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엔젤 - 스탈린의 비밀노트,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2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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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엔젤>이란 러시아에 위치한 작은 말이다. 로버트 해리스가 <아크엔젤>이란 소설에서 이 지역을 선택한 이유는 프롤로그에 소개되고 있다.

 

1. 대천사, 구품 천사 중 한 천사로 국가 통치자의 보호와 특별한 사명을 전달한다.

2. 러시아 북구 백해에 위치한 항구도시, 스탈린의 비밀노트가 가리키는 종착점


소설이라고 하나, 기본적인 세계관은 현실적 기반을 두고 있다. <아크엔젤>은 1990년대 소비에트연방 해체 후 러시아의 사회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르는 러시아, 아마도 우리는 지난 과거의 변화 속에도 그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다. <아크엔젤>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것은 인간이 가진 광기다. 광기가 돌출되는 이유는 무엇이고 아직도 유지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소비에트연방 해체 후에 옐친과 푸틴이 정권을 잡지만, 아직까지 러시아에선 스탈린과 스탈린 이후의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다.


소설에서도 스탈린의 이름이 계속 언급되고, 스탈린의 초상화를 들고 다니는 사람도 많으며, 낫과 도끼가 새겨진 소비에트마크가 달린 물건들이 종종 나오고 기차에도 새겨져 있다. 게다가 모스크바와 멀리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과거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넘치고 있다. 스탈린에 대해 다시 돌아가자. 왜 사람들은 스탈린을 그리워하고, 지난날의 향수를 찾아가는가? 인간은 이성만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나기 위해서 하나의 정체성을 설정한다.


인간의 생명은 생물학적으로 살아남으려는 본능에 치우쳐 있지만, 정체성에 대한 인간의 갈망은 인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만큼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아크엔젤>에 등장하는 헥소 박사는 자신이 러시아에 방문하게 된 동기가 스탈린 연구발표하기 위해서다. 스탈린은 1936~1938년 4회의 모스크바재판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그가 죽인 사람 수는 세계대전에서 죽은 사람이나 혹은 히틀러에게 학살당한 사람보다 더 많았다.

 

시대의 사이코패스, 광기에 젖은 인간, 스탈린이란 바로 그런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은 아직까지 되살아나는 유령이다. 소비에트연방이라는 나라가 설립될 때 레닌과 볼셰비키들은 인터내셔널 가와 라 마르세예즈를 혁명 당시 계속 불렀고, 인터내셔널 가는 소비에트연방의 국가(國歌)가 되었다. 그러나 레닌 사후 스탈린이 집권하면서 스탈린 정권에서 소비에트찬가라는 곡으로 교체된다. 그 곡을 보면 Patina Lenina(Party of Lenin)이란 가사가 나오는데, 그것은 레닌의 당이란 의미다.

 

소설에서 레닌의 당, 스탈린의 당이란 가사는 없었다. 심지어 그 노래(Soviet Anthem)를 찾아 들어보면 영상편집에서 Patina Lenina 가사 부분이 나올 때 레닌과 스탈린이 나오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직까지 레닌과 스탈린에 대한 향수가 러시아에서 떨어지지 않은 것이다. 영상을 보면서 <아크엔젤>의 연결성은 소비에트연방 해체 후 러시아에선 기존 소비에트연방이 가진 정체성 그 시대의 향수에서 많은 인간들이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아크엔젤>에서 헥소 박사가 스탈린의 비밀노트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때 라파바와 수부린, 항구도시 아크엔젤의 사람들처럼 스탈린이란 유령에 아직 벗어날 수 없었다. 마만토프 같은 경우, 헥소 박사가 스탈린의 비밀노트를 찾아가는 것을 은근히 방해하면서 그것을 유도했고, 마지막 종착점에 다다를 때 헥소 박사는 자신이 이용당한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지난날 그들만의 영광과 이념을 찾아가기 위해서다. 인간이 현실을 벗어난 이념을 숭배하는 순간 그 사회는 병이 든다. <아크엔젤>은 자본주의 문화가 러시아를 강타하고, 자본주의국가와 대립한 소비에트연방의 후예들은 자신들의 현실에 고민하고 있다.


