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 - ‘서울의봄’에서 군사정권의 종말까지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20세기 한국사 4
정해구 지음 / 역사비평사 / 201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위대한 문화와 문명 그리고 거기에 드러나는 그 유산들은 엄청난 미를 뿜어내고 있다. 마치 인간은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함과 동시에 위압으로 인간들을 매료시킨다. 그것은 지금 인간에게 무리인 것이고, 그 원리나 속성도 미스터리로 많이 남아있다. 가령 인도의 대표적인 이슬람 건축이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히는 타지마할, 이집트의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중국의 만리장성과 진시황제의 무덤들 등을 말이다.

 

 

현대사회에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이 모든 것은 아름답고 웅장하고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을 준다. 이것들이 일어난 것은 당시 신화적인 권력을 보여준다. 그 신화란 대다수의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인간들의 억압에서 나온 신화다. 따라서 우리 인류가 바로 이 순간까지 즐기고 있는 위대한 문화라는 것은 당시 살아가던 자들의 피, 땀, 눈물로 범벅된 존재다.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병들고, 가난과 배고픔에 시달렸다는 증거다. 위대한 것들이란 바로 그런 것에서 나와도 틀리지 않음이 분명하다. 그런 착취와 폭력으로 이룩한 것들이 아닌 이상 누군가가 그것을 대신 책임을 지는 것만 남았다. 단지 그것은 착취, 폭력, 억압이 동원되지 않음에 유형적 가치보다는 차라리 무형적 가치에 어울릴 것이다. 미국 남북전쟁에서 인종차별주의를 철폐하려던 링컨 대통령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어째든 그런 신화란 우리도 없지 않다. 가령 우리가 찾아가는 위대한 유산을 보면 경복궁, 천마총 등과 같은 문화재를 보면 다 당시 백성들의 피다. 그런 문제를 과거의 지배계층들을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지금의 나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조선후기 정조가 정약용에게 수원화성을 건축하기 위해 기중기를 제작하여 신축한 점과 그 예산을 모두 개인 자산으로 한 것으로 보아 백성을 생각하는 정치가라면 분명 위대한 문화와 그 현상을 유지할 수 있는 건축물 같은 존재들은 분명 백성들에게 힘겨운 존재였을 것이다.

 

 

물론 이제는 그런 신화적인 억압과 착취를 그렇게까지 사용하지 않겠으나, 단지 그것이 상징화된 건축물에서 다른 방도로 옮긴다. 단순히 왕권과 귀족들의 상징보다는 그 상징을 그 사회에서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생산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새로운 신화가 발생된다. 문제는 과거의 신화적인 존재가 지금이야 좋을지도 모르나, 그 당시 사람들에겐 치명적인 문제였다. 삶과 죽음이 오고가는 순간이니 얼마나 심각했을 것인가?

 

 

지나간 과거라고 하여 역사를 배우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오히려 과거로 통해 우리가 오늘날의 현실을 이래저래 다각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누가 알 수 있을까? 지금의 새로운 신화가 먼 미래에선 하나의 문화가 될지? 그리고 그 신화의 공간에서 언제나 희생제의는 필요하다. 한국의 전통적인 신화에서 건국신화와 무속신화로 분리되나, 적어도 건국신화에서는 위기와 시련이 있고, 무속신화에서는 피의 희생이 따르는 법이다. 그래서 신화는 멈출 수 없는 영원한 기계이다. 왜냐하면 인류가 사라지지 않은 이상 신화란 사라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경제화 성장이란 신화, 특히 한강의 기적 뒤에는 어떤 신화가 숨어 있을까? 한국의 경제성장은 정말 신화와 가까운 것들이다. 일제강점기, 625전쟁에서 식민지화 된 망국의 경험에서 비롯하여 동족상잔과 이데올로기의 대립(어차피 소비에트연방이 사회주의라고 하나, 그 이면에는 독재적 전체주의를 내포한 국가자본주의일 뿐이다.)이란 큰 전쟁에서 일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분노와 냉소, 절망과 고뇌만을 낳았다.

