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한민국이란 국가에서 과거의 영웅을 말한다면 대부분 이순신 장군을 말할 것이다. 성군(聖君)인 세종과 성웅(聖雄) 이순신, 세종대왕은 조선의 문()을 열었다면, 이순신 그 자체로 무()의 완성이다. 일전에 이순신 장군의 일대를 방영한 <불멸의 이순신>이란 작품이 있었다. 거기서 보인 이순신의 모습은 보통 인간으로 감당하기 힘든 고난을 헤치고 나간 불굴의 무관(武官)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이순신이 상대로 하던 적은 과연 왜적이었을까? 임진왜란사를 연구하면 참으로 흥미로운 것들이 많다. 임진왜란이 7갑자 즉 420년 전에 계속 우리 조선 한국 땅을 고난의 세계로 만들었다.

 

게다가 정확히 420년 전은 1597년 정유재난이 일어나던 시기이다. 임진왜란이 1592년에 발발한 원인을 보고, 정유재란이 일어난 배경도 봐도 참으로 문제가 많았다. 단순히 이것은 이순신 한명으로 모든 적을 섬멸한 것이 아니라, 전 방위적으로 관찰할 것이 참으로 많았다. 그러나 막상 우리가 접한 임진왜란은 단행본 연구서적 내지 드라마에 더 심한 편중을 둘 것이다. <불멸의 이순신>이나 <징비록>을 보자면, 전자는 이순신을 중심으로 후자는 유성룡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2사람 모두 임진왜란 당시 없었다면 조선의 앞날이 없었다는 점이다.

 

문제점은 드라마가 작가의 상상력이나 허구적인 요소를 다소 집어넣어 이야기를 극적으로 이끌어내나, 대하드라마 사극의 경우 기본적으로 기초 사료와 어느 정도 부합되어야 한다. <불멸의 이순신>은 소설도 있었으나 더 중요한 것은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였다. 칼의 노래를 예전에 약간 읽은 기억이 있다. 문체가 매우 비장하고 엄중했다. 이순신의 마음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말 그대로 칼을 마음에 품고, 자신은 언제나 칼 위에 걷고 있는 칼집 같은 모습이었다. 칼을 가지고 있기에 그 자신조차 벨 수 있다는 각오에서 더 이상 무슨 수식어를 붙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임진왜란을 말하기 전에 이순신이란 한 인간을 말할 수 없겠지만, 임진왜란이란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보는 게 필요하다. 성인(聖人)이란 단어처럼 일반사람에게 식견으로 묻자면, 성인이란 의미는 석가나 그리스도 같은 신과 같은 존재, 혹은 신의 권위를 가진 자로 본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성인이란 단어는 동양에도 있었다. 한국은 이미 서구화되어 기존 동양적 정신이 많이 파괴되었다. 역사학(歷史學)이란 학문이 동양의 영역이 아닌 서구의 관점이 되어 있기에 우리의 문화와 사적(史的) 영역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서양을 알기 위해 고대 그리스로 넘어가자면 유명한 철학자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다. 과거의 철학자는 형이상학자이나, 한편으로 수학자 내지 의학도이기도 했다. 때로는 정치가와 철학자를 병행하기도 하나, 서구의 역사에서 정치, 철학, 군사, 의학 등의 분야가 서로 관계성을 유지하기보단 각자의 학문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에 반해 동양의 학문은 다르다. 동양의 학문은 철인(哲人) 군주 밑에 다른 철인들이 정사를 돌보는 구조였다. 그것은 바로 유학자(儒學者)들이고, 조선에서 성리학자(性理學者)들이다.

 

이들이 관점을 다시 생각하는 것은 예를 들어 우리가 좋아하는 소설, 게임, 콘텐츠로 삼국지(三國志)가 있다. 삼국지에서 유명한 장수로 유비와 조조, 관우와 제갈량 같은 불세출의 인물이 모여 있다. 이들은 황건적 당시 의병을 일으키고, 동탁의 난을 잠재우며, 천하삼분지계로 전쟁의 소용돌이에 있었다. 그러나 막상 소설을 보고, 게임을 하는 도중 뭔가 느끼는 바가 있다. 단순 롤플레잉게임(RPG)이라면 몰라도 정식적인 삼국지 시리즈에서 군주의 역할은 전쟁을 하는 것도 중요하나, 전쟁과 더불어 내정을 관리해야 하고, 외교와 인사문제를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경영(經營)이란 관리체계가 어느 정도 지켜지지 않으면 전쟁에서 무조건 패배란 점이다. 이순신의 영웅적인 모습에서 그의 무술능력과 더불어 지장으로 보여주는 책략가란 점이다. 하지만 더 나아가 그가 뛰어난 지략무장만 생각하지, 그가 그 이전에 준비해둔 작업과 계획, 군영을 다스리는 태도와 피난민의 대책, 군량미 보급과 지원에 대한 관리는 잘 몰랐다. 유명한 대첩에서 많은 왜적을 쳐부순 것만이 많은 사람들의 기억이다. 그리고 그가 처해진 모함에서 이 문제가 어떤 전후맥락이 있는 것인지 생각할 점이 많다.

 

임진왜란은 이미 경고된 전쟁이었다. 임진왜란 이전 전남 남해안에 왜적이 노략질을 하고, 담당관아 무관과 병사를 참살했다. 사실 이것만은 전부가 아니다. 1555년 을묘왜변이 전남지역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왜적은 남원과 전주까지 올라올 정도로 기세가 등등했다. 만일 그때 왜적을 맞지 못하였다면 최초로 몽진을 한 군주 선조가 아니라 명종이었을 것이다.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과거만 보는 것이 아니다. 오늘 지금 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일들을 다시 보고, 지금 현재 처해진 우리 모습을 반성하고 거기에 대한 채비를 하는 것이다.

 

서애 유성룡이 피눈물을 머금고 작성한 <징비록>은 그야말로 우리가 놓치고 놓친 지난날의 과오를 드러내던 책이다. 이 책을 제대로 보고 반성했다면 정묘·병자호란, 일제의 침탈에 대비했을 것이다. <이순신과 임진왜란>을 읽는 것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그런 일들은 다시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순신이란 인물은 성웅으로 우리에게 그저 하나의 콘텐츠로 소비되어온 인물이나, 막상 학문적으로 깊이 들어가지 않은 점이 많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순신은 왕으로부터 면사(免死)라고 적인 첩을 받는다. 하지만 정사 선조실록에서는 선조가 아닌 명나라 왕에게 하사받았던 것이다.

 

면사권한을 내린 자가 선조가 아닌 명나라 왕이라면 말이 상당히 달라진다. 조선의 성리학에 너무 치중하여 자국의 안위를 파괴했다. 성리학의 시작은 남송에서 시작되어 한족(漢族) 중국인들에 의해 조선까지 넘어왔다. 조선은 명나라와 인접한 국가고, 태조 이성계는 원나라를 섬기는 고려보다 새롭게 떠오르는 명나라에게 자신의 대의를 내보냈고, 그것은 성공했다. 즉 정치적 이념과 통치방법론에서 불교와 유교 사이의 고려보다 유교 성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이 되게 한 과정인 셈이다.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중원을 호령해도 조선은 여전히 성리학에 빠져있었고, 그것은 결국 자신에게 큰 독이 되었다. 이순신은 성리학을 잘 아는 무관이었다. 그러나 성리학 안에 빠져있지 않았다. 성리학의 문제와 더 나아가 심각한 폐단은 현장중심의 경영체계가 아니라 시문놀이 하는 맹한 성향이다. 임진왜란 발발 이전 조선에 심각한 사건으로 기축옥사를 생각할 수 있다. 옥사에서 형사업무 최고책임자로 송강 정철이 있었고, 그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동인 세력을 숙청한다.

 

그 뒤 왕의 후사문제를 잘못 언급하여 귀양 가게 되고, 귀양지에서 전쟁의 소식을 들은 다시 선조 곁으로 오라는 명령을 듣는다. 문제는 전시상황은 모든 업무가 비상이기에 신속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송강 정철이 보여주던 일은 참으로 한심했다. 최고 권력자리에 있다가 귀양을 간 것이 마음에 큰 상처였는지 그는 수 일 안에 올 수 있는 거리를 2주에 거쳐 왔고, 중간에 들린 관아숙소에서 기생을 불러 술자리를 만든 후 시조나 읊어주고 있었다. 한국 최고의 문학을 만든 자이나, 전쟁에서 보인 행동은 최악이었다.

 

이런 모습은 비단 정철만이 아니다. 이순신이 수군삼도통제사에서 억울하게 물러난 후 원균이 통제사로 부임하자, 수사(水使)들의 능력도 의심스러웠다. 배설이란 장수는 원균 아래에서 도망쳐 배를 보존케 한 것은 큰 공이나, 그는 이순신 막하로 오고 나서 큰 전쟁이 두려워 병영을 탈영한다. 전시 병영을 탈영하면 참형에 다스린다. 목을 벤 후 군문 높이 목을 효시하여 진중의 소란을 잡는다. 배설이 아니더라도 주변에 보인 장수들이 능력을 인정받아 온 것이 아니라 정치적 권력이 작동해서 온 것이다.

 

이순신의 할아버지는 기묘사화로 죽임을 당하고, 아버지 역시 세상의 큰 뜻을 품지도 못한 채 살아간다. 이순신은 사림정치세력이었고, 그는 율곡 이이 선생과 같은 덕수이씨 문중이나. 어릴 적 서애 유성룡과 친한 이유로 남인과 같은 영역으로 몰렸다. 유성룡은 이순신에게 늘 지원과 조언을 아끼지 않은 친구였고, 유성룡은 <징비록>에서도 이순신의 활약을 전하고, 이순신의 죽음을 매우 슬퍼했다. 유성룡은 임진왜란 노량해전에서 끝이 나자 북인 이산해에 의해 탄핵되어 정승의 자리에서 파직된다.

 

전시행정의 도체찰사로 활약한 그로써 이순신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으며, 그가 백의종군할 때도 항상 위로해주었다. 백의종군은 이순신의 무장으로서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정치권력의 균형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선조의 아들 광해군에 대해 자세하게 다루지 않으나, 책 전반적인 관점을 보면 광해군의 정치적 업적을 인정한다(책에서 광해군이 아닌 광해임금이라 한다, 이 부분은 명지대 사학과 한명기 교수의 관점과 유사하다). 그 이유는 광해군은 정치적 행위를 실제 현장중심과 연계된 점이고, 실사구시를 통해 시문놀이 하는 정치적 행태와 반대로 갔기 때문이다.

 

선조와 호종신하들은 전장의 다급함과 전략적 관점을 잘 알지 못했다. 전술의 기초도 모르고, 적을 이기기 위한 작전문서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시문놀이에 젖어 말만 앞세우고, 선조는 작전을 내리려면 적과 가까운 곳으로 정부를 옮겨야 하나, 계속 북쪽에 머물면서 몸을 사리기만 바빴다. 선조의 문제는 그가 몽진을 한 것이 아니다. 몽진을 한 후 보여준 대응방법이었다. 변방의 장수가 전쟁을 할 때 군주는 절대 그의 지휘권을 간섭하면 안되나, 선조는 늘 그렇게 해왔고, 그런 실수가 패배를 불러왔다.

 

선조와 서인세력은평양성전투나 벽제관전투에서 적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무기는 화포를 중심으로 반격했으면 싸울 만 했으나, 오로지 기병을 통한 돌격이나 내세웠다. 왜군의 조총사격술에 신립이 탄금대전투에서 패배했다. 자신들이 왜 패배했는지 이유도 모르고, 명나라가 와서 현실을 말해줘도 그것을 받아들이기보단 명분만 길게 늘여놓았다. 명나라 장수는 명분을 앞세우고 실리를 추구했다. 조선이 망하는 것은 명나라에게 중요하지 않으나, 조선이 망한 후 왜적이 넘어오는 것은 문제다. 그들은 항왜원조(抗倭援朝)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조선을 다시 세우게 한 재조지은(再造之恩)이란 단어를 남발했다.

