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
조현경 지음 / 예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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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밤. 예기치 않게 이 소설과 마주하게 되었다. 19 29 39 (정수현, 최수영, 김영은의 릴레이 소설 제목) 정도겠거니 하면서 별 기대감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저 가볍게 읽고자 집어든 책이었다. 으레 여자 셋, 그 이상이 뭉치면 일이 복잡해진다. 이 소설 역시 베베 꼬였거나, 요즘 드라마들이 내보이고 있는 막장이거나가 아닐까. 제발 유치하지만 말아다오, 하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오히려 분석적이고 세밀하고 치밀한 것에 대한 매력 보다는 유치한 매력에 (원래가 유치하긴 하다;) 더 흥미를 느끼는지라 그렇게 얼렁뚱땅, 황당하지만 않다면 재미있게 읽어주리라 다짐했다.

재벌가 출신 판사 서진, 톱 디자이너 희경, 미모의 뮤지컬 제작자 혜리.
너무나 많은 것을 가졌지만 오직 사랑만을 원했던, 세 여자의 짜릿하고 은밀한 건배!

그녀들의 이력은 빵빵하다 못해 헉! 소리가 난다. 재벌가 출신 판사에, 톱 디자이너에 뮤지컬 제작자. 그녀들은 성공한 여자들이다. 이런 이력이라면 사랑 따위의 걱정은 하지 않을 것 같은데. 오직 사랑만을 원했다? 이 문구 때문에 망설여졌다. 그렇고 그런 이야기일까봐서였다. 오히려 가진 사람들이 못 가진 사람들보다 쉽게 무너진다. 그녀들의 취약점은 바로 사랑. 사랑때문에 무모하게 모든 것을 버린다고 하지는 않을까, 이런 소설은 내가 원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사랑이 중요하긴 하지만, 삶을 살아가면서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톱 디자이너인 희경이 뉴욕에서 컬렉션을 성공하는 장면으로 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장소에 제일 친한 친구 재벌가 출신 판사 서진이 와 있다. 컬렉션을 성공적으로 마쳤지만 아내의 성공에 가려진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하는 희경의 남편 도훈이 친 사고 때문에 친구인 서진의 도움을 받아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고, 모국에서의 컬렉션도 무사히 마친다.
이 줄거리만 놓고 봐서는 성공할 사람은 성공할 수 밖에 없어!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안에 무수히 숨겨진 많은 이야기가 있다. 성공한 여자들이기에 마음껏 드러내놓고 아플수도, 마음껏 사랑할 수도, 마음껏 즐길 수도 없다. 딱 좋게 보여질 수 있는 그만큼만 보여주며 살아가고 있다. 맨손으로 타국에서 성공했지만 사고만 치는 주변 사람들로 인해 친구의 도움없이는 다시 일어설 수 없던 희경과 재벌가의 딸, 판사, 유능한 남편, 3박자가 다 맞아떨어지는 것 같지만 집에서는 결코 인정받을 수 없었던 그래서 더 이 악물고 공부해야했던 서진, 이미 밑바닥까지 쳐버려 잃을 것이 없어 남자를 이용하며 살아 갈 수 밖에 없는 혜리까지. 그야말로 파헤쳐보면 우리와 다를 게 없는, 겪는 방식이나 스케일이 다를 뿐 그녀들도 똑같이 아프고 또 아프다. 그저 보여지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소리다. 그 사람이 되어보지 않고는 절대 모르는 일들 투성이이다. 이 놈의 세상은 그래서 어렵다. 

화려한 그녀들의 삶을 보고 있자니 어느새 책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아니, 어쩜 이렇게 맥 풀리는 구석이 하나도 없이 흥미진진할 수가 있지? 이야기가 늘어진다 싶으면 툭툭 튀어나오는 사고들. 조금 막장의 소지가 있긴하지만 뭐, 원래 셀러브리티들은 드러내놓고 무엇이든 못하지 않는가. 그게 사랑이든, 일이든. 숨겨놓고 몰래하는 사랑에 어찌나 가슴이 두근두근거리던지. 혹시, 나 바람피고 싶은가 -_-;(큰일날 소리;) 여튼 이렇게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작가님이 드라마 제작자여서 그랬다! 내 인생 최고의 드라마 <마이걸>을 제작하셨다니!! 이외에도 <보디가드>, <궁>, <마녀유희> 까지~ 드라마 제작자가 쓰니까 확실히 이야기가 꿈틀꿈틀 맛깔나더라니~  

