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애니메이션 이야기
존 할라스 지음, 한창완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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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우리가 애니메이션을 생각하면 무엇부터 생각하는가?
미국의 디즈니메이션, 픽사, 드림웍스 같은 대규모자본으로 움직이는 회사의 작품이나 혹은 일본에서 TV애니메이션 시리즈로 대량생산되는 작품이나 혹은 아동용이나 교육으로 주로 제작된 한국 애니메이션 쪽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아주 단적인 지식과 수준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애니메이션은 한국, 미국,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 위의 러시아로 필두로 하여 프랑스, 독일, 영국, 헝가리 등 다양한 나라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으니깐 말이다.

단지 우리가 미국이나 일본 애니메이션에 친숙한 이유는 미국으로부터 많은 문화적 영향을 받은 이유와 미국 애니메이션 자체가 할리우드 영화사와 연계되어 내려와 영화산업에서 애니메이션까지 포함되었다. 그런 미국 할리우드 영화 역사에서 중요한 애니메이션 영화로 남은 작품은 바로 월트 디즈니의 작품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이후 미국으로부터 이런 할리우드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점점 접할 계기가 늘어났다. 물론 일본 애니메이션은 1970년대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꾸준히 수입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 일본과 접해있기 때문에 일본 애니메이션이 쉽게 국내에 유입될 수 있다.

그래서 미국과 일본 애니메이션이 한국에 많은 영향은 끼친 것은 사실이나 이 미국과 일본 애니메이션이 아니더라도 수 많은 애니메이션이 세계 각지에서 제작되고 상영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필요성이 있는듯 하다.

기본적으로 애니메이션은 영화에서 시작하였고, 영화의 발생지인 프랑스로부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시작한 애니메이션은 인접 국가에게 영향을 주어 이제는 유럽 애니메이션이란 독특한 애니메이션 세력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유럽 애니메이션은 우리가 알고 있는 셀 애니메이션이나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기 보다는 인형, 종이, 스크래치, 모래 등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보여주기를 원한다. 그래서 유럽 애니메이션은 재미도 나름 추구하겠지만, 그 안에 사회 비판이나 혹은 예술적인 가치를 많이 반영하였다.

그래서 흔히 우리가 보거나 들었을 만한 작품으로 나무를 심는 남자나 동물농장과 같은 뭔가 교훈이나 시대적인 패러디를 반영한 요소가 많다. 물론 나무를 심는 남자는 캐나다에서 제작된 작품이나 그 작품성에 반영된 요소가 유럽 애니메이션 요소가 많다. 그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제작기법으로 통해 많은 생각을 주기 위해서 효과적인 방법을 연출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애니메이션은 애들이나 보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유해하라는 것만 생각하는 편견과 고정관념들은 이런 유럽 애니메이션으로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 된다고 생각한다. 유럽에서는 애니메이션을 하나의 예술로 받아들이는 부분이 많다. 특히 프랑스와 같은 경우에는 아방가르드 즉 전위예술적인 작품들이 상당히 많다. 

게다가 모더니즘 이후 인간의 이성만 중시하고 감성을 외면하던 것을 극복하고 인간의 다양성과 상대성을 중시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이 출현할 때에도 유럽 애니메이션은 상당한 가치관을 작품 안에 투영하였다. 애니메이션이 예술로서 그렇게 반영하기 좋았던 이유는 인간의 상상력을 마음껏 들어다 볼 수 있는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유럽 애니메이션을 안다는 것은 애니메이션 영화사 전반적인 흐름을 아는 것과 우리가 알고 있는 애니메이션 넘어 새로운 작품이 있는 세계가 있음을 알려주는 하나의 교과서와 같은 책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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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하니 - 전4권 - 바다어린이만화
이진주 글 그림 / 바다출판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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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달려라 하니는 참으로 이상한 작품으로 생각된다. 내가 이 달려라 하니를 처음 본 기억은 국민학교 시절 즉 지금으로 따지자면 초등학교 시절이다. tv에서 방영되던 달려라 하니는 어린시절에 내가 보기로는 가엾고 불쌍한 하니가 자신의 고통을 이겨내어 행복을 찾아가는 아이로 나온다.

왜냐하면 하니는 극중에서 친어머니를 여의고 게다가 친아버지는 새엄마와 결합한 점에서 강한 비극적인 모티브를 낳게 된다.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찬 하니라는 소녀의 슬픈 분노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어른이 된 시점에 다가와서 달려라 하니를 본다면 가족관계에 대한 사랑과 증오라는 이면이 숨겨진 작품인듯 하다. 우선 그리스신화에서 등장하는 유명한 일화로 아가멤논왕과 그의 딸인 엘렉트라에 대한 이야기다.