<아크엔젤>의 시기가 아직까지 늙은 노인들은 1917년 볼셰비키혁명을 기억한 자들도 있고, 1930년대 스탈린이 활발하게 활동할 때도 기억하고 있다. 스탈린에 대한 향수는 과거 자신들이 이룬 업적을 잊지 않은 것이다. 비밀노트의 주인은 스탈린이 아닌 스탈린의 저택에 들어온 젊은 여자다. 그 여자는 결국 죽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헥소 박사가 아크엔젤에 찾아가니 살아있었다. 여자의 어머니는 언제 죽을지 모를 정도로 늙었고, 혼자 외로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도 스탈린에 대한 향수와 광기는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스탈린에 의해 딸이 모스크바로 끌려가 심한 일을 당했는데, 자기 남편이 딸의 죽음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 떠나 죽었는데도 늙은 노파는 스탈린에 대해 집착한다. 스탈린은 집권을 위해서 볼셰비키 고참 당원을 모조리 숙청했고, 자신의 친구와 가족마저 잔인하게 죽도록 만들었다. 레닌이 죽고 난 후 레닌의 신격화 작업이 이루어지고, 그 후계자로 스탈린이 되는 과정은 피의 숙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왜 사람들은 스탈린이 음울하고 속이 시커먼 사람인데도 그에게 이끌릴까?


인간에겐 누구나 어둠이 있고, 그 어둠에 쌓이면 인간은 광기에 빠져버린다. 1924년 레닌사후 스탈린은 당의 인사권을 장악하고 자신의 주변 인물들을 당의 주요간부에 임명하다. 반스탈린주의자들은 모조리 파시스트로 몰아넣었고, 거기에 동조한 인물들은 출세의 가도를 달린다. 그들이 승승장구 올라가면서 스탈린과 맞먹을 정도로 권력을 가지게 되거나 또는 스탈린에 대해 잘 알게 되면 스탈린은 그들을 응징한다. 그렇다면 스탈린의 행동에 많은 사람들은 스탈린을 두려워하고 경계하여야 하지만, 반대로 두려워하나 그에게 더 이끌린다.


스탈린으로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 확립, 더 나아가 자신들이 스탈린으로 통해 성공할 수 있다는 욕망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 비밀감옥지하에서 총소리가 울릴 때마다 새로운 진급자들이 탄생한다. 이들이 총에 의해 죽어갈 때 국민들은 파시스트 첩자의 죽음,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응징이라 여긴다. 소비에트연방 해체해도 트로츠키는 아직까지 반역자의 이름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이미 각인된 러시아의 정체성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움직이기보단 그 과거에 매달리는 이유는 강력했던 지난날의 향수다.


그 시대가 정당한지 아니면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 때가 좋았고, 그때로 돌아가는 것이 목표다. 광기와 살인이 넘치는 시대에 대표적인 사이코패스를 많은 사람들이 얽매인 이유는 <아크엔젤> 소설내용이나 후기처럼 우린 비이성적이고 비정상적인 사고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힘으로 통치하는 시대에 대한 향수는 우리 스스로 억압과 폭력이란 쇠사슬로 엮이게 만든다. <아크엔젤>은 바로 그런 시대적 간극에서 벌어지는 사회상을 하나의 가설을 내세워 만든 소설이다.

 

스탈린이란 인간 그 자체는 사라져도, 스탈린의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고, 다시 계속 반복된다. 스탈린이란 인물이 죽었다 해도 그런 인간이 다시 나오지 마란 법은 없다. 하지만 더욱 소름끼치는 것은 그런 인간이 나와도 용납하는 세상이다. 역자가 말한 것처럼 우리 역시 그런 인간이 나와도 무방한 사회, 오히려 그런 인간들이 지배하는 것을 용인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음을 언급한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로 이어졌다. 소설은 가상의 세계를 구성한 이야기나, 그 이야기는 현실의 실현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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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빌이 <구체제와 프랑스혁명>에서 이런 내용을 거론했다. “그 나라의 정치는 그 나라의 국민들의 수준을 알 수 있다고 말이다. 정치의 문제는 정치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나라와 국민의 총체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역사상 잔인한 독재자인 히틀러나 스탈린의 등장에서 단순히 그들이 광기에 젖은 살인의지가 시행된 게 아니다.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 원동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들이 세상을 암흑으로 만든 게 아니라 그들이 암흑으로 만들도록 내버려둔 것이다.

