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 아! 노무현
박노해, 진중권, 홍세화 외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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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대통령이 이 세상을 하직한지도 어느새 1년 반이 지났다. 아직도 그날의 상처가 아물은게 아닌지 계속 노무현에 대한 찬반여론을 형성되고 있다. 노무현의 정권은 성공한 정치인가? 혹은 성공하지 못한 정치인가? 내가 볼때는 이 나라가 세운 직후에 모든 정권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승만정권때는 부정부패 자유당으로 인해 국민들을 혹사시켰으며, 게다가 625전쟁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고위관료들은 서울시민을 버리고 자기몸 살기만 바쁘었다.

그런 정치인들과 정부요원을 보면 과연 이것이 대한민국이 자유국가인가? 이승만 이후 박정희정권이 들어왔다. 박정희 정권에는 국가경제가 상당히 발전하였다. 박정희의 역할과 위엄을 거기에 인정한다. 그러나 거기에 희생된 대가와 고통이 너무나도 막강하다. 고 전태일 열사가 서거한지 40주년된 마당에 그 분이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전신에 불을 쓰고 한줌의 흙으로 돌아간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던 60~70년대는 너무 암울했다. 게다가 박정희 정권때는 공장에서 나오는 검은매연과 공자에서 나온 뿌연 폐수가 경제를 살리는 청신호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한국이 심각한 환경오염으로 물들어간 신호였으며, 그렇게 걱정하는 지식인까지 탄압하였다. 경제는 살아갔으나 결국 정부와 결탁한 재벌에게 혜택이 돌아간 정경유착이 되었다. 전두환 정권은 마치 플라톤의 국가정체에 나온 참주정같은 정권이었다. 국민을 총으로 쏘아죽이거나 고문하여 죽였다. 그러고는 이승만과 박정희정권의 메카시즘처럼 죄없는 국민들을 억지로 범죄자로 몰아넣었다. 노태우정권 부실공사와 부정축재로 정권이다. 김영삼 시절이 오자 imf 더 이상 할말 없다. 국가경제가 파탄나고 국민생활이 좀먹었다.

김대중 정권 물론 민주화라고 하지만 대북정책에서 기존 정책과 다르기에 마찰과 혼선을 빚었다. 물론 그가 좌파일 망정 빨갱이는 아니다. 빨갱이가 대통령이 된다면 그를 뽑은 국민 1000만명은 빨갱이란 말인가? 단지 비판을 받는 국내 기업의 해외매각에서 조금 경제적으로 지탄을 받았으나, 김영상 정부까지 이어온 한국의 정경유착과 경제구조가 그렇게 만들었다. 다음 노무현은 김대중을 이어 다시 민주주의의 개혁을 말했던 사람이다. 여러가지 논평이 오고가는 노무현은 신자유주의자나 혹은 좌파라든지 혹은 일자무식이란 다양한 호칭이 붙고 있다. 그러나 내가 한국 광복절 이후 정권을 옆본다면 조선일보가 가장 맹렬하게 비판했던 대통령과 정권이 제일 좋았던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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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의 역사
매릴린 옐롬 지음, 윤길순 옮김 / 자작나무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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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예전에 우연히 명지대학교에서 여가생활을 가르치는 김정운 교수님이 저술한 일본열광이라 도서를 보았다. 김정운 교수는 심리학과를 전공하여 문화심리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교수님이다. 교수님이 저술한 일본열광이라는 도서는 김정운 교수가 일본에 직접 여행하면서 그동안 문화심리학자 관점에서 다루어진 일본을 에세이식으로 누구나 편하게 볼 수 있게한 도서이다.
물론 어느정도 쉽게 저술했다고 정말 쉬운 것만은 아니다. 단지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다른 민족과 국가 그리고 거기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우리가 얼마나 심한 편견과 고정관념이 박혀있는가이다. 그런 일본과 한국의 미묘한 관계를 다룬 서적에서 우연히 재미있는 도서 이름을 발견하였다. 

