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사람과 눈사람
임솔아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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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 인물은 십대와 이십대.

<병원> 의 정유림 <추앙>의 정원에게 심리적으로 동요되어 그의 주치의 처럼 혹은 아는 언니처럼 등을 토닥여주고 싶었다.
실제 문단 내 성폭력 문제에 대한 내용은 읽고 있는 입장도 단순히 사건의 목격자 정도의 스트레스 이상의 정신적 피폐함을 갖게 된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세상이 좀 나아지길 진짜 정말 에휴... 쫌! 나아지길...
그렇게 바라마지 않는데, 세상에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더 다채로워지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쓸데없이 꼴같잖게 버라이어티하다.

무너진 일상과 마음을 어떻게든 복구하려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노력이 미약할 수는 있겠지만, 헛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읽는다.

- 기열의 친구들도, 기열의 이름만 아는 아이들도, 기열의 이름을 모르던 아이들도, 종일 기열에 대해 이야기했다. 몇몇 아이들은 점심을 먹지 않았고, 몇몇 선생들은 수업 도중 눈물을 흘렸다. 몇몇 아이들은 이 반 저 반을 돌아다니며 기열을 잃은 슬픔에 대해 이야기했다. 갑자기 모든 사람이 기열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 11, 줄 게 있어 중

- 아버지는 틀린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돈 말고 사람과 대화하고 싶다."
이 말을 한 날, 아버지는 미래은행 여의도지점장을 그만두었다.
"돈이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버지의 말은 은행 지점장으로 지내온 아버지의 세월을 기차처럼 통과하고 있었다.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건 오직 대화야." - 16, 줄 게 있어 중

- 정원이 쓴 항의 메일은 초라했다. 자신이 느낀 분노도 수치심도 좌절도, 정원은 제대로 적지 못했다. 좋은 문학적 자질이란 무엇일까. 정원은 자신이 좋은 문학적 자질을 가졌다는 말에 모멸감을 느꼈다. - 90, 추앙 중

-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다리를 주무르던 밤, 정원은 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해 자퇴원을 인쇄했다. 학교와 함께 글쓰기도 그만둘 생각이었다. 자퇴원에는 자퇴 사유를 입력하는 칸이 있었다. 시적 자유와 낭만성으로 포장되는 모든 폭력이 싫습니다. 그 문장을 적고 나서야 정원은 침대에 누워 깊은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정원은 그 문장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정원은 문장을 첨가했다. 그 다음날 아침에도 문장을 첨가했다. 그러나 또 다음날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무언가 부족해 보였다. 객관적인 사실을 드러내는 동시에 주관적인 고통을 전달해야 했다. 개인적 경험이나 아픔을 드러내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었다. 사회의 윤리 바깥으로 나아가려는 문학을 추앙하는 태도와 그런 태도를 가진 자들을 추앙하는 태도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이 연결에 얼마나 내밀한 권력관계가 작동하는지를 적어보고 싶었다. 연결 안팎에 있는 이들에게 권력관계가 얼마나 아무렇지도 않게 폭력으로 행사되고 있는 지를 드러내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정원은 자신을 위해 말을 해야 했다. 타의에 감금된 자신을 최소한 자기 자신을 마주할 때에는 풀어주어야 했다.
이런 식으로 정원은 자퇴 사유를 적는 일에 몰두해갔다. 어느새 그 일은 자퇴를 위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오직 그 글을 완성하기 위해서 정원은 매일 썼다. 무너져내린 것을 방치하지 않기 위한 유일한 대처였다. - 95, 추앙 중

- 언니는 정상이 되고 싶댔지. 나도 언니가 생각하는 정상이 되고 싶어한 적이 있다는 걸 언제고 언니에게 꼭 말하고 싶었어. 정상이라는 것은 계급이고 권력이라고 생각해. 정상이라 여겨지는 그 영역 안에 종속되어야 안심이 되니까. 나는 비정상이어서 아픈게 아니라 나를 거부하면서까지 정상이 되려고 애를 썼기 때문에 아팠어. - 118.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 중

2024. aug

#눈과사람과눈사람 #임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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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3 - 4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3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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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를 비롯한 전국에서 항일 학생 궐기가 한창인 때다. 
그 시절에 그런 전국적 궐기가 일어나기가 어려운 여건이었지만, 조선 민중 전반에 항일 의식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고, 생업에 대한 부담이 덜 했기에 학생들이 주축이 될 수 있었지 않았을까.
나라의 전반이 빈곤하기 이를 데 없는 시절이었으니 그런 추측을 하게 된다.