 

가끔 인간의 선택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상한 지점을 고른다. 그리스 신전에 찾아간 여행객들이 신탁을 듣는 순간 도저히 이성으로 납득되지 않아도 결국 그 비극적 운명은 도래한다. 인간은 처음부터 이성적이라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차라리 인간이 이성적이지 못하기에 그것을 인지하는 것부터 모든 게 시작하다. 자신이 생각하거나 옳다는 것은 그 본인에게 그 자체만으로 정의다. 정의에 대한 윤리성은 배제되고 오로지 자신의 제도적인 요소와 입지로 통해 정의는 갈리기 시작한다.

 

오늘은 2015416,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지 정확하게 1년이 되었다. 단원고등학교 학생과 그 밖에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아 가버린 비극적인 날에서 우리의 현실을 본다. 이 사건을 보면서 나는 인간의 이중성과 잔인성 그리고 욕망을 보았다. 포장마차에서 술 마시다가 또는 집에서 이야기하다가 보상금을 받는 화제가 나오면 인간의 추악한 모습을 본다. 보상금을 많이 받아 세금도둑이라 하는 자들을 볼 때, 나는 이래 생각한다.

 

저들이 저런 말을 하는 이유는 바로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떤 요행으로 거액을 받고 싶은 것이다.”라고 말이다. 만약 평범한 가정에 자녀가 혼자라면 돈을 몇 억 혹은 몇 십억을 받는 무슨 의미인가? 내가 만약 당신들의 애들이 죽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 라는 질문에 모두 자신들이 도덕적인 인간인 것처럼 대답을 한다. 나는 그러는데 저들은 그렇지 않는다는 말에서 인간의 추악함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세금이 오른 것도 담배 값이 오른 것도 의료보험료가 오른 것도 모두 세월호라고 말하거나 또는 그렇게 인지하는 세상을 보면 우리나라 정치의 부패는 바로 국민들의 인식이란 점을 알 수 있다.

 

남의 고통을 보고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 망정, 아직 결정되지 않고 해결되지 않은 보상 및 배상을 두고 질투하는 모습이란 가히 코미디가 따로 없다. 언론에서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마치 인 것처럼 흘려 놓는 모습에서 우리 현실을 본다. 돈에 대한 욕망, 그것이 타인들의 고통에서 받은 보상을 질투하는 치졸함, 게다가 세금이나 조세에 대해 계산조차 하지 못하는 무지함까지도 말이다. 만약 3,000억이 총 보상비용이라 하자.

 

담배 2000원이 오른 점에 대해 논하자면 한국흡연인구가 2013년을 기준으로 남자 42.1%, 여자 6.2%이다. 5,000만 명에서 저 정도면 2500만 명인데, 2,500만 명은 과한 것으로 보고 대략 1,000만 명으로 설정하자. 하루 담배 2,000× 10,000,000= 20,000,000,000원이다. 200억이라는 점이다. 담배 1갑을 2일을 핀다고 해도 2개월이면 모두 해결된다. 그러면 2개월 후에 담배가격이 원래로 돌아가는가? 결코 아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리가 판치고 있는데도 세금도둑이란 말을 어디서부터 시작인가?

 