그 도서의 이름은 유방의 역사이다. 유방이라면 당연히 여성의 가슴에 달린 신체조직으로 본래의 신체적구조에서 어린아이에게 모유를 전달하여 영양분을 전달해주는 생명의 샘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자면 어린아이에게 달콤한 젖을 주는 생명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다른 쪽으로 본다면 남성이 언제나 바라던 성적판타지의 대상이다. 이 서적을 지은 저자는 미국 저명한 페미니스트 인문학자로서 여성의 유방을 단순히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적인 틀에서 제시하기 보다는 정말 철학적이면서 생물학적이면서 심리학적이면서 인문학적인 요소로 바라보았다. 물론 이 책을 읽은 본인은 남자다. 남자는 누구에게 그렇듯이 언제나 로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로망은 자신과 평생 함께할 배우자 내지 혹은 현재 필요한 애인이 자신의 원하는 이상적인 몸매와 외모를 가지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남자로 태어난 나도 그런 성적판타지를 없다고 할 수 없지만, 그게 개인적인 바램에서 어느덧 현실에서는 하나의 암묵적인 공통상식이 되어버렸다. 특히 비서구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본인으로서 서구사회관념의 유입은 진보적인 사회를 만들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 어긋난 세상을 만들었다. 우리가 매일처럼 보는 텔레비젼을 보면 그런 문제점을 어김없이 발견된다. 텔레비젼에 나오는 여성을 보면 항상 아이돌스타가 기준이 된다. 큰키, 날씬한 허리와 다리, 풍만한 가슴 물론 나도 처음에 이런 여성이 이상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조금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물론 너무 뚱뚱하거나 마른 것도 싫다. 그런 점에서는 보통 남자들도 거부하겠지만 보통 여자들도 남자들이 너무 뚱뚱하거나 마른 것을 싫어할 것이다.

단지 그런 아이돌스타의 몸매만 보는게 아니라 인간의 신체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구분짓는냐에 따라 불평등이 생긴다. 이 책에서는 분명 여성의 가슴은 아이들과 어머니의 육체적 정신적 교감이 일어나게 하는 신성한 생명의 원천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현실은 여성의 가슴을 어머니의 가슴을 만들기 보다는 오히려 가슴을 감추고 닫음으로서 남성의 성적욕구를 반영하기 위한 구속구라는 것이다. 물론 마빈 해리스의 작은인간을 보면 어느 국가의 여성하층민들은 가슴을 노출하는 것으로 통제력이 생긴다. 가슴이 열고 닫고가 어느 나라와 민족에서는 각각 다른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단지 문제는 그 열고 닫는 의지가 단순히 그 사람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어느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것이다.

약간 생뚱맞지만 예전에 화씨911이란 영화를 보았다. 거기서 미국이란 사회가 911테러 이후 항공기 테러검색이 강화가 되었는데, 이상하게 아이에게 줄 모유를 반입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보면 미국 사회는 어머니의 모유보단 대기업에서 만든 우유를 아이에게 주기를 원한다. 어떤 미국 지역의 공공장소에서는 어머니가 아이에게 젖을 주는 것이 불법이라고 한다. 어머니가 자신이 사랑하는 아이에게 모유를 주는 것이 불법이고 그런 장소조차도 구비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본다면 이건 인간 고유의 자유를 빼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이 책에서는 어머니와 아이의 자유성 이외에도 다른 소외된 존재에 대하여 언급한다. 본래 페미니즘은 여성계급 해방도 있지만, 여성의 해방은 곧 남성의 해방도 포함된다. 또한 성차별 극복에 따라 인종, 민족, 국가, 어린이. 노인, 장애인, 게이, 레즈비언까지 해당된다. 진정한 페미니즘이란 남녀노소 골고루 잘사는 것이지 남성의 귄위만 되찾는 것이 바르지 않다는 것이다. 현대 한국에 살아가는 남자의 입장에서 사회생활을 해본다면 여성들은 과연 자기 자신이 주체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권위와 혜택은 자기에게 책임과 역할은 여전히 남자가 떠맡아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신도 여성임에 불구하고 자신보다 불리한 여성을 깔보는 사람도 많다. 그것은 남녀노소 구분없이 사회에서 빈번한 일이다.