우려했던 결과와는 달리 이 소설은 매력이 많았다. 셀러브리티를 꿈꾸는 여성들이 주인공이 아니었다. 이미 셀러브리티인 그녀들의 삶의 또다른 이면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꿈꾸는 동화는 이제 좀 식상하다. 성공한 그녀들은 그렇지 못한 그녀들과는 다른 고민거리가 있을 것이고, 추구하는 행복 또한 우리와는 다를 것이다. 사랑하는 방식이 달랐고, 지켜주고자 하는 방식은 달랐지만 사랑까지 성공한 인생들은 아니었지만, 끊기는 흐름없이 정말 재밌게 봤다. 드라마로 나온다고 해도 재밌을 것 같다. 

투명하게 다 보여지는 그녀들의 삶 속에 하나둘씩 발생하는 스파클링들. 때로는 따갑게, 때로는 톡 쏘게, 때로는 달콤하고 시원한 그녀들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보시라~
그녀들에게 찾아올 또다른 이야기들을 향해 건배! 그리고 우리들의 삶을 위해 또다시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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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러브리티
정수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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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장에는 우울한 류의 책이 대부분이다. 혼자만의 생각을 좋아하는 터라 쉽게 지나가는 책은 잘 보지 않게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책만 읽다보면 으레 지친다. 사람이 늘 고독 속에서만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가끔은 나 아닌척 살아보고 싶을 때가 있다. 이 책 또한 일명 '미친 척 쿨하게 살아보기'라는 프로젝트에 도전해보고자 구입한 책이다. 책이 정말 읽히지 않을 때 이런 류의 책들은 은근한 삶의 활력소를 다시 불어넣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 책은 정말 코미디다. 말도 안되는 시트콤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여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로망이다. 두근두근 나의 마음 속에 숨겨진 소녀를 찾아준 엔돌핀!

신데렐라를 꿈꾸던 어린 소녀. 자신만의 왕자님도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며 기다리다 지쳐 당돌하게 이웃나라 왕자님께 편지를 쓰기도 한다. 정말 귀엽지 않은가, 쿡. 셀러브리티 (잘나가는 트렌드정도의 뜻)를 꿈꾸다 셀러브리티가 되는 대신 그를 취재하는 매거진 기자가 되어버렸다. 기자로 생활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소설이다.

연하남이 등장하고, 복잡한 가족관계가 얽힌 연예인이 등장하고.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가십거리다. 그런 가십을 사랑스러운 로맨스로 승화했다. 보는 내내 드라마 '풀하우스'가 어찌나 겹쳐지던지. 쇼파에서 나누는 달콤한 키스라던지, 만인의 앞에서 진정한 셀러브리티를 만들어주는 모습하며~ 꺄아~ 정말이지 여자들은 멋진 남자들을 자신의 남자친구인냥 많이들 품고 산다. 왜 내 주위엔 저런 남자가 없을까, 하며 쓸데없이 눈만 높아지지요. 껄껄. 연예인을 좋아해봤을 여자들이라면 정말 100% 그 이상 빙의하고 싶은 소설! 사랑은 쟁취하는거야, 혹은 진심은 통하게 되어 있어. 정도의 유치하기 짝이 없는 스토리지만 그러면 어떤가. 이토록 달콤하고 짜릿하고 설레고 두근대고 판타스틱하고 - 아.. 정말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어메이징한 남자로 인해 진짜 셀러브리티가 되는 시츄에이션이 자신에게 벌어진다는데, 마다할 자 그 누구인가! 얼마전에 종영된 '최고의 사랑'만 보아도 순수하게 지켜가는 사랑이 시청자들에게 얼마나 많이도 사랑을 받았는가 말이다.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던 남녀가 정말 알콩달콩 예쁘게 사랑하는 모습은 보는이로 하여금 흐뭇해진다.  