무지와 질투로 어느 것부터 고치야 할 것은 보이지 못한 채 나약한 양심은 그 양심에 비해 훨씬 나약한 사회적 약자를 공격한다. 나약한 양심으로 정의를 말할 수 없기에 그들은 정의는 약자를 내모는 것으로 성립된다. 물론 이런 방법은 현재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과거 어느 시대에도 있었다. 당시에는 아주 유용하게 써먹은 방법이나, 후대에 와서는 모진 비판과 반사교면이 되던 실화가 되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작년, 나는 봉하마을에서 제초를 하고, 저녁 먹기 전에 잠깐 막걸리 한 잔 하고 쉬는 도중에 그 소식을 들었다. 내가 그때 생각하던 것은 진도라는 곳은 물살이 급한 곳이고 배가 만약 침몰했다면 시체조차 건져 오르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근데 그 불안한 생각은 거의 들어맞기 시작했고, 아직까지 실종자 9인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작년의 생각에도 나는 분명 시체라도 찾으면 다행일 것이라고 친구와 전화하던 일이 있었다. 내 친구는 나보고 너무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세상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보기 힘들고, 다소 비관적인 관점이 강하다. 마음에서 긍정의 심리를 따르지 않고, 뭐든지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부정적 시각은 사회구조적으로 또는 거시적인 판단을 나에게 주지만, 세상의 재미로서 그다지 맛을 보기 어렵다. 게다가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사회의 깊은 모순과 부조리를 그냥 무력하게 바라보는 나로선, 이 사회의 근본부터 뜯어고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나보고 너는 왜 이렇게 세상에 불만이 많니?” 또는 세상을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니?”라고 한다. 솔직히 나는 별 말을 하지 않으나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당연히 너희들이 그런 일을 당하지 않으니 그런 말을 하지. 만약 너희들이 그런 일들을 당하면 과연 어쩔까?”라며 지나친다. 모두 자신과 관계없으면 아무 상관없는 일이고, 마치 자신들에게 그런 일은 오지 않을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여태까지 이런 재난들이 일어난 이유는 바로 저런 사고를 가졌기 때문이다. 416일에 생각할 것들은 너무 많지만,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들에 추모해도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에겐 아직 시간이 있다. 이 세계를 살아갈 시간을 말이다. 그날의 비극 이상으로 더 비극인 것은 이 비극이 계속 되풀이 될 것이란 점이다. 역사는 2번 반복되는 소극에서 우리 앞의 생은 무엇으로 살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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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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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인 <Revolution No.3>를 읽으면 웃음과 흥미가 유발되는 작품이다. 좀비스라고 불리는 삼류 고등학교 불량아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우리 사회의 일면의 모순을 불랙코미디적 요소를 보여준다. 진짜 옳고 그른 것은 단순히 겉이 아니라 그 안의 진실성이다. 그런 소설을 쓰는 가네시로가 반드시 유쾌한 글만 적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가슴이 시리고 아쉬움만 전해오는 글을 적는다. 우연히 아는 동생 녀석에게 소개받은 소설 <연애소설>, 내가 알던 가네시로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하지만 기본적인 그의 작품세계관의 맥락은 많이 연계되어 있었다.


가네시로의 작품이라 하여 재미를 기대한 사람이나, 그 기대와 다르게 흘러가는 것을 보고 그 흐름에 기대는 사람 모두 가네시로의 작품 근원은 변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소설 제목이 <연애소설>이니 이 책은 분명 연애에 대한 내용을 적고 있다. 나는 연애에 대해 생각하면 그다지 좋고 아름다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연애 운이 없는지 내 자신이 부족한지 모르나, 그저 씁쓸한 기분도 맛 봤을 뿐이다. 시작하기도 전에 허무하게 날라 가거나 시작하려고 할 때 뒤통수를 맞던지 또는 잘 될 것 같았는데도 불발탄으로 그친 적이 많다.


게다가 성격이나 가치관도 일반인과 많이 동 떨어져 있다. 예전에 어느 사람에게 내 자신을 두고 "Little Comedian"이라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Rialto 밴드에 정규앨범이 아니 싱글앨범이 실린 곡으로 차분한 모던 락으로 노래를 듣는 순간, 뭔가 어눌하고 답답한 기분이 전해온다. 아무런 성과 없이 그저 노력하지만, 끝에는 스스로 체념해야 하는 Little Comedian처럼 내 자신이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정말 그런 일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시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나는 나만의 광대가 되었다.


연애, 그것은 사랑하는 행위를 말한다. 사랑에 대해 말하자면 무엇이라 이야기해야할까? 말은 하기 쉬워도 인간의 감정을 쉽게 무너뜨리고 때로는 하늘로 올라갈 것처럼 만든다. 가네시로의 <연애소설>에 나온 사랑이야기도 내가 느끼는 고독과 허무가 나온 것을 보았다. 주인공이 대학시절 옆에 동기이야기는 그야말로 끔찍한 고독과 허무다. 자신 주변에 있는 사람은 모두 죽고, 최후에 사랑하던 여자도 병으로 죽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사랑이란 감정을 준 여자를 만나 그는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았다.


적어도 자신이 죽기 전까지 세상에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 이야기를 주인공 작가에게 말해주었다. <연애소설>이 일반적 연애소설과 다른 점은 죽음이란 세계를 항상 옆에 끼고 이야기한다. 첫 번째 “연애소설”에선 주인공은 언제나 주변사람의 죽음을 보았고, 두 번째인 “영원의 환”편의 주인공은 암을 선고받아 언제 죽을지 모른 사람이었다. 게다가 마지막 “꽃”에서 주인공은 뇌질환으로 언제 지금 당장 죽을지 모를 운명이고, 그 주인공과 같이 드라이브를 떠난 변호사 도리고에는 암을 선고받은 초로의 남자였다.


