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소년이 서 있다 민음의 시 149
허연 지음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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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관과 체념의 정조.
타협할 수 밖에 없던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는 자.

전체적으로 무겁게 가라앉은 느낌.

<슬픈 빙하시대 2> <나쁜 소년이 서 있다><호숫가><밥> 좋았다.

- 결국,
범인으로 늙어 간다.
다행이다. - 시인의 말

- 안 가 본 나라엘 가 보면 행복하다지만, 많이 보는 만큼 인생은 난분분할 뿐이다. 보고 싶다는 열망을 얼마나 또 굴욕인가. 굴욕은 또 얼마나 지독한 병변인가. 내 것도 아닌 걸, 언젠가는 도려내야 할 텐데. 보려고 하지 말라. 보려고 하지 말라. 넘어져 있는 부처의 얼굴을 꼭 보고 말아야 하나. 제발 지워지고 묻혀진 건 그냥 놔두라. - 난분분하다 중

- 숨 막히게 아름다운 세상엔 늘 나만 있어서 이토록 아찔하다. - 안에 있는 자는 이미 밖에 있던 자다 중

- 세월이 흐르는 걸 잊을 때가 있다 사는 게 별반 값어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파편 같은 삶의 유리 조각들이 처연하게 늘 한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무섭게 반짝이며 - 나쁜 소년이 서 있다 중

- 강물만 봐도 좋은 날이 있었는데
낙이 사라져 간다
늘 죽어야 하는 이유만큼 살아야 하는 이유도 있었는데
시에는 더 이상 쓸 말이 없고
아픈 다리를 끌고 가는 세월이
회식과 실적과 고지서 같은 것들에
걷어차이며 몇 번을 주저않는다 - 생태 보고서 1 중

- 행복할 수가 없다. 그대가 납작 엎드려 신음하며 살았던 몹쓸 것 천지인 세상에서 이 길바닥에서
누울 수가 없다. 길바닥이다. - 길바닥이다 중

2024. jul.

#나쁜소년이서있다 #허연 #민음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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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이끄는 곳으로
백희성 지음 / 북로망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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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 붐업되는 책에 홀리지 말자 다짐을 해도 뭔가 하나라도 끌리는 포인트만 있으면 혹시나 하고 또 낚이게 되는것 같다.
진짜.... 좀 고쳐야할 부분. (내가....ㅡㅡ)

권태에 빠져있는 건축가가 미스터리를 쫓아간다는 설정은 일단 흥미롭고
자연과 어우러져 신비한 현상을 만들어내는 건축물도 상상해보면 흥미롭다.

병들고 부유한 노인의 마지막 소원? 수리를 위해 미스터리를 파헤치게 되지만 결국 해결의 단서들은 옛시절을 기억하는 꽃집 아저씨가 다 주는 듯 .ㅋㅋ

결국 집은 주인에게 돌아가고 부유한 할배는 쾌유되고 15년후의 후일담.. 이런건 좀 나이브하지 않나...

마리아쥬프레르 의 마르코폴로? 조금 반가웠다.

- 그랬다. 건축가라는 직업의 모순점이었다. 건축가는 건물을 만들지만, 완성 후에는 집주인에게 열쇠를 주고 떠난다. 요리사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지만, 정작 그는 제때 식사를 할 수 없다. 기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사로 만들지만, 자신의 이야기는 잘 쓰지 않는다. 어쩌면 세상의 수많은 직업들이 바로 이런 바보 같은 모순 속에 놓여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뛰어들었지만 대부분의 일들은 그저 서비스일 뿐이다. - 22

2024. oct.

#빛이이끄는곳으로 #백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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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10-16 2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진짜 이 책 낚였어요. 읽고나서 허탈했다는..

hellas 2024-10-16 22:05   좋아요 0 | URL
바이럴에 이젠 안당할법도 한데...... ㅡㅡ 그죠??
 
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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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대온실 복원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

계약직으로 수리 보고서 작성에 참여하게 된 영도의 이전 작업이 철새 보고서였기에 자연스레 인물 묘사에 새의 특징적인 부분들이 재료가 되는게 잔잔한 즐거움을 준다.

매력적이고 비극적인 역사 소재와 성장통을 겪는 소녀들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진행되고,
강화라는 섬과, 서울 한복판 성과 주변의 성터 공간이라는 장소 위에,
조용하게 파문을 일으키는 문장과 대화들이 정말 매력적인 이야기다.

허구와 실제가 뒤섞인 이야기지만, 허구의 부분이 있을법한 역사적 고통과 인간의 고독들이 묻어나 잔잔한 감흥을 준다.

주인공 영도는 조용한 모범생 같은 느낌을 주다가도 불쑥 무덤덤한 도발이나 기개? 가 엿보이는 강단 있는 캐릭터지만,
이런 아이도 언제든 어떤 이유로 상처와 실패로 고꾸라져 좌절을 겪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결국 딛고 일어나 자신의 삶을 조용히 살게 된다는 것이 너무 현실적이다.

