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나혜석 지음, 장영은 엮음 / 민음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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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읽은 책들과 많이 겹치는 내용들.

안타까운 삶이라는 사실은 변함없고, 그와 연대해주지 못한 그 시대가 싫어지는 것도 여전하다.

비단 과거의 삶만이 그런 것도 아니지 않을까.

좀 더 눈을 크게 떠버린 사람들이 외면받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그런 상황.

공적 영역에서의 여성의 존립 근거에 대해 자연스럽게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실수와 무지에 대해 더 예리한 잣대를 들이대고, 비난하는 것은 여전한 일이다.

공적 영역이라는 것을 어떻게 상정하느냐에 따라서 이런 생각과 연관지을 수 있는 사건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일수도, 세상 모든이의 손가락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스스로도 같은 기준을 양성에 기대하는지 부터 돌아보게 된다.

페미니즘에 대해 알면 알수록 변화가 더딘 사회에 대한 환멸보다는 내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이 더 많다. 나는 과연 공정한가, 과거의 나는 왜 그렇게 미숙했나, 앞으로 닥칠지 모르는 일들에 나는 용기를 더 낼 수 있나....

나와 같은 생각의 알고리즘에 빠져드는 여성들이(남성들도) 많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많이 더 열렬히 읽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과 글과는 별개로, 페미니즘과 관련한 무수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반갑지만

여전히 읽을만한 책은 드물다고 생각한다.

나혜석은 칼자루를 쥔 남성 중심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칼날을 쥔 여성들이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고 말과 글을 남겨야 한다고 믿었다. 칼날조차 놓쳐 버리면 ‘순환’의 시간은 결코 오지 않는 다고 나혜석은 예상했을 것이다. 당장의 상처를 피하기 위해 칼자루를 쥐게 될 기회 자체를 일찌감치 포기해 버리는 것이 가장 슬프고도 위험한 일이라고 나혜석은 판단했다. - 9, 서문 중

이른바 신여성이라 불리던 여성 지식인들의 연애와 결혼이 유독 스캔들의 대상이 되었던 한국 근대사회의 풍경을 나혜석의 글을 읽으면서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지금까지도 공인으로 활동하는 여성들에게 스캔들은 치명상이다. 공적 영역에서 여성의 존립 근거가 그만큼 약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은 대체로 자신의 개인적 이야기를 최대한 감추거나 침묵으로 일관하는 방식을 택해 왔다. 그것이 적어도 사회에서 살아남는 데 안전한 방식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혜석은 정반대의 길을 택하여 직접 말하고 직접 글을 쓰며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냈다. 그 대가를 너무나도 혹독하게 지불했으나, 나혜석은 자신의 말과 글을 중단하지 않고 공개했다. 남성 중심의 전근대적 사회가 정작 바라는 일은 여성들의 발화를 봉쇄하는 것이었다. 나혜석은 이러한 구조를 오랫동안 체험했기 때문에 침묵이 보신의 길임을 분명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모순에 저항했다. 남성 중심의 전근대적 사회와 지난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나혜석의 삶과 글은 역사적 가치를 획득할 자격을 갖추었다. - 152

여성이 직접 말하고, 생각하고, 글을 쓰고,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일체의 행위 자체가 당시 남성들에게는 그저 못마땅한 일이었다. 나혜석은 불완전한 상태로라도 스스로 고민하고 방황하며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가는 여성의 삶을 꿈꾸었고, 그 꿈을 글쓰기로 실천했다. 여성의 삶이 모순적이고 분노와 좌절의 연속인데, 어떻게 여성의 언어가 아름답고 완전하고 완벽하기를 바라느냐는 나혜석의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 233

2018. a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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