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반양장) 보름달문고 44
김려령 지음, 장경혜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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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야지,하면서도 두께가 얇아서 그냥 훅- 읽어버릴 듯한 느낌때문에 조금은 망설였었다. 하지만, 김려령 작가님의 신작이니만큼 두께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두께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항상 남겨주는 그녀이기에. 「우아한 거짓말」을 접했을 때 그랬다. 굉장히 강한 두뇌의 떨림이랄까. 한동안 뇌리에 박혀 오랜동안 기억에서 떨쳐낼 수 없던 충격적이었던 그녀의 글과의 첫 만남. 그 무한한 떨림을 기억하고 있기에 이 책 또한 굉장한 설레임으로 다가왔다. 조곤조곤, 그녀가 들려주는 동화 속으로 풍.덩.

표지를 보나, 살짝 내비쳐진 글들을 보나, 청소년 문학임이 틀림이 없지만 이것이 꼭 우리 아이들만을 겨냥한 것이라고 생각치 않는다. 우리는 모두 아이라는 샘을 거쳐 어른이라는 강으로 흘러가고 있으니까.
우리들의 마음 속에도 아이는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어린시절을 조금은 특별하게 보냈던 사람이라면 더더욱이 그 아이는 아련하게 간직되어 있으리라.

출근길. 
아침마다 아이들을 사고로부터 보호하려는 건널목 아저씨를 만난다. 경쾌한 호루라기 소리가 설핏 덜 깬 듯한 나의 졸음을 깨운다.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던 광경. 오늘 아침은 괜스레 다시 뒤돌아보게 된다. 어젯밤 나를 찾아온 우리의 건널목 아저씨 때문에.
 
작가인 오명랑. 칠년 전 동화작가로 등단한 이후, 계속 글을 쓰고 있지만 작가로 성공하기란 참 녹록치 않다. 하루하루 시간이 흐를수록 글만 쓰고 있는 그녀를 주변에서 지켜보는건 답답할 수 밖에. 하루가 멀다하고 가족들의 성화가 끊이질 않는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이야기 듣기 교실'. 독자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 마음을 여는 일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바로 이 책의 주인공 '건널목 아저씨'.신호등이 없는 도로에 직접 만든 건널목 카펫을 들고 다니는 아저씨. 그 아저씨 덕분에 폭신폭신 카펫을 밟는 아이들에겐 웃음이 운전자들에게는 잠깐의 여유가 생겼다. 주변이 밝아진 느낌이다. 마치, 걸어다니는 신호등, 가로등 같은 우리의 건널목 아저씨. 처음에는 유치하게 시시하게만 들리던 동화가 어느새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건널목 아저씨'는 바로 마음을 움직이는 따뜻한 분이었으니까.

그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리웠던 그 시절을 회상하는데에서 시작된다. 건널목 아저씨를 만나게 된 일부터, 아저씨와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를 동화처럼 아이들에게 들려준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면서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그런 이야기. 잃어가는 우리의 마음에 따스한 온기를 불어주는 그런 이야기였다.