남자의 입장에서 아름다운 여성과 혹은 매혹적인 몸매를 가진 여성을 봐서 거기에 눈을 전혀 돌리지 않는다는 것은 순전히 가식이다. 그러나 세상에 그런 여성들은 흔하지가 않은데도 텔레비젼에서는 언제나 아름답고 매혹적인 여성들이 나온다. 물론 그런 여성이 나온만큼 남성도 등장한다. 미디어라는 매체가 사람들로 하여금 환상이 실제 자신에게 다가가게 하는 하이퍼리얼리티 세계를 영상미디어로 구축한다. 문제는 이런 구축된 사회적 인식이 모든 사람들이 바라지만 그 바라는 사람은 자신이 그렇지가 못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인간의 인식은 서로에게 혹은 자신에게 크나큰 상처로 이어질 수 있다. 아래 사진은 유방암선고받고 자신의 가슴 한쪽을 도려낸 다나 메츠거라는 여성이다. 남성의 상징이 남근이라면 여성의 상징은 가슴이라고 하니 한쪽 가슴을 팠다는 것은 아마 그녀에게 크나큰 상처이고 시련일 것이다. 그런 어긋난 사회통념에서도 그녀는 삶의 의지와 정열이 담겨있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처음부터 쉽게 세상에 살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나라는 사람도 기존에 가진 고정관념이나 위선을 탈피하기 어렵겠지만 이런 서적을 통해 조금씩 생각하면서 고쳐가는 게 중요한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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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프레 - 분장 속의 아이들
이종헌 글.사진 / 지성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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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코스프레 문화는 대략 15년 정도 되어  가는듯 하다. 그 시초가  A.C.A 라는 전구 아마추어 만화 동아리 연합이로부터다. 특히 1990년대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같은 초기 모뎀형 인터넷 문화가 보급되면서 처음에 안노 히데아키의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 그리고 오오토모 카츠히로의 아키라와 같이 이른바 사이버펑크 장르의 저패니메이션(일본 애니메이션)이 국내로 유입되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통해 한국 만화 애니메이션 향유자 문화가 발달되었다.

그런 만화애니메이션 문화 중에서 발달되면서 같이 흘러온 것이 코스프레이다. 한국 코스프레문화를 살펴보면 만화애니메이션 동아리나 동호회에 안에서 같이 지내다가 최근 5~6년 사이에 만화애니메이션 문화와 별도로 분리되어 독자적인 문화형성에 이르게 되었다.

물론 코스프레라는 대상 캐릭터가 현실이 아닌 가상이라는 이미지로 통해 받아지므로 가상적인 존재가 강한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의 현실부재의 인물들이 주로 그 코스프레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코스프레가 조금씩 발달되면서 현실부재의 만화애니메이션 캐릭터뿐만 아니라 파싱실재인 영화, 드라마, 가수, 정치인들까지 같이 코스프레 대상으로 올라갔다. 물론 단순히 코스프레라는 누구를 따라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일본인들이 테러리스트에게 강압적으로 납치된 적이 있을 때 당시 테러리스트들이 일본인에게 칼을 겨누고 협박하는 장면을 일본으로 유출시켰다.

