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사랑이다 2
피에르 뒤셴 지음, 송순 옮김 / 씽크뱅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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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걸림돌이 많다면, 사랑이라는 거 이룰 수나 있을까.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픈 것만이 남겠지만, 난 그녀가 참 안됐다. 오로지 사랑만을 위해서 살다가 제대로 된 인생의 꽃도 피워보지 못한 채 그렇게 시들어야 했으니까. 결혼도 즉흥적으로 해버렸고, 덜컥 아이를 가졌고, 그것만으로 행복할 것 같았던 그녀의 인생은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남편에게 버림받는데서 부터 뒤틀리기 시작한다. 어쩌면 그게 그녀 인생의 뒤틀림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이 바탕에 깔린 사랑이라는 거, 이런거 아니던가? 사랑하는 사람과 그 사이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며 너무 요란하지도 않은 소소한 일상을 누리며 평범하게 사는 것. 그것을 꿈꾸던 소박한 그녀가, 갑자기 날아든 남편의 태도때문에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뀌어버렸다. 아이를 생각하지 않고 해버린 결혼이라니. 그 남편도 참 무책임하지. 그래도 아이를 그녀가 키우면서, 힘들게 교사가 되기 까지 묵묵한 그녀의 삶을 응원했기에 평범한 사랑이 찾아오길 바랬지만 그 마저도 신은 허락치 않더라.

정말 쉴새없이 등장하는 장애물들 때문에 속이 미칠 지경이었다. 그냥 그들을 내버려두었으면 하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 속에서도 그들은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들의 관계 속에서 울부짖어야했고, 한없이 아프기만 한 것 같았다. 실화라니. 정말 그들은 해도 해도 너무 했다.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인데, 자신들이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닌데 굳이 그렇게 까지 해야했을까 싶다. 도와주는 사람보다 훼방놓는 사람이 더 많았다. 어째서, 세상은 이리도 불공평한건지. 법이라는 공권력 앞에서 사랑은 그저 한낱 초라한 것일 뿐이다, 라는 것을 다시 입증해 보이는 씁쓸한 결말이었다.

그녀가 사랑보다, 그녀의 삶을 더 사랑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결론이 이렇게 마무리되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가 삶의 전부였다. 그녀에게는 선택의 여지같은 건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세상은 인간에게 상처를 입힌다. 대부분의 인간을 상처를 입힌다. 그리고 상처 입은 부분에는 못이 박힌다. 상처 받지 못한 인간은 짓눌려 죽게 된다…….' (190쪽) 그녀는 점점 삶의 끈을 놓아간다. 마음껏 그를 사랑할 자유를 바랬으나 그녀에게 그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저 세상이 쏘아대는 총과 칼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철철 흔건하게 피를 흘리고 있었다. 가엾은 다니엘. 사랑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을 즐기는 것일까. 그것마저도 사랑이라 불리울 수 있는 것인지. 사랑하는 제라르! 태양이 존재한다고 말해 줘. 그리고 진실과 순수함은 이 세상의 것이라고……. 이런 것들이 나의 몽상은 아니었다고 말이야. (191쪽) 이 구절에서 눈물이 툭, 하고 떨어졌다. 태양, 이라는 말이 이렇게 가슴 시릴 거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데. 가끔 이 구절이 나의 머릿 속을 맴맴돈다. 태양이 존재한다고 말해줘! 그녀가 나를 향해 울부짖는 것 같다. 나의 사랑만큼은 어떤 고통이 와도 절대 놓지 말라고 말이다. 그럴께, 다니엘. 약속해!

