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과연 몇 살까지 어미가 먹이를 물어다 주어야 하는 걸까?

물김치 가져가라는 전화를 받고 친정 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문득 tv 다큐멘터리에서 보게되는 새들의 생활, 어미 새가 먹이를 물어와 아기 새들의 입속에 넣어주던 장면이 떠오른다.

어미새의 먹이를 받아먹던 아기새들도, 제 힘으로 날기 시작하면 스스로 먹이를 찾아서 먹는다.

 부모가 끝까지 병수발을 들어야하는 특수한 경우는 제외하고라도, 이혼하고 아이와 함께. 혹은 결혼하지 않고  늙은 부모가 밥상을 차려주지 않으면 스스로는 한끼도 해결을 못하는  이들이 참 많다.

칠순이 넘어서도 자식 밥상을 차려야하는 할머니들, 남편을 챙겨야 하는 할머니들을 보면 우리 아들부터 스스로 혼자 밥 차려 먹기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은 하는데 쉽지가 않다.

지금은 고 3이라 못 시키고 대학 가면  혼자 밥 차려 먹게 해야지 싶지만, 가르치지 않아서 잘 될 것 같지도 않다.

대한민국 남자들이 혼자 밥하고 밥 차려 먹게 하려면 나 같은 엄마부터 달라져야 하는데, 나 또한 옛날 엄마들의 모습에서 한 치도 변화가 없으니,  변화가 빠른 아들 또래의 여자 아이들의 지혜에 맡기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엄마 말은 안들어도 애인 말, 아내 말은 들을 테니......

 

아이가 자랄 수록 마음의 짐도 커진다.

고 3이 되니 대학 선택이 가장 큰 문제이고, 우리 부모도 내가 고 3때, 대학 다니면서 마음 못잡을 때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생각이 많다.

어떻게 진로를 잡아야 할지 아이도 부모도 갈피 잡기가 어렵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는 큰 그림이 없다는 것이 마음이 무겁다. 

무슨 일을 하든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밖엔 없는데, 그 행복의 기준 마저도 아이와 우리가 다를 수가 있으니 말도 행동도 서로 조심하게 된다.

 수능이 끝나고 대학이 결정되고 공부에 붙잡혀 있었던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돌아오기를 바란다. 비인간적인 교육제도 탓에 짓눌려 억압받는 불쌍한 우리 아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자기 선택에 당당하기를, 이어령님의 말씀처럼 일렬로 줄 서서 뛰어서 일등이 하나인 베스트 원의 세상이 아니라,  360도로 제각각 자기가 뛰고 싶은 방향으로 뛰어서 각자의 방향에서 행복할 수 있는 온리 원의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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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1 2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혜덕화 2008-08-22 13:44   좋아요 0 | URL
어제 박경리님의 유고 시집을 읽었습니다.
이미 중년, 장년이 된 작가들에게 어미새처럼 먹이를 물어다 주고 싶어하는 마음을 들여다보고 부끄러웠습니다.

아들의 인생은 결국 아들의 선택이지요. 하지만 좀 더 내가 앞을 내다 보는 안목을 가졌으면 아들에게 좀 더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이들이 커가면 커 갈수록 엄마라는 이름은 평생 초보 딱지를 뗄 수 없겠구나, 생각합니다. _()_

순오기 2008-09-21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 360도로 제각각 뛰고 싶은 방향으로 뛰어서 행복할 수 있는 일등에 아주 공감이 되네요. 큰딸은 제가 하고 싶은대로 교대를 갔지만, 중3인 아들녀석은 하고 싶은 거도 목표도 아직 없어서 심란할 때가 많거든요.^^
 

아이를 무지막지 하게 빗자루로 때린 어느 남자 교사의 동영상을 보았다.

맞는 아이의 모습도 마음 아프고, 저렇게 때리지 않으면 안될 지경까지 몰고간 상황도 가슴이 아프고, 분노를 컨트롤 하지 못하고 쏟아낸 듯한 그 선생님도 안타까웠다.

하 지 만

이렇게 동영상을 무작위로 퍼나르는 것, 이것은 폭력이 아닌가?

