 있게 될까요? 요즘 다들 가족들과 둘러 앉은 식탁 자주는 힘드시죠? 바쁜 일상 속에서 잊혀져가고 있는 의미, 바로 가족입니다. 추석 때 모였던 가족들도 이제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바쁘게들 지내고 계실 겁니다. 자칫하면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돌아볼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싶어요. 자식들 떠나간 자리에 멍하니 앉아계실 어머니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괜스레 짠-하네요. 소중한 것을 잃고 난 후에야 돌아보지 말고, 함께 있을 때의 소중함을 되새겨보자는 의미에서 읽어보고 싶습니다. 날씨도 쌀쌀하니, 따끈한 칼국수가 생각나는군요.  

 

 

개정전에는 이런 표지를 하고 있었군요. 칼국수 냄새가 솔솔 날 것 같지 않으세요?  99년에 출간되었었네요. 예쁜 표지로 만나볼 수 있게 되어 더욱 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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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신간평가단 2011-10-11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크 완료했습니다! 첫 미션 수행 고생 많으셨습니다~

킴나 2011-10-12 09:0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늘 고생많으십니다 ㅠ_ㅠ
 
19 29 39 - 열아홉, 스물아홉, 서른아홉 그녀들의 아슬아슬 연애사정! 소담 한국 현대 소설 2
정수현.김영은.최수영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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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사귄 약혼자 29. 6개월 된 39. 100일 된 19.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카페에서 여자 세 명이 만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살아온 경험치가 다르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가치관도 무척이나 다른 세 사람. 하지만 한 남자를 사랑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하죠. 그런데 어떻게 세 명을 돌려가면서 만났을까요. 이 파렴치한은! 그럼에도 그녀들은 좋은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 고로 진짜 나쁜 남자인거죠. 저는 연애를 오래해서 그런가, 한 사람을 오래 만났으면 만났지. 한 사람을 만나면서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는 사고 방식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보수적인게 아니라 당연한거 아닌가요. 서로에 대한 예의죠. 예의. 하긴, 그렇게 치면 그 한 사람 한사람을 만날 때마다 최선을 다했다고 그것 자체를 인정해줄 사람도 분명히 있을테죠. 그렇게 인정해주는 사람은 함께 있었던 당사자들이겠지만요. 자신이 하찮은 존재가 되는 것은 아마 원치 않을테니까. 함께 있을 때만은 그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고 싶었을 테니까요.





 19의 이야기를 쓰신 김영은 작가님의 말. 열아홉 때는 저런 느낌이셨다고 하네요.
무서울 것이 없는 10대. 포기도 빠릅니다. 그저 좋으면 마음가는대로 하는 나이라죠. 하지만, 저랑은 좀 먼 이야기였어요. 저는 집에서는 모범생(?) 스타일이었으니까요. 좋게 말하면 그렇구요. 그냥 안 거스르고 조용히 지내는 착한 아이였답니다. ㅎㅎㅎ ;;; 사랑하면 그가 약혼자가 있든 어떻든 상관없다는 무서운 19. 하지만 애는 애더라구요. 귀여웠습니다. 나도 저렇게 철없어 볼 걸, 하는 생각도 잠깐  ㅋㅋ




29. 의 이야기를 쓰신 정수현 작가님. <셀러브리티>, <압구정 다이어리>의 저자시기도 하죠. 제 나이대라서 그런지 생각이 조금 비슷한 것도 같아요. 19, 39의 이야기는 그냥 물 흐르듯 흘러갔는데 29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읽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결혼할 때가 되어서 그런지 거기에 촛점이 맞춰지더라구요. 가장 공감가는 이야기도 많고, 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님이라서 그런지 편애를 좀 했네요.
저의 열아홉, 스물아홉이 거의 똑같듯이 서른아홉도 그럴거라고 생각해요. 한곳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제 나이의 색깔은 아마 쭈욱 노란색일 것 같아요. 톡톡 튀는 철없는 노란색말구요. 태양을 바라보는 그윽한 눈빛의 노란색이었으면 더 좋겠네요.




39의 이야기를 쓰신 최수영 작가님. 어딘가 모르게 책임의 무게가 많이 실린 느낌이었어요. 저도 가정을 꾸리게 되면 이런 느낌이 날라나요. 너무 주눅들지 않고, 찌들지 않으면서 딱 지금의 나이처럼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는데, 너무 큰 바람일런지요.