 

 

이런 국가에서 세계 경제대국은 엄청난 발전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신화가 가속화된 것이다. 예전에 소비에트연방의 독재자 스탈린이 1930년대부터 경제대개혁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개혁은 굴라크라는 농민의 수탈과 숙청, 자국의 노동자들의 강제적인 억압과 폭력에서 가능했다. 특히 1930년대 후반의 대살육은 한낮의 어둠이란 소설까지 만들게 하였다. 소비에트연방은 그 덕분에 미국과 유럽에 위협을 줄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따른 것이다. 대부분 성장을 이룩한 곳에서 특징은 과도한 착취, 폭력, 억압이 숨어있다. 그리고 희생 뒤에는 엄청난 발전이 따르고, 거기에 따른 이득을 보는 자가 있었다. 이런 경향은 어느 특정 역사만 아니라 대부분 그런 과도기 부분을 거쳤다. 따라서 어느 국가만을 지정하는 것이 모순이다. 모든 역사의 문명 속에는 착취, 억압, 폭력이 존재했고,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누가 가지기 위해서 누군가 포기해야 한다.

 

 

그러면 그 포기해야할 사람들이 지금 우리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국의 경제성장 신화 뒤에는 항상 이런 문제들이 그냥 외면한 채 지나왔다. 발전이라는 미명아래 희생은 따른다. 그러면 그 희생의 존재는 누가 지어 가야할 문제인가?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은 그런 문제를 차례대로 보여준다. 과연 민주자유공화국은 국민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있는가? 아니면 자본의 자유만을 위한 곳인가? 분명 인권에서 자본의 자유는 자유의 1가지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인권도 자본의 자유 아래 놓여 있다는 점이다.

 

 

독재라는 것은 그렇게 무섭다는 점이다. 무엇인가의 큰 접점이 보이면 그 다른 가치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국가주의적인 전체주의는 파시즘이란 공포의 정치가 시작된다. 폭력과 억압, 그리고 착취와 증오가 하나의 사회적 미덕으로 자리 잡히면 파시스트가 결국 왕이 되고 만다. 그런 세계에서는 신화란 그저 성공을 위한 계단에 불과하다. 그 당시의 계단을 밟고 우리는 지금 서 있고, 앞으로 가려면 다른 사람을 계단으로 만들어야 하는 점에서 그 계단의 층간 기둥과 지지대는 누가 되어야 하는가?

 

 

그 모든 것은 약자의 몫이다. 물론 그런 과도기의 일정부분은 안전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런 일을 다시 원하고 시도하고자 하는 것은 경악할 노릇이다. 타인의 죽음을 그저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419혁명 때도 부산 앞바다에서 최루탄에 눈이 박힌 채 죽은 학생과 서울에선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우리 근현대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슬픔이다. 민주화라는 이름 아래는 그 민주화를 위한 희생과 고통이 따른 것이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민주화 역시 신화인 셈이다. 단지 전자는 일부 특권층을 후자는 보편적인 영역이다.

 

 

그러나 적어도 헌법이나 윤리가치를 보면 후자가 맞으나 현실은 전자로 가려고 했다. 특권층에게 다시 자신에게 특권이 갈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장치가 있었고, 그런 점을 이용하여 권력을 재창출하려고 했다. 국민세금을 착취하고, 금융을 조작하고, 게다가 사회 불공평을 하나의 자유주의로 보려고 했다. 적어도 지상자유주의라면 상대방이 무얼 하든지 직접적으로 피해가 오지 않을 이상 참견할 권리가 없지만,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오히려 새로운 정치적 자유주의의 추구는 권력에 대항되는 반역이 되기 때문이다.