모두 죽음을 바라보고 죽음 앞에 있는 점에서 마지막으로 인간이 죽기 전에 무엇이 하고 싶은가? 라는 질문에서 과연 글쎄 무엇일까? 우리는 철학자가 아니라서 스피노자처럼 사과나무를 심으려 들판에 나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다. 결국 그 최종은 사랑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인간은 1번 태어나면 죽는 것이 당연한 운명이다. 그 운명 안에서 어떻게 벗어나려 해도 답은 없다. 죽는 모습과 과정 그리고 시기는 달라도 죽고 나면 모든 인간은 평등해진다.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니깐.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죽으면 누군가 나를 기억해주고, 나를 추모해주며, 그 사람들 마음에 내가 살아있다면,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영원할 것이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사실 그 고통과 충격을 깊이 고민하는 것만으로 괴롭지만, 그보다 괴로운 것은 혼자 외롭게 고독과 허무 아래 사라지는 것이다. 마지막에 눈을 감는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연애소설>에선 바로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랑이란 어떻게 보면 전혀 기대하지 않거나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찾아오거나 느낄 수가 있다.


<연애소설>에서 사랑의 시작은 정말 우연이고 뜻밖의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별의 슬픔과 죽음 역시 생각하기 어려운 선택지였다. 만약 이런 운명 앞에 우리가 그 길을 걸어야 한다면 우리는 우리 삶을 사랑해야 할 것이다. 사랑은 혼자서는 되는 게 아니라 같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우연으로 치부하면 안 될 것이다. 사랑이란 것을 어떻게 만들어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 나는 그 사람을 왜 사랑하는가? 그 질문에 해답을 내놓지 않으면 금방 사랑은 식어간다.


내가 사랑에 빠진 것만큼 중요한 게 나는 왜 사랑하고 있는가이다. 아마 그 표현은 “꽃”편에서 가장 잘 보여준 것 같다. 가네시로 작가의 특유의 재미가 잘 나오지 않은 소설이라 해도 그의 인생가치관이 “꽃”편에 잘 나와 있다. 게이코는 남편과 28년 넘게 떨어져 살아왔지만, 남편이 살인범(그는 1970년대 일본에 살고 있는 사회적 약자 - 아마도 징용된 - 조선인의 후예였다)의 변호를 맡은 과정을 계속 찾아 정리하였다. 가난하고 소탈한 남편이나, 남편집안의 이야기인 '도리고에 가의 전설‘은 몇 번이나 들려 달라 했고, 그 전설을 만들어 내었다. 남편의 할아버지는 관동대지진 때 억울하게 핍박받은 조선인과 중국인 친구를 변호하다가 얻어맞아 죽었다.


이에 반해 아내 게이코의 집안은 한국전쟁과 일본 대공업시기에 거부가 된 사람이다. 어울리지 않은 두 사람, 하지만 게이코가 남편 도리고에를 진정 사랑한 이유는 그만이 약한 자를 비웃지 않고 진정으로 위해 뛰었기 때문이다. 바로 신념이 있었고, 그것을 위해 살았던 것이다. 만남은 계단에서 떨어진 게이코를 보고 다정하게 감싸준 것처럼 게이코가 바라본 도리에고의 모습은 바로 다정함이다. 그 다정함은 게이코만이 아니라 ‘도리고에 가의 전설’처럼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내 자신의 이기심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거나(“연애소설”편), 아니라면 그 사람을 위해 누군가를 죽일 각오가 있는지(“영원의 환”편) 아니라면 죽음만이 유일한 화해(“꽃”편) 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을까? “꽃”편에 게이코는 남편과 죽은 아들의 묘비에 남긴 꽃은 물망초다. 물망초의 말뜻은 나를 기억해주세요! 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기억해주고 내가 그 사람을 기억해주어 서로 마음이 아픈 일이 많더라도, 그것조차 넘을 수 있다면 멋진 사랑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나는 그런 기억이 없는 게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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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 (반양장) 주니어 클래식 3
사계절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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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를 말하면 대부분 문관을 지망하던 사대부로 보겠지만, <논어사람을 말하다>에서 선비는 무관을 말하던 것이다.장기놀이하면서 왕을 지키는 작은 말 2개가 있는데그것이 바로 사()자이다즉 선비는 왕을 지키는 호위무사로부터 시작했다낮은 무장관료가 점차 문관으로 지향하면서 관료정치의 바탕이 된 게 선비였다삼국지를 읽어봐도 선비의 개념은 특별히 느끼지 못하나용맹한 무장은 단순히 용맹만 있는 것이 아니라 관우나 조운 같이 뛰어난 지혜를 가진 자들도 있었다.