"나의 소원은, 적어도 내 주변에서 벌어진 일들이 무엇인가 도움이 되었으면, 비록 그 문제가 파국의 양상을 드러낸다고 해도, 비록 그 문제가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비록 그 문제가 패배의 모습으로 다가올지라도 더 이상은 그 누구도 희생되질 않기를 바랍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저항이 죽음이라면, 이제 남은 자가 할 일은 승리를 쟁취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존재 이유마저 부정한 사회를 나는 거부했으나, 누군가는 끝까지 남아 싸워야 합니다." (에필로그 227쪽) 사랑이라는 이름을 고귀하게 지키고 싶었던 그녀, 다니엘. 사랑이라는 것만 생각해 아름답게 보듬어 줄 수 있는 그런 날이 올지 오지 않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세상의 잣대로 무조건 비난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며, 지킬 수 있는 사랑은 지켜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니엘과 제라르의 아픔으로 사랑의 의미를 다시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아픔이라는 이름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누구도 갈라놓지못한 그들의 사랑. 죽음에 닿았지만 그것은 우리들 가슴에 아픔보다는 순수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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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사랑이다 1
피에르 뒤셴 지음, 송순 옮김 / 씽크뱅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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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이름, 사랑이라는 것. 이 단어 앞에서는 그저 모든 것이 무기력해져 버리고 만다. 저마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의 정의가 다르다. 사람의 감각에 따라 달라지는 이름이기 때문이리라. 달콤할때도 있고, 한없이 가슴시릴 때도 있다. 무작정 기다리는 것도, 애가 타는 것도, 마음이 쉴새없이 콩닥거리는 것도, 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만들어내는 여러가지 얼굴이 아닐까.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사랑의 얼굴은 순수함 그 자체였다. 지고지순하며 깨끗한 결정체의 느낌이었다.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곳에서는 지극히 보기 드물게 되어버린 순결한 사랑. 순수하고 순결한 것은 어느순간 깨어지고 마는 것일까. 

제자와 사랑에 빠진 여교사의 이야기. 순간, 세간에 떠돌던 그 사건이 생각이 나버렸다. 제자를 불러내 성관계를 가지고서 마녀사냥의 한가운데에 섰었던 그녀 생각이 났다. 물론 그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관계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일종의 뭔가를 채우기 위한 것이었을 뿐. 이 책 속의 그들의 사랑과 비교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세상이 눈살을 찌뿌리는 중점에 그들이 서있었다는 것에서 나의 시선이 교차되었을 뿐이다. 사랑은 이렇게 힘든 가운데에서, 세상을 등지면서까지 이루어야하는 무언가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왜 일까. 이렇게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을 해보지 않은 것이 아니다. 나 또한, 가족들 눈에 내키지 않는, 소히 반대되는 사랑을 해봤다. 그것에는 많은 용기와 노력이 따른다. 가족들을 저버려야 한다. 가족들에게 등을 돌릴만큼 그 사람과의 신뢰가 두텁게 쌓여 있어야 하는데, 어린 나이에 그것이 성립되기란 쉽지가 않다. 내가 어렸기 때문에 미숙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어른들, 가족들의 의견을 따라야한다고 믿었던 때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요즘 아이들은 좋고 싫고가 참 분명하다. 그만큼, 포화상태에 이르른 정보 속에 살고 있고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그 이상으로 아이들이 알고 있는게 더 많다. 알지 말았으면 하는 것도 벌써 알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지금 세상은 비밀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내가 살고 있던 세계와는 다르다. 그래서 제자와의 성관계가 세상에 알려질만큼 참 무서운 곳이 되었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면 사랑은 당연히 버려야하는 것인가. 물론,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는 죄가 된다. 내가 일전에 보았던 그 사건과 이 책의 다른 점은 그들 사이에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성관계가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제자와 여교사의 만남자체를 걸고 넘어지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만든 도덕이요, 법칙이다. 그들의 나이 차이가, 우리가 만든 도덕과 법칙이 사랑에 대한 가해자이다.

그들이 말하는 사랑은 이런 것이다. 사랑이란, 서로의 그리움을 확인하는 곳에서 완성되는 게 아닐까. 나는 그녀의 가슴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당장에라도 숨이 막혀 죽어버릴 것 같은 공포가 내 등을 마구 떠밀고 있었다. (153쪽) 사랑이라는 감정에 어느 정도 무뎌진 내가 이 구절과 마주했을 때, 그리움도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는 글자들이 사랑스러웠다. 그들은 한없이 서로를 그리워하고 애틋해한다. 이런 감정 앞에 나이란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저 순수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한편의 시처럼 잔잔하고 아름다운 물결같은 느낌의 구절들이 많다. 사랑이여, 조금만 기다려다오. 조금만 더 단단히 옷깃을 여미고 너의 추운 몸을 가지고 있어다오. 오직 단 하나의 사랑을 만나기 위해 여기 한 사내가 눈물과 함께, 가슴 저미는 그리움과 함께 달려가노라……. (153쪽)  사랑을 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잃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만난 구절들은 나를 추억 속에서 춤추게 했다. 그리고는 더이상 나이에 관한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그들의 사랑을 그의 가족들이 인정해주기를 바라며, 으쌰으쌰 그들의 사랑을 응원할 뿐이었다.

