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 피아노 소설Q
천희란 지음 / 창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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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피아노

"나는 지금 증언을 하고 있는 것이지 설득하려는 게 아니다.”장 아메리 『자유죽음』

자동으로 기계적인 연주를 하는 자동피아노처럼
의도를 넘어서 의식을 지배하는 독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 소설은 가독성이 떨어진다. 정제되기 이전의 언어와 구상을 생략하는 전개는 소설을 읽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독자에게 불친절할 수 있다. 작가는 어느 지점에서 소설이 아니라고도 한다. 그러나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이 소설의 가장 진정성있는 지점이다. 이 소설은 단순한 언어실험이 아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몸과 마음으로 오고가는 위태롭지만 진실된 기록이다.

단서를 찾으며 추리할 필요도 없으며 의미도 없다.
이 소설을 읽는 방식은 낭독이 된다.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그 울림을 느껴본다. 그 발화의 이면에 가까이 도달하면 그의 목소리와 나의 그림자가 닮아있음에 놀랄 수 밖에 없다. 불안과 공포를 함께 유영하는 것. 그것이 이 소설이 독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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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죽이고 싶다. 나는 나를 죽이고 싶지 않다. 나는 죽고 싶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나는 나를 죽이겠다. 나는 나를 죽이지 않겠다. 나는 죽겠다. 나는 죽지 않겠다. 나는 두렵다. 나는 두렵지 않다. 

긍정과 부정은 서로 대립하기보다는 함께 무너지는 편을 택한다. 선택할 수 없는 혼돈 속에 강렬한 느낌만이 남는다. 부정의 소거법을 활용한다.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의 반복은 답이 아닌 어떤 태도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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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오늘, 아니면 내일.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죽음을 욕망하는 일. 내 욕망이 머뭇거림 속에서 실패에 이르는 일. 내가 욕망하는 것은 단 한번의 선택으로만 완성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쓸 수 없다. 오늘은 아니어야 하는데. 어제도 그랬듯이. 아직은, 나는 아직. 무슨 말로 항변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달아난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뛰쳐나간다.

작가의 말을 읽어보면 이 소설의 지독한 난해를 한번에 끌어안게 한다. 위로나 공감이 아닌 이 위태로운 상태가 나에게도 그림자처럼 남아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시도는 옳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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