이때 테러리스트들의 행위를 보았던 일본 시민단체는 자발적인 코스튬을 입고 정부기관에서 항의했다. 그러면 코스프레가 단지 누구를 따라하기만 해서 코스프레라고 말하기는 사실 어렵다. 어째거나 그렇게 코스프레는 일반 대중문화나 사회와 별개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일반 대중문화와 사회와 아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단지 사람들은 그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코스프레라는 것은 현실에 존재된 인물을 복제된 영상으로 접해 따라하는 것보다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은 창조된 인물을 따라하는 것이 많으므로 여기에 대해 사람들은 하이퍼리얼리티 즉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조차 못하는 극현실로 인해 과연 비현실의 존재감을 상실한 채 잣대를 들이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코스프레라는 것이 가상의 존재를 따라하는 것에서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가상의 세계를 따라하는 사람에 대해 어떻게 보여주고 어떻게 표현하는지 대해 조금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코스프레-분장 속의 아이들을 그런 코스프레 세계에 있는 사람들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조금 추천할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 중에서 일부 극히 한정된 코스프레만 소개되고 있지만, 그 소개한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일반 사람들에게 그렇게 위화감을 줄만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간단한 코스프레이어 프로필과 그 코스프레이어에 대한 이미지, 그리고 그 코스프레에 대한 저자의 평들은 쉽게 이해하기는 좋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이 서적을 그렇게까지 추천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는 않는다. 이 서적의 한계는 대중문화로 인해 소외되는 대중들이 선도하는 코스프레 문화를 올바르게 적어내리지 못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코스프레는 복장이 기성화된 상품이 아니므로 대부분 자신이 직접 만들거나 혹은 수주샵에 맡기는 게 대부분이다. 물론 최근 대량생산 대량판매 경로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옷이 그렇게 많이 나와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코스프레는 획일화 관료화 통일화만 강조하는 기존 사회에 대한 반발로 보여줄 수 있다. 인간이 획일화에 의해 조화성만 추구하면 모든 같은 생각만 하고 같은 것만 보게 되어 결국 수동적인 존재로 변해버린다. 그런 점에서 코스프레는 그런 수동적인 문화산업에 익숙해진 대중들에게 새로운 가치관과 대중중심문화를 만들게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는 그런 면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이 아쉬움이다. 물론 이 서적 다음에 다른 시리즈에서 다른 코스프레이어들을 다루어 주었다면 좋겠으나 단지 여기서 머문 것으로 인해 좋은 평을 나는 줄 수 있다. 그 이유는 코스프레가 잘 어울리는 것이 그 코스프레이어가 어떤 노력과 성과에 의해 보여지기 보다는 단지 이쁜 여자가 많이 나왔다는 생각을 버리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물론 외모도 출중하며 의상제작과 분장능력도 뛰어날 수 있다. 그러나 보통 여성보다 외모가 다 기본적으로 우월한 사람들만 나왔다는 점이 아쉽다는 것이다. 만약 이 책이 다음 편이 나와 다양한 코스프레이어를 소개했더라면 조금 다른 면으로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최근 코스프레 문화의 문제점으로 외모지상주의라는 것이 등장한다. 물론 전부 그렇지는 않으나 이런 외모지상주의에서 빚어지는 문제는 코스프레 문화만 아니라 기존 국내 사회에서도 문제가 되버린 것이다.

물론 나도 남성이기 때문에 내 눈 앞에 외모가 출중하고 몸매가 좋은 여성이 있다면 당연히 남성이라는 무의식적인 면에 의해 상당히 만족할 것이다. 애초부터 그런 무의식적인 면으로 인해 좋다고 여기는 것을 비난하는 것은 나쁠 수가 없다. 단지 그런 사람들에게 시선만 가는 것은 좋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모든 사람이 완벽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주목을 받을 수 없다는 박탈감을 안겨주는 것은 바르지 않다. 하지만 외모가 출중한 사람이 있다면 스포트라이트로 통해 좋은 인식을 심어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거기에 치중하게 되버리면 코스프레의 본질적인 문화정신은 아마 변질되지 않을까라는 우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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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문화의 수수께끼 오늘의 사상신서 157
마빈 해리스 지음 / 한길사 / 199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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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학자 중에서는 마빈 해리스 교수가 있다. 비록 몇년 전에 작고하신 분이지만, 그 분의 도서를 읽을 때마다 내 머릿속은 왜 우리는 항상 서로를 대해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편파적인 사고를 가지게 될까에 대해 아주 분석적으로 나열해 주고 있다. 우리 인간은 태어나면서 자신이 자라난 곳에서 살아오면서 거기에 적응하기 때문에 그 사회에서 자라온 인간은 그 사회에서 배운 모든 가치관이나 생활습관 그 자체가 하나의 인생관으로 잡혀 버린다.

그래서 인간이란 각 나라나 인종, 지역, 지형에 따라 각각 다른 모습으로 오늘 날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각각 가지고 있는 속성이나 환경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다른 인간이 보는 느낌은 매우 신기하고 이상하고 낯설고 한편으로 증오스럽고 미우며 괴로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이 같을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일단 우리가 어디 멀리 여행을 가거나 이동할 경우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내용이 있다. 그 나라나 지역에 있는 음식이나 물맛이 안맞는다라고, 아마 우리 인간이 다른 지역이나 나라에 갈때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것은 그 나라와 지역의 문화적인 현상들이며, 그 다음으로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 필수적인 음식물들일 것이다.