작품의 측면에서가 아니라 그저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리사라는 인물이 조금도 나아가지 않은 인간인 채로 남는다는 점이다. 소설이 무슨 교화를 위한 것은 아니지만, 현실이 너무 삭막하다고 느끼는 요즘, 이야기 속에서라도 조금 전진하는 인간들을 보고 싶다는 작은 바램. 그런 게 있었기 때문인데, 어쨌든 리사는 그런 사람인 채로 살아가는 게 현실적이기는 하지... 씁쓸..

별책인 작업일지도 이야기에 더 몰입하게 해준다.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의 내면, 고요한 작업 같아 보이지만, 작가 내면에 이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엿볼 수 있는 점이 좋았다.

책을 다 읽고 무심히 창경궁의 대온실을 검색해보다
대온실에 금복서 꽃이 만개했다는 글을 보았다.
가보고 싶지만, 다음 주면 꽃은 이미 다 저물었겠지?

- 돌아보면 항상 어떤 장소를 지워버림으로써 삶을 견뎌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잊어야겠다 싶은 장소들은 아예 발길을 끊어서 최대한 망각할 수 있게 노력해왔지만 이 일을 맡으면 그곳에 대해 생각하고 더 알게 될 것이다. 거기에는 일 년 남짓의 내 임시 일자리가 있었고 600년 전에 건축된 고궁이 있었고 잊지 않으면 살 수가 없겠구나 싶어 망각을 결심한 낙원하숙이 있었다. - 17

- 건축사사무소에서는 시공 전 필요한 설계도서까지만 공급하지만 이번에는 최종 수리 보고서까지 발주처로부터 수주받았기 때문에 나를 뽑게 되었다고. 대온실 공사는 그 건물이 처한 상황이 복잡했기 때문에 고증 작업이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대온실이 국가등록문화재이긴 한데 좋은 마음으로 안 보게 되잖아요. 일제 잔재라고. 창경궁 복원공사 때 다른 시설 다 철거되는데 겨우 살아남았죠. 생존 건물인 셈이에요. 기관에서는 그런 면을 꼭 써달라고 하더라고요." - 32

- "그런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
또 싸우고 싶은 건 아니지만 이번에는 정말 이해라는 걸 해보고 싶어서 물었다. 리사의 세계를 알아내고 가능하면 조립해보고 싶었다. 그 안에 있는 두려움, 수치심, 공격성, 슬픔, 연약함, 욕심, 채워지지 않는 허기 같은 것을.
"수준을 들키는 것보다는 낫지."
리사는 그렇게 답하고는 턱까지 흐른 침을 얼른 손등으로 닦았다. 나는 말해봐야 소용없으니 복숭아나 먹어치워야겠다고 결심했는데 리사가 "너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하고 물었다. 시선은 내 발치쯤에 둔 채였다.
"뭘?"
어둠 속에서 실잠자리들이 마치 보풀처럼 떠올랐다.
"때로는 믿어야 살 수 있어서 누군가를 믿게 된다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막상 리사가 진지하게 물어오니까 나는 답을 못하고 한동안 복숭아만 우적우적 씹었다.
"나는 당연하게 생각되는데, 아니면 사람이 대체 어떻게 살지?" - 112

- 물론 쉽지는 않았다. 여기는 낙원이 아니고 아이들은 싸웠고 부모들은 각자 생각이 달랐다. 다만 그런 문제가 일어나면 동네 전체에 알려졌고 그것이 때론 상황을 나쁘게, 때론 더 낫게 만들었다.
"너무 마음 아파하지는 말자."
내가 산아에게 말했다.
"너무 마음이 아프면 외면하고 싶어지거든. 아까 우리도 말했지? 너무를 조심하자고." - 122

- 내가 성호를 그으며 기도하는 모습을 신기하게 보던 순신이 "너 성당 다니는 애였어?"하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거기서 뭘 배우냐고 다시 물었다.
"구원에 대해 배워." 나는 성당에서 늘 들었던 단어를 답했다.
"구원이 뭔데?"
어려운 질문이었다. 누가 그것에 답을 할 수 있을까.
"그건 수난이 그치는 거야."
그러자 당연한 수순처럼 순신이 수난이 뭐냐고 물었다. 나는 순신에게 손바닥을 펼쳐보라고 했다. 그리고 거기에 얼음조각이 놓여 있다 상상해보라고. 그러면 어떻겠어? 하고 물었다. 순신은 아주 시원할 것 같다고 해서 내 김을 빼놓았다. 나는 지금이 겨울이라 생각해보라고 다시 조건을 달았다. 이제 더이상 매미도 울지 않고 나뭇잎도 일렁이지 않는다고, 길이 얼어 자전거를 탈 수도 없고 옷 밖으로 몸을 내놓으면 아플 정도로 바람이 차고. 그런 겨울에 손바닥에 얼음이 있으면 손이 얼겠지, 아프고 따갑고 시렵겠지, 그런데 얼음을 내던질 수는 없고 가만히 녹여야만 한다고 생각해봐. 그 시간이 너무 길고 험난하게 느껴지겠지, 그런게 수난이고 그럴 때 하는 게 기도야.
"그 얼음 나중에 녹아 없어지기는 하는 거지?" 순신이 제법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당연하지."
나는 녹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답을 들을 사람이 순신이라서 힘주어 말했다.
"다행이다."
이후 원서동을 떠나오고 나서도 그 대화만은 잊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 우리가 주고받은 당연하고 다행인 구원에 대해서만은. - 157

