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엔젤 - 스탈린의 비밀노트,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2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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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엔젤>이란 러시아에 위치한 작은 말이다. 로버트 해리스가 <아크엔젤>이란 소설에서 이 지역을 선택한 이유는 프롤로그에 소개되고 있다.

 

1. 대천사, 구품 천사 중 한 천사로 국가 통치자의 보호와 특별한 사명을 전달한다.

2. 러시아 북구 백해에 위치한 항구도시, 스탈린의 비밀노트가 가리키는 종착점


소설이라고 하나, 기본적인 세계관은 현실적 기반을 두고 있다. <아크엔젤>은 1990년대 소비에트연방 해체 후 러시아의 사회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르는 러시아, 아마도 우리는 지난 과거의 변화 속에도 그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다. <아크엔젤>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것은 인간이 가진 광기다. 광기가 돌출되는 이유는 무엇이고 아직도 유지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소비에트연방 해체 후에 옐친과 푸틴이 정권을 잡지만, 아직까지 러시아에선 스탈린과 스탈린 이후의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다.


소설에서도 스탈린의 이름이 계속 언급되고, 스탈린의 초상화를 들고 다니는 사람도 많으며, 낫과 도끼가 새겨진 소비에트마크가 달린 물건들이 종종 나오고 기차에도 새겨져 있다. 게다가 모스크바와 멀리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과거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넘치고 있다. 스탈린에 대해 다시 돌아가자. 왜 사람들은 스탈린을 그리워하고, 지난날의 향수를 찾아가는가? 인간은 이성만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나기 위해서 하나의 정체성을 설정한다.


인간의 생명은 생물학적으로 살아남으려는 본능에 치우쳐 있지만, 정체성에 대한 인간의 갈망은 인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만큼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아크엔젤>에 등장하는 헥소 박사는 자신이 러시아에 방문하게 된 동기가 스탈린 연구발표하기 위해서다. 스탈린은 1936~1938년 4회의 모스크바재판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그가 죽인 사람 수는 세계대전에서 죽은 사람이나 혹은 히틀러에게 학살당한 사람보다 더 많았다.

 

시대의 사이코패스, 광기에 젖은 인간, 스탈린이란 바로 그런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은 아직까지 되살아나는 유령이다. 소비에트연방이라는 나라가 설립될 때 레닌과 볼셰비키들은 인터내셔널 가와 라 마르세예즈를 혁명 당시 계속 불렀고, 인터내셔널 가는 소비에트연방의 국가(國歌)가 되었다. 그러나 레닌 사후 스탈린이 집권하면서 스탈린 정권에서 소비에트찬가라는 곡으로 교체된다. 그 곡을 보면 Patina Lenina(Party of Lenin)이란 가사가 나오는데, 그것은 레닌의 당이란 의미다.

 

소설에서 레닌의 당, 스탈린의 당이란 가사는 없었다. 심지어 그 노래(Soviet Anthem)를 찾아 들어보면 영상편집에서 Patina Lenina 가사 부분이 나올 때 레닌과 스탈린이 나오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직까지 레닌과 스탈린에 대한 향수가 러시아에서 떨어지지 않은 것이다. 영상을 보면서 <아크엔젤>의 연결성은 소비에트연방 해체 후 러시아에선 기존 소비에트연방이 가진 정체성 그 시대의 향수에서 많은 인간들이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아크엔젤>에서 헥소 박사가 스탈린의 비밀노트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때 라파바와 수부린, 항구도시 아크엔젤의 사람들처럼 스탈린이란 유령에 아직 벗어날 수 없었다. 마만토프 같은 경우, 헥소 박사가 스탈린의 비밀노트를 찾아가는 것을 은근히 방해하면서 그것을 유도했고, 마지막 종착점에 다다를 때 헥소 박사는 자신이 이용당한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지난날 그들만의 영광과 이념을 찾아가기 위해서다. 인간이 현실을 벗어난 이념을 숭배하는 순간 그 사회는 병이 든다. <아크엔젤>은 자본주의 문화가 러시아를 강타하고, 자본주의국가와 대립한 소비에트연방의 후예들은 자신들의 현실에 고민하고 있다.


