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5집 - 불의 발견
부활 노래 / PLYZEN (플라이젠) / 1997년 7월
평점 :
품절


 

부활 5집 불의 발견은 부활의 앨범에서 새로운 발견이라고 생각한다. 본래 불이라는 것은 인간의 문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불에 대해 생각하면 불이 곧 파괴와 생성을 두 가지를 지니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요소이다. 불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추위와 배고픔을 해결해주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나, 때로는 인간의 모든 것을 빼앗고, 심지어 인간의 근본이 되는 자연조차 파괴한다. 매년 우리나라에 산불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산림이 훼손되고 사라지고 있는가? 불의 발견이란 인간에게 있어서 편리함과 동시에 불편함을 안겨주는 극단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이런 불의 발견의 테마처럼 연주곡에서 프로메테우스라는 곡이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지혜와 번영을 알려주는 불을 전해준 이유로 그 벌로 절벽에 묶여 맹금류에게 살을 파여 먹히는 벌을 받는다. 인간에게 불이란 것을 준 대가로 영원한 고통을 받는다. 하지만 고통이란 프로메테우스만 받는 것만은 아니다. 부활5집의 프로메테우스를 듣다보면 전쟁이란 큰 비극이 사운드로 들려준다. 폭탄이 떨어지고, 전투기가 날아가는 소리는 불의 발견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 분명 Elga의 희망과 영광의 나라를 기타 에드립으로 들을 때는 불이란 인간에게 희망을 주는 하나의 상징이다.

 

그런 것이 고통의 분란이란 점에서 얼마나 부활5집이 서사적인 주제를 담고 있는가? 서사의 주제에서 마지막은 역시 희망이다. Any time이라고 계속 반복하는 보컬링에서 우리에게 이런 비극의 극복을 넘을 수 있는 미래는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부활의 불의 발견은 그렇게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해준다. 그런 만큼 노래 역시 의미심장하다. 여태까지 부활의 노래를 들었다면 5집의 첫 곡부터 매우 놀랄 수밖에 없다. 보통 전자기타와 어쿠스틱 기타 음이 시작되는 것보단 신디 음이 경쾌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Lonely Night, 내가 처음 듣자말자 엄청나게 쇼크를 받은 곡이었다.

 

부활이 이런 곡을 하다니 말이다. 박완규의 시원하고 터지는 듯한 목소리는 부활의 기존의 이미지를 벗어 서정적인 것보다 도전적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물론 슬픔 바램이란 곡이 있었으나 21세기 불경기나 믿음이란 곡은 상당히 현실에 대한 회의감이 가득한 곡이다. 21세기 불경기에서 가사 하나하나가 공감이 간다. 술잔에 기울이고 낭만 따위는 없이 그저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비애라고 할까나? 믿음 역시 인간의 과도한 믿음이 파멸을 부르는 것을 말한다. 불이라는 것은 결국 문명이기에 문명사회라고 하는 현실이 과연 우리 인간에게 행복을 주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그런 것에서 우리에게 안식을 주는 것은 추억 내지 지나간 일들에 대한 단상이다. 부활 2집의 이승철이 부른 회상을 다시 박완규가 부른 것에서 마지막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아 지나간 세월에 대한 어린 시절의 그리움을 더 그립게 한다. 마치 부활3집에 있는 그리움 그리운 그림처럼 부활5집은 오히려 저돌적이고 경쾌하기에 그리움과 회상이란 아련함을 떠오른다.

 

기타리스트 김태원이 펼치던 부활5집에서 사운드의 세계는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예전에 부활1집에서 김태원의 기타가 붉은색 펜더 스트라토캐스터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이번 5집에선 상당히 비주얼이 돋보이는 ESP 기타를 들고 있는 점에서 신기했다. 조금 5집 이전에는 수수한 차림과 분위기였다면, 5집에선 임팩트가 넘치는 코디와 장비였는지 매우 느낌이 신서했다. 물론 지금도 부활은 다른 스타일과 새로운 음악 스타일을 가지고 있으나, 아마 5집이 최고 혁명적이라고 본다. 기존의 부활의 틀을 제일 심하게 전복시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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