선비의 기원인 무장들은 싸움의 기술만이 아니라 문장력과 정치력을 같이 동반해야 한 점이다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정치의 핵심은 양반 사대부로 이전되고양반은 무반과 문반을 지칭하는 말이다조선시대 대부분 공신들은 칼을 잡은 무관이었으나 점차 관직이나 행정기관에서 정치업무를 맡은 사람들이 많았다조선 시조 태종 이성계도 무장으로 시작했지만그 끝은 군주의 자리고군주는 나라는 다스리는 정치가이다정치를 한다는 것은 인간의 도리를 실천하기 위해서고인간의 도리를 위해서는 학문을 수행하는 것이 유학의 본질이다조선의 유학은 본래 유학자로 하여금 바른 정치를 선보여 백성의 생활을 도모하는 것이 근본이다.


하지만 유학이 유교라는 정치적인 학문보단 성리학의 영향으로 종교적인 요소로 강조되면서 공자의 유학은 변질되었다.공자의 가르침엔 제자들로 하여금 직접 농사를 짓거나 농사를 짓는 기술을 전파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모이도록 하는 것이었다올바른 정치란 인간이 서로 모여 사회를 구성하여 그들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유학의 본질이다군주가 살던 시대에 공자가 살았기에 군주정에 대한 기초로서 유학을 만들었겠지만군주의 정치는 바로 철인(哲人)정치즉 군주나 군주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철학으로 정치를 행하는 것이다.


서양사회에서도 마키아벨리 이전에 정치라는 것은 철학과 연계되어 있지만, <군주론이후 정치와 철학은 분리된다그러나 21세기에서도 정치는 철학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정치하는 자가 철학이 없다는 것은 공자의 가르침에서 의()가 없다는 것이고의가 없는 정치는 명분이 없기에 무의미한 행위로 그친다그리고 그 명분이란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백성을 위한 것이다내가 유학에 대해 어느 정도 편견을 버리고조금 다른 시선을 볼 수 있던 점은 다산 정약용 선생에 대한 책을 접하면서부터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정치의 근본은 백성이고백성을 다스릴 계책을 얻고 싶거든 길거리의 농민에게 물어보라 했다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고그 사람은 우리가 다스리기 위해선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라는 것이다결국 소통과 대화가 먼저 이루어지는 게 정치의 핵심이다다산 선생이 곡산군수로 부임하면서 길 앞에 어느 남정이 기다리고 있었다기다리는 남정은 이계심이라 하여 마을관아에 반란을 든 용의자였다이계심이 다산 선생에게 나와 마을주민을 괴롭히는 조목을 설명하자 다산 선생은 이계심의 말을 받아주며오히려 이계심과 같은 사람이 많아야지 나라가 제대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백성이 힘든 것을 지금으로 말하자면 힘이 약한 사람들의 입장을 말해주는 사람이 가장 정치가들에게 필요한 사람이다.유학의 근본이란 바로 다산 선생이 보여준 것처럼 사람을 찾아가는 학문이다. 21세기에 기원전에 기록된 논어를 읽는 게 시대적 간극이 큰 것처럼 보이나그 바탕에는 오히려 더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 옳다유학에서 공자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인()이다어질다는 의미를 가진 인이란 의를 실천하는 단어다어질다는 것은 무엇인가우리 인간은 자연적으로 매우 선한 존재이기도 하지만때로는 매우 악한 존재다.