 어느 한 부분도 빼놓기 싫더라구요. 페이지 꽉꽉 채워 마음에 꼭 담은 글들입니다. 29의 4round 부분입니다. 또 다른 사랑에 겁나더라도 다시 손을 뻗어보는,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찾으려고 하는 29의 모습이예요. 39보다는 덜 현실적이죠. 미래보다는 사랑을 좇는 여자니까요. 저는 39가 되더라도 남들 시선보다 내 행복이 더 중요했으면 좋겠습니다. 가정을 꾸리면서 저의 본연의 모습을 잃는 것도 원치 않아요. 나답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볍게만 느껴졌던 이야기. 약간은 속물스러운 설정때문에 썩 와닿지는 않았지만 처음 읽었을 때보다 두번 째 읽었을 때 감회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다시 읽으면서 새로이 소녀, 여자, 엄마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방식은 달랐어도 여자에게는 사랑이라는 것이 무척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씨앗이 열매로 영그는 과정이라기 보다 각자의 열매의 시각으로 그 사람의 입장에 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물론, 가장 공감되는 이야기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죠. 자신의 현재의 시점에서 바라볼 가능성이 크니까요. 한 남자를 사이에 둔 찝찝한 사이이지만 '여자'로써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각자의 시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들을 하면서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지나간 19, 다가올 29, 39 에도 제 사랑은 저 자신에게 당당하고 멋졌으면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앞으로 다가올 19 29 39 에게도 화이팅을 외쳐드릴께요. 예쁜 사랑하면서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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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심장
캐서린 라이언 하이드 지음, 권도희 옮김 / 서울문화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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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체의 신비는 참으로 놀라운 것 같아요. 인간이야 신이 창조했겠지만 의학의 발달로 인해서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범위가 굉장히 넓어졌죠. 사람의 장기를 옮길 수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 옮긴 장기로 다른 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은 굉장한 걸 만들어 냈어요. 이것이 악용되면 안되겠지만.

제목은 꼭 생로병사의 비밀, 처럼 군더더기가 없어요. 말 그대로 두번째 심장에게서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다른 부위도 아닌 심장을 기증하려는 보호자가 과연 많을까요? 저 혼자 생각으로는 만약 불가피한 상태로 내가 죽게된다면 기꺼이 기증할 마음이 있습니다만, 이것을 가족들에게 알렸을 때는 굉장히 좋지 않은 반응으로 돌아오더라구요. 은연중에 기증센터에 등록하고 싶다는 말을 던진 적이 있어요. 이런 장르의 소설을 많이 접한 것도 영향이 컸겠지만, 저는 생명을 참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갖 태어난 아이가 이 넓은 세상을 아픔으로만 기억하는게 참 안타깝더라구요. TV나 신문기사를 통해서 -어르신들보다 아이들이 - 희귀병 등에 걸려 아픈 모습을 볼 때마다 내 생명에 지장이 없는 한 떼어줄 수 있는게 있다면 떼어주고 싶다고 느껴요. 만약 내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꼭 이 세상을 더 살아볼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더 이상은 저에게는 필요없으니까요.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제 남자친구의 반응은 끔찍합니다. "사고가 났다고 쳐. 그런데 신원을 확인하고 장기기증등록자로 되어 있다면 보호자들이 어쩔 세도 없이 너의 장기는 떨어져 나가. 온전히 그것은 네 것이 아니야. 네가 가지고는 있지만 부모님이 물려주신 건데 그렇게 함부로 들어낸다는 게 남은 사람들에게 어떨거 같아?" 라구요. 물론 그 말도 맞습니다. 도리가 아닐 수도 있지만 죽은 자와 살아야할 자는 확연하게 드러나 있지요.
이 책에는 그런 입장차이를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서우리만큼 현실적인 반응들이죠.