아가멤논왕은 어느 모험에서 자신에게 닥친 재난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딸을 희생을 삼아버리고, 딸이 희생됨에 따라 아가멤논왕의 아내는 그녀의 정부와 결합하여 아가멤논왕을 죽인다. 그리고 아가멤논왕의 아들이 멀리 피신한 후에 딸인 엘렉트라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와 어머니의 정부를 원망하고 복수하길 바란다.

이때 엘렉트라는 자신의 나라에 몰래 들어온 남동생 오레스테스와 결탁하여 자신의 어머니와 그녀의 정부를 죽여버린다. 이런 엘렉트라에 대한 그리스신화를 두고 이른바 엘렉트라 컴플렉스라는 정신분석학적인 용어가 생겼다.

이런 엘렉트라 컴플렉스적인 요소로 본다면 하니는 자신의 아버지를 사랑했다는 점과 자신이 좋아하는 친어머니가 돌아가신 점에서 작가의 엘렉트라 컴플렉스 요소가 다소 보인다. 그리고 카니발에서 아버지의 권위를 노린 아들들이 아버지를 죽여 그 권위를 가져가나 차후에 아버지를 죽인 양심적 가책에 따라 자신이 예전에 있었던 아버지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며 제사를 지낸다.

물론 이것은 남성중심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시점이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의 반대되는 엘렉트라 컴플렉스로 보자면 딸이 어머니를 미워하여 죽이고 싶은 점에서는 상호작용을 하는 셈이다. 하니닌 직접 어머니가 죽이거나 죽기를 바라지는 않으나 작중에서 죽었기 때문에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느끼고, 이제 어머니가 없어 아버지의 사랑을 바랬으나, 아무 예고도 없이 새엄마가 등장한다.

새엄마의 등장은 하니에게 크나큰 충격이고 하니는 새엄마를 거부하고 따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살부와 살모를 원하는 무의식적인 면은 반드시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오이디푸스 가부장제에서 아들은 아버지를 죽이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으나 그 아버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아버지를 죽이지 않고 어머니와 닮은 여자를 찾아 결혼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하니는 그런 남자를 어디서 찾아 내었을까? 그것은 바로 같은 육상부에 가입된 창수라는 소년이다. 창수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하니를 위해 아낌없는 마음을 주는 착한 소년이다. 하니는 그런 아버지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을 창수에게 받음으로서 최후에 아버지와 새엄마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물론 창수라는 소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인물이 있다. 그것은 바로 홍두께 선생이다. 홍두께 선생(성우를 맡으신 故 장정진 선생님의 명복을 빌며)은 하니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하니를 직접 돌보는 모습이 나오고, 작중에서 하니는 무의식적으로 홍두께에게 아버지라고 외쳐준다. 그러나 이런 하니의 무의식적인 욕구는 계속 유지될 수 없었다.

홍두께 선생은 자신의 시골집에서 선보라 올라온 고은애와 결혼하였기 때문이다. 홍두께의 결혼은 하니에게 하니의 친아버지보다 더 친아버지같은 존재가 없어지는 순간이다. 그래서 나는 하니가 창수와 친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달려라 하니는 어느 불우한 가정사를 안고 살아가는 육상부 소녀만의 이야기라고 볼 수는 없다. 그 속에는 기존 한국만화에서 소년이 비중을 차지한데 비해 이제는 소녀가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안에 내포된 인간의 무의식적인 욕구는 왜 이제서야 다시 보여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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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alto - Rialto
워너뮤직(WEA)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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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alto라는 그룹은 다소 음악이 몽상적인 부분이 강하다. 그 이유는 그들은 단순히 음악을 음악으로서 보여주기 보다는 음악을 하나의 영화처럼 보이려고 했기 때문이다. Rialto 1집의 Monday Morniong 5.19의 경우 다소 가사가 어느 남자의 이별에 대해 노래한 것으로 남자가 여자와 헤어진 후에 여자에게 전화해도 그 여자는 받지 않는다.

그래서 나온 가사가 I try to call I just get her machine 이다. 남자가 아무리 간절하고 바래도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이 그저 자동응답기 기계음만 들린다. 그리고 새벽을 지나 아침이 다가오고 남자는 이제 더 이상 전화할 힘마져 없다.