'풀하우스'처럼 달달하고, '최고의 사랑' 처럼 두근대는 책을 찾고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라~
소설 책인데, 만화책 보는 줄 알았당게요~ 정말 술술 잘 넘어가고 침이 꼴딱꼴딱, 마구 오버랩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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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네 집
김옥곤 지음 / 책만드는집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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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은 원래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김영하 작가님을 통해서 단편의 새로운 매력에 흠뻑 빠지기는 했지만 단숨에 휘어잡는 무언가가 없다면 역시 조금은 아쉽고 허전한 느낌이 드는 건 아직까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 즈음 만나게 된 단편. 그리고 한국작가. 바로 김옥곤 작가님의 '미라네 집'이다. 미리보기로 살짝 보았었는데 사각의 프레임안에 빛바랜 흑백사진같은 느낌이었다. 은은한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고향냄새가 난달까. 첫 대면의 느낌은 그러했다.

추억을 회상하는 단편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살짝은 우화스러운 이야기들까지. 조곤조곤 느린 템포 속의 글들은 잔잔하고 고요하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추억이 완연히 뛰어난 색채감을 자랑하지는 않듯이 처음 미리보기에서 느꼈던 그대로 전체적으로 은은하고 소박하다. 내 머릿 속에 필름이 지나가듯 때로는 활기차게, 때로는 구슬프게, 고요하게 그렇게 흘러가는 강물처럼 추억에서 현재로 이어진다.

격정적인 사건이 일어난다한들, 언젠가 묻히는 것 처럼 글에서 긴박감이나 긴장감은 별로 느끼지 못했다. 아~ 그랬구나. 그런거구나. 정도의 끄덕임만을 자아낸달까. 독자에게 어떤 동조도 바라지 않는냥 유유히 묵묵히 흘러가는 단편들이다. 책이 끝을 향해 갈수록 종교적인 색채가 짙어져 원래 의도했던 방향에서 구덩이로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의아한 부분도 있었다. 각각의 단편이지만 뭉뚱그려 한 강물을 이루고 있는 느낌. 강물이라기보다 작은 웅덩이쯤이 낫겠다. 거기서 물을 길어올리고, 그 물을 한 모금 음미하고 두레박은 다시 저 깊은 물 속에 잠기고. 이런 분위기의 반복이었다. 꼭 어릴적 부모님을 따라가던 성묘길의 기분. 이 책은 딱 그런 기분이 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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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리뷰 - 이별을 재음미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 책 읽기
한귀은 지음 / 이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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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좋은 책이길 원하는가. 그럼 도서관에 가서 당신이라는 책에 각주가 될 수 있는 또 다른 책을 찾으라. 당신은 좋은 책 같은 연인을 만나고 싶은가. 그렇다 해도 도서관에 가서 당신처럼, 좋은 책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을 물색할 것이 아니라, 당신을 좋은 책으로 만들어 줄 '책'을 먼저 만나라. 그럼, 당신이라는 책을 읽어줄 '사람'이 비로소 당신을 조용히 펼칠 것이다. 그때 당신도 '그 사람'을 읽으면 되는 것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프롤로그를 읽고서 굉장히 기대감에 부풀었었다. '이별리뷰'라는 제목은 잠시 잊고서. 나와 닮은 책을 혹은 주인공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설레임이었다. 그 설레임을 안고 책을 펴들었을 때 발견한 일러둘 사항 몇가지. 이것을 그냥 지나치지 말아야했다. 이별한 직후라면,… 뒷장부터 읽어도 좋다. 고 되어있는데 담아두지 못하고 고지곧대로 앞장부터 읽은 것이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소개된 책과 그 주인공들의 이별을 파헤칠 때마다 못 견디게 힘들었던거다. 조금은 천천히 받아들일 시간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필요했었는데, 작가의 말을 귀담아 듣지 못해 반감이 일었던 것이 아쉽다. 일러둘 사항과 프롤로그를 참고로 한 후, 읽어나갔으면 좋겠다.