 저희는 살아있으니까, 이런 기분을 절대 이해할 수 없을겁니다. 다음날 확실하게 깨어날 것이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19살인 비다는 태어날 때부터 심장이 약해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피한 소녀입니다. 19살을 버틴 것도 신기할 정도. 그런 아이기에 죽음과 너무 가깝게 지내고 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는 심장이식을 통해서만 없앨 수 있습니다. 몇 차례 고비를 넘겼기 때문에 생과 사의 경계를 알고 있는 아이입니다. 작고 여린아이에게 너무 가혹한 현실이죠. 하지만 저렇듯 담담합니다. 아픈만큼 성숙해지는 것은 맞지만, 이런 비다의 모습은 참 안스러웠습니다. 심장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아픈 세상말고, 더 좋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사랑하는 여자를 잃은 리처드의 장모가 리처드에게 하는 말입니다.
저는 이 글귀를 한참 곱씹어보고는 한참을 울었습니다. 꺽꺽- 소리내서 운 것은 아닙니다. 또르르. 하지만 목이 아프더라구요. 울분이 섞여있었나 봅니다. 이 글을 눈으로만 훑는데도 눈물이 고이는 군요. 참 고맙게 뛰어주는 나의 심장. 온갖 감정을 함께 하는 내 마음의 중심부. 하지만 나는 심장이 건강하기 때문에 한번도 내 심장에게 고마워해본 적이 없네요. 부끄럽게도 말입니다. 장모가 이야기하는 한낱 장기로 생각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리처드에게는 사고로 이 세상을 떠난 로리의 마음이었습니다. 단순한 장기가 아니었습니다. 그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갔다면, 자신을 향한 로리의 마음도 그렇게 옮겨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둘은 많이 사랑했고, 쉽게 놓아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으니까요. 리처드는 다른 사람에게 옮겨서라도 로리의 마음을 잃고 싶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런 남자의 사랑을 받았던 로리는 참으로 행복한 여인이었을 거예요.



 리처드에게 로리는 이런 존재였대요. 우리 몸의 70%를 차지하는 물. 로리는 그만큼 중요한 존재였던 겁니다. 저도 제 사람에게 이런 차분함과 침착함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죽으면 행복한 일만 가득할까요? 한에 깊게 둘러싸여 돌아가신 분들을 보면 대부분 눈을 뜨고 계신대요. 그만큼 이 세상이 한스럽고 억울하고 원망스러워서라고들하잖아요. 그 분들을 이제 다른 세상으로 보내드릴 때 거기가서는 행복하게 살아, 하면서 눈을 감겨드리는데 이 대목에서 자꾸 그 생각이 나더라구요. 이 생에서 아팠던 사람은 그 아픔을 남기고 갈 수가 있을까. 거기서는 꼭 행복할 수 있을까하구요. 좋은 것만 볼 수 있는 세상도 존재해야된다고 생각해요. 아프기만 한 인생은 너무 불공평하니까요.



그녀와의 역사가 시작되었던 곳에서 마음을 정리하고 있는 리처드예요. 심장을 이식받고 나서 얼마동안은 그 심장이 기억하는대로 행동에 묻어난다는 말. 일리가 있는 것 같아요. 전적으로 믿고 싶기도 하구요. 기사에도 난 적이 있잖아요. 피해자의 심장을 이식받은 사람이 그 범행을 기억해내서 범인을 밝혔다는 내용, 들어본 적 있으시죠? 지금의 의학,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지만 저는 심장이 그저 장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분명 뇌와는 별개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 많을거예요. 이 세상에 증명되지 않는 진실은 참으로 많으니까요. 로리의 심장을 이식받은 비다에게서 로리를 볼 수 있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을겁니다. 로리로부터 왔지만, 주인이 바뀌었잖아요. 식성이나 그런 것도 예전 주인을 닮아갈 수도 있다고 하지만 비다는 비다일 뿐이니까요. 현재의 주인의 의지대로 바뀔테죠. 비다는 리처드를 사랑한다고 믿었지만, 그것은 로리가 그를 원한 것이었겠죠? 다른 주인에게가서도 사랑했던 사람을 잊지못하는 로리의 심장때문에 슬펐습니다. 로리와 리처드가 만났던 그 곳에서 비다가 장미꽃을 던지는 부분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아요. 가보고 싶습니다. 그들의 추억의 장소, 그랜드캐년의 노스림.