그는 분명히 한 가정의 가장일 것이고, 교직에서 나름대로 열성을 가진 선생님일 테고, 상처 입는 가슴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그 장면 하나를 보고 '그 사람이 폭력적인 사람일 것이다'고 단정짓는 것은 코끼리의 다리만 만져보고 '코끼리는 기둥 모양이다'고 단정짓는 것과 어떻게 다른 것일까?

부모가 아이를 때려도 안되는 일인데 교사가 아이를 그렇게 때린 것을 두둔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런 동영상을 보면서 

'음, 난 괜찮아. 난 아이들을 저렇게 때리지도 않고, 사랑으로 대하니까 난 좋은 교사야' 라고 생각하는 교사가 있을까?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들의 무지가 안타깝다. 아이를 때린 그 교사가 바로 <나>란 것을 모르고 있으니.

오늘의 교육 풍토를 만든 것은 대통령도 아니고 국회의원도 아니고 바로 우리 모두이다.

 

말 한 마디도 상대에게 상처를 주면 그것은 폭력이다.

생각조차도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므로 남에게 해를 주는 생각도 하지 말라고 하는 데

생각도 말도 넘어서서 온 세상에 " 이 사람은 폭력 교사야"라고 주홍 도장을 찍어 버리는 것.

그것이 죄없는 그의 자식과 아내에게도 치명적인 상처를 줄 것이라는 것을 왜 생각하지 않을까?

아이의 엉덩이에 난 상처만 가슴 아프고, 그 선생님의 마음에 난 상처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일까. 마음이 무겁다. 아무리 살인자라도 사형으로 그 죄를 벌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아이를 때린 교사는 이렇게 인터넷으로 난타를 당해도 되는 것일까?

잘못한 사람은 그 잘못에 대한 댓가를 치루어야 하지만 이렇게 교사를  "아이 잡는 폭력배" 취급을 하는 방법 밖엔 없었을까?

' 더 현명한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가 하루 종일 내 가슴을 누르는 화두였다.

 

우리나라 사람들 가슴 속에 얼마나 많은 화와 분노가 숨어있는지, 정말 놀랍다.

그 분노가 정작 향해야 할 곳을 찾지 못하고 엉뚱한 데서 터져서 온갖 악플을 달면서 자신의 수준을 드러내고 만다.

말도, 생각도, 행동도 바로 나다.

말하는 나와 행동하는 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훌륭하다고 스스로 자랑하기 전에, 훌륭하지 못한 것에 대하 자비심을 키워서 다른 이를 훌륭하게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모범이 아닐까?

 분노로 부르르 떠는 사람들의 화가, 여름의 폭염보다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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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3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08-07-23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어제 우연히 그 동영상 봤습니다.
혜덕화님의 이 글을 읽게 되어 다행입니다.

BRINY 2008-07-24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맞아요. 뜨끔합니다.

카프리 2008-07-24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난 괜찮아. 난 아이들을 저렇게 때리지도 않고, 사랑으로 대하니까 난 좋은 교사야' 라고 생각하는 교사가 있을까?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들의 무지가 안타깝다. 아이를 때린 그 교사가 바로 <나>란 것을 모르고 있으니.

오늘의 교육 풍토를 만든 것은 대통령도 아니고 국회의원도 아니고 바로 우리 모두이다.


님의 이 글에 만 퍼센트 동감하면서 반성합니다. 이 사회를 만드는 건 우리 모두이지 개인 단 한명은 아니니까요...

혜덕화 2008-07-24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름대로 수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자기 자신을 바로 보는 일' 아닌가 갈수록 더욱 더 절실히 느낍니다.

누군가가 이미 한 일에 대해서 비방하고 비난하고 독화살을 날리기는 쉽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나는 책임이 없는지, 남을 보기 전에 항상 나를 먼저 보려고 노력합니다.

마지막 물 한 방울이 컵 속의 물을 넘치게도 하지만, 이미 가득 차 있었던 컵 속의 물은 누가 채웠던 것일까요?

댓글 남겨 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자비롭고 건강한 여름 보내세요.

 

백련암 입구에서 걸어 올라갔다.

숲 속엔 바람 한 점 없고, 올라가는 내내 땀을 많이 흘렸다.

 

옳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옳은 것이 반드시 살리는 것과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게 된다.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속에서 옳지 못한 것에 대한 자비심의 부족을 본다.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에 대한 자비심은 사실은 자비심이라고 할 수도 없다.

