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 - 제2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화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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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멀고 먼 길을 돌아 결국 연대하는 여자들의 이야기.

이야기를 끝내야 할 사람이 과연 누구인가 생각한다.

그러나 너무 지치는 이야기다.

기운이 쪽 빠졌다.

그만큼 날것이고 격렬하다.

2018. a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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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나혜석 지음, 장영은 엮음 / 민음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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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읽은 책들과 많이 겹치는 내용들.

안타까운 삶이라는 사실은 변함없고, 그와 연대해주지 못한 그 시대가 싫어지는 것도 여전하다.

비단 과거의 삶만이 그런 것도 아니지 않을까.

좀 더 눈을 크게 떠버린 사람들이 외면받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그런 상황.

공적 영역에서의 여성의 존립 근거에 대해 자연스럽게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실수와 무지에 대해 더 예리한 잣대를 들이대고, 비난하는 것은 여전한 일이다.

공적 영역이라는 것을 어떻게 상정하느냐에 따라서 이런 생각과 연관지을 수 있는 사건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일수도, 세상 모든이의 손가락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스스로도 같은 기준을 양성에 기대하는지 부터 돌아보게 된다.

페미니즘에 대해 알면 알수록 변화가 더딘 사회에 대한 환멸보다는 내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이 더 많다. 나는 과연 공정한가, 과거의 나는 왜 그렇게 미숙했나, 앞으로 닥칠지 모르는 일들에 나는 용기를 더 낼 수 있나....

나와 같은 생각의 알고리즘에 빠져드는 여성들이(남성들도) 많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많이 더 열렬히 읽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과 글과는 별개로, 페미니즘과 관련한 무수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반갑지만

여전히 읽을만한 책은 드물다고 생각한다.

나혜석은 칼자루를 쥔 남성 중심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칼날을 쥔 여성들이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고 말과 글을 남겨야 한다고 믿었다. 칼날조차 놓쳐 버리면 ‘순환’의 시간은 결코 오지 않는 다고 나혜석은 예상했을 것이다. 당장의 상처를 피하기 위해 칼자루를 쥐게 될 기회 자체를 일찌감치 포기해 버리는 것이 가장 슬프고도 위험한 일이라고 나혜석은 판단했다. - 9, 서문 중

이른바 신여성이라 불리던 여성 지식인들의 연애와 결혼이 유독 스캔들의 대상이 되었던 한국 근대사회의 풍경을 나혜석의 글을 읽으면서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지금까지도 공인으로 활동하는 여성들에게 스캔들은 치명상이다. 공적 영역에서 여성의 존립 근거가 그만큼 약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은 대체로 자신의 개인적 이야기를 최대한 감추거나 침묵으로 일관하는 방식을 택해 왔다. 그것이 적어도 사회에서 살아남는 데 안전한 방식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혜석은 정반대의 길을 택하여 직접 말하고 직접 글을 쓰며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냈다. 그 대가를 너무나도 혹독하게 지불했으나, 나혜석은 자신의 말과 글을 중단하지 않고 공개했다. 남성 중심의 전근대적 사회가 정작 바라는 일은 여성들의 발화를 봉쇄하는 것이었다. 나혜석은 이러한 구조를 오랫동안 체험했기 때문에 침묵이 보신의 길임을 분명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모순에 저항했다. 남성 중심의 전근대적 사회와 지난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나혜석의 삶과 글은 역사적 가치를 획득할 자격을 갖추었다. - 152

여성이 직접 말하고, 생각하고, 글을 쓰고,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일체의 행위 자체가 당시 남성들에게는 그저 못마땅한 일이었다. 나혜석은 불완전한 상태로라도 스스로 고민하고 방황하며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가는 여성의 삶을 꿈꾸었고, 그 꿈을 글쓰기로 실천했다. 여성의 삶이 모순적이고 분노와 좌절의 연속인데, 어떻게 여성의 언어가 아름답고 완전하고 완벽하기를 바라느냐는 나혜석의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 233

2018. a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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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스 형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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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작가 책이라서 아끼다가 꺼냈다.

좋아하는 작가의 새 책을 대하는 두가지 방식 손에 들어오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리거나,

결정적인 순간?에 꺼내 읽거나. :)

버지스 남매는 어린시절의 트라우마가 있고, 성장한 그들의 가족도 온전히 행복하지 못하다.

여기에 결정적인 사건 인종 혐오 범죄에 휘말린 - 이 부분의 작가의 사건 선택 방법은 좀 나이브하다고 느껴지지만, 애초에 잭의 실수였다고, 잭은 외로운 아이라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변명하는 태도 같은 것 - 조카의 뒷수습이 추가되었다.

어쩌면 조카의 사건에 가족들의 문제들이 추가되는 것일 수도 있고.

누군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이 이야기내내 설득력을 얻지만, 결국 납득할 만한 해피엔딩이 되어 버리는 통에 사실 누군가를 제대로 알지 못한들 어떠한가라는 생각으로 책을 덮게 된다.