아프니까 사랑이다 1권에서는 그들의 순수한 사랑의 시작과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맞서 싸워야하는 것들이 조금씩 떠오르고 있다. 그들이 얼마나 힘겨운 여정을 가게 될지를 보여주는 서막이다.
한편의 청춘드라마를 보는 느낌이었다. 사랑이 시작될 때의 그 찰나의 찌릿함, 묘한 분위기. 진부하지만 우리가 다시 찾아야만 하는 순수함, 순결한 느낌의 사랑.
그들의 사랑은 아프지 않기를 바라지만, 아프니까 사랑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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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 2010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 수상작
에릭 파이 지음, 백선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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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순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삶이 뒤틀려버린다면 당신은 어떻겠는가.

 

이런 물음을 던지게 만들었던 「나가사키」나에게는 사각사각 밤하늘이 별들로 아름답게 수놓아진 도시로 기억되고 있는 곳이었다. 직접 가본적은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고향이자, 그 세계를 동경해 꼭 한번은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 나가사키. 그래서일까, '나가사키'라는 제목만 가지고서도 충분히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다.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제목만으론 당연히 일본소설이라고 생각했지만, 프랑스 작가가 쓴 작품이라니 뭔가 신선한 느낌. 일본 소설과는 어떤 다른 매력으로 나를 이끌고 갈 것인지, 기대되었다.

 

  원자폭탄의 폐허를 딛고 힘겹게 살아난 잿빛도시, 나가사키. 책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문구. 제 2차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그 밤하늘이 아름답던 나가사키는 원폭의 피해를 입었다. 이 책의 내용은 그 원폭으로 인해 집주인 몰래 이불 벽장 속에 숨어산 일본 여인의 충격실화. 그리고 2008년 5월 <아사히 신문> 을 비롯해 일본의 여러 신문에 실렸던 사회면 기사를 바탕으로 삼았다고 전하고 있다.

 

  이 충격사건은 나가사키 변두리에 혼자 사는 쉰여섯의 남자가 정상처럼 보이는 집안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는데서 시작된다. 아침에 나갈 때는 15센티미터였던 음료가 8센티미터로 줄어들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가 하나씩 새로 발견되는 증거에 그는 몸서리친다. 범인을 잡기 위해 웹캠을 설치하고 그 범인을 잡았다. 내용은 이렇게나 간단하다. 어떻게 범인이 숨어들었고 그렇게 긴 기간동안 집주인이 모를 정도로 지낼 수 있었는지 또한 기이하지만, 내가 이 책에 주목하는 점은 이런 것이 아니다.

 

  나는 세상을 피해 혼자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저녁, 모든 밤들을 다시 떠올렸다. 유리관 속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은신처며 땅굴이며 아지트라 생각했는데. 당혹함과 더불어 분노가 피어올랐다.(55쪽) 범인이 잡혀가고 나서 그동안의 진상을 형사로 부터 듣고 있다. 그는 혼자였다. 함께 일을 하는 동료가 있었다할지라도 그는 늘 겉으로 맴돌았다. 퇴근 후 동료들이 맥주 몇 잔 정도를 마시러 다닐 때 자신은 혼자 여섯시를 넘기지 않은 시간에 일찍 저녁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어쩌면 그는 오래전부터 혼자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그렇게 혼자의 시간을 편하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 집에 마음을, 애정을 쏟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을 의식할 필요도, 신경을 쓸 필요도 없는 유리관 같다고 생각하던 집이 실제로는 혼자가 아이었던 사실에 그는 멍해져 있다. 은신처며 땅굴이며 아지트였던 곳이 함께 공유하는 공간이었던 것에 대한 당혹감이 그를 분노케 한다.