 

재조지은의 문제점은 선조와 호종대신들의 고도의 정치적 전략이 숨어있다. 사실 전쟁이 나면 제일 공을 세우는 자는 왜적을 무찌르고 몰아내는 자이다. 변방의 장수들은 목숨을 내걸고 하루 24시간이 죽음과 같이 숨을 쉰다. 그러나 선조는 호종한 대신에게 많은 공을 전해주었고, 그 이유는 자신이 의주로 가면서 명나라 왕에게 요청하여 명나라 군대를 파병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전쟁을 자신들의 손이 아닌 타국의 힘을 빌린 점에서 이미 병자호란의 그늘이 조선을 삼키고 있었다. 선조는 자신의 아들인 광해군에게 변변치 않게 대하다, 전쟁 중 분조지휘를 마치고 돌아오자 매우 따듯하게 대해준다. 하지만 이내 다시 차갑게 대하고, 광해군이 분조활동과 무군사 책임자로 큰 활약을 해도 공신의 축에 넣지 않았다.

 

왕의 가족에게 공신은 어림이 없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자신의 피난길에 동행한 다른 왕자에게 호종공신으로 책봉하는 점은 아이러니이다. 조선의 모든 백성은 알고 있다. 조선의 위기를 탈출하게 한 인물은 이순신과 수군, 그리고 의병이나, 그들을 치켜세우는 것은 선조에게 정치적으로 큰 타격이고, 그런 선조와 함께한 간신배 세력에게 치명적인 약점이다. 만일 이순신이 살아남아 전쟁이 정리된다면 선조와 서인세력에게 큰 타격이 될 것이다. 면사 첩은 선조가 아닌 명나라 왕이 하사하고, 하다못해 명나라 왕은 조선수군통제사 이순신을 명나라의 수군 제독자리를 수여한다.

 

조선장수가 명나라 최고 지휘관의 자리에 올라간 것이다. 이순신을 두고 당시 참전한 명나라 장수는 그를 제갈량과 동급으로 보았다. 제갈량은 창과 활을 못 다루나, 창과 활을 다루는 자들을 다루어 적을 섬멸했다. 이순신은 조선수군 몇 십 배나 되는 왜적을 격파했다. 명량해전의 기적적 승리는 하늘이 준 행운이 아니었다. 단지 조선과 명나라에게 이순신이란 인물이 있었던 그자체가 행운이었다. 이순신은 조류와 암초 그리고 지형 등을 고려하여 작전을 개시했고, 그의 전략은 상대 총지휘관의 목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런 이순신이 다시 온다면 선조나 서인세력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으며, 전시 국방부장관을 맡은 유성룡과 이원익의 경우 그 공이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 이순신이 선조에 의해 잡혀갈 때 유성룡은 제대로 돕고 싶었으나 말을 할 수 없었지만, 이원익은 목숨을 걸고 이순신을 변호했고, 병조판서를 맡은 정탁 역시 이순신의 업적을 고려하여 그의 안위를 보존해 달라고 했다. 이순신의 인품과 능력은 이미 선조실록이나 많은 기록에 남아있다. 이순신이 다른 무관과 다른 점은 학문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조선이 임진왜란을 당하고 그리고 후에 망한 이유는 무관을 천시한 문치의 맹점이었다.

 

현장을 잘 아는 자가 대비하기보단 문관이 더 높은 자리에서 명령을 하고, 문관이 만호, 첨사, 부사 등과 같은 자리에 있는 것도 문제였다. 동래부사 송상현을 두고 부산시민들은 영웅으로 생각하고, 동래충렬사에 그를 모신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송상현이란 인물은 시문놀이만 빠진 문관에 불과했다. 정발장군은 부산진성을 수호하다 순국했다. 현재 지역적으로 부산광역시는 조선시대 이름이 부산이 아니다. 부산이란 말은 부산진성(釜山鎭城)이 있었고, 원래 부산의 지역명은 동래부였다. 동래부라고 하면 동래읍성이 총지휘부고 동래부사 송상현은 부산지역 전체 수비를 담당하는 최고지휘관이다. 그러나 그 성은 4시간 안에 무너지고, 그는 죽음을 당했다.

 

이때 송상현이 화포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무관이었다면 쉽게 성을 빼앗기지 않았다. 그 덕분에 많은 조선인들은 죽임을 당했다. 단지 일본 왜군에게 살해당한 이유로 충신의 반열에 올랐지만(아니라면 후에 예송논쟁의 주인이 그와 동본이라 더 올라갈 수 있다), 송상현의 죽음이나 평양성전투를 본다면 당시 무관을 대하는 조선의 수준을 알 수 있었고, 전시행정을 보면 전투능력을 알 수 있다.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력과 병력이나, 그와 더불어 보급이다. 군량미가 없으면 싸울 수가 없고, 물이 없다면 그 진중은 이미 패배선언이다.

 

병사의 손에 제대로 된 활이 없고, 옷을 제대로 구비되지 않으면 전투 그 자체가 무리고, 수군에서 대포사격을 위한 화약이 없다면 역시 싸울 수 없다. 이순신의 경영관리는 보급의 체계화이다. 더 나아가 피난민을 수용하여 관리하여 그들에게 농지를 제공하고, 상업적 교류를 도모하여 전시 중에도 경제활동이 되도록 유도했다. 생선을 잡고 소금을 구워 팔며, 식량이 남으면 조정에 바치기도 했다. 전시 군량미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으면 군령에 의해 참형에 처해진다.

 

이순신의 승리는 모든 게 요행이 아니라 체계화된 시스템이었다. 병사 하나의 공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병사의 죽음을 두고 기록에 남긴다. 장계에 자신보다 부하의 덕을 칭송하니 감히 누가 따르지 않을까? 그런 면이 있었기에 언제나 철저한 준비를 했다. 이순신의 죽음을 두고 설전이 많다. 자살이었는지 아니면 속임수였는지 말이다. 진린의 기록이나 이순신의 아들과 조카의 기록을 보면 그의 죽음은 순수하게 교전 중에 벌여진 사태이다. 그런데도 승리로 이끈 것은 자신의 죽음으로 지휘통제력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현대전은 양상이 다르지만, 과거 전쟁은 총지휘관이 죽으면 그 사단은 모든 행동을 정지된다.

 

적장을 잡는 순간 적의 병졸은 항복을 한다. 다른 지휘관이 비상사태를 인식하고 인계받으면 되지만, 그것이 되지 않으면 무력화된다. 자신의 죽음 곧 조선수군 지휘부의 붕괴이고, 그동안 자신이 보여 온 전술과 전략을 자신의 아들과 조카에게 요청한 것이다. 주도면밀한 이순신이 만일 다시 조정에 나온다면 영웅의 귀환을 두고 정치적 혼란은 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선조는 자신보다 이순신이 조선 그 자체라는 점을 알았다. 이순신과 더불어 죽음의 세계에서 나라를 구한 의병장을 소홀하게 대한 이유는 바로 정치적 입장이었다.

 

김덕령 의병장은 모함으로 장살을 당하고, 홍의장군 곽재우는 김덕령의 죽음과 이순신의 모함을 보고 산으로 숨어버렸다. 광해군은 선조에게 정치적으로 최악의 라이벌이고(이 책에서 <난중일기>의 내용이 나오는데, 광해군이 건강이 편찮아 하자, 이순신이 매우 걱정하는 글귀가 나온다), 전시 중에도 전쟁 후에도 왕위 전위 소동으로 정치적으로 큰 파란을 일으킨다. 우리는 임진왜란을 왜 다시금 봐야 하는 것인가? 최근 일본이 헌법 개정을 하고 있다. 일본은 자위대가 군대가 아닌 자치대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일본 자체적으로 군대라는 기관을 만들기 위해서다.

 

일본의 정치세력 대부분 대동아전쟁의 후손이고, 전범들의 악행을 반성하기보단 오히려 영웅으로 모신다. 이런 시기에 우리가 과거의 일들을 지나쳐버리면 제2의 임진왜란이 오지 마란 법은 없다. 임진왜란 시기 명·청 교체시기이고, 지금 북한이란 폭력국가는 여전히 군사돌발을 일으키고 있다. 임진왜란에서 처음 풍신수길이 조선에게 요구한 것은 명나라 가는 길을 열어달라고 한 것이다. 명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조선이 교행해줄 것을 요구했다. 대동아전쟁을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영광으로 여기는 자들이 북한과의 군사적 무력충돌이 생기면 어떤 일이 있을까?

 

한국에서 전쟁이 나서 난민들이 일본에 가면 인도적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죽여야 한다는 망언에서 임진왜란이란 형태는 끝이 나도, 임진왜란이 가진 의미는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내용적으로 큰 결함이 없지만, 사실 이미 1권 서두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었다. 백선엽이란 육군 예비역장군은 한국전쟁의 영웅이라 하나, 그는 일제 만주군관으로 활약한 친일파이다. 항일애국투사를 죽이는데 혈안이 된 자가 이순신 장군을 운운하는 게 참으로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이순신은 일제에 억압당한 민중의 빛이었다. 항일정신이 이순신에게 이어진 것이라면 백선엽 장군이 <이순신과 임진왜란>에서 자신의 발언이 얼마나 모순인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더 심한 모순은 이순신 장군이 다시 조명된 것은 정조대왕 시절이다.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뒤 100년 정도 그의 기록은 삭제되거나 사라졌다. 이순신은 전투에서 싸운 장수이지만, 그를 지우고 싶은 이들은 전장이 아니라 선조 옆에서 호종하던 세력이다. 동인에서 남인영수(유성룡, 이원익, 이덕형)의 지지를 받은 장수이며, 더구나 남인과 서인이 제일 심각하게 대립하던 예송논쟁 시절, 남인의 논객 윤휴는 이순신과 인척관계였다.

 

윤휴의 서모(庶母)는 덕수이씨, 충무공 이순신의 첩의 딸이었다. 윤휴는 남원윤씨로 이순신 장군 밑에 활약한 무관이 많았던 집안이다. 한편으로 사돈관계이기도 했다. 윤휴는 오리 이원익과 인척관계고, 오리 이원의 손녀사위인 미수 허목과 사돈관계(친한 친구)였다. 임진왜란이 당연히 왜군과의 전쟁이었을까? 인조와 효종을 지나 숙종까지 이순신의 이름에 그늘은 있었다. 칠량해전에서 원균이 왜 통제사로 갈 수 있었는지를 생각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역사를 다시 봐야하고, 그 역사를 서양의 눈이 아닌 조선의 눈으로 다시 봐야 하는 것이 <이순신과 임진왜란>에서 전하고 싶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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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9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30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11-30 07: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 속에서 대의를 생각하기보다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모습이 일반적이기에, 대인 또는 성인의 모습이 더 위대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7-11-30 09:24   좋아요 1 | URL
대의를 위해 싸운 자를 외면하고
옆에서 아첨떠는 인간들이 승승장구하는
과거와 최근 이명박근혜 정부의 현실태를
보자면 작금의 역사는 과거의 일로 치부해서는
안되는 일이고,그곳에서 연꽃처럼 피운
분들의 노고를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게
후세의 도리인 것 같습니다.
 
본투리드 방석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평점 :
절판


사무실에 이것 사용하고 있는데, 엉덩이가 너무 푹신해서 좋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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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 전쟁의 기억과 분단의 미래
브루스 커밍스 지음, 조행복 옮김 / 현실문화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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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평창 올림픽이 개최된다. 올림픽 마스코트가 백호와 반달곰을 기반으로 제작된 캐릭터이다. 이 캐릭터를 보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단방에 생각한 것이 있었다. 곰과 호랑이는 한국인의 국조 단군신화에 나오는 존재이다. 단군신화는 한국인의 시작이고, 한국의 역사와 신화의 시작이다. 단군신화가 없다면 한국인이란 정체성은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1988년 서울에서 개최된 올림픽 역시 호돌이와 반달곰 캐릭터가 등장했다. 한국에서 단군신화를 결코 놓칠 수 없는 이유는 많을 것이다. 하지만 단군신화의 중요성은 단순히 국제행사의 마스코트로 상징성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은 하나의 민족이지만, 국가는 2개로 분단되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전신은 고종황제께서 반포하신 대한제국(大韓帝國)에서 따온 말이고, 한국(韓國)은 고대 우리의 국가인 삼한(三韓)의 한()을 가지고 온 것이다. 생각하면 그렇지 않은가? 한국이란 국가는 우리이기도 하나, 한편으로 우리는 남한(南韓)이라고 말하고, 저 위에 있는 정권은 북한(北韓)이라고 한다. 반대로 북한은 자신을 두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이라고 한다. 그들은 자신을 두고 북조선(北朝鮮)이라 하고, 우리를 보고 남조선(南朝鮮)이라 한다.