그런 가사의 전달력으로 통해 마치 우리가 노래를 들음으로 남자의 절망을 알 수 있게금 한다. 그리고 다른 곡으로 When We're Together의 정말 영화같이 만든 뮤직비디오이다. 우리가 기존에 보는 뮤직비디오는 영화와 같다는 생각이 크게 안느낀다. 그것은 단순히 보여주기 급급할 뿐이지 영상 위에 보이는 화면은 지나가는 쇼타임과 같다.

그러나 When We're Together는 정말 한편의 흑백영화를 보는듯 하다. 어느 흑백영상필름에 한 여성이 나오고 스토커는 그녀를 항시 주시한다. 몰래 뒤따라가면 관음적으로 쳐다보는 카메라 시선이 더욱 스토커의 슬픔을 묻어 나온다. 특히 I call her up and disconnect, wait by her house once more to check에서 그녀의 집에 전화를 거는 스토커 그러나 말한다미도 할 용기없이 끊어 버린다.

그러나 I feel my blood rush to my heart 처럼 그 스토커의 마음 속에는 열망으로 가득차 있다. 마치 스토커가 어느 여자를 열광적으로 훔쳐보는 이 뮤직비디오 슬픈 마음을 고스란히 담긴 것이다. 그런 점에서 Rialto의 음악은 상당히 영화처럼 들리는 부분이 많다.

물론 영화적인 부분이 있다고 음악적인 부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Rialto의 명곡인 Monday Morniong 5.19는 2명의 드러머가 호흡을 맞추며 같이 연주하고 있다. 2명의 드러머의 연주로 곡의 긴장감과 비트감이 넘친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음악은 상당히 독특함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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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돼지
미야자키 하야오 (Hayao Miyazaki) 감독 / 대원DVD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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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임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 세계가 사람들은 정작 어느 것인가를 제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애니메이션 외적인 재미부분이나 스토리 전개부분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작품이 대부분 아동 및 청소년 위주로 제작되었다고 하나 그 내적인 내용읽기를 들어본다면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할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깊게 생각하고 이해하고 깊이 통찰해야만 제대로 작품을 알 수 있다고 본다.

붉은 돼지 역시 마찬가지다. 이 붉은 돼지에서 나타난 작품관은 마르코라는 어느 한 조종비행사로 통해 당시 유럽사회와 파시즘의 시작으로 통해 전쟁의 무의미함과 인간성 상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붉은 돼지 주인공이 마르코는 이탈리아 공군조종사로 본래 인간이었으나 스스로 마법을 걸어 돼지로 살아간다. 그는 돼지같은 모습을 하면서도 인간과 똑같은 행동을 하는 특이한 존재였다. 그는 예전에 공군 에이스로 활동한 만큼 그의 항공기가 붉은색 페인트로 쌓여 있다.

그래서 붉은 항공기가 돼지가 타고 있어서 붉은 돼지라는 제목이 붙은 것이다. 그는 해적이나 현상수배범을 잡으면서 살아가는 헌터로 그는 인간사회에 대해 심한 유감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의 친구들은 모두 전쟁통에 산화되어 버린 것이다. 또한 전쟁이라는 비인간적인 현실을 보고 그는 인간이면서도 인간이기를 주저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인간보다 더 인간다움을 보여 주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이른바 군국주의 내지 파시즘이라는 전체주의가 물들고 있었다. 그래서 1차 대전 이후 전쟁의 상처가 아물기 전에 조금씩 인간들의 인식으로 파고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르코는 자신의 나라가 전체주의화되어 가는 와중에 거기에 순응하지 않았다.

그가 현상수배범을 잡은 후 은행에 입급하던 장면에서 자신이 돼지라는 점이 좋다고 한다. 왜냐하면 돼지는 인간이 아니므로 세금을 물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의지로 소득을 받았으나 세금을 내지 않아 국가에 의무를 저버린 것이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자신의 국가와 사상마저 부정했다.