 

  위기가 사람들을 조금 더 혼자로 만들었다. 대화에 수도 없이 등장하는 '우리'라는 말이 아직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그 '우리'는 죽어가고 있다. 각각의 '나'들은 불 주위로 모여드는게 아니라 동떨어져 서로를 염탐한다. 저마다 이웃보다 잘 헤쳐 나가고 있다고 믿는데, 어쩌면 이 또한 인간의 종말일지도 모른다.(78쪽) 우리는 점점 혼자가 되어가고 있다. 서로 필요한 부분만큼만 공유하고, 그 이상을 내보이지 않는다. 같은 공간을 사용하거나, 함께 일을 하는 정도의 해를 끼치지 않을 만큼의 공유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혹은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딱 그만큼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정도일까. 이 책에서는 '우리'라는 말이 참 낯설다. 각자의 고독을 안고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삶을 사는 그와 그녀의 삶은 공유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고독이라는 이름아래 하나로 묶여 있다.

 

  매일 저녁, 저는 낙관하며 누웠지요. 이건 농담이야. 자고 나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갈 거야. 이렇게 의미를 상실할 수는 없어. 별, 바람, 인간, 이 모든 게.(112쪽) 그녀의 삶도 평화로울 때가 있었다. 그 태풍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원폭이 그녀의 가족들을 앗아갔고, 보금자리까지 빼앗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 보금자리로 돌아가고 싶었을 뿐이다. 바로 남자가 혼자 살고 있던 그 집으로. 그녀의 행복한 시간이 고스란히 베어있었던 그 집으로 말이다. 제자리로 돌릴 수 없는 시간이 그녀의 삶을 물고 늘어졌지만 그렇게 옛 추억에 잠겨 그 집에서 살아가고 싶었던 그녀가 안스럽고 안타까웠다.

 

  지진이 몰고 온 피해. 지금 일본은 또 한번 이런 아픔을 겪고 있다. 그래서 그녀가 숨어 살 수 밖에 없었던 그 상황이 더없이 마음이 아프다. 한순간에 자신의 보금자리를, 가족들을 잃고 무엇부터 시작을 할 수가 있을까. 그 마음 속에 분노는 어떻게 삭여줄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도 살아내고자 하는 마음들이 참 대단하다고 여긴다. 어찌보면 쉽게 놓아버릴 수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견디고 이겨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들의 침착함에 더한 박수를 보낸다.

 

  그는 그녀가 숨어든 그 시간에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빼앗겨버린 느낌때문에 더이상 그 집에서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의 편지로 그가 그녀를 조금은 더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세상과 조금은 화합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살아줬으면 좋겠다. 힘을 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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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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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신경숙 작가의 문체를 좋아하긴 하지만 '엄마'라는 소재로 울 수 밖에 없는 내용이 어찌보면 뻔해서 망설여졌다. 최유경 작가의 '바보엄마'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정말 대놓고 펑펑 우는 내용이었다. 이런 책을 보고 나면 일상에서 영향을 끼쳐 생활이 조금 더 힘이든다. 그렇게 또 한참을 얽매이며 살아갈까봐 겁이 났었던 탓도 있어 염려했었는데 우연찮게 '엄마'에 관해서 그리고 '여자'에 관해서 생각할 일이 생겨 필연인듯 이 책을 집어들었다.

  우리는 '엄마'에 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당연하게 원래부터 '엄마'였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한 둘 일까. 이 세상에 태어나고, 눈을 뜨고 알아볼 때부터 우리에게는 '엄마'였다. 한번도 '엄마'이지 않은 적이 없지 않았던가. 그래서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인데 이 책으로 제대로 한 방 맞았다.

큰 딸과 막내 딸의 대화내용이다.