<아크엔젤>의 시기가 아직까지 늙은 노인들은 1917년 볼셰비키혁명을 기억한 자들도 있고, 1930년대 스탈린이 활발하게 활동할 때도 기억하고 있다. 스탈린에 대한 향수는 과거 자신들이 이룬 업적을 잊지 않은 것이다. 비밀노트의 주인은 스탈린이 아닌 스탈린의 저택에 들어온 젊은 여자다. 그 여자는 결국 죽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헥소 박사가 아크엔젤에 찾아가니 살아있었다. 여자의 어머니는 언제 죽을지 모를 정도로 늙었고, 혼자 외로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도 스탈린에 대한 향수와 광기는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스탈린에 의해 딸이 모스크바로 끌려가 심한 일을 당했는데, 자기 남편이 딸의 죽음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 떠나 죽었는데도 늙은 노파는 스탈린에 대해 집착한다. 스탈린은 집권을 위해서 볼셰비키 고참 당원을 모조리 숙청했고, 자신의 친구와 가족마저 잔인하게 죽도록 만들었다. 레닌이 죽고 난 후 레닌의 신격화 작업이 이루어지고, 그 후계자로 스탈린이 되는 과정은 피의 숙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왜 사람들은 스탈린이 음울하고 속이 시커먼 사람인데도 그에게 이끌릴까?


인간에겐 누구나 어둠이 있고, 그 어둠에 쌓이면 인간은 광기에 빠져버린다. 1924년 레닌사후 스탈린은 당의 인사권을 장악하고 자신의 주변 인물들을 당의 주요간부에 임명하다. 반스탈린주의자들은 모조리 파시스트로 몰아넣었고, 거기에 동조한 인물들은 출세의 가도를 달린다. 그들이 승승장구 올라가면서 스탈린과 맞먹을 정도로 권력을 가지게 되거나 또는 스탈린에 대해 잘 알게 되면 스탈린은 그들을 응징한다. 그렇다면 스탈린의 행동에 많은 사람들은 스탈린을 두려워하고 경계하여야 하지만, 반대로 두려워하나 그에게 더 이끌린다.


스탈린으로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 확립, 더 나아가 자신들이 스탈린으로 통해 성공할 수 있다는 욕망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 비밀감옥지하에서 총소리가 울릴 때마다 새로운 진급자들이 탄생한다. 이들이 총에 의해 죽어갈 때 국민들은 파시스트 첩자의 죽음,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응징이라 여긴다. 소비에트연방 해체해도 트로츠키는 아직까지 반역자의 이름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이미 각인된 러시아의 정체성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움직이기보단 그 과거에 매달리는 이유는 강력했던 지난날의 향수다.


그 시대가 정당한지 아니면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 때가 좋았고, 그때로 돌아가는 것이 목표다. 광기와 살인이 넘치는 시대에 대표적인 사이코패스를 많은 사람들이 얽매인 이유는 <아크엔젤> 소설내용이나 후기처럼 우린 비이성적이고 비정상적인 사고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힘으로 통치하는 시대에 대한 향수는 우리 스스로 억압과 폭력이란 쇠사슬로 엮이게 만든다. <아크엔젤>은 바로 그런 시대적 간극에서 벌어지는 사회상을 하나의 가설을 내세워 만든 소설이다.

 

스탈린이란 인간 그 자체는 사라져도, 스탈린의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고, 다시 계속 반복된다. 스탈린이란 인물이 죽었다 해도 그런 인간이 다시 나오지 마란 법은 없다. 하지만 더욱 소름끼치는 것은 그런 인간이 나와도 용납하는 세상이다. 역자가 말한 것처럼 우리 역시 그런 인간이 나와도 무방한 사회, 오히려 그런 인간들이 지배하는 것을 용인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음을 언급한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로 이어졌다. 소설은 가상의 세계를 구성한 이야기나, 그 이야기는 현실의 실현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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