여러 이별에 관한 책들을 소개하고, 그 형상의 이별에서 끄집어 낼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끄집어내고 있다. 마치 장롱안에 박혀있던 것들을 모조리 끄집어내어 텅텅빌 때까지의 그 과정 같다. 이별을 하려면 일단 덮어만 둘 것이 아니라 끄집어 낸 후 치료법을 달리하자는게 글쓴이의 생각같을 정도. 분석적이다 못해 읽을수록 나는 덤덤해져만 갔다. 그들의 이별은 나의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그들의 고통과 나의 고통은 엄연히 다른 모양으로 생겨먹었다고 생각한 채. 어쩌면, 이별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발버둥에 가까운 나의 몸부림이 그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글들 중에서 아는 작품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아마 더 덤덤하게 읽어내려갔다보다. 어쩌다 아는 책이 소개되면 자연스레 감정이 몰입되곤 했으니까. 지금에야 무덤덤하다고는 하지만 소개 되어있는 책을 접한 후 다시 읽는다면 그 읽는 맛이 또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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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반양장) 보름달문고 44
김려령 지음, 장경혜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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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야지,하면서도 두께가 얇아서 그냥 훅- 읽어버릴 듯한 느낌때문에 조금은 망설였었다. 하지만, 김려령 작가님의 신작이니만큼 두께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두께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항상 남겨주는 그녀이기에. 「우아한 거짓말」을 접했을 때 그랬다. 굉장히 강한 두뇌의 떨림이랄까. 한동안 뇌리에 박혀 오랜동안 기억에서 떨쳐낼 수 없던 충격적이었던 그녀의 글과의 첫 만남. 그 무한한 떨림을 기억하고 있기에 이 책 또한 굉장한 설레임으로 다가왔다. 조곤조곤, 그녀가 들려주는 동화 속으로 풍.덩.

표지를 보나, 살짝 내비쳐진 글들을 보나, 청소년 문학임이 틀림이 없지만 이것이 꼭 우리 아이들만을 겨냥한 것이라고 생각치 않는다. 우리는 모두 아이라는 샘을 거쳐 어른이라는 강으로 흘러가고 있으니까.
우리들의 마음 속에도 아이는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어린시절을 조금은 특별하게 보냈던 사람이라면 더더욱이 그 아이는 아련하게 간직되어 있으리라.

출근길. 
아침마다 아이들을 사고로부터 보호하려는 건널목 아저씨를 만난다. 경쾌한 호루라기 소리가 설핏 덜 깬 듯한 나의 졸음을 깨운다.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던 광경. 오늘 아침은 괜스레 다시 뒤돌아보게 된다. 어젯밤 나를 찾아온 우리의 건널목 아저씨 때문에.
 
작가인 오명랑. 칠년 전 동화작가로 등단한 이후, 계속 글을 쓰고 있지만 작가로 성공하기란 참 녹록치 않다. 하루하루 시간이 흐를수록 글만 쓰고 있는 그녀를 주변에서 지켜보는건 답답할 수 밖에. 하루가 멀다하고 가족들의 성화가 끊이질 않는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이야기 듣기 교실’. 독자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 마음을 여는 일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바로 이 책의 주인공 ’건널목 아저씨’.신호등이 없는 도로에 직접 만든 건널목 카펫을 들고 다니는 아저씨. 그 아저씨 덕분에 폭신폭신 카펫을 밟는 아이들에겐 웃음이 운전자들에게는 잠깐의 여유가 생겼다. 주변이 밝아진 느낌이다. 마치, 걸어다니는 신호등, 가로등 같은 우리의 건널목 아저씨. 처음에는 유치하게 시시하게만 들리던 동화가 어느새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건널목 아저씨’는 바로 마음을 움직이는 따뜻한 분이었으니까.

그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리웠던 그 시절을 회상하는데에서 시작된다. 건널목 아저씨를 만나게 된 일부터, 아저씨와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를 동화처럼 아이들에게 들려준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면서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그런 이야기. 잃어가는 우리의 마음에 따스한 온기를 불어주는 그런 이야기였다.