 

 

과거 스페인에서 프랑코라는 잔인한 독재자가 있었다. 20세기 중후반인 1975년까지 스페인을 공포를 준 그가 사실 스페인 봉건사회의 부산물이었다. 사관학교의 교장인 그는 스페인 내전을 일으킨 군사쿠데타 주모자이다. 그는 내전의 승리 권력을 잡았고, 그 와중에 막대한 살인과 폭력을 휘둘렸다. 그에게 대항하던 세력이 사회주의자이던, 자유주의자이든, 무정부주의자이든 적어도 과거의 독재를 인정하지 않고 저항한 세력들에겐 잔혹한 총과 칼을 겨누었다. 천재 프랑스 화가 피카소가 왜 게로니카라는 작품을 만들어냈는가?

 

 

한국과 세계의 역사 속에서 언제나 정치라는 것은 상황의 극적인 부분에서 그 이름을 새긴다. 그러나 그 이름 뒤에는 숨겨진 이면의 역사가 존재한다. 오늘날 한국의 경제화, 민주화란 것은 그냥 그대로 쉽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나, 뒤에는 각종 폭력과 투쟁의 대립에서 시작된다. 문제는 그 피를 흘린 주체는 언제나 약자라는 점이다. 그리고 아직도 그 무서운 역사의 주사위는 현재진행형이란 사실이다. 당시 그것이 최선이라고,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최악의 수단이라고 하면 일단 그 이야기는 듣겠다. 그런데 현재까지 왜 우리는 또 막다른 가로에서 더 크고 무서운 위기를 맞이할까? 그때 말하던 것은 전부 허구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5집 넋두리
동아기획 / 1990년 3월
평점 :
품절


김현식의 역대 앨범과 노래 중에서 가장 김현식의 자신에 대한 노래를 찾아보라고 한다면 5집 안의 넋두리다. 단조의 음색이 마치 불협화음처럼 들리는 이 곡은 김현식의 모든 것을 토하고 삼킨다. 처음 시계의 초침소리가 들리는 이 노래는 시간이란 관념적인 영역을 나에게 준다. 마치 시간이 어울리지 않은 공간 속에서 헤쳐 나온 것처럼 말이다.

 

특히 이 노래 가사는 매우 불길하고, 절망스럽다. 처음에 나레이션과 같은 가사에서 <쓸쓸한 거리에서 나홀로 앉아있어, 바람에 떨리는 소리를 들었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설레이는 이내 마음이여.>와 그리고 반주와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할 때 <꺼질듯 타오는 거리의 네온을 내 품에 안고서 헤매고 있었지. 멀리로 떠나는 내님의 뒷모습 깨어진 꿈이었나.>은 허무함이 극대로 치밀어 올라간 그의 모습이었다.

 

노래 가사는 무척이나 자신의 존재성에 대한 의문과 정체에서 고뇌하는 부분이다. 처음 이 노래를 들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노래가 이렇게도 우울하고, 절망적이고, 희망을 바라면서 희망조차도 장담할 수 없는 것들은 운명이란 과연 무엇인가? 라고 말이다.

 

이 노래는 사랑의 가객 김현식이 아니라 슬픔과 고뇌의 가객 김현식이었다. 恨(한)이 넘치다 못해 폭발해서 승화하였다는 그런 정도이니 말이다. 물론 노래가 전부 슬픔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김현식 노래 중에 유명한 곡으로 <비오는 날 수채화>가 있다. 영화 <비오는 날 수채화>의 삽입곡으로 사용되었는데, 또 다른 삽입곡으로 <그 거리 그 벤취>가 있다. 이 노래도 발라드로서 좋고, <사랑의 나눔이 있는 곳> 역시 1980년대 포크시대의 느낌이 절절하다.

 

이미 그렇지만, 김현식은 대중가요에서 일개 가수가 아니라 세계에 어디 내놓아도 훌륭한 뮤지션이란 것을 충실히 보여주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들도 넋두리처럼 심장이 터질듯한 슬픔과 우울을 보여줄 수 없음에 말이다. 또한 개인적으로 이 앨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그의 사진인데, 후면에 보면 운동화 신고 있는 그의 발이 보인다. 둘 다 낡았으나, 한쪽은 다 떨어져 발가락이 다 보일 정도다. 그의 인생이 너무나도 잘 보인 사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6집
김현식 노래 / 신나라뮤직 / 2000년 1월
평점 :
품절


김현식 노래 중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가 너무 많으나 간단히 추려보자면 3가지가 있다. <비처럼 음악처럼>, <사랑했어요>, 그리고 <내사랑 내곁에>이다. 김현식 노래 중에서 라디오 신청곡에 이 3곡이 가장 특출한 곡일 것이다. 그중에서 내사랑 내곁에는 김현식이 살아생전에 병상 입원전에 나왔으나, 나오자말자 간경화로 제대로 부르지도 못한 채 그 외로움의 이별을 고했다.