그래서 마르코는 무정부 내지 반정부적인 아나키즘의 소유자로 나왔다. 그가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은 자신들이 만든 이념이나 가치관이 인간을 위해서가 아닌 오히려 인간을 투쟁하게금 만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 투쟁으로 인해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 마르코로서는 인간이란 존재가 다소 비관적인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전쟁이라는 참혹함과 당시 유럽사회의 전체주의 그리고 새롭게 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의 경제자유주의적인 부분을 비판햇다. 최후 장면에 가면 마르코는 자신의 자존심을 걸고 미국 조종사 도널드와 승부를 겨눈다. 그리고 최후의 다툼에서 포르코는 도널드에게 정정당당하게 이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런 작품세계관은 당시 유럽사회토 통해 전체주의와 미국 자유주의에 반항하려 한 것이다. 그가 반항하려고 했던 이유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마르크스주의자였기 때문이었다. 단적인 예로 붉은돼지에서 마르코의 비행기를 다시 만드려고 할때 항공기 공방에 가는데, 거기 공방에서 항공기를 제작 설계 테스트를 모두 여성들이 했다는 점이다.

마르크스는 인간은 노동으로 통해 자신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다고 했다. 그런 노동을 여성이 실시함으로써 기존 항공기 설계 시공분야가 남성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관념이 들어감은 분명하다. 그리고 특히 이 작품에서 보이는 것은 전쟁이 무의하다는 점이다. 그런 붉은 돼지인 만큼 우리는 전쟁의 허무함을 제대로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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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신화
서정오 지음 / 현암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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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한국이란 곳에서 우리가 정말 알고 있는 신화는 얼마나 될까? 솔직히 말하여 단군신화, 주몽신화, 혁거세신화, 석탈해신화 등과 같은 건국신화 쪽이 아닌 이상 그렇게 많이 신화를 알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사실 신화라는 것은 신의 이야기라는 풀이로 보이나 그 이면에는 신이 아닌 인간이 담고자 하는 하나의 가치관이나 관념들이 담겨진 이야기들이다. 그 이야기들은 아주 멀고 먼 과거에서 시작하여 오늘날 살아가는 우리들 세대까지 내려온 우리의 관념적인 역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접하고 있는 한국 신화는 그저 지나간 옛날이야기로 치부된다. 그런데 막상 알고 보면 신화라는 것은 그렇게 우리가 전혀 낯설거나 미지의 공간이 담긴 세계가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에서부터 습관, 관념, 문화, 풍습까지 다양한 면에서 신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서 자신과 자신의 주변에 존재하는 신화에 대한 내용을 알아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신화라는 것은 과거의 산물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꾸준히 만들어가는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신화는 무엇일까?

대부분 우리가 접하는 신화들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건국신화와 같은 역사적인 이야기를 가진 신화이다. 이런 신화는 대부분 구술로서 전승되어 오기 보다는 서적에 기록되어 일정한 형태로 내려오는 기록신화이다. 기록신화는 한번 기록되어 문헌으로 전승되어 그 내용을 누가 임의로 변조하지 않은 이상 그대로 전해가기가 좋다.

반면 기록이 아닌 구술신화는 사람에 의해 글로 내려오기 보다는 시대, 지역, 상황에 따라 계속 바뀌고 또 바뀌어 간다. 같은 신화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이 조금씩 다르거나 공간적·시간적인 배경이 다른 이유는 다 이런 것들이다. 그래서 구술로 내려오는 우리 신화는 다양한 소재로 사용되어 재밌고 신기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돌고 도는 신화와 신화가 아니더라도 전설과 민담 등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입에서 나오는 옛날이야기나 혹은 전래동화에서 나오는 이야기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로 통해 우리는 재미, 감동, 교훈을 얻어 가는 것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내려오는 신화 중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신화를 보고 느껴야 하는가? 우리 신화라는 서적은 우리가 알아야 할 많은 신화 중에서 아주 대표적인 몇 가지의 신화를 선정하여 만든 우리의 이야기들이다.


우리 신화라는 서적의 특징은 신화의 이야기와 흐름이 일반적으로 적혀있는 3인칭 관점을 서술하기 보다는 마치 그 신화를 누가 직접 봐서 그 신화에 대한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나하나씩 해주는 듯한 문체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이 서적을 본 사람들은 어린 시절 자신이 보던 그림으로 이루어진 전래동화를 글자로 이루어진 전래동화로 보는 기분일 것이다.


신화로 보는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들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도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있었구나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할 것이다. 최근 한국은 서구사회 문화의 유입으로 서구사회 특성에 맞는 사고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물론 시대는 변화하고 역사는 흘러가나 우리가 우리의 근본을 무시하면 무조건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우리의 주체성은 희미하게 흐려져 갈 것이다.


우리가 우리 신화를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자아 정체성을 한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반드시 이 책이 아니더라도 많은 한국 신화서적을 읽어봄에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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