한복의 아들 영호가 학생 궐기에 앞서면서 마을에서는 오랜 동안 멸시와 핍박을 받았던 한복의 가족에 대해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살인 죄인의 가족이라는 오명보다 나라를 위하는 영웅적 면모를 존중해주는 모양새다. 사실상 살인 범죄에 연관이 전혀 없는 가족들에게는 오랜 시간의 멍에였으나, 시절이 그랬으니...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경외하고 섬긴 최 참판댁이 가진 불행의 역사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마을 사람들 모두가 일종의 견해를 가지게 되는 것은 의식의 근대화와도 상관이 있을지 모르겠다. 함부로 재단할 수 없던 높은 담 넘어의 양반도 같은 피와 살의 사람일 뿐이라는 의식. 그럼에도 쉽사리 넘지 못하는 심리적인 계급의 장벽 같은 것.

- 그런데 어찌하여 삼천리 강산 남의 땅으로 쫓겨간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이 불운한 강산 거리거리에 거지들이 떼지어 방황하고 있는 것인가. 일인들 왈 조선에는 웬 거지가 이리 많으냐, 총독부에 가서 물어볼 일이다. 땅을 약탈하여 배가 불러 터지게 된 동척에 가서 물어볼 일이다. 조선인은 게으르다, 어째 게으른가 그 것 역시 총독부, 동척에 가서 물어볼 일이다. 조상 대대로 살아 온 땅에서 내쫓긴 수많은 사람들, 날품팔이 행상, 남의 집 고공살이, 그런 일자리나마 과연 충분하며 입에 풀칠할 만한 수입인가. - 14

- 확신할 수 없는 꿈, 아니 거의 불가능하리라는 막연한 예감 때문에 들뜨고 미치는지 모른다. 사실 희망이나 기대 같은 것도 그게 무엇을 향한 것인지 스스로 알지 못하는 상태라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독립되리라는 희망, 더더구나 좋은 세월이 와서 볏섬을 그득그득 쌓아놓고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 그것이 아니다. 현재가 견디기 어려우니 희망에 매달릴 수밖에 없고 생존을 포기할 수 없으니까 희망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가난한 자여, 핍박받고 버림받은 자여, 희망은 그대들의 것이며 신도 그대들을 위해 있나니, 희망의 무지개는 저 하늘과 하늘 사이에 걸리는 것, 그것은 미래인 것이다. - 76

- 인간 이용이, 홍이는 멋진 남자였다고 생각한다. 뇌리를 스쳐가는 간도땅에서의 수많은 우국 열사들, 흠모하고 피가 끓었던 그 수많은 얼굴들, 그러나 홍이는 아비 이용이야말로 가장 멋진 사내였다고 스스럼없이 생각한다. 열사도 우국지사도 아니었던 사내, 농부에 지나지 않았던 한 사나이의 생애가 아름답다. 사랑하고, 거짓 없이 사랑하고 인간의 도리를 위하여 무섭게 견디어야 했으며 자신의 존엄성을 허물지 않았던, 그 감정과 의지의 빛깔, 홍이는 처음으로 선명하게 아비 모습을, 그 진가를 보는 것 같았다. 사라져가는 아비 자취에 대한 마지막 전별의 순간인지 모를 일이었다. - 93


- 내게 베푼 사람은 진실로 할머님 한 분밖에 아니 계셨던가. 내 할머님, 그리고 위의 할머님 또 할머님, 그분들이 청상이 아니었던들 오늘날 최 참판댁 재물은 없었을 것이며 그 옛날에도 최 참판댁 재물은 없었을 것이다. 베푸는 자는 항상 무자비한 존재요 외로운 사람, 이 집안의 청상들은 끝내 베푸는 자리를 지켰으며 무자비한 군주였었더란 말인가. 청상은 베풂을 받아서도 아니 되고 능멸을 받아서도 아니되느니, 가을마다 곡식 섬의 수를 헤어야 했던 그 가는 손목의 과부들, 어찌 참혹하지 아니할꼬. 천형의 죄인이로다. - 128

- "아홉 폭 치마로 덮을라 캐도 있었던 일은 있었던 일, 죽음도 죽음 나름 아니겄소."
그 말에는 영산댁도 입을 다물어버린다. 딴은 그랬었다. 사실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외포 없이 최 참판댁을 생각할 수 없었다. 오랜 세월, 실질적인 영주로서 군림해온 권위에 눌려서도 그랬었지만 그보다 최 참판댁을 둘러싼 갖가지 불행한 내력과 불길한 사건은 마을 사람들의 잠재의식 속에 공포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 220

2024. aug.

#토지 #13 #4부1권 #박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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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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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더스 키퍼스를 물려받은 홀리에게 닥쳐온 사건.