처음에 처음보는 사람들과 모습들은 어느 정도 우리는 마음속으로 준비된 자세로 임하므로 지나친 혐오감이나 적대감을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음식에 들어가서부터 시작이다. 음식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주변환경과 문화역사적인 흐름에 따라 상당히 다르다. 예를 들어 인도에서는 소고기를 먹지 못하는데 반해 이슬람국가에서는 돼지를 먹지 않는다. 또한 미국이나 유럽국가에서는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래서 최근까지도 한국이나 중국에서 개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 서구사회에서는 미개인 취급하지만, 그것에 대해 항의하는 서구사회의 사람들이나 혹은 거기에 동의하는 한국사람이나 둘 다 편파적인 문화오류에 빠진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개가 인간의 친구임은 분명하나 그 친구가 때에 따라서는 식량으로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들은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금 한국은 육식생활습관이 많이 형성되어 있으나 과거에 육식을 제대로 사람들이 섭취할 수 없었다. 그리고 육식을 섭취하지 못하면 인간의 생명에 필요한 단백질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다. 한국 근대사까지 복날이나 혹은 특별한 날에 개를 때려 잡아 죽여 그 개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단지 너무 잔인하게 구타하여 한번에 죽이지 않은 것이 비인도적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는 이유는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과거 한국사회에는 공업이 우선되는 국가가 아니라 농업을 중심으로 하던 국가였다. 농업국가에서는 토지당 비율적으로 쌀이나 보리 등과 같은 곡식이 많이 생산되지만, 이에 반해 단백질들은 한계가 있었다. 물론 콩과 같은 식물들은 단백질을 공급해주었으나 그 단백질들 성분들 중에서 많은 한계점에 봉착되어 있었다. 콩에서만 흡수되는 단백질은 한계가 있었고 나머지 단백질들은 동물의 고기로만 통해 얻을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 방법이 개고기였다. 특히 복날과 같은 경우 아주 날이 더운 여름철에 개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여름철에 개고기를 먹은 이유는 아마 단백질의 효과적인 흡수였을 것이다. 그 이유는 여름철에 아주 더운 햇살과 햇빛에 인간이 노출되면 인간세포가 파괴되기 쉬운데, 이 세포파괴를 방지하기 위해 인간은 멜라닌 색소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러나 멜라닌 색소를 생성하려면 단백질이 필요하다. 그래서 개고기를 먹어 단백질을 충분히 공급하여 더운 여름철에도 농사를 무사하게 짓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한국인들은 농사가 주요 생산수단이므로 개가 아닌 야생 멧돼지, 산토끼, 꿩을 잡아 먹었으나 그 수는 한정되어 있었다.

그런 점에서 상대 국가나 민족, 인종에 대해 그 먹는 것이 나쁘다고 보는 것은 상당히 잘못된 관점이란 것이다. 물론 인간이 인간을 먹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윤리가치나 고대 아즈텍 국가에서는 인구수는 아주 많으나 주변에 잡을 수 있는 단백질 공급원인 동물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단백질 공급을 위해 인간의 살을 먹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현대문명국가에서는 미개인 내지 잔혹한 인간으로 보겠지만, 그들은 그들이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그런 먹는 것에 대한 혐오감과 편식성에 대해 이 음식문화의 수수께기는 상세하게 거론하고 그 이유를 밝혀낸다. 심지어 종교교리에 언급된 식사까지도 왜 그렇게 터부시 되었는지도 나온다. 우리가 절대적으로 생각하는 이념이나 관념조차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역사와 현상이 따랐다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편견과 고정관념이 음식으로 통해 배타적인 모습으로 나오지만, 그 뒤면에 감추어진 각 인간들의 생활과 자연환경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볼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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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수수께끼 - 마빈 해리스 문화 인류학 3부작
마빈 해리스 지음, 박종렬 옮김 / 한길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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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필자는 몇년 전에 작고하신 마빈 해리스 교수님에게 동경심을 가지게 시작하였다. 비록 서적은 총 3권(작은인간, 식인과 제왕, 문화의 수수께끼)만 읽었으나 이 3권의 책으로만 필자에겐 크나큰 감동과 의미를 주었기 때문이다. 문화의 수수께기, 책 제목처럼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곳에는 문화가 존재한다. 문화란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장소와 시간이며 또한 미지와 자연과 다른 안정화된 공간이다.

물론 문화가 안정화되어 있다고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안정화되어 그 안정된 요소로 인해 많은 인간들이 스스로나 혹은 타인들에 대해 큰 죄악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얼마나 스스로 대해 잘 알고 있는지 얼마나 상대방을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그것은 정말 난해하고도 답을 내리기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나와 남을 제대로 알아간다는 것은 모든 갈등과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왜 인간은 아직까지 서로 대립하고 싸우고 죽여야 하는가?