# 참 이상하지? 근사하게 생긴 사람도 아닌데, 가진 게 많아서 듬뿍듬뿍 퍼주는 사람도 아닌데, 사람들은 건널목 씨를 좋아했어. 많은 사람들 사이에 건널목 씨 한 사람 더 와서 사는 건데 아리랑 아파트 분위기가 달라졌다니까. 이웃끼리 인사도 더 자연스럽게 했고 더 상냥해졌지. 좋은 사람이란 그런 거야. 가만히 있어도 좋은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 내가 이걸 해 주면 저 사람도 그걸 해 주겠지? 하는 계산된 친절이나, 나 이 정도로 잘해 주는 사람이야, 하는 과시용 친절도 아닌 그냥 당연하게 남을 배려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건널목 씨야. 그런 사람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참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 (77쪽)
아무 대가 없이 아이들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건널목이 되어준 사람. 우리에게도 지금 그가 필요하다. 요즘은 이미지, 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서 과시용 친절이 많이 눈에 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 그 행동을 하고 있다. 나도, 내 나름으로는 배려를 많이 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심, 하고 기대를 하고 있었다. 참 무서운 기대감, 내심. 건널목 씨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었는데 어느새 나는 세상에 찌들어가고 있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되어버린, 슬픈 현실. 이 글을 읽을 때 나의 가슴 속의 아이는 펑펑 울었다. 먼저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이었는데, 그저 주기만 해도 행복해하는 아이였는데, 지금 그 아이는 어디로 숨어버린 걸까. 너무 많이 잃어버린 내 모습. 난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마음껏 울어도 좋을 만한 느낌의 따뜻한 동화. 건널목 아저씨가 곁에 있어준 나의 어린 시절은 아니었지만, 나와 비슷한 성장기를 보낸 도희, 태희에게서 건널목 아저씨의 따뜻한 사랑을 함께 받고 있었다. 위로 받을 수 없었던 나의 어린시절을 들켜버렸지만, 그보다 더 값진 무언가를 얻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마음을 움직이는, 오직 그 마음만으로 충분한 인상을 남긴 책이었다. 아이들만을 위한 동화가 아닌 마음 속에 상처받은 아이를 숨기고 살아가는 어른아이에게도 꼭 필요한 동화였다.
바삐 움직이고, 힘겹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한 템포 느린 박자를 찾아주는 책.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행복한 사람이 되고자, 아팠던 어린 시절을 떨치고자 하는 어른아이와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는 아이들이 함께 읽으면 좋을만한 책. 잃어가는 정(情) 또한 되새길 수 있는 순수하고 따뜻한 동화이다.


# 건널목 아저씨, 아저씨의 여행이 언제까지 계속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아저씨처럼 멈추지 않고 제 길을 가고 싶어요. 그렇게 가다가 언젠가 진짜 아저씨를 만나게 되면 다시 한 번 멋진 콧수염을 그려 드리고 싶습니다. _ 정경혜(그림작가)
# 때로는 힘들고 지쳐 주저 앉고 싶을 때도 있을 테지요. 어른들도 부족한 게 많아 번쩍 안고 원하는 곳으로 옮겨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덜 힘들게 덜 아프게 덜 무섭게 그 시기를 건널 수 있도록 건널목이 되어 줄 수는 있습니다. 친구라도 좋고 이웃이라도 좋습니다. 먼저 손을 내밀어도 괜찮고, 누군가 먼저 내민 손을 잡아도 괜찮습니다. 우리 그렇게 살았으면 합니다._김려령

걷거나 뛰거나 장난쳐서는 안되는 에스컬레이터.
바쁜 출근길, 우리는 그 움직이는 계단을 뛰거나 걷는다. 그만큼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린 우리들. 그래서 서로에게 무심해지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눈을 감고, 주변의 눈치를 살피게 되어 버렸다. 이럴수록 더 돌아봐야 한다. 건널목을 건널 때만큼은 건널목 아저씨를 생각하며 그가 환하게 만들고 싶었던 세상을 조금은 여유롭게 바라보고 싶다.

아저씨도, 또 다른 누군가의 건널목이 되어 주시며 행복해하고 계실까. 외롭지는 않으실까. 이제는 우리 모두가 건널목 아저씨의 건널목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아저씨를 닮고 싶어 스스로 건널목 아저씨가 된 태석이처럼 우리도 건널목 아저씨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유치한 동화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지금 이런 동화가 꼭 필요하다. 말하지는 않아도 먼저 손 내밀어줄, 기댈 사람이 필요하지는 않은가?  혼자였던 길도 함께 걸으면 달라보이는 것처럼 이 책을 통해서 조금은 덜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 서로에게 건널목 아저씨가 되어 주자. 내가 잃어버린 것만 같았던 어린 시절에서 또 다른 것을 배운 것 처럼, 지금이라도 건널목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것 처럼, 우리 모두가 따뜻해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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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음 / 학고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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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에 관한 소설은 왠지 모르게 접근하기 힘들어서 유명한 작가님인데도 불구하고 「흑산」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첫 대면부터 힘든 이야기라 나의 인식이 어떻게 박힐지 내심 걱정스러웠습니다. 역사소설을 아예 배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소설 쓰시는 작가분 중에는 김진명 작가님을 제일 좋아하지요. 문체에 박력이 느껴집니다. 강렬한 호소가 저로 하여금 온전히매료되게 만드시는 분이라 좋아합니다. 김훈 작가님은 어떨까요? 내용도 내용이지만 어떤 문체를 가지고 계신 작가님인지에 초점을 두고 읽었습니다. 처음부터 분석하려들면 쉽게 흥미가 떨어질지도 모르니까요. 무거운 소재라 지레 겁을 먹으며 시작했지만 가슴을 울리는 둥둥거림이 있었습니다. 문체가 퍽 마음에 들어 내용과는 상관없이 들여다 본 문구가 많습니다.

