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미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생활고로 작은 아이하나 제대로 길러내지 못해 죽음을 택하게 되는 남자. 아이와 함께 이 생을 마칠 생각이었지만 아이는 가까스로 살아남았습니다. 살아남았다기보다, 아가미가 있어 물에 빠져도 스스로 호흡하지 않아도 숨쉴 수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살아갈 운명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내촌의 노인과 강하에게서 발견되어 다른 삶을 시작하게 되는 곤. 보통 사람과 다르게 태어났다는 것,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 조그만 아이는 알고 있었을까요.



  어미가 버리고 간 상처때문에 이곳저곳 다 뾰족한 강하. 할아버지가 곤을 이내호에서 구하는 바람에 어쩌다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이제라도 곤을 세상밖으로 내보내고 싶어했지만 보통 사람과는 다른 몸을 가진 곤이 제대로 살아내지 못할까 걱정하는 쪽은 강하였습니다. '곤'이라는 이름도 강하가 지어줬대요. 괜히 심술부려 고기새끼, 잘 불러줘야 금붕어였지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사랑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서툴지만 그의 방식대로 곤을 사랑했습니다. 아마도 곤, 이라고 이름을 불러주면 정말 떠나보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 건 아닐까요? 곤 그리고 강하를 보고 있자니 시(詩)가 생각이 납니다.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그들은 아마 이 세상에서 제대로 존재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미에게 버림받고 할아버지 손에 길러지던 강하이기에 늘 불안정한 자신의 존재를 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곤 또한, 다른 형상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세상과 어울릴 수 없기에 그저 강물에 둥둥 떠다니는 물고기처럼 세상에 속박되지 않고 살아가야만 하는 인생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대로 존재하지 못하는 그들이 만나 서로에게 꽃이 되고 살아가는 이유가 됩니다. 서로가 안고 있는 상처를 상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들은 벌써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될테지요.

이 책을 읽는 동안 톡톡 터지는 꽃망울처럼 눈부신 빛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곤의 몸이었고, 서로 존재하기 위한 몸짓이었습니다. 구석구석 글들이 물내음이 되어 흐릅니다. 강물에서 헤엄치는 것 같았고 여유로운 아가미의 팔랑임이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햇빛에 반사되어 흐르는 물이 반짝이듯이 그렇게 눈부신 빛을 머금고 있는 글이었습니다. 곤의 이름을 나지막히 불러봅니다. 그의 아가미는 더이상 드러내지 못할 상처가 아니라 아름다움 그 자체였습니다. 푸른 빛을 띈 슬픔의 이름 같지만, 결코 슬프지만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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