코로나, 안티 백서들, black lives matter, 인종주의. 노년의 삶의 질에 대한 것들...

장기간에 걸친 연쇄 실종이 존재하지만 수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놀라웠달까.
누군가의 생명은 이 세상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고, 잊어버리는 것으로 외면, 위안 삼는 게 아닌지 생각한다.

식인에 대해 정신병적 집착과 노화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과 두려움이 엘리트 의식에 잠식되어 있는 인간에게 몰빵되었을 때, 그런 인류가 저지르는 범죄라는 점에서 '정의를 구현' 한다는 일종의 사이다적 쾌감은 적은 편이다.
결국 그런 인간들은 죽어 사라지는 게 유일한 해답일 것만 같은 막막한 체념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정한 인간관계들이 우리 삶 속에 수없이 많은 위험들로부터 우리를 얼마나 지켜주는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홀리 기브니의 홀로서기가 잘 이루어 지고 있어서 다행이다 싶고, 갑작스러운 엄청난 유산 상속으로 해결되지 않고 쌓여버린 가족 간의 갈등 문제도 어찌 될지 궁금하다. 뭐 주인공이니 결국 이겨내겠지만.

그리고 변치않는 스티븐 킹의 깊고 깊은 트럼프 혐오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이구나 싶은 반가움이 늘 있다.

이야기에 중요한 문장은 아니지만 이 부분이 좀 웃겨서 남겨둔다.

- 마흔은 젊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하는 나이다. 그러지 않고 "요즘 마흔은 예전의 스물다섯"이라는 식의 자기계발서에나 나옴직한 헛소리를 믿기 시작하면 점점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 12

- 홀리는 그가 회신하지 않았다는 걸 안다. 그녀가 짐작하기로는 이렇다. 불안한 퍼넬러피가 인터넷이나 페이스북에서 파인더스 키퍼스를 찾아보니 두 명의 파트너가 두 개의 업무용 연락처를 쓰는데 한 명은 남자, 한 명은 여자다. 불안한 퍼넬러피는 남자에게 연락했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퍼넬러피의 말마따나 '응급 상황'이 벌어지면, 적어도 처음에는 암말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종마에게 연락한다. 암말은 대비책이다. 홀리는 파인더스 키퍼스라는 마구간에서 암말로 지내는 데 이골이 나 있다. - 42

- 빌이 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신이 곧 사건은 아니에요. 당신과 사건을 동일시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요. 그러면 절대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 - 75

- 대부분의 사건은 달걀처럼 잘 바스러져요. 왜냐고요? 범인들은 대부분 멍청하거든요. 나쁜 짓을 저지를 때는 똑똑한 인간들도 바보가 돼요. 안 그러면 애초에 그런 짓을 저지를 이유가 없겠죠. 그러니까 사건을 달걀 다루듯 해요. 톡톡 금을 내서 깨서 버터와 함께 프라이팬에 풀어요. 그런 다음 그걸로 맛있는 오믈렛을 만들어 먹어요. - 422

- 올리비아 킹즈버리에게서 이야기를 들었겠지. 그런데 정황이 비슷하잖아. 심지어 쪽지마저 비슷해. 카스트로는 "지금까지 참을 만큼 참았어." 보니 달은 "더는 못 견디겠다." 두 실종 사건의 간격이 9년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경찰이 코로나 때문에 인력난을 겪지 않았다면,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시위가 폭력 사태로 번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지 않았다면, 모터 자전거나 그냥 자전거나 스케이트보드가 아니라 시신이 한 구만이라도 발견됐다면......
"그걸 바라느니 돼지가 하늘을 날아서 온 사방에 똥비가 내리길 기다리는 편이 낫겠네." 홀리는 중얼거린다. - 461

-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을 보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착각으로 밝혀진다는 것. 이지는 이렇게 말한 다음 뜻밖의 결론을 내렸다. 악에는 끝이 없어요. - 583

2024. sep.

#홀리 #스티븐킹 #파인더스키퍼스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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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과 부동명왕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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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야 괴담, 흑백의 방이 돌아왔다.

첫 번째 청자였던 오치카의 무탈한 출산과 더불어 진행되는 이야기.

어려운 시절을, 개인의 고난을 이겨내는 소시민들의 이야기라서 늘 정이 간다.

어리석어 보이고 나이브해 보이는 이들이지만 현대의 인간이 가진 교활함이 덜한, 선의에 대한 사회적 믿음이 좀 더 공고한 시대를 그리고 있어서 그런듯 싶다. 