 

 

 

 

 

   정약전이 유배길에 올라 유배지인 흑산으로 가기 전 바다를 보고서 하는 말입니다. 저 어디 건너건너에 있을, 다시는 자신이 살던 곳으로 되돌아올 수 없을, 자신이 영영 갇히게 될 그곳을 바라보며 한없는 생각에 잠깁니다.  텅빈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이 소설에는 오고가는 풍경에 많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제가 가장 마음에 담았던 풍경은 바로 '길'입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이치인데 그것을 말로 옮겨놓고보니 그제서야 다시금 깨닫고 세상 모든 의미가 전부 들어 있음에 감탄합니다.

 

 

 

 

 

  이런 문체가 바로 김훈의 문체겠지요. 맑고 깨끗합니다. 가까운 곳이 아닌 먼 곳을 바라보는 형상. 나무보다는 숲 같은 느낌의 문체입니다. 읽는 내내 숲공기를 마시는 느낌이 들었던 것도 무리가 아니겠지요.

 

 

 

 

 

 

 

 

  흘러가는 풍경이 글에 자연스레 베여 저절로 한폭의 그림이 완성됩니다. 글로 풍경을 실감나게 하는 것이야 말로 작가의 참된 능력이 아닐까하는데요. 읽는 내내 산수화 속에서 글들이 헤엄치는느낌을 받았습니다. 고요하고 청아한 그런 느낌 말입니다.

 

 

 


   막연함과 막연함이 꼬리를 물며 한없는 생각에 빠지게 합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바로 세상인지라 손으로 잡으려해도 잡을 수 없는 아득하고 깜깜한 현실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안개를 걷고 앞으로 나아가려고해도 그저 다시 안개 속에 갇힐 뿐.

 

 

 


  그 무엇도 명확하다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일이 벌어지는대로 두 손 놓고 지켜만 볼 뿐입니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 그 안에서 그려내는 암담한 현실. 저렇게 사물에 생각을 띄우는 일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인 것을.....

 

 

  삶과 죽음이 지독하게도 얽혀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바로 신유박해. 천주교도를 박해한 사건이지요. 지금에야 이렇게 깊이 뿌리내려 있는 종교이지만 그것을 뿌리내리게 하고자 정말로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저는 종교에 의지하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종교라고 하는 것은 분명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대비는 어찌 삶 대신 죽음의 길로 뛰어드느냐고 하였지만 그들은 구원이라는 것을 통해 또 다른 삶을 영유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자기 몸하나 온전하게 살 수 없는 탈세와 굶주림에 찌든 삶에서 어떤 희망의 빛을 볼 수 있었겠습니까. 배교하여 살아남은 자들이나 천주를 증명하여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자들이나 그들 방식대로의 또 다른 삶을 택한 것 아니겠습니까. 삶과 죽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아득한 통로지요. 명확하게 안다고 할 수도 아예 모른다고도 할 수없는 그런 통로말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칠흙같은 어둠과 그 사이에 내리비칠듯 말듯한 빛줄기를 동시에 보고 있었습니다. 온전히 암흑같은 바다 속을 거니는 것 같다가도 이 안개가 조금만 걷혀지면 또 다른 빛이 보일 것 같기도 했습니다. 가벼이 넘길 수 있는 소재가 아니어서 읽는 내내 갑갑했지만 풍경같은 문체가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김훈, 가히 멋진 작가인 것 같아요.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그들의 넋을 기릴 수 있는 책이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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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 측 증인
고이즈미 기미코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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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리소설을 좋아하거나 즐기지는 않지만, 읽기 시작하면 온몸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돼요. 추리소설의 묘미는 바로 진범찾기. 모든 사람을 범인의 범주에 두고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사실, 저 굉장히 잘 속거든요. 치밀하게 책을 읽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작가가 놓은 덫에 스스럼없이 걸려드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ㅡ어쩌면 둘 다 겠죠?ㅡ 한번이라도 범인을 알아차렸으면 좋겠어요. 하하-