 

단어를 본다면 북한은 조선을 우리는 한국을 인용하는 점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역사, 그리고 대한민국 이전의 역사 조선, 조선이란 국가가 단군조선을 계승한 점을 생각하면 국가의 이름에 아주 깊은 뜻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전쟁이나 전투에서 다른 국가와 민족보다는 같은 국가 내에서 같은 민족끼리가 더 잔인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부른다. 신화에서도 그리스비극 오이디푸스왕과 아가멤논왕의 가족이야기는 비극을 넘어 인간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같은 종족이기에 같은 형제이기에 갈등은 더욱 무섭다.

 

집안에서도 마을에서도 친하게 지낸 사람끼리 다투면 그 화가 더 심해진다. 타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높을수록 증오와 복수는 깊어지는 게 인간이 가진 딜레마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4주년이 되고, 광복절은 61주년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일제로부터의 광복과 한국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여전히 조선총독부에 의해 징용에 끌려간 청년들, 위안부 성노예로 끌려간 소녀들의 영혼은 안식을 찾지 못했다. 이들의 영혼을 위로받지 못하는 이상 우리는 영원히 독립국가라 말할 수 없고, 한국이 통일되기 전까지 한국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다.

 

한국전쟁(韓國戰爭)은 종전(終戰)이 아닌 휴전(休戰)이다. 최근 북한 핵문제나 휴전선 귀순병사 사건을 보면서 우리에게 남겨진 지난날의 슬픔을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문제로부터 시선을 돌리면 안 된다. 조선을 잊는 것은 분단 이전의 한국을 버리는 것이고, 일제와 전쟁을 피해 멀리 외국 타향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고려인들을 버리는 것과 같다. 이 모든 비극의 씨앗은 그 당시 살아간 이들만 아니라 이들의 후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후예들은 아직도 우리라는 사실을 가끔 우리들은 망각한다.

 

예전에 형과 집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우리 집안은 일본제국주의에 많은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큰형님과 동생분이 징용에 끌려가고, 해방 후 돌아오신 할아버지의 큰형님은 그만 병으로 세상을 하직했다. 본래 집안이 양반가문이나, 몰락한 남인의 후예이기에 그 여파로 할아버지는 한자를 제대로 읽지 못한 농부였다. 그래서 한국전쟁 전후로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자유주의는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그러나 한국전쟁 시기 밤이면 늘 시골집 근처에 있는 저수지 들풀 사이에서 숨어 지냈다고 한다.

 

게다가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아무 관련도 없는데도 빨갱이로 몰린 누명도 있었다고 했다. 비록 20년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분이 살아온 인생은 순탄치 못한 굴레의 연속이었다. 징용에 끌려갈 뻔했으나, 스스로 몸을 자해하여 운 좋게 징용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가족의 비극적 시나리오에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을 읽었다. 한국전쟁과 관련된 도서로 가장 잘 읽은 서적은 박태균 교수의 <한국전쟁>, 김태우 박사의 <폭격>이었다. 한국전쟁사를 일방적인 관점이 아니라, 미국과 소비에트 러시아의 군사기밀해제문서를 다각적으로 정리하여 만든 도서이다.

 

전쟁은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전후맥락을 관찰해야 하고, 특히나 그 시대에 전쟁 당사국이 아닌 주변 국가의 정치군사적 갈등도 확인해야 한다. 한국전쟁을 시기적으로 잘 정리하고 풀이한 도서는 박태균 교수님의 서적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한국전쟁에 가려진 분노와 역사적 관점은 브루스 커밍스와 김태우 박사의 책이다. 김태우 박사의 책에서 북한이 패배한 전쟁이 아닌 것처럼 보이나, 사실 북한은 상당한 피해를 받고 모든 것이 사라진 전쟁이라 말한다. 이에 반해 브루스 커밍스는 미국은 한국전쟁에서 이기지도 못하고, 압록강에서 후퇴하여 패배한 전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승패가 나누지 못한 패배한 전쟁이라 말한다.

 

전쟁은 패배하지 않아도 패배라고 말하는 이유는 미국은 이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고, 그들이 저지른 행동들이 결코 떳떳하지 못했던 것이다. 최근 노근리 사건을 대두되고 있는데, 노근리 학살과 관련하여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에 대한 학살이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한국전쟁에서 한국인이 300만명이 사망하고, 그 중 반 이상이 민간인이다. 한국인에 대한 학살이 미군도 그러하나 왜 자국민끼리 그럴까?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전쟁에서 미군과 중공군의 개입보다 한국인끼리의 혈전에 많은 생각을 보여준다.

 

전쟁의 시작은 1950년이 아니라 1932년부터란 점이다. 일본의 괴뢰국가인 만주국이 설립된 시기, 만주군관학교에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군장교로 임관하고, 그 중 일부는 유명한 대한민국 육군 장군이 되었다. 대한민국 초기 육군 장군과 육군사관학교는 친일세력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들과 더불어 경찰과 관료조직은 친일파들이 메우게 되었다. 이들은 자국민에 대한 탄압이 무척 잔혹했고, 항일독립투사에 대한 탄압도 지독했다. 민간인 학살에서 보여준 만행은 이가 떨리는 정도이다.

 

어느 친일파 장교출신 육군 장군은 한국전쟁 당시 마을 소년을 산에 끌고 와서 10명 중 9명은 일본도로 목을 베고, 나머지 1명에게 죽은 9명의 머리를 가져가게 했다고 한다. 군부와 경찰에 대한 불신과 문제점은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등장하고, 대한민국 독립운동가 중에 가장 많이 몸담은 단체가 대종교이다. 대종교는 국조 단군을 모시는 민족종교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대종교 신자였다. 대종교 신자가 해방 후 서울에 오니 당시 자신을 지독하게 고문한 일본순사가 한국경찰이 되어 있었다. 항일무장투쟁을 하던 김원봉 대장도 해방직후 일제시대 순사를 했던 친일파에게 잡혀 고문을 당하고, 북으로 넘어갔다.

 

따라서 친일파와 친일파에게 불만을 가진 한국인의 대립이 이미 1930년대부터 존재했고, 쥐잡이작전은 육군사관학교에 가장 인기 높은 전략이다. 그런데 그 작전의 기원은 일본군이 하일유격대를 처치하기 위해 고안한 고도의 전략이다.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은 대부분 중국 및 러시아 일대에서 활약했고, 사회주의 노선 항일투쟁가들은 중국 공산당과 협력하여 활동했다. 중국내전에서 조선인이 있었다는 사실은 의외였다. 한국전쟁은 중국과 소비에트연방, 그리고 미국의 파워게임에서 시작되었으나, 이미 그 전초는 한국인 내부에 있었다는 점이다.

 

브루스 커밍스 교수가 미국인이나, 은근히 한국사회와 역사, 게다가 문학과 신화 등 전반적인 한국문화를 이해하고 있었다. 한국전쟁의 갈등은 당시 전쟁만이 아니라 21세기에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책의 서문에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자신의 책을 바친다고 적었다. 반정부 인사, 평화중재자, 정치가로 활동한 그를 말이다. 지금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두고 호남에 태어났고, 한국전쟁 전에 인민위원회 활동으로 빨갱이란 꼬리표가 따라 다닌다. 하지만 브루스 커밍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몸담은 곳은 공산주의 세력과 무관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닌 각종 인민위원회는 자생적 조직이라 말했다.

 

그런 증거는 미군의 문서에서 발견되었고, 당시 미군은 한국의 자체조직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으며, 이들을 공산주의와 같은 세력으로 보았다. 대표적인 학살사건은 제주도의 4·3사건이고, 당시 제주도 주민들은 아무런 통신장비도 없었기에 공산세력과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생리를 잘 이해하지 못한 미군과 서북청년단은 경찰세력으로 편입하여 민간인 학살을 주도했다. 아직도 제주도는 4·3사건의 비극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다. 당시 몇 만명의 주민들이 살해당했고, 몇 만명의 주민은 일본으로 대피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은 아직도 일본에 있다고 한다.

 

빨갱이로 낙인찍히면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에게 화가 미친다. 빨갱이라고 지목된 남자의 아내 여동생, 누나가 있다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윤간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희생자의 성기 안에 수류탄을 넣었다고 한다. 이 글귀를 보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 잔인함이란 인간으로 해서 안 될 경계선을 넘은 것이다. 3살짜리 어린 여자아이가 총에 맞아 울고 있으니, 총에 달린 검으로 그 아이의 목을 베기도 했다. 당시 8살 소년은 자신의 여동생이 억울하게 죽어간 모습을 보았다. 평생의 상처가 되어 부모의 이름조차 말하지 못하다, 드디어 21세기 (진정한 의미로) 민주주의 정부가 도래하면서 당시의 비극을 말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미국은 한국에 대해 더 심각하게 대했다. 지금은 우방국가라고 하지만, 당시 한국전쟁 전후는 일본의 전진 군사국가, 일본의 전후경제 복구를 위한 체계로 보았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군수물자 공장을 맡은 일본은 경제적으로 급성장을 했다. 미군에 의해 항복한 전범들은 일부 사형에 처해졌지만, 그들의 후손 대부분이 일본의 총리와 의원직을 차지하고 있다. 아베 신조를 비롯한 자민당 의원은 대부분 우익정치가 내지 군인들의 후손이다. 미국에게 가장 치욕을 당한 그들이 이제는 태평양 국가 중에서 미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가 되었다.

 

한국인들은 미국의 최고 우방은 한국이라 여기나, 사실은 일본이다. 동북아시아 미군기지 중 가장 핵심 전략은 일본 오키나와 주변에 포진하고 있다. 괌은 미국의 영토이니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영토가 아닌 미군의 군사력은 일본에 많이 포진하고 있다. 1950년 한국전쟁은 내전이고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좌우된 전쟁이다. 하지만 전쟁에서 보여준 잔인성과 비극은 이미 뿌리내린 씨앗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이나 북한군과 아무 관계없어도 단지 북한군의 의복을 세탁을 해준 이유로 많은 여성들이 살해당했다.

 

그들은 이데올로기 내지 사상 따위는 전혀 모르는 까막눈이며, 오로지 원하는 것은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식량이었다. 이런 민간인들의 속성을 모르는 미군과 주변 강대국, 일제강점기 때부터 싹이 튼 원한과 공포는 광기의 도가니로 몰았다. 한국전쟁이 세계전쟁사 특히 항공전쟁사에서 가지는 의미가 중요한 점은 세계 2차 대전보다 한국전쟁에서 폭격기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활약했고, 폭격기는 각종 군사시설 및 산업시설을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민간인들을 죽이게 만들었다.

 

한국인은 대부분 흰색옷을 입으니 그들은 민간인인 것을 알아도 흰색만 보이면 무조건 폭탄을 투하했다. 민간인들에게 대피할 것을 권유해도 떠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도 있다. 한국인은 기본적으로 농업에 종사하고, 집안의 조상이 산에 있기에 쉽게 고향을 버릴 수가 없었다. 여기에 만주군관학교 출신 친일파장교들이 수행한 독립군 토벌작전도 포함되어 있다. 간도나 만주의 조선인들은 몰래 독립군에게 식량과 군자금을 지원하는 지원세력이었다. 그곳 출신 청년들은 독립군의 용사가 되어 일제에 항거했다.