자연적 인간은 자연과 동화되어 유유자적 살아가겠지만야만의 인간은 폭력과 무지로서 사람들을 대한다공자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처럼 제자 그러니깐 유학자가 가장 먼저 할 것은 사람을 모이게 한다그리고 그들을 편안하게 배부르게 해야 하고 나중에는 글을 배우게 해야 한다고 했다즉 인간의 최종완성은 문화적인 인간동물적으로 욕망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욕망 이상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인간이 가져야 할 도리로서 인을 중시하는 것은 바로 인간은 자신만 보고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공자의 가르침에서 관계의 미학을 중시한다우리는 관계의 미학에서 내 가족만 챙기거나 또는 이익과 손실을 따져 친구를 사귄다물론 가족도 중요하고친구의 손익 관계도 중요하다하지만 내 가족이 소중하면 남의 가족도 소중하고친구의 관계에서 이익을 추가하는 것은 물질적 이익이 아니라 정신적심리적 즐거움이다나를 알아봐주는 사람 하나 제대로 없다면 그것만큼 외롭고 쓸쓸한 일은 없다그래서 공자도 자신의 제자 안영이 죽을 때 그렇게 슬퍼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공자의 가르침이나 논어에 대한 이야기에서 공자와 유학이 낯선 존재가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보편적인 가치를 주고 있다단지 그 차이는 조금 더 예를 가지거나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다자신의 밥은 초라하나 제사의 밥은 풍족히 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지금이야 먹을 것이 풍부하나과거에 먹는 것이 부족한 시기에 배고픈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제사에 차려진 음식들은 귀신들이 먹는 게 아니라 결국 인간의 입으로 들어간다그 많은 음식을 제사를 차린 제주가 다 먹을 수 없다자신의 집에 찾아온 친척과 친구 그리고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다.


제사문화의 특징은 단순히 허례허식만이 아니라 주변이웃에게 나눔과 베푸는 정을 주기 위해서이다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그래서 관계의 정치는 바로 그런 것이다하지만 이익을 기반으로 한 정치는 공자는 용서하지 않았다한국식 민주주의나 유교식 자본주의란 말은 공자가 강요한 적이 없다공자는 아버지는 아버지답게아들은 아들답게 해야 한다고 한다그러나 정치가란 무릇 백성에게 아버지와 같은 자이나아버지가 아들을 혹독하게 대하는 게 아버지의 도리는 아니다공자의 유학을 보고 한국식 민주주의를 마치 정치적 정의로 보는 사람들을 보면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옛날 말에 임금은 하늘이 내리지만그 하늘은 백성이라 했다국가의 모든 시작점은 백성인 점에서 공자의 가르침 중에 이 말이 인상 깊다군주가 안보백성의 믿음경제 이 3가지에서 만약 먼저 버릴 게 무엇이냐에서 공자는 맨 먼저 안보를 택하고 다음으로 경제를 선택했다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안보와 경제를 주구 창창 외치는데정작 안보와 경제는 구멍만 나는 현실이다안보국가를 지키기 위해 군복무를 하는 것은 국민이고경제활동을 하는 것도 국민이나그 근본을 제대로 잡지 않고관료주의에 물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과거의 유학사상이라 하여 새로운 사상이나 정치이념이 들어와도 민심의 기우는 변하지 않는다제일 중요한 것은 정치이념이 아니라 정치에 대한 철학적 자세이기 때문이다공자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게 광폭한 정치라고 했다가렴주구라는 말은 매우 잔혹했다조선후기 군역에 사내아이가 배냇물도 마르지 않았고 시아버지는 이미 죽어 백골이 되었는데도 군역에 올라가 세금을 내어야 했다다산 선생이 지은 애절양(哀絶陽)이란 시조는 부패한 관리가 판을 치는 나라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글이다.


최근 국내도 경제적 어려움으로 남자들이 결혼할 수 없고결혼해도 아이를 가질 수가 없어서 21세기형 애절양을 보여주고 있다자식을 놓은 자신의 남근을 원망하며 칼을 들어 그 남근을 도려낸 남정네자신의 남편의 남근을 억울함을 호소하는 아낙네관아의 벽은 성문보다 높고 관아 문을 지키는 포졸은 염라대왕보다 더 무섭다공자가 보여주고 싶은 유학은 바로 이런 일을 없애기 위해서고아무리 부당한 현실이라도 잘못된 세상을 끊임없이 탐구했다.