로리, 그녀는 떠났지만 비다에게 건강한 생명을 주었습니다. 덕분에 비다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지요. 주인의 심장과 하나되는 과정을 겪으며 조금은 더 성숙해졌을 그녀입니다. 두번째 심장의 건투를 빕니다. 이제는 행복하기만을 바라겠습니다. 리처드도 새로운 책꽂이를 통해 다른 행복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도 로리는 잊지 않을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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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언젠가 - 개정판
츠지 히토나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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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예쁜 초콜릿 색 표지가 가을에 딱 어울립니다. 표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읽고 있는 내내 입이 가만 있지를 못하더라구요. 평소 좋아하지도 않는 초콜릿 쿠키를 콱 깨물어 먹었습니다. 초콜릿이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 준다고 하잖아요. 이 책을 읽는 동안 전, 내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안절부절 못하고 이리 끙끙 저리 끙끙. 입이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이 초조한 마음을 달랠길이 전.혀. 없었습니다. 왜냐구요?
결혼을 앞둔 한 사내 앞에 예기치 못한 유혹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결혼식까지 넉달이 남은 상황에서 어떤 낯선여자로부터의 유혹, 그것이 만약 당신에게 들이닥쳤다면 어떠실 것 같으세요? 
저는 이 책을 읽기까지 무려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워낙 외설적인 것은 회피하는 경향이 있는데다 짝사랑, 해바라기 사랑이 전문인 저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 소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도입부가 굉장히 외설적이예요. 결혼한 남자를 꼬득이는 여자도, 거기에 넘어가는 남자도,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 4년전까지는 말이죠.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하고, 제 나이도 한살 두살 먹어가면서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이 책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혼하신 분들의 말에 의하면 결혼하기 전에 굉장히 싱숭생숭하대요. 어쩌면 평생을 함께 해야할 반려자를 결정하는 일이 쉬울 턱이 없지요. 이것 저것 준비하면서 싸울 일도 무지 많아진다고 하는데, 그 때를 잘 넘기면 상관이 없지만 준비하다가 헤어지는 커플들도 많더라구요. 살면서도 이혼하는 세상인데 자신에게 꼭 맞는 사람이란게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요.




유타카의 결혼상대, 미츠코. 그녀가 지은 시예요. 유타카가 어떤 잘못을 저지르던지 다 감싸안아줄 것 같은 그녀. 진정한 현모양처감인 것 같아요.

여러분은 사랑받은 기억과 사랑한 기억 중 어떤 기억을 떠올리고 싶으세요?
저도 첫 대답은 사랑받은 기억을 떠올릴 것 같다였어요. 내가 죽게 될 때 나를 위해 울어줄 단 한사람만 있어도 행복할 것 같다고, 늘 생각하거든요. 이 말인 즉슨, 사랑받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은 쪽이 아닐까. 그런데 미츠코의 시를 보고 있자니 이 말도 참 일리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정으로 사랑해봤기 때문에 죽어도 후회없다는 뜻일까요? 여기서 유타카와 그녀를 유혹했던 토우코의 안타까운 사랑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넉달동안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는 생각나지 않는다, 추억일 뿐이다, 하고 서로의 감정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세뇌시키는 두 사람. 그리고 그 가운데 아무 것도 모르는 미츠코가 있습니다. 그저 유타카를 믿는 거예요. 그 사랑을 소중히 하고 싶어서 쉽사리 고백하지 않는다는 거짓말을 미츠코는 믿어버려요. 그만큼 유타카를 사랑해서겠지요. 오로지 동반자였던 미츠코, 유타카의 진짜 사랑 토우코. 그들의 사랑은 어쩐지 모르게 슬퍼요. 금방 부서질 것만 같은 얼음조각 같았지요.






토우코는 당당하고 멋진 여성이었어요. 유타카를 향한 마음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정열적이었죠. 그에게 사랑받는 것만이 그녀의 삶의 이유가 되었어요. 무모하지만 부럽기도 합니다. 불타는 사랑, 살면서 꼭 한번쯤은 해보고 싶어하잖아요. 딱 한 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믿으면서 말이지요.



미츠코의 사랑관이예요. 이끌림이 있는 여성은 아니었지만 그녀 자체만으로도 빛나는 사람이었어요. 바람직한 여성상이라고나 할까요? 토우코가 장미같다면, 미츠코는 들꽃 같아요. 두 사람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유타카는 정말 복받은 사내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네요.