 

그러나 그런 김현식의 감정이 바로 이 명반을 만들어냈다. 도저히 기교나 억지나 없는 그 영혼의 목소리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름이 끼친다. 바이올린의 연주로 시작되는 내사랑 내곁에는 김현식의 목소리가 조금 갈라진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목소리가 더욱 매력적이었다.

 

애절하고, 희망을 바라는 그의 목소리가 말이다. 특히 <힘겨울 날에 너마저 떠나면 비틀 거린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라는 부분에서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와 마지막 부분에 허밍은 무척이나 인상이 깊다. 보통 노래를 들으면 반주와 목소리를 같이 들어야 하나, 이 노래를 들으면 반주들의 존재가 무색할 정도다.

 

이 앨범에서 조금 특이한 곡으로 겨울바다이다. 한국의 100대 기타리스트에 들어가는 최이철(사랑과 평화)의 참여로 블루스의 진한 맛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반주부터 심상치 않은 블루스기타에 반주 역시 느리면서도 뭔가 절제된 느낌은 숙련된 음악인들의 feel을 느껴온다. 겨울바다에 홀로 가서 바다새를 보고, 저 넓은 바다에 혼자 있음에 자기를 달래는 심정은 무척이나 깊은 맛을 낸다.

 

이런 끈적끈적하고 달라붙는 곡 이외에 추억만들기란 곡도 좋다. 잔잔한 멜로디에 포크와 어울리는 발라드으로 잠시 편안한 기분으로 듣기엔 좋다. 다음 곡이 사랑사랑사랑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 하모니카 연주곡 한국사람, 우리 이제도 있다. 예전 노래를 리메이커하거나 또는 다시 앨범에 넣거나 또는 반주곡만 존재하는 앨범인 점에서 그의 병세가 악화가 조금 아쉬운 부분으로 남았다. 그래도 나홀로 조용히 들으면 언제라도 좋은 노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7집 Self Portrait
동아기획 / 1996년 9월
평점 :
품절


김현식 사후에 다시 나온 앨범인 7집 Self Portrait, 그것은 완전한 미완의 앨범이었다 .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은 존재, 그의 존재는 너무나도 타오를 같은 불꽃처럼 눈부시다, 어느덧 사라져 버렸다. 불꽃은 꺼지기 전에 가장 눈부시다고 한다고 할까나?

 

이 음반을 들으면 그의 명하모니카곡 "한국사람"이 들린다. 무척이나 하모니카 소리가 우울하고 슬프고 아름답고 뭔가 가슴을 찌르는 느낌이 든다. 한국사람이란 제목처럼 우리 한국인 내에 간직하고 있는 恨(한)의 소리가 들려온다.

 

그의 Live Voice에는 어린시절부터 시작해 故 유재하 선생의 이야기도 나온다. 가난한 시절, 배고픈 시절, 그리고 외로운 시절...김현식이란 이름을 들으면 외로운 사랑의 가객이다. 사랑하는 것은 정말 아름답고 즐거워야 하는데, 그의 목소리에서 느끼는 사랑은 외로움이다.

 

그가 부모님을 여의고, 시골에 내려와 시골에선 서울촌놈이라 무시받고, 다시 서울로 갈 때는 시골촌놈이라 무시당했다. 그리고는 많은 반친구와 싸우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외로움과 그 외로움을 참을 수 없음은 결국 지난 어린시절을 비뚫어 버린 계기가 되었고, 그것은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바뀌었다.