아이를 낳지 못한 여자, 남편의 폭행에 시달리고, 남편의 가족들에게 냉대 받아 쫓겨나온 여자, 결혼을 하지 않은 여자, 남편 없이 아이를 낳은 여자. 이들 모두 공동체의 부정적인 시선을 견디며 살아야 하고 구성원으로서 자리 잡기 어려운 시절에 그런 여성들을 보듬어주는 공동체 동천암이 생기고 그를 돌봐주는 신이 있다는 이야기는 아프기도 하지만 따뜻한 면이 있어 가장 와닿는다. 그게 청과 부동명왕.

악귀가 들린 붓에 얽힌 괴담을 듣고 화공의 꿈을 어렴풋이 가지고 있던 도미지로는 그림을 포기하겠다 생각하지만, 인간의 염원을 담은 종이 인형 마을 괴담을 듣고는 다시금 그리고자하는 마음이 솟구쳐 오르는데 과연 집안에서의 역할이 모호한 차남 도미지로는 자신의 꿈을 좇게 될지...

- 사람은 누구나 평생에 걸쳐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간다. 때로는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인생의 덧없음을, 사랑의 아름다움을, 사라져 가는 영혼의 애틋함을, 모든 것을 다 태우고도 여전히 연기를 내며 남아 있는 증오의 끈질김을.
그런 이야기를 듣기 위해 미시마야의 별난 괴담 자리는 계속될 예정이다. - 10

- 누구의 마음속이든 물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하지만 묻고 대답을 얻는다 해도 전부 달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매번 묻다가는 귀찮아서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러니 말없이 서로 양보하고, 서로 배려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본심 같은 건 캐물어 봐야 소용없다. 그것이 움직이지 않는 진실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니까. 진실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 114

- "너는 네 자리를 지키고 속세에서 주어진 역할을 다함으로써 충분히 불도에 귀의할 수 있다."
지금은 아직, 이런 말을 들어 봐야 납득할 수 없을 게다. 그래도 괜찮아. 속았다고 생각해도 좋으니 내 말을 따라 다오.
"언젠가 반드시 네가 네 길을 올바르게 걷고 있다는 증거가 나타날 게야. 그게 어떤 형태로 어디에서 나타날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나타날 게다." - 128

- 도미지로는 손으로 얼굴을 덮고 있었다. 뜨거운 눈물로 젖은 눈꺼풀 속에 여러 정경이 떠오른다.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의 마음을 가진 화신들. 그 눈에 깃든 웃음과 눈물. 그 존엄함, 그 다정함. 그것은 분명히 '생명'이었다.
그리고 싶다. 나는 역시 그림을 그리고 싶다. 이런 것을 그리고 싶다. 도미지로는 지금 흑백의 방에 앉아, 도도히 흘러넘친 그 마음에 삼켜지고 있다. - 479

2024. sep.

#청과부동명왕 #미야베미유키 #미시마야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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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 문학과지성 시인선 399
이수명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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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의 시들이 취향에 맞았다.

<불가능한 벽> <나는 너의 시체를 가지고 있다> 가 좋았다.

- 바닥에 놓여 있어도
내 두 발은 가라앉지 않는다.
돌로 누르고 눌러놓아도
일요일은 떠오르고
돌과 함께 떠오르고
돌과 함께
나를 깨뜨린다. - 일요일의 아침 식사 중

- 소용돌이가 내게로 왔다. 와서 멈추었다. - 어떤 소용돌이 중

- <나는 너의 시체를 가지고 있다>
나는 너의 불을 가지고 있다. 얼어붙은 불, 가만히 불어본다. 너는 불을 깨닫지 않는다.

어두워지는 저녁, 도시의 귀환을 끌어안고 땅 밑을 걸어간다. 심장에 박힌 발을 떼내었지 더 넓은 지푸라기 떼들을 기다리면서

너를 해치고 너를 되돌려주는 일

하늘을 때려눕힌다. 하늘을 따라간다. 다만 움츠러들었던 검은 스토브와 허겁지겁 솟구친 오늘 싹이 난 눈금에 대해 친절할 것이며

움직이지 않는 노래를
얼어붙은 너의 입속에 남겨둘 것

굳어진 태양이 벽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본다. 나는 마치 최후의 날씨가 되어 일몰을 미루고 일몰을 버린다.

너를 바꾸지 않고 너를 여러 개로 바꿀 뿐인 저녁

나는 너의 시체를 가지고 있다.
네가 없는 너의 시체

이제 아무것도 너를 가로질러 가지 않는다.

- 나는 발생하지 않은 채로 지속된다.
내가 심었던 것을 내가 파낸다. 존재하는 것 존재하려는 것 존재가 풀리는 것을. 내가 파낼 때 진행되기 시작하는 식물을 - 나는 발생하지 않은 채로 지속된다 중

2024.. sep.

#언제나너무많은비들 #이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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