아마 그것은 인간은 스스로에 대해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본다. 자신에 대해 조금 성찰하기 보다는 그저 자신의 생각만 표출하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들을 서로 알고 고치면 우리 세상은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 글을 적고 있는 나 역시도 많은 편파적인 사고방식과 고정관념에 차여있다. 그렇게 고정관념으로 쌓여진 본인이지만 결국 조금씩 고쳐 나가지 않으면 계속 이런 광기에 어린 피비린내 나는 역사 속의 한토막 무리로 살아지 않을까 라고 걱정된다.

이런 인간의 광적인 어리석음과 욕심은 참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문화의 수수께끼에서 보여준 수수께끼란 결국 우리 인간이 만들어온 문화가 과연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가 대해 고찰하는 서적이다. 그 내용 안에는 우리가 광기로 미쳐 서로를 죽이고 원망하고 그것이 하나의 진리로 추앙되는 과정까지 보여준다. 최근에 관심을 두고 있는 프랑스 구조주의와 후기구조주의에서 이런 인간의 역사 중에서 광적인 부분을 비판한 학자들이 있다. 인간이 이렇게 광적으로 미쳤음에도 오히려 미치지 않은 인간들에게 손을 뻗어 억압하는 것은 인간 그 자체의 도덕성 결여와 자신들의 고정관념과 틀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주장하여 그것이 하나의 사회적인 인식현상으로 만들게 되어 그렇게 주장하거나 혹은 그렇게 만들게 하는 부류에게 크나큰 이익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조장된 사회현상이 자주 등장한다. 사실은 그렇지 아니하지만 어느 기점으로 인해 이런 허구적인 일들이 마치 진리나 사실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그런 미친 사상이 얼룩진 역사의 단편은 왜 이렇게도 이어지는 것일까?

그런 현상을 알려면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지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해 판단하고 생각하기 보단 그 자체에 의해 말려들기만을 바란다. 왜냐하면 인간이 근원적으로 들어가서 그 오류를 찾아내려면 많은 시간적 노력과 정성 그리고 공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진실된 것을 찾기보다는 자신들이 믿기 편한 것들만 알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인간의 사고적인 오류를 계속된 광기어린 역사를 만들어 온다. 왜냐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편한 사상이나 진실이 다가오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중심리라는 무서운 사고는 하나의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로 작용하여 인간 그 자체의 본성마저 잡아먹어 버린다.

마빈 해리스 교수님의 문화의 수수께끼는 바로 그런 인간의 광기와 이기심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책으로 내용 자체로 보자면 문화의 수수께끼라고 생각하지만 그 수수께기를 제공한 인간들로 통해 오늘날 현대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도 그 수수께끼적인 현상에 말려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불평등한 사회구조와 거기에 반항하는 피지배계급층과 소외된 사람, 그리고 자신들의 권익과 틀을 지키기 위해 권력으로 세상을 조장하는 지배계층과 권력가들, 어떻게 보면 지금 오늘날의 우리도 이런 계급과 권력, 그리고 경제적 사회적 대립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어지러운 세상에 언제나 등장하는 메시아, 그리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만드는 마녀사냥, 역사는 언제나 되풀이 되어 우리 인간을 광기어린 짐승으로 변하게 한다. 이 책을 보면서 내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우리도 이렇게 메시아와 마녀사냥이 고대부터 시작해서 현대까지 일어나고 있다. 신화란 결국 과거의 일을 기록하는 게 아니라 현세에도 계속 일어나는 하나의 인간의 표상처럼 말이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메시아는 미륵사상이다. 미륵과 석가가 인간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내기를 했으나 본래 미륵이 강하고 정직했으나 석가가 속임수로 미륵을 속여 인간세계를 지배했다. 석가가 부정한 방법으로 문명세계가 존재하는 인간사회를 지배하자 모든 악적인 근원이 발생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어지러우면 항상 미륵이 등장한다고 한다. 메시아적인 요소는 물론 미륵만이 아니라 건국신화 주인공인 단군신화, 주몽신화도 별반 차이없다. 모든 건국신화의 주인공들은 어지러운 당시 국가나 부족사람들에겐 하나의 신들의 사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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