사랑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해 하지 못할 것에 대해, 옳지 않은 것에 대해 자비심을 갖지 못했던 나를 돌아보는 삼천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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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암을 가득 채우고 있던 철쭉이 지고 있었다.

점심 공양을 위해 고심원을 나서는 순간, 산을 덮은 안개와 너무 가늘어 보이지도 않게 소리도 없이 내리는 보슬비가 그리는 풍경에 탄성이 흘렀다.

산은 한 순간도 정지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달마다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른 목소리로 우리를 맞아주어 몇 년을 다녀도 탄성과 감동의 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사람도 이렇게 살아야하지 않을까. 

몇 주 전 딸 아이가 교회 다니는 친구가 <친구 초대 파티>를 교회에서 열어준다고 가도 되냐고 물었을 때, 나는 선선히 다녀오라고 했다. 종교도 삶도 결국은 아이의 선택이다. 다양한 길을 열어 보여줄 수 있지만,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강요하는 종교가 아닌, 아이가 나의 모습을 보고 엄마처럼 살고 싶어서 종교를 선택하거나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데, 내가 한가지의 좌표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무엇을 믿어라, 어떻게 살아라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내 삶이 아이들에게 거울이 될 수 있도록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삼천배 회향하는 순간, 법당을 가득 메운 도반들의 가정 가정에 이 회향의 등불이 밝혀지길 간절히 빌었다.

내 가정이 행복하면 내 가정의 밝음이 주변을 비추어서 이웃에게, 마을에 조그만 도움이라도 되리라는 단순한 믿음이 나를 늘 여기 이자리에 오게 하는 지도 모르겠다.

깨달음을 얻고 한 소식 하지 않아도

지금 이 자리에서 밝은 웃음을, 작은 친절을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다면

그것이 회향의 공덕이 아닐까, 안개에 쌓인 산이 내게 주신 법문이었다.

 

지진으로 고통 받는 중국 국민들에게도

태풍으로 고통받는 미얀마 국민들에게도

나비의 날개짓 같은 이 작은 기도가 날아가 앉기를......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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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5-26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뵈어요. 항산 고요함속에 강함을 내보이시는 님의 글에 저를 한 번 더 돌아봅니다.
잘 지내시죠?

혜덕화 2008-05-26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정말 오랫만이네요.
오월의 아름다운 날들을 만끽하고 있답니다.
하루하루 시간 가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요.
즐거운 나날 보내시기 바랍니다.^^
 

중앙일보 금요일 기사에 문요한씨의< 나! 리모델링>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아이를 낳지 않고 살기로 합의한 결혼 7년차 주부의 상담 내용이 실려있었다.

의사는 선을  그으놓고 살지 말라고 조언을 했다.

 

그 기사를 읽으니 19년 전 첫 아이를 낳을 때가 생각이 났다.

분만실에서 아기를 처음 받아 안아 온몸으로 그 따뜻한 체온을 느낄 때,

'내가 한 우주를 낳았구나'하는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세상에 없던 한 생명을 내 몸을 빌어 낳은 것에 대해,  태어나 내가 가장 장한 일을 한 것 같은 기쁨과 이 생명을 지키고 온전히 키워내는 것이 나와 남편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 때는 비장한 슬픔까지도 느껴졌다.

한 생명을 만들고 키워내는 일, 그것은 부부가 함께 하지만

생명을 잉태해서 세상 밖으로 태어나게 한다는 것은, 굉장한 경험이었다.

어릴 때 막연히,  결혼해서도 명절이나 시댁 대소사에 시종 노릇을 하기 위해 내가 결혼을 했나 싶은 회의가 들어서 다음 생엔 남자로 태어나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기의 출산으로 그 생각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아기를 낳을 수 없는 남자들이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했다.^^

이렇게 황홀한 체험이 아이를 키우면서도 늘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어릴 때 그냥 존재 자체만으로 예쁘던 아이는 커 가면서 요구가 늘고 자기 고집이 생기면서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래도 언제나  <엄마>라는 이름을 갖게 해준 아이들에게 감사한다.

첫 삼천 배 그 힘든 고비를 넘길 때도, 두 아이의 엄마가 이 정도 고통도 참고 넘기지 못해서야 어떻게 아이들에게 인생의 힘든 고비에서 힘이 되어 줄 수 있을까 싶어 <엄마>라는 이름으로 해 낼수 있었다.