 

조선의 민간인을 친일파 조선인들이 무참하게 살해하였던 것이다. 이런 그들이 이승만의 정치세력으로 등장하여 한국전쟁까지 이어졌다. 제주도 4·3사건 당시 제주도 주민들은 대부분 희생자의 친척들이었다. 이들의 증오와 복수심은 지금도 제주도의 한으로 남아있고, 이들의 저항을 막기 위해 더 심한 억압과 폭력을 가한 것이다. 제주도만큼 심하게 압박을 받은 곳은 전라도지역이다. 전라도는 동학운동 시절 가장 착취를 많이 당한 지역이고, 외세가 가장 많이 초토화시킨 지역이다. 청일전쟁에서 전라도 지역이 많은 타격을 받았고, 일제강점기 시대에 가장 많은 곡식을 수탈당했다(왜 군산시가 항구도시로 성장했을 수 있는가?).

 

전라도 지역사람들이 폭압을 당한만큼 그들 역시 저항을 많이 했다. 그래서 제주도처럼 이데올로기의 대립에서 많은 사람들이 갈등을 빚은 곳이었다. 지금 전라도 내부에서는 자신들끼리 이데올로기적으로 대립하기보단 타 지역과 갈등을 빚고 있다. 518의 비극에서 아직도 빨갱이로 낙인이 찍히고 있는 그들을 보면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한국전쟁 전후의 한국사를 보면 항상 피해자가 악마나 마녀 내지 적으로 간주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나, 단지 그것은 살아남은 하나의 국가나 사회적 합의체이지 그 사회 내의 존재들이라면, 결국 역사적 진실은 다시 우리에게 찾아오는 법이다. 브루스 커밍스의 책을 보면서 E.H Carr<역사란 무엇인가>가 다시금 떠오른다. 역사는 과거에 있었던 일이고, 그것은 하나의 진실이다. 하지만 진실은 어느 관점에 따라 사실과 왜곡으로 변모된다. 20세기 한국에서 광주는 불온세력이 포진한 지역이라면, 21세기 현재 광주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성숙시킨 곳이다.

 

서평을 보자면 한국전쟁 전후로 민간인 학살을 한국인과 미군만 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겠지만, 북한군 역시 민간인을 학살했다. 문제는 민간인학살을 하던 전범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부정한다는 점이다. 그 죄를 건들면 아직도 이데올로기적인 마녀사냥을 구가한다. 당시 한국전쟁의 전환점은 미군의 군사력이다. 미군은 2차 세계대전 시에도 국방력을 그렇게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군사력이다. 한국전쟁을 기해 미국은 방위산업체의 확대되고, 지금 미국의 방산업계는 세계 최고이다. 한국전쟁은 미국에게 있어서 2차 세계대전처럼 파시스트에게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세계 패권을 잡기 위한 싸움이다.

 

그 전쟁은 베트남전쟁도 이어지고, 냉전체계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당시 미국 상원위원인 메카시가 있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메카시즘은 미국정치와 사회를 숙청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고, 그 시기 한국은 공산진영과 전쟁을 벌였다. 브루스 커밍스의 책에 언급했지만, 더 자세한 것은 <폭격>이란 도서에 나와 있는데, 미군은 유색인종인 동양인을 상당히 무시했다. 일본 상공에 폭격을 하나 한국의 농촌을 폭격하는 심정이었다. 한국인도 그들에게 하나의 gook(동양인을 멸시하는 말)이었다. 그렇게 학살하고도 이기지 못한 전쟁, 게다가 민간인학살까지 저지른 일들이 한국전쟁은 미국에게 잊어진 전쟁이 되었다.

 

다르게 생각하면 미국에서 베트남전쟁에 대한 미디어가 참 많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에게 베트남 그 자체가 적이나, 한국은 적이 아니라 반쪽자리 우방국이다. 압록강까지 올라가 흥남부두에서 쫓기듯 내려온 그들에게 한국이란 인상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을 두고 변증법적인 논리로 보자면, 한국전쟁 이전 일제치하에서 조선인들을 상대로 횡포를 부린 친일파와 그들과 대치한 민중의 갈등에서(방안에 가득 찬 메탄가스), 소비에트의 지원을 받은 김일성 정체세력이 총(라이터)을 발사한 것이다.

 

1950년보단 못하나, 아직도 그 메탄가스는 여전히 우리 주변을 부유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갈등은 정치적 세력으로 표출되며, 정당간의 대립은 한국전쟁과 그 이전에 존재했던 과거의 그늘에서 나오고 있다. 저자의 놀라운 관찰력은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로 나올 때의 이야기도 알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영부인 권양숙 여사는 어릴 적에 아버지를 여의였다. 아버지는 사회주의 단체와 연계되어 있지만, 앞을 볼 수 없는 맹인이란 점에서 그가 실제 전쟁에서 한국군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조건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과거를 가지고 색깔론을 상대편 후보가 펼쳤다. 그 시대가 한국전쟁이 끝난 지 54년이 넘어도 그런 말이 나왔다. 이런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계속 우리 사회에 남아있다면 한국전쟁의 불씨는 꺼질 수 없을 것이다. 당장 북한과의 대화를 해야 하나, 한국사회의 갈등은 국내외적으로 정치, 군사, 외교에 큰 갈등을 야기한다. 전 정권의 정부는 일제가 저지른 위안부 문제와 징용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려 했다. 당시 자국민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지울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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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18-04-14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잘봤습니다. 저도 이 책 읽어봐야 겠어요.

만화애니비평 2018-04-14 21:14   좋아요 0 | URL
아이고 칭찬 감사합니다
 
블렌드 브라운 - 1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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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형님께 드리니 정말 좋아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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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비아 페미니즘
박가분 지음 / 인간사랑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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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면서

전에 친한 동생 녀석하고 같이 호프집에서 생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이때 내가 질문한 것이 있다. “사람이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동생은 여기에 대해 형님, 그건 병원에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내가 그러면 병원에 가면 무엇이 가장 필요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동생은 아무래도 의사가 필요하겠죠.”라고 대답을 했다. 물론 상식적인 보통 인간이라면 그 대답은 정답이다. 하지만 중요한 부분이 있다. 병원을 진료를 받을 때 진료를 하는 주체는 의사이고, 의사는 병원에서 근무하는 직원이다.

 

병원을 하나의 미디어(media)라고 보면, 의사는 콘텐츠(Contents)라고 볼 수 있다. 최근 미디어콘텐츠의 관계성에서 인터넷의 각종 문화적 매체만을 미디어와 콘텐츠로 보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에 접하는 요소조차 미디어와 콘텐츠로 볼 수 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동생에게 이렇게 말을 보강해주었다. “환자가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이 맞지. 하지만 병원을 가려면 병원이라 그 건축물이 필요하고, 병원을 가기 위해서는 도로가 필요하지. 즉 도로와 병원이라 기반시설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한 것이다.”

 

이런 말을 한다면 보통사람들은 왠지 지나치게 멀리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지만, SOC(social overhead capital) 이른바 사회간접자본(社會間接資本), 인프라는 것이 구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회간접자본은 병원시설부터 시작하여 도로, 철도, 공항, 항만, 상하수도, 전기통신 등 다양한 시설들이 있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는 점을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이다. 즉 사회기반시설이 도심지에 구비되지 않으면 도심지의 기능을 할 수 없으며, 사회기반시설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그 역시 사회생활에 많은 문제가 따른다.

 

우리가 일화로서 전기가 정전이 되거나, 혹은 겨울철 상수관로가 동파되어 물이 공급되지 않을 경우가 있다. 그때 겪는 불편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회간접자본은 시설물, 즉 움직이지 않고 고정된 형태 구조물을 통해 유틸리티가 끊임없이 제공된다. 병원에 가는 병원이란 건물이 없으면 진료가 어렵다. 가령 대도시가 아니라 산골이나 농촌 같은 벽지에 사는 마을주민은 종합병원을 찾아가려면 몇 십 를 차로 가야하며, 하다못해 섬에서 사는 주민은 배나 헬리콥터를 이용하지 못하면 생명에 큰 위협을 받는다.

 

병원에 가야 하는데 병원시설이 없고, 병원시설에 가야하는데 교통기반시설이 구축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일부일 수 있으나 상당한 큰 불편함을 겪어야 하고, 그런 시설이 구비되어도 인프라 시설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으면 그 역시 불편함을 겪는다. 여름철 폭우로 교통사고가 났는데 구급차가 사면부 옆 도로가 유실되어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사고를 당한 사람은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다. 결론은 사회가 제 기능을 발휘하고, 거기에 따른 문명적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인프라가 제대로 구비된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인프라의 보충과 유지의 업무는 녹녹치 못한 일이다. 왜냐하면 대부분 인프라와 관련된 업무를 하는 사람은 건설계통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건설계통 노동자 중 설계엔지니어링을 제외한 대부분 기술 인력은 현장에 상주한다. 현장에 상주한다는 것은 시공과 감리, 관리업무를 한다는 점이다. 현장세계는 늘 위험과 안전사고가 마주하고 있다. 한 해 안전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이 수 천명에 이른다. 제일 유명한 사건은 서울2호선 구의역에서 일어난 스크린도어 노동자 사망사건이다.

 

또한 거제조선소에서 붕괴된 크레인이나, 고속도로에서 도로정비를 하던 노동자가 고속주행 중인 차에 부딪혀 사망한 사례들이다. 우리가 늘 현실에서 마주하는 인프라시설을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노동자의 노력과 희생이 따른다. 특히 철도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 수단에서 철로를 수리하던 노동자들의 사고는 늘 문제가 되었다. 그들의 사고를 유심히 보면 안전관리 미비, 근로기준 시간 초과, 휴식시간 보장 미비 등 다양한 사유가 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 정규직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많다. 대한민국의 하루를 만드는 자들이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희생당하는 현실이다.

 

이들의 희생은 자본주의 경제구조에서 이윤만을 추구하는 회사 운영진, 사회적으로 관심 받지 못한 채 소외받는 서민들이다.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버스 정류소에 가면 새벽부터 운행하는 버스기사가 있고, 자가용을 이용하여 출근할 때 도로를 보수하는 건설노동자가 있다. 게다가 도로와 관련된 업무는 대낮보단 심야시간에 주로 이루어진다. 야간작업에 따른 노동 집약도가 높으며, 시야의 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은 점에서 안전관리가 무척 어렵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서민이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다. 다행히 버스는 준공영제가 되었다고 하나, 우리 사회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가 무척 심각하다. 그렇다면 난 왜 이들의 현실을 말하고 있는가?

 

2. 페미니즘이 아닌 페미니즘

2016년 강남역에서 묻지가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이 문제가 여성혐오로 일어난 범죄인지 아닌지 모르나, 적어도 상당히 잘못된 일이고, 그것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이다. 내가 이 사건에서 그 살인자를 두고 여혐인지 아닌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일부 여성 진영에서 여성혐오라고 하나, 경찰과 범죄정신분석에서는 약물의존과 정신병에 의한 행위로 보기 때문이다. 어디가 논리이냐 아니냐를 말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문제는 피해자의 가족들이다. 이 사건의 최고 희생자는 살해당한 본인이 아니라 그 가족과 주변사람이다. 인간이 사망하면 그 자신이 피해를 받았다는 인식과 판단을 할 수 없으며, 범적인 절차와 행정적 절차 역시 피해자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여성 진영에서 이 사건을 두고 모두 공포와 공허감을 느끼며 페미니스트운동을 펼쳤고, 사회적 문제에 대해 이슈를 건넨 것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가고 있었나는 것이다. 죽은 피해자의 가족에게 찾아와 그들의 고통을 대해 서로 다독거리는 것이 아니라 페미니즘 이야기만 하고, 그들의 가족이 남성이란 이유로 남성이 여성의 죽음을 두고 슬퍼할 자격이 없다고 말한 것이 그렇다. 인간이 억울하게 죽어 그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실의에 빠져 있는데,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맞는 가이다.