이번 책에서는 범인을 알아차려보고자 결연한 의지를 내비쳤어요. 두 주먹 불끈쥐고! 첫장부터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여기서부터 저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던 거예요. 제가 그려놓은 밑그림이라는 덫에 완전히 걸려들어서 속상했습니다. 흑. 

 

 

 

 

  재벌가 외아들 '스키히코'와 스트립 댄서 '미미로이'의 결혼. 미미에게는 행운같고, 꿈같은 일이었겠죠? 재벌이 느닷없이 나타나 청혼을 하다니. 하룻밤 사이에 그녀는 스트립 댄서가 아닌 재벌가의 며느리가 되는 것이죠.  행운같은 일이지만 평탄하지만은 않을 그녀의 삶을 예고합니다. 그녀는 벌거벗고 춤을 추지만, 그것은 그녀의 직업에 불과하죠. 실제로는 굉장히 지고지순하고,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컸지요. 남편 스키히코와 함께라면 배경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그런 여인이었으니까요.

 

 

 

 

  이 책은 굉장히 잘 읽힙니다. 서문부터 자신이 그린 밑그림에 따라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가기 때문인데요. 저는 변호측 증인이 나타날 때부터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제 밑그림의 퍼즐이 한꺼번에 엎어지면서 패닉상태가 되었습니다. 거의 다 읽어가다가 화면 돌려다시보기 현상이 일어난거죠. 저의 밑그림대로 술술 잘 넘어가는데, 그것이 바로 오류의 주범이 되었습니다. 이 소설, 실로 놀라웠어요.

 

 

 

 

  범인의 범위가 좁혀지고 거의 다다를 즈음에는 두근거림의 최고조에 이르게 됩니다. 살인사건과 관련이 있다보니 요리조리 진범을 좁혀갈 때마다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범인의 범주에 넣었던 인물들의 이름을 하나씩 지워가다가도, 다시 이름을 써넣는 것을 반복하며 신나게 읽었습니다.

 

 

 

 

 

  작품해설을 왠만해서는 잘 보지 않는데, 이 책의 작품해설은 머리에 쏙쏙 들어오더군요. 밑그림이라는 표현도 해설에서 빌렸습니다. 이 책을 세상에 내놓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들키게 된 이상 가급적 많은 사람이 읽어주길 바라기도 했고요. 결말을 알고 나서는 조금 허무했지만, 결국은 제가 그린 밑그림에 당한 꼴이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습니다. 꼭 귀신에게 홀린 듯한 느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려갔던 책입니다. 여태껏 접했던 추리소설 중에 가히 최고가 아닐까합니다. 독자가 원하는 상상대로 이끌어나가는 작가의 힘에 다시금 놀랐던 소설입니다. 모든 것이 드러나 있는데도 불구하고 명확한 것은 오히려 하나도 없습니다. 읽는 내내 흥미진진했던 책이었습니다. 꼭 많은 분들이 읽어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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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거리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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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굉장히 책을 많이 출간하시는 작가님이죠. 무서우리만치요. 어쩌면 그렇게도 이야깃거리가 줄어들지를 않을까요. 하지만 추리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저이기에 앞부분을 넘기는 것이 참으로 힘든 작가님이예요. 뭔가 궁금증은 한껏 유발해놓고, 의문이 풀어지지는 않는달까요. 소설이라는 것이 그렇듯 흐름의 타이밍이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저는 성미가 좀 많이 급한 편이라 반전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왜이리도 힘든지요. 결론은, 히가시노 게이고 님의 소설 이번이 처음입니다. 원래 어떤 작가인지도 모르고, 지금 이 한편으로 어떻다 단정짓기는 힘들지만 걱정과는 달리 쉽게 읽혔습니다. <편지>를 처음 시도해보았었던 것 같은데, 안 읽혀서 혼났거든요. 첫 시도를 성공해야 작가의 이미지도 좋게 굳혀지는 건데, 마니아 층이 많은 작가가 저에게는 이런 취급을 당하고 있으니 씁쓸한 마음도 있습니다.  