 

뭔가 달랠 수 없는 기분, 뭔가 찾고 싶은 기분, 인간의 가슴 한편에 숨쉬고 있는 박탈감은 그로 하여금 한의 소리를 내게 했다. 지금 나는가수다 내지 추억의 앨범에서 김현식 노래가 나온다. 그러나 정말 그의 노래를 부른 가수들 중에서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줄 사람은 거의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가수가 가창력과 테크닉, 카리스마로 무장해도 김현식에게 이길 수 없었다.

 

김현식은 그 한과 열정, 눈물,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그 순간까지 지르는 비명과 절규를 어떻게 이길 수 있으랴? 병상에서 죽기 전에 부른 곡들은 들으면 그렇게 좋게 들리지 못한다. 그의 목소리는 초반에 그렇듯이 이미 간경화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다. 술과 담배, 그것만으로 부족하였는지 결국 외로움까지 그를 엄습했다.

 

그에게 가족이 있었고, 자신의 피를 나눈 아이도 있지만, 그런다고 그에겐 모두 채울 수 없었던 것 같았다. 이번 비정규적인 정규앨범 7집을 들으면 김현식의 가창력보다는 그 feel이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지 알 수 있다. 1980년대의 뮤지션이 그러하듯, 대부분 외국 팝송을 많이 따라 불렀다. 우리의 서구화된 문화는 그때 가서 빛을 발한다. 특히 락, 발라드, 팝, 블루스...

 

신촌블루스와 봄여름가을겨울에서 활동하던 김현식은 이미 한국 최고의 락블루스 보컬이다. 그래서인지 어느 노래를 들을 때 김현식의 애창곡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갈라진 목소리가 나온 것을 듣고 그의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명곡 팝송의 보컬과 비슷했다. 아니 거의 그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죽음과 조우했다. 그가 죽기 전에 이미 그의 친구 겸 동료인 유재하의 죽음도 상기시켰다.

 

봄여름가을겨울 멤버 4명이 모였는데, 그럼 재하는? 라는 대사에서 환절기란 농담은 그의 인간적인 모습까지 옅볼 수 있었다. 김현식의 자화상이 담긴 7집 Self Portrait는 그렇게 김현식의 넋두리를 비친 채 흘러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이 먼저다 - 문재인의 힘
문재인 지음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치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 질문에서 문재인 의원을 그 본질을 알고 있었다. 정치라는 것은 결국 힘 내지 권력에 향한 의지라는 사실을. 그 말을 내놓은 사람은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였다. 과거에 집필했던 문재인, 김인회, 검찰을 생각 한다라는 도서에서 머리말에 참고한 사상가 및 철학자 이름에 (후기)구조주의 대표적인 주자인 미셀 푸코가 있었다.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 <말과 사물>, <광기의 역사> 등 수 많은 서적과 프랑스 내에서 세계적 지식인으로 활동하던 그 철학자의 서적들을 읽었다는 사실을 확연히 느꼈다.

 

권력을 계보학적으로 풀어감으로서 어떻게 대중을 통제하고, 거기에 권력은 어떤 행동을 하는지, 결국 그것은 누구를 위해 흘러가게 되는지 말이다. 문제는 그런 행동의 끝에는 언제나 약자들의 눈물과 한탄으로 이어진다는 결과다. 그렇다면 다시 묻는다. 정치란 무엇인가? 딱히 나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이 기본적인 현황에 대해 크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가장 경계하는 부부분이 바로 모든 것은 단기간으로 해결되지 않고, 장기간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정치라는 것은 그런 난점이 있다.

 

대신 만약 톱니바퀴 하나가 어긋나버리면 그때부터는 하락의 길을 걷는다. 그런 것들은 이미 잘 보았다.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 사는 주민으로,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에 다니는 회사원으로, 그리고 이공계를 출신이란 점을, 또한 군복무를 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많은 정치인들의 입에서 향상 말하는 이야기는 이것이다. “국민을 위하여, 서민을 위하여”, 문제는 그 국민과 서민의 경계와 구분은 어디까지라는 점이 문제다.