앞에서도 언급했었지만 이 책은 정말 초콜릿같아요. 꼭 표지의 영향때문만은 아니예요. 단맛을 좋아하는 초콜릿의 맛이 아니라 단맛을 좋아하지 않는 (어쩌면 극도로 그것을 피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 느끼는 초콜릿맛이요. 그런 사람이 초콜릿을 접하게 되면요. 정신이 몽롱해져 그것이 단맛인지 무슨맛인지를 느끼지 못하고 나중에는 그냥 원래 그것을 좋아했던 냥, 아니면 먹을 수 밖에 없는 상태에 이르러요. (그냥 무의식 중에 집어넣는다고 하는게 맞을지 몰라요.) 제가 꼭 그랬거든요.  실컷 그것을 입에 집어넣고 나중에서야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했습니다. 씁쓸함이 남았어요. 초콜릿보다는 카카오에 가깝다고 하는 게 맞을까요. 의도하지 않은 이끌림, 혹은 빠짐. 그런 중독성이 있는 책이었어요. 빠져들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결국엔 빠져든 책이었습니다. 일본의 연공서열은 무서울 정도예요. 사람이 모험보다는 안정을 좇는게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겠죠.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아직은 더 많으니까요. 결국엔 안정된 생활을 위해 그 사랑을 방치해둘 수 밖에 없잖아요.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겠죠. 단지 넉달이었을 뿐인데요. 다른 의도로 접근했다가 넉달동안 불타올랐고, 그것이 인생의 전부가 되다니. 현실을 선택하고 가슴안에만 숨겨두어야 하는 사랑은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30년이 지났는데도 간직할 수 있는 사랑이란게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요? 이루어지기를 바랬던 사랑은 아니었지만 애잔한 마음이 드는 사랑, 그리고 이별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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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11-09-28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우리 유키. 평가단 되서 신나써열 ?
 최선을 다해보자 ㅎ
 
 
아가미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생활고로 작은 아이하나 제대로 길러내지 못해 죽음을 택하게 되는 남자. 아이와 함께 이 생을 마칠 생각이었지만 아이는 가까스로 살아남았습니다. 살아남았다기보다, 아가미가 있어 물에 빠져도 스스로 호흡하지 않아도 숨쉴 수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살아갈 운명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내촌의 노인과 강하에게서 발견되어 다른 삶을 시작하게 되는 곤. 보통 사람과 다르게 태어났다는 것,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 조그만 아이는 알고 있었을까요.



  어미가 버리고 간 상처때문에 이곳저곳 다 뾰족한 강하. 할아버지가 곤을 이내호에서 구하는 바람에 어쩌다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이제라도 곤을 세상밖으로 내보내고 싶어했지만 보통 사람과는 다른 몸을 가진 곤이 제대로 살아내지 못할까 걱정하는 쪽은 강하였습니다. '곤'이라는 이름도 강하가 지어줬대요. 괜히 심술부려 고기새끼, 잘 불러줘야 금붕어였지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사랑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서툴지만 그의 방식대로 곤을 사랑했습니다. 아마도 곤, 이라고 이름을 불러주면 정말 떠나보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 건 아닐까요? 곤 그리고 강하를 보고 있자니 시(詩)가 생각이 납니다.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그들은 아마 이 세상에서 제대로 존재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미에게 버림받고 할아버지 손에 길러지던 강하이기에 늘 불안정한 자신의 존재를 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곤 또한, 다른 형상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세상과 어울릴 수 없기에 그저 강물에 둥둥 떠다니는 물고기처럼 세상에 속박되지 않고 살아가야만 하는 인생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대로 존재하지 못하는 그들이 만나 서로에게 꽃이 되고 살아가는 이유가 됩니다. 서로가 안고 있는 상처를 상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들은 벌써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될테지요.

이 책을 읽는 동안 톡톡 터지는 꽃망울처럼 눈부신 빛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곤의 몸이었고, 서로 존재하기 위한 몸짓이었습니다. 구석구석 글들이 물내음이 되어 흐릅니다. 강물에서 헤엄치는 것 같았고 여유로운 아가미의 팔랑임이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햇빛에 반사되어 흐르는 물이 반짝이듯이 그렇게 눈부신 빛을 머금고 있는 글이었습니다. 곤의 이름을 나지막히 불러봅니다. 그의 아가미는 더이상 드러내지 못할 상처가 아니라 아름다움 그 자체였습니다. 푸른 빛을 띈 슬픔의 이름 같지만, 결코 슬프지만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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