껄끄러운 소재, 불륜. 저는 이 소재를 접하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그럼에도 술술 읽히고, 심지어 두근거림까지 느꼈습니다. 이 묘한 심리. 비밀데이트라는게, 스릴이 있기는 하잖아요. 제가 아무리 정의를 고집한다 한들, 사람의 감정까지 어떻게 할 수 있는건 아니니까 말이지요. 흐름에 내맡기고 주인공들이 하는대로 내버려뒀습니다. 그러니 편하게 읽힐 수 밖에요. 또 그와는 다르게 나는 그러면 안돼. 하는 중압감도 함께 자리하게 됐습니다. 아무튼, 이런 소재는 참 힘듭니다.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니까요. 허허허.    

 

만남은 늘 그다지 극적이지 않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다. 그것은 언제나 평범한 일상의 한가운데에 툭, 던져진다. 한참이 지나야 비로소 반짝반짝 빛을 내기 시작한다.  - 8쪽 중에서




우리는 남자로 돌아가는 것도 숨어서 몰래몰래 해야 한단 말이지. - 16쪽 중에서





비밀을 공유하면 마음의 끈이 한층 단단하게 이어진다. - 207쪽 중에서

 

 

불륜이라는 소재와 함께 섞인 비극의 살인 사건. 끝이 보이는 사랑이라는 점보다는 범인이 참 궁금하더군요. 저는 추리랑은 담을 쌓아서 그런지, 센스가 좀 부족해요. 작가가 원하는 방향대로 생각해버리고 맙니다. 쉽게 속여지는대로 그냥 그렇게요. 작가에게는 이런 독자도 필요하지 않겠나, 하면서요. 저는 착한 독자입니다. 호호호   
'공소시효' 라는 단어가 사람을 참 두근거리게 합니다. 급박해지고 조여오고 심장박동수 나름 최고조! 어찌보면 두근대며 이 책을 봤던 건 '불륜'이라는 소재가 아닌 '범인찾기'였을겁니다. 용의자, 공소시효가 정해진 상태에서의 반전이 두근거림의 원인이었습니다. 불륜을 즐기지 않았어요! 
  
추리소설은 가볍게 보기에 좋은 것 같아요. 물론, '불륜'이라는 소재를 엮어 껄끄럽긴 했지만, 저는 이 작가님의 책을 안 읽은게 너무 많으니까요. 더 나은 작품을 뒤에 본다는 만족감(?)이랄까, 실망감이 좀 덜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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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 김경욱 소설집
김경욱 지음 / 창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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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이라는 작가를 이 작품을 통해 처음 만났습니다. 이 작가님을 좋아하는 지인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선뜻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여자작가의 글이 좀 더 편하게 다가 옵니다. 부드럽고, 섬세하고, 무엇보다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의 크기가 큽니다. 같은 성별이기에 더욱 그럴테지요. 남자작가의 글은 무언가 딱딱하고 무뚝뚝한 기분이 많이 든달까요. 책임감,이라는 무게가 글을 그렇게 느끼도록 만들어버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여태껏 접해본 남자작가들의 글은 대부분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김경욱'이라는 작가, 뭔가 심상치 않습니다.  