 

서민이란 희망을 꿈꾸며 살아가는 존재인가? 아니면 희망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존재인가? 내가 볼 때는 후자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최고의 내용 중에 경제전반적인 문제다. 몇 년째 월급동결도 모자라 월급 삭감까지 당해본 입장에선 경제적인 문제는 심각하다. 서민경제에서 가장 절실히 느끼는 부분은 우리나라에서 대기업 위주 성장체계이다. 대기업이 위주라는 것은 결국 중소기업에 덜 투자 내지 지원이 된다는 점이고, 그것은 국민경제에 크나큰 타격을 입힌다.

 

솔직히 말해보자. 주변에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이 많을까? 아니면 중소기업 내지 장사 및 가게와 같은 소규모 단위가 많을까? 당연히 후자에 가깝다. 예전에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에서 이런 내용이 있었다. 노동자는 자신과 생산하는 물건과 관계가 없을지언정 다른 노동자가 생산하는 물건은 매우 친숙하다고 말이다. 다른 생산자가 생산하는 것을 소비하는 것은 다른 노동자다. 결국 내수산업의 활성화와 구조적 안정은 국가경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제이다.

 

만약 대기업 위주 수출에 의존하면 관세, 원자재 가격 상승 또는 기타 이유로 무산될 경우 경제적 위기에 빠진다. 내수시장이 어느 정도 기반이 잡혀있다면, 대기업만 아니라 중소기업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의 중요성은 특히 청년실업과 더불어 일자리 확보에 중요하다. 대기업의 수는 한정되고, 그 채용인원은 한정적이다. 게다가 이들은 정규직보다 비정규직, 자사보단 하도급 내지 협력사로 통해 이윤을 더욱 추구한다. 이런 구조는 하도체계로 통한 원가 하락과 더불어 하도업체에 큰 자금압박을 가한다.

 

만약 국가적으로 이런 문제를 나두는 것은 심각하다. 결국 하도업체가 도산하면, 거기에 매달린 직원들은 실직이 된다. 우리나라와 같이 노동시장이 유연하지 못한 국가에서 해고는 살인에 가깝다. 특히 가정과 식솔이 있는 가장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딜레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가정파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많은 정치인들은 바로 이런 이들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분노와 눈물로 소리칠 때 그저 단순한 농성자 내지 불만세력을 여긴다면 과연 희망이 있을까?

 

노력을 해도 이를 악물어도 돌아오는 것은 비웃음과 손가락질, 그리고 자신에 대한 책망은 우리 사회의 깊은 냉소를 만드는 한 부분이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바꾸어가는 것은 정치적 숙제임은 분명하다. 정치는 분명 철학적이야 한다. 정치와 철학은 분리되면 안 될 영역이기 때문이다. 철학이 없는 정치는 그저 권력을 위한 도구로 변모한다. 문재인 의원은 그런 난관에 봉착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주고 싶은 것이다.

 

읽는 내내 많은 공감을 일으킨 점은 역시 지방에 살아가는 공학출신자고, 그것도 환경공학 전공자란 점에서 4대강 문제는 심히 공감했다. 국가예산이 중앙집권화 되어 결국 토목건설로 가는 바람에 내 주변이나 기타 여러 곳에서 엔지니어업계가 발전하기는커녕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서 나오고, 월급이 삭감되고, 어느 회사는 합병되거나 도산되기도 했다. 이런 문제는 다시 이공계 대학교로 진학하려는 학생들에게 부담을 주며, 현장에서 이공계들은 제 능력을 발휘하기도 쉽지 않다.

 

우리나라와 같이 수출만 의존하고, 인구가 고령화되는 국가에서 과학 기술력은 필수적이다. 문제는 그것의 기본은 과학과 공학이다. 이공계에 발을 끊기면 과학 기술력의 확보는 무리수를 둔다. 또한 과학 기술력의 발전은 억압된 교육환경이 아니라 자유롭고 창의적인 공간이다. 일제고사로 통한 경쟁선상에서 달리는 아이들에게 창의적인 사고란 없다. 획일적이고 조직적인 사고만 유도하기에 그들에게 사유의 깊이와 넓이는 없다. 단지 컴퓨터처럼 정답만 찍을 뿐이다. 이 책에서 그런 문제는 과학기술만이 아니라 문화예술도 그렇다고 했다.