 

혹은 누군가 이런 일에 충격을 받거나 과거 성폭행 내지 성추행에 당한 분이 있더라도, 직접적으로 피해를 당한 가족에게 그런 식의 발언을 하는 것도 문제고, 그것에 대한 문제의식 없는 것 역시 심각하다. 게다가 일반남성들은 이유 없이 여성을 구타하거나 성폭행하지 않는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타인을 헤치거나 모함할 이유는 없다. 상식적이지 못한 사람이나 혹은 비인간적인 사람만 그런 행위를 한다. 문제는 모든 남자를 범죄자로 모는 것과 그것이 곧 범죄는 어떤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늘 현실에서 24시간동안 이루어진다는 점과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공포의 심리는 사회적 큰 이슈를 남겼고, 인터넷은 서로를 비난하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반대로 구의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남성이 작업 중 안전사고로 젊은 삶을 마감했다. 그가 죽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추모를 했고, 비정규직에 대한 안전관리 및 대우가 무척 심각한 것은 다시 보여주었다. 월급도 적고 근무시간은 빡빡하여 점심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한다. 그가 죽었을 때 정상적인 사람, 그중에 일반 여성들은 어떻게 보겠는가? 그 청년의 죽음을 두고 안타까워하고, 그의 죽음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사측에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청년의 죽음을 두고 비난하고 조롱하는 부류가 있었다. 심지어 전태일 열사의 죽음을 희롱하고, 백남기 어르신의 죽음을 조롱했다. 메갈리아 워마드는 미러링 수법으로 여성혐오에 대한 불만으로 남성혐오 발언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의 죽음에서 여성혐오는 전혀 상관없고, 그저 안타까운 죽음이다. 이들의 죽음을 조롱하는 부류는 일베나 극우성향의 네티즌이었다. 만일 메갈리아 워마드가 여혐을 미러링 한다면 남녀간의 젠더적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데, 그들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혐오발언을 했다.

 

일베가 여성을 비하한 말을 했다고 해서 남성들이 그것을 동조하는 것은 아니고, 메갈리아가 남성을 비하한다고 여성 전체의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일부 엘리트 진보진영에서 메갈리의 담론을 페미니즘이론으로 전환하여 혐오적 담론과 사회적 이슈를 이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내가 이들의 행위에 회의감을 느끼는 이유는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도래 이후 (권력이 없는) 자신들의 입장을 내세우는 것은 정당화되어도 그것이 윤리적 한도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 윤리적 한도를 초과하여 타인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고 그것이 문제라고 말하면 오히려 여성운동을 저지하는 남성권력이라고 말한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처음부터 권력이 있었다면 저렇게 될 리가 있을까? 이들의 착각이 심각한 이유는 바로 이렇다. 일베가 죽은 (남성)노동자를 조롱하면 그것은 메갈리아 워마드가 추구하는 유아적 페미니즘과 분명히 다르다. 일베가 조롱한 사람을 메갈리아 워마드 역시 조롱했다. 흔히 페미니즘 세력에서 말하는 너희 남성이 우리를 조롱했으니 우리도 여기에 대해 조롱한다.”라는 전략이 틀린 것이다. 국가주의적 발상과 시장자본주의에서 경영자 마인드를 지지하는 극우적 발언이 이제는 메갈리아 워마드에서 나왔다.

 

페미니즘이 진보진영에서 담론화 하는 형국에서 극우적 발언이 진보의 꽃이라고 보던 메갈리아 워마드에서 나온 점에서 한국 진보진영의 엘리트들은 이미 좌파세력으로서 상식과 도덕을 배반한 것이다. 여성학자들이 대부분 진보진영에 속한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남녀 간의 불평등에서 기존 기성세대가 지닌 문제는 거의 틀리지 않고, 때로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지적한다. 하지만 기성세대의 문제가 점차 20대 내지 30, 그리고 10대로 내려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회적 약자라던 여성이 점차 사회적으로 요직에 나가게 되면서 그 자리를 사회적으로 직급이 높은 자들이 차고 올라간다. 하지만 하부에는 그렇지 못하다. 계급적 박탈감은 남녀를 모두 떠나 사회 그 자체의 문제가 되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도 여성이 약자라고 본다. 분명 신체적으로 남성이 유리한 부분이 있으나. 사회적으로 남성만이 유리하지 않다. 대부분 권력자가 남성인 것은 사실이나, 그 권력자의 권좌를 모든 남성이 앉는 것도 아니고, 일부 남성이고, 대다수 남성들은 거기서 소외된다.

 

3. 진보의 문제

한국에서 좌파와 우파 문제를 다룬 것만큼 피곤한 문제가 없다. 한국적 시선에서 정하기 때문이다. 서구의 정식이론이 있어도 좌우 이데올로기는 둘째 치고, 자유주의 사상조차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다. 아직도 자유주의 사상을 두고 반공이데올로기로 보고 자유주의는 70년대 군부독재가 지배하던 구조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한국의 진보운동의 시작은 이상하게 시작되었다. 자유주의사상은 인간의 자유가 아니라 자본주의시장경제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자유주의이고, 사회주의는 그렇지 못한 체계로 본 것이다. 자유주의이든 사회주의이든 모두 자유를 중요하게 보고 있다.

 

경제적 자유와 사회적 자유는 완전 같은 것이 아닌데도 같은 것으로 보는 오류가 존재한 것이다. 가령 한국의 유교사회라 하여 조선의 성리학을 제대로 알고 있는 노인도 없으며, 공자의 <논어>조차 읽은 어른도 없다. 어른이 말하면 무조건 아랫사람은 토를 달지 못하는 구조는 이른바 꼰대사회로 만들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중요하지 않다. 사회 직장생활과 학교의 선후배 사이에도 존재한다. 계급이 깡패라는 의식은 군대가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깔린 체계이다. 남성중심의 사회구조에서 시작된 계급적 억압은 일부 남성만에게 권력을 가지고 있다.

 

최근 문재인 정권에서 피우진 보훈처장이 내각에 오르면서 그분이 예전에 군대생활을 기반으로 작성한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에서 고급 장교들의 행패를 다루고 있다. 영관급 장교는 군대 내에서 막강한 힘을 가진다. 장관급 장교는 상상을 초월한 권력을 가진다. 여군이 군대 내 차지하는 비중이 적었고, 그들이 처한 입장도 불리했다. 간호사관 같이 군병원을 중심으로 체계화된 조직이 아니라면 언제나 소외될 수밖에 없는 처지인 점은 분명하다. 이런 사례를 두고 군대는 남성위주이니 한국의 남성이 모두 예비적 성추행범 내지 무뢰배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아도, 일반 사병들은 초콜릿을 매우 좋아한다. 시대가 얼마나 변했는지 모르나, 피우진 처장님이 책을 쓸 시기나 혹은 책에서 묘사한 시기에 사병들은 초코파이에 열광을 했다. 일반사병들이 여군에게 과연 행패를 부릴 수 있는가? 군대는 계급이 깡패이기 때문에 피우진 처장님이 말한 일들이 벌여진 것이다. 일반사병이 밖에서 술을 마시고 여군을 부를 수 있는 것은 상상조차 불가하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남성이 역차별을 당하지 않으려면 먼저 성차별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 말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 분이 말하는 내용은 모든 사회적 전반이 아니라 어느 특이한 상황과 구조를 봐야 한다는 점이다. 전후맥락을 놓치고, 일방적으로 여성만 약자라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남성이 징병되고 여성은 징병되지 않는다. 여성이 남성보다 신체적으로 약하다는 이유이다. 리뷰를 적는 본인은 부사관으로 입관할 때 여군동기와 같이 훈련을 받았다. 내가 본 여군들은 훈련과정에서 도태되는 인간이 아니다. 자신의 한계에 충분히 이겨내는 훌륭한 사람이다. 피우진 처장님은 헬리콥터 조종사면, 더욱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이 지니고 있다.

 

단지 내가 여성징병에 반대하는 것은 징병이 되는 기준은 사병부터 입영해야 하고, 그것을 위한 인프라 구조가 전혀 구비되지 않은 점이다. 아무 준비 없이 실행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21세기 중반으로 가면 인구절벽을 맞이하면 군사력 보전을 위한 징병 대상 인구를 점차 확대할 것이다. 과학기술이 발전하여 CCTV나 군사장비를 보강한다고 하면 되지만, 현재 군사조직을 본다면 거기에 투입되는 예산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충분한 예산이 되면 점차 개선하겠지만, 사병들이 사용하는 군장비가 한국전쟁 때 사용하는 수통이 있다. 예비군들이 사용하는 총기는 칼빈소총이다.

 

단순히 남녀의 문제로 보는 감정적 대립보다, 현실적으로 전후맥락과 상관관계 그리고 기본적 토대를 분석하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제대로 하려면 바른 토론문화가 성립되고, 거기에 따른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문제를 두고 진보진영에서 일부 페미니즘 담론만 받아들이면 사회구성원 국민들에게 과연 인정을 받을까? 진보진영의 문제는 바로 시대적 맥락에 많이 해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진보를 두고 그 시작은 일제강점기 시대이다.

 

일제는 만주나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중국인과 조선인을 이간질하기 위해 조선 내 중국인과 조선인에게 노동문제를 제공했다. 서로 다른 임금을 주고, 각 민족별로 험담을 내어 임금문제를 서로 노동자끼리 다투게 한 점이다. 이들의 갈등은 당연히 외부에서 항일운동 하는 사람에게 심리적으로 위협을 주게 되며, 일자리를 찾기 위해 임금을 적게 받는 쪽에 주는 경쟁방식을 도입하여 노동환경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었다. 한국의 진보운동과 관련하여 일본의 자본독식과 노동환경을 대해 저항한 세력이 있었다. 조선공산당(북한과 전혀 무관함)은 독립운동과 노동운동을 동시에 진행했으며, 그 타도세력은 일제였다.

 

여기에 대종교 신도를 중심으로 백산 안희제가 설립한 백산상회는 독립군의 군자금이 되어주었으며, 조선에 대한 일본의 자본침식을 저지하려 했다. 조선이 독립하여 대한민국으로 되고, 대한민국은 다시 한국전쟁으로 역사의 운명을 맞이한다. 이때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 그 후 전두환 정권이 한국사회를 지배한다. 이때의 진보가 내세운 투쟁의 슬로건은 국민주권과 노동운동이다. 노동환경이 열악하면 노동자가 시위를 하거나 파업을 하면 사업자는 이에 대한 문제를 같이 합의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권력을 이용하여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10.26사건 시작점은 DH사건이다. 여성노동자들(그것도 나이가 어린 여공들!)이 임금의 적정성과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다가 경찰에게 진압당하는 과정에서 한 사람이 창문으로 떨어져 그 삶을 마감했다. 진보진영이 추구한 노동인권은 단순히 노동자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를 탄압하던 국가라는 그 자체, 국가주의 파시즘을 타도하는 조류였다. 6월 항쟁과 대통령직선제,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로 옮기면서 노동운동은 민주화보단 노동문제를 중심으로 투쟁한다.

 

특히 IMF 시기로 경제적 퇴보와 신자유쥬의의 도래는 노동시장 유연화란 단어로 많은 노동자의 삶을 피폐하게 했다. 신자유주의 노선은 국제사회 흐름이고, 현재 그 노선을 따라가지 않을 경우 외교와 통상무역도 문제가 발생한다. 결론은 비정규직의 양산화, 임금의 저하, 노동환경의 부조리 등은 계속 유지된 셈이다. 진보진영은 바로 이런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국가와 합의하여 유리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 국가정책으로 반영되어 법적 제도를 유지하지 않으면 자본주의 시장구조에서 노동자는 100% 불리하기 때문이다.

 

최근 10년간 보수화로 인해 노동환경은 가혹해졌다. 작년은 한국 최초로 대통령이 탄핵되어 파면되었다. 그렇다면 진보진영에서 봐야 할 개선안은 무엇인가? 당연히 노동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페미니즘 이론을 내세우는 진보진영 엘리트들은 이런 문제를 두고 진보의 길이 아니라 보수세력을 옹호하는 형국이 되었다. 메갈리아 워마드 발언 중 가장 문제가 남성 그 자체만이 아니라 남성이 살아가는 그 삶의 형태를 조롱하기 때문이다. 200충이란 단어가 있다. 1달에 200만원 가량 버는 남성을 두고 조롱하는 단어으로 그 대상은 돈도 많이 벌지 못하는 중소기업 내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20178월 기준 연봉 2,600만원 가령 받는 노동자가 상위 50%로 기록되었다. 세금과 공제금을 제하고 200만원을 월급으로 받는다면 연봉 3,700 이상이 상위 30% 이상이다. 200만원이라 하여 200만원 딱 숫자가 아니지만, 그 내외에 해당되는 노동자 대상자이다.