“그런데 메인에 왜 소말리족이있는 거야?” 헬렌이 문을 통과해 옆방으로 가면서 물었다. 그녀가 돌아보며 어깨 너머로 소리쳤다. “족쇄를 찬 게 아니고서야 누가 셜리폴스에 가겠어?”
밥은 헬렌이 그런 식으로 말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버지스 가족의 고향을 싫어하는 티를 노골적으로 내면서도 전혀 거릴낄 게 없다는 투였다. 짐이 그녀의 말을 받았다. “그 사람들은 족쇄를 찼으니까. 가난이 족쇄지.” - 35

헌법의 위대함과 모든 인간에게는 생명권과 자유권, 행복추구권이 있음을 믿는 밥, 그런 밥 버지스마저 술 달린 스카프를 두른 키 큰 남자가 셜리폴스 골목길을 걸어가는 것을 보면서 - 이렇게 생각했다.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친 것이긴 했지만, 이런 생각을 했다. 그 수가 너무 많지만 않다면야. - 101

수전이 그 시위를 자신이나 재커리를 반대하는 시위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 지역 성직자 중에 그걸 하나로 뭉쳐서 생각하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걱정돼요. 뭐든 ‘반대하는’거 있잖아요. 폭력에 반대하고, 종교적 차이에 대한 편협함에 반대하고. 그 사람들이 옳아요. 하지만 잘잘못을 가리는 건 법이죠. 목사라면 희망을 불어넣어야 해요. 물론 목소리를 내야 하고요. 하지만 희망을 심어줘야 해요. 진부한 이야기죠? - 141

그리고 이제는 너무 늦었다. 무언가가 너무 늦었다고 믿고 싶은 사람은 없겠지만, 언제나 조금씩 더 늦어지고, 그러다보면 마침내 너무 늦어버린 순간이 온다. - 444

어떻게 하면 좋지, 밥? 나는 이제 가족이 없어.
형은 가족이 있어. 밥이 말했다. 형을 미워하는 아내가 있잖아. 형한테 잔뜩 화난 자식들도 있고. 형을 돌아버리게 만드는 동생들도 있고. 머저리같이 굴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머저리가 아닌 조카도 있고. 그런 게 가족이야. - 546

2018. a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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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돌아서면 그만이다 문학동네 시인선 99
안정옥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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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꼬집어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지점에서
딱 꼬집어 아 이것이다라고 느껴지는 시.


어느 나무에게는 다른 나무의 가지를 잘라 눈접을 붙여 하나로 엉겨붙게도 만든다 그들이 왜 그래야 되는지를 나는 모르겠다 빨간 불빛에 잡혀 있을 때만 할 수 있는 알맞은 이 비유, 그러나 돌아서면 그만이다 - 갈 수 없는 곳과 엉겨붙다 중.

어떤 시도 비밀을 빛나게 해주지는 못했다
있다가 사라지는 나처럼 그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만한 문장들이 어디 있겠는가 조용히 나를 거쳐갔기에 내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것을 어떤 은유로 그렇게 오래 그렇게 영원히 몰아붙일 수 있겠는가 - 비밀 중.

2018. m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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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0
뮤리얼 스파크 지음, 서정은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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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이야기.

나의 사랑하는 파시스트 선생님에 대한 회고랄까.

아름답고 매력적이지만 묘하게 꼬여있는 내면을 그를 사랑하고 동경하던 학생이 관찰, 서술하는 이야기다.

브로디 선생은 자신의 전성기에 집착하고 자신의 복제품을 만들고픈 욕망을 선생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실현하려 한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선동적으로 차단하고(그 경험이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스스로 판단해야 할 일), 사실 딱히 교묘하지도 않은 방법으로 교묘하게 아이들을 조종하는 문제의 캐릭터.

그래서 어쩌면 특정 인종이 우월하다는 주장, 인종 개량 같은 극도로 유해한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파시스트는 진 브로디 선생을 위한 맞춤한 자리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더 진보적인 학교에 지원해야 한다는 거야. 내 수업 방식은 블레인보다 그런 학교에 적합하다면서. 하지만 내가 그런 허접한 학교에 지원할 일은 절대 없어. 난 이 교육 공장에 남을 거라고. 여기서 밀가루 반죽을 부풀릴 효모 역할을 해야지. 아직 말랑말랑한 나이의 소녀를 내게 주면, 그애는 영원히 내 것이 될 거야. - 13

영원히 내 것이 될거야... 라고 꿈을 꾸는 얼굴로 말하는 장면을 떠올리니 스릴러 분위기가 훅 끼쳐 오지만, 사실 이 이야기는 자신의 현실이 전성기라고 자기 암시를 하는 브로디 선생이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학생들과 아름다운 사제관계를 만들어가고, 아름답고 격정적인 연인이 있으며, 스스로 문학적으로 고양된 삶을 살고 있다는 착각들이 하나씩 부서지는 과정.

붕괴의 과정이 아름다워서 이 이야기가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존경과 확신, 선망의 마음에 스스로 균열을 내 성장한 학생들 개개인이 존재해서 (그들 개인의 성공과는 무관하게) 매력적인 이야기다.

그럼 로즈가 배신했을까?
브로디 선생의 징징대는 목소리 - ‘날 배신한게, 날 배신한 게......’- 그 소리가 샌디는 거슬리고 짜증스러웠다. 이 성가신 여자를 배신한게 벌써 칠년 전 일이군. 샌디는 생각했다. 브로디 선생은 뭘 ‘배신’이라 얘기하는 걸까? 샌디는 다른 사람의 비판에 바위처럼 무심했던, 배신 따윈 당할 수 없던 과거의 브로디 선생을 찾기라도 하듯 창밖의 언덕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 80

이렇게 우회적인 방식으로 샌디는 브로디 선생이 그런 인물이 된 이유, 더이상 견딜 수 없게 된 다른 독신 여성들처럼 술독에 빠지는 대신 이국적이고 자기파괴적인 도취에 빠짐으로써 그토록 특이하게 스스로를 고양시키게 된 이유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 144

2018. m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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