- 엄마 얘기 해봐.
- 엄마 얘기 ?
- 응 …… 너만 알고 있는 엄마 얘기.
- 이름 박소녀. 생년월일 1938년 7월 24일. 용모 흰머리가 많이 섞인 짧은 퍼머머리, 광대뼈 튀어나옴. 하늘 색 셔츠에 흰 재킷, 베이지색 주름치마를 입었음. 잃어버린 장소 ……
  
  (……)

- 엄마를 모르겠어.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것밖에는.    (페이지 209쪽 중에서)

 소중한 것은 왜 잃어버리고 난 후에나 깨닫는 것일까. 그렇게 늘 그 자리에서 밥을 짓고, 논과 밭을 일구고 한없이 반찬을 챙겨주던 '엄마'. 그 엄마를 잃어버리고 난 후, 돌이켜 생각해보니 엄마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큰 딸, 큰 아들, 아버지, 또다른 여인이었던 엄마의 이야기까지 다른 시점으로 '엄마'에 관해 생각해보면서 추억에 잠긴다. 나에게는 이런 사람이었네, 후회만 가득한 그들만의 이야기.

내 새끼. 엄마가 양팔을 벌리네. 엄마가 방금 죽은 아이를 품에 안듯이 나의 겨드랑이에 팔을 집어넣네. 내 발에서 파란 슬리퍼를 벗기고 나의 두발을 엄마의 무릎으로 끌어올리네. 엄마는 웃지 않네. 울지도 않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페이지 254쪽 중에서)

  자식을 다 키우고 나서야 자신을 돌아보는 묵묵한 사람, 엄마.
일평생 자신의 행복은 뒤로 한 채 자식들의 행복만 바라면서 희생했던 안타까운 이름이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시집가서 자식을 낳고, 자신의 몸하나 챙길 겨를 없이 늘 하루가 모자랐던 그녀. 너무 늦게 알았다. '엄마'도 꾸미고 싶어하던 여자였다는 것을, 우리의 엄마이기 이전에 그녀도 한 어머니의 딸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다분히 울기 위해 만들어진 소설이라기 보다, 여러 관점에서 '엄마'를 돌이켜 볼 수 있었던 시간이라는 것에 참 고마웠다. 

  우리는 '엄마'에게 어떤 존재일까. 늘 '엄마'라는 기둥아래서 자신만 기대고 의지하지는 않았는가. 단 한 번도 '엄마'가 한 여자의 사랑스러운 자식이라는 생각을 왜 해본적이 없었을까. 늘 다 참아내주기를 바랬고, '엄마'라면 당연히 자식을 감싸야한다는 생각에 휘둘려 살았던 내가 참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봤자 '엄마'또한 가녀린 여자, 이 세상이 힘겨웠을 한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나를 돌보아주기만 바랬다. 그녀 자신의 삶은 나를 돌보는 것부터다, 라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해버렸었는데, 이제서야 죄스럽고 죄송하다. 

 엄마가 좋아했던 꽃을 보며, 미소짓고 있을 때 문득 바람결에 함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 또한 엄마 못지 않게 그 꽃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떠올리기 싫은 기억만 있는게 아니라는 것도 내 머릿속을 꽃향기처럼 어지럽게 스쳐간다. 부탁할 사람이 없어 하늘에 대고, 스쳐가는 바람에 대고 조심스레 입을 열어본다. 그리고 속삭여 본다. 우리 엄마도 부탁해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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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
김미월 외 지음 / 열림원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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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육체는 추억이다
  비는 추억의 힘으로 떨어진다


  내가 이토록 한국작가에 무심했었다니. 새삼스럽게 이 책을 펴들고서 깨달았다. 확실히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작가가 단 한사람도 없다니. 무려 일곱명이나 되는데. 그리고선, 너무 우리나라 작가들을 밀어냈었던 건 아닌가 미안하기도 하다. 앞으로는 이들에게 더 관심을 가져주리라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펼쳐 들었다.