 

한국 노동운동이 중요한 것은 이들이 국민이기도 하나, 국민들의 생활경제가 어려우면 나라 역시 제대로 운영하기 어렵다. 인구의 감소는 국방력 보전만 아니라 경제적 수요도 문제이다. 최근 교대 학생들이 임용으로 사회적 이슈를 남겼다. 학교에 교대생을 받아들일 수 없는 구조는 인구의 감소이다. 국가가 어느 정도 해결해줄 부분이 있겠지만, 근본적 문제는 인구감소의 절벽이다. 산부인과와 소아과 의원이 감소하고, 이에 반해 한의원과 노인요양병원은 증가한다. 인구의 문제는 그 시대적 흐름에서 보여주는 실태이다.

 

인구의 감소는 경제소비능력이 감소하고, 내수구조를 어렵게 하고, 더 나아가 시장 그 자체를 감축된다. 인구감소로 인한 국가경제력이 심각한 사태에 이른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의 <정치경제학>에서 본다면 한국은 쇠퇴하는 국가이다. 물론 기계의 대체화로 노동력을 그만큼 줄이면 기업은 유지가 가능하나, 고용된 노동자 입장에서 생계가 문제이다. 비정규직으로 인한 노동환경은 여전히 열악한데, 진보진영 엘리트들이 계속 물고 늘어지는 페미니즘 이론이 한국사회에 과연 좋은 길을 열어주는가?

 

이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무시하고, 더 나아가 그들과 같이 살아가는 가족을 무시한다. 맘카페 내지 다수의 인터넷동호회에서 가난한 남편과 같이 사는 기혼여성을 두고 명예자지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여성이 여성보다 남성의 편을 드는 기혼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거기에 대하여 메갈리아를 비판하면 페미니즘을 부정하는 것이 되고, 그것은 진보진영에 대한 도전이란 프로세스로 만드는 진보언론의 관점은 매우 심각하다. 진보언론이 노동자들의 편이라면, 그들이 처한 문제를 다룬 것은 분명하다.

 

노동환경과 메갈리아 워마드 문제의 순환도를 보자면 노동자가 사망했는데 그것이 남성(재해율이 95% 이상)메갈리아 워마드가 남성노동자의 산업재해를 두고 조롱을 함 일부 네티즌이 여기에 대하 비판하고 메갈리아 워마드를 비판함 진보진영이 메갈리아 워마드를 비판하는 사람을 두고 안티페미니즘으로 몰아세워 일베로 몰아세움

 

이런 도식이 결국 진보진영에 대한 시민사회의 불신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최근 오마이뉴스의 후원자가 계속 감소하여 2016516,570명에서 20171013,930으로 감소했다. 메갈리아 논쟁으로 시작하여 진보진영의 대표언론기관인 오마이뉴스의 후원자 수가 2,600명 가량 낮아진 것이다. 전체 비율의 15.7% 되는 후원자가 빠진 것이다. 시사인의 행태 역시 후원자 내지 구독자로 운영되다가 인터넷 배너 광고를 달기 시작했다. 이들을 보는 시민사회의 눈총이 그리 고운 것이 아니다. 시민사회라 해도 어느 커뮤니티 내지 기관에 속해진 사람이 아니라 네티즌으로 참여하여 꾸준히 사회정치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 역시 시민사회의 일원이다.

 

4. 마르크스주의 쪽으로 생각해 보자.

좌파의 시작은 어디인가? 좌파라고 한다면 노동운동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좌파의 핵심을 차지한 인물과 사상은 마르크스주의이다. 마르크스가 저술한 <공산당 선언><자본>이 토대가 되어 엥겔스, 룩셈부르크, 레닌, 알튀세르, 마르크스주의에서 새롭게 탄생한 프랑크푸르트학파 및 구조주의 사상사단들도 그 여파들이다. 마르크스주의가 소비에트 붕괴 이후 몰락할 것이라 했지만, 오히려 21세기는 마르크스주의가 세계적으로 다시 학문적으로 대두되고 있다.

 

마르크스의 <자본>을 읽으면 노동력을 착취하고, 노동강도를 올리며, 기계의 개선으로 노동임금을 감소시키며, 도구의 발달은 노동착취 대상자를 남성에서 여성으로 변모시킨다. 마르크스의 서적에서 여성노동자들이 겪는 현실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저술하고, 남성노동자와 같이 사는 여성들의 삶 역시 다루고 있다. 페미니즘 이론 중에 영국의 존 스튜어트 밀의 <여성의 종속> 같이 자유주의 이외에도 마르크스주의에 따른 페미니즘 역시 존재한다.

 

만일 진보진영에서 노동문제와 여성문제를 마르크스주의에서 본다면, 임금문제와 노동환경을 중심으로 볼 것이다. 그리고 여성노동자의 문제를 다루며, 노동문제를 개인 기업만이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라는 법적 강제집행기구가 있기에 국가와 기업을 동시에 고찰대상으로 봐야 한다. 올해 201711월은 러시아 볼셰비키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볼셰비키혁명의 성공은 러시아 민중의 지지도 있지만, 볼셰비키 당원들이 대부분 노동자였고, 그들은 철도와 전기, 통신, 도로 등의 인프라를 통제할 수 있었다.

 

지금으로 전자식이 아니라 수동식으로 통제했기에 군부세력은 볼셰비키세력을 무력화할 수 없었다. 노동자들이 결국 사회적 인프라를 통제하면 그 사회는 바로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렇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대다수 국민들은 국가와 기업의 통제를 받고 착취당하는 피지배계급이다. 임금수준이 삶을 지탱하기도 어렵고, 노동환경이 열악하여 언제 어디서 사고로 죽거나 다칠지 모르는 상황이다. 마르크스주의적 담론을 페미니즘에서 인지하여 노동자 삶 그 자체를 본다면 메갈리아 문제가 심각하지 않을 것이라 본다.

 

대다수 여성학자는 좋은 학벌을 가진 엘리트들이다. 그들이 보는 남성이란 이미 혐오발언과 행위를 일으키는 문제아들이다. 노동여건과 임금 그리고 그들 삶 그 자체를 두고 본다면 포비아 페미니즘을 공론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메갈리아와 워마드는 갑자기 튀어나온 존재가 아니라 기존 인터넷 카페에서 혐오적 발언을 하던 일부 여성들이 세력화한 부류이다. 단지 메갈리아의 발언을 페미니즘이란 옷을 입고 사회로 나온 것이다. 페미니즘의 전사로 둔갑한 이들의 혐오발언은 처음에 사이다로 느꼈을 것이나, 점차 이들의 행패나 문제는 이슈화 되었다. 강남패치, 한남패치 같은 경우 타인의 신상정보를 무단으로 노출시켰으며, 아무 관계 없는 사람을 범죄자로 낙인을 찍게 만들었다.

 

소라넷 운영자가 잡히지 않고, 자신만 잡혔다는 이유로 여성혐오로 다시 말하고, 유족무죄 무족유죄라는 발언도 만들었다. 하지만 상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그 말은 통용되지 않는다. 남자의 성기가 있든 없든 죄를 지은 것은 변함이 없다. 사회적으로 모든 범죄를 남성으로 몰고가나, 최근 학원폭력을 봐도 남학생과 여학생 구분 없이 일어나는 점, 인천에서 일어난 엽기적인 살인사건 등을 봐도 범죄는 여자라서 남자라서가 아니라 그 개인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문제를 두고도 현실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불리함을 알아달라는 인정투쟁이 결국 정치적 올바름이 되고, 그것을 위한 발언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어도 문제의식을 제대로 간판하지 않는다.

 

그러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참한 사건 중에서 세월호 침몰을 보자.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의 계기를 내어주었다. 물론 직접적 탄핵사유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다. 세월호 사건에서 국민들의 불신이 도화선이 되어 최순실 국정농단이 폭발로 일어나 탄핵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박근혜와 최순실의 구속을 두고 메갈리아 워마드에서 여자라서 대통령에서 떨어지고 구속되었다고 한다. 박근혜의 파면과 구속은 극우 사이트 일베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인데, 그들의 미러링인 메갈리아 워마드도 일베가 추구한 가치와 같은 방향을 보여주고 있는가?

 

페미니즘이론을 서구 저명한 자유주의 페미니스트 사상가의 책을 봐도 여성이든 남성이든 그 본인이 자질과 능력이 되면 그 자리에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결국 여자라서 남자라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발언은 비단 메갈리아 워마드의 의견이 아니다. 여자도 대통령이 되어야지 하는 발언은 박정희를 통해 박근혜를 지지하던 사람들도 말하던 방식이다. 그러면 그렇게 말하던 박근혜 지지자들은 모두 페미니스트인가?

 

심지어 박근혜 탄핵 전 특검의 조사 중, 청와대로 전화하여 박근혜에게 응원했다고 하는 메갈리아 워마드 유저도 있으니, 이게 진보에서 말하는 페미니즘인가? 여성학자 정희진과 최근 서민교수의 페미니즘 담론에서 과거 이들은 박근혜는 여자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기고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인권을 추락하고 노동시장은 악화되고, 세월호 희생자들은 억울하게 죽는 것도 모자라 그 가족들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 했다. 그런 악의적 행위를 한 사람들을 두고, 최순실 국정농단을 두고 과거 그런 식으로 발언했던 분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5. 나는 인간의 얼굴이 보고 싶다.

나하고 친한 여자교수님이 계신다. 아주 똑똑하시고 내가 좋아하는 분이다. 개인적으로 책을 추천받고(마르크스주의 도서 몇 권) 읽어보았다. 작년에 이분이 메갈리아 이슈에서 페미니즘의 형태에서 그들의 행위에 대해 문제가 다소 있어도 발언의 의의가 있기에 좋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올해이다. 메갈리아는 군대에서 의문사 내지 사고사로 당한 장병들을 조롱한다는 점이다. 군장병들 중 영관급 장교 내지 부사관은 상사원사 이상 아니면 모두 하위계급이다. 특히 사병들은 절대적인 약자이다.

 

그들이 사고사로 희생당할 때 잘 죽었다고 말하는 그들의 멘탈이 궁금하다. 어째든 나하고 친한 여자교수님의 아드님이 군복무 중이다. 최근 철원에서 일어난 사격장 사고로 접하고 나서 무척 불안하다는 SNS 글을 보았다. 당연히 그런 일이 무섭지 않을 수가 있을까? 당시 메갈리아 워마드를 페미니즘의 발언이라 지지하신 분이다. 그리고 그 페미니즘은 군대에서 죽은 병사를 조롱하고 무시하는 사람이다. 이제 자신의 아들이 군에서 그런 위기의 상황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예전부터 나는 사병들의 죽음을 두고 남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남자의 가정과 기존 커뮤니티의 붕괴라고 생각했다.