단편이라 조금 더딘 부분도 있었습니다. 짧은 글 속에서 무언가를 끄집어 낸다는 것 참 쉽지 않습니다. 요근래 단편을 조금씩 접하게 되면서 오히려 장편보다 단편을 쓰는 것이 더 어렵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압축한다는 것, 이것 또한 굉장한 능력이 아닐까요. 짧은 글이었지만 툭- 하고 떨어지는 글들이 많았습니다. 단편자체로 끝나기도 하고, 그 단편들이 요리조리 모여 하나가 되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가벼이 쓰여진 글은 아님에 틀림없습니다. 

 

  단편들을 만나면서, 세상에는 참으로 불편한 진실이 많다는 것을 새삼스레 선명하고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흘러가는 그들의 대화 속에는 언제나 불편한 진실들이 콕콕 박혀 있습니다. 그것은 부인(否認)할 수 없는 명백한 현실인 거겠죠.  저는 언제나 이런 껄끄러움과 마주하게 되면 그저 피하고만 싶습니다. 빨리 잊어버리는 사람이 적응하기 훨씬 쉬운 법이잖아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피하고만 싶은 껄끄러움이 아니었습니다. 무언가 그의 인생철학이 박혀 있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철학적인 단편이라. 참 매력적이었습니다. 단편 하나가 끝나고 또 하나가 시작되고. 보통은 단편이 뇌리에 남은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김영하 작가님은 예외. 김영하 작가님의 글은 무서워요. 너무 지나칠 정도로 뇌리에 남아서..;) 김영하 작가님이 소름 돋는 단편이라면, 김경욱 작가님은 잔잔한 여운이 오래가는 단편이 아닐까요. 개인적으로는 김경욱 작가님의 단편에 손 들어주고 싶습니다. 어디까지나 간이 콩알만한 제 기준으로요. 이 책, 손에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드는 대화가 많아서 포스트잇이 꽤 많이 붙었습니다.   

  몇가지만 맛보기로 소개할께요! 

 

 


 나무는 다리가 하나라서 뿌리내릴 수 있어. 인간은 다리가 둘이라서 떠돌아야 하는 거야.죽음을 맞을 때까지 떠돌다 어느 나무 아래 묻히는 거지. 한줌 거름이 되기 위해.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17쪽 중에서

 


상처받은 진실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어. 상처받은 진실을 위로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진실뿐이야.

<99%> 77쪽 중에서  


우리가 누군가와 약속하는 것은 상대의 신의에 대한 불안 때문이 아니라 제안의 두려움 때문이다.

  <99%> 96쪽 중에서
  


살이 찌는 건 죄악이 아니오. 살에 대한 책임을 게을리하는 게 죄악이지. 헤비급이라는 것은 무하마드 알리나 조지 포먼 같은 상대와 맞붙어야 한다는 뜻이오, 작가 선생.
 

<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한 삶> 113쪽 중에서
 


 
한 번 링에 오른 자는 영원히 내려올 수 없소. 발 딛고 선 곳이면 그곳은 어디든 링이기 때문이오. (...) 링이 왜 사각형인지 아시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머무는 곳이 십중팔구 사각형이기 때문이오. (...) 요람부터 관까지 모두 사각형이니 결코 사각형에서 벗어날 수 없소. 운명은 사각형이오, 작가 선생

<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한 삶> 115-116쪽 중에서



  
  개인적으로 <99%><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한 삶>을 재미있게 읽었어요. 정말 딱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어요. 뭔가 철학적인, 명언 같은 말이랄까요? 두 편을 읽으면서 '단어'에 대해서 좀 더 묵직한 깨달음을 얻었어요. 두려움, 책임과 같은 단어들이 제가 가지고 있던 범주보다 훨씬 넓어졌죠. 그리고 늘 제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어요. 이 책을 통해서 시야가 넓어지고, 성숙해진 느낌이 듭니다. 오래 남는 단편이 될 것 같아요.  다른 작품들도 빨리 만나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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