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빌이 <구체제와 프랑스혁명>에서 이런 내용을 거론했다. “그 나라의 정치는 그 나라의 국민들의 수준을 알 수 있다고 말이다. 정치의 문제는 정치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나라와 국민의 총체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역사상 잔인한 독재자인 히틀러나 스탈린의 등장에서 단순히 그들이 광기에 젖은 살인의지가 시행된 게 아니다.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 원동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들이 세상을 암흑으로 만든 게 아니라 그들이 암흑으로 만들도록 내버려둔 것이다.

 

가끔 인간의 선택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상한 지점을 고른다. 그리스 신전에 찾아간 여행객들이 신탁을 듣는 순간 도저히 이성으로 납득되지 않아도 결국 그 비극적 운명은 도래한다. 인간은 처음부터 이성적이라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차라리 인간이 이성적이지 못하기에 그것을 인지하는 것부터 모든 게 시작하다. 자신이 생각하거나 옳다는 것은 그 본인에게 그 자체만으로 정의다. 정의에 대한 윤리성은 배제되고 오로지 자신의 제도적인 요소와 입지로 통해 정의는 갈리기 시작한다.

 

오늘은 2015416,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지 정확하게 1년이 되었다. 단원고등학교 학생과 그 밖에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아 가버린 비극적인 날에서 우리의 현실을 본다. 이 사건을 보면서 나는 인간의 이중성과 잔인성 그리고 욕망을 보았다. 포장마차에서 술 마시다가 또는 집에서 이야기하다가 보상금을 받는 화제가 나오면 인간의 추악한 모습을 본다. 보상금을 많이 받아 세금도둑이라 하는 자들을 볼 때, 나는 이래 생각한다.

 

저들이 저런 말을 하는 이유는 바로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떤 요행으로 거액을 받고 싶은 것이다.”라고 말이다. 만약 평범한 가정에 자녀가 혼자라면 돈을 몇 억 혹은 몇 십억을 받는 무슨 의미인가? 내가 만약 당신들의 애들이 죽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 라는 질문에 모두 자신들이 도덕적인 인간인 것처럼 대답을 한다. 나는 그러는데 저들은 그렇지 않는다는 말에서 인간의 추악함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세금이 오른 것도 담배 값이 오른 것도 의료보험료가 오른 것도 모두 세월호라고 말하거나 또는 그렇게 인지하는 세상을 보면 우리나라 정치의 부패는 바로 국민들의 인식이란 점을 알 수 있다.

 

남의 고통을 보고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 망정, 아직 결정되지 않고 해결되지 않은 보상 및 배상을 두고 질투하는 모습이란 가히 코미디가 따로 없다. 언론에서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마치 인 것처럼 흘려 놓는 모습에서 우리 현실을 본다. 돈에 대한 욕망, 그것이 타인들의 고통에서 받은 보상을 질투하는 치졸함, 게다가 세금이나 조세에 대해 계산조차 하지 못하는 무지함까지도 말이다. 만약 3,000억이 총 보상비용이라 하자.

 

담배 2000원이 오른 점에 대해 논하자면 한국흡연인구가 2013년을 기준으로 남자 42.1%, 여자 6.2%이다. 5,000만 명에서 저 정도면 2500만 명인데, 2,500만 명은 과한 것으로 보고 대략 1,000만 명으로 설정하자. 하루 담배 2,000× 10,000,000= 20,000,000,000원이다. 200억이라는 점이다. 담배 1갑을 2일을 핀다고 해도 2개월이면 모두 해결된다. 그러면 2개월 후에 담배가격이 원래로 돌아가는가? 결코 아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리가 판치고 있는데도 세금도둑이란 말을 어디서부터 시작인가?

 

무지와 질투로 어느 것부터 고치야 할 것은 보이지 못한 채 나약한 양심은 그 양심에 비해 훨씬 나약한 사회적 약자를 공격한다. 나약한 양심으로 정의를 말할 수 없기에 그들은 정의는 약자를 내모는 것으로 성립된다. 물론 이런 방법은 현재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과거 어느 시대에도 있었다. 당시에는 아주 유용하게 써먹은 방법이나, 후대에 와서는 모진 비판과 반사교면이 되던 실화가 되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작년, 나는 봉하마을에서 제초를 하고, 저녁 먹기 전에 잠깐 막걸리 한 잔 하고 쉬는 도중에 그 소식을 들었다. 내가 그때 생각하던 것은 진도라는 곳은 물살이 급한 곳이고 배가 만약 침몰했다면 시체조차 건져 오르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근데 그 불안한 생각은 거의 들어맞기 시작했고, 아직까지 실종자 9인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작년의 생각에도 나는 분명 시체라도 찾으면 다행일 것이라고 친구와 전화하던 일이 있었다. 내 친구는 나보고 너무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세상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보기 힘들고, 다소 비관적인 관점이 강하다. 마음에서 긍정의 심리를 따르지 않고, 뭐든지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부정적 시각은 사회구조적으로 또는 거시적인 판단을 나에게 주지만, 세상의 재미로서 그다지 맛을 보기 어렵다. 게다가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사회의 깊은 모순과 부조리를 그냥 무력하게 바라보는 나로선, 이 사회의 근본부터 뜯어고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나보고 너는 왜 이렇게 세상에 불만이 많니?” 또는 세상을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니?”라고 한다. 솔직히 나는 별 말을 하지 않으나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당연히 너희들이 그런 일을 당하지 않으니 그런 말을 하지. 만약 너희들이 그런 일들을 당하면 과연 어쩔까?”라며 지나친다. 모두 자신과 관계없으면 아무 상관없는 일이고, 마치 자신들에게 그런 일은 오지 않을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여태까지 이런 재난들이 일어난 이유는 바로 저런 사고를 가졌기 때문이다. 416일에 생각할 것들은 너무 많지만,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들에 추모해도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에겐 아직 시간이 있다. 이 세계를 살아갈 시간을 말이다. 그날의 비극 이상으로 더 비극인 것은 이 비극이 계속 되풀이 될 것이란 점이다. 역사는 2번 반복되는 소극에서 우리 앞의 생은 무엇으로 살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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