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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평점 :
처음에는 선뜻 읽을 엄두도 내지 않았었다. '은교'의 작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은교'도 그다지 눈길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새로운 작가를 대할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반감. 사람들이 너도나도 좋다, 좋다. 를 연발하면 그 책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나를
느끼곤 한다. 모두가 yes할 때, NO. 라고 말할 수 있는 나도 아니지만 부딪쳐보지도 않고 실망하면 어쩌나, 다시는 보고 싶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사서하는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찼던.. 내 눈 앞의 안개를 걷어내지 못한 채 그냥 무작정 읽기에 돌입했다.
장윈의 '길 위의 시대'를 먼저 읽고 연달아 읽은 작품이라 설레임이 조금은 있었다. 나는 역시, 한국사람인가보다.
야릇한 표지에서 풍기는, 비즈니스의 실체. 작가 특유 성향을 알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무작정 읽어내려간 글에서 휘감기는 느낌을 받았다.
일본작품에 익숙해 있는 나이기에 한국작품과 그리 친하지는 않은데, 한국작품 특유의 무거움이랄까 질질 끄는 느낌이랄까, 한없이 고독한데
그 책임감을 등에 업고 살아가는 적막같은 시린 어둠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담담하게 상황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 상황 하나하나에 대한민국의 뼈져린 아픔이 서려있다. 무언가 바늘로 콕콕 찌르는 느낌이 나를 엄습해왔다. '길 위의 시대'를 읽을 때와는 다르게 완전 몰입한 나를 보고
조금 놀랐다. 빨아 당기는 그 느낌을 주체할 틈도 없이 나의 시선을 잡아끄는 통에 신이났다. 조금 더 조금 더 달음질 쳐. 하면서..
이 책은 '자본'의 노예가 된 시대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금의 현실과 직시하도록, 말이 뱉어진 그 순간 주워담을 수 없는 것 처럼,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그 상황을 낱낱하게 속속들이 보여준다. 자식을 위해 '비즈니스'도 마다 하지 않는, 그런 지고지순한 크고 큰 어머니의 바다인가 싶지만, 실제 그것이 자식을 위하는 일인지 무엇을 위해 그렇게 까지 하는 것인지 알지 못한 채 그렇게 자본의 노예가 된다. 먹고 살기 위해 자식과 함께 잘 살기 위해 선택한 일들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음이 마음이 아플 뿐이다.
형식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자신의 편의를 위해 사람을 이용하기도 하는 '진심'이라는 것이 통하지 않는 시대. '진심'? 그것이 대체 무엇일까?
내일이면 다시 보지 않을 사람들처럼 그렇게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며 사는 이 세상에서 제대로 가면을 벗고 제대로 된 숨을 쉬며 살아가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는 그렇게 진심을 숨기고,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며 오늘 하루 그냥 무사히 지나가기를,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살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모든 의미를 포괄한 '비즈니스'를 행하고 있다. 어찌보면 win-win, 꿩먹고 알먹고, 누이좋고 매부 좋고인거다. 그것이 실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끼치는 피해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나만, 혹은 나와 관련된 사람들만 한정해서 괜찮으면 된다는 그런 생각이 팽배한 이런 시대에서 오로지 자신보다 좋지 않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몸을 낮추고 마음을 보여주는 이들마저 하나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그 때는 이미 이 세상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지 않겠는가.
이 책은, 제발 살아달라고 그것이 사랑이란 이름이든, 연민이라는 이름이든, 애정이라는 이름이든 간에 무엇이든 좋으니 그저 살아남아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진짜 나의 모습을 찾으라고, 진정한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을 깨달으라고, 자본의 노예따위는 되지 말자고 말이다.
우리가 달려가는 길 끝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본적이 있는가?
그저 남들보다 잘 살기 위해 먼거리를 오가고, 너도 나도 강남을 찾고, 수도권에 들어서야 교육이다 뭐다 최상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지금 우리의 이 안타까운 시대를 어찌하면 좋을까.
나 자신이 걸어온 길을 잠시 돌아보자. 나만을 사랑해서, 상처받기 싫어서 정작 주변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무언가를 떠넘긴 적은 없는지.
차도남, 차도녀를 꿈꾸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의 시대는 자꾸 차가워져만 간다. 서로의 진심따위는 안중에도 남기지 않은 채 하루하루 먹고 살기에만 급급해 하고 있다. 물론, 나 또한 그렇지 않다고는 할 수 없기에 이 소설을 만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 작품을 통해, 박범신이라는 작가를 다시 보게 되었고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시간도 갖게 되었다.
세상이 다 아니라고 할 때 나의 소신을 꿋꿋하게 지킬 수 있는 온정을 품은 젊은이로 거듭나기를 바래본다.
'자본'에 얽매이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나의 진정한 자본은 우리들 자신, '사람'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