 

대한민국 기혼여성 중 아이를 낳는다면 남성이 태어날 확률은 최소 50% 이상이 된다. 왜냐하면 여자아이나 남자아이 하나만 출산하는 게 아니라 2명 이상 다수의 아이를 출산할 경우 딸이 1, 아들이 1명인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작년 군부대에서 일어난 구타사건이 일어나고, 어느 병사가 총으로 내무반 사병들을 사격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가장 두려움에 떨던 사람은 기혼여성이었다. 주변에 아는 기혼여성에게 아들이 고등학교에 다니는데 몇 년 뒤 징병되어 군에 가서 저런 일이 생길까봐 하는 마음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내가 아는 형은 강원도에 무장공비가 나타나서 유서를 작성하여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집에 보냈다고 한다. 작전 중 사망할 경우 그것이 곧 자식의 마지막 소식이 될 것이다. 이를 받아든 어머니는 잠도 제대로 못자고 밤낮으로 울었다고 한다. 위에서 말한 강남역 사건에서 피해여성의 오빠와 남자친구가 있었고, 구의역에서 사망한 노동자는 어머니가 있었다. 도대체 누가 가장 불쌍한 인간인가? 인간의 얼굴이라면 희생자와 희생자 주변에 있는 그들을 가장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메갈리아 워마드에 대한 포비아페미니즘은 인간의 얼굴이 아닌 단지 종교적 주술력으로 넘어간 셈이다. 내가 이 길을 선택하니 너네도 해야 한다는 신념은 전체주의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인류의 시작에서 여성이 처한 부조리가 많았지만, 남성이 처한 부조리를 두고 조롱하고 야유하며 심지어 부정하는 관점에서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것은 여성이 처한 사회적 모순의 해결이 아니라 오히려 그 대립의 각을 올리는 형국이 된 것이다. 어느 영화인지 만화인지 모르나 남자는 전쟁에 나가 죽으면 영웅이 되고, 살아 돌아와도 영웅이 된다. 살아와도 몸이 멀쩡하지 않아도 영웅이 된다고 한다. 이런 말은 참으로 비겁한 말이다. 그러면 반대로 여자가 전쟁에 가서 총에 맞아 죽고, 폭탄에 팔다리가 잘린 채 돌아와서 계속 살아야 한다면 그게 좋은 것인가?

 

전쟁은 결국 정치적 행위를 말이 아닌 무력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전쟁이 좋아 당장 총을 들고 신나서 전쟁터에 달려가는 남자들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 남자의 불리한 요소를 말하면 그들은 당장이라도 남자들에게 찌질 하다고 말하거나 조롱한다. 여자가 말하는 불편함을 당연하나 남자가 말하는 불편함을 당연하지 않은 것이다. 역차별을 당하는 남자를 구제하기 위해 성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발언을 위에서 언급했지만, 전쟁에서 억지로 끌려 나가 죽거나 공장에서 산업재해로 죽는 남자들이 무슨 성차별을 했는가? 일상생활의 대화나 행위들의 문제라면 당연히 시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으로 치부하여 어느 하나라도 자기합리화한다면 논리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일까?

 

기존 남녀 간의 문제를 다룬 점에서 제일 문제는 인간의 얼굴이 아니라 그저 남녀만으로 본다는 점이다. 내가 대학교 다닐 때 여학생들이 월 1일 생리로 인해 조퇴가 가능하고, 출석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는 거기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없었고, 혹은 좋지 못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 이야기를 해준 분이 학교의무실 간호사선생님이고, 그분이 이야기하기를 그것을 악용하여 어디 놀러가는 학생이 많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에 다시 생각하면 생리휴가는 나쁜 것이 아니라 여겼다. 미혼남성이 아닌 기혼남성 입장에서 아내가 월경으로 힘들어 한다면, 하루 쉬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결혼준비를 하는 동갑내기 직장인 남녀가 임금을 보니 여자는 돈의 액수가 높으나 남자는 낮다. 그래서 결혼준비에 소요될 예산문제(대출)에 봉착되어 있다면 그것 역시 남자가 군복무한 시간이 마이너스가 된다는 것이다. 예비군을 가는 남성이 장사를 한다면 그 일수만큼 생계수단을 잃는 것이다. 결혼하여 아내가 임신 및 출산상태라면 그 여성의 입장에서 예비군 제도가 좋을 수가 없다. 과거 임금과 관련하여 남성이 높았다. IMF 전에는 남자 혼자 평균 4인가족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점을 현재 통하지 않는다. 고소득 연봉수익자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연봉 3,700만원이 상위 30%라면, 그가 집 구매와 식자재, 기타 공납금을 낸다면 남는 것이 얼마나 될까? 과거 대학은 남성만이 특권이고, 여성은 여대 정도 갈 수 있는 정도지만, 이제 여성이 대학진학률이 올라가고, 조금 더 좋은 직장에도 많이 들어간다. 단지 들어간 상태에서 간부들은 대부분 남성이다. 하지만 자신과 같이 입사한 동기 남성 중에 그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부류는 극히 일부이다.

 

20대 청년세대는 임금수준이 좋지 못하고, 비정규직이 대부분이다. 생계가 보장되지 않아 결혼을 둘째 치고 연애조차 포기한다. 약자는 여자와 남자로 구분하는 게 아니라 현재 사회적 구조에서 경제적으로 사회적 기반이 약한 부류이다. 남녀 간의 대립에서 이득을 볼 자는 누구인가? 이택광 교수의 <마녀프레임>을 보면 마녀사냥의 근원은 사회적 문제를 만들거나 방치한 권력자들이 자신에게 돌아올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일반 민중에게 화살을 돌린다고 한다.

 

민중들은 피지배계급이기도 하나, 한편으로 같거나 비슷한 무리이다. 이른바 왕따문화 내지 인신공양이 튀어나오는 상황과 같다. 동급생 사이에서 왕따와 이지메가 나온 점을 생각하면 결국 문제의 해결보다 문제의 회피로 이어진다. 마녀사냥은 왕따문화와 비슷하다. 남녀 사이에 일어나는 일련의 문제는 사회적 경제적 모순과 부조리에서 일어난다. 임금 역시 노동문제이고, 성차별적인 상황에서 남성이 역차별을 받는 이유는 권력의 중심과 변두리에 있는 남성이 다른 점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만일 메갈리아 워마드 행위와 발언을 두고 그대로 페미니즘 전체로 물고 늘어지면 어떻게 될까? 일부 페미니즘 진영(그것도 오랫동안 운동하신 분들)에서 메갈리아 워마드 논쟁은 불편한 상황이 되었다.

 

한국 여성주의 운동은 단순히 여성주의로 시작한 게 아니라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 세력과 많이 연접되었기 때문이다. 기존 독재세력에서 가부장 군사문화를 주입했기에 그에 대한 해체의식으로 여성의 인권도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민주화 이후로 노동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지만, 노동자의 인권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고, 특히 비정규직 노조의 경우 거의 최악의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연애와 결혼보다 삶 그 자체의 생계가 다급한 부류이다. 이들은 메갈리아 워마드에서 조롱하는 200충이란 단어 축에 들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들이다. 현재 한국은 노동시장의 변화를 맞이한다. 한국 자본산업화가 축척되던 70년대의 노동자들이 이제는 노인이 되었고,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인만 남아있다. 통계자료를 보면 선원들의 숫자가 감소하고 있다. 한국은 삼면이 바다이고, 자원이 부족하여 수출입으로 재원을 확보한다. 신자유주의는 노동자의 삶을 파괴하지만, 그 흐름을 제대로 간파하여 위기를 넘지 않으면 국가부도로 이어진다.

 

6. 삶의 선택은 자유, 그러나 답이라고 말하지 마라.

내가 살아가든 일상에서 비혼 내지 자녀계획을 세우지 않은 분이 있다. 물론 개인이 그것을 하든지 말든지 개인의 자유이나, 그것이 마치 답이거나 혹은 진리라고 말하는 것은 싫다. 최근 비혼주의자 선언을 하는 책이 나왔다. 결혼을 하지 않아야 세상의 부조리를 끊을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참 위선자라고 본다. 그들이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하고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자유이다. 문제는 내가 이 글을 서두에 위치한 글이다. 이들은 좋은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좋은 음식이나 좋은 집은 물론이나 쾌적한 환경에서 지내길 바란다. 이들이 만일 산에서 채집과 수렵, 자급자족 하여 산다면 불만이 없다.

 

좋은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에 여유를 즐기고, 맛집에 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캐리어 가방을 끌고 공항에 가서 외국의 멋진 장면을 보고 싶을 것이다. 그런 점이야 상대가 그 무엇이든 누릴 수 있는 자유라고 본다. 단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한국에서 좋은 커피가 생산되지 않고 수입 된다. 음식재료도 반 이상이 수입에 의존한다. 외국에 가려면 공항시설이 유지되어야 한다. 물론 많은 사례가 있겠지만, 일단 차와 요리를 위한 커피와 식자재를 수송해야 할 배가 필요하다. 그 배를 움직이는 것은 한국의 선박회사이다. 배가 스스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선원이 필요하다.

 

선원이 1번 멀리 나가면 길게는 1년 동안 한국에 귀국하지 못한다. 나의 아버지는 40년 가까이 배를 타신 선원이다. 30년 넘게 해외를 돌아다니면서 화물선의 기관을 수리하던 분이다. 해외를 누비는 선원이 없다면 우리는 건물을 세울 공사자재도, 차를 움직일 기름도, 전기도 만들지 못한다. 이 모든 것이 선박에 의해 움직인다. 그런데 선박회사가 외국회사가 다 장악하면 한국경제는 후퇴하고, 외국인 선원만 고용하면, 선박의 통제와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결국 사회 현상유지를 위한 노동력이 필요하다.

 

사회에 필요한 노동력을 두고 노인들로 한다는 발언에 할 말이 없었다. 장시간 운전이나 노동강도가 높은 업무는 노인들에게 미룰 수 없다. 편의점 알바나 간단한 매표나 행정이야 가능하나, 사회적 기반시설 유지에서 한계성이 있다. 만일 그들이 버스와 전철을 안 타고, 방안에서 전기기구를 사용하지 않으면 관계가 없다. 누군가 계속 유지관리를 하지 않으면 결국 자신도 그런 유틸리티의 가치를 향유할 수 없다. 분명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고, 여성에 대한 부조리한 처사는 시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문제에 몰두하여 다른 문제를 배타적으로 다루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극단적 페미니즘 내지 자치 페미니즘이라고 하는 메갈리아 워마드 여성은 결혼은 하지 않을 것이라 하자, 그러나 그것을 두고 뭐라 할 생각도 없고, 오히려 그런 여성이 남성과 결혼하여 결혼생활이 제대로 될 리도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여전히 따뜻한 방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을 키며, 따뜻한 물도 필요할 것이다. 물론 그들은 그런 인프라를 구비하고 유지하는 노동자를 노예 내지 200충으로 보겠지만 말이다.

 

세상은 200충으로 만들어진다. 가진 것이 없어 힘든 삶을 살아가는 그들이 우리 사회의 토대라는 사실에 왠지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런 노동문제, 경제문제, 남녀 간의 문제 역시 삶이 점점 피폐해지기 때문이다. 최근 개저씨 내지 맘충이 대두되고 있는데, 맘충의 문제는 남녀 간의 문제가 아니라 왜 여성과 아이가 가게로부터 외면을 받았는 가이다. 전부터 생각하여 글로 정리했으나, 부동산이 폭등하여 가게를 내는 점주들이 임대료를 견디지 못해 영업을 문을 닫는 사례에서 봐야 한다.

 

그러나 진보언론은 이런 문제에 대해 깊게 논의하지 않는다. 임금과 이윤 그리고 지대는 애담 스미스의 <국부론>부터 시작하여 마르크스의 <자본>, 케인즈의 이론까지 이어진다. 결국 자본의 소득창출은 임금과 이윤에서 많은 것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지대에서 시작된다. 잘 나가는 가게가 문을 닫는 원인이 아르바이트생에게 임금을 많이 줘서인가? 아니면 가게의 매상이 낮아져서인가? 아니다 임대료가 상승 즉 지대의 문제이다. 지대의 임대료를 해결하기 위해 매상의 회전율을 올려야 하고, 11식이 아닌 21, 그것도 1130분이 아닌 211시간이라면 회전율을 채울 수 없다.

 

이것이 기업인의 논리인가? 아닌가 하는 논의에서 이런 문제를 갖는 사람은 소상공인 같은 영세업자이다. 이들도 프롤레타리아로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사람이고, 원래 프롤레타리아에서 시작한 부류도 많다. 작은 가게를 내어 생계를 책임지어야 하는데, 이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니 결국 문을 닫는 점포를 두고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경제적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해결될 리 없고, 지금의 진보진영이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조차 하지 못하고 일반화 논리만 매몰되니 그 무엇이 해결될 수 있는가?

 

7. 페미니즘은 필요하나 포비아 페미니즘은 필요 없다.