  비. 내가 좋아하는 소재이다. 무척이나 감성적인 탓이다. 비가 오면 무턱대고 알코올이 생각나고, 사람이 그리워진다. 하던 일을 멈추고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다. 그래서 어김없이 비오는 날, 일하는 것이 가장 괴롭다.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차 한잔 마실 여유도, 스르륵 책장 넘기는 소리를 느껴볼 여유도 없이 팍팍한 일상이 원망스러워지기 때문이다. 오늘 또한 잔뜩 찌뿌려진 하늘 아래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이동했다. '방사능'과 '황사'가 섞여 내리는 '비'인 탓에 오늘 '비'는 그다지 반갑지 않다. 뿌옇게 흐려진 창 밖으로 내가 지나가는 곳이 어디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내 앞에 앉아 있는 그녀는 비닐봉지로 창을 슥슥 닦아본다. 그래도 깨끗해지지 않는 창. 우산을 발로 끽끽 밀어대는 청년. 어느새부턴가 '비'는 우리에게 거추장스럽기만한 존재가 된 것 같다. 아마 '방사능'이 가져다준 폐해일까.

  나의 몸은 유난스럽게도 비를 맞으면 몸살이 난다. 많이 오든, 이슬비이든 상관없이 비를 살짝만 맞았다하면 왜 몸이 아픈걸까. 비의 육체는 추억이다. 비는 추억의 힘으로 떨어진다. 일곱가지 색깔의 비를 소개하기 전에 나오는 문구이다. 나에게도 '비'는 추억이다. 추억의 힘이 무겁디 무거워서 그것을 감당하기 힘든 것이겠지. '비'가 무수히도 많이 내리던 장마 때 사랑하는 사람을 보냈고, 그 사람이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 바로 '비'라고 믿는 사람. 그게 바로 나 자신이다. 그래서 비가 오면 한없이 그 사람이 그립고 또 슬프다. 

 그녀들의 비는 어떤 색깔일까. 

티슈, 지붕, 그리고 하얀 구두 신은 고양이 - 장은진
지금은 그녀의 책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를 읽으며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는 중이다.  '티슈'로 나의 기억에 남은 그녀, 장은진 작가님. 그녀가 마주하는 소재들은 톡톡튄다. 티슈, 지붕, 하얀구두 신은 고양이라, 비와 어떤 연관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가벼운 듯 쉽게 읽히면서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그녀가 그날 우산만 챙겨줬어도 비 맞은 몸이 그렇게까지 아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
그러나 뒤돌아본 그곳에는 빗줄기만 하얗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21쪽)
손바닥으로 빗물을 받아 마시기도 했던 그가 그녀와의 아픈 기억으로 인해 세상에서 도피하려 지붕으로 숨어들었다. 그 때 하늘에서 유유히 떨어지는 티슈가 그의 마음을 이끌고, 비로 인해 -그녀가 맞게했던 비로 때문에 아팠다- 도피했던 그가 비 때문에 지붕에서 내려와 그의 원래 방으로 돌아간다. '비'가 내리고 그 '비가' 수증기가 되어 다시 하늘로 올라가듯 그 흐름을 티슈, 지붕, 하얀 구두 신은 고양이를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사람의 아픈 마음은 사람이 치유할 수 있듯이 상처받은 티슈남자를 통해 그는 위로받은 것이다. 누가 방법을 알려준다면. (37쪽) 누군가의 눈물이기도 한 '비'. 그 눈물이 마를 방법을 가르쳐준다면, 이 세상을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면 슬픔같은 건 없겠지만 그 눈물이 있어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도 있음을 우리는 안다. 살아가면서 겪는 일 하나하나가 그 방법이 되어줄지 모른다. 상처는 지우려고 할수록 더 가슴깊이 패인다. 그 상처를 비로소 놓아주었을 때 우리는 더 단단해져 있다.비온 뒤 땅이 더 단단해지듯이. 그가 지붕에서 내려와 원래의 삶에 한발 내딛은 것 처럼 그렇게. 억수같은 비가 내리고, 맑게 개인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런 느낌의 색깔. 장은진 작가님의 비.