 

예전에 내가 알던 교수님과 식사하면서 어느 영화시나리오 작가가 굶어죽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현관문 중앙에 밥 좀 주세요라고 적었으나, 결국 그는 죽었다. 문화예술인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중간에서 모두 챙기고, 그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없다. 게다가 국민들 역시 제대로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문화예술 영역이 터 없이 부족하다. 사회가 획일적이고 관료적인 구조에서 자유로운 사고는 불가하고, 게다가 의미 없는 인생인 것처럼 보인다.

 

자본주의국가에서 지금처럼 신자유주의가 도래하는 세계에서 돈은 중요하다. 하지만 돈에 모든 것을 의존하면, 결국 인간에게 주어진 것은 무엇일까? 어느 철학자가 자본주의국가에서 자유는 자본에 비례한다고 했다.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는 명백하게 다른 의미로 있지만, 국가조직에서 경제, 사회, 문화, 정치에서 여러 가지가 섞여 같이 움직인다. 왕이 봉건사회로 지배하던 시기에도 자본주의가 있었고, 공화주의와 민주주의 국가에도 자본주의는 있다.

 

어느 멍청한 정치인은 공화주의가 무엇이냐 묻자, 자본주의라고 하는 것에서 황당한 부분을 보았으나, 정녕 공화주의란 국민들이 전쟁이나 기타 위험으로부터 생명과 재산에 위험당하지 않아야 할 국가이념이다. 공화주의가 민주주의와 닮아가는 이유는 국민의 인권이 존중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을 양단하여 공포정치로 통제할 수 있다. 개인은 국가를 움직이기 어렵지만, 국가는 개인을 흔들기란 매우 쉬운 일이다. 따라서 국가의 정치권력이 개입되는 순간 민주주의 영역은 그대로 부수어진다.

 

늘 생각하지만, 한국에서 민주주의 실현은 많은 난점이 보인다. 개인적으로 나는 정치적 자유주의 내지 시민주의를 원한다. 문제는 시민주의라는 것은 시민 자체가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소양을 갖추어야 만족한다. 공리주의 영역에서 벗어나 공공선이 아니라 공동선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왜 정치에서 철학이 필요한가? 의미에서 철학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윤리적인 부분이다. 인간은 평등하다고 하나 나는 평등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평등하지 않기에 그 불평등을 알아보고 개선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불평등하기에 그 불평등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다. 만약 일정 평등이란 기준이 된다면 더욱 심각한 불평등이 일어난다. 그래서 철학은 주변에 불행한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멈추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정치란 철학을 계속 유지하고 고찰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 먼저라는 것은 결국 철학적인 부분이다. 왜 먼저이고, 왜 그렇게 해야 하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우리가 살아가는 앞날에 대한 비전이기도 하다.

 

나는 언제나 생각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중국처럼 광활한 대륙도 없고, 이란이나 사우디아라비아처럼 석유도 없다. 오직 가지고 있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재화와 생산품을 만들 수밖에 없다. 오로지 개발 체계위주는 성공할 수 없다. 그것은 과거 유럽역사가 말해주듯이 기술발전은 생산력을 높이나 숙련된 다수 인력 대신 비숙련 소수 인력으로 교체가능하고, 이들은 모두 실직자로 전락한다.

 

계속 기술력이 높아지더라도, 그런다고 하여 첨단기술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 기술력을 발견하여 만들고 이용하는 것도 사람이다. 모든 정치가 사람으로 시작되고, 사람이 먼저라는 것이 정치철학이라고 말하는 것이 문재인의 힘이라고 이 책에서 나와 있다. 201212월 대통령선거 전에 나온 여러 가지 정당과 정치인 도서에서 나 같은 지역에 사는 소시민에겐 현실적 문제들을 잘 반영된 느낌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