# 참 이상하지? 근사하게 생긴 사람도 아닌데, 가진 게 많아서 듬뿍듬뿍 퍼주는 사람도 아닌데, 사람들은 건널목 씨를 좋아했어. 많은 사람들 사이에 건널목 씨 한 사람 더 와서 사는 건데 아리랑 아파트 분위기가 달라졌다니까. 이웃끼리 인사도 더 자연스럽게 했고 더 상냥해졌지. 좋은 사람이란 그런 거야. 가만히 있어도 좋은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 내가 이걸 해 주면 저 사람도 그걸 해 주겠지? 하는 계산된 친절이나, 나 이 정도로 잘해 주는 사람이야, 하는 과시용 친절도 아닌 그냥 당연하게 남을 배려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건널목 씨야. 그런 사람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참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 (77쪽)
아무 대가 없이 아이들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건널목이 되어준 사람. 우리에게도 지금 그가 필요하다. 요즘은 이미지, 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서 과시용 친절이 많이 눈에 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 그 행동을 하고 있다. 나도, 내 나름으로는 배려를 많이 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심, 하고 기대를 하고 있었다. 참 무서운 기대감, 내심. 건널목 씨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었는데 어느새 나는 세상에 찌들어가고 있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되어버린, 슬픈 현실. 이 글을 읽을 때 나의 가슴 속의 아이는 펑펑 울었다. 먼저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이었는데, 그저 주기만 해도 행복해하는 아이였는데, 지금 그 아이는 어디로 숨어버린 걸까. 너무 많이 잃어버린 내 모습. 난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마음껏 울어도 좋을 만한 느낌의 따뜻한 동화. 건널목 아저씨가 곁에 있어준 나의 어린 시절은 아니었지만, 나와 비슷한 성장기를 보낸 도희, 태희에게서 건널목 아저씨의 따뜻한 사랑을 함께 받고 있었다. 위로 받을 수 없었던 나의 어린시절을 들켜버렸지만, 그보다 더 값진 무언가를 얻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마음을 움직이는, 오직 그 마음만으로 충분한 인상을 남긴 책이었다. 아이들만을 위한 동화가 아닌 마음 속에 상처받은 아이를 숨기고 살아가는 어른아이에게도 꼭 필요한 동화였다.
바삐 움직이고, 힘겹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한 템포 느린 박자를 찾아주는 책.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행복한 사람이 되고자, 아팠던 어린 시절을 떨치고자 하는 어른아이와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는 아이들이 함께 읽으면 좋을만한 책. 잃어가는 정(情) 또한 되새길 수 있는 순수하고 따뜻한 동화이다.


# 건널목 아저씨, 아저씨의 여행이 언제까지 계속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아저씨처럼 멈추지 않고 제 길을 가고 싶어요. 그렇게 가다가 언젠가 진짜 아저씨를 만나게 되면 다시 한 번 멋진 콧수염을 그려 드리고 싶습니다. _ 정경혜(그림작가)
# 때로는 힘들고 지쳐 주저 앉고 싶을 때도 있을 테지요. 어른들도 부족한 게 많아 번쩍 안고 원하는 곳으로 옮겨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덜 힘들게 덜 아프게 덜 무섭게 그 시기를 건널 수 있도록 건널목이 되어 줄 수는 있습니다. 친구라도 좋고 이웃이라도 좋습니다. 먼저 손을 내밀어도 괜찮고, 누군가 먼저 내민 손을 잡아도 괜찮습니다. 우리 그렇게 살았으면 합니다._김려령

걷거나 뛰거나 장난쳐서는 안되는 에스컬레이터.
바쁜 출근길, 우리는 그 움직이는 계단을 뛰거나 걷는다. 그만큼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린 우리들. 그래서 서로에게 무심해지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눈을 감고, 주변의 눈치를 살피게 되어 버렸다. 이럴수록 더 돌아봐야 한다. 건널목을 건널 때만큼은 건널목 아저씨를 생각하며 그가 환하게 만들고 싶었던 세상을 조금은 여유롭게 바라보고 싶다.


아저씨도, 또 다른 누군가의 건널목이 되어 주시며 행복해하고 계실까. 외롭지는 않으실까. 이제는 우리 모두가 건널목 아저씨의 건널목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아저씨를 닮고 싶어 스스로 건널목 아저씨가 된 태석이처럼 우리도 건널목 아저씨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유치한 동화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지금 이런 동화가 꼭 필요하다. 말하지는 않아도 먼저 손 내밀어줄, 기댈 사람이 필요하지는 않은가?  혼자였던 길도 함께 걸으면 달라보이는 것처럼 이 책을 통해서 조금은 덜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 서로에게 건널목 아저씨가 되어 주자. 내가 잃어버린 것만 같았던 어린 시절에서 또 다른 것을 배운 것 처럼, 지금이라도 건널목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것 처럼, 우리 모두가 따뜻해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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