공자의 유학이나 루소의 <사회계약론>이나 모두 기본적으로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만든 것이다하지만 세상은 그들의 이상보단 이익으로 돌아가고그럴수록 그들의 사상은 더욱 숭고한 가치를 보여준다논어가 비록 고전이라고 하나 그곳에 비수 같은 말이 여기저기 숨어 있다과거는 멀지 않은 미래와 같다는 말은 아마 이런 연유에서 나오는 것과 같았다인간의 과거를 보고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잘못된 관행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공자가 말한 것처럼 과거의 정치적 제도를 되돌려서 안 되는 이유는 과거의 잘못을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다그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 반사교면을 삼기 위함이다그러나 그 인간의 도리를 아는 것과 실천할 수 있는 용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자신의 삶에 작은 실천이 큰 대의를 만드는 것처럼 인간이 살아가는 도리란 바로 작은 것부터 실천하여 커다란 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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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쌩 2015-04-14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치철학이 없이 통치만 하려드니 ,
정치가 효율성만 추구되고 권력의 시녀가 되는것 같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5-04-14 22:28   좋아요 0 | URL
세월호 2주기가 모레이고, 다음달이 518항쟁 35주년이나 아직 발포명령자조차 잡아들이지 못하니, 정말 정치적 효율이 아니라 권력의 효율화만 되고 있습니다.
 

최근 핸드폰의 노후에 따라 새로운 핸드폰 하나를 구매했다. 핸드폰을 교체하면 반드시 거쳐야 할 작업이 기존 핸드폰을 정리하는 것이다. 기존 핸드폰에 있는 주소와 데이터를 새로운 단말기로 이전 후 초기화하여 최종 정리한다. 핸드폰 자료정리를 하려면 우리 일반인들이 할 수 없으니 자신이 구매한 단말기의 업체 서비스센터로 간다. 문제는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서비스센터 직원이 문제가 있다거나 서비스의 질을 따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가장 보기가 불편하고 피곤한 감이 드는 것은 무조건 5점 만점에 5, 십점 만점에 십점 같은 평가제도다. 평가제도의 도입이 고객에 질 높은 서비스를 줄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 필요 이상의 불편함과 부담감이 온다. 기본적으로 인성 쪽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손님이나 고객에게 큰 불편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가게에 와서 행패부리는 유형도 다분하다. 핸드폰 단말기 교체하고 나가는 와중에 서비스센터 데스크에 앉아있는 안내원에게 괜히 트집잡는 아저씨를 보았다.

 

안내 데스크 직원에게 떼를 쓰고 화를 내어도 그 사람의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오히려 시간을 지체시키고, 거기서 해결되지 않은 점에서 더 기분만 상할 뿐이다. 이런 모습에서 과연 서비스산업에서 고객의 눈에 맞추어 일을 하는 것은 맞겠지만, 그들은 필요 이상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것이다. 고객센터에 가면 행패부리는 인간은 정말 드문 케이스고, 특별히 업체의 실수가 아닌 이상 고객은 화를 내거나 쓸데없이 시비를 걸 이유는 없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서비스평가를 요구하는 것은 왠지 모르게 피곤한 일이다. 핸드폰 단말기를 교체하고 데이터 이송한 뒤에도 심지어 요금제 관련 변경으로 통신사 방문 때도 그렇다. 모두 직접 본사에서 확인전화가 오면 높은 점수를 달라는 것이다. 충분히 친절하게 업무를 했고, 그 업무에 대해 나는 불편함도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저 한 마디와 본사에서 걸려오는 전화 한 통은 무척 불편하다. 본사에서 오는 전화 한 통에 응답하는 시간은 30초 이내일 것이다. 30초에 목숨 걸 이유도 없고, 30초를 할애하는 것에 큰 문제는 없다.

 

단지 그 30초의 통화에 각각 한 사람들의 평판이 결정되고, 그들은 고객의 확인전화 후에 희()는 없고 단지 비()만 올 뿐이다. 세상은 희비가 엇갈리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오로지 비만을 생각하고 업무에 매진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인간이 직업에 매개에 의해 하나의 평가대상이 되는 것은 도구로 되는 것과 같다. 직원들에게 과도한 스트레스와 초조함, 고객에겐 불편함을 안겨주는 친절함은 조금 잘 못되어가는 우리 모습 같다.

 

게다가 고객에게 이런 평가를 강요하는 것도 고객에게도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고객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찾아와 그 목적에 대한 합리적인 결과를 평가하고 싶은 것이지, 자신을 응대하는 직원을 평가하고 싶어 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타인에 대한 판결을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이루어진다. 감정노동이 이젠 새로운 노동문제로 볼 때이다. 감정노동에 육체적으로 변화가 없어 보이지는 않으나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영향을 주어 생리적으로 문제를 일으킨다. 서비스센터직원과 손님의 시작은 인간과 인간이지 주인과 자본의 노예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세상은 자본의 노예를 손님과 직원에게 강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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