어느 누가 페미니즘이 남성에 공손하고 착하여야 하냐는 말을 했다. 기존 권력자에게 자신의 입지를 떳떳하게 주장하면 그럴 수 있겠지만, 그 대상이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21세기 헬조선 청년이면 곤란하다. 모든 진보진영, 페미니스트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전에 메갈리아 워마드 이슈가 SNS에서 화제가 될 때 어느 분이 메갈리아 워마드 지지발언과 남성중심사회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내가 어떤 강의에서 그 분을 알게 되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강연준비하는 그분이 친구하고 대화하는 것을 들었다.

 

친구(여성)분이 어느날 선을 봤는데, 그 선자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보고 있었다. 처음 물어본 것은 뭐하는 사람이지만, 결국에 물어본 것은 연봉이 얼마냐는 것이다. 답변으로 대략 6,000~7,000만원 정도인 것 같았다. 남성의 종속화를 거부하고,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분이 친구가 선을 보자 그 남자의 연봉부터 물어본 점에서 이중적 잣대를 느꼈다. 물론 연봉 정도 충분히 물어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소신이라고 말한 네티즌의 입장과 현실에서 친구하고 나눈 대화에서 괴리감이 느낀다.

 

이런 식을 느낀 남성에게 다소 찌질 해 보인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런다고 하여 자신 내면에 새겨진 자본주의 속물근성이 부정할 수 없다. 남성에게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독립하여 의존하지 않겠다며 그런 발언 자체가 문제이다. 그런다고 나는 이런 사람만 페미니스트로 보지 여기지 않는다. 대학학부 시절 시간이 남아 우연히 들은 여성학 강의시간에 오신 여교수님은 이미 자신은 결혼을 하여 남편과 같이 자녀를 키우고, 서로의 상황에 따라 집안일과 육아를 분담한다고 했다. 한국은 성적인 담론이 너무 조심스러워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오히려 상대방에게 피해주지 않을 정도라면 서로 격식 없이 성적인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 설명했다.

 

21세기 초반 내가 처음 접한 페미니즘은 그랬다. 그러나 10년 지난 후에 네티즌 세계의 페미니즘은 내가 처음 접한 페미니즘과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분야도 많고 생각도 많으며, 인간이 많은 만큼 여성과 남성도 많다. 그래서 의견이 하나로 통일되기는 어렵고 그 나라와 민족, 사회와 현황 속에서 각가지 이론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페미니즘은 인간을 위해 나온 사상이지 인간이 페미니즘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저술한 <공상에서 과학으로>라는 책자에서 정말 맞는 말을 했다.

 

인간이 사상을 만들었지만,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사상이라고 말이다. 인간은 자신의 진리와 사명을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다. 그런 사람들을 두고 인간의 윤리적 도덕적 가치에 따라 순국자내지 애국자로 볼 수 있고, 때로는 테러리스트 내지 광신도로 볼 수 있다. 다시 여성학 강의시간에 돌아간다. 당시 교수님은 페미니즘은 여성의 인권만큼 그런 여성과 같이 동반자로 살아가는 남성의 인권도 생각한다고 했다. 남성이 가부장제도에서 자신의 감정을 죽이며, 군대화 된 직장사회에서 노동력이 착취당한다고 말이다.

 

내가 접한 페미니즘 도서는 페미니즘은 여성의 인권만 아니라 어린이, 노인, 장애인, 외국인, 소외된 그 모든 사람을 위해 필요한 사상이라고 했다. 장애인을 비하하고, 어린아이가 쉬는 어린이집에서 행패를 부리며, 518에서 사망한 사람을 조롱하며, 산업재해로 죽은 노동자를 두고 페미니즘 실천가라 지칭하고, 거기에 옹호하는 엘리트 진보들을 볼 때마다 내가 처음 페미니즘이 이건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일베에 대항한다던 그들이 이제는 일베처럼 되어버렸고, 일베의 미러링이 아니라 일베의 메아리의 대상에게 같이 메아리를 보내는 현상도 보여주었다.

 

진보진영 사람들이 메갈리아를 지지하던 말든 자유이나, 그들이 노동자의 입장을 두고 운운하는 것은 차마 두고 볼 수 없다. 산업재해를 당하여 사람이 죽거나 다칠 때 그 당사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 역시 정신적 충격에 빠진다. 내 친구는 생선가공공단 폐수처리장을 관리하다가 호흡곤란 증세로 사망했다. 안전도구도 없이 21조라는 안전규칙도 제대로 지켜지지 못한 채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내 친구처럼 허무하게 죽은 노동자들은 너무 많다. 이들이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면 누가 약자인가? 올해 친구의 1주기 제사에 가고 싶었다는 말을 친구 여동생에게 문자로 보내니, 답장이 친구의 어머니가 우리를 보면 당신의 아들이 너무 생각나서 견딜 수 없어 차마 부를 수가 없다고 했다.

 

내 친구가 일하는 폐수처리시설은 생선을 이용하여 만든 가공식품이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묵을 먹거나 통조림을 먹을 것이다. 대국민을 위한 노동자는 아니나, 대국민을 위해 필요한 노동자였다. 그런 사람들이 년 간 수천명씩 생명을 잃고, 그들의 가족은 평생 지울 수 없는 고통을 안은 채 살아간다. 그 중에서 남성도 있고 여성도 있으며, 특히 그들의 어머니들이 깊은 상처를 받는다. 인터넷 페미니즘을 보면 주패턴은 기혼여성이 배제되고 있으며, 기혼여성의 부조리를 말할 때는 어린아이를 달고 다니는 산모들에 대해서다.

 

솔직히 이런 말을 하면 나 자신도 한심하게 여기지만, 아이를 낳지 않을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사람을 두고 입장대변하면서, 한편으로 남자와 같이 살아가는 것을 선택한 여성을 두고 명예자지를 운운하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누구의 말처럼 임산부와 산모에게 친절하지 않은 세상은 맞다. 하지만 이런 세상을 만든 원인이 뭔지에 대한 고찰과 담론 없이 민폐사례만 열거만 하는 짓에서 에너지 낭비만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전에 우리 회사 직원의 아내분이 아이를 출산했는데, 그 직원이 집에서 그의 아내를 돌보고 있었다.

 

휴가를 내어 집에 머무는데, 저녁 7시 정도 전화 와서 업무를 처리해달란 말을 하고, 8시 정도 사무실에 와서 업무를 하고 간 일이 있었다. 육아휴가를 남성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것, 노동시간을 조금 더 축소하여 집안일을 분담해주는 남편이 되려면 결국 노동문제와 경제문제를 돌아볼 수밖에 없다. 정작 중요한 해결방안을 이러하나, 이데올로기의 정점에서 주장하는 일부 엘리트들은 자신의 입지만 굳히기 위해 서로를 혐오하게 만들고 있다. 이 세상에서 여성만 약자가 아니다. 이 세상의 강자는 남성만이 아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열악하고 어려운 여성과 남성이 약자인 것이다.

 

페미니즘 입장에서 경제적으로 가난한 남녀가 서로 사랑하여 결혼하여 아이를 가지고 싶다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행복은 무엇인가? 가난으로 여성이 그 남성과 결혼하지 못하고, 결혼해도 아이를 가지지 못한 채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면 그 여성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 아니라면 사회적 기반시설을 유지하지 못한 채 자신은 계속 문명과 벽을 쌓으며 삶을 영위할 수 있는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것은 아니나,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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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9 2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29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10-29 23: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회문제에 접근할 때 ‘부당하게 억압 받는 이‘들의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문제‘가 아닌 ‘계층‘문제로 접근했을 때, 문제 해결보다 계층간 대립으로 잘못 옮겨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화애니비평 2017-10-30 08:46   좋아요 3 | URL
예전에 세월호 희생자 중에 고등학교 학생들이 많았죠.
보통 남자고등학생들이 활달하여 선실 내부보다 외부에 있어서 생존자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구조자 중 남학생이 많고, 희생자가 여학생이 더 많으니 여성혐오로
밀어붙이는 그들의 모습에 그저 할말을 잃었고, 그런 비정상적 발언을 해대는
부류에게 마치 페미니즘 전사라고 칭송하는 진보 학자 내지 언론들의 무뇌아적인
발상에 기겁했습니다. 과연 세월호 여자고등학생 희생자 어머니가 저 말을
들으면 무슨 생각을 할까 싶더군요....참....

HG.Chris 2018-04-29 12: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 스스로도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살아오긴 했는데, 최근의 행태들을 보면 제가 알고있던, 그리고 추구하던 페미니즘과는 너무 달라서, 어디서 감히 페미니즘의 페 자도 못 꺼내겠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8-05-09 08:49   좋아요 1 | URL
요새 홍익대 미대 누드 사건을 보면서 본질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메갈리아 워마드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쓰면서 알라딘 여성유저들도 그런 환상에서 벗어나면 좋으려만 참 아깝씁니다.
오늘 기사를 보니 한겨례에서 워마드와 페미니즘은 다르다는 식으로 꼬리자르기를 하던데, 과거 그들이 패륜질을 일삼은 부류를 쉴드친 점에서 반성의식이 없는 그 어떤 사상은 인류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ㅇㅇ 2018-05-15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9-03-16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페미니즘을 연구하는 것에 있어 참고가 많이 될 것 같네요 !

사실 페미니즘에 관련된 유명한 책들 중에서는 ‘메갈리아‘에 관한 내용은 별로 없고 가부장적인 남성문화 혹은 성고정관념, 대상화와 인식들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읽으면서 심히 공감하고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메갈리아‘의 방식에 대해 표면적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실상을 알고나니 조금은 당황스럽더군요. 아무렴 저는 그렇기 때문에라도 군대에서부터 이어진 남성들의 소위 ‘강간문화‘를 근절하는 것이 가장 우선시 되고, 양 측의 주된 타겟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정치는 암울하지만 논외로 치부하고 사회적으로라도 방향성을 잡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인권을 공부하면서 ‘정치적 올바름‘의 개념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고 싶어졌는데 혹시 관련해서 자세히 알고 있는 책이 있으시다면 추천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만화애니비평 2019-03-17 18:52   좋아요 1 | URL
사실 강간문화의 문제는 남성만의 세계로만 치부되는 게 아니라 역사적 시스템에 있다고 저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문화적 여건도 있다고 여깁니다. 외국 드라마와 혹은 연예계 방송을 보면 여성 방송인들이 야한 옷을 입고 서로 섹시 섹시 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가끔 저도 의아하게 느끼는 것은 성에 대한 대상화인가 아니면 개방화인가 어느 게 옳은가? 라는 고민입니다. 제가 2000년 초반 여성학 수업을 받을 때 여성교수님이 성적인 대화가 개방되어야 하고, 자연스럽게 야하지만 상대방에게 극히 불쾌하지 않을 정도로 말하는 것도 성의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여성학 관련 도서에서 주로 메릴린 옐롬 교수 책을 보면서 지금의 현실과 다른 괴리성을 느낍니다.

어째든 강간문화가 문제되는 건 그 사회의 경직성이라 봅니다. 군대 특히 육군 중심편제 한국은 원래 일본 관동군 만주군의 장교들이 이끌고, 육군사관학교 같은 경우 친일파 후예와 독재자들의 세력이 모인 곳이기도 합니다. 강간문화의 문제점은 바로 군대에서 전체주의적 발상에서 약자인 하급자도 강자의 힘을 부여하려면 약자를 누군가 부여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전쟁에서 가장 자행하는 행위는 여성에 대한 성폭행입니다. 남성들은 대부분 죽지만, 여자는 그 자리에서 성폭행당하죠. 이건 심리적 압박행위이기도 합니다. 518 당시에도 여성에 대해 성폭행하고, 민주화 투사 중 여성들은 성고문을 자행했죠. 강간문화가 하나로 밀집되는 게 문제가 있고, 남성이 여성에 대한 성적 욕망을 부정하는 것 역시 문제지만, 그런다고 그런 성향을 강압적 드러내도 되는 문화는 역사적으로 이어온 과거의 잔재가 심하게 깔려있다고 봅니다.

혹은 그 교수님이 오히려 성을 개방되어야 하는데, 서로 감추니 억압된 성적 학대가 사회적 도덕적으로 해리된 게 아니냐는 말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