대기자들 - 김숨
비는 아까부터 내리고 있었다.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비가 다 그친 뒤에 깨닫지 그랬나. 나는 짜증이 나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비가 다 그친 뒤에나. 그러나 비가 그친뒤에나 비가 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는 없을 것이다. 비는 내리는 동안에만 비일 것이었다. 그친 뒤에 비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닐 것이었다. (67쪽)
치과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그. 끊임없이 자신이 몇번째인지를 되뇌인다. 처음에는 왜 저렇게 몇번째인지를 연연하지, 하며 의아했으나 묵직한 뭔가가 나의 뒷통수를 확 후려쳤다. 치과의 볼일이 끝난 다음 그는 해야될 일이 있었다. 어머니의 가발을 찾는 일이 그랬고, 아내와의 일이 그랬다. 우리는 그처럼 늘 어떤 순서를 지키며 기다리며 살아간다. 말그대로 대기자들이다. 버스를 탈 때에도 줄을 서야하고, 치과에 가서도, 우체국 혹은 은행을 가더라도 대기순번이 필수이다. 우리는 늘 그렇게 대기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순서를 지키다 먼저해야할 일을 하지 못했을 때 우리는 또 무거운 압박감을 지니고 살아가게 된다. 그친 뒤에 비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생전에 잘해드릴 걸,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말. '비'에 빗대어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마음의 응어리가 있나보다. 쉽게 꺼내지 못할 묵직한 마음의 응어리가 있을지어다. 툭, 하고 눈물이 흘렀다. 우리는 때때로 이런 후회를 자주 하게 된다. 갖고 싶다고 할 때 사드릴걸, 생신인데 화내지 말걸, 하면서 먼저 해드리지 못하고 나중으로 미루는 일이 결국에는 뼈저린 아픔으로 남게 되는. 언젠가는 내가 부모가 되고, 그 마음을 헤아렸을 때는 더 없이 마음 아픈. 살아있는 동안 가슴에 박혀 빼낼 수 없는 가시가 박힌 느낌일테지. 무수한 빗방울이 내릴테지만 언젠가는 그치겠지. 하지만 언젠가는 또 내릴 비. 오늘이 끝이 아닌 돌고 도는 반복되는 삶의 연속, 쳇바퀴 속에 살고 있는 흐린 먹구름 아래 장마같은 김숨 작가님의 비.

여름팬터마임 - 김미월
본래 사람은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에는 별 관심도 없고 그만큼 잊기도 빨리 잊는 법임을 진은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102쪽)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문학소녀가 되어 보고 싶어서 백일장에 도전했던 진. 우연히 봤던 전단의 시(詩)로 장원을 차지하게 되는데, 전단의 그 시(詩)는 다름아닌 노벨 문학상 수상자 파블로 네루다의 작품이었다. 금방이라도 숨어버리고 싶었던 진이었지만 아무도 그녀앞에서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이처럼 '비'가 내리고 있었던 걸 몰랐던 사람은 비가 왔었어?라고 할 수도 있다. 그 상황이 되어 보지 않으면 당사자 마음은 모르는 것이고, 정작 주변 사람은 자신의 일이 아니기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관계없는 일은 더욱 쉽게 잊는게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한 순간의 소나기 같은, 김미월 작가님의 비.

키즈스타플레이타운 - 김이설
일곱가지 이야기 중에 가장 충격적이었다. 끊임없는 폭풍우가 나를 삼켜버리는 느낌. 소용돌이에 휘말려 헤어나올 수 없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장은진 작가님 다음으로 관심을 쏟고 있기도 하다.
죽기 직전의 매미도 그럴까. 태풍 매미도 여름의 끄트머리에 남아 그악스럽게 울부짖었다. 바람이 불고 비가 쏟아졌다. (184쪽)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한 딸. 그리고 그녀의 남편은 소아를 탐하는.
그녀의 인생은 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서있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을까. 늘 아버지가 다가오던 그 때를, 집에 아무도 없을 때를 틈타 아이를 괴롭히는 아버지의 손길을 어린아이가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태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쓰러져가는 집을 묵묵히 바라보는 듯한 느낌. 만신창이가 된 집을 수리해보아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 폭풍우가 다시 들이닥칠 것만 같은, 김이설 작가님의 비.

  일곱가지 색깔의 비 중에, 느낌이 선명했던 이야기들만 옮겨보았다. 앞으로 더 주목하고 싶은 작가님들이기도 하고. 두번째 출간될 눈(snow)테마도 정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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