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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평점 :
히틀러와의 `화해`라는 선언은 얼마나 자극적인가. 도발하는 시작.
테레자, 그녀 어머니 인생의 실패로 담보된 것이라는 자책과 자괴감.
그런 생각을 끊임없이 주입시키는 가족이라는 폭력.
그런 것들이 테레자를 만들어 냈을까.
왜 실패의 원인으로 아무런 의도도 갖지 않았던 아이를 지목하고 불행하기를 기원하는 것인지.
폭력에 매료되는 사비나. 배반이라는 행위를 인생의 단 하나의 목표로 삼은 여자.
非 비의 세계로...
수많은 개인의 우연이 경첩되어 이루어지는 거대한 역사라는 것이, 참을 수 없이 가볍게 다가오는 순간들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 중 유효한 등장인물인 네 명의 남녀.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공감과 연민을 느끼는 대상은 테레자와 사비나.
그리고, 아마도 허무와 공허함에서 비롯되었을 토마시의 섹스 중독은 그를 얼마간 충족 시켜주었는지 몰라도, 평생의 반려로 삼은 테레자에게는 거대한 구멍을 만들수 밖에 없는... 그런 우연과 필연의 교차.
우연으로 점철된 우울의 시대는 그런 식으로 사람을 황량하게 만드는가 보다.
자기 자신이기 위해 사랑하는 이에게 부당한 형벌을 지우는 토마시도 아주 이해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를 온전히 이해한다고 말할수 없는 것은, 그는 이미 너무 자신을 사랑하고 있으므로. 나까지 그럴 필요가 있겠나... 싶은 마음이다.
어이없을 정도로 유치한 소극, 대장정 챕터는, 그것 그대로 인생에 적용될 수도 있는 연극적인 무대.
그나마 토마시와 테레자가 춤을 추는, 마지막 장면이 불행의 무대가 아니었던 것만은 이 책의 긍정적인 측면이랄까.
왠지 깊은 우울함에 빠져들게 하는 그런 책.
그래도 아주 좋았던 책.
읽은 줄 알고 살았는데, 읽어보니 제대로 읽지 않았던 책.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 p. 9
토마시는 독일 속담을 되뇌었다. 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중요치 않다. 한 번분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 p. 17
Muss es sein? Es muss sein! - p. 54
˝그러나 프라하에서는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어요!˝ 하고 테레자는 분개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의 점령 치하 조국에서는 공장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학생들은 점령군에 대항하기 위해 동맹 휴학을 하며 국민 모두가 나름대로 계속 투쟁중이라고 서툰 독일어로 반박했다. 바로 그 점이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그런 것에는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 p. 114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었다. - p. 344
2015.J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