- "좋네요."
내 말을 들은 아랑씨는 떡 하나를 집으며 방긋 웃었다.
"우리가 사실 각자 자기 일 하는 것 같아도 옆 사람 힘 빌려서 하는 거거든요. 옆에서 에너지 안 내주면 영 기계적이 되고 그러잖아요." - 208

- 산아는 왜 옛날이야기들은 이렇게 슬프게 끝나는지 모르겠다고, 역사책 읽을 때마다 해피엔드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너무 옳은 말이라서 또다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역사가 슬픈 건 죽은 이들 때문일 수도 있고, 늘 미완으로 남는 소망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 267

- 한때는 근대의 가장 화려한 건축물로,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대중적 야앵의 배경지로, 역사 청산의 대상으로 여러번 의의를 달리한 끝에 잔존한 창경궁 대온실은 어쩌면 '생존자'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건축물과 함께 그 시절 존재들이 모두 정당히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당신에게도 이해되기를. - 작가의 말 중

2024. oct.

#대온실수리보고서 #김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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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명의 목숨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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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명의 명단. 아무 단서도 연관성도 없는 사망 예고장.

무질서를 바로잡으려고 (일부는 아니지만)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다는 게 정의? 라는 마음.

흥미롭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 상황에 처한 등장인물 각자의 서사가 흥미를 유발했을 뿐,
원 범죄의 동기는 좀 어처구니 없다고 느낀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 속에서 경찰에 지원을 요청한다든지 하는 일 없이 혼자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인물들이 꼭 나오는데.... 안 그러면 이야기가 안될까? 

제시카가 결국 죽지는 않은 점이 좋았다.
다 몰살되면 그것 또한 무질서고 정의가 아닐 것.

- 오늘 밤은 이유가 뭐든 간에 그 답을 찾은 듯했다. 아서는 복음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삶이 얼마나 덧없는지, 너무 일찍 떠난 사람들을 애도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명확히 깨달았다. - 157

- 나는 그 무고한 여덟 명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행성에 거주해온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나의 작은 보복 행위는 미미할 테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일이다. 악을 악으로 갚아봐야 좋을 게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도 억울한 일을 겪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 376

- 어쩌면 내가 그 순간에 그들의 삶을 끝내준 것이 그들에게 좋은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내 덕분에 그들이 피하게 된 일이 뭘까? 가슴 찢어지는 이별? 지독한 이혼? 자식을 가슴에 묻는 일? 틀림없이 그들은 내 덕분에 무언가를 겪지 않게 되었다. 행복은 언제나 일시적인 상태일 뿐이니까. - 379

2024. oct.

#아홉명의목숨 #피터스완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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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콜링 - 제37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민음의 시 253
이소호 지음 / 민음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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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OW

2. 일부 독자에게 페미니즘 글쓰기는 읽히지 않는 부분이 존재하는 것 같다.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겠지.
워딩의 일부로만 읽기도 하고.

3. 시의성이 있다는 점이 중요하지만 살아가는 내내 느끼는 점이라 딱 지금! 이라서만은 아니다.

4. 차용의 유의미함과 무의미함

5.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폭력성은
예민하게 다가오고, 그로 인한 불편함은 생경하지 않다.
불편하지 않음은 너무 일상화되어서 인 것.

6. 표제 시 <캣콜링>의 탁월함
6.1 <송년회>에 그림처럼 그려진 맨스플레인의 향연.ㅋㅋㅋㅋㅋ 진짜 숨이 막혀오는 게 ptsd...
6.2 <한때의 섬> 좋다..
7. 여성 혐오는 남녀 모두에게서 발화한다는 점. 특히 가족 안에서

8. 경진은 대체 누구를 상정하는 인물인가?

이런 생각들..

정말 좋은 시인이지 않은가.

- 밤에는 낮을 생각했다
형광등에 들어가 죽은 나방을 생각했다
까무룩 까마득한 삶
셀 수 없는 0 앞에서 우리 - 아무런 수축이 없는 하루 중

- 보푸라기처럼 닿으면 닿을수록 망가지는 우리
언제나처럼
사랑한다는 말만 남고 우리는 없었다 - 별거 중


2024년 9월

#캣콜링 #이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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