이번 아비라 기도에도 내가 굳이 저녁까지 하겠다면  반대할 사람도 없고 내 의사를 존중해 주지만, 고3인 아들이 늘 저녁을 학교에서 먹고 오다가 단기방학때 집에서 저녁을 먹는 데, 된장이라도 보글보글 끓여서 먹이는 것이 기도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저녁 기도를 접을 수 있었다.

 

 이 세상엔 경험해보지 않은 기쁨이 너무도 많은 데, 내겐 세상 최고의 경험이었던 출산의 기쁨을 아예 처음부터 차단하기로 마음 먹은 부부가 안타까웠다.

그 부부의 생각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각자의 업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선택하니, 다만 자기의 선택에 대해 행복한 마음을 갖지 못하고 우울증에 걸려 정신과 의사를 찾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아기가 어렸을 땐, 한 번도 깊은 잠을 자지 못해서, 얼른 아이가 커서 밤에 한 번도 안깨고 잘 수 있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얼른 아이가 크기를 바라던 것은 힘들 때마다 나를 지탱해 주던 소망이었지만, 이제와 생각하니 그렇게  바라지 않아도 아이들은 어느새 엄마보다 더 자라 시간이 마치 전력질주로 달려가 버린 느낌을 준다.

지금은 이 순간, 아이들이 내 옆에 있는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얼른 다른 시간이 오기를 바라지 않게 되었다.

어느 새 아이들이 내 곁을 떠나고 우리 부부만 남게 되는 시간이 왔을 때, 그때 좀 더 잘 할 걸 하는 후회가 남지 않도록, 하루 하루가 내 선택의 몫임을 알 뿐이다.

아기를 낳지 않기로 했든, 낳기로 했든, 혹은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해서 없든

오늘 하루는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다.

현재의 나와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보고 사랑하는 것.

 그 마음을 주고 싶다. 내가 알지 못하는 그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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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8-05-10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 저도 오늘 아침 그 기사 읽었습니다.
이 글이 오늘 저를 많인 평안하게 합니다.
좋은 글, 감사드려요. 손이 아닌, 마음으로 쓰신 글 이라는 것이 전해져옵니다.

혜덕화 2008-05-10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글 수정하러 잠시 들렀는 데 소중한 손님을 맞게 되네요.
후배가 얼마 전에 아기를 낳았습니다.
분만실에서 나오자마자 저에게 문자가 왔더군요.
"언니, 나 정말 장한 일 했어요. 태어나 처음 내 힘으로 밥값한 것 같아."
8년간 기다린 아이니 어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눈물이 날 만큼 기뻤답니다.
어찌 출산만이 밥값이겠습니까?
부부로 살아가는 것, 독신의 삶을 책임지며 살아가는 것, 내가 선택해서 살아가는 모든 것이 나로서의 밥값이겠지요.

순오기 2008-05-15 10:10   좋아요 0 | URL
아아~ 윗글과 댓글에 그만 눈물이 출렁였어요~~~
세상에 태어나 제일 장한 일을 해냈다는 그 마음~ 알지요!
아드님이 고3이군요... 보글보글 엄마가 끓여준 된장찌개... 엄마의 사랑이고 기도라는 걸 아드님도 알 겁니다. 고3엄마, 힘 내세요!
우리딸 작년 고3때 11개월 기숙사에 있었는데 '집밥 집밥~'하더라고요. 이제 대학생이라 또 기숙사에 있어서 먹을거리가 늘 안타까워요.

혜덕화 2008-05-15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알라딘 서재에서 가끔 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열심히 사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는데, 먼저 인사를 받게 되었네요.
사실, 전 너무 맘 편한 엄마라 어제도 11시 30분쯤 문소리를 듣고서야 아이가 온 줄 알고 일어났답니다. 잠시 졸았다고 생각했는데 침대에서 깊이 두어시간 잠이 들었더군요^^
아들 왈, "엄마 그냥 계속 주무세요. 제가 챙겨 먹을게요". 잠팅이 엄마를 배려해 주는 아들에게 고맙다고 하고 다시 잤답니다.
아무래도 제가 엄마노릇 하는 것보다는 아이들이 아이들 노릇을 잘 해서 이렇게 맘 편한 거 아닌가 싶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